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arnes' Notes on the Bible
Albert Barnes · 1834
Albert Barnes' Notes on Revelation Of St. John The Divine (New Testament, English original, public domain). Sourced from the Christian Classics Ethereal Library (CCEL). Public domain. Retrieval mirror: biblehub.com/commentaries/barn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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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장보다 앞선 장들에서는 바벨론으로부터의 구원이 예언의 주된 주제였다. 실제로 여러 곳에서 메시아와 그의 시대를 분명히 언급했지만, 일차적인 사상은 바벨론으로부터의 회복이었다. 일반적으로 이 장에서는 메시아가 직접 인격적으로 등장하며, 일차적으로 그와 그의 사역을 가리킨다고 여겨져 왔다. 실제로 이 점에 관하여 해석자들 사이에 견해 차이가 컸지만, 이 장이 그를 직접 가리킨다는 것이 일반적인 견해였다. 이 장 전체의 해석은 그 일차적이고 주된 목적을 어떻게 보느냐에 따라 영향을 받을 것이므로, 이 장의 해설을 시작하기에 앞서 지금까지 제시된 견해 가운데 일부를 간략히 언급할 수 있다. 다음 진술은 헹스텐베르크의 《기독론》 제1권에서 축약한 것이다.
어떤 이들은 여기서 이스라엘 백성이 말하는 자로 등장한다고 본다. 이는 파울루스, 되더라인, 로젠뮐러의 견해이다. 로젠뮐러가 의존하는 논거는 이사야 49:3에서 말하는 자가 명시적으로 ‘이스라엘’이라 불린다는 것이다. 이 견해에 따르면 백성 전체가 여기서 말하는 선지자로 묘사된다. 그 선지자는 헛되이 수고했고, 이스라엘이 모이지 못했음에도 장래에는 온 세상의 교사가 될 자이다(이사야 49:4-6). 그러나 이 해석은 억지스럽고 부자연스럽다. 모인 유대 민족을 선지자로 묘사하는 것이 부적절하고 다른 곳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사상이라는 점은 차치하더라도, 이 해석에 따르면 그 백성은 아직 이교도들을 회심시키려고 아무런 노력도 하지 않았는데 헛되이 수고한 것으로 묘사된다. 또한 이사야 49:5에서는 선지자로 묘사된 바로 이 백성이 ‘모이지 못한’ 것으로 나타나고, 이어 이사야 49:6에서는 이방인들에게 빛이 되고 땅끝까지 구원이 되려고 그들에게로 향하는 것으로 나타난다. 이사야 53:1-12을 유대 민족에게 적용한 고대 유대인 주석가들조차 여기서는 이와 같은 해석을 감히 시도하지 않았다는 점도 덧붙여야 한다. 로젠뮐러가 이 해석을 지지하려고 의존하는 유일한 논거, 곧 말하는 자에게 ‘이스라엘’이라는 이름이 주어졌다는 사실에서 끌어낸 논거는 이사야 49:3의 주석에서 살펴볼 것이다.
다른 이들은 여기서 선지자가 자신을 가리킨다고 본다. 이는 야르키, 아벤 에즈라, 김치, 그로티우스가 지지했고, 근대 해석자들 가운데서는 코페, 헨슬러, 슈토이들린이 지지한 견해이다. 그러나 이 해석은 개연성이 거의 없다. 선지자가 자신을 이교 세계의 빛이라고 말한다는 것은 믿기 어렵다. 말하는 자는 유대 민족이 자신에게 주어지는 것으로 만족하지 않고(이사야 49:6), 땅끝까지 구원이 되도록 보냄받은 자로 자신을 묘사한다. 이처럼 말하며 유대 민족에게 거부당하고 멸시받는 바로 이 인물 앞에 왕들과 고관들이 가장 깊은 존경심으로 엎드리는 것으로 묘사된다(이사야 49:7). 그러나 이사야가 자신을 두고 그와 같이 터무니없는 기대를 품은 적이 전혀 없다는 것은 분명하다. 더욱이 이사야 49:3의 ‘이스라엘’이라는 이름을 선지자 이사야에게 적용하는 데도 그것을 메시아에게 적용할 때와 똑같은 반론이 제기된다.
게제니우스는 이것이 선지자 이사야 한 사람만이 아니라 그를 통해 대표되는 선지자들의 집합적 무리를 가리킨다고 본다. 그러나 이 견해에도 극복할 수 없는 반론이 있다.
(1) 여기의 진술에 나오는 모든 것이 그 주체가 단순한 의인화가 아니라 한 개인임을 입증한다. 인칭대명사가 전체에 걸쳐 사용되며(이사야 49:1-2; 49:4 등을 보라), 기록 전체의 양상도 한 개인에 관한 것이다. 어디서든 한 개인에 관해 진술한 내용을 어떤 집합적 무리를 가리킨다고 여기는 것이 타당하다면, 이 구절을 이런 방식으로 해석하는 것도 타당할 것이다.
(2) 선지자들을 집합적으로 취할 경우 이사야 49:3의 ‘이스라엘’이라는 이름을 지닐 수 없다. 게제니우스조차 이를 인정하며, 그 효력을 피하려고 제3절의 ‘이스라엘’이라는 말이 본래의 것이 아니라고 부인한다.
(3) 선지자들은 자신들이 이교 세계에 영향력을 행사하도록 부름받았다고 어디에서도 묘사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들은 이교도들이 메시아를 통해 회심할 것이라고 묘사한다.
(1) 앞서 언급한 다른 해석들이 근거가 없다면, 당연히 이 장은 메시아를 가리켜야 한다.
(2) 예언의 낱말과 표현들이 신약에서 드러난 구속자의 성품과 정확히 일치한다는 사실도 같은 점을 입증한다.
(3) 사도행전 13:47과 고린도후서 6:2은 이 구절을 메시아의 시대에 적용한다.
이 장은 다음과 같은 부분 또는 주제로 나누어 살펴볼 수 있다.
I. 메시아가 친히 말하는 자로 등장하여 자신의 사명의 목적과 유대 민족에게 거부당한 일, 그리고 자신이 이방인들에게 빛이 되리라는 사실을 진술한다(이사야 49:1-6). 이 부분은 다음 주제들로 이루어진다.
서두에서 그는 먼 민족들에게 자신의 음성을 들으라고 부른다(이사야 49:1).
메시아의 직분으로 부름받은 일과 그 사역을 위한 그의 자격이다(이사야 49:1-3). 그는 태에서부터 부름받았고(이사야 49:1), 날카로운 칼이나 갈고 닦은 화살이 전투에 알맞은 것처럼 그 사역에 탁월하게 준비되었으며(이사야 49:2), 하나님께서 자신을 통해 영광받으려고 택하신 종이었다(이사야 49:3).
그의 사역에 성공이 없었던 일이다(이사야 49:4). 그는 헛되이 수고했지만, 장래의 완전한 성공에 대한 확신과 하나님의 인정에 대한 보증을 가지고 자신의 일을 하나님께 맡길 수 있었다.
그의 장래 성공은 영광스러울 것이다(이사야 49:5-6). 그는 장차 이스라엘 지파들을 모으고 이교 세계에 빛이 되며 땅끝까지 구원이 될 것이다.
II. 여호와께서 메시아의 사역이 마침내 성공하리라고 직접 약속하신다(이사야 49:7-12).
사람들은 실제로 그를 멸시하고 거부할 것이다.
그러나 왕들과 고관들은 일어나 그에게 존경을 표할 것이다(이사야 49:7).
여호와는 그의 말을 들으셨고, 장차 그를 세상을 위한 언약, 곧 땅을 자신에게 되돌리는 중보자로 주실 것이다(이사야 49:8).
그는 포로들과 어둠에 앉은 자들을 이끌어 낼 것이다(이사야 49:9). 그는 해가 그들을 상하게 하지 못하도록 그들을 보호하고 그들의 필요가 채워지도록 공급할 것이다(이사야 49:10). 그는 그들의 길에서 모든 장애물을 제거하고 산들을 평탄하게 하며 골짜기들을 높일 것이다(이사야 49:11). 그의 추종자들은 먼 곳, 먼 땅에서 올 것이다(이사야 49:12).
III. 메시아의 사역이 낳을 영광스러운 결과를 바라보며 부르는 찬양의 노래이다(이사야 49:13).
IV. 하나님께서 시온을 잊지 않으셨다는 확언으로 시온이 위로받는다(이사야 49:14-21).
시온은 여호와께서 자신을 잊고 긍휼이나 연민 없이 홀로 고난받도록 버려두셨다고 말했다(이사야 49:14).
하나님은 어머니가 자기 아이를 잊을 수 없는 것처럼 자신도 시온을 잊을 수 없다고 확언하신다(이사야 49:15).
그분은 자신의 손바닥에 시온의 이름을 새기셨다(이사야 49:16).
시온의 모든 원수와 파괴자들은 달아날 것이다(이사야 49:17).
시온은 황폐한 상태로 있는 대신 신부처럼 단장하고 꾸며질 것이며(이사야 49:18), 이방 세계에서 사람들이 더해짐으로 크게 증가하고 확장되어 자신이 거하는 곳이 너무 비좁아질 것이다(이사야 49:19-21).
V. 하나님은 구원과 그 모든 축복을 이방인들에게 베푸실 것이다. 왕들과 왕비들은 하나님의 교회를 후원하는 자들이 되고, 하나님 자신과 그분의 대의의 모든 원수는 멸망할 것이다(이사야 49:22-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