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am Clarke's Commentary and Critical Notes on the Bible
Adam Clarke · 18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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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지자 다니엘서 서론
다니엘은 다윗 왕가의 후손이었다고 전해진다. 그는 매우 젊었을 때, 유다 왕 여호야김 제4년인 세계력 3398년, 기원전 602년 또는 통상 기원 이전 606년에 바빌론으로 끌려간 듯하다. 그와 함께 포로가 된 세 사람, 하나냐와 미사엘과 아사랴는 유망한 청년들이었으므로 왕궁에서 일하도록 선택되었고, 장차 맡게 될 직무에 적합한 교육을 받도록 지정되었다. 그들은 모세의 규례에 따라 철저히 양육되었으므로 노예 신분으로 이교도 왕의 궁정에 있을 때조차 그 규례에 따라 처신하였다. 이 때문에 왕의 식탁에서 나오는 음식을 먹으라는 명령을 받았으나 그 음식에 손대지 않았다. 갈대아 사람들이 모세 율법이 금한 고기를 먹었고, 아마 정결하다고 여겨질 수 있는 고기조차 일반적인 용도로 조리되기 전에 우상에게 희생 제물로 바쳐져 더럽혀졌기 때문이다. 그들이 간절히 요청하자 그들을 맡은 관리는 채소만 먹도록 허락하였다. 그는 그들이 이 음식으로 건강하고 튼튼하게 자라는 것을 보고 왕의 식탁에서 보내는 몫을 억지로 먹이지 않았다.
다니엘은 당시 고대 이집트의 학문보다 훨씬 뛰어났던 갈대아 사람들의 모든 지혜를 배운 듯하다. 그는 깊고 한결같은 경건함뿐 아니라 지혜와 뛰어난 이해력으로도 곧 바빌론 궁정에서 두각을 나타냈다.
여러 금속이 혼합된 형상에 관한 느부갓네살의 꿈을 해석한 일로 궁정에서 그의 신망은 매우 높아졌다. 그리하여 그는 바빌론 지방의 총독으로 세워지고 그 나라의 모든 마기, 곧 지혜자들의 우두머리가 되었다. 그의 이름을 지니고 의심할 여지 없이 그 자신이 기록한 이 책 전체에는 그의 생애의 주요 사실과 사건들이 매우 상세히 엮여 있으므로 여기서 다시 열거할 필요가 없다.
다니엘의 명성은 그가 살아 있을 때부터 매우 커서 속담이 되었다. 에스겔은 두로 왕에게 ‘네가 다니엘보다 지혜롭다’고 반어적으로 말하였다(에스겔 28:3). 또 같은 선지자를 통하여 하나님께서는 멸망 판결을 받은 예루살렘에 관하여 말씀하시면서 다니엘을 가장 거룩하고 모범적인 사람들 가운데 두셨다. ‘비록 노아와 다니엘과 욥, 이 세 사람이 그 가운데 있을지라도 그들은 자기 의로 자기 생명만 건지리라’고 선언하셨다(에스겔 14:14, 20).
요세푸스는 『고대사』 제10권 12장에서 하나님께서 다니엘에게 많은 은총을 베푸셨다고 말한다. 그는 다니엘이 가장 중요한 선지자들의 반열에 올랐고, 살아 있는 동안 군주들의 총애와 백성의 사랑을 누렸으며, 죽은 뒤에는 그에 대한 기억이 불멸하게 되었다고 한다. 또한 다니엘의 예언은 그 전반적인 성격에서 다른 모든 선지자와 크게 다르다고 지적한다. 다른 선지자들은 거의 재앙의 사건만을 예언했지만, 다니엘은 그와 반대로 가장 기쁜 사건들을 예언하고 다른 선지자들보다 더 세밀하고 정확하게 성취 시점을 정하였다. 이는 매우 참된 말이다. 하나님께서 이 탁월한 사람에게 그의 예언이 성취될 시점을 정할 수 있도록, 미래의 일에 관한 하나님의 뜻만 선언하고 그것이 성취될 때까지의 시간적 거리는 제시하려 하지 않았던 앞선 선지자들 일반에게 주신 것보다 더 큰 빛을 주셨다고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이사야서나 예레미야서에도 이에 대한 예외는 극히 적다. 이 점에서 다니엘의 칠십 이레 예언은 앞서 나온 모든 예언을 능가한다. 그 성취와 관련된 사건과 활동은 매우 다양했으나, 육백 년 전에 아주 확정적으로 선언되었다. 그리하여 예언된 일이 일어날 때가 이르자 사람들은 그것을 기대하였고, 그 일은 예언과 그 예언에 근거한 기대에 정확히 따라 일어났다. 그러므로 이 선지자는 하나님의 영감을 받은 사람들 가운데 낮은 자리를 차지하기는커녕, 예언의 은사를 가장 풍성하게 받은 사람들 가운데 가장 뛰어난 이들과 함께 첫째 반열에 놓일 자격이 있다.
랍비들은 다니엘을 격하하려고 그의 예언을 자신들이 더 낮은 수준의 영감을 받았다고 여기는 책들인 하기오그라파, 곧 성문서 가운데 두었다. 그들이 다니엘을 이렇게 취급하는 것은 그의 예언이 예수 그리스도께서 참 메시아이시며 다니엘이 메시아 군주가 오리라고 말한 바로 그때 오셨음을 너무도 분명히 입증하기 때문일 가능성이 있다. 그러나 그런 사람들의 증언과 말은 앞서 제시한 에스겔의 증언과 우리 주님의 증언 앞에서 한없이 무력해진다. 우리 주님은 조금도 낮추어 이해해야 한다는 암시 없이 다니엘에게 선지자라는 칭호를 주신다(마태복음 24:15).
다니엘은 바빌론 포로 생활에서 전반적으로 회복될 때 돌아오지 않았을 가능성이 매우 크다. 그때까지 살아 있었다면 이미 노인이었을 것이다. 일부 아시아 저술가들은 그가 에스라와 함께 유대로 돌아왔다가 나중에 다시 페르시아로 가서 수사 성읍에서 죽었다고 주장하지만, 그가 바빌론에서 생을 마쳤을 가능성이 가장 크다.
요세푸스는 『고대사』 제10권 12장에서 건축에 관한 그의 재능도 언급한다. 다니엘이 엑바타나 또는 수사에 유명한 탑을 세웠으며, 그 탑은 요세푸스 시대까지 남아 있었고 너무도 정교하게 완성되어 언제나 새로 지은 것처럼 보였다고 한다. 페르시아 왕들은 이 탑 또는 궁전에 매장되었고, 그 건축자를 고려하여 이곳의 경비대는 언제나 유대인들 가운데서 선발되었다.
다니엘은 동방 학자들 사이에서도 유명하다. 『타레크 문테케브』의 저자는 다니엘이 페르시아 왕 로호라스프 시대, 따라서 케레시 곧 고레스 시대에 활약했으며, 고레스가 그에게 시리아의 통치를 맡겼다고 말한다. 그는 다니엘이 이 두 군주에게 참 하나님에 관한 지식을 가르쳤고 바빌로니아 이라크 전역에 참 신앙을 전파했다고 한다. 또한 느부갓네살이 죽자 당시 페르시아를 다스리던 아스펜디아르의 아들 바흐만, 곧 아닥사스다 롱기마누스가 다니엘을 유대로 보냈으며, 다니엘은 돌아온 뒤 페르시아의 수도 슈스터 또는 수사에서 죽어 그곳에 묻혔다고 한다.
어떤 이들은 페르시아의 조로아스터 또는 제라두슈트가 선지자 다니엘에 관한 혼합된 형상이라고 생각하였다. 아불 파라지가 제5왕조에 관해 전한 기록은 이 견해에 유리한 것으로 볼 수 있다. 그는 이렇게 말한다. ‘마기우세이아 마기즘, 곧 불 숭배자들의 종파를 창시한 제라두슈트는 캄바소스, 곧 캄비세스 치세에 활약하였다. 그는 아데르비기안 지방 또는 메디아 출신이었으며, 다른 이들에 따르면 앗수르 출신이었다. 그는 제자들에게 메시아의 오심을 예언하였다. 메시아가 태어날 때 낮에도 나타날 별이 그를 가리킬 것이며, 그들이 그의 강림에 관한 소식을 가장 먼저 알게 될 것이고, 그가 동정녀에게서 태어날 것이며, 그들이 그에게 예물을 바쳐야 한다고 하였다. 이는 그가 하늘을 지으신 말씀이기 때문이다.’ 포콕의 『아불 파라지우스』 아랍어판 83쪽과 라틴어판 54쪽을 보라.
데르벨로는 이 기록에 관하여 다음과 같이 말한다. ‘이 역사가의 말을 보면 발람의 예언이 동방 전역에 상당히 널리 알려졌고, 우리 주님을 경배하러 온 박사들은 아라비아 왕들이 아니라 페르시아의 진정한 마기였음을 알 수 있다.’
아불 파라지의 기록은 다니엘과 제라두슈트를 동시대 사람으로 만들며, 이 점에서는 전자의 역사가 후자의 이름 아래 전해졌다고 볼 수 있다는 견해에 유리하다. 조로아스터라는 이름을 가진 사람은 여럿이었고 그들에 관해 많은 우화가 전해진다. 그 인물들 자체가 대체로 허구이니 놀라운 일도 아니다.
아시아 사람들은 다니엘을 레멜, 곧 지점술의 창시자로 여긴다. 그들 사이에서 그는 『아술 올 타비르』, 곧 『꿈 해석의 원리』라는 저작의 저자로 통한다. 내 서재에는 이 책에서 유래했다고 주장하는 매우 오래된 저작이 한 권 있는데, 제목은 『솜니아 다니엘』이다. 인쇄술 초기에 작은 4절판으로 인쇄되었으나 연도는 적혀 있지 않다. 프랑스 왕립도서관에는 410번 아랍어 저작으로 『오드메트 알 만쿨, 안 다니알 안 나비』, 곧 『선지자 다니엘의 전승 예언』이라는 책이 있다. 이 책은 다니엘의 예언을 토대로 지어낸 많은 거짓 내용을 담았다고 한다. 그러나 한 번도 공개된 적이 없으며, 나도 데르벨로가 전한 위의 내용 외에는 이에 관해 아는 바가 없다. 이 모든 것이 오래되었다는 점에서는 흥미롭지만, 의심할 여지 없이 위작이다.
아불 파라지는 그의 왕조사에서 다니엘의 칠십 이레를 아르드셰르 디라즈데스트 제20년부터 계산해야 한다고 말한다. 그는 그리스인들이 아닥사스다 롱기마누스라고 부른 사람이며, 위에서는 바흐만이라고 불렸고, 느헤미야가 사케, 곧 술 맡은 관원으로 섬긴 바로 그 왕이다. 다른 동방 학자들도 같은 견해를 가진다. 이 문제는 해당 예언을 다룰 때 더 자세히 살펴볼 것이다.
아닥사스다는 영토가 매우 광대했기 때문에 롱기마누스, 곧 ‘긴 손을 가진 자’라는 이름을 얻었다.
다니엘을 히브리 시인 가운데 둘 수는 없다. 그의 책은 전부 산문이며 일부는 히브리어로, 일부는 갈대아어로 기록되었다. 갈대아어 또는 시리아-갈대아어 부분은 מלכא לעלמין חיי(말카 레알민 헤이, malka lealmin chei), 곧 ‘왕이여, 영원히 사소서!’라는 말로 시작하여 제7장 끝까지 이어진다.
나는 그의 예언을 해석하면서 가장 훌륭한 비평가들과 연대기 학자들을 따르고, 긴 주석을 붙이지 않으면서도 가능한 한 짧은 지면에 각 구절의 의미를 제시하려고 노력하였다. 금속 형상과 칠십 이레에 관해서는 더 장황하게 설명할 수밖에 없었다. 이것들은 가볍게 다루기에는 너무 중요하기 때문이다. 칠십 이레가 언제 시작되는지를 둘러싼 논쟁에 들어가는 것은 내 소관이 아니다. 이 점에서 서로 크게 다른 견해를 가진 사람들조차 전체적인 결론에서는 매우 가까우므로 그 차이는 중요하지 않다.
칼메는 이 책에 언급된 여러 사건의 연대를 다음과 같이 확정하려고 한다.
세계력 — 사건 3398년 — 다니엘이 포로로 바빌론에 끌려감(다니엘 1:1-7). 3399년 — 느부갓네살의 아버지 나보폴라사르가 죽음. 3401년 — 여호야김이 느부갓네살에게 반역함(열왕기하 24:1). 3402년 — 복합 금속 신상에 관한 꿈(다니엘 2:1 이하). 다니엘과 그의 동료들이 궁정에서 높은 지위에 오름. 캄비세스와 만다네의 아들 고레스가 태어남. 3405년 — 여호야김이 갈대아 사람들에게 붙잡혀 죽임을 당함. 여고냐가 왕위에 오르지만 석 달 열흘만 다스림. 유다의 마지막 왕 시드기야가 뒤를 이어 십일 년 동안 다스림. 3416년 — 예루살렘 함락과 성전 파괴(역대기하 36장). 3434년 — 느부갓네살이 페니키아와 유대와 이집트 등지를 크게 정복한 뒤 바빌론으로 돌아옴. 큰 나무에 관한 그의 꿈(역대기하 4:7 이하). 3435년 — 그가 정신 이상에 빠지고 그 상태가 칠 년 동안 지속됨(4:32-33). 3442년 — 그가 제정신을 회복하고 다시 왕위에 오름. 금 신상이 세워짐. 세 히브리 사람이 불타는 용광로에 던져짐(2:). 베로수스에 따르면 느부갓네살이 사십삼 년 동안 다스린 뒤 죽음. 에윌므로닥이 뒤를 이어 이 년 동안 다스림. — 베로수스. 그가 여고냐를 석방함(예레미야 52:31). 3444년 — 그의 아들 벨사살이 뒤를 이음(다니엘 7:1). 네 거대 제국을 상징하는 네 짐승에 관한 다니엘의 환상(7장). 3447년 — 숫양과 숫염소에 관한 환상(8장). 벨사살의 죽음(5장). 3449년 — 크세노폰이 키악사레스라고 부르고 외경이 아스티아게스라고 부르는 메대 사람 다리오가 갈대아의 통치권을 이어받음(다니엘 5:30-31). 그는 메대 왕 아스티아게스의 아들이며 벨사살의 외가 쪽 큰종조부였다. 이사야 13:1 이하를 보라. 9, 10, 11장과 다니엘 12:1-13에 기록된 다니엘의 환상들. 고레스가 메대 사람 다리오 제1년 또는 제2년에 메대 사람들을 공격함(다니엘 10:1). 3455년 — 다니엘이 사자 굴에 던져짐(6장). 3456년 — 다리오가 죽고 고레스가 뒤를 이음. 3457년 — 고레스가 통치 제1년에 바빌론 포로 생활의 종결을 선포함(역대기하 36:22; 에스라 1:1). 그러나 그 뒤 중단됨. 아래를 보라. 3485년 — 다리오 히스타스페스 시대에 예레미야가 말한 칠십 년이 끝남. 그가 성전 재건을 계속하라고 명령함. 3550년 — 칠십 이레가 시작됨(다니엘 9:24). 느헤미야가 예루살렘으로 돌아옴(느헤미야 2:1-6).
이 연대기에서 칼메는 어셔와 견해가 다르다.
문필가로서 이 선지자는 소박하면서도 순수하고 정확하다. 또한 매우 양심적이어서 자신이 말하는 인물들이 실제로 한 말을 그대로 기록한다. 단순한 서술을 전할 때에는 히브리어로 기록하지만, 지혜자들과 왕들과 나눈 대화는 갈대아어로 전한다. 다니엘이 큰 금속 형상에 관한 느부갓네살의 꿈을 해석한 뒤 왕이 내린 칙령도 같은 언어로 기록한다. 이것은 그의 뛰어나고 양심적인 정확성을 입증하며, 이 선지자를 매우 유리한 관점에서 보여 준다. 다니엘은 히브리어와 갈대아어를 모두 매우 순수하게 구사한다.
이 책은 두 부분으로 나뉜다.
제1부는 역사 부분이며 앞의 여섯 장에 담겨 있다.
제2부는 예언 부분이며 나머지 여섯 장을 차지한다.
이 장은 먼저 느부갓네살이 유대를 정복하여 여호야김이 그에게 조공을 바치게 된 일을 간략히 서술한다. 그 결과 칠십 년의 포로 생활과 예속이 시작되었다(다니엘 1:1-2). 바빌론 왕은 이 원정에서 이집트를 거쳐 여호야김 제3년 말 무렵 출발했으나, 이듬해 아홉째 달이 되어서야 예루살렘을 점령하였다. 따라서 다니엘과 예레미야 사이에 겉으로 보이는 불일치가 생긴다(예레미야 25:1). 한 사람은 왕이 원정을 떠난 때부터 계산하고 다른 사람은 원정의 목적이 이루어진 때부터 계산하기 때문이다. 다음으로 다니엘과 그의 동료들이 왕궁에서 어떻게 양육되었는지가 서술된다(다니엘 1:3-7). 그들은 자신들이 더럽혀질까 염려하여 왕이 허락한 매일의 고기 배급을 거부하고 채소로 살아가도록 허락받는다(다니엘 1:8-16). 그들은 당시의 지혜에 크게 통달한다(다니엘 1:17-20). 다니엘은 페르시아 왕 고레스의 치세까지 활약한다(다니엘 1: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