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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dam Clarke's Commentary and Critical Notes on the Bible

Adam Clarke · 18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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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dam Clarke's Commentary and Critical Notes on the Bible

Adam Clarke · 18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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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세아 14장 서론 Adam Clarke's Commentary and Critical Notes on the Bible

Hosea 14 Introduc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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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 장을 맺는 저 무서운 보복의 선언에 이끌려, 선지자는 이스라엘에게 회개할 것을 권면하며 그 정황에 매우 합당한 아름다운 기도의 본을 그들에게 마련해 준다(호세아 14:1-3). 이에 하나님께서는, 뉘우치는 자를 언제나 기꺼이 용서하시는 분으로 등장하시어 큰 축복의 약속을 베푸시는데, 이는 푸른 풀을 소생시키는 저 흠뻑 내리는 이슬에 빗댄 것이다. 그 이슬은 흔히 현세의 구원뿐 아니라 복음이 주는 풍성하고도 시원한 위로를 가리킨다(호세아 14:4-7). 그들이 우상숭배에서 돌이킬 것과 그에 따른 형통함이 푸르고 무성한 잣나무의 상징 아래 예고된다(호세아 14:8). 그러나 이 약속들은 의의 열매를 맺을 자들에게 한정되며, 악인은 그 약속에 아무 몫이 없다고 선언된다(호세아 14:9).

호세아 14장 1 Adam Clarke's Commentary and Critical Notes on the Bible

Hosea 1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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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스라엘아 네 하나님 여호와께로 돌아오라 — 이 말씀은 이제 사로잡혀 있는 백성에게 하신 말씀으로 볼 수 있다. 그들은 이미 많은 고난을 겪고 있었으나, 회개하지 아니하면 앞으로 겪어야 할 고난이 훨씬 더 많이 남아 있었다. 그러나 이 모든 재앙은 그토록 단정적으로 예고되었음에도, 백성이 회개하고 돌이키기만 한다면 아직 막을 수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이렇게 회개하라고 권면한다는 사실 자체가, 그들에게 아직 회개할 힘이 있었고 하나님께서 그들을 구원하시며 이 모든 재앙을 돌이키실 준비가 되어 계셨음을 보여 준다. 이 모든 것은 사건의 우연성이라는 교리로 쉽게 설명된다. 곧 수많은 사건을 있음과 없음의 가능성 위에 저울처럼 매달아 두고, 그 저울이 어느 쪽으로 기울지는 사람의 의지에 맡겨 두신다는 것이며, 또한 하나님께서는 자기 의지로 우연적인 것이 되게 정하신 일을 절대적으로 확실한 것으로 미리 아시지 아니한다는 것이다. 어떤 엄숙한 사람들은 이 교리를 두고 신성모독의 말을 퍼부었고, 철학적 불신자들은 이를 성토하였다. 그러나 이 교리가 없다면 운명과 무서운 필연이 만물의 통치자가 될 수밖에 없고, 기도는 쓸데없는 참견이 되며, 섭리란 바꿀 수 없는 사건들의 벗어날 길 없는 금강석 사슬에 지나지 않게 된다. 그리하여 모든 덕은 악덕이 되고 악덕은 덕이 되며, 혹은 그 둘 사이에 아무 구별도 없게 된다. 각각은 주권적이고 제어할 수 없는 의지와 변함없는 필연에 의하여 영원 전에 결정되고 바꿀 수 없이 고정된 것이 되며, 그 작용에서 벗어날 수 있는 사람의 영혼은 하나도 없고 우주 안의 어떤 일도 지금 있는 그대로가 아닌 다른 것이 될 수 없게 된다. 이러한 신성모독에서, 그리고 그것을 옹호하는 월간 간행물들에서, 선하신 주여, 우리를 건지소서!

호세아 14장 2 Adam Clarke's Commentary and Critical Notes on the Bible

Hosea 1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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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는 말씀을 가지고 — 하나님께서 친히 네 입에 넣어 주신 말씀을 쓸 때에, 네가 바르게 기도하고 있음을 확신할 수 있다. 바로 이 근거 위에서, 주기도문은 믿음으로 드릴 때에 사람이 지은 어떤 글에서도 찾을 수 없는 힘을 지닌다. 우리 종교개혁자들이 공적 예식서에 그것을 그토록 자주 넣게 된 것도 바로 이 점을 고려한 까닭이라고 짐작할 수 있다.

여기 하나님께서 지시하신 순서를 보라.

  1. 이 자비로운 초청을 듣거든 그것이 참되다고 믿으라.

  2. 네 우상들을 버리고, 너의 창조주요 왕이요 구주이신 하나님께로 돌아오라.

  3. 네가 힘을 얻은 그 말씀을 가지고 하나님 앞에 나아가 그 말씀으로 간구하라.

  4. 네 죄악을 기억하고 깊이 슬퍼하며, 하나님께 그것을 다 없애 주시기를 구하라.

  5. 하나님께서 나누어 주시려고 기다리시는 것을 받도록 믿음을 발휘하라. “우리를 은혜로이 받으소서”, 곧 וקח טוב(베카흐 토브, vekach tob)이니, ‘받으소서’ 또는 ‘우리로 선한 것을 받게 하소서’라는 뜻이다. 주께서 우리에게서 악을 비우셨으니, 우리를 선함으로 채우소서.

  6. 그러한즉 은혜를 힘입어 그의 영광을 위하여 살기로 결심하라. “그리하면 우리가 주께 우리 입술의 수송아지를 드리리이다”(여기 ‘수송아지’는 פרים(파림, parim)인데, 여러 역본은 대체로 ם(멤, mem)을 빼고 פרי(페리, peri), 곧 ‘열매’로 읽는다). 이는 곧 찬양과 감사와 사은의 제사요, 우리 입술이 여러 번 약속한 진심 어린 순종이다.

  7. 이렇게 결심하였거든, 너를 지혜롭고 유익하고 거룩하고 행복하게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오직 하나님께만 의지하겠다는 결의를 낱낱이 밝히라. 그 결의는 이러하다.

  8. 우리가 앗수르의 구원을 의지하지 아니하며 — 우리는 이 부하고 강한 왕을 의지하지도 아니하고 두려워하지도 아니할 것이다. 우리는 참된 안식과 마음의 평안을 얻으려고 재물이나 권력을 바라보지 아니할 것이다.

  9. 말을 타지 아니하며 — 우리는 다시는 저 교만한 애굽 기병에게 소망을 두어, 주의 신적 공의가 우리를 넘기신 그 원수들의 손에서 우리를 건져 내기를 바라지 아니할 것이다. 우리는 삶의 화려함과 감각의 만족에서 안식이나 행복을 기대하지 아니할 것이다.

  10. 다시는 우리의 손으로 만든 것을 향하여 우리의 신이라 하지 아니하오리니 — 우리는 우리 밖에 있는 어떤 것도 의지하지 아니할 것이요, 주의 은혜로 우리가 행할 수 있는 어떤 선한 일조차도 의지하지 아니할 것이다. 우리가 받은 것 외에는 아무것도 가진 것이 없음을 알기 때문이다. 우리는 우리의 마지막 구원을 위하여 주의 무한하신 긍휼을 의지할 것이다.

  11. 그리고 우리가 이 모든 일을 행하는 것은, 고아가 주로 말미암아 긍휼을 얻는다는 확신에서 나온 것이다. 우리는 주의 가족으로 옮겨지기까지 다 한결같이 무력하고 버림받아 죽어 가는 고아이기 때문이다.

호세아 14장 4 Adam Clarke's Commentary and Critical Notes on the Bible

Hosea 1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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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그들의 반역을 고치고 — 여기에 이 기도와 결의에 대한 하나님의 응답이 있다. 그 각 부분을 보라.

  1. 너희가 배역하여 넘어졌고 그 넘어짐으로 말미암아 참혹하고도 치명적인 상처를 입었다. 그러나 생명의 근원이 되는 나, 죽음에서 건져 내는 나가 이 모든 상처와 영적인 병을 고칠 것이다.

  2. 기쁘게 그들을 사랑하리니 — נדבה(네다바, nedabah)이니, 후하고 군주다운 방식으로라는 뜻이다. 내가 그들을 사랑하되 그들에게 끊임없이 선을 행하는 방식으로 사랑할 것이다. 그것은 단지 애정의 사랑이 아니라 은덕을 베푸는 사랑일 것이다. 곧 사랑 자체 안에서 기쁨을 느낄 뿐 아니라, 그 사랑의 대상이 된 자들을 말할 수 없이 지극히 행복하게 함으로써 그들을 기쁨으로 채우는 사랑이다.

  3. 나의 진노가 그에게서 떠났음이니라 — 그가 내게로 돌아왔기 때문이다. 이리하여 하나님과 사람이 친구가 된다.

호세아 14장 5 Adam Clarke's Commentary and Critical Notes on the Bible

Hosea 1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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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이스라엘에게 이슬과 같으리니 — 이 은유들에 대하여 나는 로우스 주교의 우아하고도 정확한 관찰을 기꺼이 빌려 온다. “이 절들(호세아 14:5-7)은 이스라엘이 회심할 때에 하나님의 은총과 축복을 베푸시겠다는 은혜로운 약속을 담고 있다. 다섯째 절에서 그것은 흠뻑 내리는 이슬이 여름에 풀에 주는 생기로 묘사된다. 그 기후의 성격과, 그토록 더운 나라에서 이슬이 생기를 줄 뿐 아니라 생명을 보존하는 데에도 반드시 필요하다는 사실을 생각해 보고, 또한 동방 백합화의 아름다움과, 레바논에서 자라는 백향목의 향기와, 넓게 퍼진 감람나무가 자아내는 아름다운 광경과, 그러한 나무들의 그늘이 주는 상쾌한 서늘함과, 백향목이 내뿜는 향기로운 냄새를 생각해 보라. 그리하면 우리는 선지자가 여기서 쓴 은유의 힘을 얼마쯤 이해하게 될 것이다. 그러나 그 온전한 힘은, 선지자가 글을 쓴 그 기후에서 여기 언급된 것들이 없는 결핍을 몸소 느껴 보고 또 그 유익을 누려 보기 전에는 아무도 헤아릴 수 없다.” — 로우스의 열두째와 열아홉째 강의, 그리고 그 대목에 대한 도드의 주석.

얼마나 영광스러운 예언인가! 얼마나 놀라운 선지자인가! 얼마나 장엄하고, 얼마나 힘차며, 얼마나 정확한가! 오직 저 위대한 대선지자 이사야만이 이보다 더 낫게 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리고 이 약속들은 육신을 따른 이스라엘에게만 주어진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모든 백성에게 주어진 것이다. 우리도 이 일에 제비와 몫이 있으니, 하나님께서 우리에게도 그의 사랑을 두신다. 여기서 독자는 베르길리우스에 나오는 목자가, 자기 동료가 세상을 떠난 벗을 두고 지은 만가에 황홀하게 취하였을 때 느낀 것과 같은 감정을 느낄 수밖에 없다. 그 어법과 은유가 놀랍도록 비슷하므로 나는 그것을 여기에 옮겨 놓겠다.

Tale tuum carmen nobis, divine poeta,

Quale sopor fesses in gramine, quale per aestum

Dulcis aquae saliente sitim restinguere rivo.

Nec calamis solum aequiparas, sed voce magistrum.

Fortunate puer! tu nunc eris alter ab illo.

Nos tamen haec quocunque modo tibi nostra vicissim

Dicemus, Daphninque tuum tollemus ad astra:

Daphnin ad astra feremus: amavit nos quoque Daphnis.

베르길리우스, Ecl. v., ver. 45.

“하늘이 내신 시인이여, 그대의 노래는 이러하여,

황홀해진 내 귀에 그토록 달고 그토록 매혹적이어라,

근심에 짓눌린 지친 목자에게

숲 그늘 아래 시원한 쉼이 그러하듯,

목마름에 애타는 나그네가 처음으로

맑은 시내를 만나 목을 축임이 그러하듯.

그대는 노래에서도 피리에서도 뛰어나니,

그대의 스승인들 이만큼 해내지 못하였으리라.

복 있는 젊은이여! 적어도 그대의 노래는

그의 노래 다음가며 둘째 찬사를 받으리라.

보잘것없으나마 내 시골 노래를 보태어

그대의 다프니스를 신들의 반열에 올리리니,

다프니스는 그대의 벗이었을 뿐 아니라 나의 벗이기도 하였음이라.”

호세아 14장 7 Adam Clarke's Commentary and Critical Notes on the Bible

Hosea 1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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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그늘 아래에 거주하는 자가 돌아올지라 — 탈굼의 읽기가 흥미롭다. “그들이 사로잡힘 가운데서 함께 모일 것이요, 그의 그리스도의 그늘 아래에 거하겠고, 죽은 자가 살아나리라.”

그들이 곡식같이 살아나리라 — 이 은유의 정확함과 아름다움은 흔히 간과된다. 곡식이 땅 위로 돋아나 한 줄기 싹으로 얼마쯤 있고 나면, 잎사귀들이 벌어지기 시작하고 그 한가운데서 줄기가 솟아오른다. 곁잎들은 뻗어 나오는 줄기에 자리를 내주려고 뒤로 젖혀지며, 땅을 향하여 굽어 늘어져서, 여전히 그 포기에 붙어 있으면서도 시든 모양을 띠게 된다. 이러한 상태의 곡식을 보고서는, 그 사정을 모르는 사람이라면 아무도 풍성한 추수를 낙관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다른 잎사귀들이 돋아나고, 앞서의 잎사귀들은 다시 생기를 얻어 곧게 서기 시작하며, 그 온 포기가 식물의 죽음에서 살아나는 것처럼 보인다. 선지자가 “그들이 곡식같이 살아나리라”라고 한 것은 바로 이 사정을 가리킨다. 여기서 사려 깊고 유익한 적용을 이끌어 낼 수 있다.

  1. 영혼이 처음으로 “사랑의 줄로” 이끌릴 때에는(호세아 11:4), 첫째 단계의 곡식처럼 모든 것이 유망하고 편안하고 즐겁게 보인다.

  2. 그러나 심판의 영이 죄악의 감추인 일들을 양심의 빛 앞에 드러내고 회개가 깊어져 통회에 이르면, 상하고 통회하는 마음은 신음하며 모든 것을 잃었다고 여긴다. 깊은 괴로움이 밀려오고 낙심에 낙심이 뒤따른다. 이는 둘째 단계의 곡식에 해당한다.

  3. 이윽고 용서가 임하고, 하나님의 사랑이 성령으로 말미암아 마음에 부은 바 된다. 모든 소망이 되살아나 실현되고, 이삭에 충실한 곡식이 뚜렷이 드러난다. 이는 셋째 단계의 곡식에 해당한다. “그들이 곡식같이 살아나리라.” 그의 말할 수 없는 은사로 말미암아 하나님께 영광이 있을지어다!

호세아 14장 8 Adam Clarke's Commentary and Critical Notes on the Bible

Hosea 1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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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다시 우상과 무슨 상관이 있으리요 — 에브라임의 회심은 이제 그것이 진실한 만큼 온전하다. 하나님께서 이것을 들으시고 살펴보신다.

나는 푸른 잣나무 같으니 — 아마도 이 말은 뉴컴이 그리하였듯이 앞의 말에 이어 붙여, 하나님께서 에브라임에게 하시는 말씀의 일부로 보아야 할 것이다. “내가 그의 말을 들었고, 무성한 잣나무 같은 그를 보았노라.” 그는 강하고 왕성하게 되었다. 그리고 지금 그가 건강하게 보이는 모습에서 앞으로의 번성과 형통함을 넉넉히 내다볼 수 있다.

네가 나로 말미암아 열매를 얻으리라 — 네 모든 선함은 내가 네 영혼에 심어 둔 은혜의 원리에서 솟아난다. 땅이 하나님의 축복 없이는, 곧 이슬과 비를 내리시고 따사로운 햇살을 보내 주심이 없이는 열매를 낼 수 없듯이, 사람의 영혼도 아무리 경건한 자의 영혼일지라도 지극히 높으신 이에게서 끊임없이 흘러오는 감화가 없이는 열매를 맺을 수 없다. 앞의 것이 없으면 가축을 먹일 풀도, 사람이 쓸 곡식도 자랄 수 없다. 뒤의 것이 없으면 의의 씨앗이 뿌리를 내릴 수 없고, 약속의 줄기가 자랄 수 없으며, 은혜의 열매가 맺힐 수 없다. 그리하면 쫓겨났던 더러운 영이 곧 돌아와, 자기가 전에 있던 집이 비고 청소되고 수리된 것을 보고서 저보다 더 강하고 더 악한 영향을 끼치는 일곱 귀신과 함께 다시 들어갈 것이요, 그 사람의 나중 형편이 처음보다 더 나빠질 것이다. 독자여, 네 모든 선이 하나님께로부터 와야 한다는 것과, 그 모든 선이 네 영혼에 빛과 사랑과 능력으로 끊임없이 미치는 그의 감화로 말미암아 네 안에 보존되어야 한다는 것을 늘 생각하라.

호세아 14장 9 Adam Clarke's Commentary and Critical Notes on the Bible

Hosea 1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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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지혜가 있어 이런 일을 깨달으며 — 어떤 일인가? 이스라엘의 배역과 죄악과 형벌에 관한 일이요, 약속된 회복에서 나타나는 하나님의 긍휼과 인자하심에 관한 일이다. 곧 마음에서 이루어지는 죄의 작용에 속한 일들이요, 영혼에서 이루어지는 은혜의 역사에 속한 일들이며, 특히 이 놀라운 장에 언급된 일들이다.

누가 총명이 있어 이런 일을 알겠느냐 — 이런 일을 깨달으려고 힘쓰는 자, 곧 이런 일에 자기 마음을 두는 자, 그러한 사람이 그것을 깨달을 것이다.

여호와의 도는 정직하니 — 이것이 선지자가 이 모든 것에서 이끌어 낸 결론이다. 공의를 베푸시든 긍휼을 베푸시든, 하나님께서 행하시는 모든 일은 정직하다. 모든 것이 마땅히 그러하여야 할 대로요, 모든 것이 그러할 수밖에 없는 대로다. 그는 너무나 지혜로우셔서 그르치실 수 없고, 너무나 선하셔서 인자하지 아니하실 수 없기 때문이다.

의인은 그 길로 다니거니와 — 이는 의인이 언제나 인정할 진리요, 의롭고 경건한 삶으로 드러내 보일 진리다.

그러나 죄인은 그 길에 걸려 넘어지리라 — 그들이 전에 아무리 선하였다 할지라도, 하나님을 의지하여야 할 필요를 생각하지 아니하고, 자기의 모든 빛과 생명과 능력과 사랑을 그에게서 받아야 함을 생각하지 아니하며, 사랑으로써 역사하는 저 믿음을 늘 나타내 보이지 아니하고, 순종하는 행실을 지키며 하나님의 모든 법도를 존중하지 아니한다면, 그들은 “의의 길”에서조차 넘어질 것이다. 하나님의 규례를 여전히 지키고 하나님의 백성과 어울리면서도 그 길에서 망하고 말 것이니, 곧 에브라임과 같이 될 것이다. 그는 한때 “말을 하면 사람들이 떨었고” “이스라엘 중에서 자기를 높였으며” “하나님의 사랑하시는 아들”이었고 “애굽에서 불러냄을 받은” 자였으나, “바알로 말미암아 범죄하고” “자기 마음의 우상”에 자리를 내어 줌으로써 하나님에게서 떨어졌고, 원수들의 손에 떨어졌으며, 이방 땅에서 비참한 노예가 되었다.

“누구든지 지혜가 있거든 이런 일을 깨달을지어다!

누구든지 총명이 있거든 이런 일을 알지어다!”

잘 가르침을 받은 자는 여기서 읽은 것을 합당하게 적용할 것이니, 자기 하나님의 위협 앞에서 떨고 그의 약속을 붙들 것이다.

탈굼의 읽기는 가장 진지한 주의를 기울일 만하다.

“여호와의 도는 정직하니, 그 길로 다니는 의인은 영원히 살 것이요, 경건하지 아니한 자는 그 길로 다니지 아니하였으므로 지옥에 넘겨지리라.”

이 예언의 말씀은 얼마나 유익하게 가르치며, 얼마나 설득력이 있으며, 얼마나 사람을 깨우치며, 그러면서도 얼마나 위로가 되는가! 독자여, 이 말씀을 마음에 새기라. 경건한 마음은 이 말씀을 헛되이 상고하지 아니할 것이니, 그러한 자는 이 말씀을 알 것이요 여호와의 도가 정직함을 알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