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tthew Henry's Complete Commentary
Matthew Henry · 1714
Matthew Henry 사후(1714) 공개 도메인. 디지털판 CC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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¹ 섬들아 내게 들으라 먼 곳 백성들아 귀를 기울이라 여호와께서 태에서부터 나를 부르셨고 내 어머니의 복중에서부터 내 이름을 기억하셨으며
² 내 입을 날카로운 칼 같이 만드시고 나를 그의 손 그늘에 숨기시며 나를 갈고 닦은 화살로 만드사 그의 화살통에 감추시고
³ 내게 이르시되 너는 나의 종이요 내 영광을 나타낼 이스라엘이라 하셨느니라
⁴ 그러나 나는 말하기를 내가 헛되이 수고하였으며 무익하게 공연히 내 힘을 다하였다 하였도다 그렇지만 진실로 내 정당한 보상이 여호와께 있고 내가 한 일의 보응이 내 하나님께 있느니라
⁵ 이제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나니 그는 태에서부터 나를 자기 종으로 지으신 이시요 야곱을 자기에게로 돌아오게 하시는 이시니 이스라엘이 모이지 아니할지라도 내가 여호와 보시기에 영화롭게 되었으며 내 하나님은 나의 힘이 되셨도다
⁶ 그가 이르시되 네가 나의 종이 되어 야곱의 지파들을 일으키며 이스라엘 중에 보전된 자들을 돌아오게 할 것은 매우 쉬운 일이라 내가 또 너를 이방의 빛으로 삼아 나의 구원을 베풀어서 땅 끝까지 이르게 하리라
여기서, I. 한 청중이 함께 소집되며 주목할 것이 요청된다. 앞 장에 있던 설교는 야곱의 집과 이스라엘 백성을 향한 것이었다(사 49:1,12). 그러나 이 장은 섬들(즉 이방인들이니, 그들은 이방의 섬들이라 불린다, 창 10:5)과 먼 곳의 백성들, 곧 이스라엘 나라 밖의 사람들이요 멀리 떨어져 있던 자들을 향한 것이다. 이들에게 (사 49:1) 멀리 있는 일에 대하여 듣듯이 들으라 하시나, 그럼에도 그들은 그것을 사모함과 주목함으로 들어야 한다. 주목하라, 1. 구속자에 관한 소식은 이방인들과 가장 멀리 떨어져 있는 자들에게 보내지며, 그들은 그것에 귀를 기울여야 마땅하다. 2. 유대인들이 복음에 귀를 막았을 때 이방인들은 복음에 귀를 기울였다.
II. 이 구속의 위대한 저자요 선포자는 자신이 맡은 일을 위하여 하늘로부터의 권위를 제시한다. 1. 하나님께서 그를 임명하시고 이 일을 위하여 그를 구별하셨다. 주께서 나를 태에서부터 부르사 이 직분을 맡기시고 내 이름을 기억하셨으며, 나를 구원자로 지명하셨다. 그는 한 천사를 통하여 그를 예수—구원자라 부르셨으니, 그는 자기 백성을 그들의 죄에서 구원할 이라(마 1:21). 아니, 그는 모든 세상이 있기 전, 신적 경륜의 태로부터 이 직무를 위하여 부르심을 받으셨고, 그에게 도우심이 베풀어졌다. 그리고 그는 그 부르심에 응하여 오셨으니, 이는 그가 책에 기록된 자기에 관한 것을 바라보며 보소서 내가 왔나이다라고 말씀하셨기 때문이다. 이것은 그의 모형이 된 어떤 선지자들에 관하여도 말한 바이다(렘 1:5). 바울은 모태로부터 사도직으로 택정함을 입었다(갈 1:15). 2. 하나님께서 그를 자신이 정하신 직무에 적합하게 하시고 자격을 갖추게 하셨다. 그는 그의 입을 날카로운 칼 같이 만드시고 그를 갈고 닦은 화살, 곧 빛나는 화살처럼 만드사, 어둠의 권세를 대적하여 하나님의 싸움을 싸우고, 사탄을 정복하며, 하나님께 반역한 백성을 그의 말씀으로 그들의 충성으로 돌아오게 하기에 필요한 모든 것을 갖추게 하셨다. 그것이 곧 그의 입에서 나오는 좌우에 날선 검(히 4:12)이니라(계 19:15). 말씀의 책망은 죄인들의 마음에 박힐 날카로운 화살이라(시 45:5). 3. 하나님께서 그를 위하여 예비해 두신 직무로 그를 높이셨다. 그가 나를 그의 손 그늘에 숨기시며 그의 화살통에 감추셨으니, 이는 (1.) 감추심을 뜻한다. 그리스도의 복음과 그로 말미암은 이방인의 부르심은 오랜 세대 동안 감추어져 있었으니, 하나님 안에 감추어졌고(엡 3:5, 롬 16:25), 의식법의 그늘과 구약의 모형들 속에 감추어져 있었다. (2.) 보호하심을 뜻한다. 다윗의 집은 그 안에 복이 있었기에 하나님의 섭리의 특별한 돌보심을 받았다. 그리스도께서는 유아기에 헤롯의 진노로부터 보호받으셨다. 4. 하나님께서 그를 인정하사 그에게 이르시기를, "너는 나의 종이라, 내가 너를 쓰며 형통하게 하리라. 너는 사실상 이스라엘이니, 곧 하나님과 겨루어 이긴 왕자라. 그리고 내가 너로 말미암아 영광을 받으리라" 하셨다. 하나님의 백성은 이스라엘이니, 그들은 모든 이스라엘의 위대한 대표자이신 그리스도 안에 다 모이고 마치 합산되듯 하니, 이는 마치 모든 지파의 이름을 가슴 흉패에 단 대제사장과 같다. 그리고 그 안에서 하나님은 영광을 받으셨고 또 받으시리니, 그가 하늘로부터 음성으로 그렇게 말씀하셨다(요 12:27,28). 어떤 이들은 이 말씀을 두 구절로 읽는다. 너는 나의 종이라(그리스도가 그러하시니, 사 42:1); 내가 너로 말미암아 영광을 받을 자는 이스라엘이라. 그것은 곧 영적 이스라엘, 곧 택함받은 자들이니,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그들이 구원받음으로써 하나님은 영광을 받으시고 그의 값없는 은혜는 영원히 찬송을 받으시리라.
III. 그는 자기가 맡은 일의 좋은 성공을 확신한다. 이는 하나님께서 부르시는 자를 그가 형통하게 하실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에 관하여,
그는 처음 출발할 때 만났던 낙심을 토로한다(사 49:4). "그때 나는 슬픈 마음으로 말하기를, 내가 헛되이 수고하였도다. 무지하고 무심하며 하나님께 낯선 자들은 여전히 그러하도다. 내가 불렀으나 그들이 듣기를 거절하였고, 내가 거역하는 백성에게 종일 손을 펴 들었도다" 이것은 이사야의 탄식이었으나, 이는 그가 예상하라고 들었던 것에 지나지 않았다(사 6:9). 동일한 것이 예레미야로 하여금 다시는 수고하지 않겠다고 결심하게 만든 유혹이 되었다(렘 20:9). 이는 게으르지 않고 수고하였으며, 아끼지 않고 자기 힘과 자신까지 다 쏟아부었으나, 많은 이들에 관하여는 모든 것이 헛되고 무익한—그들이 회개하고 믿도록 설득되지 않는—것을 보는 많은 신실한 사역자들의 탄식이다. 그러나 여기서는 유대인들의 완고함을 가리키는 듯하니, 그리스도께서 친히 그들 가운데로 가셔서 왕국의 복음을 전파하시고 수고하시며 그의 힘을 다 쏟으셨으나, 관원들과 그 나라의 대부분은 그와 그의 가르침을 거절하였다. 그리하여 아무도 거역하지 말았어야 마땅하다고 여겨질 만한 때에 너무도 적은 사람만이 인도되었으니, 그가 "내가 헛되이 수고하였도다, 그렇게 많은 설교를 하고 그렇게 많은 기적을 행하였으나 헛되도다"라고 말씀하실 만하였다. 사역자들은 주인이 친히 멸시를 당하셨거늘 자기들이 멸시받는 것을 이상히 여기지 말아야 한다.
그는 이 낙심 가운데서 다음의 생각으로 스스로를 위로한다. 곧 자기가 종사하는 일은 하나님의 일이요, 자기를 그 일에 종사하게 한 것은 하나님의 부르심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진실로 내 정당한 보상은, 만유의 심판자이신 주께 있고, 내가 한 일은, 내가 그의 종 된 내 하나님께 있느니라. 그의 위로는—그리고 이는 모든 신실한 사역자가 자기 수고의 열매가 거의 없음을 볼 때 얻는 위로가 될 수 있다—(1.) 어떠하든지 간에 그들이 변호하는 것은 의로운 일이라는 것이다. 그들은 하나님과 함께 있고 하나님을 위하여 있으며, 그의 편에 서 있고 그와 함께 일하는 동역자들이다. 그들은 자기들의 정당한 처지, 곧 그들이 따르는 규칙이나, 자기들이 종사하는 일이 이 때문에 조금이라도 못하다고 여기지 않는다. 사람들의 불신앙은 그들로 하여금 그들의 교리의 진리를 의심할 어떠한 이유도 주지 못한다(롬 3:3). (2.) 이 일에 대한 그들의 처리와 이 사역의 수행이 하나님께 알려져 있었으며, 그들은 자기들의 진실함에 관하여, 그리고 자기들이 헛되이 수고한 것이 어떤 태만 때문이 아니라는 것에 관하여 그에게 호소할 수 있었다. "그는 내가 가는 길을 아시느니라. 내 정당한 보상은 주께 있으니, 내가 내 영혼을 건졌는지, 멸망하는 자들의 피를 그들 자신의 머리로 돌렸는지를 판단하실 분이시라." (3.) 비록 수고가 그 수고를 받는 자들에 관하여는 헛될지라도, 수고하는 자 자신에 관하여는, 만일 그가 신실하다면, 헛되지 않다. 그의 정당한 보상은 주께 있으니, 사람들이 그를 정죄하고 짓밟을지라도 주께서 그를 의롭다 하시고 견디게 하실 것이며, 그의 일(그의 일의 보상)은 그의 하나님께 있으니, 하나님께서 그가 손해 보지 않도록, 아니, 잃어버린 수고로도 손해 보지 않도록 돌보실 것이다. (4.) 비록 그 정당한 일이 아직 승리에 이르지 못하고, 그 사역이 완성에 이르지 못하였을지라도, 이 둘은 다 주께 있어서, 그가 그것들을 진척시키시고 자기 목적을 따라 자기 방식과 때에 성공을 주실 것이다.
그는 이 항변에 대하여 하나님으로부터 더 나아간 응답을 받는다(사 49:5,6). 그는 하나님께서 자기에게 일을 맡기셨고, 자기를 태에서부터 그의 종이 되도록 지으셨으며, 그처럼 일찍 그 일로 부르셨을(사 49:1) 뿐 아니라, 그처럼 일찍 그를 그 일에 적합하게 하시고 그 일을 향하도록 준비시키기 시작하셨음을 매우 잘 알고 있었다. 하나님께서 자기 종으로 쓰고자 정하시는 자들을, 그는 아마 그들 자신이나 다른 이들이 깨닫지 못할 때에, 오래전부터 그렇게 되도록 빚으시고 준비시키신다. 사람 속에 그의 심령을 지으시는 이는 그분이시다. 그리스도께서는 자기를 배반하고 떠나간 야곱을 자기에게로 다시 돌아오게 하기 위하여 그의 종이 되셔야 했다. 그러므로 육신을 따른 야곱의 자손이 먼저 다루어져야 하고, 그들을 돌아오게 하기 위한 방편이 사용되어야 한다. 그리스도와 그로 말미암은 구원의 말씀이 그들에게 먼저 보내졌으니, 아니, 그리스도께서 친히 이스라엘 집의 잃어버린 양들에게만 오셨다. 그러나 만일 야곱이 하나님께로 돌아오려 하지 않고 이스라엘이 모이려 하지 않는다면 어찌할 것인가? 실제로 그렇게 되었다. 그러나 이런 경우에 이것이 만족이 된다. (1.) 그리스도는 주 보시기에 영화로우실 것이며, 하나님 보시기에 영화로운 자들이야말로 참으로 영화로운 자들이다. 비록 유대 나라 가운데 그리스도의 전파와 기적으로 회심한 자가 적었고, 그들 중 많은 이들이 그에게 치욕과 수치를 안겼을지라도, 하나님께서는 그를 높이시고 영화롭게 하셨으니, 그의 세례 때와 변화 시에 그러하셨고, 하늘로부터 그에게 말씀하셨으며, 천사들을 보내어 그를 섬기게 하셨고, 그의 수치스러운 죽음조차도 그것에 따른 많은 이적으로 영화롭게 하셨으며, 그의 부활은 더욱 그러하였다. 그의 고난 가운데 하나님은 그의 힘이 되셨으니, 그가 비록 그토록 많은 은혜를 베풀어 주신 백성의 멸시로 말미암아 상상할 수 있는 모든 낙심을 만났을지라도, 그는 낙심하지도 아니하시고 좌절하지도 아니하셨다. 한 천사가 하늘로부터 보내져 그를 강건하게 하였다(눅 22:43). 신실한 사역자들은 자기 수고의 열매를 보지 못할지라도, 하나님께 받아들여질 것이며, 그 점에서 그들은 참으로 영화로울 것이니, 이는 그의 은총이 우리의 영광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들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기 수고를 계속하고 끝까지 견디도록 도우심을 받을 것이다. 이것은 그들의 손을 약하게 하나, 그들의 하나님께서 그들의 힘이 되실 것이다. (2.) 복음은 세상의 눈에 영화로울 것이다. 비록 그것이 유대인들의 눈에는 그렇지 않을지라도, 그것은 열방에 의하여 영접될 것이다(사 49:6). 메시아는 마치 본래 일차적으로 야곱을 돌아오게 하도록 정해진 것처럼 보였다(사 49:5). 그러나 여기서 그는 그것이 비교적 작은 일에 불과하다고 들으니, 그것보다 더 높은 영광의 궤도와 더 넓은 유익의 영역이 그에게 정해져 있다. "네가 나의 종이 되어, 야곱의 지파들을 일으켜 그들이 메시아로 말미암아 기대하는 위엄과 통치에 이르게 하고, 이스라엘 중에 보전된 자들을 돌아오게 하여 그들을 전과 같이 번창하는 교회와 나라로 만드는 것은 매우 쉬운 일이라"(아니, 그들이 한 줌밖에 안 되는 백성임을 생각하면, 메시아가 그들만의 구원자가 되는 것은 비교적 작은 일에 불과할 것이다). "그러므로 내가 너를 이방의 빛으로 삼아(많은 크고 강한 나라들이 그리스도의 복음으로 말미암아 참 하나님을 알고 예배하는 데로 인도되리라), 나의 구원이 되게, 곧 내가 잃어버린 인류를 위하여 마련한 그 구원의 저자가 되게 하며, 이것을 땅 끝까지, 가장 멀리 떨어진 나라들에까지 이르게 하리라." 이로부터 시므온은 그리스도를 이방을 비추는 빛이라 부르는 법을 배웠으며(눅 2:32), 이 본문에 대한 바울의 해석이야말로 우리가 따라야 할 것이요, 문맥의 열쇠가 된다(행 13:47). 그가 이르되, 그러므로 우리가 이방인에게로 돌이켜 그들에게 복음을 전하노니, 이는 주께서 우리에게 명하시기를, 내가 너를 이방의 빛으로 삼았노라 하셨음이라. 이 점에서 구속자는, 비록 이스라엘이 모이지 않았을지라도, 참으로 영화로우셨으니, 이방 세계에 그의 왕국을 세우신 것은 그가 야곱의 모든 지파를 일으키신 것보다 더 큰 그의 영광이었다. 이 약속은 이미 부분적으로 성취되었으며, 사도가 말한 바 이방인의 충만한 수가 들어올 때(롬 11:25), 만일 그 때가 아직 오지 않았다면, 더 나아간 성취를 이룰 것이다. 주목하라, 하나님께서는 그것을 그의 구원이라 부르시니, 어떤 이들은 이것이 그가 그것을 얼마나 기뻐하셨는지, 그가 그것을 얼마나 영광스럽게 여기셨는지, 그리고 (이렇게 말할 수 있다면) 그의 마음이 그 위에 얼마나 쏠려 있었는지를 암시한다고 생각한다. 그들은 더 나아가, 그리스도가 구원으로 주어진 모든 자들에게 그가 빛으로도 주어진다고 주목한다. 사람들이 멸망하는 것은 어둠 가운데서이다. 그리스도께서는 사람들의 눈을 밝히시며, 그리하여 그들을 거룩하고 복되게 하신다.
⁷ 이스라엘의 구속자 곧 그의 거룩한 이이신 여호와께서 사람에게 멸시를 당하는 자, 백성에게 미움을 받는 자, 관원들의 종에게 이같이 말씀하시되, 왕들이 보고 일어서며 고관들도 경배하리니 이는 신실하신 여호와 곧 이스라엘의 거룩한 이가 너를 택하였음이라. ⁸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되, 은혜의 때에 내가 네게 응답하였고 구원의 날에 내가 너를 도왔도다. 내가 장차 너를 보호하여 너를 백성의 언약으로 삼으며, 땅을 일으키고, 황폐하였던 기업을 상속하게 하리라. ⁹ 이는 네가 갇힌 자에게 나오라 하며 흑암에 있는 자에게 너희를 나타내라 하기 위함이라. 그들이 길에서 먹겠고 모든 헐벗은 산에도 그들의 초장이 있을 것인즉, ¹⁰ 그들이 주리거나 목마르지 아니할 것이며 더위와 볕도 그들을 상하게 하지 아니하리니 이는 그들을 긍휼히 여기는 이가 그들을 이끌되 샘물 곁으로 인도할 것임이라. ¹¹ 내가 나의 모든 산을 길로 삼고 나의 대로를 돋우리니, ¹² 보라, 이들이 먼 곳에서 오며, 보라, 이들은 북쪽과 서쪽에서 오며, 이들은 시님 땅에서 오리라.
이 구절들에서 우리는 다음과 같은 내용을 본다.
I. 메시아의 낮아지심과 높아지심(사 49:7). 이스라엘의 구속자 곧 이스라엘의 거룩한 이이신 여호와께서는 언제나 유대 교회를 돌보시고 그들을 위해 저 큰 구원의 예표가 되는 구원들을 이루어 오셨는데, 여기서는 바로 그 구원을 떠맡으신 분에게 말씀하신다. 그리고 1. 그분은 그의 낮아지심에 주목하시는데, 그 사례들은 보기 드문 것, 아니 비할 데 없는 것이었다. 그는 사람에게 멸시를 당하는 자였다. 그는 사람들에게 멸시를 받아 버림을 받았으니(사 53:3). 사람이라는 그렇게 비천한 피조물(사람 자신이 한 마리 벌레인데)에게 멸시를 당한다는 것은 상상할 수 있는 가장 낮고 가장 멸시받는 처지를 말해 준다. 그가 구원하고 영예롭게 하시려고 오신 그 사람이 도리어 그를 멸시하고 그에게 모욕을 가하였으니, 그를 박해한 자들은 그토록 비참하게 배은망덕하였다. 그가 당하신 치욕은 그의 고난 가운데 결코 작은 것이 아니었다. 그들은 그를 멸시받게 했을 뿐 아니라 가증한 자로 만들었다. 그는 백성에게 미움을 받는 자였다. 그들은 그를 가장 악한 사람으로 취급하여 그를 십자가에 못 박으라, 십자가에 못 박으라 하고 외쳤다. 온 나라가 그렇게 하였으니, 유대인뿐 아니라 이방인도 그러하였으며, 이 일에서는 유대인이 이방인보다 더 악하였으니, 이는 그의 십자가가 한 편에게는 거리끼는 것이요 다른 편에게는 미련한 것이었기 때문이다. 그는 관원들의 종이었다. 그는 종처럼 짓밟히고 학대받고 채찍질 당하며 십자가에 못 박혔다. 빌라도는 그를 다스리는 자신의 권세를 자랑하였다(요 19:10). 이것을 그는 우리의 구원을 위하여 감당하셨다. 2. 그분은 그에게 그의 높아지심을 약속하신다. 그의 낮아지심의 가장 깊은 곳에서도 그에게 영예가 돌려졌다. 분봉왕 헤롯은 그를 두려워하여 이는 세례 요한이라 하였으며, 귀인들과 관원들과 백부장들이 와서 그 앞에 무릎을 꿇었다. 그러나 이것은 왕들이 그의 복음을 받아들이고 그의 멍에에 복종하며 그를 예배하는 일에 동참하고 스스로를 그리스도의 종이라 일컬었을 때 더욱 온전히 성취되었다. 이는 그리스도께서 부유한 자를 가난한 자보다 더 귀히 여기시기 때문이 아니라(그들은 그 앞에서 동등한 위치에 서 있다), 땅의 위대한 자들이 그를 위하여 나서고 그에게 경의를 표할 때 사람들 가운데서 그의 나라가 영광을 받기 때문이다. 이것이 하나님의 약속의 성취가 될 것이며, 그분은 이방인을 그의 기업으로 주실 것이다. 그리고 그러므로 그 일이 이루어질 것이니, 이는 신실하시며 그 약속에 참되신 여호와로 말미암음이라. 그리고 이것은 그리스도께서 그가 행하신 일에 대한 위임을 받으셨다는 것과, 하나님이 그를 택하셨고 그가 행하신 그 택하심을 인정하시리라는 것에 대한 증거가 될 것이다.
II. 그가 구원이 되어 주시는 모든 자들을 위하여 그가 예비해 두신 복들.
하나님은 그가 맡으신 일에 있어서 그를 인정하시고 그를 도우실 것이다(사 49:8). 은혜의 때에 내가 네게 응답하였고, 곧 내가 네 말을 들으리라는 것이다. 그리스도께서는 육체에 계실 때에 간절한 부르짖음을 올렸고 응답을 받으셨다(히 5:7). 그는 아버지께서 항상 자기 말을 들으시는 줄(요 11:42) 아셨으니, 자기 자신을 위하여 들으심을 받으셨고(비록 그 잔이 그를 떠날 수 없었으나, 그는 그것을 마실 수 있게 되셨다), 자기에게 속한 모든 자를 위하여 들으심을 받으셨다. 그러므로 그는 권세 있는 자처럼 그들을 위하여 중보하셨다. 아버지여, 내가 원하옵나이다(요 17:24). 우리의 모든 행복은 아들이 아버지께 가지신 관계와 그의 중보의 효력에서 비롯되니, 아버지께서 항상 그의 말을 들으셨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것이 복음의 때를 은혜의 때, 우리에게 환영받는 때로 만드니, 이는 우리가 하나님께 받아들여져 그분과 화목하게 되고 그분께 천거되었기 때문이며, 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여 그 구속자의 말을 들으시기 때문이다(히 7:25). 그분은 그의 말을 들으실 뿐 아니라, 그가 그 맡으신 일을 끝까지 이루도록 도우실 것이다. 아버지께서는 항상 그의 오른편에 계셨고, 제자들이 그를 버렸을 때에도 그를 떠나지 아니하셨다. 어둠의 세력이 그들의 때를 만나, 우리 주 예수님을 그의 맡으신 일에서 몰아내려고 그에게 격렬한 공격을 가하였으나, 하나님은 그를 보호하시고 그가 그 일에 끝까지 견디게 하실 것을 약속하셨다. 그 한 돌 위에 일곱 눈이 있더라(슥 3:9). 하나님은 그를 보호하시고, 비록 사방에서 공격을 받을지라도 사람들 가운데 있는 그의 이익과 그의 나라를 보호하실 것이다. 그리스도교가 보존되는 한 그리스도는 보존된다.
하나님은 그가 이루어 내실 구속의 유익을 그의 교회에 적용하도록 그에게 권세를 주실 것이다. 하나님이 그를 보호하시고 도우신 것은 그의 복음의 날을 구원의 날로 삼으시기 위함이었다. 사도도 이것을 이렇게 이해한다. 보라, 지금은 구원의 날이로다, 곧 이제 그리스도로 말미암은 화목의 말씀이 전파되고 있다(고후 6:2).
(1.) 그는 하나님과 사람 사이의 화평의 언약을 보증하는 자가 되실 것이다. 내가 너를 백성의 언약으로 삼으리라. 이것은 앞에서 이미 다루었으며(사 42:6), 신실하고 온전히 받아들이고 주목할 만한 것이기에 여기서 거듭된다. 그는 언약으로 주어졌으니, 곧 그 언약의 모든 복의 담보로 주어졌다. 하나님이 세상을 자기와 화목하게 하신 것은 그 안에서였고, 자기 아들을 아끼지 아니하신 분께서는 우리에게 아무것도 거절하지 아니하실 것이다. 그는 언약으로 주어졌으니, 단지 그가 언약의 중보자, 곧 우리 둘 위에 손을 얹으신 복된 중재자이시기 때문만이 아니라, 그가 그 언약 안에서 모든 것 중의 모든 것이시기 때문이다. 언약의 모든 의무는 우리가 그의 것이 된다는 데 요약되고, 언약의 모든 특권과 행복은 그가 우리의 것이 되신다는 데 요약된다.
(2.) 그는 교회의 쇠퇴를 회복시키고 그것을 반석 위에 세우실 것이다. 그는 땅을 일으키시리니, 차라리 그 땅, 곧 교회의 예표인 유다 땅을 일으키실 것이다. 그는 황폐한 기업을 상속하게 하시리니, 유다의 성읍들이 포로에서 돌아온 후에 그러하였고, 유대 민족의 마지막 타락한 시대에 황폐한 땅처럼 되었던 교회도 그러하였으나, 복음 전파의 열매로 다시 채워졌다.
(3.) 그는 사람들의 영혼을 죄책과 부패의 속박에서 해방시켜 하나님의 자녀들의 영광스러운 자유로 인도하실 것이다. 그는 하나님의 공의에 넘겨지고 사탄의 권세 아래 매여 있던 갇힌 자들에게 나오라 하실 것이다(사 49:9). 용서하시는 자비는 율법의 저주로부터의 석방이요, 새롭게 하시는 은혜는 죄의 지배로부터의 석방이다. 둘 다 그리스도에게서 오며 저 큰 구원의 가지들이다. 나오라 하시는 이는 바로 그분이시니, 우리를 자유케 하시는 이는 아들이시며, 그러면 우리가 참으로 자유롭게 된다. 그는 흑암에 있는 자들에게 너희를 나타내라 하시니, "단지 보기만 할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영광과 너희 자신의 위로를 위하여 보이라"는 것이다. 그가 나병환자들을 그들의 격리에서 풀어 주셨을 때 가서 제사장에게 네 몸을 보이라 하셨다. 우리가 빛을 볼 때에 우리의 빛을 비추게 하자.
(4.) 그는 자기가 자유케 하신 자들이 그들의 안식처와 행복한 정착지로 평안히 가도록 예비해 주실 것이다(사 49:9-11). 이 구절들은 유대인들이 포로에서 돌아오는 것을 위하여 마련된 예비를 가리키는데, 그들은 하늘의 총애를 받는 자들로서 하나님의 특별한 섭리의 돌보심을 받았으며, 이제 특별한 방식으로 그러하였다. 그러나 이것은 하나님의 모든 영적 이스라엘이 속박에서의 석방으로부터 하늘의 가나안에 정착하기까지 받는 하나님의 은혜의 인도하심에도 적용될 수 있다. [1.] 그들은 그들의 비용을 책임져 주실 것이며 합당한 양식을 거저 먹을 것이다. 그들이 길에서 먹으리니, 양처럼 그러할 것이라. 이는 이제도, 전에 그러하셨던 것처럼, 하나님이 요셉을 양 떼같이 인도하심이라. 하나님이 기뻐하실 때에는 큰길의 땅까지도 그의 초장의 양들이 먹기에 좋은 땅이 될 것이다. 그들의 초장은 골짜기뿐 아니라 모든 높은 곳에도 있으리니, 그런 곳은 흔히 메마르고 황폐한 곳이다. 하나님은 그의 백성을 어디로 데려가시든지 그들에게 유익한 것은 무엇이든 부족함이 없도록 돌보실 것이다(시 34:10). 그리고 그들은 매우 잘 공급받아 주리거나 목마르지 아니할 것이니, 이는 그들이 필요한 것을, 그 필요가 극에 달하기 전에, 때를 따라 얻을 것이기 때문이다. [2.] 그들은 그들을 괴롭게 할 모든 것으로부터 보호받고 지켜질 것이다. 더위와 볕도 그들을 상하게 하지 아니하리니, 곧 하나님이 그의 양 떼를 정오에 쉬게 하심이라(아 1:7). 하나님의 보호 아래 자신을 둔 자들에게는 어떤 악한 일도 닥치지 아니할 것이며, 그들은 그날의 짐과 더위를 견딜 수 있게 될 것이다. [3.] 그들은 하나님의 은혜로운 인도하심 아래 있을 것이다. 그들을 포로에서 이끌어 내심으로 그들을 긍휼히 여기시는 이가, 옛적에 광야에서 그들의 조상들을 구름 기둥과 불 기둥으로 인도하셨던 것처럼, 그들을 인도하실 것이다. 그들의 행진 중에 그들에게 마련될 샘물 곁으로 그가 그들을 인도하실 것이다. 하나님은 그들에게 합당하고 때에 맞는 위로를 공급하시되, 바카 골짜기의 빗물 웅덩이가 아니라 이스라엘을 따랐던 반석에서 나온 물과 같이 하실 것이다. 하나님의 인도하심 아래 있어 그것을 가까이 따르는 자들은, 그렇게 하는 동안, 정당한 근거로 하나님의 위로와 강심제를 바랄 수 있다. 세상은 그 추종자들을 깨진 웅덩이나 여름에 마르는 시내로 인도하지만, 하나님은 그에게 속한 자들을 샘물 곁으로 인도하신다. 그리고 하나님이 인도하시는 자들은 평탄한 길을 찾고 모든 장애물이 제거된 것을 보게 될 것이다(사 49:11). 내가 나의 모든 산을 길로 삼으리라. 지난날 바다를 길로 삼으신 이가 이제 그와 같이 쉽게, 비록 지나갈 수 없어 보일지라도, 산들을 길로 삼으실 것이다. 그 대로, 곧 둑길은 더 평탄하고 더 아름답게 되도록 돋우어질 것이다. 주목하라. 하나님이 그의 백성을 인도하시는 길들은 그분이 친히 감독하실 것이며, 옛적에 도피성으로 이어지던 길들처럼 그 길들이 잘 보수되고 정비된 상태로 유지되도록 돌보실 것이다. 바벨론에서부터의 길을 평탄하게 하는 것은, 예언된 대로(사 40:2,3), 복음 사역에 적용되었으니, 이 또한 그렇게 적용될 수 있다. 하늘로 가는 길에 우리 자신의 힘으로는 넘을 수 없는 어려움들이 있을지라도, 하나님의 은혜는 우리가 그것들을 넘어가도록 돕고 산들까지도 길로 삼기에 충분할 것이다(사 35:8).
(5.) 그는 그들을 사방에서 다 함께 불러 모으셔서, 그들이 한 무리로 돌아오게 하시고, 서로 격려하며 더욱 주목받게 하실 것이다. 그들은 자기들끼리의 어떤 연합도 막으려는 원수들의 뜻대로 바벨론 땅의 여러 곳으로 흩어졌었다. 그러나 하나님이 그들을 함께 본향으로 데려오실 때가 이르면, 한 영이 그들 모두를, 곧 서로 가장 멀리 떨어져 있는 모든 자들을 고무할 것이며, 다른 나라들에 피신해 있던 자들도 유다 땅에서 그들을 만날 것이다(사 49:12). 여기에 한 무리가 먼 곳에서 오며, 어떤 이들은 북쪽에서, 어떤 이들은 서쪽에서, 어떤 이들은 시님 땅에서 올 것이니, 시님은 아마도 성경 다른 곳에서는 언급되지 않은 바벨론의 어떤 지방일 것이나, 어떤 이들은 이를 애굽의 주요 도시 가운데 하나에 속한, 신이라 불리는 한 지역으로 보는데, 이에 관하여는 겔 30:15,16에서 읽는다. 이제 이 약속은 복음 교회로 회심자들이 크게 몰려드는 일에서 더 깊은 성취를 보게 될 것이며, 하나님의 택하신 자들이 동쪽과 서쪽에서 와서 하나님의 나라에서 족장들과 함께 앉을 때(마 8:11) 그 온전한 성취를 보게 될 것이다.
¹³ 하늘이여 노래할지어다 땅이여 기뻐할지어다 산들이여 즐거이 노래할지어다 여호와께서 그의 백성을 위로하셨은즉 그의 고난당한 자를 긍휼히 여기실 것임이라 ¹⁴ 그러나 시온이 이르기를 여호와께서 나를 버리시며 주께서 나를 잊으셨다 하였거니와 ¹⁵ 여인이 어찌 그 젖 먹는 자식을 잊겠으며 자기 태에서 난 아들을 긍휼히 여기지 않겠느냐 그들은 혹시 잊을지라도 나는 너를 잊지 아니할 것이라 ¹⁶ 내가 너를 내 손바닥에 새겼고 너의 성벽이 항상 내 앞에 있나니 ¹⁷ 네 자녀들은 빨리 걸으며 너를 헐며 너를 황폐하게 하던 자들은 너를 떠나가리라
이 구절들의 취지는, 하나님의 백성이 사로잡힘에서 돌아오는 일과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이루어질 영원한 구속(앞의 일은 그것의 예표였다)이 교회에 큰 기쁨의 계기가 되며, 하나님께서 교회를 향해 품으시는 그 부드러운 돌보심의 큰 증거가 됨을 보여 주는 데 있다.
I. 그 무엇도 찬송과 감사의 노래를 위하여 이보다 더 좋은 주제를 우리에게 제공할 수는 없다(사 49:13). 온 피조물이 우리와 함께 기쁨의 노래에 동참하게 하라. 피조물도 우리와 더불어 구속의 유익에 참여하기 때문이요, 또 이처럼 헤아릴 수 없는 은혜에 대한 보답으로 그들이 이 거룩한 가락에 보탤 수 있는 것은 너무도 미미하기 때문이다(시 96:11). 하늘에 기쁨이 있게 하고, 하나님의 천사들로 위대하신 구속주의 찬미를 부르게 하라. 땅과 산들, 특히 땅의 큰 산들로 기뻐하며 즐거이 노래하게 하라. 이는 하나님의 자녀들의 영광스러운 자유를 간절히 기다리는 피조물의 고대함(롬 8:19,21)이 이제 풍성히 응답될 것이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백성은 세상의 복이요 장식이니, 그러므로 온 세상에 두루 기쁨이 있게 하라. 이는 하나님께서 슬픔에 잠겨 있던 그의 백성을 위로하셨으며 또 그의 긍휼하심을 따라 고난당한 자를 긍휼히 여기실 것이요, 그의 언약을 따라 그의 고난당한 자를 긍휼히 여기실 것이기 때문이다.
II. 그 무엇도 하나님께서 그의 교회와 그 유익과 위로를 향하여 품으시는 가장 부드럽고 애정 어린 관심을 입증하는 데 이보다 더 설득력 있는 논거를 우리에게 제공할 수는 없다.
교회의 환난은 그것을 향한 하나님의 돌보심과 관심을 의심할 빌미를 어느 정도 제공하였다(사 49:14). 시온은 고난 중에 이르기를 여호와께서 나를 버리시고 더 이상 나를 돌아보지 아니하시며, 주께서 나를 잊으시고 더 이상 나를 돌아보지 아니하시리라 하였다. 하나님의 백성의 처지가 때로는 얼마나 비참할 수 있는지를 보라. 그들이 자기 하나님께 버림받고 잊혀진 것처럼 보일 정도이며, 그러한 때에 그들의 시험은 놀랍도록 거셀 수 있다. 불신자들은 그 교만함 가운데 여호와께서 땅을 버리셨다 하며(겔 8:12), 또 그가 자기들의 죄를 잊으셨다 한다(시 10:11). 연약한 신자들은 그 낙심 가운데 "하나님께서 그의 교회를 버리시고 그 백성의 슬픔을 잊으셨다" 하기 쉽다. 그러나 우리가 그의 섭리와 공의를 의심할 까닭이 없는 것처럼, 그의 약속과 은혜를 의심할 까닭도 없다. 그는 보응하시는 자이심이 확실한 만큼 상 주시는 자이심도 확실하다. 그러므로 우정의 독이 되는 이러한 불신과 시기를 떨쳐 버리라.
환난 뒤에 임하는 교회의 승리는 때가 이르면 이 문제를 의심의 여지없이 밝혀 줄 것이다.
(1.) 하나님께서 시온을 위하여 무엇을 행하실지를 우리는 듣게 된다(사 49:17). [1.] 그를 저버렸던 그의 친구들이 그에게로 모여들어 그를 돕고 위로하는 데 힘을 다할 것이다. 곧 네 자녀들이 빨리 걸을 것이라. 그리스도의 믿음으로 돌아온 회심자들은 교회의 자녀들이니, 그들이 큰 기꺼움과 즐거움으로 그에게 합하며, 비둘기가 그 보금자리로 모여들듯 성도의 교제 안으로 모여들 것이다. "네 건축자들이 빨리 걸으리라"(어떤 이들은 이렇게 읽는다). "그들이 네 집들과 네 성벽들, 특히 네 성전을 세우되 신속히 행할 것이라." 교회의 일은 흔히 더디게 진행되지만, 하나님의 때가 이르면 그 일은 갑자기 이루어질 것이다. [2.] 그를 위협하고 공격하던 그의 원수들이 어쩔 수 없이 그에게서 물러갈 것이다. 곧 너를 헐며 너를 황폐하게 하던 자들, 그 나라를 점령하여 짓밟던 자들이 너를 떠나가리라.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이 세상의 임금, 곧 큰 멸망시키는 자가 쫓겨나고 그 자리에서 내쫓기며, 그의 권세가 꺾이고 그의 시도가 완전히 좌절된다.
(2.) 이제 이로써 시온의 추측이 전혀 근거 없는 것이었음이, 곧 하나님께서 그를 버리지도 잊지도 아니하셨으며 결코 그러지 아니하시리라는 것이 드러날 것이다. 확신하라. [1.] 하나님께서 그의 교회와 백성을 향하여 부드러운 애정을 품으신다는 것을(사 49:15). 시온의 두려움에 답하여 하나님께서는 자기 자신의 영광을 위하여 관심을 가지신 분으로서 말씀하시며(시온이 여호와께서 나를 버리셨다 한다면 그는 자신이 폄하받았다고 여기시므로, 자신을 변호하실 것이다), 또한 자기 백성의 위로를 위하여 관심을 가지신 분으로서 말씀하신다. 그는 그들이 낙담하거나 낙심하거나 어떤 괴로운 생각에 빠지기를 원치 아니하신다. "너는 내가 너를 잊었다고 생각하느냐? 여인이 어찌 그 젖 먹는 자식을 잊겠느냐?" 첫째로, 그가 그럴 가능성은 없다. 아름다운 성(性)일 뿐 아니라 부드러운 성(性)임을 그 영예로 삼는 여인은, 해를 끼칠 수도 없고 스스로를 지킬 수도 없어 마땅히 긍휼의 대상이 되는 자식을 긍휼히 여기지 않을 수 없다. 특히 어머니는 자기 자식을 향한 관심을 품지 않을 수 없으니, 그 자식은 자기 자신의 것이요, 자기 몸의 일부요, 바로 얼마 전까지 자기와 하나였던 존재이기 때문이다. 무엇보다도 젖 먹이는 어머니는 그 젖 먹는 자식을 향하여 애틋하지 않을 수 없으니, 그가 만일 그것을 잊는다 해도 그 자신의 젖가슴이 곧 그것을 떠올리게 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둘째로, 그가 잊을 가능성은 있다. 여인이 어쩌면 너무 불행하여 그 젖 먹는 자식을 기억하지 못할 수도 있으며(병들고 죽어 가며 망각의 땅으로 가게 될 수도 있다), 혹은 너무도 비정하여 자기 태에서 난 아들을 긍휼히 여기지 못할 수도 있으니, 마치 자기 수치를 감추려고 자기 자식이 태어나 생명을 얻자마자 그를 죽이는 자들처럼 그러하다(애 4:10, 신 28:57). 그러나 하나님께서 이르시기를, 나는 너를 잊지 아니하리라 하신다. 주목하라. 하나님께서 그의 백성에게 베푸시는 긍휼은 가장 자애로운 부모가 그 자녀에게 품는 긍휼을 무한히 능가한다. 본성의 애정이 어찌 본성의 하나님의 애정에 비기랴! [2.] 그가 그의 교회와 백성을 한결같이 돌보신다는 것을(사 49:16). 내가 너를 내 손바닥에 새겼노라. 이는 사람마다 그 운명이 손바닥에 새겨져 거기 손금에서 읽힐 수 있다고 상상하는 어리석은 손금술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잊을까 염려하는 일을 기억하려고 손이나 손가락에 끈을 매는 사람들의 관습, 혹은 어떤 소중한 친구를 기념하여 인장 반지나 로켓 반지를 끼는 관습을 암시한다. 그가 이처럼 그들을 자기 팔에 인장으로 두신다는 것은 그가 그들을 자기 마음에 인장으로 두신다는 것을, 곧 그가 언제나 그들과 그들의 유익을 마음에 두신다는 것을 뜻한다(아 8:6). 우리가 하나님의 율법을 우리 손에 표징으로 매면(신 6:8,11,18), 그는 우리의 유익을 그의 손에 표징으로 새기시며, 그것을 바라보시고 언약을 기억하실 것이다. 그가 덧붙여 이르시기를, "네 성벽이 항상 내 앞에 있으리라. 곧 네 무너진 성벽은 비록 보기에 즐거운 광경이 아닐지라도 내 긍휼한 생각 가운데 있으리라" 하신다. 시온의 친구들이 그의 흙을 아끼는가?(시 102:14) 그의 하나님도 그러하시다. 혹은 "다시 세워질 네 성벽의 도면과 설계가 내 앞에 있으니, 그것은 반드시 그대로 건축되리라." 혹은 "네 성벽, 곧 네 안전이 내가 끊임없이 돌보는 바이며, 네 성벽 위의 파수꾼들도 그러하니라." 어떤 이들은 그가 자기 교회를 손바닥에 새기셨다는 것을,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실 때 그 손에 난 상처에 적용한다. 그는 그 상흔을 바라보시며 자신이 그들을 위하여 고난받고 죽으신 그 사람들을 기억하실 것이다.
¹⁸ 네 눈을 들어 사방을 둘러보라. 그들이 다 모여 네게로 오느니라.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내가 살아 있음을 두고 맹세하노니, 네가 반드시 그들 모두를 장식품처럼 몸에 두르며, 신부가 하듯이 그들을 네 몸에 매리라.
¹⁹ 네 황폐하고 적막한 곳들과 너의 멸망의 땅이 이제는 거주민으로 인하여 너무 좁아질 것이요, 너를 삼키던 자들은 멀리 떠나가리라.
²⁰ 네가 다른 자녀를 잃은 후에 얻을 자녀들이 네 귀에 다시 말하기를, 이곳이 내게 너무 좁으니 내가 거할 곳을 내게 내어 달라 하리라.
²¹ 그때 네가 마음속으로 이르기를, 내가 내 자녀를 잃고 외로우며 사로잡혀 이리저리 떠돌았거늘, 누가 나를 위하여 이들을 낳았는고? 또 누가 이들을 길렀는고? 보라, 나는 홀로 남았었거늘, 이들은 어디에 있었던고? 하리라.
²² 주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되, 보라, 내가 이방인들을 향하여 내 손을 들고, 민족들을 향하여 내 기를 세우리니, 그들이 네 아들들을 그들의 품에 안아 데려오며, 네 딸들은 그들의 어깨에 메어 옮겨지리라.
²³ 왕들은 네 양육하는 아버지가 되고, 그들의 왕비들은 네 유모가 될 것이며, 그들이 그들의 얼굴을 땅에 대고 네게 절하며 네 발의 티끌을 핥을 것이라. 그러면 네가 내가 여호와인 줄 알리니, 이는 나를 기다리는 자들이 부끄러움을 당하지 아니할 것임이라.
여기에 두 가지가 약속되어 있는데, 이는 부분적으로는 유대 교회가 포로에서 돌아온 후 부흥하는 데서 성취되었으나, 더 온전하게는 그리스도의 복음 전파로 기독교 교회가 세워지는 데서 성취되었다. 우리는 이 약속들에서 위로를 얻을 수 있다.
I. 교회가 그 안에 더해지는 많은 무리로 가득 채워지리라는 것이다. (사 49:17)에서 그 자녀들이 서둘러 오리라고 약속되었는데, 그 약속이 여기서 확대되고 매우 격려가 되는 것으로 제시된다. 다음과 같이 약속된다.
1. 무리가 사방에서 교회로 몰려오리라는 것이다. 둘러보아 그들이 어떻게 네게로 모여드는지 보라(사 49:18). 이는 유대 교회에 지역적으로 더해지는 것이다. 그들은 사방의 이웃 나라들에서 예루살렘으로 오는데, 그곳이 당시 그들의 연합의 중심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복음 아래서는 믿음과 사랑 안에서 그리스도의 신비한 몸에 영적으로 더해지는 것으로 이루어진다. 새 언약의 중보자이신 예수께 나아오는 자들은 그로써 시온 산, 곧 장자들의 교회에 나아오는 것이다(히 12:22,23). 네 눈을 들어 어떻게 밭이 희어져 추수하게 되었는지 보라(요 4:35). 주목하라, 그리스도께로 돌아오는 무리를 보는 것은 교회에 기쁨이 되는 일이다.
2. 교회에 더해지는 자들이 교회에 짐이나 흠이 되지 않고 도리어 교회의 힘과 장식이 되리라는 것이다. 이 약속의 부분은 맹세로 확증되어 있다.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내가 살아 있음을 두고 맹세하노니, 네가 반드시 그들 모두를 두르리라. 그러한 무리가 교회에 더해지는 것은 교회의 옷을 완성할 것이다. 택함받은 모든 자가 효력 있게 부르심을 받을 때, 신부 곧 어린양의 아내가 자신을 단장하여 온전히 차려입게 될 것이다(계 19:7). 그들은 교회를 아름답고 훌륭하게 보이게 할 것이며, 그러므로 교회는 신부가 자기 장식품을 매듯 큰 정성과 만족으로 그들을 몸에 맬 것이다. 교회에 더해지는 자들이 진지하고 거룩하며 그 행실이 본이 될 때, 그들은 교회의 장식이 된다.
3. 이리하여 황폐하고 적막하며 주민이 없던(사 5:9, 6:11) 그 땅이 다시 사람으로 채워지고, 나아가 사람으로 넘치게 되리라는 것이다(사 49:19). "오랫동안 그렇게 버려져 있던 네 황폐하고 적막한 곳들과, 너와 함께 멸망당하여 아무도 거기 거하기를 원치 않던 너의 멸망의 땅이 이제는 사람으로 가득 차서 거주민이 들어설 자리가 없게 되리라." 여기에 받을 곳이 부족할 때까지 부어지는 복이 있다(말 3:10). 이는 아브라함과 롯이 그 땅의 가나안 사람으로 인하여 그러했던 것처럼, 그들이 원수들에게 밀려나거나 자리가 좁아진다는 말이 아니다. "아니라, 너를 삼키던 자들, 곧 네가 그 땅을 차지하지 못하게 되었을 때 네 땅을 점령했던 자들은 멀리 떠나가리라. 네 백성은 많아질 것이며, 그들 가운데 이방인도 원수도 없으리라." 이처럼 사람들 가운데 있던 하나님의 나라, 곧 한편으로는 유대 교회의 부패로 말미암아 또 한편으로는 이방 세계의 가증한 일들로 말미암아 빈곤해지고 거의 사람이 사라졌던 그 나라가, 기독교 교회의 설립과 그 은혜와 영광으로 인하여 다시 사람으로 채워지고 풍성해졌다.
4. 새로 돌아온 자들이 놀랍게 늘어나고 번성하리라는 것이다. 예루살렘은 칼과 기근과 포로로 인하여 그 자녀를 많이 잃은 후에, 그들을 대신하여 자라나는 새 식구를, 곧 다른 자녀를 잃은 후에 얻을 자녀를 갖게 될 것이다(사 49:20). 이는 셋이 아벨을 대신하여 또 다른 씨로 세워진 것과 같고, 욥의 자녀들이 집이 무너질 때 죽은 자녀들을 대신하여 하나님이 그에게 복으로 주신 것과 같다. 하나님은 그 교회의 손실을 회복시키시고, 그 안에서 자기를 섬길 씨를 친히 확보하실 것이다. 유대인들에게는 그들이 돌아온 후 예루살렘이 거리에서 노는 소년 소녀들로 가득하리라고 약속되었다(슥 8:5). 교회는 자기들의 불신으로 인하여 끊어질 유대인들을 잃은 후에도 여전히 많은 자녀를, 곧 유대인들이 교회에 속해 있었을 때보다 더 많은 자녀를 갖게 될 것이다. (갈 4:27)을 보라. 그들이 너무 많아서, (1.) 그 자녀들이 자리가 부족하다고 호소할 것이다. 그들은 (그리고 이는 듣기 좋은 소리이다) 이르기를, "우리 수가 너무 빨리 늘어나 이곳이 우리에게 너무 좁다"고 할 것이니, 선지자의 제자들이 호소한 것과 같다(왕하 6:1). 그러나 그 자리가 아무리 좁아도 더 많은 자들이 받아들여지기를 원할 것이며, 교회는 그들을 기쁘게 받아들일 것이요, 자리가 좁은 불편함이 어느 쪽에도 방해가 되지 않을 것이다. 우리가 어떻게 생각하든, 가난한 자들과 몸 불편한 자들, 저는 자들과 맹인들이 들어와도 여전히 자리가 있어, 이미 들어온 자들을 위한 자리도 있고 더 많은 자들을 위한 자리도 있음이 드러날 것이기 때문이다(눅 14:21,22). (2.) 그 어머니는 자기 식구가 늘어난 것을 보고 놀라 서 있을 것이다(사 49:21). 그녀는 이르기를, 누가 나를 위하여 이들을 낳았는고? 또 누가 이들을 길렀는고? 할 것이다. 그들은 자녀의 모든 본분과 애정과 순종을 가지고 그녀에게 나아오는데, 그녀는 그들을 위하여 산고를 겪은 적도 없고 그들을 기르는 수고를 한 적도 없으나, 이미 다 길러진 그들을 손에 얻은 것이다. 이는 그녀에게 기쁜 놀라움을 주며, 그녀는 자기 형편이 바로 얼마 전까지 또 오랫동안 어떠했는지를 생각할 때 놀라지 않을 수 없다. 유대 민족은 자기 자녀를 잃었으니, 그들은 끊어졌다. 그녀는 하나님이 그들과 혼인하셨다는 표징인 법궤와 제단과 성전 예배도 없이 적막했었고, 도리어 사로잡혀 끊임없이 이리저리 떠돌며 정착하지 못한 처지에 있어, 하나님을 위해서나 자기를 위해서나 자녀를 기를 만하지 못했다. 그녀는 외진 곳에 홀로 버려져 있었고(이는 아무도 찾지 않는 시온이다), 과부 된 처지의 온갖 고독과 슬픔 속에 버려져 있었다. 그런데 어떻게 그녀가 이처럼 채워지게 되었는가? 여기서 보라. [1.] 교회가 항상 눈에 보이는 것은 아니며, 교회가 적막하고 홀로 버려지며 수가 적어지는 때가 있다는 것이다. [2.]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 그 황폐함이 영원하지 않을 것이며, 하나님이 그것을 회복시키시고 돌들로 아브라함의 자녀를 일으키시는 것이 그분께 너무 어려운 일이 아니라는 것이다. [3.] 때로는 이 일이 한 나라가 단번에 태어나는 것처럼 매우 놀라운 방식으로 이루어진다는 것이다(사 66:8).
5. 이 일이 이방인들의 도움으로 이루어지리라는 것이다(사 49:22). 그 가운데서 교회가 세워지리라 기대되었던 유대인들은 버림받았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것을 땅에 친히 심으시고, 거기서 풍성한 소출을 거두실 것이다(호 2:23). 살펴보라. (1.) 이방인들이 어떻게 부르심을 받는가. 하나님은 그들을 향하여 손을 드사 그들을 초청하거나 부르실 것인데, 이는 종일 유대인들을 향하여 손을 폈으나 헛되었기 때문이다(사 65:2). 혹은 이는 전능하신 능력, 곧 그분의 성령과 은혜의 능력을 발휘하여 그들을 강권하여 들어오게 하시고 자원하게 하시는 것을 가리킨다. 또한 그분은 그들을 향하여 자기 기를 세우실 것이니, 곧 영원한 복음의 전파라, 그들이 그리로 모여들고 그 아래 자원하여 나아올 것이다. (2.) 그들이 어떻게 오는가. 그들이 네 아들들을 품에 안아 데려오리라. 그들은 자기들 가운데서 발견되는 시온의 아들들이 본국으로 돌아갈 때 그들을 도울 것이며, 부모가 연약하고 무력한 아이를 안아 옮기듯이 그토록 부드럽게 그들을 보내 줄 것이다. 하나님은 돌아오는 이스라엘 사람들을 위하여 이방인들 가운데서도 친구를 일으키실 수 있다. 땅이 그 여자를 도왔다(계 12:16). 혹은 "그들이 자기들이 올 때에 자기 자녀를 데려와 네 자녀가 되게 하리라"는 뜻이니, (사 60:4)과 비교하라. "네가 누가 이들을 낳고 길렀는고? 하고 묻느냐? 알라, 그들은 이방인들 가운데서 태어나고 길러졌으나, 이제는 네 식구로 들어온 것이다." 젊은 회심자들과 신앙의 어린 초심자들을 돌보는 모든 이는, 그리스도께서 팔로 모아 품에 안으시는 어린양들을 대하시듯, 여기서 그들을 매우 부드럽고 조심스럽게 대하는 것을 배우라.
II. 교회가 여러 나라 가운데서 크고 우세한 영향력을 갖게 되리라는 것이다(사 49:22,23). 1. 여러 나라의 통치자들 중 일부가 교회의 후원자와 보호자가 될 것이다. 왕들이 네 양육하는 아버지가 되어 (모세처럼, 민 11:12) 네 아들들을 품에 안아 옮길 것이며, 여자가 가장 합당한 유모이므로 그들의 왕비들은 네 유모가 될 것이다. 이 약속은 유대인들이 포로에서 돌아온 후 그들에게 부분적으로 성취되었다. 고레스, 다리오, 아닥사스다와 같은 여러 페르시아 왕들은 그들의 이익을 매우 살뜰히 여겨 그들을 두둔하고 격려했다. 왕비 에스더는 자기 목숨을 손에 걸고 불길 속에서 아이를 낚아채듯이, 포로 가운데 남아 있던 유대인들에게 유모가 되어 주었다. 기독교 교회는 오랜 포로 생활 후에 콘스탄티누스와 그의 어머니 헬레나, 그 후의 테오도시우스 등과 같은 왕들과 왕비들로 인하여 복을 누렸으니, 그들은 온갖 정성과 부드러움으로 교회를 양육했다. 통치의 규(笏)가 경건한 통치자들의 손에 놓일 때마다 이 약속은 성취된다. 이 세상에서 교회는 어린아이의 상태에 있으므로, 통치자들과 관원들에게는 교회에 큰 도움을 줄 능력이 있다. 그들이 그렇게 행할 때, 곧 그들의 권세가 선을 행하는 자들에게 칭찬이 될 때, 교회는 복되다. 2. 그들 중 다른 자들, 곧 교회의 이익에 끝까지 맞서는 자들은 굴복하고 자기들의 대적을 회개하지 않을 수 없게 될 것이다. 그들이 네게 절하고 티끌을 핥으리라. 빌라델비아 교회에 주신 약속은 여기서 빌려온 것으로 보인다(계 3:9). 내가 사탄의 회당에 속한 자들로 와서 네 발 앞에 경배하게 하리라. 혹은 이는 교회의 왕이신 그리스도께서 교회 안에서 자신을 나타내실 때, 왕들과 왕국들이 그분께 자원하여 복종하는 것을 뜻하는 것일 수 있다(시 72:11). 모든 왕이 그 앞에 엎드리리라. 그리고 이 모든 일로 인하여 다음이 드러날 것이다. (1.) 하나님은 주, 곧 만물의 주권자이신 주이시니, 그분께 맞서 버티거나 들고 일어날 수 없다는 것이다. (2.) 그분을 기다리는 자들, 곧 그분의 약속을 의지하고 그분의 뜻에 순복하는 자들은 자기들의 소망으로 인하여 부끄러움을 당하지 않으리라는 것이다. 이는 평화의 환상이 정한 때를 위함이요, 그 끝에 그것이 말하고 거짓되지 아니할 것이기 때문이다.
²⁴ 용사가 빼앗은 것을 어떻게 도로 빼앗으며, 합법적으로 사로잡힌 자를 어떻게 건져낼 수 있으랴?
²⁵ 그러나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되, 용사의 포로도 빼앗을 것이요 두려운 자의 빼앗은 것도 건져낼 것이니, 이는 내가 너와 다투는 자와 다툴 것이요 내가 네 자녀를 구원할 것임이라.
²⁶ 내가 너를 압제하는 자들에게 그들의 살을 먹게 하며, 그들이 새 포도주에 취함같이 자기의 피에 취하게 하리니, 모든 육체가 나 여호와는 네 구원자요 네 구속자요 야곱의 전능자인 줄 알리라.
여기에 다음의 내용이 있다. I. 유대인이 바벨론 포로 생활에서 풀려나리라는 약속에 대해 제기된 한 가지 반론이다. 그 일은 도무지 기대할 수 없는 것이라는 주장이었다. 왜냐하면 (사 49:24) 그들은 용사의 손, 곧 당시 땅에서 가장 강력한 권세자들의 손에 잡힌 먹이였으므로, 무력으로 구출되리라고는 도무지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그들은 합법적으로 사로잡힌 자들이었다. 하나님의 율법에 따라 그들은 범죄하였으므로 마땅히 포로로 넘겨진 것이었고, 또 만국의 법에 따라 전쟁 중에 사로잡혔으므로 몸값을 치르거나 교환될 때까지 합법적으로 포로로 붙들려 있었던 것이다. 이 말은 둘 중 하나로 이해할 수 있다. 1. 원수들이 그들을 놓아주기를 거부하는 자신들을 정당화하려고 한 말일 수 있다. 그들은 힘과 권리를 둘 다 내세운다. 교만한 사람들은 손에 넣을 수 있는 것은 다 제 것이라 여기고, 가장 긴 칼만 가지고 있으면 자기 권리가 정당하다고 생각한다. 또는 2. 그들의 친구들이 한 말일 수도 있는데, 이는 구원을 절망하는 불신 가운데("무력으로든 화친의 협상으로든, 우리를 붙잡고 있는 자들을 누가 능히 대적하겠는가?") 한 말이거나, 아니면 구원을 경탄하며 감사하는 가운데 한 말이다. "용사에게서 빼앗은 것을 도로 빼앗으리라고 누가 생각이나 했겠는가? 그런데도 그 일이 이루어졌도다." 이것은 그리스도로 말미암은 우리의 구속에 적용할 수 있다. 사탄에 관하여 말하자면, 우리는 용사의 손에 잡힌 먹이였으나, 사망의 권세를 잡은 그 자에게서조차도 생명의 권세를 가지신 분으로 말미암아 건짐을 받았다. 하나님의 공의에 관하여 말하자면, 우리는 합법적으로 사로잡힌 자였으나, 헤아릴 수 없이 값진 대가로 건짐을 받았다.
II. 이 반론은 분명한 약속과 그에 더한 약속으로 답해진다. 하나님의 약속들은 다 예와 아멘이므로, 서로를 든든히 받쳐 주는 역할을 능히 할 수 있다. 1. 여기에 원수의 힘에도 불구하고(non-obstante) 주어지는 분명한 약속이 있다(사 49:25). "용사의 포로도, 비록 그들이 강할지라도, 빼앗길 것이요, 그들이 그것을 막으려 하나 아무 소용이 없을 것이며, 두려운 자의 빼앗은 것도, 비록 그들이 두려운 자일지라도, 건짐을 받을 것이라. 그들이 온 힘을 다해도 그 구원을 힘으로 막아내지 못할 것이며, 온 뻔뻔함을 다해도 그 구원과 그에 관한 하나님의 계획을 낯빛으로 눌러 이기지 못할 것이다."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니, 그분은 모든 능력과 모든 마음을 손에 쥐고 계시므로 자기 말씀을 능히 이루실 수 있는 분이시다. 2. 여기에 그에 더한 약속이 있어, 하나님께서 어떻게, 어떤 방식으로 그 구원을 이루실지를 보여 준다. 그분은 압제자들에게 심판을 내리시고, 그리하여 압제당하는 자들을 위해 구원을 이루실 것이다. "내가 너와 다투는 자와 다툴 것이요, 너를 압제하는 일에서 스스로를 정당화하는 자들을 상대하여 네 송사를 변호할 것이라. 그가 누구든, 비록 단 한 사람일지라도, 너와 다투는 자는 그것이 자기에게 위험한 일임을 알게 될 것이며, 이같이 내가 네 자녀를 구원할 것이라." 포로들은 사로잡은 자들을 사로잡음으로, 곧 하나님의 백성을 사로잡았던 자들을 도리어 포로로 보내심으로 풀려날 것이다(계 13:10). 아니, 그들은 피로 피를 갚음 받을 것이다(사 49:26). "내가 너를 압제하는 자들에게 그들의 살을 먹게 할 것이요, 그들이 자기의 피에 취하게 하리라. 교만한 바벨론 사람들은 서로에게 쉬운 먹이가 될 뿐 아니라 기꺼이 삼킬 만한 먹이가 될 것이다. 하나님께서 그들 가운데 분열의 영을 보내시리니, 외세의 침공으로 시작된 그들의 멸망은 그들 내부의 분열로 완성될 것이다. 그들은 서로 물고 삼키다가, 마침내 피차 멸망당하기까지 이를 것이다. 그들은 자기와 한 살이요 한 피인 자들을 게걸스럽게, 그것도 즐기며 잡아먹을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자기 교회를 압제하는 자들로 하여금 스스로를 괴롭히는 자, 스스로를 멸망시키는 자가 되게 하실 수 있다. 신약의 바벨론은 성도들의 피로 스스로 취하였으니, 피를 마시도록 받을 것이라, 이는 그가 그렇게 마땅하기 때문이다. 잔인한 사람들이 때때로 자기 자신에게, 또 서로에게 얼마나 잔혹한지를 보라. 참으로 남에게 그러한 자들은 자기 자신에게도 그러하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공의와 사람들의 보복이, 그들이 남에게 되어 준 것을 그들에게 그대로 되어 줄 것이기 때문이다. 그들은 피를 갈망할 뿐 아니라 어찌나 게걸스럽게 마시는지 그 피에 취하며, 그것이 마치 단 포도주인 양 한껏 즐긴다. 만일 하나님께서, 죄인들의 정욕이 풀려나도록 내버려 둘 때 그들이 서로에게 베풀 자비보다 더 큰 자비를 그 죄인들에게 베풀지 않으셨다면, 이 세상은 곧 아겔다마, 아니, 황무지가 되고 말았을 것이다.
III. 바벨론의 멸망이 가져올 결과가 무엇인지 보라. 모든 육체가 나 여호와는 네 구원자인 줄 알리라. 비록 이스라엘이 잃어버린 바 되고 버림받은 것처럼 보일지라도 그들에게 구속자가 있으며, 비록 그들이 용사에게 먹이로 내어진다 할지라도 야곱에게는 능히 그 모든 원수를 상대하실 전능자가 계심을, 하나님께서는 온 세상이 확신하도록 분명히 드러내실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자기 교회의 구원을 통하여 자기 이름을 알리시고 또한 높이고자 하신다.
앞선 장들에서는 유대인이 바벨론에서 구원받는 일에 관하여 영광스러운 일들이 말해졌다. 그러나 그 일이 성취되었을 때, 어떤 이들은 그 일이 성취된 모습보다 예언 속에서 훨씬 더 크고 빛나 보였다고 여기거나, 약 4만 명의 유대인이 비참한 형편으로 바벨론에서 예루살렘으로 돌아온 그 사건이 그 예언에 사용된 표현들의 높이와 장엄함에 충분히 부합하는 사건이 아니라고 생각할 수도 있었다. 그래서 그는 여기서, 그 예언이 더 깊은 의도를 지니고 있었으며, 앞의 성취가 그 표현들에 미치지 못하는 것처럼 보였던 만큼이나 그 표현들을 능가하는 한 구속(救贖) 안에서 온전히 성취될 것임을 보여 주려고 한다. 곧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은 세상의 구속이니, 그것을 예언하는 데 하나님의 종이었던 고레스조차도 그분의 한 모형(模型)이었다. 이 장에서 우리는 다음을 본다. I. 이사야의 모형 아래에서, 중보자(中保者)로서의 직분에 임명되시는 그리스도(사 49:1-3). II. 이방인들 가운데서 그분의 사역이 성공하리라는 보증이 그분께 주어짐(사 49:4-8). III. 그분으로 말미암아 이루어질 구속과 그 구속의 진전(사 49:9-12). IV. 이로부터 고난당하는 교회에 주어지는 격려(사 49:13-17). V. 교회에 많은 사람이 더하여지는 것과 이방인들 가운데 교회가 세워지는 것(사 49:18-23). VI. 이 모든 복의 표상이요 모형이 될, 유대인이 바벨론에서 풀려나리라는 예언의 확증(사 49:24-26). 이 장을 바르게 이해한다면, 우리는 유대인이 바벨론에서 구원받는 일에 관한 예언들에 우리가 생각했던 것보다 더 깊이 관련되어 있음을 깨닫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