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tthew Henry's Complete Commentary
Matthew Henry · 17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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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무엘상 8장 1-3 Matthew Henry's Complete Commentary
¹ 사무엘이 늙으매 그의 아들들을 이스라엘의 사사로 삼으니라. ² 그 맏아들의 이름은 요엘이었습니다. 둘째의 이름은 아비야라. 그들은 브엘세바의 재판관이었다. ³ 그의 아들들은 그의 길을 따르지 아니하고 도리어 이익을 좇아 뇌물을 받고 재판을 굽게 하였느니라.
여기서 슬프지만 이상하지는 않은 두 가지 일을 발견한다. 1. 선하고 유익한 사람이 늙어 봉사하기에 부적합해졌다. ‘사무엘이 늙어’ 이전처럼 이스라엘을 다스릴 수 없었다(삼상 8:1). 이때 그의 나이는 육십 세를 넘지 않았고 어쩌면 그보다 적었을 것으로 계산된다. 그러나 그는 아주 일찍 어른이 되었고 어린 시절부터 많은 생각과 염려를 품었으므로, 노년의 쇠약이 빨리 찾아왔을 수 있다. 가장 먼저 익은 열매가 가장 잘 상한다. 그는 공적인 일의 고된 수고에 힘과 기력을 다 써 버렸다. 이제 전과 같이 몸을 떨쳐 일어나려 해도 잘못 생각했음을 알게 되었다. 노년이 그의 머리카락을 잘라 버렸다. 인생의 전성기에 있는 사람은 삶의 일을 부지런히 해야 한다. 나이가 들수록 그 일을 하려는 마음과 능력이 줄어드는 것을 발견할 것이기 때문이다. 2. 선한 사람의 자녀들이 빗나가 아버지의 발자취를 따르지 않았다. 사무엘은 아들들을 훌륭하게 교육했고, 아들들도 잘되리라는 좋은 기대를 품게 했으며 이스라엘에서 좋은 평판을 얻었다. 그래서 사무엘은 그들을 사사로 세워 한동안 자기를 돕게 하고, 나중에는 라마에서 멀리 떨어진 브엘세바에서 자기 아래 대리자로 일하게 했다(삼상 8:2). 남부 지역 사람들이 재판 문제로 멀리 이동하지 않도록 그들이 그곳에 거주해 달라고 요청했을 수 있다. 사무엘이 그들에게 직무를 맡긴 것은 자기 아들이기 때문이 아니었다고 보아야 한다. 기드온과 마찬가지로 자기 집안에 통치권을 세습하려는 야심이 없었다. 당시까지 드러난 사실로는 그들이 그 직무를 맡기에 매우 적합한 사람들이었기 때문이다. 다른 모든 조건이 같다면, 늙은 사사의 일을 덜어 주고 짐을 나눠 질 사람으로 자기 아들들보다 더 적합한 이도 없었다. 그들은 선한 아버지 때문에 틀림없이 존중받았고, 이처럼 유리한 출발점을 가졌으므로 선하기만 했다면 곧 위대한 사람이 될 수 있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그의 아들들이 그의 길을 따르지 않았다’(삼상 8:3). 성품이 아버지와 정반대였으므로, 선한 사람과의 관계는 원래 영예가 될 수 있었지만 실제로는 수치가 되었다. ‘Degeneranti genus opprobrium—좋은 혈통은 그 혈통에서 타락한 사람에게 수치가 된다.’ 주목하라. 자기에게 은혜가 가장 풍성한 사람도 자녀에게 은혜를 줄 수는 없다. 선한 사람들은 후손이 자기 발자취를 따르지 않고 짓밟으며, 욥의 표현대로 ‘그들의 길을 망치는’ 모습을 보고 자주 슬퍼했다. 더구나 처음에는 잘 시작하고 좋은 가능성을 보이며 바른길에 들어서 부모와 친구에게 큰 기대를 품게 한 사람도 나중에는 샛길로 빗나가, 기쁨이 되어야 할 이들에게 슬픔이 되는 일이 많다. 사무엘의 아들들은 사사가 되어 아버지와 멀리 떨어진 곳에 자리 잡자 본모습을 드러냈다. 여기서 다음을 본다. (1.) 훌륭한 교육을 받고 부모의 눈앞에서는 잘 처신했던 사람도 세상으로 나가 독립하면 악한 사람이 되는 일이 많다. 그러므로 자신이나 자녀에 관해 안심하지 말고 하나님의 은혜를 의지해야 한다. (2.) 낮은 지위에서 다른 사람에게 복종할 때에는 잘했던 사람도 승진과 권력 때문에 타락하는 일이 많다. 명예는 사람의 마음을 바꾸며, 너무나 자주 더 나쁜 방향으로 바꾼다. 사무엘의 아들들이 엘리의 아들들만큼 불경하고 사악했다는 증거는 없다. 그러나 다른 면이 어떠했든 그들은 부패한 재판관이었다. ‘그들이 이익을 따라 빗나갔고,’ 갈대아어 역본의 표현대로 ‘불의한 재물’을 따랐다. 주목하라. ‘돈을 사랑함은 모든 악의 뿌리이다.’ 이는 누구에게나 해롭지만 특히 재판관에게 해롭다. 사무엘은 뇌물을 받지 않았지만(삼상 12:3), 아들들은 그가 사사로 세울 때 분명히 경고했는데도 뇌물을 받았다. 그 결과 재판을 굽게 했다. 분쟁을 판결할 때 율법이 아니라 뇌물을 바라보고, 누가 옳은지를 묻지 않고 누가 더 높은 값을 제시하는지를 물었다. 백성의 권리를 지켜야 할 공의가 왜곡되어 가장 큰 불의를 행하면 그 백성의 형편은 비참하다.
사무엘상 8장 4-22 Matthew Henry's Complete Commentary
⁴ 그러자 이스라엘의 모든 장로가 모여 라마에 있는 사무엘에게 나아갔습니다.
⁵ 그에게 이르되 보소서 당신은 늙었고 당신의 아들들은 당신의 행위를 따르지 아니하니 이제 모든 나라와 같이 우리에게 왕을 세워 우리를 다스리게 하소서
⁶ 그러나 사무엘이 “우리에게 왕을 세워 우리를 다스리게 하라”고 말하자 사무엘은 그 말을 불쾌하게 여겼습니다. 그리고 사무엘은 여호와께 기도했습니다.
⁷ 여호와께서 사무엘에게 이르시되 백성이 네게 이르는 말을 다 들으라 그들이 너를 버림이 아니요 나를 버려 자기들의 왕이 되지 못하게 함이니라
⁸ 내가 그들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낸 날부터 오늘까지 그들이 모든 행사로 나를 버리고 다른 신들을 섬김과 같이 네게도 그리하는도다
⁹ 그러므로 이제 그들의 말을 들으라. 그러나 엄숙히 경고하고, 그들을 다스릴 왕의 제도를 그들에게 알게 하라.
¹⁰ 사무엘은 왕을 구하는 사람들에게 여호와의 모든 말씀을 전했습니다. ¹¹ 그가 이르되 너희를 다스릴 왕의 제도는 이러하니라 그가 너희 아들들을 데려다가 자신과 병거와 기병을 삼을 것이며 그리고 몇몇이 그의 병거 앞에서 달려갈 것이다.
¹² 그리고 그는 그에게 천부장과 오십부장을 임명할 것입니다. 그리고 그들을 세워 자기 땅을 갈고 자기 수확을 거두게 하며 자기 전쟁 도구와 병거의 도구를 만들게 할 것입니다.
¹³ 그리고 그는 당신의 딸들을 데리고 과자가 되고 요리사가 되고, 빵 굽는 사람이 될 것입니다.
¹⁴ 그리고 그는 여러분의 밭과 포도원과 감람원을 심지어 가장 좋은 것으로 빼앗아 그를 그의 종들에게 주실 것입니다.
¹⁵ 그리고 그는 너희 씨와 포도원의 십분의 일을 가져다가 그의 관리들과 종들에게 줄 것이다.
¹⁶ 그리고 그는 여러분의 남종들과 여종들과 가장 뛰어난 청년들과 여러분의 나귀들을 데려다가 그들에게 자기 일을 맡길 것입니다.
¹⁷ 그가 너희 양의 십분의 일을 취할 것이요 너희는 그의 종이 되리라. ¹⁸ 그 날에 너희는 너희가 택한 왕 때문에 부르짖게 될 것이다. 그 날에는 여호와께서 너희의 말을 듣지 아니하시리라
¹⁹ 그럼에도 불구하고 백성은 사무엘의 목소리에 순종하기를 거부했습니다. 그러자 그들은 말했습니다. “아닙니다. 그러나 우리에게는 왕이 있을 것입니다.
²⁰ 우리도 모든 나라와 같이 되기를 원합니다. 그러면 우리 왕이 우리를 재판하고 우리보다 먼저 나가서 우리의 싸움을 싸워 주실 것입니다.
²¹ 사무엘이 백성의 말을 다 듣고 그것을 여호와의 귀에 아뢰니라.
²² 여호와께서 사무엘에게 이르시되 그들의 말을 들어서 그들을 왕으로 삼으라. 사무엘이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이르되 너희는 각각 자기의 성읍으로 가라.
여기서 이스라엘에 왕정이라는 완전히 새롭고 놀라운 제도가 시작된다. 변화를 좋아하고 겉으로 위대해 보이는 것을 선호한 사람들이 이 문제를 여러 번 이야기했을 수 있다. 그러나 지금까지 공개적으로 제안하고 논의한 기록은 없다. 아비멜렉은 이스라엘을 다스렸다고 기록되지만(삿 9:22) 이름뿐인 왕보다 조금 나은 정도였다. 그의 몰락 때문에 로마에서 타르퀴니우스(Tarquinius)의 이름이 그러했듯, 이스라엘에서도 왕이라는 칭호가 오랫동안 혐오의 대상이 되었을 수 있다. 그러나 이제 그 혐오는 사라졌고, 이처럼 큰 체제 변화를 향한 대담한 조치들이 시작되었다. 여기에는 다음 내용이 나온다.
I. 장로들이 이 문제에 관해 사무엘에게 요청했다(삼상 8:4-5). 그들은 공동의 합의로 함께 모였으며 난폭한 소동을 일으키지 않았다. 사무엘의 지위에 합당한 존중을 보이며 라마의 집으로 찾아왔다. 그들의 요청에는 다음 내용이 담겼다.
1. 고충을 진술했다. 요약하면 ‘당신은 늙었고 당신의 아들들은 당신의 길을 따르지 않습니다’라는 말이었다. 이스라엘에 왕이 없어서 이웃에게 압제받거나 내부가 혼란했던 때에는 왕을 요구할 더 그럴듯한 기회가 많았다. 그러나 분파적인 마음은 작은 일로도 변화를 요구할 구실을 삼는다. (1.) 사무엘이 늙은 것은 사실이다. 그 때문에 순회하고 재판석에 오래 앉는 능력은 줄었지만 지혜와 경험은 더 많아져, 그런 면에서는 다스리기에 더욱 적합했다. 그가 늙었다면 그들을 섬기다가 늙은 것이 아닌가? 평생 그들에게 선을 행한 사람을 늙었다고 버리는 것은 매우 불친절하고 감사하지 않으며 부당한 일이었다. 하나님은 그의 어린 나이가 멸시받지 않게 하셨지만(삼상 3:20), 그들은 갑절의 존경을 받아야 할 그의 노년을 멸시했다. 노인들은 연약함 때문에 비난받고 배제되어도 이상히 여기지 말라. 사무엘 자신도 그런 일을 당했다. (2.) 그의 아들들이 그의 길을 따르지 않은 것도 사실이며, 사무엘에게는 그만큼 큰 슬픔이었다. 그러나 그들은 그것이 사무엘의 잘못이라고 말할 수 없었다. 그는 엘리처럼 아들들의 악을 방임하지 않았고 그들에 대한 고발을 들을 준비가 되어 있었다. 그것이 진정한 요구였다면, 뇌물 혐의가 입증될 경우 사무엘은 그들의 직무를 정지시키고 벌했을 것이다. 그러나 이스라엘 장로들은 그것으로 만족하지 않았다. 다른 계획을 품고 있었다.
2. 이 고충을 해결하는 방법으로 왕을 세워 달라고 요청했다. ‘모든 민족과 같이 우리를 다스릴 왕을 세워 주소서.’ 그들이 사무엘을 거슬러 반역하고 무력으로 직접 왕을 세우지 않은 것은 잘한 일이었다. 하나님의 선지자인 사무엘에게 찾아와 겸손히 그 일을 해 달라고 요청했다. 그러나 이어지는 기록을 보면 그 제안 자체와 제안한 방식이 악하여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지 못했다. 하나님은 사무엘이 죽은 뒤 자신의 마음에 맞는 사람을 왕으로 주려고 계획하셨지만, 그들은 하나님의 계획을 앞질러 사무엘이 늙은 지금 당장 왕을 원했다. 그들에게는 하늘과 직접 교통하는 선지자가 재판관으로 있었다. 이로써 그들은 어느 민족보다 위대하고 복되었으며, 하나님이 이처럼 ‘가까이 계신’ 민족은 없었다(신 4:7). 그러나 이것으로 만족하지 않았다. ‘모든 민족처럼’ 외적인 화려함과 권력을 가진 왕이 다스려야 했다. 전능자의 이상과 교제하는 선지자라도 초라한 겉옷을 입으면 외모로 판단하는 그들의 눈에는 보잘것없었다. 반면 자주색 옷을 입고 호위병과 관리들을 거느린 왕은 위대해 보였다. 그들은 반드시 그런 왕을 가져야 했다. 사무엘에게 왕의 칭호와 존엄을 직접 맡아 달라고 설득하는 것은 헛일임을 알았으므로 다른 사람을 세워 달라고 했다. ‘당신 아들들보다 잘 판단할 지혜롭고 선한 왕을 주소서’라고 하지 않고, 겉으로 위엄을 보이기만 하면 누구든 좋으니 ‘왕을 주소서’라고 했다. 이처럼 어리석게 자기들이 받은 자비를 버렸다. 이웃 민족 수준으로 나라의 위엄을 높인다는 구실 아래 하나님이 그들보다 훨씬 높여 주신 탁월함에서 스스로 내려왔고, 자기 면류관을 ‘땅에 던져’ 더럽혔다.
II. 사무엘이 이 요청을 불쾌하게 여겼다(삼상 8:6). 그가 어떻게 받아들였는지 보라. 1. 이 일은 그의 마음을 찔렀다. 그들의 계획을 미리 전혀 알지 못해 갑작스러웠고 그만큼 더 슬펐을 것이다. 자신의 연약함과 자녀의 잘못을 비난했을 때가 아니라 ‘우리를 다스릴 왕을 주소서’라고 말했을 때 사무엘은 불쾌했다. 자신과 가족에 대한 비난은 인내할 수 있었지만, 이 요구는 하나님과 그 영예를 해쳤기 때문이다. 2. 이 일은 그를 무릎 꿇게 했다. 즉시 답하지 않고 제안을 생각할 시간을 가지며 어떻게 해야 할지 지시해 달라고 주께 기도했다. 문제를 하나님 앞에 펼쳐 놓고 맡김으로 마음의 평안을 얻었다. 사무엘은 기도에 힘쓰는 사람이었다. 우리도 ‘모든 일에 구할 것을 하나님께 아뢰라’는 격려를 받는다(빌 4:6). 어떤 일이 우리를 괴롭힐 때 하나님 앞에 고통을 나타내는 것은 의무일 뿐 아니라 우리에게 유익하다. 하나님은 우리가 겸손한 자유를 가지고 아뢰도록 허락하신다.
III. 하나님이 이 문제에 관해 사무엘에게 지시하셨다. 곤경에서 하나님을 찾는 사람은 그분이 가까이 계셔 기꺼이 인도하심을 발견한다. 하나님은 다음을 말씀하셨다.
1. 사무엘의 불쾌함을 누그러뜨릴 말씀이다. 자신의 선지자 직분과 이스라엘을 위해 행한 모든 선행이 이처럼 무시되고 배은망덕으로 돌아오는 것을 보고 사무엘은 크게 괴로워했다. 그러나 하나님은 이를 가혹하거나 이상한 일로 여기지 말라고 하셨다. (1.) 그들이 사무엘을 무시한 일을 가혹하게 여기지 말아야 했다. 이 일로 하나님 자신을 무시했기 때문이다. ‘그들이 너만 버린 것이 아니라 나를 버렸다. 그들의 모욕을 나도 너와 함께 받는다’(삼상 8:7). 주목하라. 하나님이 우리가 받은 모욕과 멸시에 자신도 관계된다고 하시면 우리는 마땅히 인내로 감당할 수 있다. ‘그분을 위하여 수치를 당해도’(시 69:7) 자신을 낮게 평가할 필요가 없고, 오히려 기뻐하며 영예로 여겨야 한다(골 1:24). 사무엘은 그들이 공정하고 온유한 자기 통치에 싫증 났다고 불평해서는 안 되었다. 실제로 그들은 하나님의 통치에 싫증을 냈다. ‘내가 그들을 다스리지 못하게 나를 버렸다.’ 하나님은 모든 세계와 ‘이방 민족을 다스리시지만’(시 47:8), 이스라엘의 통치는 지금까지 다른 어느 통치보다 특별히 신정 통치, 곧 하나님이 직접 다스리는 제도였다. 사사들은 하나님께 직접 부름과 위임을 받았고 국가의 일들도 특별한 지시 아래 있었다. 통치의 헌법과 시행 모두 ‘주께서 이처럼 말씀하신다’는 원칙으로 이루어졌다. 그들이 하나님과 바른 관계를 유지하는 동안 무엇보다 큰 영예와 안전이었던 이 방식에 이제 싫증을 냈다. 죄로 하나님을 노하게 하면 다른 민족보다 재난에 더 쉽게 노출되고 다른 민족만큼 값싸게 범죄할 수 없었다. 어쩌면 이것이 다른 민족과 같은 조건으로 하나님을 대하기 원한 진정한 이유였을 수 있다. (2.) 그들이 늘 해 온 대로 했으므로 이상히 여기지 말아야 했다. ‘내가 그들을 애굽에서 이끌어 낸 날부터 지금까지 행한 모든 일과 같이 그들이 네게도 행한다’(삼상 8:8). 처음에는 사무엘을 매우 존경하고 순종했으므로 그들의 오랜 완고함이 치유되었다고 기대했을 수 있다. 이제 기대가 잘못되었음을 보았지만 놀랄 필요는 없었다. 그들은 모세와 아론에게도 늘 무례했다. 더구나 ‘나를 버리고 다른 신들을 섬겼다.’ 새 신을 좋아한 더 큰 죄와 비교하면 새 통치자를 좋아한 이 죄는 작아 보일 정도였다. 그들은 ‘모태에서부터 배역한 자들’이라 불렸으므로 사무엘도 배신을 예상할 수 있었다(사 48:8). 이는 ‘젊을 때부터 그들의 습관’이었다(렘 22:21).
2. 그들의 요구에 답할 말씀이다. 하나님의 지시가 없었다면 사무엘은 무엇이라 답할지 알 수 없었을 것이다. 요구를 반대하면 선지자에게 어울리지 않을 만큼 권력과 지배를 사랑하고 아들들을 감싼다고 보일 수 있었다. 받아들이면 맡은 직무를 배반하고 변화가 가져올 모든 나쁜 결과에 가담하는 듯 보일 수 있었다. 아론은 백성이 ‘우리를 위해 신들을 만들라’고 했을 때 들어주어 죄를 범했다. 사무엘도 ‘우리를 위해 왕을 만들라’는 요구를 감히 자의로 들어주지 않고, 하나님이 보내신 답을 확신 있게 전했다.
(1.) 그들이 ‘왕을 가지게 될 것’이라고 말해야 했다. ‘백성의 말을 들으라’고 두 번 말씀하셨다(삼상 8:7, 9). 하나님이 요청을 기뻐하셨다는 뜻이 아니다. 때로 사랑으로 우리의 뜻을 꺾으시지만 다른 때에는 진노 가운데 요구를 들어주신다. 여기서는 후자였다. 그들이 ‘우리에게 왕과 방백들을 달라’고 하자 하나님은 ‘진노로 왕을 주셨다’(호 13:10-11). 메추라기를 주셨을 때와 같다(시 106:15; 78:29). 하나님은 다음 이유로 사무엘에게 이 문제에서 그들의 뜻을 맞추라고 하셨다. [1.] 자기들이 만든 매로 맞고 하나님의 통치와 왕의 통치가 얼마나 다른지 손해를 통해 깨닫게 하려는 것이었다(대하 12:8). 모든 면에서 사울 아래의 형편이 사무엘 아래보다 훨씬 나빴다는 사실은 곧 드러났다. [2.] 더 나쁜 일을 막으려는 것이었다. 요구가 이루어지지 않으면 사무엘을 거슬러 반역하거나, 종교를 모두 버리고 다른 민족과 같은 왕을 얻기 위해 그들의 신들을 받아들였을 것이다. 그런 일보다는 왕을 가지게 하는 편이 나았다. [3.] 하나님은 이 일에서도 자신에게 영광을 얻고, 그들의 어리석은 계획까지 지혜로운 목적에 사용하실 줄 아신다.
(2.) 그러나 왕을 가지면 곧 싫증을 내고 너무 늦게 선택을 후회하리라는 말씀도 전해야 했다. 사무엘은 이를 ‘엄숙히 경고해야’ 했다(삼상 8:9). 동방의 왕들이 백성을 다스린 방식으로 왕이 통치하면 그 멍에가 매우 무거울 것이다. 그들은 왕의 화려함과 장엄함만 보고 나라가 이웃 가운데 위대해지며 원수들에게 두려움을 주리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사무엘은 그 화려함을 유지하는 비용을 어떻게 감당할지, 이웃 왕들이 행사하는 자의적인 권력을 어떻게 견딜지도 생각하라고 해야 했다. 주목하라. 세상의 어떤 것에 지나치게 마음을 두는 사람은 욕망을 절제하기 위해 그 일의 편리함뿐 아니라 불편함도 살피고 서로 비교해야 한다. 세상과 육신의 지배에 복종하려는 사람은 그것들이 얼마나 가혹한 주인이며 죄의 통치가 얼마나 포악한지 분명히 경고받는다. 그런데도 하나님의 통치를 그것과 바꾼다.
IV. 사무엘은 하나님의 뜻을 충실히 전했다(삼상 8:10). ‘주의 모든 말씀’을 전했다. 하나님이 이 일을 얼마나 불쾌히 여기며 자신을 버린 것으로 해석하시는지, 다른 신들을 섬긴 일과 비교하시는지 밝혔다. 그들이 고집하면 요구를 허락하시지만, 선택의 확실한 결과도 알려 주라고 명령하셨음을 전했다. 그들에게 이성이 조금이라도 남아 자기 이익을 생각한다면 요구를 철회하고 지금 상태를 계속하게 해 달라고 할 만큼 심각한 결과였다. 이어 사무엘은 일반적인 왕의 정당한 권리가 아니라, 다른 민족의 본을 따른 ‘그들을 다스릴 왕의 방식’을 자세히 제시했다(삼상 8:11). 패트릭 주교(Bishop Patrick)가 설명하듯 왕에게 이런 일을 할 공정하고 정직한 권리가 있다는 뜻이 아니다. 왕의 의무를 다룬 모세의 율법은 왕의 권리를 전혀 다르게 묘사한다. 이는 당시 다른 민족의 왕들이 자기 것으로 만들어 행사하던 권력이었다. ‘이것이 왕의 방식이 될 것이다.’ 곧 ‘그는 너희가 가장 소중히 여기는 것을 희생시켜 존엄을 유지하고, 권력자가 흔히 그러듯 권력을 남용할 것이다. 군사력을 손에 넣은 뒤에는 너희가 복종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1. 다른 민족과 같은 왕을 원한다면 다음을 생각해야 한다. (1.) 왕에게는 큰 수행단과 수많은 종이 필요하다. 병거와 말을 돌볼 마부, 함께 말을 타는 귀족, 병거 앞에서 달릴 보병이 있어야 한다. 많은 수행원을 거느리는 것이 군주의 주된 위엄이며 위대한 사람들이 상상하는 영광이다. 그들을 어디서 얻겠는가? ‘왕은 자유인으로 태어나 좋은 교육을 받고 지금은 부모가 마음대로 돌보는 너희 아들들을 데려다가 자기 사람으로 삼을 것이다’(삼상 8:11). 그들은 왕을 시중들며 명령을 따라야 한다. 부모와 자신을 위해 일하던 자들이 왕을 위해 ‘밭을 갈고 추수하며’(삼상 8:12), 그것을 승진으로까지 여겨야 한다(삼상 8:16). 이는 큰 변화가 될 것이다. (2.) 왕은 큰 식탁을 유지해야 한다. 사무엘처럼 이웃과 함께 제물을 먹는 것으로 만족하지 않고(삼상 9:13), 여러 진미와 고기 요리와 과자와 맛있는 소스를 원할 것이다. 누가 준비하겠는가? ‘왕은 너희 딸들 가운데 가장 총명하고 솜씨 좋은 이들을 데려갈 것이다. 너희는 그들이 자기 집과 식탁을 갖게 되기를 바랐지만, 원하든 원하지 않든 왕의 향료 만드는 자와 요리사와 빵 굽는 자가 되어야 한다.’ (3.) 호위와 수비대를 위한 상비군도 필요하다. 너희 아들들은 성읍의 장로로 집에서 평안하고 존귀하게 사는 대신 천부장과 오십부장이 되어 군주의 뜻대로 배치될 것이다. (4.) 왕에게는 높이고 귀족으로 삼은 총신들이 생기며, 그들의 영예에 맞는 재산을 주어 부유하게 해야 한다. 너희 유산 외에 어디서 마련하겠는가(삼상 8:14)? ‘왕은 조상에게 물려받아 후손에게 남기려던 너희 밭과 포도원, 그것도 가장 좋은 것을 빼앗을 것이다. 자신이 차지하는 데서 그치지 않고 자기 종들에게 줄 것이며, 그들이 너희 주인이 되어 너희가 수고한 것을 다스릴 것이다. 이것을 어떻게 견디겠는가?’ (5.) 왕의 위엄과 권력을 유지할 큰 수입이 필요하며 그것도 너희에게서 얻는다. 땅의 소산에서 십분의 일을 거두고(삼상 8:15), 가축에서도 십분의 일을 거둘 것이다(삼상 8:17). 너희는 하나님의 율법이 교회를 유지하도록 정한 십일조와 이중 십일조도 무겁게 여기며 내기를 아까워한다. 그러나 왕이 생기면 왕실의 위엄을 유지하려고 재산에서 또 하나의 십일조가 나가며 더 엄격하게 징수될 것이다. 화려함과 함께 비용도 생각하여 그만한 가치가 있는지 판단하라.
2. 이것들이 그들의 고충이 될 것이다. (1.) 하나님 외에는 호소할 이가 없을 것이다. 훗날 왕에게 직접 호소했지만 ‘너희 멍에가 무거웠으나 나는 더 무겁게 하겠다’는 왕의 방식에 따른 답만 들었다(왕상 12:11). (2.) 하나님께 부르짖어도 ‘그날에는 듣지 않으실’ 것이다(삼상 8:18). 그들이 하나님의 부르심과 경고에 귀를 막았고, 특별히 이 고난은 하나님을 버린 자기들이 자초했으며 결과에 대한 경고도 믿지 않았으므로 들으시기를 기대할 수 없었다. 주목하라. 무질서한 욕망과 계획으로 스스로 고난에 빠지면 기도의 위로와 하나님의 도움을 받을 권리를 정당하게 잃는다. 하나님이 마땅히 받을 것보다 더 선하게 대하지 않으시면 자기 손으로 구원을 마련해야 하며, 그러면 형편은 비참하다.
V. 백성은 요구를 완고하게 고집했다(삼상 8:19-20). 속일 수도 속지도 않으시는 하나님 자신에게서 이런 결과를 들었다면 요구를 철회했을 법하다. 그러나 옳든 그르든, 좋든 나쁘든 그들의 마음은 이미 왕에게 향했다. ‘하나님이나 사무엘이 반대해도 우리는 왕을 가질 것이다. 어떤 대가와 불편을 자신과 후손에게 가져와도 왕을 가질 것이다.’ 그들의 어리석음을 보라. 1. 이성과 자기 이익에 완전히 귀와 눈을 닫았다. 사무엘의 논거에 답하거나 그 힘을 부인할 수 없었지만 요구는 더 격렬하고 무례해졌다. 앞에서는 ‘부디 왕을 세워 주소서’였지만 이제는 ‘아닙니다. 우리에게 왕이 있어야 합니다. 우리가 원하기 때문에 반드시 원하며 반대하는 말은 듣지 않겠습니다’라고 했다. 무절제한 욕망이 얼마나 불합리하며 사람에게서 이성을 빼앗는지 보라. 2. 하나님의 때를 기다리지 못했다. 하나님은 율법에서 때가 되면 이스라엘에 왕이 생길 것을 이미 암시하셨고(신 17:14-15), 때가 가까웠다는 어떤 암시도 받았을 수 있다. 그러나 그들은 서둘러 ‘우리 시대에 왕을 가져야 한다’고 했다. 십 년이나 십이 년만 기다렸다면 하나님이 자비로 주시는 왕 다윗을 얻고, 사울을 세우면서 생긴 모든 재난을 피했을 것이다. 성급한 결단과 조급한 욕망은 오랜 시간 천천히 회개할 일을 만든다. 3. 왕을 요구한 목적은 다른 민족처럼 되어 하나님이 그들보다 높여 주신 자리에서 내려오는 것뿐 아니라, 자기들을 다스리고 전쟁터에서 앞장서 싸울 사람을 얻는 것이었다. 어리석고 지혜 없는 백성이여! 사무엘의 기도와 하나님의 우레로 치른 직전 전투보다 더 잘 싸워 줄 왕을 바랄 수 있었는가(삼상 7:10)? 그 승리가 너무 확실했는가? 다른 민족처럼 불확실한 전쟁의 운을 시험하기를 원했는가? 그들은 자기 특권에 그만큼 싫증 났다. 그 결과는 어떠했는가? 어떤 사사도 전쟁에서 죽지 않았지만 첫 왕은 전쟁에서 죽었고, 마지막 왕들 가운데 가장 선한 요시야도 그렇게 죽었다.
VI. 그들이 요구한 것을 곧 얻게 되리라는 암시와 함께 돌려보냈다. 1. ‘사무엘은 백성의 모든 말을 주의 귀에 아뢰었다’(삼상 8:21). 하나님은 사무엘의 보고가 없어도 완전히 아셨다. 그러나 선지자인 사무엘은 자기를 보내신 분께 답을 돌려 드려 하나님과 이스라엘 사이에서 충실히 행동했고, 더 지시하시기를 기다렸다. 하나님은 우리가 염려하고 의심하는 사정을 완전히 아시지만 우리에게서 듣기를 원하신다. ‘주의 귀에’ 아뢰었다는 말은 은밀히 행했음을 암시한다. 백성은 이 문제의 지시를 구하는 기도에 동참할 마음이 없었다. 또한 하나님이 백성에게 은혜롭게 허락하시는 거룩한 친밀함을 나타낸다. 친구가 다른 친구의 귀에 속삭이듯 주의 귀에 말한다. 하나님과 나누는 교제는 ‘세상이 알지 못하는 먹을 양식’이다(요 4:32). 2. 그들이 지나치게 집착했으므로 하나님은 왕을 주라고 지시하셨다(삼상 8:22). ‘그들에게 왕을 세워 주어라. 그 왕으로 가능한 최선의 결과를 얻도록 하라. 그들이 군주에게서 그토록 보고 싶어 한 화려함과 권력이 재앙과 짐이 되면 자기 자신을 탓하게 하라.’ 이처럼 하나님은 ‘그들을 마음의 정욕대로 내버려 두셨다.’ 사무엘은 이 말씀을 전했지만 당장은 ‘각자 자기 성읍으로’ 돌려보냈다. 왕이 될 사람의 지명은 하나님께 맡겨야 했고 그들이 더 할 일은 없었다. 하나님이 사무엘에게 선택을 알릴 때까지 평화를 지키며 결과를 기다려야 했다.
앞 장에서 사무엘이 다스리는 동안 이스라엘의 형편은 아주 좋았다. 그런데 이 장에서는 그가 그토록 빨리 늙어 물러날 때가 되고, 상황이 체제의 변화를 향해 움직이는 모습을 보게 되니 안타깝다. 그러나 실제로 그렇게 되었다. 이스라엘의 좋은 시절은 좀처럼 오래 지속되지 않았다. 여기에는 다음 내용이 나온다. I. 사무엘이 노쇠했다(삼상 8:1). II. 그의 아들들이 타락했다(삼상 8:2-3). III. 이스라엘은 현재의 통치에 불만을 품고 변화를 간절히 원했다. 1. 그들은 사무엘에게 자기들을 다스릴 왕을 세워 달라고 청했다(삼상 8:4-5). 2. 사무엘은 이 일을 하나님께 아뢰었다(삼상 8:6). 3. 하나님은 그들에게 어떤 답을 줄지 지시하셨다. 책망으로 답하게 하시고(삼상 8:7-8), 통치 체제를 바꾸면 어떤 결과가 생겨 곧 얼마나 괴로워질지를 밝히는 경고로 답하게 하셨다(삼상 8:9-18). 4. 그들은 계속 자기 요구를 고집했다(삼상 8:19-20). 5. 사무엘은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그들의 요구가 곧 이루어질 것이라고 약속했다(삼상 8:21-22). 사람은 자기가 좋은 형편에 있을 때 그것을 알기가 이처럼 어렵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