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tthew Henry's Complete Commentary
Matthew Henry · 1714
Matthew Henry 사후(1714) 공개 도메인. 디지털판 CC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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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tthew Henry · 1714
Matthew Henry 사후(1714) 공개 도메인. 디지털판 CC0-1.0.
Robert Jamieson, A. R. Fausset, David Brown · 1871
Commentary Critical and Explanatory on the Whole Bible (1871). CCEL expanded electronic edition states it is in the public domain.
Albert Barnes · 1834
Albert Barnes' Notes on Revelation Of St. John The Divine (New Testament, English original, public domain). Sourced from the Christian Classics Ethereal Library (CCEL). Public domain. Retrieval mirror: biblehub.com/commentaries/barnes.
Adam Clarke · 1831
Public domain English commentary by Adam Clarke, normalized from Wikisource book pages for scripture.how. Public domain. Retrieval mirror: biblehub.com/commentaries/clarke.
John Gill · 1763
John Gill(1697-1771), Exposition of the Old and New Testament(1746-1763). Public domain. Retrieval mirror: biblehub.com/commentaries/gill.
John Calvin · 1850
종교개혁 신학 원천 (영역본 PD, 대부분 — 전권 아님)
Matthew Poole · 1685
간결 절별 전권 개혁주의 주석
ed. H.D.M. Spence & Joseph S. Exell · 1890
전권 강해·설교·예화 풍부 (항목 대량)
Carl F. Keil, Franz Delitzsch · 1866
구약 학술 표준 — 히브리어·문헌비평·고대근동 배경
ed. Charles J. Ellicott · 1878
학술+가독 균형 전권 주석
Cambridge (다저자) · 1900
준전권 준학술 (권별 저자·연도 확인)
Marvin R. Vincent · 1887
신약 헬라어 단어 연구
A.T. Robertson · 1933
헬라어 시제·문법 해설 결정판 (KR PD / US 1931+ 권별)
ed. W. Robertson Nicoll (다저자) · 1910
헬라어 신약 학술 (권별 저자 PD 확인 필요)
Heinrich A.W. Meyer · 1880
신약 학술 정밀주해 (독일 — K&D 대응)
John Wesley · 1755
간결 실용 전권(NT 1755 / OT 1765) 웨슬리안
Joseph Benson · 1815
웨슬리안 전권 주석
Charles H. Spurgeon · 1885
시편 주석 고전 (설교 자료 풍부)
Alexander Maclaren · 1910
설교형 강해 명저 (전권, 절별 가공 필요)
B.W. Johnson · 1891
평이 절별 신약 해설 (일반신자·모바일)
Thomas Coke · 1803
감리교 전권 주석
John Trapp · 1660
청교도 전권 주석 — Henry/Gill 보완
Charles Hodge · 1860
프린스턴 조직신학 관점 신약 정밀 주석 (롬·고전후·엡)
이사야 11장은 같은 전체 예언의 일부로서 앞 장과 연결된다. 앞 장에서 선지자는 산헤립의 침략을 묘사하고 위협받은 침략에도 예루살렘이 안전하리라고 확증했다. 그 예언의 일반적인 목적은 ‘임박한 재앙에서 구원받으리라는 확증으로 백성을 위로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히브리 선지자들, 특히 이사야에게는 백성을 위로하거나 민족의 감사를 일으키는 ‘어떤’ 사건이 일어날 때마다 시선을 메시아 아래서 기대한 위대한 미래의 구원으로 돌리는 일반적인 원칙이 있었다. 서론 §7 (3)을 보라. ‘현재’ 대상에 대한 묵상은 사라지고 마음은 메시아 통치의 영광에 더욱 집중한다. 예언적 환상은 그분의 인격의 아름다움과 왕국의 영광을 두루 바라보다가 선지자가 처음 시작한 주제를 잊은 듯 보이게 한다.
이는 완전히 자연스러웠다. 마음의 명백한 연상 법칙에 따라 아무리 작은 형태라도 구원이 언급되면 모든 유대인의 눈이 머물던 그 위대한 구원을 떠올렸다. 그러므로 선지자는 어디에서 시작하든 대개 메시아의 통치를 빛나게 묘사하며 끝낸다. 계시된 종교의 이 중심 대상에서 아무리 멀리 시작해도 예언서에는 어디서나 ‘그것을 향하는’ 경향이 있다. 어떤 연상 법칙으로든 이 대상이 떠오르거나 눈에 조금이라도 보이는 순간, 이전 대상은 시야에서 사라지고 메시아의 인격과 통치가 예언적 묘사의 유일한 주제가 된다. 여기서도 그러하다. 이사야는 산헤립의 침략 이야기로 예언을 시작했고(이사야 10:5 이하), 그 위험에서의 구원을 묘사했다(이사야 10:33-34). 이 구원의 언급은 그의 생각을 메시아 아래서 이루어질 훨씬 더 큰 구원으로 이끌고, 곧 이사야 11장에서 그분의 오심과 통치를 빛나게 묘사하기 시작한다. 예언을 시작할 때의 ‘언어’는 유지되고 예시는 ‘앞서’ 다루던 주제에서 가져오지만, 묘사는 메시아 통치의 영광에 관한 것이다. 그 증거는 이 장의 개별 구절 주석에서 나타날 것이다. 일반적인 목적은 메시아 아래서 있을 위대한 미래의 구원과 그 통치의 영광을 전망하게 하여 백성을 위로하는 것이다. 그는 다음을 묘사한다.
(i) 메시아께서 오실 확실성과 그분의 성품(이사야 11:1-5).
(ii) 그분의 오심에 따를 평화와 번영(이사야 11:6-9).
(iii) 이방인들이 그분의 통치의 특권에 참여하도록 부름받는 사실(이사야 11:10).
(iv) 그분의 통치 아래 포로들이 고국으로 회복되는 일(이사야 11:11-12).
(v) 그분의 통치가 서로 다투는 유대 민족들 사이의 불화와 분쟁을 끝내는 사실(이사야 11:13).
(vi) 그분의 종교가 온 세상에 퍼지고 그분의 백성이 구원받는 일(이사야 11:14-16).
메시아는 오래되어 시든 줄기의 뿌리에서 돋아나는 가느다란 가지로 묘사된다. 처음 나타날 때는 극도로 연약한 이 부드러운 싹이 그럼에도 열매를 맺고 강대해질 것이다(이사야 11:1-4). 메시아 통치의 크나큰 공정함(이사야 11:5). 그의 왕국의 위대한 평화와 행복을 드러내는 아름다운 형상들의 결합(이사야 11:6-8). 그의 통치 영역은 마침내 사람이 거주하는 온 땅에 이를 것이다(이사야 11:9). 선지자는 애굽에서 나온 출애굽의 형상을 빌려, 흩어진 여러 곳에서 이스라엘의 쫓겨난 자들과 유다의 흩어진 자들, 곧 이스라엘 열두 지파 전체가 장차 회복될 것을 장엄한 언어로 예언한다. 또한 유대인과 이방인이 모두 예수의 깃발 아래 모이고, 그 왕국의 경계를 확장하는 일에 열성적으로 연합할 복된 때도 예언한다(이사야 11:10-16).
선지자는 앗수르 군대의 멸망을 울창한 숲의 형상으로 묘사했다. 그 숲은 빽빽하게 함께 자라는 무성하고 키 큰 나무들로 이루어졌고, 높이 솟은 백향목이 관을 쓴 레바논 자체와 같았다. 그러나 어떤 강력하고 탁월한 행위자가 휘두르는 도끼에 찍혀 땅과 수평이 되도록 넘어졌다. 이 형상과 대조하여 선지자는 이 장의 주제가 되는 위대한 분을 오래된 나무의 줄기에서 돋아나는 가느다란 가지로 묘사한다. 그 나무는 베어지고 뿌리까지 가지가 잘렸으며 썩어 있었지만, 겉보기에 매우 연약한 이 부드러운 싹은 그럼에도 열매를 맺고 번성할 것이다. 이 대조는 이 장과 앞 장 사이의 연결을 분명하게 보여 주며, 연결 불변사도 그 관계를 나타낸다. 여기서 우리는 선지자들, 특히 이사야가 흔히 사용하는 방법의 주목할 만한 사례를 본다. 곧 어떤 위대한 현세적 구원이 언급되면 그것을 계기로 메시아를 통한 하나님 백성의 영적 구원을 펼쳐 보이는 방식이다. 이 예언이 메시아와 관계된다는 사실에 관해서는 로마서 15:12에서 바울의 명시적인 권위를 얻는다. "그는 메시아의 날들과 관련하여 이 단락을 히스기야 시대에 있었던 신실함과 연결한다." - 이사야 11:1에 대한 킴히의 주석. 이와 같이 이사야서 예언의 후반부에서는 위대한 구속과 메시아 왕국의 영광이라는 주제가 바벨론 포로 생활에서 해방되어 유다가 회복되는 일로부터 솟아나며, 줄곧 그 일과 연결되고 서로 섞여 나타난다.
INTRODUCTION TO Isaiah 11
This chapter is a prophecy of the Messiah, and gives an account of his descent, as man; of his qualifications for his office, as a Judge and King; of his performance of it; of the peaceableness of his kingdom; of the spread of it among the Gentiles, by the preaching of the Gospel; and of the last and general conversion of the Jews. His original and descent from David the son of Jesse, under the titles of a rod and branch, is described as mean and obscure, expressed by stem and roots, Isaiah 11:1 his gifts and qualifications for his work, in general and particular, Isaiah 11:2 the performance of it, both with respect to good men and bad men, in the fear of the Lord, with all equity, righteousness, and readiness, Isaiah 11:3 the peaceableness of his kingdom is figuratively expressed, by the agreement of savage and tame creatures, the former becoming the latter, and so losing their malignant and hurtful nature, through the efficacy of the Gospel, spreading the knowledge of Christ all over the world, Isaiah 11:6 particularly among the Gentiles, comparable to those savage creatures, who, upon the exhibition of Christ in the Gospel; should seek to him, and find rest in him, Isaiah 11:10 which will be followed or accompanied with a collection of the Jews out of all lands, and the conversion of them, which will be brought about by the power and grace of God, all impediments being by him removed out of the way; the consequences of which will be, peace among themselves, and obedience among the Gentiles, Isaiah 11:11.
XI
There shall come forth a rod out of the stem of Jesse . . .—We enter on another great Messianic prophecy developing that of Isaiah 9:6-7. More specifically than before the true King is named as springing from the house of David, and His reign is painted as the return of a golden age, almost as one of the “new heavens and the new earth wherein dwelleth righteousness” (2Peter 3:13). The figure with which the section opens is carried on from the close of Isaiah 10. The cedar of Lebanon, the symbol of the Assyrian power, was to be cut down, and being of the pine genus, which sends forth no suckers, its fall was irretrievable. But the oak, the symbol of Israel, and of the monarchy of the house of David (Isaiah 6:13), had a life remaining in it after it had been cut down, and the rod or sucker that was to spring from its roots should flourish once again in greater glory than before. (Comp. Ezekiel 17:22.) In the Branch (Heb. netzer) we have the word which suggested St. Matthew’s generalisation of the prophecies of this type in the words, “He shall be called a Nazarene” (see Note on Matthew 2:23), and which corresponds, in idea though not in words, to the great prophecies which speak of the Messiah as the Branch (Heb. Zemach) in Jeremiah 23:5, and Zechariah 3:8, and in which Isaiah himself had led the way in Isaiah 4:2. In identifying the future King with a representative of the house of David, Isaiah was following in the track of Micah 5:2. It is obvious here, as in Isaiah 9:6-7, that he is not speaking of Hezekiah as the actual sovereign of Judah, or of any prince then within the horizon of his earthly vision, though we may legitimately think of the virtues of that king as having been welcomed by him as a pledge and earnest of the ideal future.
The overthrow of the world-power is followed by the establishment of the Messiah’s Kingdom. In this chapter, however, we have two Messianic pictures so distinct in character that it is necessary to consider them separately.
(i) Isaiah 11:1-9 contain a prophecy of the advent of the Messiah (Isaiah 11:1), a description of his character (2) and government (3–5) and a picture of the marvellous transformation of animated nature which is the reflection of his just and beneficent reign (6–9). The passage stands along with ch. Isaiah 9:1-7 and Isaiah 32:1 ff. as one of the three great presentations of the conception of a personal Messiah which the book of Isaiah contains. Until quite recently the Isaianic authorship of all three passages was accepted without hesitation by critics of all shades of opinion. Hackmann and Cheyne now dissent from this view, and relegate the whole conception of a personal Messiah to a period subsequent to the Exile. But their objections are hardly of sufficient weight to justify so revolutionary a conclusion. The linguistic arguments are admitted by Cheyne to be indecisive. And while it is true that the contents of the prophecy do not point unambiguously to the age of Isaiah, this is not to be wondered at in a delineation of the ideal future. On the other hand the passage contains no assumptions inconsistent with Isaiah’s authorship. For the decay of the Davidic dynasty, which appears to be implied in the figure of Isaiah 11:1, is not a presupposition in the sense that the prophecy could not have been written until it was an accomplished fact. It is assumed only that the reigning dynasty will have disappeared before the manifestation of the Messiah; and this expectation is in harmony with Isaiah’s whole conception of the progress of events. It is no more than is involved in the sentence of rejection on Ahaz (ch. Isaiah 7:13 ff.), or perhaps in the anticipation of an overwhelming national calamity, which the prophet maintained to the end of his ministry. In any case the Messianic age is a new creation, and if there was to be an ideal Son of David at all, he must be conceived as a new shoot from the ancient stock of Jesse.
(ii) Isaiah 11:10-16, on the other hand, describe mainly the formation of the new Messianic community by the home-gathering of Israelites from all parts of the world. The arguments against the genuineness of this passage are more cogent than in the case of (i), and are endorsed by a wider circle of critics. Here a definite historical situation is assumed which can only with some violence be harmonised with the actual circumstances of Isaiah’s time. Jews are in exile not only in Assyria, but in Egypt, Ethiopia, the Mediterranean lands, &c. Further, these Exiles are described as a “Remnant,” a term which seems to imply that some have been already restored, and which at all events is never used by Isaiah of those who have gone into captivity, but of those who survive the judgment in the land of Israel. It is no doubt possible, as Delitzsch and Bredenkamp believe, that Isaiah might have been transported into the future, and dealt with a state of things which was not to arise till long afterwards. But it is more in accordance with the analogy of prophecy to suppose that the outlook was conceived in the circumstances which it presupposes, especially since the undoubted writings of Isaiah never mention a return from Exile, or a restoration of the Northern Tribes, or a subjugation of the neighbouring states by warlike conquest. These facts, and some others which will be referred to in the Notes, although not conclusive, justify a certain measure of hesitation in assigning the prophecy to Isaiah; and this uncertainty should be borne in mind in putting together the various elements which entered into his vision of the future of God’s kingdom.
Jamieson-Fausset-Brown Commentary Critical and Explanatory on the Whole Bible
이사야 11:1-16.
지역적이고 일시적인 국가적 구원에서 선지자는 지나간다. 모든 것의 끝으로 쉽게 전환되는 제안의 법칙 예언 - 메시아의 통치 아래서의 영원한 구원에 관한 것뿐 아니라 그분의 첫 번째 오심, 그러나 주로 그분의 재림입니다. 언어 삽화는 여전히 임시 국가 주제에서 그려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묘사된 영광은 메시아의 영광에 관한 것입니다. 통치. 일부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처럼 히스기야가 주제가 될 수는 없습니다. 왜냐하면 그는 그랬기 때문이다 이미 왔지만 "이새의 줄기"는 아직 미래의 것이었습니다("이르리라") (비교
미가 4:11, &c.; 5:1, 2; 예레미야 23:5, 6; 33:15, 16; 사도행전 15:12).
1. 막대--"레바논"의 자랑스러운 "가지"가
(이사야 10:33, 34,
앗수르인)이 벌목되고 광대한 "숲이 베어지고" 이 모든 분노 속에서 겉보기에 겸손해 보이는 막대가 나올 것입니다. 앗수르에게 당한 상처를 회복할 이새(메시아) 이스라엘을 뜻하는 "막대"
(이사야 10:5, 6, 18, 19).
줄기-말 그대로 뿌리 근처에서 자른 나무의 "그루터기"입니다. 다윗 왕가의 우울한 상태를 즐겁게 표현하고 있으며, 거센 폭풍으로 인해
(이사야 10:18, 19),
그 때 메시아가 그것으로부터 일어나서 그것을 그보다 더 높이려 하시고 순수한 영광.
누가 뭐래? 2:7
이것을 증명한다
(이사야 53:2;
비교하다
편기 14:7, 8;
에 참조
이사야 8:6).
지부--Scion.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또한 "뿌리"이다
(이사야 11:10; 요한계시록 5:5; 22:16.
"뿌리와 자손"은 두 가지를 모두 결합한 것입니다.
스가랴 3:8; 6:12).
이새의 줄기에서 한 싹이 나며 - 앞 장에서 선지자는 앗수르 군주와 군대를 모든 영광과 장엄함을 갖춘 빽빽하고 번성하는 숲의 형상으로 나타냈다. 이와 대조하여 이 장의 주제인 뛰어난 인물을 쇠하고 쓰러진 나무뿌리에서 돋아나는 가느다란 가지 또는 새순의 형상으로 묘사한다. 그러므로 앗수르와 이 장의 인물 사이에는 매우 인상적이고 아름다운 대조가 있다. 하나는 처음에 넓게 펼쳐진 거대한 숲처럼 웅장했으나 곧 쓰러져 쇠할 것이고, 다른 하나는 쇠한 나무의 작은 새싹이지만 장차 자라 퍼지고 번성할 것이다.
한 싹 - חטר 호테르(choṭı̂r)이다. 이 단어는 다른 한 곳, 잠언 14:3의 ‘미련한 자는 교만하여 입으로 매를 자청하고’에만 나온다. 여기서는 분명 쇠한 나무뿌리에서 돋는 가지, 잔가지, 새순을 뜻하며 이사야 4:2에서 ‘가지’로 번역된 צמח 체마흐(tsemach)와 같은 뜻이다. 그곳의 주석을 보라.
줄기에서 - מגזע 미게자(mı̂geza‛)이다. 구약에 세 번만 나온다. 욥기 14:8에서는 ‘그루터기’로 번역된다. ‘그 뿌리가 땅에서 늙고 줄기가 흙에서 죽을지라도.’ 이사야 40:24에서는 ‘그 줄기가 땅에 뿌리를 박지 못했을지라도’라고 한다. 그러므로 베어진 나무의 줄기 또는 그루터기를 뜻한다. 완전히 죽지는 않아 뿌리에서 가지나 새순을 낼 수 있는 그루터기이다. 쇠퇴한 오래된 가문에서 한 후손이 일어나 번성하는 모습에 아름답게 적용된다. 나무가 쓰러져 쇠해도 뿌리에 생명력이 남아 연한 싹이나 새순을 낼 수 있기 때문이다.
이새의 - 다윗의 아버지이다. 여기 말하는 이가 이새 또는 다윗 가문에 속한다는 뜻이다. 이새가 죽고 다윗의 오랜 가문이 쇠해도 그 가문에서 뛰어난 후손이 일어날 것이다. 메시아께서 태어나실 때 오래되고 크게 존중받던 다윗 가문이 쇠퇴했고, 예수의 어머니가 그 가문에 속했지만 가난하고 미천하며 알려지지 않았고, 겉으로 가문의 영광이 떠난 듯했다는 사실을 기억하면 이 묘사의 아름다움이 드러난다. 그러나 땅속에서 오래 쇠한 뿌리처럼 보인 그 가문에서, 가문을 옛 영광보다 더 크게 회복하고 이새의 존귀한 이름에 빛을 더할 분이 돋아날 것이다.
그 뿌리에서 한 가지가 나서 - נצר 네체르(nêtser)이다. 잔가지, 가지 또는 새순, 옮겨 심도록 골라 특별히 돌보아야 하는 어린 접가지나 흡지이다. 네 번만 나온다. 이사야 60:21의 ‘내가 심은 가지’, 이사야 14:19의 ‘가증한 나뭇가지 같은 네 시체’, 다니엘 11:7이다. 예레미야 23:5; 33:15에서 ‘가지’로 번역된 원어는 다른 단어 צמח 체마흐(tsemach)이지만 본질적으로 같은 뜻이다. 번역자들은 여러 다른 히브리어도 ‘가지’로 옮겼다. 테일러의 『컨코던스』를 보라. 여기서는 절 앞부분의 ‘싹’과 같은 뜻으로 쇠한 나무뿌리에서 나온 새순 또는 잔가지이다.
그 뿌리에서 - 쇠한 나무뿌리에서 새순이 돋듯 나온다. 칠십인역은 ‘그 뿌리에서 꽃(ἄνθος, anthos)이 돋을 것이다’라고 옮긴다. 갈대아어 역은 ‘이새의 아들들 가운데서 왕이 나오며, 그의 아들들의 아들들 가운데서 메시아가 일어날 것이다’라고 한다. 고대 유대인들이 이를 메시아에게 적용했음을 결정적으로 보여 준다.
이 절과 이 장의 뒤 부분이 메시아를 가리킨다는 사실은 다음 근거로 논증할 수 있다.
(1) 신약에서 명시적으로 그분께 적용된다. 바울은 로마서 15:12에서 이 장 10절을 메시아 시대에 명시적으로 적용하여 인용한다.
(2) 갈대아어 의역은 고대 유대인들이 이 구절을 그렇게 이해했음을 보여 준다. 이 의역의 권위는 고대 해석자들이 이것을 참된 의미로 보았다는 사실을 보여 주는 데만 있다.
(3) 이 장의 묘사는 메시아 외의 어떤 인물에게도 적용되지 않는다. 그로티우스는 이 구절이 히스기야를 가리키고 ‘더 숭고한 의미에서는’ 메시아를 가리킨다고 본다. 다른 이들은 스룹바벨을 가리킨다고 했다. 그러나 두 사람이 이새 가문에서 나왔다는 사실 외에는 여기 관련된 어느 것도 그들에게 적용되지 않는다. 그 어느 가문도 선지자가 묘사한 쇠퇴 상태에 빠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4) 이 장 뒤 부분이 언급하는 평화와 번영과 조화와 질서는 히스기야 통치의 어떤 시기도 묘사하지 않는다.
(5) 여기의 용어와 묘사는 메시아에게 적용되는 성경의 다른 부분과 일치한다. 예레미야 23:5; 33:15은 다른 히브리어를 사용하지만 같은 사상과 형상을 유지하여 메시아를 ‘가지, 싹 또는 새순’의 비유로 묘사한다. 스가랴 3:8과 비교하라. 이사야 4:2에서 이사야가 같은 인물을 묘사한 것과도 일치한다. 그곳의 주석을 보라.
(6) 거의 모든 주석가가 이를 메시아에게 적용했다는 점도 덧붙일 수 있다. 성경 어느 구절의 해석에서도 이보다 더 큰 만장일치를 찾기는 어려울 것이다.
예언에서는 교회가 시간 속에서 경험하는 일시적인 구원을 예고하다가, 때가 차면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루실 크나큰 구원을 예고하는 데로 넘어가는 것이 매우 훌륭하고도 흔한 전환 방식이다. 수사학에서도 그러한지는 별개의 문제다. 앞서 말한 일시적 구원들은 이 위대한 구원의 모형과 표상이었고, 모든 선지자는 이 구원에 관하여 증언했으며, 고대 유대인들도 그 예언들을 그렇게 이해했다. 그렇지 않다면 메시아가 오셨을 때 무엇이 그토록 큰 기대를 불러일으켰겠는가? 산헤립에게서 예루살렘이 구원될 것이라는 예언을 계기로, 여기서는 왕이신 메시아에 관한 예언이 이어진다. I. 다윗의 집에서 나오시는 그의 기원(사 11:1). II. 그 위대한 사역을 수행하기에 합당한 그의 자격(사 11:2,3). III. 그의 통치에 나타나는 정의와 공평(사 11:3-5). IV. 그의 나라가 지닌 평화로운 성격(사 11:6-9). V. 이방인들이 그 나라에 들어오는 일(사 11:10), 그리고 유대인의 남은 자들도 그들과 함께 들어와 메시아의 나라 안에서 그들과 연합하는 일(사 11:11-16). 하나님은 이 모든 일의 모형과 다소 희미한 표상을 이제 곧 그들에게 보여 주실 것이다. 곧 산헤립의 계획이 무너진 뒤에 나타날 히스기야의 훌륭한 통치, 그의 통치 아래서 그 나라가 누릴 큰 평화, 그리고 온 나라가 그 큰 평안을 누릴 때 흩어졌던 열 지파 가운데 많은 사람이 유다 땅에 있는 자기 형제들에게로 돌아오는 일이 그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