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am Clarke's Commentary and Critical Notes on the Bible
Adam Clarke · 18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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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지자 호세아서 서론
브에리의 아들 호세아는 소선지자 가운데 첫째다. 에피파니우스는 그가 잇사갈 지파에 속한 벨레못 성읍 사람이라고 말하는데, 이곳은 십중팔구 이 지파 안에서 에스드라엘론 쪽에 자리한 벨므온과 다르지 않을 것이다. 랍비들은 부라가 그의 아버지라고 말한다. 부라는 역대기에 언급되며, 디글랏 빌레셀이 이스라엘 지파 가운데 일부를 사로잡아 갔을 때 르우벤 지파의 방백이었다. 그러나 만일 그렇다면 호세아는 르우벤 지파 사람이며 요단 저편 벨므온 태생이라고 해야 한다. 이 선지자는 사마리아 왕국에 살았고, 그의 예언은 대부분 이 나라를 내다보고 있으나 유다 왕국에 관계되는 몇몇 특정한 내용도 들어 있다.
그의 예언서 서두에서 우리는 그가 유다 왕 웃시야와 요담과 아하스와 히스기야 때에, 그리고 이스라엘 왕 여로보암 2세 때에 예언하였다고 읽는다. 만일 그가 이 모든 군주의 통치 기간에 예언하였다면 그는 매우 오래 살았어야 한다. 웃시야가 통치를 시작한 때부터 히스기야의 통치가 끝날 때까지가 백열두 해이기 때문이다. 웃시야는 A.M. 3194년에 통치를 시작하였고 히스기야의 통치는 3306년에 끝났다. 여기에 호세아가 예언을 시작할 무렵의 나이였을 스무 해나 스물다섯 해를 더해 보라. 그러면 백서른두 해 또는 백서른일곱 해가 된다. 또 호세아가 예언하지 않았을 수도 있는 기간으로 웃시야에게서 열 해를, 히스기야에게서 그만큼을 뺀다 하여도 여전히 백열두 해 또는 백열다섯 해가 남는다.
호세아의 예언을 다 모아 보아도 그가 그토록 오래 예언하였음을 증명하는 것은 하나도 발견되지 않는다. 게다가 그가 유다 왕들의 통치 아래 살지 않았는데 어찌하여 그의 예언이 표제에서 유다 왕들의 통치로 연대가 매겨져야 하겠는가? 그러므로 이 표제는 호세아의 것이 아니라 어떤 옛 필사자의 것이며, 이 선지자의 사역이 실제로 시작되는 곳은 “여호와께서 호세아를 통하여 하신 말씀의 시작”이라는 구절이라고 보는 편이 매우 개연성이 높다. 우리의 견해로는 그가 여로보암의 통치 말엽에 시작하였으니, 이 여로보암은 이 이름을 가진 이스라엘의 둘째 왕이다. 칼메를 보라.
제롬과 다른 많은 이들은 호세아가 우리에게 그 글이 남아 있는 선지자 가운데 가장 오래된 이라고 믿으며, 그가 디글랏 빌레셀에게 사로잡혀 간 네 지파의 첫 포로 사건과 살만에셀에 의한 사마리아 왕국의 멸망을 목격한 증인이라고 믿는다. 제롬은 그가 그 뒤에도 예언하였다고 주장한다. 1장의 첫 절들은 여로보암 2세의 아들인 이스라엘 왕 스가랴의 죽음을 내다본다. 1장 여섯째 절부터 3장까지는 이스라엘의 포로됨에 대한 예언이다. 그러나 그는 이 포로됨을 예고한 뒤에 그 돌아옴과 그 끝을 선언한다. 그는 열 지파의 나라에 만연한 무질서를 강하게 논박한다. 그의 시대에는 단과 벧엘과 사마리아뿐 아니라 길갈과 다볼 위와 세겜과 브엘세바와 길르앗 산지에도 우상이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는 이스라엘 사람들을 온전히 부패하여 그 죄의 분량이 가득 찬 백성으로 말하며, 그들의 금송아지가 헐리고 땅에 던져지며 앗수르로 옮겨 가리라고 예고한다.
그는 같은 엄정함으로 유다에 만연한 무질서를 지적한다. 그는 길갈에서 거짓 신들에게 예배하러 간 자들을 대적하여 일어선다. 그는 산헤립이 유다 영토를 침공한 일을 말한다. 그는 유다 백성이 열 지파의 포로됨 이후에도 얼마 동안은 자기 땅에 머물러 있으리라고, 그러나 그 뒤에는 그들 자신도 마찬가지로 유브라데 저편으로 사로잡혀 가리라고, 그리고 여호와께서 일정한 햇수가 지난 뒤에 그곳에서 그들을 다시 데려오시리라고 예고한다. 호세아의 문체는 모호하고 그의 표현은 자주 불분명하고 난해하다. 그가 말하는 일들은 시대가 멀고 우리가 그 시대의 역사를 알지 못하는 까닭에 그 모호함을 한층 더한다.
호세아의 예언 첫머리에서 우리는 여호와께서 그에게 “음란한 여자를 맞이하고 음란한 자식들을 낳으라”고 명하셨음을 읽는다. 곧 혼인하기 전에는 방탕한 삶을 살았으나 혼인한 뒤에는 모든 악한 행실에서 떠날 여자와 결혼하라는 것이며, 그 자식들은 어머니가 이전 삶에서 얻은 흠 때문에 음란의 자식이라 불리기는 하였으나 적법한 자녀라는 것이다. 이 창기 여인과 그에게서 태어날 자식들은 하나의 표상이자 일종의 실제 예언으로서, 전에는 여호와의 아내였으나 후에 우상을 숭배하며 부패하게 된 사마리아와 열 지파의 우상숭배와 배신을 그려 보였다.
이 신실하지 못한 여인의 자식들은 어머니의 우상숭배를 본받으므로 음란의 자식들이다. 하나님은 이 자식들에게 이스르엘(Jezreel), 곧 ‘하나님이 흩으시리라’, 로루하마(Lo-rechamah), 곧 ‘긍휼히 여김을 받지 못하는 자’, 로암미(Lo-ammi), 곧 ‘너는 더 이상 내 백성이 아니다’라는 이름을 주시니, 이는 다음을 보이기 위함이다.
하나님이 이스라엘 왕 예후의 집에, 그가 열 지파의 나라를 찬탈할 때에 이스르엘에서 범한 죄를 갚으시리라는 것.
여호와께서 우상을 숭배하는 죄 많은 자기 백성을 긍휼 없이 대하시리라는 것.
그가 그들을 버리시고 더 이상 그들을 자기 백성으로 여기지 않으시리라는 것.
호세아는 간결하고 경구적이며 돌연하다. 연결 불변화사와 역접 불변화사를 생략하는 것이 그의 방식이니, 역본이나 사본에서 그것들이 이따금 보충되어 있는 것을 볼 때에 이 관찰을 기억해야 한다. 이런 점들이 그를 두드러지게 하는 그 모호함의 원인 가운데 하나다. 그러나 가장 큰 어려움은 인쇄된 본문을 훼손하는 잘못된 독법에서 생겨난다. 그는 주로 이스라엘을 향해 말하지만 유다를 자주 언급한다. 그는 백성의 악덕을 논박할 뿐 아니라 그들의 왕과 방백과 제사장들의 행실을 날카롭게 고발한다.
히브리 선지자 가운데 많은 이가 그러하듯, 그는 우상을 숭배하는 악한 백성을 향한 하나님의 보응을 선언하는 말을 그들을 위해 예비된 풍성한 긍휼의 약속으로 누그러뜨린다. 그리고 이 두 주제 사이를 오가는 그의 전환은 빠르고 예상 밖이다. 그에게는 짧고 생동하는 비유가 넘치며, 가장 뛰어난 그리스와 로마 작가들처럼 비교를 나타내는 불변화사를 자주 생략한다. 그는 이런 비유들을 때로 가장 높이 평가받는 시의 정신으로 쌓아 올린다. 호세아 6:3, 6:4; 9:10; 11:11; 13:3; 14:5-7을 보라. 그에게는 표현의 큰 힘이 자주 나타난다. 호세아 1:7; 2:3, 2:18, 2:21, 2:22; 4:2; 6:5; 11:4; 12:1을 보라. 그는 때때로 매우 생기가 넘친다. 호세아 4:14; 5:8; 8:1; 9:5, 9:14; 13:10, 13:14를 보라. 이 선지자에게는 아름다운 대목이 많으니, 전편에 걸친 직유가 그러하고, 알레고리로는 호세아 2:2, 2:20; 7:11, 7:12, 8:7; 10:11, 10:12, 10:13; 13:15가 그러하며, 애상으로는 호세아 11:3과 호세아 11:8, 11:9가, 비유적 표현으로는 호세아 13:12; 14:2가 그러하다. 또한 참으로 숭고한 부분들도 있으니, 호세아 5:14, 5:15; 8:7; 10:8; 13:7, 13:8이 그러하다.
나는 이미 이사야서 첫머리에서 모든 선지자의 연대 순서표를 제시하였다. 여기에 열두 소선지자에 관한 뉴컴 대주교의 표를 덧붙이는 것은 그 표가 앞의 것과 얼마간 다른 점을 담고 있기 때문이다.
열두 소선지자가 활동한 순서와 시기
요나는 주전 823년과 주전 783년 사이에 이스라엘 왕 여로보암 2세의 통치 기간에 예언하였다. 열왕기하 14:25을 보라.
아모스는 주전 823년경부터 주전 785년경까지 유다 왕 웃시야의 통치 기간과 이스라엘 왕 여로보암 2세의 통치 기간에 예언하였다. 아모스 1:1을 보라.
호세아는 주전 809년경부터 주전 698년경까지 유다 왕 웃시야와 요담과 아하스와 히스기야의 통치 기간, 그리고 이스라엘 왕 여로보암 2세의 통치 기간에 활동하였다. 호세아 1:1을 보라. [그러나 앞 면의 고찰을 보라.]
미가는 주전 757년과 주전 698년 사이에 유다 왕 요담과 아하스와 히스기야의 통치 기간에 활동하였다. 미가 1:1을 보라.
나훔은 주전 720년과 주전 698년 사이에 히스기야의 통치 기간에 예언하였다고 추정된다.
요엘은 주전 697년과 주전 660년 사이에 므낫세의 통치 기간에 예언하였다고 추정된다.
스바냐는 주전 640년과 주전 609년 사이에 요시야의 통치 기간에 예언하였다. 스바냐 1:1을 보라.
하박국은 주전 606년과 주전 598년 사이에 여호야김의 통치 기간에 예언하였다고 여겨진다.
오바댜는 주전 587년 직후, 곧 느부갓네살이 예루살렘을 함락한 때와 같은 군주가 에돔 족속을 멸망시킨 때 사이에 예언하였다.
학개는 바벨론에서 돌아온 뒤 주전 520년경에 예언하였다. 학개 1:1을 보라.
스가랴는 주전 520년부터 주전 518년경까지 예언하였고 학개와 동시대 사람이었다. 스가랴 1:1을 보라.
말라기는 일반적으로 주전 436년경에 예언하였다고 믿어진다.
혼인 서약을 저버린 아내와 그 본을 따를 자식들을 낳는 일이라는 표상 아래에서, 선지자는 하나님을 격동시켜 그들을 버리게 한 열 지파의 부끄러운 우상숭배를 나타낸다. 이 대목 전체는 말이 아니라 행동으로 알리는 것이다. 자식들의 이름은 모두 상징적이다. 첫째 이름은 회개하지 않은 죄책과 그들의 이스르엘 궁에서 저질러진 잔혹한 행위를 이스라엘에게 상기시키려는 것이다(열왕기상 21:1). 둘째와 셋째 이름은 긍휼을 얻지 못함과 내 백성이 아님을 뜻하는 것으로, 그들의 죄책의 결과로 그들이 하나님께 버림받게 될 것을 가리킨다. 호세아 1:1-9. 그러나 하나님은 이방인을 불러들이심으로(호세아 1:10), 또 마지막 날에 하나님의 모든 자녀를 한 머리 되신 메시아 아래 연합시키심으로(호세아 1:11) 자기 교회가 입은 손실을 회복하겠다고 약속하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