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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arnes' Notes on the Bible

Albert Barnes · 18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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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arnes' Notes on the Bible

Albert Barnes · 18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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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lbert Barnes' Notes on Revelation Of St. John The Divine (New Testament, English original, public domain). Sourced from the Christian Classics Ethereal Library (CCEL). Public domain. Retrieval mirror: biblehub.com/commentaries/barn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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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모스 1장 서론 Barnes' Notes on the Bible

Amos 1 Introduc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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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모스 서론

테오도레투스는 말한다. ‘사람들의 마음을 하나하나 지으시고 그들의 모든 행위를 아시는 분은 이스라엘 마음의 완고함과 거스름을 아시기에, 한 선지자만이 아니라 많은 선지자와 놀라운 인물들을 자신의 사역자로 사용하여 그들과 변론하신다. 그분은 그들을 훈계하고 장래 일을 미리 말씀하시며, 많은 이의 조화를 통하여 그 예언이 참됨을 입증하신다.’

거짓 교사들의 반박이 바울에게 자신을 말할 계기를 주었듯이, 벧엘 제사장의 박해는 하나님이 아모스를 선지자로 부르시기 전 그의 생애에 관하여 우리가 아는 사실을 드러내 주었다. 그는 ‘나는 선지자가 아니며 선지자의 아들도 아니었다’라고 말한다(아모스 7:14). 그는 사무엘이 세운 선지자 학교에서 아무 훈련도 받지 않았다. 그 학교들을 통해 전반적인 배교와 부패 가운데서도 이스라엘의 남은 자 안에 종교적 지식과 삶이 유지되었다. 그는 ‘목자’였다. בקר(bâqâr)는 양이나 염소의 ‘떼’와 대조되는 ‘소’ 또는 ‘소 떼’를 언제나 가리키고 그 명칭도 ‘밭을 갈다’에서 유래하므로 자연스럽게는 ‘소 치는 자’를 뜻하며, 가능성은 덜하지만 ‘양 치는 자’를 뜻할 수도 있다. 그는 ‘드고아 목자들 가운데’ 있었으며, 외형상 그들과 아무 차이도 없었다.

그가 양도 길렀으므로 그 양들은 그의 소유였을 수 있다. 이를 입증하거나 반증할 것은 없다. 그러나 그는 ‘예언은 하나님이 부유하고 고귀한 자에게만 주신다’는 원칙을 밀고 나간 유대인들이 만들고자 한 것처럼 모압 왕과 같은 ‘큰 목축업자’는 아니었다(요엘 2:29 주석 참조). 그는 다윗처럼 목자로서 양 떼를 따랐다. 그러나 그가 돌무화과 열매를 ‘모으는 자’, 더 정확히는 ‘재배하는 자’였다는 말은 오히려 품삯을 받고 농촌 노동으로 살아간 사람임을 나타낸다. 이 낱말은 아마 열매를 자극하고 긁고 찌르고 상처 내어 인위적으로 익게 하는 방법을 가리킨다.

아모스는 그것이 자기 음식이었다고 하지 않고, 무화과를 익게 하는 원예인의 일을 자기 직업 가운데 하나로 행했다고 말한다. 그러므로 그는 다른 목자들 가운데서 원예인인 동시에 목자였다. 그가 먹인 양들도 아마 거래 대상이었을 것이다. 그의 특별한 목자 명칭 נקד(nôqêd)의 어원이 된 양과 염소 품종 נקד(naqad)는 오늘날에도 아라비아에서 같은 이름으로 알려져 있다. 작고 마르고 다리가 짧으며 볼품없고 발육이 부진한 품종이다. ‘naqad보다도 천하다’는 속담까지 생겼지만, 그 양털은 최상품으로 여겨졌다. 염소는 특히 바레인에서 발견되었다. 아랍인들 사이에서도 이 양들을 치는 목자는 그 품종에서 유래한 이름으로 불렸다. 양들은 ‘naqad’, 목자는 ‘noqad’라 불렸다.

선지자의 출생지 드고아는 요세푸스와 제롬 시대에 예루살렘에서 12마일 떨어진 높은 언덕 위의 ‘마을’, 곧 ‘작은 마을’로 쇠퇴한 성읍이었다. 제롬은 ‘우리가 날마다 바라보는 곳’이라고 덧붙인다. 그는 말한다. ‘그곳은 세상의 구주가 태어나신 거룩한 베들레헴에서 남쪽으로 6마일 떨어져 있으며, 그 너머에는 거친 오두막과 이동식 천막 외에 마을이 없다. 홍해와 페르시아인·에티오피아인·인도인의 경계까지 뻗은 광대한 황무지가 이와 같다. 메마른 모래땅에는 곡물이 전혀 자라지 않으므로, 땅의 불모를 가축 떼의 수로 보충하려고 곳곳에 목자들이 가득하다.’ 요압은 압살롬을 위해 중재하게 하려고 드고아에서 ‘지혜로운 여인’을 데려왔고(사무엘하 14:2), 르호보암은 그곳을 건축했다(역대하 11:6). 곧 이전에 마을이었고 나중에도 다시 마을이 되어 여호수아서에는 언급되지 않았던 곳을 남동쪽 국경의 요새 성읍으로 만든 것이다.

인접한 광야는 드고아의 이름을 따라 불렸다(역대하 20:20; 마카베오상 9:33). 돌무화과 외에도 그곳의 기름은 유다에서 가장 좋았다. 전쟁과 황폐가 팔레스타인의 다른 지역에서처럼 이 두 가지를 모두 없애 버렸다. 오늘날 남은 것은 그리스도교 유적인 ‘4~5에이커의 폐허’이다. 사해 부근의 여러 장소처럼, 발음이 조금 달라진 옛 이름 데쿠아(Theku'a)와 예루살렘에서의 거리로 그 위치를 식별한다. 주후 6세기에는 드고아에 거룩한 아모스를 기념하는 예배당이 있었고, 사바의 작은 라우라에서 분리된 수도사들이 주일에 그곳에서 성찬을 나누었다는 기록이 있다. 드고아의 넓은 전망은 죽은 것과 산 것, 곧 하나님의 긍휼과 심판을 함께 품었다.

남동쪽으로는 ‘사이에 놓인 험하고 황량한 산들의 틈으로 사해가 자주 모습을 드러내며, 평평한 모압 산지만이 시야의 경계를 이룬다.’ 북쪽으로는 감람산이 보였다. 당시에는 하나님이 ‘자신의 이름을 두시려고 택하신’ 곳을 내려다보는 사랑스러운 광경이었다. 그러나 드고아는 출생지였을 뿐 선지자의 거처는 아니었다. 그는 ‘드고아에서 나온 목자들 가운데’(מתקוע, mı̂teqôa‛) 있었고, 목자라는 직업은 그들을 ‘드고아에서’ 떠나게 했다. 광야에서 양 떼를 따를 때 하나님은 야곱과 모세에게 하셨듯 그를 보시고 자신을 계시하시며 ‘가서 내 백성 이스라엘에게 예언하라’고 말씀하셨다. 사도들이 그물과 아버지를 떠나고 마태가 세관을 버리고 예수를 따랐듯, 아모스는 양 떼와 돌무화과 재배를 떠났다. 그는 목자의 옷차림으로 왕실의 것이지만 우상 숭배에 빠진 국가 성전 곧 벧엘 성소(아모스 7:13)에 갑자기 나타나, 국가가 승인한 우상 숭배를 규탄하고 왕가의 멸망과 백성의 포로 됨을 예고했다. 호세아처럼 그는 이스라엘에서 가장 강력한 왕이 다스리고 번영에 그림자가 없던 때 이 일을 해야 했다. 드고아가 예루살렘에서 남동쪽으로 12마일이고 벧엘은 북쪽으로 12마일이었으므로, 목자가 양 떼와 광야에서 이스라엘 부패의 샘인 벧엘 산당으로 가서 영감받은 농부로서 국가 우상 숭배의 제사장들과 선지자들을 대면하는 데 여섯 일곱 시간이면 충분했다.

그곳에서 그는 틀림없이 ‘이스라엘의 성소들이 황폐해질 것’이라고 말했고(아모스 7:9), 이전의 ‘하나님의 사람’처럼 ‘제단’ 맞은편에 서서 그것을 거스르는 예언을 새롭게 하며, 그 제단의 파괴가 우상 숭배자들까지 함께 멸망시킬 것이라고 예언했다(아모스 9:1). 그가 예언 일부를 벧엘에서 선포했지만, 위대한 선배 엘리야와 엘리사처럼 사역을 그곳에만 국한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가난한 자를 압제하여 사치를 유지하던 사마리아의 부유한 여인들을 향한 부름(아모스 4:1)은 분명 사마리아에서 전해졌다. 사마리아가 솟은 골짜기를 에워싼 산등성이에서 이방인들에게 내려다보며 그 소란과 압제를 보고, 향연 소리와 압제받는 이의 울부짖음을 들은 뒤 하나님과 백성 사이를 판단하라고 한 부름(아모스 3:9 주석 참조)도 사마리아 안에서 가장 효과적으로 선포되었을 것이다. 그의 설교를 들은 죄 있는 주민들의 양심은 자신들과 세상 사이의 안전벽이라 여겼던 주변 산등성이를 자기 죄의 이방 증인과 이방의 보복자들로 채웠을 것이다.

선지자는 여로보암 집의 장차 멸망과 이스라엘의 포로 됨을 오직 영감으로 알 수 있었다. 그러나 그가 책망한 죄는 그들 가운데 지내며 알았을 것이다. 바울이 아덴에서 ‘온 성에 우상이 가득한 것을 보고’ 마음이 격분했듯이(사도행전 17:16), 아모스의 영도 그가 생생한 세부로 묘사한 사치와 빈곤의 비참한 병존 때문에 깊이 격동했을 것이다. 그가 책망한 죄는 특히 수도의 외적 번영에 따르는 것들이다. 극심한 사치(아모스 3:12, 15; 4:1; 5:11; 6:4-6), 향연(아모스 2:8; 3:9), 방탕(아모스 2:7), 가난한 자를 압제하여 무모한 지출을 지탱한 부자들(아모스 2:7-8; 3:9; 4:1; 5:11; 6:3; 8:4-6), 강탈(아모스 3:10), 궁핍을 이용한 가혹한 거래(아모스 2:8), 뇌물과 결합된 재판의 왜곡(아모스 2:6-7; 5:7, 12), 거짓 도량형(아모스 8:5), 인색하고 냉혹하며 아마 고리대금까지 곁들인 곡물 판매(아모스 8:5-6)이다. 아모스는 죄와 맞설 때 호세아보다 그 세부와 정황을 더 많이 다룬다. 호세아는 범죄의 중심을 건드리고, 아모스는 거기서 뻗어 나온 세부에서 추악함을 보여 준다. 그는 언제나 생생하게 묘사하므로, 가난한 자를 팔아넘긴 비천한 값 또는 사치품인 ‘신 한 켤레’(아모스 2:6; 8:6), 가난한 자에게 비싼 값과 모자란 분량으로 판 ‘밀 찌꺼기’라는 새로 만든 표현(아모스 8:6)처럼 죄가 나타난 일상의 사건을 지적한다.

아모스가 예언 앞에 붙인 표제에 따르면 그의 직무는 웃시야와 여로보암 2세가 함께 다스린 25년, 곧 주전 809~784년에 속한다. 이는 호세아가 그들의 죄 목록에서 말한 유혈이 개인 살인이라기보다 여로보암 2세 사후 혁명기의 정치적 유혈이라는 앞선 견해와 일치한다. 여로보암 2세 시대와 같은 정치적 번영과 부에 수반된 죄로 이스라엘을 책망하는 아모스는 유혈을 언급하지 않기 때문이다.

아모스가 예언을 시작하기 두 해 전에 지진이 있었다는 언급이 더 정확한 연대를 준다고 생각해 왔다. 그 지진은 포로기 뒤 250년이 지나서도 기억될 만큼 무서운 재앙이었을 것이다. 스가랴는 청중이 전승으로 잘 아는 사건처럼 ‘유다 왕 웃시야 때 지진을 피하여 도망하던 것같이 너희가 도망하리라’고 말한다(스가랴 14:5). 요세푸스는 그 지진을 웃시야가 교만하게 분향하여 하나님이 나병으로 치신 사건과 연결한다. 그는 이를 사실로 기록한다(『유대 고대사』 ix.10). ‘그 사이 큰 지진이 땅을 흔들었고 성전이 갈라지자 밝은 햇빛이 왕의 얼굴에 비쳐 즉시 나병이 덮쳤다. 성 앞 에로게라 불리는 곳에서는 언덕 서쪽 절반이 떨어져 나가 동쪽 산을 향해 반 마일을 굴러간 뒤 길과 왕의 정원을 막으며 멈췄다.’ 그러나 이 설명은 전혀 역사적이지 않다. 성전 자체가 갈라진 엄청난 사건이 기록되지 않았을 리 없다는 개연성 문제를 떠나서도, 요세푸스는 스가랴가 묘사한 미래 사건을 웃시야 시대의 과거 지진과 혼동했다. 연대도 역사와 조화되지 않는다. 웃시야가 나병에 걸렸을 때 ‘그의 아들 요담이 왕궁을 관리하며 백성을 다스렸다’(역대하 26:21). 그러나 요담은 아버지가 죽고 ‘왕이 될 때’ 겨우 스물다섯이었다(역대하 27:1). 웃시야는 여로보암보다 26년 더 살았으므로, 나병 뒤 아버지를 대신해 다스린 요담은 여로보암이 죽을 때 아직 태어나지도 않았다. 따라서 웃시야의 나병은 여로보암 사후 몇 년이 지나 생겼고 지진 뒤에도 생겼어야 한다. 여로보암 시대에 예언한 아모스가 ‘지진 전 이 년’에 예언했기 때문이다.

이사야의 ‘육십오 년 내에 에브라임이 패망하여 다시는 나라를 이루지 못하리라’는 예언(이사야 7:8)에 관한 고대 히브리 해석은 이사야가 디글랏 빌레셀이나 사르곤 아래 시작된 포로를 예고한다고 보았다. 이사야의 예언에서 그 포로까지 65년이 되지 않자, 이사야가 아모스의 ‘이스라엘은 반드시 사로잡혀 그 본토에서 떠나리라’는 예언(아모스 7:11, 17)부터 계산했다고 가정했다. 그들은 이 예언을 웃시야 제25년에 두었다. 그러면 웃시야의 남은 27년, 요담 16년, 아하스 16년, 히스기야 첫 6년이 합하여 65년이 된다. 이 계산은 지진과 웃시야의 나병을 연결한 오류와 반드시 결부되지는 않는다. 그러나 이사야의 ‘이제부터 육십오 년 내에’라는 말은 그가 예언을 말한 때부터 계산했음을 분명히 한다. 그러므로 이는 이스라엘 ‘왕국’을 끝낸 불완전한 포로가 아니라, 열 지파가 ‘다시는 나라를 이루지 못하게’ 된 에살핫돈 아래의 더 완전한 이주를 가리킨다(에스라 4:2; 역대하 33:11; 열왕기하 17:24). 아하스 14년, 히스기야 29년, 므낫세 22년을 합하면 65년이다. 이것도 아모스의 연대를 확정하지 못한다.

아모스가 이스라엘에게 자기 국경을 갈레와 하맛과 가드의 국경과 비교하라고 한 것도 예언의 연대를 결정하지 않는다. 웃시야가 가드 성벽을 헐고(역대하 26:6), 여로보암 2세가 하맛을 이스라엘에 회복했으므로(열왕기하 14:28), 비교의 요점은 이 민족들이 당한 당대의 재난과 아모스가 이스라엘에 위협했으나 부자들이 사실상 믿지 않은 재난 사이에 있었을 것이다. 이어서 ‘흉한 날이 멀다 하는 자’라는 말이 나오기 때문이다(아모스 6:3). 그러므로 유브라데 건너편의 매우 오래된 성읍 갈레(창세기 10:10, 훗날 크테시폰)는 가드와 하맛이 유다와 이스라엘에게 고난받은 것처럼 최근 앗수르에게 고난받았을 가능성이 있다. 그러나 그 연대들은 알지 못한다. 이사야는 앗수르가 ‘갈로는 갈그미스와 같지 아니하며 하맛은 아르밧과 같지 아니하며 사마리아는 다메섹과 같지 아니하냐’고 자랑한다고 말한다(이사야 10:9). 그러나 이는 하맛·다메섹·사마리아가 앗수르 손에 떨어진 훨씬 뒤의 때에 관한 것이다. 현재 우리가 아는 앗수르 역사는 아모스의 청중에게 잘 알려졌던 사건에 아무 단서도 주지 않는다.

아모스의 정확한 활동 시기를 이렇게 확정할 수는 없지만, 벧엘 제사장 아마샤가 그를 고발한 여로보암의 통치 안에 속해야 한다(아모스 7:10-11). 예언 전체는 이스라엘이 번영과 안락과 안전을 누렸음을 전제하지만, 여로보암이 죽자 곧 무정부 상태에 빠졌기 때문이다. ‘하맛 어귀’가 이스라엘에 속한 것으로 언급된 것은(아모스 6:14) 여로보암이 이를 이스라엘에 회복한 뒤에 이 예언이 나왔음을 뜻한다(열왕기하 14:25). 그가 책망한 안일과 교만과 사치는 외세의 압제가 얼마 동안 그쳤음을 보여 준다(열왕기하 14:26). 이는 표제와 일치하지만 더 좁은 시기를 정하지는 못한다. 웃시야와 여로보암 2세가 함께 다스릴 때 예언했으므로, 그의 직무는 주전 809~784년, 곧 여로보암 2세 통치 마지막 25년에 속한다. 아마 호세아보다 늦게 시작하고 훨씬 일찍 끝났으므로, 어떤 의미에서는 호세아보다 늦으면서도 이르다. 호세아의 초기 활동보다는 늦고 후기 활동보다는 훨씬 이르다.

이 기간 안에서 아모스의 활동을 극히 짧게 한정할 근거는 없다. 벧엘 제사장 아마샤의 전갈은 아모스의 화 선언이 이스라엘 전체를 뒤흔들었음을 뜻한다. ‘아모스가 이스라엘 족속 중에서 왕을 모반하나니 이 땅이 그의 모든 말을 견딜 수 없나이다’(아모스 7:10). 하나님은 여로보암의 봉헌 축제 때 훗날 불순종한 선지자를 보내 하나님의 이름을 내세우면서 하나님을 거슬러 봉헌하던 제단의 더럽힘을 예고하셨듯, 아모스를 벧엘의 큰 절기 한가운데 보내셨을 수 있다. 그렇다면 아모스는 엘리야처럼 곧바로 우상 숭배자의 큰 무리를 대면했을 것이다. 그러나 아마샤의 말은 자연스러운 의미상 한 장소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전한 것보다 더 널리 퍼진 영향력을 암시한다. 그는 ‘이 땅’, 곧 열 지파 전체가 ‘그의 모든 말을 견딜 수 없다’고 한다. ‘모반’이라는 비난은 어떤 이들이 흔들렸을 뿐 아니라 아모스의 말로 돌이켜 그와 그의 신앙을 따르는 자로 알려졌음을 뜻할 수도 있다.

아모스는 하나님의 선지자들에게 예언하지 말라고 한 일을 현장에서 책망한 아마샤의 한 차례 반대보다 더 지속적인 관행으로 말하는 듯하다. ‘너희 아들 중에서 선지자를 일으켰으나 너희가 선지자들에게 명령하여 예언하지 말라 하였느니라’(아모스 2:11-12). 엄밀히 말해 아모스 자신은 에브라임의 아들도 아니었다. 아모스 3:3-8의 연속된 비유는 왜 그가 그들 가운데 예언하느냐는 반론에 대한 답처럼 보인다. 자연 현상에서는 원인 뒤에 결과가 따르는 것을 이상히 여기지 않듯이, 하나님의 명령은 원인이고 아모스의 예언은 결과였다. 그들은 현재의 사치 속에서 미래의 재앙을 잊고 ‘흉한 날이 멀다’ 했고(아모스 6:3), 하나님이 자신들과 함께 계신다고 주장했다. ‘너희 말과 같이 만군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희와 함께 계시리라’(아모스 5:14). 또는 하나님께 대한 반쪽짜리 섬김과 자신들 가운데 계신다고 상상한 임재를 믿고 아모스의 재앙 예언을 조롱하며, 그가 위협한 여호와의 날을 원한다고 했다. 재앙이 자신들에게 닿지 않을 것이라며 ‘여호와의 날을 사모하는 자여 너희에게 화 있을진저 그 날이 너희에게 무슨 유익이 있느냐’고 한 것이다(아모스 5:18). ‘내 백성 중에서 말하기를 화가 우리에게 미치지 아니하며 이르지 아니하리라 하는 모든 죄인은 칼에 죽으리라’(아모스 9:10). 그들은 공개적으로 책망하는 자를 미워한다는 것도 행동으로 나타냈고(아모스 5:10), 아모스는 호세아처럼 그들이 완고해져 지혜조차 그들을 내버려 두어야 한다고 선언한다(아모스 5:13). 이 모든 것은 선지자와 백성이 계속 접촉했음을 뜻한다. 그의 직무는 몇 편의 설교나 하나님의 뜻에 대한 몇 차례 영감받은 선언으로 끝난 것이 아니라, 여러 해 동안 그들 가운데 목회하는 일이었을 것이다. 오늘날의 아모스서는 호세아서처럼 그의 예언을 요약한 책이다.

아모스가 후에 자신의 예언적 가르침을 하나로 모았으므로, 이 책은 잘 질서 잡힌 통일체이다. 그는 표제에서 예언이 기록되기 전에 먼저 말해졌다고 밝힌다. 예언적 환상 가운데 ‘본 말씀’이 ‘지진 전 이 년’의 것이었다고 하므로, 이 부분은 기록보다 적어도 두 해 앞서야 한다. 그 무서운 지진이 예언들을 수집하는 계기가 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지진은 단순한 연대 표지가 아니었다. 날짜만 뜻했다면 다른 선지자들처럼 유다 왕의 연도를 말했을 것이다. 그는 지진을 하나님의 진노에 대한 경고 가운데 하나로 직접 언급한다(아모스 4:11). 더 파괴적인 이 지진은 여로보암 2세의 번영하는 통치 동안 하나님의 진노가 처음 크게 나타난 표징이자, 아모스가 예고한 더 무거운 심판들이 파도처럼 이스라엘을 덮쳐 마침내 포로로 끌고 갈 것이라는 첫 전조였을 것이다. 이스라엘은 두 해 동안 경고받았고, 이제 ‘재난의 시작’이 닥쳤다(마태복음 24:8).

아모스는 책의 시작에서 이미 지적했듯 요엘서에 자기 책을 이어 붙인다. 요엘은 죄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 사례로 두로·시돈·블레셋·에돔이 유다에 행한 악을 갚으시고 애굽을 황폐하게 하실 것이라고 예언했다. 아모스는 애굽을 빼고 다메섹·암몬·모압과 유다 자체를 더한다. 일곱이라는 수가 자주 사용되므로 전체를 나타내려고 모두 일곱 민족을 택했을 수도 있고, 하나님의 백성이라는 이유로 이스라엘과 유다를 미워한 신정의 특별한 원수들과 자기 하나님에게서 멀어진 하나님의 백성 자체를 모두 포함했을 수도 있다. 규탄받는 죄는 분명 신정 또는 하나님의 통치를 거스른 죄다. 아모스는 ‘하나님은 사람을 외모로 취하지 않으시며’ 온 땅의 심판자로서 죄 있는 모든 민족을 벌하신다는 진리를 보여 주고, 죄인이 그토록 피하려는 진리, 곧 하나님이 빛과 사랑을 가장 많이 보이신 곳을 가장 엄하게 벌하신다는 진리를 준비하려 했을 수 있다(아모스 3:2). 하나님의 심판이라는 먹구름은 주변 모든 민족, 곧 수리아·블레셋·두로·에돔·암몬·모압을 지나 유다와 예루살렘에도 하늘의 불을 쏟은 뒤 마침내 이스라엘 위에 머문다. 이스라엘에 대한 심판의 순환을 마무리하는 요약은 그들이 그의 사명의 주된 대상이므로 죄를 더 자세히 다룬다. 아모스는 다른 곳에서 책망한 죄를 거기에 모으고, 배은망덕과 하나님이 주신 빛을 끄려 한 시도를 제시한다.

우리의 장 구분은 각 장이 호세아서처럼 화 선언으로 끝난다는 점에서 자연스럽다. 아모스 3장, 4장, 5장은 세 차례 되풀이되는 ‘이 말씀을 들으라’는 부름으로 구별된다. 각 장에서 그는 그들의 죄 몇 가지를 제시하고 하나님의 판결을 선고한다. ‘그러므로 주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되’, ‘그러므로 이스라엘아 내가 이와 같이 네게 행하리라’, ‘그러므로 주 만군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되’라고 한다(아모스 3:11; 4:12; 5:16; 앞의 2:14 참조). 그 뒤 두 가지 화가 따른다. ‘여호와의 날을 사모하는 자’에게 임하는 화(아모스 5:18)와 ‘시온에서 교만한 자’에게 임하는 화(아모스 6:1)이다. 두 단락 모두 하나님의 심판을 새로 선고하며 끝난다. 첫째는 이스라엘이 ‘다메섹 밖으로’ 최종 포로가 될 것을, 둘째는 디글랏 빌레셀의 첫 침공으로 더 가까이 닥칠 고난을 말한다(아모스 6:14 주석 참조). 7장에서는 일련의 환상이 시작된다. 처음 두 환상에서 하나님은 선지자의 중보로 용서하신다(아모스 7:3, 6).

셋째 환상에서는 더 이상 용서하지 않으시겠다고 해석하신다(아모스 7:8). 이어 아마샤가 예언을 금하고 하나님이 그에게 판결을 내리신다. 8장에서 아모스는 그 사이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아마샤가 끼어들어 중단시킨 환상들을 바로 그 지점에서 다시 잇는다. 아모스가 하나님이 이스라엘 집을 ‘다시는 지나쳐 가지’ 않고 이스라엘의 우상 성소를 황폐하게 하며 여로보암 집을 칼로 치겠다고 선언할 때 아마샤가 방해했다. 이어지는 환상은 ‘내가 다시는 그를 용서하지 아니하리니’라는 말을 되풀이하고(아모스 8:2), 우상 성전의 노래가 애곡으로 변할 것을 예고한다. 마지막 장은 우상 제단과 성전만 무너지는 것이 아니라 그 예배자들도 멸망할 것이라는 환상으로 시작한다(아모스 9:1). 아모스는 각 환상을 주제로 삼아 확장하며 둘 다 화로 끝낸다. 첫째는 이스라엘 우상 숭배자들의 완전한 멸망으로(아모스 8:14), 둘째는 죄 있는 이스라엘 ‘나라’의 멸망으로 끝난다(아모스 9:8). 그는 여기에 이스라엘 ‘집’이 ‘만국 중에서 체질함을 받아도 한 알갱이도 땅에 떨어지지 않을’ 것이라는 약속을 결합한다(아모스 9:9). 그리고 호세아처럼 책 전체에서 처음으로 마지막 약속을 덧붙인다. 하나님이 다윗의 무너진 장막을 일으키고 이방인을 돌이키며, 요엘에서 이미 영적 복을 상징했던 약속들 가운데 이스라엘의 포로를 돌아오게 하실 것이다(아모스 9:13).

아모스는 호세아처럼 이스라엘을 위한 선지자였다. 여호와의 율법을 멸시한 유다를 하나님의 징벌 범위에 포함한 2장(아모스 2:4-5) 뒤에는 유다를 부수적으로만 언급한다. 거기서 예루살렘이 실제로 그랬듯 불에 탈 것을 예고한다. ‘하나님이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올린 온 족속’이라는 말에는 유다도 포함되어야 하며(아모스 3:1), ‘시온에서 교만한 자’에게도 화가 선고된다(아모스 6:1). 그 밖에는 ‘이스라엘’, ‘이스라엘 집’, ‘처녀 이스라엘’, ‘이스라엘 성소’, ‘야곱’, ‘야곱 집’, 같은 뜻의 ‘이삭의 산당’, ‘이삭 집’, ‘요셉 집’, ‘요셉의 남은 자’, ‘요셉의 환난’, ‘사마리아 산’ 또는 ‘산들’, ‘사마리아’, ‘벧엘’이 그의 예언 대상으로 교대로 나온다(아모스 3:9, 12-14; 4:1, 4-5, 12; 5:1, 4, 6, 15, 25; 6:1, 6, 8, 14; 7:2, 5, 8-9, 16-17; 8:2, 14; 9:7-8). 이스라엘과 벧엘을 거스르는 그의 말이 유다 왕국에서는 환영받을 것이라는 아마샤의 조롱도 같은 사실을 암시한다. 아모스 자신도 ‘가서 내 백성 이스라엘에게 예언하라’는 것이 자기 사명이었다고 선언한다. 브엘세바 우상 숭배를 말하면서 ‘브엘세바로도 나아가지 말라’고 하여(아모스 5:5) 유다의 우상 숭배를 그들의 것에 더한다. ‘나아가지 말라’는 말은 이스라엘에서 예언하는 사람만 쓸 수 있었다. 그러므로 아모스가 자기 예언을 먼저 그들에게가 아니라 다윗 집에 주어진 약속과 그 회복을 통해 이스라엘에 주어질 약속으로 끝낸 일은 이스라엘의 신실한 자들에게 더욱 인상적이었을 것이다. 그는 호세아처럼 ‘이스라엘 나라’의 완전한 멸망을 예고하면서도 하나님이 ‘야곱 집’을 완전히 멸하지 않고 그 안의 택한 자를 구원하실 것이라고 선포한다(아모스 9:8-10).

아마샤의 반대는 사람들이 하나님의 음성을 억누르려고 외친 수많은 ‘예언하지 말라’ 가운데 두드러진 한 사례이다. 여로보암은 고발을 무시했다. 선지자 요나가 그의 큰 승리를 예고한 적이 있었으므로, 그는 아마샤가 아모스의 말을 왜곡한 것처럼 ‘여로보암’이 칼에 죽는다고 한 것이 아니라 ‘여로보암의 집’이 그렇게 멸망한다고 예고한 하나님의 선지자를 방해하려 하지 않았다(아모스 7:9). 그러나 그의 책 전체는 여로보암의 통치와 이스라엘 왕국의 범위 안에 있다. 그는 거기서 선지자가 되라는 하나님의 부름을 받았으며, 유다에서 직무를 수행했거나 생전에 그곳으로 은퇴했다는 흔적은 전혀 없다.

상당히 후대의 전승은 우리 주께서 그 백성이 죽였다고 하신 많은 선지자 가운데 아모스를 둔다. 그 전승은 이렇다. ‘아모스가 벧엘 제사장 아마샤에게 여러 차례 맞은 뒤(기록자는 히브리서 11:35에 나오는 것과 같은 낱말을 쓴다), 그 제사장의 아들 오세가 말뚝으로 그의 관자놀이를 찔렀다. 그는 반쯤 죽은 채 고향으로 옮겨졌고 며칠 뒤 상처로 죽어 조상들과 함께 묻혔다.’ 이를 전하는 익명의 그리스 저자는 이야기 자체가 개연성은 있어도 다른 사례에서 신뢰할 만한 정보를 주지 않으며, 제롬과 알렉산드리아의 키릴도 이를 알지 못했다. 제롬은 출생지 드고아에 아모스의 무덤이 여전히 보인다고만 전한다.

아모스의 목자 생활이 미친 영향은 예언의 가장 숭고한 부분, 곧 전능하신 하나님의 강력한 역사 묘사에서 가장 잘 나타난다(아모스 4:13; 5:8; 9:5-6). 우상 숭배자들이 숭배하던 자연물이 갑자기 어두워지고 ‘대낮을 밤같이 캄캄하게’ 만드는 두렵고 급작스러운 자연 변화에 그는 목자 생활로 익숙했다. 별이 빛나는 하늘은 그의 영혼이 하나님과 조용히 교제하는 것을 자주 지켜보았을 것이다. 에브라임의 우상 숭배자들은 송아지 안에서 ‘자연’을 숭배했다. 그러므로 아모스는 그들도 예배한다고 믿었던 자기 하나님을 ‘자연’의 창조주, 자신의 뜻대로 그것을 다루고 바꾸시는 분으로 나타내기를 기뻐한다. 모든 자연도 경건하지 않은 자를 벌할 때 창조주께 순종해야 하고(아모스 8:8), 아무것도 그분에게서 숨겨 주지 못한다(아모스 9:2-3, 5). 목자 생활은 다윗의 젊은 시절 실제 사건으로 아는 들짐승의 위험에도 익숙하게 했을 것이다. 거기서 취한 비유들은 아마 그가 보거나 겪은 일을 회상한 것이다(아모스 3:4-5, 12; 5:19). 그러나 대체로 나무가 없는 불모의 광야에서 목자로 산 아모스는 농부가 아니었다. 그곳은 곡물 산지도 백향목과 상수리나무의 땅도 아니었다. 그러므로 웅장한 나무(아모스 2:9), 짐을 가득 실은 수레(아모스 2:13), 곡식 체질(아모스 9:9)의 비유는 그가 자연에서 직접 본 결과가 아니다. 선지자가 하나님이 그들에게 보내셨다고 한 곡식의 병과 메뚜기와 가뭄도 드고아 광야보다 이스라엘 곡창 지대에서 느낄 재앙이었다. 그가 책망한 무감각은 그들이 자기 고난 속에서도 완고했던 것이며(아모스 4:7-9), 하나님의 이름으로 위협한 심판(아모스 7:1-3)은 고향의 목자 생활과 관련이 없다.

제롬조차 참된 원칙을 세우면서도 목자 생활에서 나온 비유의 사례로 책 첫말을 들었는데, 그 말은 일부가 요엘의 말이다. 그는 말한다. ‘어떤 기술을 행하는 사람은 누구나 그 기술의 용어로 말하고, 각자 평생을 보낸 분야에서 비유를 가져오는 것이 자연스럽다. 왜 이것을 말하는가? 목자들 가운데 목자였고, 경작지나 포도원이나 숲이나 푸른 초장이 아니라 사자의 사나움과 가축의 죽음을 목격하는 광대한 광야에 살았던 선지자 아모스도 자기 기술의 언어를 썼음을 보이기 위해서다. 그는 두렵고 무서운 주의 음성을 사자의 부르짖음이라 하고, 이스라엘 성읍의 전복을 목자들의 외로운 처소나 산의 가뭄에 비겼다.’

진실은 아마 자연 풍경 속에서 지낸 아모스의 신앙생활이 다윗처럼 하나님의 손으로 기록되어 하나님의 일을 놀랍게 표현하는 자연이라는 거대한 그림책에서 가져온 말로 생각을 표현하게 했다는 데 있다. 선지자의 삶이 그를 경작된 자연의 다른 풍경으로 데려갔을 때, 물질세계와 도덕세계의 관계를 읽는 데 숙련된 그의 영혼은 눈앞에서 본 것이든 기억한 것이든 똑같이 비유의 언어로 취했다. 그는 우리가 ‘자연의 아들’이라 부를 만한 사람이었고 자기 하나님에게 능력과 지혜를 부여받았다. 목자 생활 때문에 겉모습의 문체조차 열등했다고 보는 것은 더욱 잘못이다. 이방인조차 ‘생각에는 말이 쉽게 따른다’고 했다. 하물며 하나님 성령께서 생각과 말을 함께 영혼에 부으실 때는 더욱 그러하다. 오히려 문체가 아모스보다 뜨거운 선지자는 거의 없으며, 자연세계와 도덕세계, 하나님의 전능과 전지를 이보다 놀랍게 결합한 이도 드물다(아모스 4:13).

환상은 기록할 경우 산문으로 전할 때 가장 효과적이다. 그 효력은 부분적으로 단순성에 달려 있고, 화려한 언어가 뜻을 덮고 숨길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아모스나 스가랴의 환상이 지닌 시성은 말이 아니라 사상에 있으며, 아모스서의 많은 부분이 자연스럽게 산문이다. 아모스는 이스라엘의 부유한 죄인들을 책망할 때도 산문을 택했다. 그러나 그 가운데 이스라엘의 이방 원수들을 불러 사마리아 주변 산등성이를 채우고 그 죄를 보게 하는 말씀보다 더 시적인 것이 무엇인가(아모스 3:9)? 하나님의 이름조차 감히 말하지 못하는 완전한 절망의 광경보다 더 생생한 것이 무엇인가(아모스 6:9-10)? 죄를 짓는 동시에 그 죄를 속하고 싶다면 와 보라는 이스라엘을 향한 부름보다 더 대담한 것이 무엇인가(아모스 4:4)? ‘내가 땅의 모든 족속 가운데 너희만을 알았나니 그러므로 너희 모든 죄악을 너희에게 보응하리라’는 급전환보다 더 강력한 것이 무엇인가(아모스 3:2)? ‘내가 이것을 네게 행하리니’라는 갑작스러운 부름 뒤 ‘이스라엘아 네 하나님 만나기를 준비하라’고 한 것은 어떤가(아모스 4:12)? ‘이것’이 무엇인지 말하지 않는 침묵이 말보다 더 전율하게 한다. 부자들이 사치에 사치를 더한 모습을 말한 뒤, 그들이 하지 않은 일인 ‘요셉의 환난에 대하여는 근심하지 아니한다’로 끝내는 것보다 더 애처로운 것이 무엇인가(아모스 6:6)?

아우구스티누스는 꾸밈없는 웅변의 사례로 아모스를 택한다. 바울의 사례들을 든 뒤 그는 말한다. ‘이런 것들은 교수들이 가르칠 때 위대한 것으로 여겨지고, 비싼 값에 사서 크게 자랑하며 팔린다. 나의 이 논의도 그런 자랑의 냄새를 풍길까 두렵다. 그러나 나는 사이비 학문을 가진 이들을 상대해야 한다. 그들은 우리 저자들에게 웅변이 없어서가 아니라 자신들이 지나치게 귀하게 여기는 웅변을 과시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낮게 평가한다.

‘나는 선지자들의 웅변에 관해 무엇인가 말해야 함을 안다. 자신이 양 치는 자 또는 소 치는 자였고 하나님이 거기서 데려다가 자기 백성에게 예언하도록 보내셨다고 말하는 선지자의 책에서 주로 이야기하겠다.

‘이 농부 또는 농부 선지자가 경건하지 않고 교만하며 사치하여 형제 사랑을 가장 소홀히 한 자들을 책망할 때 “시온에서 교만한 자들에게 화 있을진저”라고 크게 외친다. 학식과 웅변이 있다는 이유로 우리 선지자들을 배우지 못하고 표현법도 모른다고 멸시하는 자들이 이런 것을 말해야 했거나 이런 자들을 거슬러 말해야 했다면, 어리석지 않기를 원하는 사람 가운데 누가 달리 말하고 싶겠는가? 건전한 귀가 여기 기록된 것보다 무엇을 더 바라겠는가? 먼저 책망 자체가 얼마나 큰 충격으로 내던져져 마비된 감각을 깨우는가!’

그 절들을 분석한 뒤 그는 말한다. ‘이것이 얼마나 아름답고, 읽고 이해하는 이들에게 얼마나 큰 감동을 주는지는 스스로 느끼지 못하는 이에게 말해도 소용없다. 내가 택한 이 한 대목에서 수사학 규칙의 사례를 더 많이 찾을 수 있다. 그러나 좋은 청자는 그 규칙을 세밀히 논하는 데서 가르침을 받기보다 이 말씀을 뜨겁게 읽는 데서 불붙을 것이다. 이것들은 인간의 노력으로 지어진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마음에서 웅변적 지혜로 쏟아져 나왔기 때문이다. 지혜는 웅변을 목표로 하지 않았으나 웅변은 지혜에서 떠나지 않았다.’ 또 말한다. ‘가장 웅변적이고 통찰력 있는 이들이 보고 말했듯, 수사학이라는 기예로 배우는 것들이 먼저 웅변가의 천재성 안에서 발견되지 않았다면 관찰되고 기록되어 이런 체계로 정리될 수 없었을 것이다. 그렇다면 천재성을 창조하시는 “그분”이 보내신 이들에게서도 그런 것들이 발견되는 것이 어찌 놀라운가? 그러므로 우리는 정경의 저자와 교사들이 지혜로울 뿐 아니라 그 성품에 합당한 웅변을 지녔다고 마땅히 고백할 수 있다.’

제롬은 바울이 자신에 관해 한 ‘말에는 부족하나 지식에는 그렇지 아니하다’는 말을 아모스에게 적용하면서(고린도후서 11:6) 아마 후반부를 주로 생각했을 것이다. 그는 ‘모든 선지자를 통해 말씀하신 동일한 성령이 그 안에서도 말씀하셨다’고 덧붙이기 때문이다. 로우스 박사는 적절히 말한다(『히브리 시학 강의』 xxi). ‘제롬은 아모스를 말에는 부족하나 지식에는 그렇지 않다고 부르며, 바울이 자신에 관해 겸손히 고백한 것을 그에게 적용했다. 이 권위에 기대 많은 이가 아모스를 전적으로 투박하고 웅변도 장식도 없다고 말했다. 그러나 전혀 그렇지 않다. 공정한 판단자가 누가 썼는지가 아니라 무엇을 썼는지를 생각하며 그의 글을 읽는다면, 우리 목자가 “지극히 큰 선지자들보다 조금도 부족하지 않다”고 여길 것이다. 사상의 높이와 영의 장엄함에서는 가장 높은 이들과 거의 같고, 표현의 광채와 구성의 우아함에서는 누구에게도 거의 뒤지지 않는다. 동일한 하나님의 영이 궁정에서는 이사야와 다니엘을, 양 우리 곁에서는 다윗과 아모스를 영감으로 움직이셨다. 그분은 언제나 자기 뜻에 합당한 해석자를 택하고 때로 어린아이와 젖먹이의 입에서 찬양을 온전하게 하신다. 어떤 이에게는 웅변을 사용하시고 다른 이는 웅변가로 만드신다.’

구조의 규칙성에서 아모스가 자신만의 우아함을 지녔다는 사실도 지적되어 왔다. 처음 두 장의 무거운 예언을 담은 연 형식은 엄숙함을 크게 더하고, 4장에서 ‘그러나 너희가 내게로 돌아오지 아니하였느니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는 후렴이 반복되어(아모스 4:6, 8-11) 독특하고 깊은 비애를 준다. 외적 형식에서 이 영감받은 목자만큼 세심하게 예언들을 하나로 묶은 선지자는 없다. 인간의 용어로 말하면 아모스는 시인이라기보다 거룩한 웅변가였다. 앞서 든 힘찬 전환 하나만으로도 인간 웅변가의 특징을 새기기에 충분하다. 더 나아가 그것들은 선지자 시대부터 지금까지 죄에 잠긴 영혼들을 철저히 흔들어 왔다. 인간의 웅변을 두고 ‘그가 번개를 치고 천둥을 울리며 그리스를 뒤섞었다’고 했다. 이 목자는 한 나라가 아니라 세상을 흔들었고, 지나가는 지진이 아니라 전류 같은 힘으로 그의 말에서 흘러나온 하나님의 두려움으로 흔들었다.

아모스에게 방언 차이가 있었거나 목자 생활이 발음에 영향을 주었다고 상상해 왔다. 그러나 관련된 것은 다섯 낱말뿐이다. 셋은 철자가 히브리어 다른 용례보다 한 글자 다르다. 둘은 다른 치찰음을 썼고, 셋째는 더 약한 후음을 썼다. 이 밖에도 예레미야와 한 시편에도 나오는 이삭 이름의 부드러운 발음을 사용하며, 다른 한 낱말에서는 두 시편과 같이 히브리어에서 흔한 강한 치찰음의 어근 대신 후음 어근을 쓴다. 이 다섯 사례 중 넷에서 아모스는 더 부드러운 형태를 쓴다. 다섯째에서는 두 치찰음이 한때 서로 다르게 발음되었다는 것만 알고 그 차이는 짐작할 수 없다. 두 치찰음은 여러 히브리 낱말에서 우리가 발견할 수 있는 규칙 없이 서로 교환된다. 또 다른 치찰음에서 아모스의 변화는 ‘sh’를 ‘s’로만 발음하여 ‘shibboleth’를 ‘sibboleth’라 했던 에브라임 사람들과 정반대이다. 에브라임 사람들은 ‘sh’를 전혀 발음하지 못했으나, 아모스의 변화는 한 낱말에 한정된다. 아모스의 이런 사례와 같은 변화는 성경의 다른 낱말에도 나타난다. 전체적으로 아모스가 살던 유다 남부에 더 부드러운 발음이 있었다고 추측할 수 있다. 그러나 안전한 결론은 선지자가 말하고 기록한 그대로 낱말들이 극도로 세심하게 전해졌다는 사실뿐이다.

아모스와 호세아는 모세 율법의 모든 절기와 제사, 제사장과 선지자와 성전이 이스라엘에 유지되었으나 송아지 숭배로 왜곡되었음을 함께 보여 준다는 점을 이미 지적했다. 그들은 삼 년마다 드리는 십일조조차 감히 없애지 못했다. 아모스는 더 세밀한 의식의 특징도 알려 준다. 누룩에 관해서 같은 규정이 있었고(아모스 4:5), 그들의 제단에도 율법의 규정대로 희생 제물의 피를 뿌릴 뿔이 있었으며(아모스 3:14; 출애굽기 27:2; 29:12; 레위기 4:25 참조), 모세 시대 회중 지휘관들이 드린 것 같은 제단 대접도 있어(아모스 6:6; 민수기 7:13) 희생 제물의 피를 뿌리는 데 썼으나 부자들은 때때로 그것을 빼앗아 포도주를 마셨다.

그들 가운데 참 선지자뿐 아니라 하나님이 세우신 참 나실인도 있었다. 그들은 속임수나 폭력으로 나실인의 서원을 깨뜨리려 했으므로 이 경건한 사람들의 영향력이 자신들을 거스르는 무게를 느꼈다(아모스 2:12). 아모스가 부자들이 사람 사이의 법을 어긴다고 책망할 때, 모세 율법이 이 면에서도 그들 가운데 인정되었음을 전제한다. ‘온유한 자의 길을 굽게 한다’(아모스 2:7; 5:12; 출애굽기 23:6; 신명기 16:19; 24:17; 27:19 참조), ‘성문에서 가난한 자를 억울하게 한다’, ‘속전을 받는다’(아모스 5:12, 부자들의 악행을 눈감아 주는 대가)는 표현에서 오경 특유의 용어를 유지한다. ‘모든 제단 옆에서 전당 잡은 옷 위에 누우며’(아모스 2:8; 출애굽기 22:26-27 참조), ‘에바를 작게 하며’(아모스 8:5; 신명기 25:14-15 참조)도 마찬가지다. ‘거짓 저울’(아모스 8:5)은 율법이 명한 ‘공평한 저울’과 반대된다(레위기 19:36).

그는 율법의 원칙이 금한 특별한 음행을 책망하며(신명기 23:1) 율법에 자주 반복되는 제재인 ‘내 거룩한 이름을 더럽힌다’를 쓴다(아모스 2:7; 레위기 20:3). 그가 말한 형벌에도 하나님이 그 형벌을 경고하신 표현을 쓴다. ‘마름병과 깜부기’로 번역된 두 특이한 낱말은 신명기(아모스 4:9; 신명기 28:22), 그것을 토대로 한 솔로몬의 기도(열왕기상 8:37), 아모스를 가리키는 학개(학개 2:17)에만 나온다. ‘하나님이 소돔과 고모라를 무너뜨림같이’라는 말에도(아모스 4:11; 신명기 29:23) 신명기의 특별한 낱말과 형태와 위협이 보존된다. ‘너희가 다듬은 돌로 집을 건축하였으나 거기 거주하지 못할 것이요 아름다운 포도원을 가꾸었으나 그 포도주를 마시지 못하리라’는 위협은 신명기의 말씀을 결합하고 확장한다(아모스 5:11; 신명기 28:30, 39). 그들의 회개하지 않음을 묘사하는 특이한 표현도 같은 책에서 가져왔다(아모스 4:6, 8-10; 신명기 4:29 참조).

심판과 공의를 바꾸어 놓은 두 쓴 식물 ‘쓸개와 쑥’의 비유도 그러하다(아모스 6:12; 신명기 29:18). 아모스의 말에 엮인 다른 오경의 표현들도 선지자와 이스라엘 청중 모두가 오경을 기억하고 있었음을 전제한다(아모스 2:2, 10-11; 3:2; 6:1; 7:16; 9:8, 12 참조). 애굽에서 400년 동안 노예로 산 뒤에는 하나님이 족장들과 교제하셔서 거룩해진 장소의 전승과 ‘형제 에돔’과의 관계까지도 잊혔을 것이다(아모스 1:11). 창세기는 당시 존재하던 대중 전승을 단순히 담은 것이 아니라 그것들을 되살렸음이 틀림없다. 호세아가 암시한 브엘세바와 길르앗의 우상 숭배, 여로보암이 송아지 숭배 장소로 벧엘을 택한 일은 우상 숭배자들이 오경에서 배운 역사를 알고 믿었음을 뜻한다. 여로보암은 예루살렘 성전의 배타적 주장에 맞서 조상들에게 베푸신 하나님의 긍휼로 전통적 거룩함을 지닌 경쟁 장소들을 세우는 정책을 폈을 것이다. 무함마드가 아브라함의 기억을 이용해 예루살렘에 대한 자기 권리를 주장한 것과 비슷하다. 그러나 이 전승들도 백성에게서 나온 것이 아니라 백성이 받아들인 것이어야 한다. 애굽에서 가져온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노예가 되고 타락하고 감각적이며 우상을 좋아한 백성에게는 형상 없는 자존하시는 하나님을 예배한 위대한 조상들의 순수한 신앙 기억을 간직할 마음이 없었다.

아모스가 오경의 언어를 사용하고 요엘서를 인용한 것처럼, 첫 예언의 후렴인 ‘내가 불을 보내리니 …의 궁궐들을 사르리라’는 잘 알려진 호세아의 말을 취해(호세아 8:14) 두 사람의 예언에 통일성을 부여했다고 보는 편이 더 개연성 있다. 오경 외의 언어를 쓰지 않는 호세아가 이 형식을 사용한 유일한 곳에서 아모스의 후렴을 유다 한 사례로 제한했다고 보기는 어렵다. 더구나 호세아에서 유다의 성읍과 궁궐 파괴를 선언한 말은 그것들을 건축한 유다의 잘못된 태도와 바로 연결되지만, 아모스에서는 독립되어 있다. 두 선지자의 언어가 서로 의존하는 다른 사례는 ‘거짓 저울’뿐이다(호세아 12:7; 아모스 8:5). 이 표현은 하나님이 율법에서 명한 ‘공평한 저울’과 대조하여 처음 만들어졌고 솔로몬의 잠언에 먼저 나온다(잠언 11:1; 20:23).

후대 선지자 가운데 예레미야는 다메섹을 거스르는 아모스의 예언을 같은 말로 새롭게 했다. 다만 디글랏 빌레셀의 파괴로 하사엘에 대한 기억이 사라졌는지, 하사엘의 이름이 아니라 성읍 자체와 벤하닷의 이름을 쓴다(예레미야 49:27). 아모스의 말은 한 차례 성취되어 백성이 길로 옮겨졌다. 아마 피난민들이 다시 그곳을 채웠고, 예레미야는 아모스를 통해 선고된 판결이 아직 소진되지 않았음을 지적하려 했을 것이다. 비슷한 근거에서 예레미야는 암몬이 같은 죄와 아모스가 화를 선고한 죄, 곧 이스라엘을 몰아내려 한 일을 책망하며(아모스 1:13; 예레미야 49:1) 아모스의 ‘그들의 왕은 포로가 되며 그 고관들은 함께 사로잡히리라’는 말을 사용했다(아모스 1:15; 예레미야 49:3). 학개도 하나님의 징계 아래서 회개하지 않은 당대 유대인들을 아모스와 본질적으로 다르지 않은 말로 책망한다(아모스 4:9; 학개 2:17). 귀환한 유대인들에게 이렇게 반복된 아모스의 말은 황폐한 이스라엘의 기업에서 ‘다시는 죄를 범하지 말라 더 심한 것이 생길까 하노라’고 울리는 듯했다.

아모스의 말을 회상하게 하는 다른 표현들은 성경의 조화의 일부일 뿐이다. 선지자들이 서로의 말을 사용하여 서로의 일치를 나타내는 것이다.

당시 아모스의 가르침이 지닌 위력을 국가 제사장 아마샤가 여로보암에게 각인시켰다. 아모스를 멸시하면서도 아마샤는 왕에게 진실을 인정했다. ‘이 땅이 아모스의 모든 말을 견딜 수 없나이다.’ 유대인들이 스데반의 ‘말하는 지혜와 성령을 능히 당하지 못하여’ 격분했듯이(사도행전 6:10), 하나님은 자기 종의 말에 능력을 더하여 백성에게 이르게 하셨을 것이다. 그들은 하나님의 말씀이 여로보암 1세와 바아사와 아합의 집을 거슬러 성취되는 것을 이미 보았다. 이제 같은 운명이 ‘여로보암 집’을 거슬러 새롭게 선고되었고, 호세아가 동시에 예고한 열 지파의 흩어짐도 함께 선포되었다(아모스 5:27; 7:8-9, 17; 호세아 1:6; 9:17). 이스라엘의 두 선지자는 서로 확증하면서도 자신들에게 도피할 길을 남기지 않았다. 이 분명한 결과에 예언 전체의 명성을 걸었다. 우리는 그것이 여로보암 집에 성취되었음을 안다. 그러나 여로보암 집은 전후 어느 왕가보다 견고했다.

우리는 열 지파가 전례 없이 포로 된 일을 안다. 그들이 사로잡히지 않았다면 예언은 수치를 당했을 것이며, 성취된 만큼 그 승리도 크다. 각 단계는 뒤따를 일의 분할 지급이자 보증이었다. 여로보암의 아들 스가랴의 죽음이 전체 성취의 첫 단계였고, 뒤이어 아마도 불이 므나헴을 침공했을 때 아마샤의 운명이 닥쳤다(열왕기하 15:19). 하나님은 자신의 말씀을 애써 변호하지 않으신다. 셉나(이사야 22:17-18), 아마샤, 거짓 선지자 아합과 시드기야(예레미야 29:20-22), 스마야(예레미야 29:32), 바스훌(예레미야 20:6), 다른 거짓 선지자들(예레미야 14:15)의 경우에도 개별 집행을 일일이 기록하지 않으신다. 하나냐의 경우처럼(예레미야 28:17) 성경이 하나님의 심판의 개별 성취를 기록할 때도 있지만, 대체로 판결의 집행은 따로 언급하지 않는다. 사면되지 않은 범죄자의 판결은 그 자체로 집행을 뜻한다. 그 사실은 목격자들에게 깊이 새겨졌고, 우리에게는 판결의 기록이면 충분하다.

그 뒤 디글랏 빌레셀 아래서 다메섹에 관한 예언(아모스 1:5)과 길르앗에 관한 예언(아모스 6:14)이 성취되었다. 사르곤 아래서는 열 지파에 대한 예언이 성취되었다(아모스 5:27; 7:8-9, 17; 9:8). 유다에 대한 예언은 133년을 더 기다렸다가 느부갓네살에게 성취되었다(아모스 2:5). 몇 년 뒤 그는 모압·암몬·에돔·두로 원수들을 향해 아모스가 예고한 하나님의 심판도 집행했다(아모스 1:9; 2:3). 블레셋에 관한 예언은 애굽 왕들, 앗수르 왕들, 마케도니아의 알렉산더 대왕에게 차례로 성취되었다(아모스 1:6-8). 목자 선지자의 단순한 말을 이루기 위해 인간의 의지와 사건은 이처럼 다양하고 많았다. 아모스는 사건과 심판이 올 이유를 예고하지만 언제 누구를 통해 올지는 말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사건 자체를 단정적으로 예고했고 그대로 일어났다. 그는 요엘처럼 이방인의 회심을 예고하고, 하나님이 무너진 다윗 집을 회복하여 이를 이루실 것이라고 말함으로써 이사야의 예언을 미리 내다본다. 왕가가 무너진 뒤에야 세상의 구원에 쓰인다는 것은 인간의 위대함에 대한 기이한 논평이다. 왕궁은 나사렛의 오두막이 되어야 세상의 구속자가 태어날 수 있었다. 그분의 영광과 나라는 이 세상에 속하지 않으며, 우리에게서 우리의 본성만 취해 거룩하게 하시고 우리의 비참만 취해 대신 담당하려고 오셨다. 육신과 피는 그것이 오기 전에는 내다볼 수 없었고, 온 뒤에도 믿을 수 없었다.

아모스 1장 1 Barnes' Notes on the Bible

Amos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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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자 중에 있던 아모스의 말씀이라—‘아모스는 자신의 보잘것없음과 함께 자기 스승이자 교사이신 성령의 큰 은혜를 제시하며 시작하고, 모든 것을 그분의 영광으로 돌린다.’ 그는 다윗·베드로·바울·마태처럼 ‘하나님이 강한 것들을 부끄럽게 하려고 택하신 세상의 약한 것들’ 가운데 하나였다. 그는 목자들 ‘가운데’ 있는 한 사람에 불과했으나, 그가 말한 말씀은 자기 것이 아니었다. 그것은 육신의 눈이 아니라 ‘말씀을 볼 수 있는 환상, 마음에 주어진 선견자의 환상’으로 본 말씀이었다. 이는 이스라엘의 무거운 범죄 위에 내려오는 무거운 말씀, 곧 이스라엘에 ‘관한’, 더 정확히는 이스라엘 ‘위에 임한’ 말씀이었다. 히브리어 ‘보았다’는 단순한 시각이 아니라 하나님이 주신 환상을 뜻한다. 아모스가 그것을 ‘자기’ 말씀이라고 한 것은 곧바로 그 말씀이 하나님에게서 왔고 자신은 하나님이 말씀하시는 인간 도구에 불과했음을 덧붙이기 위해서였다.

지진 전 이 년—이 지진은 스가랴 시대에도 사람들의 기억에 생생히 남아 있었고 아모스가 ‘그 지진’이라 부를 만큼 가장 큰 지진 가운데 하나였음이 분명하다. 동방의 지진은 리스본 지진처럼 성읍 전체를 파괴한다. 우리 주께서 태어나시기 조금 전 한 지진에서는 ‘약 만 명이 무너진 집 아래 묻혔다.’ 스가랴가 무서운 사건으로 묘사한 이 지진은 아모스가 예고한 하나님의 진노를 알리는 전조 가운데 하나였다. ‘지진’이 오기 전 두 해의 경고와 회개할 시간이 주어졌다. 그 지진은 두 왕국이 회개하지 않을 경우 더 크게 흔들릴 것이라는 표징이자 시작이었다. 실제로 그것은 그들을 소멸한 번개의 첫 섬광이었다.

아모스 1장 2 Barnes' Notes on the Bible

Amos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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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호와께서 부르짖으시며—아모스는 예언 첫머리에서 곧바로 자기 사명이 요엘의 사명과 하나임을 증언하고, 자기 예언이 하나님의 더 가까이 다가오는 심판을 선언한 요엘의 말씀을 확장한 것임을 사람들이 알아보도록 준비시키기 위해 요엘서 끝에 자기 예언을 잇는다. 그러나 아모스가 말한 가까운 심판은 요엘이 예고한 큰 날의 심판과, 야곱이 ‘그가 엎드리고 웅크림이 수사자 같고 암사자 같으니 누가 그를 범할 수 있으랴’고 예언한 ‘유다 지파의 사자’ 그리스도의 마지막 무서운 음성을 알리는 전조에 불과했다(창세기 49:9). 하나님이 시온과 예루살렘에서 두려운 ‘목소리를 내신다’고 한 것은 그곳에 자신의 이름을 두시고 교회 가운데 임재하셨기 때문이다. ‘하늘과 하늘들의 하늘이라도 그분을 용납하지 못하지만’, 그곳은 임재의 표징으로 거룩하게 하신 그분 자신의 처소와 같았다. 아모스는 예언을 시작하면서 하나님이 분리된 상태의 이스라엘 가운데가 아니라 그곳에 거하신다고 경고했다. 예레미야가 유다를 향해 같은 말을 쓸 때는 예루살렘이 아니라 하늘을 말한다. ‘여호와께서 높은 데서 포효하시며 그의 거룩한 처소에서 소리를 내시리라’(예레미야 25:30). 예언이 열 지파 또는 이방인에게 향할 때 하나님은 교회에서 말씀하신다. 그분은 ‘율법이 시온에서 나오며 여호와의 말씀이 예루살렘에서 나올 것’이라고 하신 것처럼 예루살렘에서 음성을 내신다(이사야 2:3). ‘그곳에 성전과 하나님의 예배가 있었기 때문이다. 이는 하나님이 금송아지가 있던 단과 벧엘 같은 이스라엘의 성읍이나 왕도 사마리아와 이스르엘에 계신 것이 아니라, 당시 시온과 예루살렘에 있던 참 신앙 안에 계심을 보여 준다.’

목자의 초장이 슬퍼하며—선지자는 사랑하다 떠난 고향에 대한 애정 때문에 자기가 예고하는 황폐 가운데 먼저 자신의 목자 터전을 생각했을 수 있다. 잘 알려진 갈멜산은 반대편 먼 곳 아셀 지파에 있었다. 그 이름은 비옥함과 풍요, 아마 ‘포도원과 감람원의 땅’에서 유래한다. 제롬 시대에는 ‘감람나무와 관목과 포도원이 빽빽했고’, ‘정상까지 즐거운 목초지’였다.

갈멜산은 팔레스타인에서 가장 눈에 띄는 자연 지형 가운데 하나이다. 길이 18마일의 산줄기 끝에서 지중해 멀리 뻗은 길고 대담한 곶을 이루며 악고 또는 아크레 만의 남쪽을 형성한다. 해발 1,200피트로 솟아 ‘고향 해안을 지키는 수호자처럼’ 우뚝 서면서도 온갖 꽃과 열매와 나무의 아름다움으로 풍요로웠다. 거의 언제나 ‘그 갈멜’, 곧 ‘비옥한 동산 땅’이라 불린다. 바다 가까이에 있어 밤마다 짙은 이슬이 끊임없이 신선함을 공급하므로 한여름에도 푸르고 꽃이 핀다. 여행자들은 ‘온통 푸르며 정상에는 전나무와 상수리나무, 아래에는 감람나무와 월계수가 덮였고 어디서나 물이 매우 풍부하다’고 묘사한다. 판 더 펠더는 ‘갈릴리나 해안 평야에서 본 꽃 가운데 갈멜에서 다시 찾지 못한 것이 하나도 없다. 여전히 옛날과 같은 향기롭고 사랑스러운 산이다’라고 말한다. ‘다채로운 꽃의 세계가 희귀하고 여러 빛깔을 지닌 곤충을 매우 많이 끌어들여 채집가가 꼬박 한 해를 풍성하게 일할 수 있다.’ 그곳은 ‘자연의 정원이자 약초 저장소’이다.

목초지는 바산에 필적할 만큼 풍요로웠다. ‘수많은 맑은 시내가 여기서 시작하며, 가장 큰 것은 엘리야의 샘에서 솟는다’(예레미야 50:19; 나훔 1:4). 자체 공급이 풍부했다. 이곳마저 광야가 된다면 무엇이 보존되겠는가? ‘푸른 나무에도 이같이 하거든 마른 나무에는 어떻게 되리요’(누가복음 23:31). 남쪽 ‘목자의 초장’부터 북쪽 갈멜산까지 온 땅의 높은 자와 낮은 자가 한 황폐 가운데 함께 맞을 것이다. 하나님이 말씀하시자마자 그렇게 된다. ‘그가 말씀하시매 이루어졌다.’ 이제는 반대로 그분이 음성을 내시자 갈멜이 쇠한다. 그 영광은 눈 깜짝할 사이 사라졌다. 하나님이 말씀하시니 없어졌다.

하나님의 선물에 의존한 것은 남지만 인간에게 의존한 것은 사라졌다. 거친 아름다움은 아직 남아 있으나 자연의 무성함이 주는 아름다움이다. 그 깊은 곳을 탐사한 이는 말한다. ‘모든 것이 황폐하고 광야이다. 극도의 비옥함이 사람에게는 잃어버린 것이고 쓸모없게 되었다. 갈멜의 포도원은 지금 어디에 있는가? 땅 위에 길게 늘어선 돌과 담의 잔해를 보라. 지금은 빽빽하게 얽힌 잡목을 힘겹게 헤치고 지나야 하는 이곳에 옛날에는 갈멜이 그 이름을 얻은 비할 데 없는 포도원들이 있었다고 그것들이 말해 줄 것이다.’

아모스 1장 3 Barnes' Notes on the Bible

Amos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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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위협이 배열된 순서는 백성이 귀 기울이게 하려는 것이었던 듯하다. 먼저 그들의 원수들에게, 곧 직접 또는 간접으로 이스라엘과 그들 안의 하나님을 거슬러 지은 죄 때문에 형벌이 선고된다. 그 원수들 사이의 순서도 장소나 시간이 아니라 하나님의 백성과 맺은 관계를 따른다. 가장 심하게 압제한 원수 수리아에서 시작하고, 힘은 덜하지만 오래되고 끊임없는 원수 블레셋으로 간다. 다음은 그들과 같은 압제자는 아니지만 그들에게 없던 관계, 곧 이전의 우정과 언약의 결속을 깨뜨리고 탐욕 때문에 악의와 완고함을 보인 두로이다. 그 뒤에는 혈연의 결속까지 끊은 에돔·암몬·모압이 따른다. 마지막이자 가장 가까운 대상은 참 하나님을 참되게 예배하는 일이 그들 가운데 있었으나 이를 멸시한 유다이다. 우리와 같은 이들에게 내리는 모든 징벌은 우리 양심에서 메아리를 일으킨다. 이스라엘은 다른 자들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을 듣고 쉽게 믿었으며, 그것을 믿지 않으려는 시험을 받지 않았다. 그렇다면 자기와 같은 다른 자들에게 관해 믿은 것을 어찌 자신에게는 믿지 않을 수 있었겠는가? ‘이름만 바꾸면 그 이야기는 네 이야기다’라는 이방 격언은 거의 속담이 되었다. 예언의 전개는 성경에 ‘우리의 본보기로’ 기록된 일들이 그리스도인들을 책망하듯 그들을 책망했다. ‘율법 없이 범죄한 자들이 율법 없이 망했다면’(로마서 2:12), ‘율법 안에서 범죄한’ 자들은 율법으로 심판받아야 하지 않겠는가? 하나님의 심판은 뇌운처럼 땅에서 땅으로 옮겨가며 다가옴을 경고하다가, 이스라엘이 회개하지 않으면 마침내 그 위에 모여 집중될 것이었다. 이스라엘은 다른 이들에게 내린 징벌에서 자기 것을 읽어야 했고 하나님이 가까이 계실수록 더욱 그래야 했다. ‘이스라엘’이 마지막에 놓인 것은 파멸이 그 위에 극진히 내려 머물 것이기 때문이다.

서너 가지 죄로 말미암아—이 말은 세 범죄에 네 범죄를 더한다는 뜻이 아니라 앞선 것들 너머에 추가된 범죄, 곧 이미 가득 찬 죄의 분량을 넘치게 하여 하나님의 진노가 임하게 하는 마지막 죄를 나타낸다. 비슷한 표현이 나오는 다른 곳에서도 추가된 수는 하나 더 많은 것이며, 대개 나머지 모두보다 큰 무엇을 가리킨다. ‘여섯 가지 환난에서 너를 구원하시며 일곱 가지 환난이라도 그 재앙이 네게 미치지 않게 하시리라’(욥기 5:19). ‘일곱’은 견딜 수 있는 힘을 꺾을 듯한, 나머지 모든 것보다 무거운 환난임을 뜻한다. 또 ‘일곱에게나 여덟에게 나눠 줄지어다’라고 한다(전도서 11:2). ‘하나님이 일곱째 날에 그가 하시던 모든 일을 쉬셨기’ 때문에 일곱은 전체를 상징하고 유대 의식 전체에 널리 들어갔다. 모든 시간이 일곱으로 측정되었다.

그러므로 원칙은 이렇다. ‘한계 없이 주라. 그 전체가 채워진 뒤에도 여전히 주라.’ 잠언 30장의 연속된 말씀에서도 넷째 것은 각각 앞의 셋보다 더 크다. ‘만족함이 없는 것이 셋, 족하다 하지 아니하는 것이 넷’이다(잠언 30:15-16). 다른 것들은 만족할 수 없지만 넷째인 불은 먹이를 줄수록 더 맹렬해진다. 또 ‘잘 걸으며 품위 있게 다니는 것이 셋, 넷’이라고 한다(잠언 30:29-31). 왕의 도덕적 위엄은 분명 나머지보다 크다. ‘여종이 주모를 이은 것’도(잠언 30:21-23) 나머지보다 더 견디기 어렵고 거만하다. 남자가 처녀에게 접근하는 기술과 은폐는 흔적을 남기지 않는 자연의 것들, 곧 공중의 독수리, 바위 위의 뱀, 파도를 지나는 배보다 더 미묘하다(잠언 30:18-19). 또 ‘형제 사이를 이간하는 자’는(잠언 6:16-19) 그 자체가 죄일 뿐 아니라 광범위하게 죄를 퍼뜨리고 다른 이 안의 가장 으뜸 되는 은혜인 사랑을 파괴하므로 특별히 가증하다. 영혼을 죽이는 일은 육체를 죽이는 것보다 악하며 더 악마적인 기술을 요구한다.

이런 일들에 관해 욥은 ‘하나님이 사람에게 이 모든 일을 두 번 세 번 행하사 그의 영혼을 구덩이에서 끌어내신다’고 말한다(욥기 33:29). 하나님의 마지막 은혜는 앞선 은혜를 사용한 이들에게 그것을 인치는 것이든 낭비한 이들에게 새로 허락하는 것이든 그분의 사랑 또는 오래 참으심을 완성하는 행위이다.

이방 시에도 그들이 잊어버린 신비의 흔적으로 셋은 거룩한 전체이다. 그래서 ‘세 번 네 번 복되다’라는 말은 충만하고 완전한 복을 넘어서는 것, 곧 복의 넘침을 뜻했다.

이 이방 민족들의 넷째 범죄만 언급된다. 선지자는 ‘그들’에게 사명을 받은 것이 아니라 그들에게 임할 징벌의 근거를 이스라엘에 선언할 뿐이기 때문이다. 세 범죄는 극형을 아직 불러오지 않은 죄의 총량 전체를 대표하고, 넷째는 하나님이 더는 아끼지 않으시게 한 정점의 죄이다. 넷째가 심판을 끌어내렸지만 하나님은 마지막 죄만 아니라 그 앞의 모든 죄도 마지막에 벌하신다. 선지자가 ‘넷째 범죄 때문에’가 아니라 ‘서너 가지 죄로 말미암아’라고 한 것은 두 가지를 함께 나타낸다. 하나님은 죄 있는 민족의 ‘죄악이 가득하게’ 된 마지막 죄까지 벌하지 않으셨으며(창세기 15:16), ‘그때’에는 셋으로 묘사된 죄의 전체 덩어리와 넷째 죄를 모두 벌하셨다. 하나님은 오래 참으시고 용서할 준비가 되어 있으나, 죄인이 마침내 ‘진노의 그릇’이 되면(로마서 9:22) 당분간 지나치셨던 앞선 모든 죄를 벌하신다.

죄는 죄에서 자라 죄를 더한다. 이전 죄를 가리거나 지우지 않고 하나님이 벌하실 죄책의 덩어리를 키운다. 유대인들이 아들을 죽였을 때 ‘의인 아벨의 피로부터 바라갸의 아들 사가랴의 피까지 땅 위에서 흘린 의로운 피가 다 그들에게 돌아갔다’(마태복음 23:35-36; 누가복음 11:50-51). 구약 아래 하나님의 모든 선지자와 종의 피가 그 세대에 돌아갔다. 이처럼 회개하지 않고 죽는 각 죄인은 평생 하나님의 율법을 거슬러 행한 것과 되어 간 것 모두에 대해 벌받을 것이다. 더 깊은 죄는 마지막에 더 깊은 정죄를 가져온다. 바울은 ‘진노의 날 곧 하나님의 의로운 심판이 나타나는 그 날에 임할 진노를 네게 쌓는’ 자들을 말한다(로마서 2:5). 선한 이들이 하나님의 은혜로, 그 은혜의 도움을 받아 행한 행위마다 영원한 상급을 더 얻듯이 악인들은 더하는 죄마다 정죄를 더한다.

다메섹의—다메섹은 세상에서 가장 오래된 성읍 가운데 하나이며 세계 교류의 연결점 가운데 하나였다. 비옥하게 경작된 고원 평야 한가운데 있었고, 안티레바논에서 동쪽으로 너비가 약 반 도였다. 서쪽과 북쪽은 안티레바논 산맥이 평야를 감쌌고, 동쪽은 오아시스 영토와 유브라데 사이의 큰 사막이 보호했다. 바로 가까이에는 땅을 풍요롭게 하고 남은 물을 받는 세 호수가 경계를 이루었다. 바라다, 곧 ‘차가운 강’은 피제와 합류한다. 피제는 전통적으로 바르발이라 하며 그 격렬한 흐름을 잘 나타내는 이름이다. 바라다는 성 북쪽과 성 안을 지나 주로 세 호수 가운데 중앙의 바흐렛 엘 키블리예, 곧 ‘남쪽 호수’로 흐른다. 거기서 일부는 직접, 일부는 다시 바흐렛 에슈 슈르키예, 곧 ‘동쪽 호수’로 흐르는 것으로 여겨진다. ‘굽은 강’이라는 뜻의 아와지는 어쩌면 관개로 말라 버리는 시내들과 대조되는 옛 아마나, 곧 ‘마르지 않는 강’일 수 있다. 이 강은 다메섹의 옛 남쪽 경계 가까이 흐르며, 아마 그곳을 요단 동쪽 이스라엘 북부 영토인 넓은 의미의 바산과 여두르 또는 이두래에서 갈라놓았다. 이 지역은 지리적으로 236제곱마일로 계산되었다.

이 공간은 영토 전체를 재기보다 지배 영역의 중심이 되었다. 그러나 유럽에서 같은 면적이 부양할 수 있는 수보다 훨씬 많은 인구를 부양했다. 바위에서 터져 나오는 아주 작은 시냇물의 흐름까지 무성한 초목으로 표시되는 주변 창조 세계의 모습에서 배운 고대 다메섹 사람들은 헬몬의 눈과 안티레바논 고지에서 계속 오는 물을 체계적으로 부지런히 이용했다. 그런 필요가 없는 북방 기후의 우리는 그 근면을 상상하기 어렵다. 포터는 말한다. ‘바라다가 없으면 성은 존재할 수 없고 평야는 메마른 사막이 될 것이다. 그러나 이제는 수로가 모든 구역을 가로지르고 거의 모든 집에서 분수가 반짝이며, 무수한 운하가 광대한 평야에 가지를 뻗어 푸름과 아름다움으로 입힌다. 강이 평야에 들어오기 전에 높이가 서로 다른 곳에서 다섯 운하가 갈라져 나온다. 그것들은 가파른 협곡 가장자리를 따라 놓였고 어떤 곳에서는 단단한 바위를 뚫었다. 북쪽 두 운하는 성에서 약 1마일 떨어진 산기슭 살라히예에 물을 대고 평야의 더 높은 부분을 거의 20마일까지 관개한다. 남쪽 셋 가운데 하나는 5마일 떨어진 인구 많은 다라야 마을로 가고, 나머지 둘은 성과 교외와 정원에 물을 공급한다.’

크고 작은 모든 평야의 모든 샘도 이와 같이 사용되었다. 옛 기록은 ‘크리소로아스, 곧 바라다의 물은 거의 인공 수로에 모두 쓰인다’, ‘다메섹은 관개로 크리소로아스를 마셔 비옥하다’고 했다. 지금도 운하 열넷의 이름이 전해진다. 보통 주요 운하 일곱이나 여덟을 꼽지만 전체는 일흔까지 계산되었다. 어떤 기술과 노동도 지나치다 여기지 않았다. 피제의 물은 수직 절벽 옆을 뚫은 큰 수로로 운반되었다. 그러나 이것도 대단한 것이 아니었다. 평야 전체에 운하가 교차하고 지하에도 터널이 뚫렸다. ‘강물은 들과 정원의 지면 위로 퍼졌고, 그 아래에는 흙을 스며든 남은 물이나 작은 샘의 물을 모으는 다른 운하들이 뚫렸다. 이렇게 모인 물은 더 낮은 곳으로 인도되어 다시 지표로 나온다.’ ‘평야 전체에는 이 독특한 수로가 가득하며 어떤 것은 지하로 2~3마일 이어진다. 한 수로의 물이 지표에 생명과 푸름을 퍼뜨리는 곳에서 다른 갈래는 새 공급원을 모은다.’ ‘옛날에는 이것들이 평야 전체를 지나 호수까지 뻗어 모든 곳의 들과 정원을 관개했다.’

그러므로 다메섹은 예부터 아름다움으로 유명했다. 둘러싼 과수원의 짙은 초록 속 흰 건물들은 에메랄드에 둘러싸인 다이아몬드 같았다. 과수원은 서쪽으로 안티레바논 가까이까지, 동쪽으로 바라다 양쪽 수 마일까지 뻗었다. ‘둘레가 적어도 2530마일인 지역을 덮어 주변을 지상의 낙원으로 만든다.’ 그래서 아랍인들은 ‘땅에 에덴동산이 있다면 다메섹이고, 하늘에 있다면 땅의 다메섹이 그것과 같다’고 했다. 아름다움은 동시에 방어력이었다. 티레의 윌리엄은 말한다. ‘물이 풍부한 강이 양안의 과수원에 물을 대고 과일나무가 빽빽한 가운데 성벽을 따라 동쪽으로 흐른다. 서쪽과 북쪽에서 성은 레바논 쪽으로 45마일 뻗은 울창한 숲 같은 과수원에 널리 둘러싸였다. 나무의 빽빽함과 길의 좁음 때문에 그쪽에서 성에 접근하기가 어렵고 거의 불가능해 보여 이 과수원은 매우 강력한 방어가 된다.’ 오늘날에도 ‘다메섹의 참 방어는 둘레 일곱 리그가 넘는 과일나무 숲과 울타리·담·도랑의 미로를 이루는 정원이며, 무슬림의 적에게도 적지 않은 장애가 될 것’이라고 한다.

지리적 이점이 그곳을 일찍 선택하게 했을 것이다. 내륙 아시아에서 지중해와 두로, 심지어 애굽으로 가는 최적의 길에 있었다. 그돌라오멜과 동맹한 네 왕도 틀림없이 이 길로 왔다. 그들이 처음 친 곳이 야울란 또는 골란의 아스드롯 가르나임이었기 때문이다(창세기 14:5-6). 거기서 요단 서쪽을 따라 남쪽으로 휩쓸며 먼저 암몬의 ‘수스 사람’, 아마 삼숨밈과 같은 이들을 쳤고(신명기 2:20), 다음은 모압 기랴다임 평지의 ‘엠 사람’을(신명기 2:9, 11), 이어 ‘세일산의 호리 족속을 엘바란까지’, 아마 그 이름을 딴 만의 엘랏까지 쳤다. 아브라함이 다메섹 가까운 호바에서 그들을 따라잡았으므로(창세기 14:15) 귀환도 그 길이었다. 다메섹은 이미 호바가 오직 그곳과의 관계로 알려질 만큼 주요 성읍이었다. 아브라함 자신도 하나님의 명령으로 하란, 곧 그리스인의 카라이에서 딥사, ‘나루’라는 뜻의 답사고를 거치거나 유브라데의 더 북쪽 나루를 지나올 때 이 길을 택했다. 이삭의 아내를 찾도록 맡긴 가장 신임하는 종이자 한때 상속자였던 사람이 다메섹 출신이었다는 사실은(창세기 15:2-3) 아브라함과 다메섹의 긴밀한 관계를 암시한다. 우리 시대가 시작될 때도 다메섹 지방에서 아브라함의 이름은 존경받았다. 한 마을은 ‘아브라함의 거처’라는 이름으로 불렸고, 토착 역사가 니콜라스는 아브라함이 바벨론 너머 땅에서 가나안으로 가는 길에 다메섹을 다스렸다고 했다. 종의 이름 ‘엘리에셀’, 곧 ‘나의 하나님은 도움이시다’는 그때에도 그가 한 하나님을 예배했음을 뜻한다. 다메섹이라는 이름은 아마 창건자의 분투하고 활력 있는 성격을 나타냈다.

구약에서 아람과 관련된 다른 이름들처럼, 이 이름은 아람이라는 공동 조상에 맞게 아람어이다. 다메섹은 이스라엘에 배정된 영토가 아니었고 이스라엘도 괴롭히지 않았다. 아마 다윗의 방어적 정복을 자기 정책의 관점에서 판단하고 다윗을 공격한 다른 수리아인들과 연합했다가 정복되어 수비대가 주둔하고 조공을 바쳤다(사무엘하 8:5-6). 당시 소바 왕 하닷에셀의 개인적 탁월함 때문이든 다른 이유든 종속 세력이었던 듯하다. 하닷에셀은 분명 두드러지고 다메섹 사람들은 부차적으로만 언급된다.

이에 맞게 성경에서 다메섹 왕국을 처음 언급한 것은 하닷에셀에게서 도망한 종 엘리아다의 아들 르손 왕조이다. 그는 약탈대를 조직한 뒤 다메섹에 정착하여 왕이 되었다(열왕기상 11:23-24). 이전 성경은 다메섹 백성만 말하고 왕들은 말하지 않는다. 토착 역사가는 다메섹 사람들이 다윗 시대에 침략자였고 계속 그러했음을 인정하면서도 반복된 패배는 가리고, 왕들이 아버지에게서 아들에게 열 세대 연속 왕위를 이었다고 제시한다. 이는 어느 왕조에서도 거의 알려지지 않은 일이다. ‘토착인 아닷은 큰 세력을 얻어 다메섹과 베니게를 제외한 나머지 수리아의 왕이 되었다. 그는 유다 왕 다윗과 전쟁하여 여러 전투에서 겨루다가 마침내 유브라데에서 패했으나 용맹과 무용에서 가장 탁월한 왕의 성품을 지녔다. 죽은 뒤 후손들이 열 세대 동안 왕위와 함께 아버지의 이름 하닷을 물려받아 다스렸으니 애굽의 프톨레마이오스들과 같았다. 셋째 왕은 모두 가운데 가장 큰 세력을 얻고 할아버지의 패배를 갚으려 유대인과 싸워 오늘날 사마리아라 부르는 곳을 황폐하게 했다.’ 그들은 스스로 불러온 패배를 견디지 못했다.

르손은 솔로몬 통치 후반 내내 하닷의 침략을 재개했다. 열 지파가 분열하자 다메섹의 적대는 가장 가까운 이스라엘에 집중되었다. 아비얌은 벤하닷의 아버지와 동맹했다(열왕기상 15:19). 벤하닷은 아사가 말년에 불신 가운데 요청하자 바아사와의 동맹을 즉시 깨고 그를 쳤다(역대하 16:2-7; 열왕기상 15:20). 벤하닷 1세는 오므리에게서도 성읍들을 빼앗고 사마리아 안에 ‘거리들’, 아마 다메섹인 구역을 강제로 얻었다(열왕기상 20:34). 벤하닷 2세는 가나안 왕들처럼 각자 성읍과 작은 영토를 가진 종속 ‘왕’ 서른둘을 거느리고(열왕기상 20:1, 24) 사마리아를 약탈하려고 이끌고 왔으며(열왕기상 20:6-7), 약탈을 계기로 그곳을 자기 것으로 만들거나 파괴하려 했을 것이다. 하나님의 도움으로 두 번 패했다. 두 번째는 그들이 하나님의 권능에 정면으로 도전했을 때였고(열왕기상 20:22-25, 28), 아합이 자비를 구하는 말에 우쭐하지 않았다면(열왕기상 20:31-32) 수리아는 다시 이스라엘을 압제할 형편이 되지 못했을 만큼 크게 패했다. 벤하닷은 아버지가 이스라엘에서 빼앗은 성읍들을 돌려주고 다메섹 안에 이스라엘인 구역을 만들겠다고 약속했다(열왕기상 20:34).

이 약속이 이행되었다면 길르앗 라못은 더 일찍 수리아에 빼앗겼음이 틀림없다. 3년 뒤 아합이 하나님의 권고를 거슬러 여호사밧의 도움으로 그곳을 회복하려다가 죽었기 때문이다(열왕기상 22장). 길르앗 라못이 수리아 손에 있었다면 그 북쪽, 곧 요단 건너편 단과 므낫세의 절반도 수리아에 정복되었을 것이다. 사마리아를 극한까지 몰고 갔으나 하나님이 수리아 군대에 공포를 불어넣어 흩으신 한 차례 큰 포위를 제외하면(열왕기하 7:6), 벤하닷과 하사엘은 아하시야와 여호람의 14년 동안 이스라엘을 향한 약탈 원정만 장려했다. 앗수르 비문에 따르면 벤하닷은 앗수르 왕 살마누바르에게 세 번, 하사엘은 두 번 패했다. 벤하닷은 헷·하맛·베니게 왕들과 동맹하여 공세를 취한 듯하나, 하사엘은 단독 공격을 받아 안티레바논으로 피했고 아마 조공을 바쳤다.

앗수르 연대기는 앗수르의 승리만 전한다. 나아만을 통해 ‘여호와께서 전에 아람을 구원하게 하셨다’는 짧은 기록은(열왕기하 5:1) 아마 그를 통해 앗수르가 크게 저지된 사건을 가리킨다. 수리아가 ‘구원받아야’ 할 다른 원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사마리아에서 물러난 뒤 벤하닷은 라못 앞 전투에서 여호람이 부상했을 때(열왕기하 8:29) 그곳마저 여호람에게 잃었다(열왕기하 9:14-15). 예후가 앗수르에 정치적으로 복종하여 엘리사가 예고한 재앙을 자초했다는 추측은 개연성이 있다. 하사엘은 자기가 두려워하고 고난받았던 세력에 예후가 복종한 일을 보복하면서도 이스라엘을 징계하는 하나님의 도구가 되었을 것이다. 유다의 도움을 잃은 이스라엘은 더 쉬운 먹잇감이 되었다. 하사엘은 요단 동쪽 전부를 빼앗았을 뿐 아니라(열왕기하 10:32-33) 온 평야 지대에서 이스라엘 사람이 안전하게 거주하지 못하게 했다.

하나님이 ‘이스라엘에게 구원자를 주신’ 뒤에야 그들은 ‘전과 같이 자기 장막에 거할’ 수 있었다(열왕기하 13:5). 하사엘은 정복지를 가드까지 넓혀(열왕기하 12:17) 아마 애굽과 연결되는 길을 열려 했다. 그는 ‘적은 무리’로 유다의 큰 군대를 물리쳤다(역대하 24:23-24). 유다 왕 요아스는 그가 예루살렘으로 진군할 때 성전과 자기 보물창고의 성별된 금과 일반 금 전부를 주어 물러가게 했다(열왕기하 12:18). 여호아스는 벤하닷 3세에게서 요단 이쪽 성읍들을 회복했고(열왕기하 13:25), 여로보암 2세는 잃은 영토 전부와 다메섹과 하맛까지 회복했다(열왕기하 14:28). 그 뒤에도 다메섹은 르신 아래 다시 세력을 회복하여 유다에 두려운 존재가 되었고 유다 침략 때문에 스스로 멸망을 불러왔다. 당시 다메섹은 오늘날 우리처럼 부유하고 상업적이며 호전적인 민족이었으나 아직 제조업 민족은 아니었던 듯하다(아모스 3:12 주석 참조). 오늘날처럼 중계 무역의 큰 중심지로 얻은 부는 전쟁의 힘줄을 공급했다. 두로와 거래한 ‘흰 양털’은(에스겔 27:18) 가장 흰 털을 내는 양이 사는 광대한 사막 변두리 영토를 소유했음을 뜻한다. 그 평야의 주민 외에도 다메섹에 종속된 큰 유목 무리가 있었을 것이다.

그 벌을 돌이키지 아니하리니—문자적으로는 ‘내가 그것을 돌이키지 않겠다’이다. 하나님이 돌이키지 않으실 ‘그것’이 무엇인지 아모스는 밝히지 않는다. 침묵은 종종 말보다 강조된다. 이름을 말하지 않음으로써 오래전부터 그들을 덮치려고 다가왔으나 하나님이 오랫동안 막으셨고, 이제 더는 막지 않으시므로 전에는 억제되었던 만큼 더 무섭고 압도적인 힘으로 터져 들어올 무엇을 마음으로 상상하게 한다. 하나님의 큰 법 아래 죄와 형벌은 결합되어 있다. 하나님의 긍휼은 형벌을 오래 막고, 죄 있는 영혼이나 백성이 경고 없이 있지 않도록 진노의 작은 표지만 나타나게 한다. 더는 막지 않으실 때 그분의 도덕적 통치의 법이 진행된다. 이방인의 경험도 ‘벌은 비록 느린 발로 오지만 앞서 가는 악인을 좀처럼 놓치지 않는다’고 했다.

철 타작기로 길르앗을 압박하였음이라—제롬은 이 도구가 ‘아래에 쇠바퀴가 굴러가고 이빨이 박힌 일종의 수레여서 곡식을 타작하면서 짚을 부수고 잘게 잘라 건초가 부족할 때 가축의 먹이로 만들었다’고 설명한다. 거의 같은 이름의 비슷한 도구가 지금도 수리아와 애굽에서 쓰인다. 엘리사는 하사엘이 이스라엘에게 행할 잔혹함을 예고했다. ‘그들의 성에 불을 지르며 장정을 칼로 죽이며 어린아이를 메치며 아이 밴 부녀를 가르리라’(열왕기하 8:12). 죄에 점차 깊이 잠긴 다른 이들처럼 하사엘도 자신이 그런 일을 하리라는 것을 불가능하게 여겼으나 실제로 행했다. 예후 시대에 ‘하사엘이 이스라엘 모든 영토에서 공격하되 요단 동쪽 곧 아르논 골짜기 곁 아로엘에서부터 길르앗과 바산까지 갓 사람과 르우벤 사람과 므낫세 사람의 온 땅 길르앗을 쳤다’(열왕기하 10:32-33). 예후의 아들 여호아하스 시대에는 ‘그들을 학대했고, 수리아 왕이 백성을 멸하여 타작마당의 티끌같이 되게 하여 여호아하스에게 마병 오십 명과 병거 열 대와 보병 만 명밖에 남기지 않았다’(열왕기하 13:7). 여기서 말하는 죽음은 더 끔찍해 보여도 다른 여러 형벌보다 가혹하지 않았고, 그리스도교 재판소들이 사용한 어떤 형벌보다는 훨씬 덜 가혹했다. 잠언에서는 사형으로 언급되고(잠언 20:26) 이사야도 그렇게 암시한다(이사야 28:28). 다윗도 성경이 설명하지 않는 이유로 암몬 자손에게 이를 행해야 했다(사무엘하 12:31; 역대상 20:3). 형벌 자체만이 아니라 하나님의 백성을 이렇게 근절하려 한 시도가 다메섹에 이 심판을 불러왔을 것이다.

테오도레투스는 끔찍함을 더하는 정황을 가정한다. 임신한 여인들과 그 아이들이 그렇게 죽임당했다는 것이다. ‘그들은 앞서 말한 여인들을 일종의 타작마당에 던져 넣고 톱니 달린 바퀴로 곡식 이삭처럼 잔혹하게 타작했다.’

여기서 길르앗은 의심할 것 없이 가장 넓은 의미로 이해하여 요단 동쪽 이스라엘 영토 전부를 포함한다. 하사엘의 정복 기록에서 ‘길르앗 온 땅’이(열왕기하 10:32-33) 두 지파 반에게 주어진 모든 땅, 곧 바산과 구별되는 본래의 길르앗까지 포함한다고 설명되는 것과 같다. 여호수아도 ‘르우벤 자손과 갓 자손과 므낫세 반 지파가 길르앗 땅 곧 그들의 소유지로 가려고 돌아갔다’고 말한다(여호수아 22:9). 위도 2도 반에 걸친 이 아름다운 지역 전체에서 하사엘은 평화로운 모든 마을과 가정에 근절 전쟁을 벌여 산 자도 태어나지 않은 자도 아끼지 않았다.

아모스 1장 4 Barnes' Notes on the Bible

Amos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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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하사엘의 집에 불을 보내리니—불은 ‘벤하닷의 궁궐들을 사르리라’고 덧붙인 것으로 보아 전쟁 때 성읍을 태우는 실제 불인 동시에 전쟁의 다른 모든 가혹함을 상징하는 듯하다. 옛 격언에 ‘헤스본에서 불이 나오며 시혼의 성에서 화염이 나와 모압의 아르와 아르논 산당의 주인들을 삼켰다’고 한 것과 같고(민수기 21:28), 전능하신 하나님의 진노를 가리켜 ‘내 분노의 불이 일어나 스올의 깊은 곳까지 사르리라’고 하신 것과도 같다(신명기 32:22). 불은 자연적 건물만 아니라 ‘하사엘의 집’, 곧 그의 온 가문을 멸한다. 이 예언들에서는 일곱 백성에게 불로 일곱 차례 보복할 것을 선고하는데, 이는 모든 불의가 던져질 영원한 불의 형상이다.

벤하닷의 궁궐들—하사엘은 주인 벤하닷을 죽이고 왕위에 오른 뒤, 아마 자기 집안을 옛 왕조와 연결하려고 살해한 주인의 이름을 아들에게 붙였다. ‘하닷’이라는 우상의 아들 또는 숭배자, 혹은 ‘태양’의 아들이라는 뜻의 벤하닷은 옛 왕조의 두 왕이 사용한 이름이었다. 당시에는 벤하닷 3세가 다스렸다. 선지자는 피 위에 세워진 왕조 전체의 멸망을 예고한다. 예언은 하사엘 집의 파괴로 성취되었을 수 있는데, 아하스 시대 수리아 왕 르신은 그 가문과 알려진 관계가 없다. 다메섹 자체를 빼앗은 여로보암 2세가 벤하닷 3세에게 안긴 것 같은 패배는 찬탈 왕조의 종말이 되곤 한다. 성공 외에 존중받을 권리가 없으므로 실패는 유일한 권리를 무효로 만든다. ‘하나님이 바라보신 자’라는 하사엘의 이름은 ‘하나님은 선하시다’라는 다브엘, ‘하나님이 아신 자’라는 엘리아다처럼 한 하나님을 어느 정도 인정함을 뜻한다. 이는 ‘림몬은 선하다’라는 답림몬, ‘하닷은 도움이다’라는 하닷에셀, 하닷 또는 벤하닷 같은 우상 숭배 이름들 가운데 나타난다. 악인은 하나님의 모든 피조물·규례·정하심을 악용한다. 산헤립이 ‘내가 여호와의 뜻이 없이 이제 이 땅을 멸하러 올라왔겠느냐 여호와께서 내게 이르시기를 이 땅으로 올라와서 쳐서 멸하라 하셨느니라’고 자랑했듯이(이사야 36:10), 하사엘도 엘리사의 예언을 이용해 자신을 하나님의 채찍이라 내세우고 ‘하나님이 바라보신 자’로 여겼을 수 있다.

미래를 아는 것은 두려운 선물이다. ‘오직 전지만이 전능을 다룰 수 있듯이’, 초인적 지식에는 초인적 지혜와 거룩함의 선물이 필요하다. 하사엘은 경고가 되어야 했던 지식의 도움으로 오히려 죄 가운데 완고해진 듯하다. 아마 그는 주인이 자연사하지 않을 경우 죽이겠다는 의도를 이미 품고 엘리사에게 왔고, 엘리사는 그가 자신을 보도록 읽어 주었다. 그러나 엘리사가 그에게 왕이 될 것이라고 예고했다는 이유로(열왕기하 8:13) 이미 계획한 일을 스스로 정당화했을 가능성이 매우 크다. 하나님의 백성을 학살할 때도 실제로 그러했던 것처럼 자신을 하나님의 도구라고 내세웠다. ‘하나님의 채찍들’은 죄스럽게 하나님의 뜻을 이루면서도 자기가 무엇인지 알았다. 그렇다고 죄가 줄어든 것은 아니다(호세아 1:4 주석 참조). 우리는 한 그리스도교 황제가 자기 ‘사명’을 자주 말하는 것을 들었으나, 그 ‘사명’은 이미 많은 그리스도인의 피를 흘리게 했다.

아모스 1장 5 Barnes' Notes on the Bible

Amos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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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사야 51:8에서는 에덴이 잘 알려진 나라, 비옥함으로 두드러진 나라로 언급된다.

여호와께서 시온을 위로하시되

그 모든 황폐한 곳을 위로하시며

그 광야를 에덴 같게,

그 사막을 여호와의 동산 같게 하실 것임이라.

에스겔 27:23에서도 에덴은 하란과 간네와 함께 언급된다. 간네는 아마 창세기 10:10의 갈레, 이사야 10:9의 갈로와 같은 곳이며, 메소포타미아에 있었음이 분명하다. 그곳에 있었음이 알려진 성읍들과 함께 나오기 때문이다(에스겔 31:9, 16, 18도 비교하라). 이 구절들은 그런 나라가 있었고 메소포타미아 또는 인접 지역에 있었음을 입증한다. 그러나 지금 정확한 경계를 정할 수는 없다.

델라살에서—이곳은 성경 다른 곳에 전혀 나오지 않으므로 위치를 알 수 없다. 문맥상 메소포타미아에 있어야 한다. 고대 지명은 너무 자주 사라지거나 바뀌어 정확한 위치를 확정하기 어려운 경우가 많다.

다메섹 빗장을 꺾으며—동방에서는 모든 성읍이 요새화되었다. 더 강한 성읍의 문은 적이 불태우지 못하도록 철로 입히고 안쪽에서 놋 빗장(열왕기상 4:13)이나 철 빗장으로 잠갔다(시편 107:16; 이사야 45:2; 48:14; 예레미야 51:30 비교). 양옆에 망대를 세우고 위에도 건축하여 본래 가장 약하고 적이 쉽게 접근할 지점을 가장 강한 방어로 만들었다. 하우란에는 높이 9~10피트, 두께 1피트 반인 통돌 문과 성문이 아직 남아 있고, 그 크기에 맞는 ‘육중한 빗장이 놓였던 자리’도 볼 수 있다. 성벽은 공성퇴로 흔들거나 토루를 쌓아 넘었고 견고한 성문 자체는 거의 공격하지 않았다. 성벽에 틈이 나면 안에서 문을 열었다. ‘빗장을 꺾는’ 일은 적이 뜻대로 드나들도록 성을 열어 놓는 것이었다. 다메섹 왕국의 힘 전체는 수도에 있었고, 수도가 곧 제국의 중심이자 제국 자체였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적의 침입을 가로막는 모든 저항 수단을 친히 산산이 부수시겠다고 말씀하신다.

아웬 골짜기에서 그 주민을 끊으며—문자적으로는 ‘허무의 골짜기에서’이다. ‘비크아’는 언덕 사이의 넓은 골짜기이다. 여기서는 의심할 것 없이 지금도 아랍인들이 엘부카, 티레의 윌리엄이 라 보케아라 부르는 비옥하고 아름다운 골짜기, 곧 레바논과 안티레바논 사이의 좁은 의미의 옛 코엘레수리아이다. 고지에서는 요단·사해·아라바를 따라 홍해까지 이어지는 길고 깊은 골짜기의 연속이다. 남쪽 끝 칼라트 에슈 샤키프에서 홈스, 곧 에메사까지 최장 거리는 이레 길로 계산되었다. 남쪽 끝으로 좁아지고 북쪽에서 넓어지지만 리블라 북쪽 10마일까지도 골짜기의 성격을 잃었다고 할 수 없다.

중앙에는 바알벡 또는 헬리오폴리스가 있었다. 애굽의 태양 숭배가 옛날 그들의 ‘태양의 성읍’에서 이곳으로 들어왔다고 한다. 지금도 폐허가 증언하듯 바알벡에는 태양 숭배가 가득했다. 그러나 ‘푸름과 아름다움의 융단이 깔린 장엄한 전망’, ‘산 골짜기 깊이 놓인 보석’이라 불린 이 아름다운 지역 전체가 우상 숭배의 요새였다. 바알헤르몬이라는 이름은 남동쪽 끝에 눈 덮인 채 높이 솟은 헤르몬산 자체를 바알 또는 태양 숭배와 연결하며, 이는 사사 시대부터 그러했다(사사기 3:3). 바알갓이라는 이름은 ‘레바논 골짜기’, 아마 큰 골짜기의 남쪽 끝을 같은 숭배와 연결하며 여호수아 이전부터 그러했다(여호수아 11:17; 12:7; 13:5).

바알벡은 이웃한 바알헤르몬과 대조되는 옛 이름 바알비크아, 곧 ‘골짜기의 바알’을 줄인 말일 것이다. ‘헤르몬 전체는 신전으로 둘러싸였고’, ‘여덟이나 열 곳이 그 둘레에 모여 있다.’ 더 놀랍게도 한 신전은 ‘헤르몬 위로 떠오르는 태양의 첫 빛을 받도록’ 지었고, 반대편 신전들은 헤르몬을 중심처럼 바라본다.

제롬 시대에도 이방인들은 정상의 유명한 신전을 숭배했다. 아래 골짜기에서 3,000피트 높고 겨울에는 접근할 수 없으며 동쪽 사막과 서쪽 바다에서 해가 뜨고 지는 모습을 멀리 바라보는 중앙 봉우리 꼭대기에는 큰 돌로 된 원형 담 또는 고리의 기초가 아직 보인다. 이는 소박한 신전이며, 그 안에 후대에 그리스 양식의 신전을 세웠다. ‘안티레바논 산맥의 다른 세 봉우리에도 매우 오래된 폐허가 있다.’ ‘부카와 그 경계에는 이와 같은 건축물이 가득하다.’

‘레바논과 안티레바논과 그 사이 골짜기에는 고대 신전이 빽빽하다.’ 어떤 것은 그리스식이지만 다른 것은 수리아-베니게식이다. 그리스 신전은 아마 수리아-베니게 신전을 되살린 것이었다. ‘바알벡의 거대한 기초 구조는 더 이른 신전의 것이었다고 추정한다.’ 새 이름 ‘헬리오폴리스’는 숭배 대상인 태양의 이름을 그 칭호인 주 대신 넣었을 뿐이다. 코엘레수리아의 이 신전이 이방 숭배로 유명하여 미신이나 정책에 도움이 되지 않았다면 이교 황제들이 그토록 크고 놀라운 비용과 화려한 예술을 쏟지 않았을 것이다. 레바논 서쪽 아프카, 곧 아베가에는 아도니스강 발원지에 비너스 신전이 있었으며, 이는 가장 혐오스러운 수리아 우상 숭배의 중심인 ‘모든 방탕한 자를 위한 악행의 학교’였다.

헬리오폴리스에서도 남자들은 ‘뻔뻔스럽게 아내와 딸을 수치에 내주었다.’ 배교자 율리아누스 통치 때 그곳에서 이교가 폭발한 일은 우상 숭배가 얼마나 깊이 뿌리내렸는지 보여 준다. 그러므로 아모스는 이 아름다운 골짜기 전체 백성이 수리아를 타락시킨 최악의 우상 숭배에 완전히 빠졌기에 그곳을 ‘허무의 골짜기’ 또는 ‘죄악의 골짜기’라 부르며 판결을 선고한 듯하다. 우상 숭배의 본거지인 여기에 하나님의 주된 심판이 내려야 했다. 주민은 끊어져 완전히 멸망하고, 나머지에게는 포로만 선고된다. 앗수르 왕들은 자기 종교를 멸시한 자들을 종종 죽였으므로, 여기서도 자신도 모르게 하나님의 판결을 집행했을 수 있다.

에덴 집에서—의미 있는 고유명사 ‘벳에덴’, 곧 ‘기쁨의 집’이다. 앗수르의 에덴과 같이(열왕기하 19:12; 이사야 37:12; 에스겔 27:23), 인류 최초의 거처와 구별하여 ‘이든’이 아니라 ‘에덴’으로 발음한다. 비크아 가까운 두 장소와 그 안의 한 장소가 이름이 비슷하여 이 ‘기쁨의 집’ 후보로 여겨졌다.

  1. 오늘날 위치와 기후가 가장 아름다운 곳은 아마 발음이 잘못 전해진 에덴이다. 트리폴리에서 백향목 숲으로 가는 길, 베시라이 가까이의 ‘비옥하고 고도로 경작된 골짜기 비탈에 있는 400~500가구의’ 마론파 마을이다. 기후는 열 달 동안 봄이라 묘사된다. ‘언덕은 정상까지 계단식으로 경작되고’ 모든 곳에 가장 풍요롭고 아름다운 식물이 가득하다. ‘곡식은 사람의 품에 쏟아지고 포도주는 잔에 한없이 부어진다.’ ‘온통 푸른 골짜기 비탈은 언덕보다 더 생산적이며, 레바논의 샘물은 사방으로 신선하고 시원하며 음악처럼 흘러내린다.’ 트리폴리의 부유한 집안들은 지금도 여름에 그곳을 찾는다. ‘설산이 가까워 기후가 온화하고 바다에서 오는 부드러운 바람이 가장 무성한 식물을 길러 주기’ 때문이다. 지금도 ‘레바논의 낙원’으로 여긴다.

  2. 베이트 엘 잔네는 문자적으로 ‘낙원의 집’으로, 벳에덴을 아랍어로 옮긴 이름이다. ‘레바논, 곧 헤르몬 기슭에 놓여 맑은 물을 쏟아 내므로’ 티레의 윌리엄은 ‘기쁨의 집이라 불린다’고 한다. 조금 넓어지는 좁은 골짜기에 있으며, 다메섹 평야에서 약 45분, 바니아스에서 오는 길로 다메섹에서 약 27마일 떨어졌다. ‘위와 주변의 많은 바위 무덤이 그 장소의 오랜 역사를 증언한다.’ 다메섹 가까운 둘째 큰 강 아와지를 이루는 두 시내 가운데 하나인 젠나니, 곧 낙원강이 여기서 이름을 얻는다.

  3. 셋째는 라오디게네의 세 성읍 가운데 하나인 그리스인의 파라디수스이다. 그러나 그들의 파라디수스는 지상 낙원이 아니라 ‘사냥 공원’을 뜻하므로 성경의 이름과 우연히만 일치한다. 장소는 사냥 공원에 적합하다. 그러나 물이 풍부하고 사람이 조금만 수고해도 땅이 스스로 무성한 아름다움을 입을 듯 비옥한 그 나라에서 옛 파라디수스의 자리로 보이는 곳은 절망적으로 불모이다. 벳에덴은 다메섹 왕 아래 종속 왕들 가운데 하나의 거처여서 군주의 멸망에 함께 휘말렸을 수 있다. 또는 다메섹 왕 자신의 여름 거처였고, 거짓 신들과 기쁨의 낙원 같은 곳을 믿던 그를 하나님이 거기서 완전히 끊으셨을 수 있다. 재물도 인간의 어떤 우상도 하나님에게서 지켜 주지 못한다. 아담이 죄로 낙원에서 쫓겨났듯 다메섹의 통치자들도 쾌락과 죄의 장소에서 쫓겨났다.

수리아 백성이 사로잡혀 가리라—수리아 또는 아람은 이전에 여러 작은 왕국으로 나뉘었으나 당시 다메섹 통치 아래 유브라데 이쪽 왕국 전부를 이미 포함했을 수 있다. 적어도 초기 역사에 나오는 아람벳르홉·아람소바·아람마아가 같은 수식 없이 하나의 전체로 언급된다. 포로 되기 전 다메섹은 ‘수리아의 머리’라 불렸다(이사야 7:8).

길로—길은 다음과 같이 비정되어 왔다.

(1) 아르메니아 북쪽, 카스피해에서 멀지 않은 곳에서 아락스강과 합류하는 쿠르강 부근 이베리아,

(2) 메디아 남부 마르두스강의 그리스인이 쿠레나 또는 쿠르나라 부른 성읍,

(3) 오늘날 케렌드인 카리네 성읍이다.

가장 잘 알려진 첫째가 가장 개연성 있다. 쿠르라는 이름은 오늘날 쿠르기스탄, 곧 우리가 ‘조지아’라 부르는 이름의 일부일 것이다. 적어도 쿠르강 남쪽 아르메니아는 앗수르 왕들이 싸워 정복한 나라로 설형문자 비문에 자주 나온다. 산헤립을 죽인 두 아들이 아버지 제국 밖이 아니라 멀리 떨어진 한 지역으로 도망했을 가능성도 충분하다(이사야 37:38). 그들이 그곳으로 도피한 일이 에살핫돈의 전쟁 원인이었을 수 있다. 그곳은 언제나 다른 땅에서 쫓겨난 이들에게 피난처를 제공했다. 후대의 것이기는 하나 아르메니아 내부 전승은 바벨론 왕 벨의 멍에를 피해 메소포타미아에서 도망한 이들을 최초 주민 가운데 포함한다. 개별 전승의 가치가 어떠하든 산악 골짜기는 피난민에게 자연스러운 피난처이다.

앗수르가 니므롯 앞에서 도망한 것과 같은 압제 때 아람은 아르메니아와 조지아 산악으로 처음 피난한 이들 가운데 하나였다가, 후에 우리가 그들을 발견하는 메소포타미아 저지로 퍼졌을 수 있다. 그러나 아람이라는 이름은 아르메니아와 아무 관련이 없다. 아르메니아도 그 나라 고유 이름이 아니라 그리스인이 들은 이름에서 만든 듯하다. ‘높은’이라는 아람의 이름은 같은 이름을 지닌 다른 이들처럼 셈의 아들이 가진 어떤 성질을 분명 묘사한다. 반대로 가나안은 함의 죄에 참여하여 장차 타락할 성품을 미리 나타내는지는 몰라도 ‘몸을 낮춘다’를 뜻할 수 있다. 그러나 최근 상상한 것처럼 아람이 ‘고지’, 가나안이 ‘저지’를 뜻하지는 않는다.

수리아인의 조상은 모든 일을 선하게 섭리하시는 하나님의 섭리로 길에서 자원하여 나왔으나, 이제 수리아인은 비자발적으로 길로 끌려 돌아가야 한다. 다메섹의 아람은 비옥함과 아름다움 때문에 일종의 낙원으로 칭송받아 온 땅으로 인도되었다. 이제 사치로 연약해진 그들은 본래 나온 엄격하지만 건강한 기후로 돌아갈 것이다. 하나님이 주신 힘을 이스라엘을 뿌리 뽑는 데 악용했으므로 이제 자신들이 완전히 뿌리 뽑힐 것이다. 아모스가 예고한 포로는 완전한 포로로서, 그 말의 뜻처럼 땅에서 주민을 벗겨 내는 것이었다. 그가 이런 포로를 예고한 다른 대상은 열 지파뿐이다. 오직 이 두 민족에게 이를 절대적으로 예고한다. 암몬에서는 왕과 고관의 포로만 예고하고(아모스 1:15), 두로·블레셋 성읍들·에돔·암몬·모압에는 예고하지 않는다. 형벌은 당대가 아니라 유다도 압제한 르신 시대에 수리아에 닥쳤다. 죄가 끊어지지 않았으므로 형벌도 후대에 넘겨졌다.

약 50년 뒤 디글랏 빌레셀이 그들을 사로잡고 르신을 죽였다(열왕기하 16:9). 아모스는 이 두 민족의 포로를 절대적으로 예고했다. 그러나 당시에는 특별히 이 두 민족의 포로를 예측할 인간적 가능성이나 하나님의 지식 외의 근거가 없었다. 인간의 예견으로는 예측할 수 없을 만큼 뒤에 포로가 되었으나, 유다의 포로보다는 충분히 앞서 성취가 유다에게 감명을 줄 수 있었다. 후에 페르시아와 후기 앗수르 제국의 상설 정책이 된 주민 전체의 강제이주는 우리가 아는 한 선지자 시대 동방 정책의 일부가 아니었다. 아모스보다 몇 세기 앞선 애굽 정복자 세소스트리스가 정복한 민족에게서 ‘많은 사람’, ‘큰 무리’를 모아 건축과 운하 공사에 썼다는 기록이 있다.

그러나 이 기록도 애굽 기념물의 지지를 받지 못했다. 그리스인이 세소스트리스에게 돌린 업적은 제19왕조 세티 1세와 람세스 2세의 업적에 제12왕조 우사르테센 3세와 제18왕조 투트모세 3세의 업적이 섞인 것으로 여겨졌다. 전장에서 소수 포로를 끌고 오는 일은 한 민족을 정책적으로 이주시킨 것과 전혀 다르다. 체계도 계획도 없고 전쟁으로 손에 들어온 이들을 노예로 사용했을 뿐이다. 애굽 왕들은 유용성이나 허영을 위한 큰 공사에서 자국민의 노동을 아끼려고 이 자원을 썼다. 그러나 그렇게 사용된 포로는 다른 민족의 광산이나 농업에서 일한 이들과 비슷한 노예 인구일 뿐이었다.

평화롭게 받아들였던 이스라엘 사람들도 같은 방식으로 사용했다. 초기 공사는 자국민 노동으로 진행되었다. 강제 노동에 포로를 쓴 첫 그림이 나타나는 투트모세 3세 이후에는 전성기의 애굽이 자국민 노동을 아낄 수 있었다. 노예 무역이 아니라 전쟁을 통해 노동력을 수입했다. 누비아는 애굽에 편입되었고 누비아 포로는 당연히 고향이 아니라 애굽 북부에서, 아시아 포로는 누비아에서 사용되었다. 그러나 그들은 전역에서 붙잡은 포로이지 한 지역 주민 전체가 아니었다. 애굽 땅에 들어온 외국 요소이지 지배받는 주민들의 교환이 아니었다. 애굽에서 이스라엘과 함께 올라온 ‘수많은 잡족’은(출애굽기 12:38) 같은 가혹한 종살이에 놓였던 이 아시아 포로들의 일부였을 것이다.

후대 앗수르·바벨론·페르시아의 강제이주는 목적과 규모가 전혀 달랐다. 주민을 본래 거처에서 제거하거나, 반란할 형편이 되지 못할 만큼 수가 적거나 가난한 자만 남기는 것이 목적이었다. 설형문자 비문은 왕들이 기록한 앗수르 정복사를 상당히 보여 준다. 사르곤·산헤립·에살핫돈의 후기 비문은 주민 강제이주를 반복해 말하지만, 앗수르다니팔 또는 앗수르나시르팔의 초기 연대기는 군인을 포로로, 여인을 사로잡아 간 일만 전한다. 조공으로 노예를 받고 소와 양의 수, 백성의 재물과 소유와 신들을 빼앗은 일도 언급한다.

그 밖에는 왕이 무장한 자 또는 백성 일반을 십자가에 달거나 말뚝에 꿰거나 죽인 일을 말하지만, 어느 원정에서도 강제이주를 언급하지 않는다. 현대 저술가들이 민족 강제이주가 아시아 군주의 세습 정책이었다고 자주 가정하지만 이 시기 이전 사례는 발견되지 않았다. 이는 후대 정책으로 보이며, 디글랏 빌레셀이 다메섹과 팔레스타인 동북부에 처음 채택했으나 선지자는 채택되기 오래전에 예고했다. 민족을 옛 거처에 두고서는 종속 상태로 유지할 수 없다는 경험에서 나온 정책이었을 것이다. 우리가 아는 범위에서 선지자는 이런 이주의 사례가 일어나기 전에 이 백성의 이주를 예고했다.

아모스 1장 6 Barnes' Notes on the Bible

Amos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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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사—가사는 블레셋에서 가장 남쪽 성읍이었고, 옛 가나안에서도 그러했다(창세기 10:19). 베니게에서 애굽으로 가는 길에서 광야가 시작되기 전 마지막 거주지였다. 위치가 놀랍도록 잘 선택되어 가사가 여러 번 파괴되었어도 긴 시간이 지난 뒤에조차 바로 같은 부근에 새 성읍이 다시 일어났다. 앞선 성읍의 파편은 후대 성읍의 건축 재료가 되었다. 처음에는 가나안 성읍이었고(창세기 10:19), 다음에는 블레셋, 적어도 알렉산더 이후에는 에돔, 알렉산더 얀네우스 이후에는 그리스 성읍이었다. 초대 칼리프 아부베크르에게 정복되어 아랍 성읍이 되었고 내전으로 황폐해졌다가 십자군이 요새를 재건했으며 다시 무슬림 성읍이 되었다. 소돔과 고모라가 멸망하기 전 가장 이른 시대에도 가사는 가나안 경계의 남쪽 모퉁이였고, 거기서 경계가 사해 남쪽으로 꺾였다. 그때에도 우리의 ‘요새’와 같은 뜻인 힘의 이름, ‘강한 곳’이라는 뜻의 앗사로 알려졌다.

한동안 가사는 섬 같은 요새로 서 있었고, 거인 족속 아위 사람들은 현대 베두인보다 더 거칠게 바로 그 문 앞까지 떠돌았다. ‘아위 사람은 가사까지 여러 마을에 거주했다’고 했으므로(신명기 2:23), 요새 성읍 가사 자체에는 살지 않은 것이 분명하다. 이 묘사는 그들의 거처가 남동쪽 가장 먼 성읍 가사까지였다고 경계를 정한다. 그들은 주변을 배회하며 괴롭혔으나 정복하지 못했고, 자신들은 갑돌 사람에게 쫓겨났다. 투트모세 3세의 대원정에는 가사 군주의 요새가 언급되고, 람세스 2세의 기념물에는 아스글론 정복이 기록할 가치가 있는 일로 여겨졌다. 여호수아가 ‘헤브론’과 주변 성읍, ‘유다와 이스라엘 산지’에서 쫓아낸 뒤 ‘가사와 가드와 아스돗에만 남은’ 아낙 자손에게 피난처를 줌으로써 요새는 더 강해졌을 것이다(여호수아 11:21-23).

가사는 애굽을 오가는 육상 무역의 첫 기착지였다. 두로와 시돈, 다메섹과 유브라데 상류, 또는 페트라로 가는 길이었으므로 일찍 크게 번성했을 것이다. 무역의 흐름이 다른 길로 바뀐 뒤에도 위치는 큰 이익의 근원이었다. 광야를 지나는 길과 맞닿은 비옥한 곳으로서 대상의 시장이 되었고, 종교와 무역을 결합하여 메카 순례길을 지나던 대상들도 이용했다. 정복되지 않은 다섯 성읍을 함께 열거할 때 가사가 먼저, 그 뒤 아스돗이 나온다(여호수아 13:3). 삼손은 힘의 비밀을 누설한 뒤 ‘가사로 끌려갔다’(사사기 16:21). 그가 함정에 빠진 ‘소렉 골짜기’에서 가장 멀었으나 아마 그들의 가장 강한 요새였기 때문이다.

거기에는 다곤의 거대한 신전도 있었고, 많은 숭배자가 그 무덤에 묻혔다. 솔로몬 시대에는 이스라엘에 복속되었다(열왕기상 4:21). 아하스 때 블레셋이 침입하여 유다 남부와 저지대 세펠라의 성읍들을 점령한 뒤(역대하 28:18), 히스기야는 그들을 가사까지 밀어냈으나 그곳을 빼앗지는 않은 듯하다(열왕기하 18:8). 이사야가 예고한 사르곤의 블레셋 승리 때 그 군주가 패했다(이사야 14:29). 산헤립은 아스글론과 에그론의 왕들과 함께 가사 왕에게 자기가 약탈한 ‘요새 성읍과 다른 성읍들’을 주었다. 유다를 약하게 하여 ‘히스기야의 나라를 작게 만들려는’ 뜻이라고 공언했으며, 아마 유다에 적대한 보상이기도 했다. 그리스 저자들은 가사를 ‘수리아의 매우 큰 성읍’, ‘큰 성읍’이라 부른다. 옛 성읍들처럼 해적을 두려워하여 바다에서 조금 떨어져 지었으나, 아리아누스에 따르면 2마일 반 거리였고 아셀리아의 항구처럼 마이우마라는 항구가 있어 그곳도 그리스도교 시대에 중요한 장소가 되었다.

모든 사로잡은 자를 끌어다가—문자적으로는 ‘완전한 포로’이다. 악한 의미에서 완전한 포로, 곧 아무도 아끼거나 남겨 두지 않고 노인과 젊은이, 여자와 아이를 포함한 온 인구를 규모와 관계없이 휩쓸어 간 것이다. 여호람 시대에 블레셋이 이렇게 침입한 일이 기록되어 있다(역대하 21:16).

에돔에 넘겼음이라—문자적으로는 ‘에돔에게 가두었다’이다. 쓰라린 원수 에돔의 권세 아래 가두어 도망하거나 회복되지 못하게 한 것이다. 에돔의 땅은 아니더라도 그 손은 이미 ‘형제’ 야곱의 피로 물들었다(요엘 3:19). 무력한 포로 무리는 아마 ‘어디든 그곳만은 안 된다’고 외쳤을 것이다. 동료의 피로 물든 도살장으로 움츠러드는 양 떼를 몰아넣는 것과 같았다. 그러나 바로 그래서 그들은 도살되도록 그곳으로 끌려갔다. 그곳에는 유대인 노예를 위한 공개 시장이 많았다. 같은 말을 알아듣는 원수들의 귀에 ‘우리를 팔기만 하고 죽이지는 말라’, ‘백발노인을 살려 달라’, ‘내 아이를 살려 달라’는 외침이 올랐을 것이다. 그러나 소용없었다. 하나님의 백성을 거스른 두로와 블레셋과 에돔의 협약이 그러했다. 한 사람도 아끼지 않고 ‘완전한 포로’로, 그것도 에돔에 넘겨야 했다. 그 결속은 이행되었다. ‘귀를 막고 가난한 자가 부르짖는 소리를 듣지 아니하면 자기가 부르짖을 때에도 들을 자가 없으리라’(잠언 21:13). 요엘도 블레셋과 베니게의 같은 죄를 말하고 형벌을 예고했다(요엘 3:4-6). 성경에는 여호람 시대 사건이 마지막으로 나오지만 반드시 또는 개연적으로 실제 마지막 사건이었다는 뜻은 아니다. 성경은 아마 변경 습격 가운데 더 주목할 것만 기록한다. 회개하지 않은 죄는 보통 되풀이된다. 강한 블레셋 요새들은 이런 침입의 기회를 자주 풍부하게 제공했을 것이다. 오늘날에도 아라비아에서는 ‘수확은 더 강한 자의 것’이라고 한다. 레바논과 하우란 등의 보호받는 작은 땅은 경작되지만, 개방된 비옥한 지역은 약탈자를 위해 경작하는 셈이므로 자주 묵힌다. 아모스는 요엘의 판결을 새롭게 하며 지체하는 듯 보여도 반드시 올 것이라고 경고한다.

아모스 1장 7 Barnes' Notes on the Bible

Amos 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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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문자적으로는 ‘그리고’이다. 가사가 이렇게 행했으므로 하나님도 이렇게 행하신다. ‘내가 가사 성에 불을 보내리라.’ 가사에 대한 판결이 두드러지는 것은 아마 세력과 죄에서 첫째였기 때문이다. 다섯 성읍 가운데 상업 성읍으로, 대상들이 거기서 갈라져 나가거나 통과했고 유대인 포로 판매도 결국 그들을 통해 이루어졌다. 죄에서 첫째였으므로 형벌에서도 첫째였다. 가사는 자연과 기술로 강했다. 아리아누스도 ‘그곳에 접근하려면 깊은 모래를 지나야 했다’고 기록한다. 하나님의 특별한 보호 아래 있던 이스라엘 초기(사사기 1:1-2, 18)나 위대한 정복자들의 경우 외에는 가사가 함락되었다는 기록을 듣지 못한다. 블레셋 전체가 다윗에게 복종한 듯하지만 개별 성읍 정복은 기록되지 않았다(사무엘하 8:1). 알렉산더는 두로를 빼앗은 공성 장비와 거기서 얻은 경험을 모두 동원하고도 두 달이나 포위해야 했다. 애굽 기록은 투트모세 3세가 포위했을 때 항복했다고 전한다. 그 뒤에는 애굽에도 앗수르에도 복종하지 않았다. 그런데도 아모스는 가사가 불로 멸망할 것이라고 단정적으로 선언했고 그대로 되었다. 먼저 산헤립이 쳤고, 예레미야가 가사·아스글론·블레셋의 멸망을 새롭게 예고한 뒤 애굽 왕 바로 느고가 ‘가사를 쳤다’(예레미야 47:1). 인간의 예견만으로 그토록 강한 성읍의 멸망을 누가 감히 단언할 수 있었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