John Gill's Exposition of the Bible
John Gill · 1763
John Gill(1697-1771), Exposition of the Old and New Testament(1746-1763). Public domain. Retrieval mirror: biblehub.com/commentaries/gil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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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나가 기도하여 이르되,.... 그녀는 앞서도 기도하였으나 그것은 마음의 기도였고 이번 것은 소리 내어 드린 기도다. 그녀는 기도하여 응답을 받았고 자기가 구한 것을 얻었으므로 이제 그 일로 감사드린다. 그리고 감사는 기도의 한 종류이거나 그 한 부분이다. 1 Timothy 2:1 을 보라. 그러므로 이어지는 것이 노래이기는 하나 그것은 기도로 표현되었고, 그래서 그녀가 기도하였다고 말한 것이며, 탈굼이 옮기는 대로 예언의 영으로 그리하였다. 그런 까닭에 유대인들은(h) 그녀를 일곱 여선지자 가운데 하나로 꼽는다. 참으로 이 노래에서 그녀는 자기가 누린 하나님의 선하심에 대한 은혜로운 경험을 이야기하고 하나님의 완전하심을 기리며, 섭리와 은혜 양편에서 하나님이 사람들을 대하시는 방식을 다룰 뿐 아니라, 뒷날 이스라엘에서 이루어질 일들 특히 메시아와 그의 나라에 관하여 예언한다. 이 노래는 동정녀 마리아의 노래와 크게 닮았으니, 1 Samuel 2:1 을 Luke 1:46 과, 1 Samuel 2:2 를 Luke 1:49 와, 1 Samuel 2:4 를 Luke 1:51 과 비교해 보라.
내 마음이 여호와 안에서 즐거워하며. 주께서 그녀에게 주신 아들을 두고 즐거워한 것이 아니라, 기도의 응답으로 그를 그녀에게 베풀어 주신 주의 선하심과 인자하심을 두고 즐거워한 것이다. 이는 그분이 그녀에게 크게 자기를 낮추셨음을, 곧 그녀를 눈여겨보시고 사랑하시며 그녀를 기뻐하시고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그녀의 기도를 받으셨음을 보여 주었다. 그녀는 남편을 두고 즐거워하지도 않았고, 그들이 가진 재물과 소유를 두고도, 피조물이 주는 어떤 즐거움을 두고도 즐거워하지 않았으며, 오직 이 모든 것을 주시는 분인 주를 두고 즐거워하였다. 또한 자기의 종교적 예배와 제사를 두고 즐거워한 것이 아니라, 그로 말미암아 자기의 본분이 하나님께 받으실 만하게 되고 드려진 제물들이 가리키는 실체이신 주 그리스도를 두고 즐거워하였다. 우리도 오직 그리스도의 인격과 직분과 은혜 안에서만 즐거워해야 한다. Philippians 4:4 을 보라. 한나의 이 기쁨은 세상적인 것이 아니라 영적인 것이었고, 겉으로만이 아니라 속으로 누린 것이었으며, 위선적인 것이 아니라 참되고 진심에서 우러난 것이었다.
내 뿔이 여호와 안에서 높아졌으며. 이 말은 그녀가 낮은 처지에 있었고 기가 꺾였으며, 욥이 자기 처지가 그러하였다고 말한 것처럼 그 뿔이 티끌에 더럽혀져 있었음을 전제한다. 욥 16:15. 하나님이 그녀의 태를 닫으셨을 때, 또 그녀의 적수가 그것으로 그녀를 나무라며 그녀를 격분시키고 괴롭혔을 때, 그리고 그녀가 슬픔에 가득하여 음식을 먹지 못하고 마음의 괴로움 가운데 기도하였을 때가 그러하였다. 그러나 이제 그녀는 여기서 빗대어 말하는 뿔 가진 짐승들이 기운차고 힘셀 때 그리하듯 자기 뿔과 머리를 들 수 있게 되었다. 이제 그녀는 밝고 환한 낯빛을 지을 수 있게 되었고 심지어 개가를 부를 수 있게 되었으니, 높은 처지로 올려지고 주께 크게 은총을 입었기 때문이며, 그녀는 자기 처지와 형편의 이 변화를 그분께 돌린다. 그녀가 이렇게 힘을 얻고 높아진 것은 그분의 권능과 은혜로 말미암은 일이었다. 이는 본성상 낮은 처지에 있던 하나님의 백성이 회심 가운데 거기서 건짐을 받아 하나님의 은혜와 은총의 드러난 자리로 들어가고, 풍성한 복과 긍휼을 차지하며, 영원한 영광의 소망을 얻어 그 일로 뛰놀며 개가를 부를 수 있게 되는 것과 같으니, 이 또한 같은 권능과 은혜로 말미암는다.
내 원수들을 대하여 내 입이 크게 열렸으니. 브닌나와, 그녀를 격분시키며 잉태하지 못함으로 나무라던 자들을 가리키니, 그녀는 그들에게 아무런 대꾸도 할 수 없었다. 그러나 이제 그녀의 입이 열려 넉넉히 말할 수 있게 되었고 실제로 그리하였다. 그것은 남들에게서 당한 일을 되갚아 욕하고 비방하는 방식이 아니라, 하나님께 드리는 기도에서 그러하였으니 그분께는 입을 열고 나아가 자유와 담대함을 쓰며 간절하고 뜨겁게 믿음으로 간구할 수 있었다. 또 그분이 자기를 위하여 행하신 크고 선한 일들을 두고 찬양과 감사를 드리는 데서, 그리고 이제 그 일을 다른 이들에게 거리낌 없이 넉넉히 말하는 데서 그러하였다. 어떤 이들 곧 자기 친구들에게는 그들의 기쁨과 즐거움이 되게 말하였고, 또 어떤 이들 곧 자기 원수들에게는 그들의 슬픔과 부끄러움이 되게 말하였다.
이는 내가 주의 구원 안에서 기뻐함이니이다. 아들이 주어짐으로 잉태하지 못한다는 비난에서 벗어나게 된, 주께서 그녀를 위하여 이루신 현세의 구원만을 두고 한 말이 아니다. 1 Samuel 2:10 에서 드러나듯 그녀가 알고 믿었던 메시아로 말미암은 영적이고 영원한 구원을 두고도 한 말이니, 그를 믿는 모든 자가 그러하다. 이 구원은 하나님의 지혜로 마련되고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이루어졌으며 그의 영으로 적용되는 것이다. 또 이 구원은 그토록 크고 그토록 합당하며 온전하고 완전하고 전적으로 값없으며 영원히 지속되는 것이다. Psalm 20:5 을 보라.
(h) T. Megillah, fol. 14. 1.
여호와와 같이 거룩하신 이가 없으시니,.... 주께서 자기를 위하여 행하신 일을 헤아리는 가운데 그녀의 마음과 입은 기쁨과 찬양으로 가득 찼고, 이로부터 그녀는 하나님의 완전하심을 기리게 되는데 그 거룩하심에서 시작한다. 하나님은 거룩하심에서 영광스러우시며 그 거룩하심은 그의 모든 길과 일에서 드러난다. 그는 다른 이들과 달리 본질적으로, 근원적으로, 독립적으로, 완전하게, 불변하게 거룩하시다. 천사들도 거룩하나 스스로 거룩한 것이 아니니 그 거룩함은 주께로부터 온다. 또 그 거룩함은 그분의 거룩하심에 견주면 완전하지 않으므로 그들은 그분의 그 완전하심을 기릴 때에 자기 얼굴을 가린다. 또 그것은 불변하지도 않으니, 적어도 본성상 그러하지 않다는 것은 타락한 자들에게서 그것이 상실되었음이 보여 준다. 사람들 가운데는 율법의 경륜 아래서 거룩하였던 이들이 있으나 참으로 그러한 것이 아니라 모형적이고 의식적인 뜻에서 그러하였다. 어떤 이들은 겉으로만 위선적으로 거룩하여 사람이 보기에만 그러할 뿐 하나님이 보시기에는 그렇지 않다. 참으로 거룩한 이들은 거룩함에 부르심을 받아 그 원리가 그들 안에 심겼고 거룩한 삶과 행실을 살아간다. 그러나 그들이 신성한 성품에 참여하는 자가 되어 하나님의 거룩하심을 닮은 모습이 그들 안에 있다 하여도, 그것이 그분의 거룩하심과 같은 수준에는 한참 미치지 못한다. 사람 가운데 가장 나은 자의 거룩함도 불완전하기 때문이다. 그들 안에 죄가 없지 않고 그들이 범한 죄가 없지 않으며 그들 모두가 스스로 완전함을 부인한다. 그러나 주께는 불의가 없으시니 그는 의롭고 참되시며, 그의 본성에도 그의 어떤 일에도 불의의 그림자조차 없다.
이는 주 밖에 다른 이가 없고. 그분 밖에 다른 하나님이 없으시다. 그분에게서 나지 않은 존재가 없고, 그분으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무도 거룩하지 않다. 천사들의 거룩함이 그분에게서 왔고, 무죄 상태의 아담의 거룩함도 그분에게서 왔으며, 그가 택하신 자들의 모든 거룩함도 그분에게서 온다. 그들은 그 거룩함에 이르도록 그분께 택함을 받았고 그 택하심 안에서 그것이 그들에게 확보되었으며, 그들은 그리스도 안에서 성령으로 말미암아 성부 하나님께 거룩하게 되었다.
우리 하나님 같은 반석도 없으심이니이다. 반석이라는 말은 신성을 가리키는 데 쓰이고 때로는 거짓 신을 가리키는 데도 쓰인다. Deuteronomy 32:31. 여기서도 그러할 수 있으니, 그 뜻은 우리 하나님 같은 신이 없다는 것이다. 참으로 그분 밖에는 아무도 없다. 이방인의 우상들처럼 지어낸 신들과 이름뿐인 신들이 있고, 통치자들처럼 부적절하고 비유적인 뜻에서 그렇게 불리는 이들도 있으나, 참되고 살아 계신 하나님은 오직 한 분뿐이시다. 또 그 본성의 완전하심과 그 선하심의 복에서 그분과 같은 이가 없으니, 섭리에서든 은혜에서든 그러하다. 이 반석이라는 은유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가 자주 표현된다. 그는 이스라엘의 반석이시요 피난처의 반석이시며 구원의 반석이시다. 하나님의 공의에서 숨기고 가려 주는 일을 그가 하시는 대로 할 수 있는 반석은 없다. 힘과 지속함에서 그와 같은 반석이 없고, 그 위에 세울 터로서도, 하나님의 진노와 사람들의 분노에서 지켜 주는 안전과 보호로서도 그와 같은 이가 없다. Psalm 18:31 을 보라.
다시는 그토록 심히 교만하게 말하지 말며,.... 그토록 높은 소리로, 그토록 남을 누르는 태도로, 마치 모든 사람 위에 있는 것처럼 말하지 말라는 것이다. 이는 브닌나와, 한나를 노엽게 하고 괴롭히려고 그녀에게 합세한 모든 자를 두고 한 말일 수 있으니, 그들은 자기들에게는 자녀가 있는데 한나에게는 없다 하여 그녀를 모욕하며 으스댔다. 그러나 이제는 그들의 입이 막히고 그 말도 끝나서, 전에 부리던 거만한 기세를 부리지 못할 것이며 적어도 그럴 빌미가 없을 것이다.
오만함이 너희 입에서 나오지 않게 하라. 자기들이 누리는 것 곧 자녀와 재물 따위를 자기 자신과 자기 공로로 돌리는 말이다. 그러나 그 모든 것은 주께로부터 온다. 혹은 “가혹한”(i) 말이니, 그 말을 듣는 이들에게 너무나 무겁게 얹혀 견딜 수 없는 말이다. 혹은 “오래된”(k) 말이니, 잉태하지 못하는 여인들에 관하여 흔히 떠도는 옛말로서 그런 여인은 세상에 아무 쓸모가 없고 하나님께 기쁨이 되지 못하며 그분의 은총에 아무 몫이 없다는 식의 말이다. 탈굼은 이 말을 비방 또는 모독으로 옮긴다.
이는 여호와께서 지식의 하나님이심이라. 혹은 여러 지식의(l) 하나님, 곧 완전한 지식의 하나님이시다. 그는 모든 사람과 모든 일을 아신다. 그는 자기 자신과 자기의 완전하심, 자기의 목적과 생각과 말과 일을 아신다. 그는 자기의 모든 피조물 곧 생명 있는 것과 없는 것, 이성이 있는 것과 없는 것, 천사와 사람을 아신다. 그는 모든 사람의 마음을 아시고, 그들이 하는 모든 말과 그들의 모든 가혹한 말과 그들의 모든 교만하고 거만하며 남을 누르는 언사와 중상과 비방을 아시며, 그들이 생각하고 행하는 모든 것도 선이든 악이든 아신다. 그리고 하나님은 조만간 그들이 자기 백성을 향하여 한 가혹한 말을 깨닫게 하시고 그 일로 그들을 벌하실 것이다. 또 그는 자연적 지식과 사회적 지식과 영적 지식과 복음적 지식 등 모든 지식의 근원이시다.
또 그분에게서 행위들이 달아지느니라. 먼저 그 자신의 행하심을 가리킨다. 곧 그의 내적인 일들이니, 그의 목적과 작정, 그 뜻의 계획, 그 마음의 생각, 그 마음이 정하신 일들, 그의 모든 정하심과 계획, 그의 온전한 뜻과 기쁘신 바다. 이 모두가 그분에게서 저울질되고 지극한 지혜로, 또 가장 선한 목적과 뜻을 위하여 이루어진다. 또 창조든 섭리든 은혜든 밖으로 드러난 그의 모든 행하심과 일들도 다 저울질되어 무한한 지혜와 그르침 없는 공의와 진리를 따라 행해진다. 시간에 속한 일이든 영적인 일이든, 사람의 겉 형편에 관한 것이든 그들의 영원한 복락에 관한 것이든 다 그러하다. 사람들의 모든 행위도 그분께 알려져 있으므로 그분에게서 저울질되고 살펴지는데, 그것이 옳은 원리에서 나와 옳은 목적을 향한 것인지 아닌지가 살펴진다. 그리하여 선하다고 여겨지던 많은 행위가 그렇지 않은 것으로 드러나고, 다른 행위들은 선하기는 하나 하나님 앞에서 완전한 것으로 드러나지는 않는다. 그러므로 가장 나은 행위로도 칭의나 구원에 이르지 못한다. 혹은 그 뜻은 이러하다. 곧 잘 행해진 행위는 “그분께로 향하여져 있다”(m)는 것이니, 사람들이 그 안에서 행하도록 그분이 미리 정하신 대로 그것은 그분의 쓰심을 위한 것이며 그분의 영광을 바라보고 행해진다는 것이다. 이 말에는 두 가지 독법이 있다. 우리가 따르는 난외 독법은 행위가 “그분께로” 인도되거나 저울질된다는 것이나, 본문 독법은 부정형으로 “행위가 저울질되지 않는다”(n) 또는 헤아려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곧 하나님의 일은 다 헤아릴 수 없으며, 또는 사람들의 행위는 그분의 뜻과 기쁘신 바 없이는 배치되고 정해지지 않고 그분이 원하시거나 허락하시지 않으면 행해질 수 없다는 것이다. 그리고 모든 것이 그분 자신의 목적과 뜻에 부합하도록 배치되고 다스려지고 인도된다.
(i) "durum", Vatablus, Drusius, Piscator; so R. Isaiah. (k) "Vetera", V. L. "vetus", Pagninus, Montanus. (l) "Deus scientiarum", V. L. Pagninus, Montanus, Tigurine version, Drusius. (m) "ipsi directa sunt", Pagninus. (n) "Non disponuntur", Junius & Tremellius; "non numerantur", so some in Vatablus; "non perficiuntur", so some in Munster.
용사들의 활은 부러지고,.... 한나는 은혜로운 경험을 이야기하고 거룩하심과 전지하심과 주권이라는 하나님의 완전하심을 기린 뒤에, 섭리와 은혜 가운데 하나님이 사람들을 대하시는 방식을 주목하는 데로 넘어간다. 여기서 활은 힘 있고 싸움에 능한 자들이 쓰는 모든 무기를 가리키는데, 하나님은 그것을 쉽게 조각내실 수 있고 그리하여 땅에서 전쟁을 그치게 하시며 호전적인 자들이 뜻하고 꾀하는 바를 행하지 못하게 막으실 수 있다. 그들은 그분에게서 약해지고 힘을 잃어 그 손으로 자기 계획을 이루지 못한다. 사탄과 그의 정사와 권세들의 활도 그렇게 꺾이고 그의 불화살은 꺼지며, 주의 백성은 주 안에서 그 힘의 능력으로 강하여져 그와 그들을 맞서 서고 겨룰 수 있게 되니, 이어지는 대로다.
그리고 비틀거리던 자들은 힘으로 띠를 띠었도다. 약하기 때문에 길에서 마주치는 온갖 것에 걸려 넘어지기 쉬운 자들이 있다. 그러나 주께 힘의 띠를 두르게 되면 다윗이 그러하였듯 큰일을 해낼 수 있으니, 그가 바로 그런 처지였다. Psalm 18:29. 그와 같이 은혜에서, 믿음에서, 지식에서 약하여 어느 편에서 오든 온갖 시련과 연단에 걸려 넘어지기 쉬운 이들도, 주께 힘의 띠를 두르게 되면 은혜를 행사하고 본분을 다하며 부르심 받은 모든 봉사를 행함으로든 견딤으로든 감당할 수 있고, 그리스도의 멍에와 십자가를 지며 모든 원수를 대적하고 하나님의 길에서 걸어가며 믿음과 거룩함 가운데 끝까지 견딜 수 있다.
배부르던 자들은 양식을 위하여 스스로 품을 팔고,.... 이 세상의 좋은 것으로 가득하던 자들이 모든 것을 빼앗기고, 양식을 얻으려고 남의 밑에서 수고하려 자기를 팔지 않을 수 없는 처지로 떨어졌다. 한나는 자기가 알던 어떤 실례를 염두에 두었거나 앞으로 있을 일을 예언한 것이니, 그것은 이스라엘 백성이 애굽인과 앗수르인의 손에 들어갔을 때 이루어졌다. Lamentations 4:6. 또 탕자의 경우에서도 그 예를 볼 수 있다. Luke 15:13. 이는 큰 은사는 있으나 은혜는 없어 그것을 이익을 위하여 쓰는 순전한 삯꾼들에게도 해당한다. 또 자기 자신과 자기의 선함과 의로움과 순결함과 능력으로 가득 차 있는 자칭 의인들에게도 해당하니, 그들은 전적으로 삯을 바라고 모든 일을 이익을 위하여 하며, 생명을 얻으려고 일하고 썩을 양식 곧 양식이 아니어서 배부르게 하지 못하는 것을 위하여 수고한다.
그리고 주리던 자들은 그쳤도다. 곧 주린 상태에서 그쳤다는 것이니, 좋은 것으로 채워져 그 간절한 소원을 만족시킬 넉넉하고 충분한 공급을 받았기 때문이다. Luke 1:53. 섭리 가운데 이러한 변화가 때때로 일어나므로, 큰 풍요와 넉넉함 가운데 살던 자들이 양식을 위하여 일하지 않을 수 없게 되고, 다른 한편으로는 굶주리며 궁핍한 처지에 있던 자들이 매우 넉넉하고 풍족한 형편으로 들어가게 된다. 영적인 뜻에서 “주린 자들”은 하나님 앞에서의 칭의를 위하여 그리스도와 그의 의를 주리고 목말라하는 자들이다. 또 자기 죄의 사함과 자기 영혼의 씻음을 위하여 그와 그의 피를 사모하는 자들이며, 오직 그에게만 있는 구원을 얻으려고 그를 사모하는 자들이다. 또 그 안에 자기 몫이 있음을 보기를, 그를 더 깊이 알기를, 그의 말씀과 규례 안에서 그와 더 많이 교제하기를, 또 그 목적으로 그것들을 누리기를 사모하는 자들이다. 이제 그들이 사모하던 것을 누리게 되면 다른 이들처럼 양식을 위하여 자기를 품 팔지 않는다. 그들은 일하기를 그치는 것이 아니라 자기 행위에 의지하기를 그치니, 그것으로는 먹고 살 수 없으며 이제 먹을 다른 더 나은 양식을 찾아 얻었기 때문이다. 그들은 주리기를 그치니, 하나님의 사랑과 그리스도의 의와 은혜의 복과 그로 말미암은 구원과 그의 집의 좋은 것과 하나님과 그리스도의 온전한 충만으로 채워지고 만족을 얻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자기를 만족시키는 것을 가졌으므로 다른 양식을 구하지 않고, 다시는 부족함이 없으며 다시는 굶주린 처지에 있지 않을 것이니 특히 장차 올 세상에서 그러할 것이다.
그리하여 잉태하지 못하던 자가 일곱을 낳았고. 자기 자신을 가리키니, 그녀는 사무엘 외에 다섯이나 되는 여러 자녀를 낳았다. 1 Samuel 2:20. 이는 이 노래를 부르기 전에 이미 그러하였을 수도 있고, 오히려 엘리가 그녀를 축복하고 그녀로 말미암은 자녀를 위하여 기도한 뒤에 그렇게 되리라고 그녀가 믿은 바일 수도 있다. 일곱은 많음을 나타내는 수다. Proverbs 24:16.
그리고 자녀가 많던 여자는 쇠약해졌도다. 더 낳을 수 없게 되고 가졌던 것마저 빼앗겼다는 것이다. 이는 브닌나를 두고 한 말로 이해할 수 있으니, 유대인들에게는 야르키가 전하는 이런 전승이 있다(o). 곧 한나가 한 아이를 낳을 때마다 브닌나는 둘을 묻었고, 한나가 다섯을 얻었을 때 브닌나는 열 자녀를 모두 잃었다는 것이다. 이는 복음의 경륜 아래 있는 이방인 교회와 유대인 교회의 형편에 적용할 수 있으니, 그때에 버림받은 자 곧 잉태하지 못하던 이방인의 자녀가 남편 있는 자 곧 유대인의 자녀보다 더 많았다. Isaiah 54:1.
(o) Vid. Hieron, Trad. Heb. in. lib. Reg. fol. 34. K.
여호와는 죽이기도 하시고 살리기도 하시며,.... 이는 서로 다른 사람들에게 참되다. 어떤 이들은 죽음으로 데려가시고 어떤 이들은 지키시어 계속 살게 하신다. 또 같은 사람에게도 참되니, 하나님이 죽음으로 데려가셨다가 다시 살려 내신 이들이 있고 그러한 실례가 구약과 신약에 다 있다. 어느 쪽이든 둘 다 하나님께로부터 나니, 그가 생명과 죽음을 주관하시는 위대한 주재자시다. 죽음이 그에게서 온다. 그것은 그의 정하심에 따른 것이며 그의 명령으로 보내지고, 그에게서 위임을 받으면 아무도 그것을 막을 수 없다. 또 어떤 수단으로 이루어지든 죽음은 여전히 하나님께로부터 온다. 생명도 그에게서 온다. 그것은 처음에 그가 주신 것이며 그가 보존하시는 것이고, 비록 거두어 가신다 하여도 죽은 자의 부활 때에 회복될 것이다. 킴히와 벤 게르솜이 지적하듯 어떤 이들은 이 구절을 그렇게 해석한다. 그리고 여기 하신 말씀은 영적인 뜻에서도 참되다. 주께서는 율법으로 죽이시니, 곧 사람들에게 그들이 죄 가운데 죽어 있고 율법의 관점에서 죽은 자임을 보이신다. 또 복음을 통하여 자기 영으로 살리시니, 허물과 죄로 죽었던 자들을 살리신다. 이는 그 자신의 일이며 하나님의 권능과 은혜의 결과다. Deuteronomy 32:39 에 대한 길(Gill)의 주해를 보라.
그가 무덤에 내리게도 하시고 다시 올리기도 하시는도다. 그는 어떤 이들을 무덤에 아주 가까이 그 문턱까지 데려가신다. 그리하여 그들 자신이 느끼기에도 또 그 친구들이 보기에도 그들이 막 무덤에 떨어지려는 것 같고 회복의 소망이 남아 있지 않은 듯하다. 그때 그는 그들에게 “돌아오라” 하시고 구덩이에서 그들을 되돌리시며 그리로 내려가지 않게 건지신다. 욥 33:22. 심지어 그들이 무덤에 눕혀졌을 때에도 그는 거기서 다시 올리시니, 나사로의 경우가 그러하였고 부활 때에도 그러할 것이다. John 5:28.
여호와는 가난하게도 하시고 부하게도 하시며,.... 이는 자연적인 뜻에서 같은 사람에게 참되니 욥의 경우에서 그 예를 볼 수 있고, 서로 다른 사람에게도 참되니 부자와 나사로의 비유가 그러하다. 가난과 부요가 다 하나님께로부터 오기 때문이다. Proverbs 22:2 을 보라. 가난이 하나님께로부터 온다. 그것이 때로는 사람 자신의 처신 탓이기도 하지만, 사람들 사이에 전체적으로 그런 차이가 있어서 어떤 이는 가난하고 어떤 이는 부한 것은 하나님의 지혜로우신 섭리 덕분이니, 사람들이 서로 의지하게 하시려는 것이다. 부요도 하나님께로부터 오며 그 너그러우신 섭리의 선물이다. 부요가 흔히 부지런함과 근면함을 수단으로 하여 맺히는 열매이기는 하나 늘 그런 것은 아니며, 그런 경우에도 그것은 부지런한 손에 함께하시는 하나님의 복으로 돌려야 한다. 이는 영적인 뜻에서도 참되다. 영적인 가난이 아담의 타락과 사람들이 실제로 범한 죄와 허물에서 비롯되어 그들이 가난하고 비참하게 되었으나, 이 모든 일도 하나님의 아심과 뜻을 벗어나 있지 않다. 또 사람들에게 자기의 가난함을 깨닫게 하시고 그다음에 그들을 영적인 것으로, 곧 자기의 은혜와 그 복으로, 여기서는 은혜의 풍성함으로 또 장차는 영광의 풍성함으로 부요하게 하시는 이가 바로 그분이다. 이 모든 것이 하나님의 선하신 뜻에서 흘러나오니, 그는 자기 백성을 위하여 많은 것을 쌓아 두셨고 그들에게 많은 것을 베푸셨으며 더 많은 것을 받을 자격을 그들에게 주신다. 또 이것은 그리스도의 가난하심을 통하여 그들에게 이르니, 그는 부요하신 이로서 가난하게 되심으로 그들이 그의 가난하심으로 말미암아 부요하게 되게 하셨다. 2 Corinthians 8:9. 낮추기도 하시고 높이기도 하시는도다. 이는 같은 사람에게서 확인되었으니 욥과 느부갓네살 등이 그러하고, 서로 다른 사람에게서도 확인되었으니 그가 한 사람을 낮추시고 다른 사람을 일으키시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사울을 버려 왕이 되지 못하게 하시고 다윗을 양의 우리에서 데려오셨으며, 하만을 낮추시고 모르드개를 큰 존귀에 올리셨다. 또 영적인 뜻에서 주께서는 사람들에게 죄로 말미암아 자기들이 처하게 된 낮은 처지와 형편을 보이시고 그것을 깨닫는 가운데 그들을 낮추시며, 그 교만한 심령을 꺾어 예수의 발 앞에 앉아 그와 그의 의에 복종하게 하신다. 그리고 그는 자기 아들로 말미암아 그들을 그 타락하고 사로잡히고 비참한 처지에서 들어 올리시며, 자기 영과 은혜로 그들을 본성이라는 무서운 구덩이에서 이끌어 내어 은혜의 자리에 두신다. 또 그들을 반석이신 그리스도 위에 세우시고 자기 사랑을 드러내심으로 그들의 산이 굳게 서게 하시며, 마침내 그들을 영광에 이르도록 들어 올리시고 그리스도와 같은 보좌에 앉히실 것이다.
사무엘상 2장 서론
이 장에는 한나의 노래가 기록되어 있고(1 Samuel 2:1), 엘가나와 한나가 자기 집으로 돌아간 일과 한나가 해마다 사무엘의 겉옷을 마련해 준 정성, 그녀가 다른 여러 자녀로 복을 받은 일, 그리고 사무엘이 자라며 주 앞에서 섬긴 일을 전한다(1 Samuel 2:11). 또 엘리의 아들들의 악행을 전하고(1 Samuel 2:12), 엘리가 그 일로 그들을 책망할 때에 너무 부드럽게 다룬 일을 전하며(1 Samuel 2:22), 그 일로 주께서 그에게 보내신 준엄한 말씀을 전하는데 그의 집에 멸망을 예고하며 그 두 아들의 죽음이 그 징조가 되리라는 것이다(1 Samuel 2: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