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ohn Gill's Exposition of the Bible
John Gill · 1763
John Gill(1697-1771), Exposition of the Old and New Testament(1746-1763). Public domain. Retrieval mirror: biblehub.com/commentaries/gil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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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 여기서 하늘을 최고 하늘, 곧 하늘들의 하늘, 하나님과 거룩한 천사들의 처소로 이해하는 이들이 있다. 그 하늘은 단번에 완전하게 만들어졌으므로 땅과 달리 그 뒤에는 더 언급되지 않는다고 본다. 또 천사들도 이때 창조되었다고 여겨지는데, 그들이 땅의 기초가 놓일 때 함께 있었기 때문이다(욥 38:6). 그러나 여기서는 오히려 낮고 보이는 하늘들을 뜻한다고 보아야 하며, 적어도 그것들이 배제되지는 않는다. 곧 아직 불완전하고 장식되지 않은 그 실체를 말한다. 아직 궁창이 만들어지지 않았고, 에테르와 공기가 펴지지 않았으며, 그 안에 빛이 두어지거나 해와 달과 별들로 꾸며지지도 않았다. 땅도 나중에 물에서 분리되어 드러난 마른 땅이라는 엄밀한 의미가 아니라, 분리되기 전의 땅과 물의 전체 덩어리, 곧 다음 절에 묘사되는 형체 없고 꾸며지지 않은 상태를 뜻한다. 요컨대 이 말씀은 보이는 하늘들과 물과 땅으로 된 지구가 전능한 능력으로 처음 존재하게 되었을 때의 혼돈 상태를 나타낸다.
두 단어 앞에 붙은 관사는 아벤 에즈라가 말하듯 지시와 표시의 뜻을 지닌다. 곧 “저” 하늘들과 “이” 땅을 가리키며, 여기서 말하는 것은 우리 위에 있거나 우리 아래에 있어 볼 수 있는 가시적 사물임을 보여 준다. 그가 또한 말하듯, 아랍어에서 “하늘”이라는 말은 높음 또는 위를 뜻하는 말에서 왔고(a), “땅”이라는 말은 낮음과 아래 또는 밑을 뜻하는 말에서 왔다(b). 먼저 창조된 것은 바로 이들의 물질 또는 실체였다. 그 앞에 놓인 말은 아벤 에즈라와 김히(c)가 모두 말하듯 실체를 뜻한다. 마이모니데스(d)는 그들의 지혜자들에 따르면 이 불변화사가 “함께”와 같은 뜻이라고 본다. 그렇다면 의미는 하나님이 하늘과 함께 하늘에 있는 모든 것을, 땅과 함께 땅에 있는 모든 것을 창조하셨다는 것이다. 곧 그 안에 있는 모든 것의 실체가, 또는 그 안의 모든 것이 씨앗처럼 함께 있었다는 뜻이다. 그는 여러 종류의 씨앗을 한꺼번에 땅에 뿌리는 농부의 예로 이를 설명한다. 어떤 씨는 하루 뒤에, 어떤 씨는 이틀 뒤에, 어떤 씨는 사흘 뒤에 올라오지만 모두 함께 뿌려졌다는 것이다.
이것들이 “창조되었다”고 말하는 것은 무에서 만들어졌다는 뜻이다. 이 혼돈보다 앞서 존재하여 그것들로 형성될 수 있었던 물질이 어디에 있었겠는가? 사도도 말하기를 “믿음으로 모든 세계가 하나님의 말씀으로 지어진 줄을 우리가 아나니 보이는 것은 나타난 것으로 말미암아 된 것이 아니니라”고 했다(히 11:3). 이 단어가 때로는, 심지어 이 장 안에서도, 이미 존재하는 물질에서 피조물이 산출되는 일을 가리키는 데 쓰이기는 한다(창 1:21). 그러나 나흐마니데스가 관찰하듯, 거룩한 언어에는 무에서 어떤 것을 존재하게 하는 일을 가리키는 말로 여기 쓰인 이 단어 외에는 없다. 아벤 에즈라 같은 많은 유대 해석자들도 여기서 창조를 무에서 어떤 것이 존재하게 되는 산출로 이해한다. 김히도(e) 창조란 어떤 새로운 것을 만드는 것, 곧 무에서 어떤 것을 이끌어 내는 것이라고 말한다. 또 주목할 점은 이 단어가 오직 하나님께만 쓰인다는 것이다. 창조는 하나님의 일이어야 한다. 전능한 능력 외에는 무에서 유를 산출할 수 없기 때문이다.
여기 쓰인 말은 엘로힘이다. 어떤 이들은 이 말을 능력을 뜻하는 다른 말에서 끌어오는데, 창조가 전능한 능력의 행위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것은 오히려 아랍어의 예배하다라는 뜻의 어근에서 온 것으로 보아야 한다(f). 하나님은 모든 종교적 예배와 경배의 대상이시기 때문이다. 모세가 여기서 이 명칭을 사용하는 것은 매우 적절하다. 하늘과 땅의 창조주이신 분만이 예배의 유일한 대상임을 우리에게 가르치기 때문이다. 모세가 이끌었던 유대 민족도 바로 그분을 예배했다. 이 말은 복수형인데 단수 동사와 결합되어 있으므로, 많은 이들은 이것이 신적 본질의 통일성 안에 있는 위격들의 복수성, 또는 삼위일체의 신비를 우리에게 가리키도록 의도된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것이 그 교리를 지탱하기에 충분한지 여부와 별개로, 그 교리는 이것 없이도 확립되어야 하지만, 신격 안의 세 위격이 만물 창조에 관여하셨다는 데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시 33:6 참조). 이교 시인 오르페우스도 이와 얼마간 비슷한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그는 만물이 세 이름을 지닌 한 신성에 의해 만들어졌고, 그 하나님이 만물이라고 썼다(g).
이 모든 것, 곧 하늘과 땅은 하나님에 의해 “태초에” 만들어졌다. 이는 시간의 시작, 또는 시간이 시작되었을 때를 뜻한다. 시간은 피조물들과 함께 시작되었는데, 시간은 피조물의 지속을 재는 척도일 뿐이므로 피조물이 존재하기 전에는 있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또는 야르키가 해석하듯, 창조의 시작, 곧 하나님이 처음 창조하기 시작하셨을 때라는 뜻이다. 이것은 우리 주님의 말씀,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창조의 시작”(막 13:19)으로 가장 잘 설명된다. 의미는 하나님이 창조하시자마자, 또는 하나님이 가장 먼저 창조하신 것이 하늘과 땅이었다는 것이다. 아랍어 역본도 이에 동의하며, 그것들보다 먼저 창조된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고 한다. 또는 다음 말들과 연결하여 “처음에”, 곧 “하나님이 하늘과 땅을 창조하셨을 때”, 그때 “땅은 형체가 없고” 등으로 이해할 수도 있다(h). 예루살렘 타르굼은 이를 “지혜로 하나님이 창조하셨다”고 옮긴다. 잠 3:19를 보라. 고대의 어떤 이들은 이것을 하나님의 지혜, 곧 로고스이자 하나님의 아들로 해석했다.
여기서 우리는 세상이 그 물질이나 형상에 있어서 영원하지 않았음을 배운다. 아리스토텔레스와 몇몇 다른 철학자들이 주장한 것과 달리 세상에는 시작이 있었다. 또 세상의 존재는 원자들의 우연한 운동과 결합에 기인한 것이 아니라, 만물의 제일 원인이며 유일한 창조자이신 하나님의 능력과 지혜에 기인한다. 하늘과 땅보다 먼저 창조된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그러므로 “창세 전”, “세상이 시작되기 전”과 같은 표현은 영원을 나타낸다. 이는 사람의 영혼이 선재했다는 관념이나 메시아의 영혼이 선재했다는 관념을 완전히 무너뜨린다. 그러므로 유대인들이 낙원, 의인들, 이스라엘, 예루살렘 등이 세상보다 먼저 창조되었다고 말하는 것은 거짓이다(i). 다만 그들이 이것들이 하나님께서 장차 있게 하시기로 미리 정하신 것이라는 뜻으로 말한다면, 아마 그것이 그들의 의도일 수는 있다.
(a) “altus fuit, eminuit”, Golius, col. 1219. (b) “quicquid humile, inferum et depressum” ib. col. 70. Hottinger. Smegma Orient. c. 5. p. 70. & Thesaur. Philolog. l. 1. c. 2. p. 234. (c) Sepher Shorash. rad. (d) Moreh Nevochim, par. 2. c. 30. p. 275, 276. (e) 위와 같음(Sepher Shorash.) rad. (f) “coluit, unde” “numen colendum”, Schultens in Job. i. 1. Golius, col. 144. Hottinger. Smegma, p. 120. (g) See the Universal History, vol. 1. p. 33. (h) So Vatablus. (i) Targum Jon. & Jerus. in Gen. iii. 24. T. Bab. Pesachim, fol. 54. 1. & Nedarim, fol. 39. 2.
땅이 혼돈하고 공허하며.... 땅은 지금과 같은 형태가 아니었다. 그렇지 않았다면 모든 물질이 그렇듯 어떤 형태를 가지고 있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것은 유동적인 물질이었고, 물의 부분들이 흙의 부분들과 아직 분리되지 않았다. 지금처럼 바다는 따로 있고 땅은 따로 있는 물과 땅의 구체 형태로 놓인 것이 아니라, 서로 섞이고 뒤섞여 있었다. 요나단 타르굼과 예루살렘 타르굼이 모두 풀이하듯, 그것은 황무하고 사막 같은 상태였으며, 사람과 짐승이 모두 없는 빈 상태였다. 거기에 더해 물고기와 새, 나무와 풀과 식물도 없었다고 할 수 있다. 오비디우스(k)가 부르듯 그것은 카오스, 곧 정리되지 않은 물질 덩어리였다. 헤시오도스(l)도 카오스가 먼저 존재하고 그다음 넓게 펼쳐진 땅이 있었다고 하며, 오르페우스(m)와 다른 이들도 그렇게 말한다. 이것은 여러 민족의 관념과도 맞아떨어진다. 중국인들은 카오스를 만물의 시작으로 보며, 비물질적 존재, 곧 하나님이 그 카오스에서 물질로 된 모든 것을 만드셨다고 한다. 그들은 이것을 음과 양이라 부르는 부분들로 구별하는데, 하나는 감추어진 것 또는 불완전한 것을 뜻하고, 다른 하나는 드러난 것 또는 완전한 것을 뜻한다(n). 이집트인들도 디오도로스 시켈로스(o)가 전하는 견해에 따르면, 우주의 체계가 처음에는 하나의 형상만을 가지고 있었다고 생각했다. 하늘과 땅, 그리고 그것들의 본성이 서로 섞이고 뒤섞여 있다가 점차 분리되어 지금 가진 형태를 얻게 되었다는 것이다. 또한 산코니아톤(p)이 전하는 바에 따르면, 페니키아인들은 우주의 원리를 어둡고 바람 부는 공기, 또는 어두운 공기의 숨결, 그리고 어둠에 둘러싸인 혼탁한 카오스로 보았다.
흑암이 깊음 위에 있고: 곧 땅과 물의 전체 유동 덩어리가 서로 섞여 있었다는 뜻이다. 이 깊음은 다음 구절의 물들로 설명되며, 그 물들이 가장 위에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앞서 말한 것처럼 이 모든 것은 빛도 움직임도 없는 어둡고 혼탁한 카오스였다. 그러다가 다음에 관찰되는 것처럼 성령으로 말미암아 움직임이 일어났다.
하나님의 영은 수면 위에 운행하시니라: 그 물들이 땅을 덮고 있었다(시 104:6). 더 무거운 흙의 입자들은 아래로 가라앉고, 더 가벼운 물들은 그 위로 올라왔다. 그래서 철학자 탈레스(q)는 인도 브라만들(r)과 마찬가지로 물을 만물의 시작으로 삼았다. 아리스토텔레스(s) 자신도 이것이 우주의 기원에 관한 가장 오래된 견해였음을 인정한다. 그는 이 견해가 탈레스만의 견해가 아니라, 그가 살던 세대보다 훨씬 앞선 사람들과 신적인 일들에 관하여 처음 기록한 사람들의 견해였다고 본다. 헤시오도스와 호메로스에게서도 오케아노스, 곧 대양과 테티스가 생성의 부모로 여겨지는 일이 흔하다. 이와 같이 성경도 처음의 땅이 물에서 나와 물로 이루어져 있었다고 표현한다(벧후 3:5). 그리고 이 물들이 땅에서 빠져나가기 전, 그 물들의 표면 위에 “하나님의 영이 운행하셨다.”
이것은 온켈로스, 아벤 에즈라, 많은 유대 저술가들과 그리스도인들이 해석하듯 바람을 뜻하는 것으로 이해해서는 안 된다. 바람은 공기의 움직임인데, 공기는 둘째 날이 되기 전까지 만들어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요나단 타르굼과 예루살렘 타르굼은 이것을 자비의 영이라고 부른다. 많은 유대 저술가들(t)이 말하듯, 이는 메시아의 영을 뜻한다. 곧 복되신 삼위일체의 셋째 위격으로서, 하늘들을 꾸미는 일뿐 아니라 혼돈한 땅과 물의 물질을 형태와 질서로 이끄는 일에도 관여하신 분이다. 욥 26:13을 보라. 이 동일한 영이 물들의 표면 위에서 “움직이셨다”, 또는 품으셨다(u). 암탉이 알을 품어 부화시키듯, 그 물들을 생명 있게 하시고, 섞여 있던 부분들을 나누시며, 그 안에 살아 있는 피조물들을 산출할 수 있는 생명력 있는 효능을 주시려는 것이었다. 이 단어의 의미와 관념은 우리 시인(w)에 의해 훌륭하게 표현되었다.
아낙사고라스의 정신 또는 마음 개념에도 이와 비슷한 흔적이 보인다. 그는 모든 것이 함께 섞여 있을 때 그 정신이 와서 그것들을 질서 있게 했다고 했다(x). 탈레스의 “멘스”도 하나님이라 불리며, 물에서 만물을 형성한 존재로 말해진다(y). 베르길리우스의 “spiritus intus alit” 등도 이와 통한다. 또한 헤르메스가 말한 것, 곧 심연 또는 깊음 속에 무한한 어둠과 물, 그리고 신적 능력을 부여받은 작고 지성 있는 영이 카오스 안에 있었다는 말도 이와 일치한다(z). 아마도 여기서 세계의 알, 또는 오르페우스의 알(a), 곧 만물이 형성되어 나온 첫째 또는 처음 낳은 알의 관념이 나왔을 것이다. 그는 이것을 이집트인들과 페니키아인들에게서 빌렸고, 그들은 아마 유대인들에게서 빌렸을 것이며, 그것은 세계의 표상으로 여겨졌다. 이집트인들에게는 크네프라는 신이 있었는데, 그의 입에서 알이 나왔고 그들은 그것을 세계로 해석했다(b). 페니키아인들의 조파세민, 곧 하늘의 새들도 산코니아톤(c)에 따르면 알의 형상을 하고 있었다. 바쿠스 의식에서도 알을 세계의 형상으로 보고 숭배했다. 마크로비우스(d)는 그렇게 말한다. 그러므로 그는 암탉이 먼저인지 알이 먼저인지에 관한 질문이 어느 정도 중요하고 숙고할 가치가 있다고 생각했다. 또 중국인들은(e) 첫 사람이 카오스에서 알에서 나온 것처럼 산출되었고, 그 껍질은 하늘을, 흰자는 공기를, 노른자는 땅을 이루었다고 말한다. 어떤 이들이 성령 또는 바람의 품음이라고 보는 이 일로부터 아리스토파네스(f)의 바람의 알 관념도 나온 것이다.
(k) “Quem dixere chaos, rudis indigestaque moles”, Ovid Metamorph. l. 1. Fab. 1. (l) &c. Hesiodi Theogonia. (m) Orphei Argonautica, ver. 12. (n) Martin. Sinic. Hist. l. 1. p. 5. (o) Bibliothec. l. 1. p. 7. (p) Apud Euseb. Praepar. Evangel. l. 2. c. 10. p. 33. (q) Laert. in Vita Thaletis, p. 18. Cicero do Natura Deorum, l. 1. (r) Strabo. Geograph. l. 15. p. 491. (s) Metaphysic. l. 1. c. 3. (t) Zohar in Gen. fol. 107. 3. and fol. 128. 3. Bereshit Rabba, fol. 2. 4. and 6. 3. Vajikra Rabba, sect. 14. fol. 156. 4. Baal Hatturim in loc. Caphtor Uperah, fol. 113. 2. (u) “incubabat”, Junius, Tremellius, Piscator, “as a dove on her young”, T. Bab. Chagigah, fol. 15. 1. (w) ----and, with mighty wings outspread, Dovelike satst brooding on the vast abyss, And mad’st it pregnant.---- Milton’s Paradise Lost, B. 1. l. 20, 21, 22. The same sentiment is in B. 7. l. 234, 235. (x) Laert. in Vita Anaxagor. p. 91. Euseb. Evangel. Praepar. l. 10. c. 14. p. 504. (y) Cicero de Nat. Deorum, l. 1. Lactant, de falsa Relig. l. 1. c. 5. (z) Apud Drusium in loc. (a) Hymn. ver. 1, 2. (b) Euseb. Praepar. Evangel. l. 3. c. 11. p. 115. (c) Apud Ib. l. 2. c. 10. p. 33. (d) Saturnal. l. 7. c. 16. (e) Martin. Sinic. Hist. l. 1. p. 3, 4. (f) In Avibus.
하나님이 이르시되.... 이 표현은 이 창조 기사에서 아홉 번 사용된다. 이방인 롱기누스는 그의 논문 『숭고에 관하여』에서 이것을 숭고함의 고귀한 사례로 감탄했다. 또한 시 33:6에서는 이 말이 하나님의 뜻과 능력과 권위와 효력을 나타내는 것으로 매우 아름답게 풀어지고 설명된다. 하나님의 말씀은 능력으로 옷 입고 있으며, 하나님은 자신이 원하시는 것은 무엇이든, 또 원하시는 즉시 행하실 수 있고 실제로 행하신다. 그의 명령은 언제나 순종을 받는다. 아마도 여기서 말씀하시는 신적 위격은 로고스, 곧 하나님의 말씀이실 것이다. 그는 태초에 하나님과 함께 계셨고 하나님이셨으며, 친히 모든 피조물을 비추는 빛이시다.
그 말씀은 “빛이 있으라”였고, 빛이 있었다. 곧 빛이 즉시 나타났다. 사도가 말하듯 하나님은 “어두운 데서 빛이 비치라”고 명령하셨다(고후 4:6). 이것은 어두운 카오스에서 만들어진 첫 번째 것이었다. 새 창조, 곧 마음속 은혜의 역사에서도 빛은 그 안에서 가장 먼저 산출되는 것이다. 이 빛이 무엇이었는지는 쉽게 말하기 어렵다. 일부 유대 랍비들과 몇몇 그리스도인 저술가들은 이것이 천사들을 가리킨다고 생각하지만, 이 빛의 목적과 용도를 보면 전혀 그럴듯하지 않다. 또 다른 이들은 이것이 태양과 동일한 것이라고 보는데, 넷째 날에 태양에 대한 반복이 있는 것은 태양이 땅과 식물에 끼치는 용도와 효력 때문이라고 한다. 그러나 더 올바른 견해를 가진 이들은 이것을 태양과 다른 것으로 보고, 뒤에 태양의 몸체 안으로 모이고 완성된 더 희미한 빛으로 이해한다(f).
잔키우스(g)의 견해, 그리고 우리 동포 풀러 씨(h)가 인정한 견해에 따르면, 그것은 빛나는 물체 또는 작은 빛나는 구름이었다. 그것은 동쪽에서 서쪽으로 도는 원운동을 통해 낮과 밤을 이루었다(i). 아마도 그것은 광야에서 이스라엘 백성을 인도했던 불기둥 같은 것과 어느 정도 비슷했을 것이며, 의심할 바 없이 빛뿐 아니라 열도 가지고 있었을 것이다. 실제로 이 둘은 많든 적든 함께 간다. 그러므로 이 물체는 그런 불의 입자들로 이루어졌다고 생각할 수 있다. “우르”라는 말은 불과 빛을 모두 뜻한다.
(f) Vid. Menasseh ben Israel conciliator in Gen. qu. 2. (g) De Operibus Dei, par. 3. l. 1. c. 2. col. 239. and l. 2. c. 1. (h) Miscell. Sacr. l. 1. c. 12. (i) Milton seems to be of the same mind:----- -----and forthwith light. Ethereal, first of things, quintessence pure, Sprung from the deep, and from her native east To journey thro' the airy gloom began, Sphered in a radiant cloud, for yet the sun Was not; she in a cloudy tabernacle Sojourned the while.----- Paradise Lost, B. 7. l. 243, &c.
하나님이 보시기에 빛이 좋았더라.... 매우 즐겁고 기쁜 것이며, 유용하고 유익한 것이었다. 곧 피케렐루스(k)가 해석하듯, 하나님은 그것이 좋고 큰 도움이 될 것을 미리 보셨다는 뜻이다. 아직 땅에는 그 빛으로부터 어떤 유익을 받을 거주자들이 없었기 때문이다. 전 11:7을 보라. 그뿐 아니라, 그 빛은 큰 광명체가 만들어지기 전, 뒤따르는 이틀의 일을 준비하기 위한 현재의 몇 가지 목적에도 틀림없이 좋았다. 곧 하늘의 어둠과 깊음을 덮고 있던 어둠을 몰아내고, 하나님의 영이 물들을 움직이며 그것들을 흙의 부분들과 나누고 계실 때, 카오스의 더 가벼운 부분들을 희박하게 하고 증발시켜 끌어올려 넓게 펼쳐진 에테르, 확장된 공기, 둘러싼 대기를 형성하게 하기 위한 것이었다. 또한 그것은 마른 땅을 이루게 될 부분들을 결합하고 굳게 하며, 그 땅이 드러났을 때 풀과 채소와 과목을 내도록 따뜻하게 하는 데에도 쓰였을 것이다.
하나님이 빛과 어둠을 나누사: 이 말로 보아 빛의 입자들과 어둠의 입자들이 함께 섞여 있었던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광명이 어느 길로 말미암아 나뉘는가”, 곧 어둠에서 갈라지고 분리되는가 하는 질문은 주님 자신이 사람들에게 던지신 질문이며, 오직 그분만이 대답하실 수 있다(욥 38:24). 하나님은 하나를 다른 하나와 그렇게 나누셔서, 그것들이 같은 장소와 같은 시간에 함께 있지 않게 하셨다. 빛이 한 반구에 있을 때 어둠은 다른 반구에 있다(l). 또한 일정하고 변함없는 순환을 통해 하나가 다른 하나를 뒤따르게 하셨으며, 하나의 움직임으로 다른 하나가 물러가게 하셨다. 더 나아가 하나님은 아벤 에즈라가 말하듯, 그것들을 서로 다른 이름으로 부르심으로 나누고 구별하셨다. 이것이 다음에 이어지는 내용이다.
(k) In Cosmopoeiam, p. 267. (l) Milton in the place above referred to says, it was divided by the hemisphere. Paradise Lost, B. 7. l. 243, &c.
하나님이 빛을 낮이라 부르시고 어둠을 밤이라 부르시니라.... 앞서 말한 빛나는 물체의 순환 운동에 의해서든, 또는 카오스가 자기 축을 중심으로 그 빛을 향해 회전함으로써든, 스물네 시간 안에 빛과 어둠의 교대가 있었다. 지금도 태양이나 땅의 비슷한 운동으로 그런 일이 일어나는 것과 같다. 하나님께서 이렇게 이름을 붙이신 뒤로 우리는 하나를 낮이라 하고, 다른 하나를 밤이라 부른다.
저녁이 되고 아침이 되니 이는 첫째 날이니라: 저녁은 밤, 곧 어둠의 첫 부분인데 여기서는 온 밤을 가리키는 말로 쓰였고, 그 길이는 대략 열두 시간쯤 되었을 것이다. 아침은 낮, 곧 빛의 첫 부분인데 역시 전체 낮을 가리키는 말로 쓰였고, 같은 길이를 이루어, 둘이 함께 스물네 시간으로 이루어진 하나의 자연일을 만들었다. 다니엘이 “저녁 아침”이라고 부른 것(단 8:26)과 사도가 “밤낮”이라고 부른 것(고후 11:25)이 이와 같다. 탈레스는 밤과 낮 중 어느 것이 먼저 만들어졌느냐는 질문을 받고, 밤이 하루 앞섰다고 대답했다(m).
유대인들은 하루를 그 전날 저녁부터 시작한다. 다른 많은 민족들도 그렇게 했다. 아테네 사람들은 해질 때부터 다음 해질 때까지를 하루로 계산하곤 했다(n). 겔리우스(o)가 전하듯, 로마 사람들은 한밤중부터 다음 한밤중까지를 하루로 보았다. 타키투스(p)는 고대 게르만족에 관해, 그들이 날의 수가 아니라 밤의 수를 세었고 밤이 낮을 이끈다고 여겼다고 보고한다. 카이사르(q)도 브리튼의 고대 드루이드들에 관해, 그들이 시간을 날수가 아니라 밤수로 세었고, 생일과 달과 해의 시작을 밤 뒤에 낮이 따르는 방식으로 지켰다고 관찰한다. 우리에게도 아직 이 흔적이 조금 남아 있는데, 이를테면 “this day se'nnight” 또는 “this day fortnight”라고 말할 때가 그렇다.
제임스 카펠루스에 따르면 창조의 이 첫째 날은 4월 18일이었다. 그러나 어셔 주교에 따르면 그것은 10월 23일이었다. 한 사람은 창조를 봄에 시작시키고, 다른 사람은 가을에 시작시킨 것이다. 휘스턴 씨의 견해에 따르면 창조의 여섯 날은 여섯 해와 같았다. 그는 사람의 타락 전에는 하루와 한 해가 같은 것이었고, 땅이 자기 축을 중심으로 하는 일일 회전은 타락 때 시작되었다고 생각했다. 이와 부합하여 엠페도클레스가 가르친 교리도 매우 주목할 만하다. 그는 인류가 처음 땅에서 나왔을 때, 태양 운동의 느림 때문에 하루의 길이가 현재 우리의 열 달과 같았다고 했다(r).
“저녁”으로 번역된 히브리어 “에레브”는 몇몇 그리스 시인들에게도 보존되어 있다. 헤시오도스(s)는 “카오스”에서 “에레보스”와 검은 밤이 나왔고, 밤에서 에테르와 낮이 나왔다고 말한다. 아리스토파네스(t)의 말도 이렇다. 카오스와 밤과 검은 “에레보스”가 먼저 있었고, 넓은 타르타로스가 있었으나, 땅도 공기도 하늘도 없었고, 에레보스의 무한한 품 안에서 검은 날개의 밤이 먼저 바람의 알을 낳았다는 것이다. 또 오르페우스(u)는 밤을 만물의 시작으로 삼는다.
(m) Laert. in Vita Thaletis. p. 24. (n) Plin. Nat. Hist. l. 2. c. 77. (o) Noct. Attic. l. 3. c. 2. (p) De Mor. German. c. 11. (q) Commentar. l. 6. p. 141. (r) Vid. Universal History, vol. 1. p. 79. (s) ', &c. Hesiod. Theogonia. (t) &c. Aristophanes in Avibus. (u) Hymn. 2. ver. 2.
하나님이 이르시되 물 가운데에 궁창이 있으라.... 그 물들 위에는 하나님의 영이 앉아 움직이고 계셨다(창 1:2). 그 일부는 이미 산출된 불과 빛의 물체의 힘으로 구름이 되어 하늘로 끌어올려졌고, 다른 일부는 아직 뒤에 있을 일처럼 한 곳으로 모이지 않은 채 땅에 남아 있었다. 하나님은 이 둘 사이에 “궁창이 있으라”, 또는 “펼쳐진 공간”(v)이 있으라고 명하셨다. 그것은 휘장이나 장막이나 덮개처럼 펼쳐지고 넓게 펴진 어떤 것이다. 성경에서 하늘을 펼치신다고 말하는 모든 구절들은 이 궁창 또는 펼쳐진 공간을 가리킨다. 뒤에 이것이 그렇게 불리기 때문이다. 시 104:2를 보라. 그리고 이것은 공기를 뜻한다. 시 19:1에 대한 타르굼도 그렇게 번역한다.
우리가 그것을 “firmament”, 곧 궁창이라 부르는 것은 헬라어 번역자가 사용한 단어(w)에서 온 것이다. 그것이 견고하고 지속적이며 오래가기 때문이다. 또 그것은 넓게 뻗어 있다는 점에서 “펼쳐진 공간”이라는 이름을 가진다. 그것은 땅에서 셋째 하늘에까지 이른다. 그 낮고 더 두꺼운 부분들은 우리가 숨 쉬는 대기를 이루고, 더 높고 더 얇은 부분들은 새들이 나는 공기와 해와 달과 별들이 놓인 에테르 또는 하늘을 이룬다. 이 모든 것들이 궁창 또는 펼쳐진 공간 안에 있다고 말해지기 때문이다(창 1:17). 이것들이 성경이 말하는 하늘의 층들이다(암 9:6). 철학자들도 공기를 높은 영역, 중간 영역, 낮은 영역으로 나눈다. 요나단 타르굼도 이 궁창 또는 펼쳐진 공간을 하늘의 끝들과 바다의 물들 사이에 둔다.
시리아어에서 이 단어는 묶고 압축한다는 의미를 가진다(x). 그래서 이 단어는 눅 6:38의 시리아어 역본에서도 사용된다. 이것은 공기가 형성되었을 때 카오스를 압축하고 그 부분들을 나누고 분리하는 능력을 가졌음을 나타낼 수 있다. 지금도 공기는 땅과 그 안에 있는 여러 부분들을 압축하며, 그 압축으로 그것들을 보존하고 제자리에 붙들어 둔다(y).
물과 물로 나뉘게 하라: 곧 그 아래의 물들을 그 위의 물들과 나누라는 뜻이다. 이것은 다음 절에서 설명되며, 거기에서 더 다룰 것이다.
(v) “expansio”, Montanus. Tigurine version; “extensio”, Munster, Fagius, Vatablus, Aben Ezra; “expansum”, Junius, Tremellius, Piscator, Drusius, Schmidt, Sept. “firmamentum”, V. L. (w) Id. (x) Vid. Castell. Lex. col. 3647. Fuller. Miscell. Sacr. l. 1. c. 6. (y) Vid. Dickinson. Physica “vetus et vera”, c. 7. sect. 13, 14. p. 88, 89.
하나님이 궁창을 만드사.... 말씀하심으로, 곧 그것이 존재하도록 명령하심으로 만드셨다. 하나님은 그것을 카오스에서 산출하시고 하늘들의 하늘과 우리의 땅 사이의 광대한 공간에 펼치셨다(z).
궁창 아래의 물과 궁창 위의 물로 나뉘게 하시니: 곧 궁창의 낮은 부분 아래에 있는 물과, 그 위 대기 중에 있는 물을 나누셨다는 뜻이다. 위의 물은 물로 가득 찬 구름들이며, 거기서 비가 땅 위로 내린다. 이 궁창은 그것들과, 아직 한 곳으로 모이지 않고 땅에 남아 있어 그 아래에 있는 물들 사이를 나누었다. 지금도 그것은 하늘의 구름들과 바다의 물들 사이를 나누고 있다.
그러나 그레고리 씨(a)는 여기서 가장 높은 천구 위에 있는 물들의 깊음, 또는 하늘들과 하늘들의 하늘 사이의 큰 깊음이 뜻해진다고 본다. 그곳에는 마치 창고들 안에 있듯 깊음이 저장되어 있고, 하나님은 눈과 우박과 비의 보물들을 가지고 계시며, 온 세상을 덮은 대홍수 때 세상을 잠기게 한 물들을 거기서 꺼내셨다는 것이다. 다른 이들은 위의 물들을 수정 같은 하늘로 보는데, 그것은 맑음 때문에 물을 닮았으며, 밀턴(b)은 그것을 “수정 같은 대양”이라고 부른다.
그대로 되니라: 궁창은 그에 따라 만들어졌고, 그 아래의 물들과 그 위의 물들을 나누는 이 목적을 이루었다. 또는 “그것이 견고하게 되었다”(c), 곧 안정되고 지속적인 것이 되었다는 뜻이다. 그리고 그것은 그렇게 계속되어 왔다.
(z) ------and God made The firmament, expanse of liquid, pure, Transparent, elemental air, diffused In circuit to the uttermost convex Of this great round.------ Milton, Paradise Lost, B. 7. l. 263, &c. (a) Notes and Observations, &c. c. 23. p. 110, &c. (b) Ibid. l. 291. (c) “et factum est firmum”, Fagius & Nachmanides in ib.
창세기 1장 서론
이 장은 우주와 그 안에 있는 모든 것의 창조를 다룬다. 먼저 하늘과 땅의 창조를 총괄적으로 선언하고, 땅이 처음 생겨났을 때의 상태와 형편을 설명한다(창 1:1). 이어서 창조의 여섯 날마다 이루어진 일을 말한다. 빛과 빛이 어둠에서 나뉘고 둘의 이름이 붙여진 일, 곧 첫째 날의 일을 설명한다(창 1:3). 궁창과 그 용도와 이름, 곧 둘째 날의 일을 말한다(창 1:6). 땅이 드러나고 땅에서 풀과 채소와 나무가 난 일, 곧 셋째 날의 일을 말한다(창 1:9). 해와 달과 별들, 그 위치와 용도, 곧 넷째 날의 일을 말한다(창 1:14). 공중의 새와 바다의 물고기, 곧 다섯째 날의 일을 말한다(창 1:19). 온갖 가축과 짐승과 기는 것들을 말하고(창 1:24), 이어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남자와 여자로 창조된 사람을 말한다. 사람에게 다른 피조물을 다스리는 권세가 주어졌고, 이는 하나님의 의논의 열매였다(창 1:26). 또 사람과 짐승을 위한 먹을거리가 마련되었다(창 1:29). 이 장은 하나님이 자신의 모든 일을 살피시고 그것들을 좋게 여기신 일로 끝난다. 이 모든 일은 여섯째 날의 일이었으며, 그 기간 안에 이루어진 창조 기사를 마무리한다(창 1: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