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tthew Henry's Complete Commentary
Matthew Henry · 17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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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사야 66장 1-4 Matthew Henry's Complete Commentary
¹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되, 하늘은 나의 보좌요 땅은 나의 발판이니, 너희가 나를 위하여 건축할 집이 어디 있느냐? 내가 안식할 처소가 어디 있느냐?
²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나의 손이 이 모든 것을 지었으므로 이 모든 것이 생겼느니라. 그러나 내가 돌아볼 자는 곧 이런 자니, 가난하고 심령이 통회하며 나의 말을 듣고 떠는 자니라.
³ 소를 잡는 자는 사람을 죽임 같이 하고, 어린 양으로 제사드리는 자는 개의 목을 꺾음 같이 하며, 예물을 드리는 자는 돼지의 피를 드림 같이 하고, 분향하는 자는 우상을 찬송함 같이 하나니, 그들이 자기 길을 택하며 그들의 마음이 그 가증한 것을 기뻐하느니라.
⁴ 나 또한 그들을 미혹하는 것을 택하고 그들이 두려워하는 것을 그들에게 임하게 하리니, 이는 내가 불러도 대답하는 자가 없으며 내가 말하여도 듣지 아니하고 오직 나의 목전에서 악을 행하며 내가 기뻐하지 아니하는 것을 택하였음이니라.
여기서, I. 은혜로운 영혼과 비교할 때 성전은 가볍게 여겨진다 (사 66:1,2). 선지자 시대의 유대인들과 그 후 그리스도 시대의 유대인들은 성전을 크게 자랑하며 그것으로부터 큰 일을 기대하였다. 그러므로 그들을 겸손하게 하고 그들의 헛된 확신을 흔들기 위하여, 선지자들과 그리스도께서는 모두 성전의 멸망을 예언하셨으니, 곧 하나님이 그것을 떠나시면 그것이 곧 황폐하게 되리라는 것이었다. 성전이 갈대아인들에게 파괴된 후에는 곧 회복되었고 의식적 예배도 그와 함께 부활하였으나, 로마인들에 의해서는 영원한 황폐함에 처하게 되었고 의식법도 그와 함께 폐지되었다. 세상이 이 일에 대비하도록, 그들은 여기서처럼 성전이 하나님께 얼마나 하찮은 것인지를 자주 들었다. 1. 하나님은 성전을 필요로 하지 않으셨다. 하늘은 그분의 영광과 통치의 보좌이니, 거기서 그분은 모든 송축과 찬양 위에 가장 높은 존귀와 주권으로 무한히 높임을 받으시며 앉아 계신다. 땅은 그분의 발판이니, 그 위에 서서 그분의 뜻을 따라 땅의 모든 일을 주관하신다. 하나님께 이토록 빛나는 보좌와 이토록 넓은 발판이 있다면, 그들이 하나님을 위하여 건축할 수 있는 집, 곧 그분의 영광이 거할 처소가 어디 있겠으며, 그분이 안식하실 처소가 어디 있겠는가? 영원하신 마음이 사람의 손으로 지은 집에서 무슨 만족을 얻으실 수 있겠는가? 우리와 달리, 피곤하지도 곤비하지도 아니하시며 졸지도 주무시지도 않으시는 그분께 무슨 까닭으로 쉬실 집이 필요하겠는가? 혹 그럴 까닭이 있다 하더라도, 그분은 우리에게 말씀하지 아니하실 것이니 (시 50:12), 이는 그분의 손이 이 모든 것을 지으셨음이라. 곧 하늘과 그 모든 궁정과 땅과 그 모든 경계와 그 둘의 모든 만군을 지으셨다. 이 모든 것이 생겨났으니, 곧 하나님의 능력으로 그 시작을 가지게 되었으며, 그분은 이것들이 있기 전 영원부터 복되셨으므로 이것들로 인해 유익을 얻으실 수 없었다. 이 모든 것이 있느니라 (어떤 이들은 이렇게 읽는다). 이것들은 그것들을 지으신 동일한 능력으로 보존되어 여전히 존속하니, 그러므로 우리의 선이 그분께 미치지 못한다. 만일 그분이 거하실 집을 필요로 하셨다면, 세상을 지으실 때 친히 하나를 지으셨을 것이요, 그렇게 지으셨다면 다른 피조물들이 그분의 법도를 따라 그러하듯이 오늘날까지 존속하였을 것이다. 그러므로 그분은 손으로 지은 성전이 필요하지 않으셨다. 2. 하나님은 겸손하고 회개하며 은혜로운 마음을 돌아보시는 것처럼 성전을 돌아보지 않으실 것이다. 그분은 친히 지으신 하늘과 땅을 가지고 계시고 사람이 지은 성전을 가지고 계시지만, 이 모든 것을 지나치시고, 심령이 가난하고 겸손하며 진지하고 자기를 낮추며 자기를 부인하는 자, 곧 죄에 대하여 진실로 통회하고 그것을 회개하며 그것을 용서받기 위해 애쓰는 자, 하나님의 말씀 앞에서 떠는 자를 은혜로 돌아보고자 하신다. 그것은 벨릭스가 한 것처럼 설교가 끝나면 사라지는 일시적인 거리낌으로가 아니라, 하나님의 위엄과 순결에 대한 습관적인 경외와 그분의 공의와 진노에 대한 습관적인 두려움으로 떠는 것이다. 그러한 마음은 하나님을 위한 살아 있는 성전이다. 그분이 거기에 거하시며 그곳이 그분의 안식하는 처소이니, 그것은 하늘과 땅, 곧 그분의 보좌와 발판과 같다.
II. 제사가 은혜롭지 못한 손에서 나올 때 그것은 가볍게 여겨진다. 악인의 제사는 받으실 수 없을 뿐 아니라 여호와께 가증한 것이니 (잠 15:8), 이것이 여기에 크게 나타나 있다 (사 66:3,4). 살펴보라. 1. 그들의 제사가 하나님께 얼마나 가증스러웠는가. 육적인 유대인들은 포로에서 돌아온 후 우상 숭배로 다시 빠지지는 않았으나, 하나님을 섬기는 일에 매우 부주의하고 해이해졌다. 그들은 찢긴 것과 저는 것과 병든 것을 제물로 드렸으니 (말 1:8,13), 이것이 그들의 예배를 하나님께 가증한 것으로 만들었다. 그들이 자기들의 제사를 존중하지 않았으니, 어떻게 하나님께서 그것들을 존중하시리라고 생각할 수 있었겠는가? 믿지 않는 유대인들은, 복음이 전파되고 그 안에서 모든 의식적 예배를 종결시킨 위대한 제사가 드려졌다는 소식이 주어진 후에도, 마치 모세의 율법이 여전히 효력을 가지고 있어 그 앞에 나아오는 자들을 온전하게 할 수 있는 것처럼 계속해서 제사를 드렸으니, 이것은 가증한 일이었다. 자기 식탁을 위하여 소를 잡는 자는 그렇게 해도 무방하다. 그러나 이제 와서 하나님의 제단을 위하여 그것을 잡는 자, 이런 식으로 잡는 자는 사람을 죽이는 것과 같으니, 그것은 살인 그 자체만큼이나 하나님께 큰 죄이다. 그렇게 하는 자는 사실상 그리스도의 제사를 제쳐놓고 언약의 피를 발로 짓밟으며, 그리스도께서 죽으심으로 폐하신 것을 다시 세움으로써 주의 몸과 피에 대한 죄책에 가담하는 것이다. 어린 양으로 제사드리는 자가, 만일 그것이 흠 있는 것이요 자기 양 떼 중의 수컷, 곧 자기가 가진 가장 좋은 것이 아니라면, 또 무엇으로든 하나님을 적당히 넘기려 한다면, 그는 그분을 기쁘시게 하기는커녕 모욕하는 것이다. 그것은 개의 목을 꺾는 것과 같으니, 개는 율법의 눈에 매우 천한 동물이어서 나귀는 속량될 수 있었으나 개의 값은 결코 성전 금고에 들이지 못하였다 (신 23:18). 예물을 드리는 자, 곧 소제나 전제를 드리는 자는 돼지의 피로 속죄하려고 생각하는 것과 같으니, 돼지는 먹어서도 만져서도 안 되는 동물이요 그 국물도 가증하였거든 (사 65:4) 하물며 그 피야 더욱 그러하다. 하나님께 분향하는 자, 그리하여 그리스도의 중보의 향을 멸시하는 자는 우상을 찬송하는 것과 같으니, 그것은 그들이 거짓 신에게 경배를 드린 것만큼이나 하나님께 큰 모욕이었다. 위선과 불경건은 우상 숭배만큼이나 하나님을 진노케 한다. 2. 그들의 제사를 이토록 가증스럽게 만든 그들의 악함이 무엇이었는가. 그것은 그들이 자기 길, 곧 자기들의 악한 마음의 길을 택하였기 때문이요, 그들의 손뿐 아니라 그들의 영혼이 그 가증한 것들을 기뻐하였기 때문이다. 그들은 그 행실에 있어 악하고 부도덕하였으며, 하나님의 계명의 길보다 죄의 길을 택하였고, 하나님을 진노케 하는 것을 즐거워하였다. 이것이 그들의 제사를 하나님께 그토록 거슬리게 만들었다 (사 1:11-15). 종교를 고백함으로 하나님을 공경하는 체하면서도 악한 삶을 사는 자들은, 마치 그분이 죄의 후원자이신 것처럼 그분을 모욕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들의 악함을 더욱 가중시킨 것은, 회개하고 돌이키라는 잦은 부르심에도 불구하고 그들이 그 악을 고집하였다는 것이다. 그들은 하나님의 공의의 모든 경고와 하나님의 은혜의 모든 제안에 귀를 막았다. 내가 불러도 대답하는 자가 없었으니, 앞서와 같다 (사 65:12). 그리고 거기서와 같은 말이 여기서도 이어진다. 그들이 나의 목전에서 악을 행하였다. 그분이 말씀하신 것에 귀를 막았으므로, 그들은 그분이 무엇을 보시는지 개의치 않고 도리어 그분이 기뻐하지 아니하시는 줄 알면서도 그것을 택하였다. 자기들의 행실로 그분을 기쁘시게 하려는 마음은 전혀 없고 도리어 그분을 진노케 하려고 작정한 자들이, 어떻게 자기들의 예배로 그분을 기쁘시게 하기를 기대할 수 있었겠는가? 3. 이 일로 인하여 그들에게 내려진 선고. 그들이 자기 길을 택하였으니, 그러므로 하나님이 말씀하시기를, 나 또한 그들을 미혹하는 것을 택하리라 하신다. 그들이 그들의 선택을 하였으니 (개타커 씨가 풀어 쓴 대로), 이제 나도 나의 선택을 하리라. 그들이 내게 자기들이 원하는 대로 행하였으니, 나도 그들에게 내가 원하는 대로 행하리라. 나는 그들의 환상, 또는 조롱거리를 (어떤 이들은 이렇게 본다) 택하리라. 그들이 하나님을 조롱하고 그들의 악함으로 그분을 욕되게 하였듯이, 하나님도 그들을 그들의 원수들에게 넘기시어 그들에게 짓밟히고 모욕당하게 하실 것이다. 또는 그들이 자기 자신을 속였던 그 헛된 확신들로 인해 속임을 당할 것이다. 하나님은 그들의 죄를 그들의 형벌로 삼으실 것이니, 그들은 자기 자신의 막대기로 매를 맞고 자기 자신의 미혹으로 멸망에 빠지게 될 것이다. 하나님은 그들이 두려워하는 것을 그들에게 임하게 하실 것이니, 곧 그들에게 큰 공포가 될 것, 또는 그들 자신이 두려워하며 죄악된 술책으로 피하려 했던 것을 그들에게 임하게 하실 것이다. 믿지 않는 마음과 정결케 되지 못하고 평안을 얻지 못한 양심은, 자기 자신의 두려움이 임하는 것 외에 그들을 비참하게 만들 다른 것이 필요하지 않다.
이사야 66장 5-14 Matthew Henry's Complete Commentary
⁵ 여호와의 말씀으로 말미암아 떠는 자들아, 너희는 여호와의 말씀을 들을지어다. 내 이름으로 말미암아 너희를 미워하며 너희를 쫓아낸 너희 형제들이 말하기를 "여호와께서 영광을 받으시기를 원하노라" 하였으나, 그가 나타나사 너희를 기쁘게 하실 것이요 그들은 부끄러움을 당하리라.
⁶ 떠드는 소리가 성읍에서부터, 소리가 성전에서부터 들리니, 이는 그의 원수들에게 보응하시는 여호와의 소리로다.
⁷ 시온은 진통하기 전에 해산하며, 고통이 이르기 전에 남아를 낳았도다.
⁸ 누가 이런 일을 들었으며 누가 이런 일들을 보았느냐? 땅이 어찌 하루에 생산하겠으며 나라가 어찌 한순간에 태어나겠느냐? 그러나 시온은 진통하자마자 그 아들들을 낳았도다.
⁹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내가 임산하게 하고서 해산하게 하지 아니하겠느냐?" 하시며, 네 하나님이 말씀하시되 "내가 해산하게 하고서 태를 닫겠느냐?" 하시느니라.
¹⁰ 예루살렘을 사랑하는 모든 자들아, 너희는 그와 함께 기뻐하며 그로 인하여 즐거워할지어다. 그를 위하여 슬퍼하는 모든 자들아, 너희는 그와 함께 기쁨으로 즐거워할지어다.
¹¹ 이는 너희가 그 위로의 젖을 빨고 만족하며, 그 영광의 풍성함을 인하여 젖을 짜내어 기뻐하게 하려 함이라.
¹²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되, 보라, 내가 그에게 평강을 강같이, 이방의 영광을 넘치는 시내같이 베풀리니, 그때에 너희가 그 젖을 빨 것이며 너희가 그 옆구리에 안기며 그 무릎에서 어루만짐을 받으리라.
¹³ 어머니가 자식을 위로함같이 내가 너희를 위로할 것인즉, 너희가 예루살렘에서 위로를 받으리라.
¹⁴ 너희가 이를 볼 때에 너희 마음이 기뻐하며 너희 뼈가 풀의 연한 싹같이 무성하리라. 여호와의 손은 그 종들에게 알려지겠고 그의 진노는 그 원수들에게 알려지리라.
선지자는 위선적인 민족, 곧 하나님의 말씀을 조롱하며 그가 부르실 때 그에게 응답하려 하지 않은 민족을 향하여 하나님의 심판을 선언한 후에, 여기서는 그의 말씀으로 말미암아 떠는 자들에게로 말씀을 돌이켜 그들을 위로하고 격려한다. 그들은 자신들의 믿지 않는 민족에게 임할 심판에 휘말리지 않을 것이다. 사역자들은 이렇게 구별해야 하니, 곧 악인들에게 두려움을 말할 때에 의인의 마음을 슬프게 하지 않도록 해야 한다. 보네 크리스티아네, 호크 니힐 아드 테(Bone Christiane, hoc nihil ad te) — 선한 그리스도인이여, 이것은 그대와 아무 상관이 없도다. 선지자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말미암아 떠는 자들에게 그로부터 은혜로운 시선이 있을 것을 확언한 후에(사 66:2), 여기서 그로부터의 은혜로운 메시지를 그들에게 전한다. 하나님의 말씀은 죄에 대한 참된 겸비로 말미암아 그것을 받을 준비가 된 자들을 위하여 위로를 예비하고 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을 때 듣지 않으려 한 자들이 있었으나(사 66:4), 어떤 이들이 듣지 않으면 다른 이들이 들을 것이다. 마음이 그 말씀에 떨면 귀가 그것에 열릴 것이다. 그러면 여기서 그들에게 무엇이라고 말씀하시는가?
I. 하나님께서 그들의 정당하나 침해당한 송사를 그들의 박해자들에 맞서 변호하실 것임을 그들이 알게 하라(사 66:5). 너희를 미워하는 너희 형제들이 말하기를 "여호와께서 영광을 받으시기를 원하노라" 하였으나, 그가 나타나사 너희를 기쁘게 하시리라. 이것은 아마도 포로에서 돌아온 일부 유대인들의 경우를 가리킬 수도 있겠으나, 역사에는 그와 비슷한 것이 나타나지 않으므로, 오히려 유대인 가운데 복음을 처음 전파하고 고백한 자들의 경우에 적용하는 것이 마땅하니, 이 말씀은 그들의 경우에 매우 잘 들어맞는다. 살펴보라. 1. 하나님의 신실한 종들이 어떻게 박해받았는가. 그들의 형제들이 그들을 미워하였다. 사도들은 출생으로는 유대인이었으나, 심지어 이방인의 성읍들에서도 거기서 만난 유대인들이 그들의 가장 쓰라리고 화해할 수 없는 원수가 되어 그들에 맞서 이방인들을 선동하였다. 신부는 자기 어머니의 자녀들이 자기에게 노하였다고 탄식한다(아 1:6). 빌라도는 우리 주 예수께 이것을 가지고 책망하여 이르되 네 동족이 너를 내게 넘겼다고 하였다(요 18:35). 그들을 사랑하고 그들의 일로 인하여 격려해야 했을 그들의 형제들이 그들을 미워하여, 그들을 회당에서 쫓아내고, 그들이 실로 그 교회와 민족의 가장 큰 복이었음에도 마치 가장 큰 흠이라도 되는 듯 출교하였다. 이는 뱀의 씨가 여자의 씨에 대하여 품은 오래된 적의의 열매였다. 그리스도를 미워한 자들은 그의 제자들도 미워하였으니, 이는 그들이 그의 나라와 이익을 지지하였기 때문이며(요 15:18), 그들이 그의 이름으로 말미암아 그들을 쫓아낸 것은, 그들이 그의 이름으로 일컬음을 받고, 그의 이름을 부르며, 그의 이름을 높이기 위하여 자신을 쏟았기 때문이다. 주목하라. 교회의 권징이 잘못 적용되는 것, 그리고 본래 교회의 방어를 위하여 의도된 그 무기가 교회 지도자들의 배신으로 말미암아 교회의 가장 좋은 친구들을 향하여 돌려지는 것은 새삼스러운 일이 아니다. 그리고 이것을 행한 자들이 말하기를 "여호와께서 영광을 받으시기를 원하노라" 하였으니, 그들은 양심과 하나님의 영광과 그 안에 있는 교회에 대한 열심을 가장하며, 온갖 경건의 형식을 갖추어 이를 행하였다. 우리 구주께서 이것을 설명하시며 이를 가리키시는 듯하다(요 16:2). 그들이 너희를 회당에서 쫓아낼 것이요, 너희를 죽이는 자마다 그것이 하나님을 섬기는 일이라 생각할 때가 오리라. 인 노미네 도미니 인키피트 옴네 말룸(In nomine Domini incipit omne malum) — 주의 이름으로 온갖 종류의 악이 시작되느니라. 혹은 우리는 이것을 하나님을 거역하여 한 말로 이해할 수도 있다. "너희는 너희의 구원에서 하나님께서 영광을 받으시리라 말하니, 그러면 그가 영광을 받으시게 하라. 그가 속히 그의 일을 서둘러 행하시게 하라(사 5:19). 그를 기뻐하셨으니 그를 건지시게 하라." 어떤 이들은 이것을 포로 가운데 있던 불경건한 유대인들의 말로 보아, 구원을 소망하는 자기 형제들을 조롱하고, 그들이 종종 스스로 위로하던 기대, 곧 하나님께서 머지않아 그 안에서 영광을 받으시리라는 기대를 비웃은 것으로 본다. 그들은 이같이 가난한 자의 계획을 부끄럽게 하려고 할 수 있는 일을 다 하였다(시 14:6). 2. 그들이 이러한 박해 가운데서 어떻게 격려받았는가. "너희의 믿음과 인내로 조금만 더 견디라. 너희 원수들이 너희를 미워하고 압제하며, 너희 형제들이 너희를 미워하여 쫓아내나,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서는 너희를 사랑하시며, 아무도 너희를 위하지 않거나 감히 나서지 못할 때에 너희를 위하여 나타나시리라. 그의 섭리가 모든 일을 너희에게 위로가 되도록 정돈하시리니, 그가 너희의 기쁨을 위하여, 또 너희를 학대하고 짓밟는 자들의 수치를 위하여 나타나시리라. 그들은 너희를 향한 자신들의 적의를 부끄러워하게 되리라." 이것은 예루살렘의 임박한 멸망에 대한 징조들이 주어졌을 때, 유대인들의 마음이 두려움으로 녹아내린 반면, 그들이 미워하고 박해하던 그리스도의 제자들은 자기들의 구속이 가까운 줄 알고 기쁨으로 머리를 들었을 때 성취되었다(눅 21:26,28). 하나님께서 자신을 숨기시는 듯 보이실지라도, 그는 때가 이르면 자신을 나타내시리라.
II. 하나님께서 그들을 위하여 나타나심이 세상에서 큰 소동을 일으킬 만한 것이 되리라는 것을 그들이 알게 하라(사 66:6). 떠드는 소리가 성읍에서, 성전에서부터 들리리라. 어떤 이들은 이것을 교회의 친구들의 기쁘고 승리에 찬 소리로 보고, 다른 이들은 성읍에서 불시에 습격당하여 헛되이 성전으로 피난처를 찾아 도망하는 교회의 원수들의 두려움에 찬 통곡 소리로 본다. 이 소리들은 이제 그의 원수들에게 보응을 행하시는 여호와의 소리에 메아리칠 뿐이다. 그리고 그가 이 두려움을 말씀하시는 것을 듣지 않으려는 자들은, 그것의 경보가 애처로운 비명으로 되돌아오는 것을 듣게 되리라. 오랜 포위 끝에 예루살렘이 마침내 로마군에게 함락되었을 때, 성읍과 성전에 얼마나 혼란스러운 소동이 있었을지 우리는 능히 생각할 수 있다. 어떤 이들은 이 예언이 그 예루살렘 멸망에 앞서 일어난 기이한 징조들 가운데서 성취되었다고 생각하는데, 이는 요세푸스가 그의 『유대 전쟁사』(4.388과 6.311)에서 전한 것으로, 성전 문들이 갑자기 저절로 활짝 열렸고, 제사장들이 지성소에서 무언가 움직이거나 옮겨가는 소리를 들었으며, 곧이어 우리가 여기서 떠나자고 하는 소리를 들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얼마 후에, 예수 바르-안나스라는 자가 초막절에 성읍을 두루 돌아다니며 끊임없이 외치기를, 동쪽에서 나는 소리, 서쪽에서 나는 소리, 사방에서 나는 소리, 예루살렘과 성전을 치는 소리, 이 온 백성을 치는 소리로다 하였다.
III. 하나님께서 자신을 위하여 세상에 교회를 세우실 것이며, 그 교회가 짧은 시간 안에 풍성히 채워지리라는 것을 그들이 알게 하라(사 66:7). 그가 진통하기 전에 해산하였도다. 이것은 모형적으로는 유대인들이 바벨론 포로에서 구원받은 것에 적용해야 하니, 그 구원은 그들이 애굽에서 인도되어 나올 때처럼 어떤 고통이나 몸부림 없이 매우 쉽고 조용히 이루어졌다. 애굽에서의 그 일은 권능과 능력으로(신 4:34) 이루어졌으나, 이번 일은 만군의 여호와의 영으로(슥 4:6) 이루어졌다. 그 구원의 남아는 기쁨의 대상이 되었으나, 어머니는 그것을 위하여 결코 진통하지 않았으니, 고통이 이르기 전에 그가 해산하였다. 이것은 애굽 산파들이 히브리 여인들에 관하여 전한 이야기, 곧 그들이 건강하여 산파가 그들에게 이르기 전에 해산하였다는 것(출 1:19) 외에는, 전혀 놀랍고 흔치 않으며 전례가 없는 일이다. 그러나 땅이 어찌 그 소산을 하루에 내겠느냐? 그렇지 않으니, 땅의 얼굴을 새롭게 하고 그 소산으로 그것을 덮는 것은 봄철 여러 주에 걸쳐 이루어지는 일이다. 어떤 이들은 이것을 다음 구절과 같은 뜻으로 읽으니, 땅이 어찌 하루에 생산되겠으며 혹은 나라가 어찌 한순간에 태어나겠느냐? 한 여인이 한 번의 해산으로 한 나라를 채우기에 충분한 자녀를 낳고, 그들이 순식간에 성년에 이를 것이라고 상상할 수 있겠는가? 그렇지 않다. 이와 비슷한 일이 창조 때에 있었으나, 하나님께서는 그 후로 그러한 모든 일을 쉬셨고, 이차적 원인들이 점진적으로 그 결과를 내도록 맡기셨다. 니힐 파키트 페르 살툼(Nihil facit per saltum) — 그는 아무것도 갑작스럽게 행하지 않으신다. 그러나 이 경우에는, 시온이 진통하자마자 해산하였다. 고레스의 조서가 반포되자마자 포로들은 한 무리로 결성되어 자기 땅으로 최선을 다해 돌아갈 준비가 되었다. 그리고 그 이유가 주어졌으니(사 66:9), 이는 여호와께서 행하신 일이기 때문이며, 그의 일은 완전하시기에 그가 친히 이를 맡으신다. 그가 자기 백성을 구원에 합당하게 준비시키는 데에 임산하게 하셨다면, 그는 구원을 성취하시는 데에 해산하게 하실 것이다. 모든 것이 그들의 석방을 위하여 무르익고 준비되어, 그들의 달수가 차서 그 자녀들이 해산할 때에 이르렀다면, 그가 그때에 해산할 힘을 주지 아니하시고 어미와 아기를 가장 비참한 처지에 함께 죽도록 내버려 두시겠는가? 이것이 어찌 하나님의 긍휼과 일치하겠는가? 그가 한 일을 시작하시고 그것을 끝까지 이루지 아니하시겠는가? 이것이 어찌 하나님의 능력과 완전하심과 일치하겠는가? 내가 해산하게 하는 자가 아니냐(다음 구절을 이렇게 읽을 수 있다) 그런데 내가 그를 막겠느냐? 하나님께서 인류와 모든 생물의 종류로 번식하게 하시고 땅을 채우게 하시면서, 시온은 막으시겠는가? 그가 교회를 채울 복된 후손으로 시온을 다산하게 하지 아니하시겠는가? 혹은, 내가 잉태하게 한 자인데 해산하지 못하게 막겠느냐? 하나님께서 그의 목적과 약속 안에서 그 구원을 잉태하셨으면서, 그것을 성취하고 이루심에 있어서 해산하지 아니하시겠는가? 그러나 이것은 세상에 그리스도의 교회를 세우는 것과, 예수 그리스도로 일컬어질 그 가족을 자녀로 채우는 것의 표상이었다. 성령이 부어지고 복음이 시온에서부터 나아갔을 때, 그 방대한 결실에 비하면 짧은 시간에 적은 수고로 수많은 사람이 회심하였다. 사도들은 진통하기도 전에 해산하였고, 그리스도께 태어난 자녀들이 너무나 많고, 너무나 갑작스럽고 쉽게 생겨났으므로, 그들은 어미의 태에서 난 아들이라기보다는 차라리 새벽의 태에서 난 이슬과 같았다(시 110:3). 복음의 성공은 놀라웠으니, 그 빛은 새벽같이 기이하게 퍼져 나가 마침내 땅끝까지도 사로잡았다. 성읍들과 나라들이 한순간에 그리스도께 태어났다. 성령이 부어진 바로 그날에 삼천 명의 영혼이 교회에 더해졌다. 그리고 이 영광스러운 일이 일단 시작되자, 그것은 상상할 수 있는 것을 뛰어넘어 놀랍게 진행되었으니, 하나님의 말씀이 그처럼 힘있게 흥왕하여 세력을 얻었다. 죄를 깨닫게 하심으로 임산하게 하신 그가, 하나님께로의 온전한 회심으로 해산하게 하셨다.
IV. 그들의 현재의 슬픔이 머지않아 풍성한 기쁨으로 변하리라는 것을 그들이 알게 하라(사 66:10,11). 살펴보라. 1. 교회의 친구들이 어떻게 묘사되는가. 그들은 그를 사랑하며, 그와 함께, 또 그를 위하여 슬퍼하는 자들이다. 주목하라. 하나님을 사랑하는 모든 자는 예루살렘을 사랑한다. 그들은 하나님의 교회를 사랑하며, 그 이익을 자기 마음에 매우 가까이 둔다. 그들은 교회의 아름다움을 흠모하고, 교회와의 교제를 기뻐하며, 진심으로 그 대의를 받아들인다. 그리고 교회에 대하여 진실한 애정을 가진 자들은 교회가 싸우는 상태에서 겪는 모든 염려와 슬픔에 진심으로 공감한다. 그들은 교회를 위하여 슬퍼하니, 교회의 모든 괴로움이 그들의 슬픔이다. 예루살렘이 고난 가운데 있으면 그들의 수금은 버드나무에 걸린다. 2. 그들이 어떻게 격려받는가. 그와 함께 기뻐하라, 그리고 거듭거듭 내가 이르노니, 기뻐하라. 이것은 예루살렘이 기뻐할 까닭을 갖게 되리라는 것을 암시한다. 그가 애통하던 날들이 끝나고, 그가 고난당한 때에 비례하여 위로를 받으리라. 그의 모든 친구가 그의 기쁨에 그와 함께 동참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니, 이는 그들이 그의 기쁨의 재료가 될 그 복들을 그와 함께 나눌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그리스도와 함께 고난을 받고 그의 교회와 함께 슬퍼하면, 우리가 그와 함께 다스리고 그와 함께 기뻐하리라. 여기서 우리는 부름을 받으니, (1.) 교회의 찬송에 우리의 몫을 감당하도록 부름받는다. "오라, 그와 함께 기뻐하라, 그와 함께 기쁨으로 즐거워하라, 크게 기뻐하라, 기뻐하되 어찌하여 기뻐하는지 알고 기뻐하라, 공적 감사를 위하여 정해진 날들에 기뻐하라. 그의 슬픔 가운데 그를 위하여 애통하던 너희가, 같은 원리로 그의 기쁨 가운데 그와 함께 기뻐하지 않을 수 없도다." (2.) 교회의 위로에 우리의 몫을 취하도록 부름받는다. 우리는 그 위로의 젖을 빨고 만족해야 한다. 하나님의 말씀, 은혜의 언약(특히 그 언약의 약속들), 하나님의 규례들, 그리고 그를 시중들고 그와 교제하는 모든 기회는, 곧 교회가 그 위로의 젖이라 부르고 여기는 젖이니, 거기에 그의 위로가 쌓여 있고, 거기서 믿음과 기도로 그것이 길어 올려진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와 함께 이 젖에서 빨아야 하니, 곧 하나님의 약속들을 우리 자신에게 적용하고 그의 규례들에 부지런히 참여함으로 그리해야 한다. 그리고 여기서 길어 올린 위로로 우리는 만족해야 하며, 땅의 위로를 아무리 적게 가졌을지라도 불만하지 말아야 한다. 교회가 주를 자기 하나님으로 모시는 것, 그리고 양자됨과 하나님을 섬기는 일이 그에게 속한 것은 교회의 영광이니, 우리는 이 영광의 풍성함을 인하여 기뻐해야 한다. 우리는 하나님과 우리의 관계와 그와의 교제를, 사람의 아들들과 딸들의 모든 즐거움보다 더 기뻐해야 한다. 무엇이든 교회의 영광인 것은, 특히 교회의 순결과 연합과 성장은, 반드시 우리의 영광과 기쁨이 되어야 한다.
V. 그들에게 기뻐하라는 이 부름을 주시는 분이, 그들에게 그리할 까닭을 주시고 또 그리할 마음을 주시리라는 것을 그들이 알게 하라(사 66:12-14).
그가 그들에게 그리할 까닭을 주시리라. 이는, (1.) 그들이 길고 끊임없는 번영의 과정을 누릴 것이기 때문이다. 내가 그에게 평강을(즉, 모든 좋은 것을 그에게) 강같이 베풀리니 혹은 베풀고 있으니, 그 강은 끊임없는 흐름으로 흘러가며, 대양에 삼키울 때까지 계속 불어난다. 복음은 그 능력으로 받아들여지는 곳마다 이러한 평강을 가져오니, 그 평강은 강같이 흘러가며, 강이 그 지나는 땅에 그리하듯 영혼들에게 모든 좋은 것을 공급하고 그들을 결실하게 한다. 이는 세상의 위로의 샘들이 내보낼 수 없고, 세상의 환난의 둑들이 막거나 되돌리거나 그 모래가 빨아들일 수 없는 평강의 강이며, 우리를 한없고 끝없는 복락의 대양으로 실어다 줄 그러한 평강의 강이다. (2.) 그들에게 크고 유익한 더함이 있을 것이다. 이방의 영광이 그들에게 넘치는 시내같이 임할 것이다. 이방인 회심자들이 교회로 쏟아져 들어와 그 평강과 번영의 강을 불어나게 할 것이니, 이는 그들이 자기 영광을 가지고 올 것이기 때문이다. 그들의 부와 명예, 그들의 권세와 영향력이 모두 하나님을 섬기는 일에 바쳐지고 교회의 유익을 위하여 사용될 것이다. "그러면 너희가 그 위로의 젖에서 빨리라. 너희가 그러한 위로에 한몫을 차지하려고 그처럼 몰려드는 것을 볼 때, 너희는 너희의 몫을 확보하려고 더욱 간절하고 더욱 힘쓰게 되리니, 이는 다른 이들이 들어와 그리스도께 참여함으로 너희가 더 적게 갖게 될까 두려워서가 아니라"(그럴 위험은 없으니, 그는 모두에게 충분하고 각 사람에게 충분하시다), "오히려 그들의 열심이 너희를 거룩한 시기로 자극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것이 그리할 때에 좋은 것이다(롬 11:14, 고후 9:2). (3.) 모든 일에서 하나님께서 영광을 받으실 것이니, 이것이야말로 다른 무엇보다 우리의 기쁨의 재료가 되어야 한다(사 66:14). 여호와의 손이 그 종들을 향하여 알려지리니, 곧 그의 전능하신 능력의 보호하고 지탱하는 손과, 그의 무궁한 선하심의 공급하고 풍요롭게 하는 손이라. 그의 종들이 이 둘로 말미암아 받는 유익이, 그들의 영광뿐 아니라 그의 영광을 위하여 알려질 것이다. 그리고 이것을 더욱 빛나게 하시려고, 그는 동시에 그 원수들을 향한 그의 진노를 알리실 것이다. 하나님의 자비와 공의가 둘 다 나타나고 영원히 높임을 받을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그들에게 기뻐할 까닭을 주실 뿐 아니라, 그들에게 위로를 말씀하시되, 그들의 마음에 말씀하실 것이다. 오직 그만이 그리하실 수 있고, 그것을 거기에 단단히 박히게 하실 수 있다. 그가 시온의 모든 아들을 위로하시려고 무엇을 하실지 보라. (1.) 그들의 나라가 그들의 자상한 유모가 될 것이다. 너희는 어린아이가 그러하듯 그 옆구리에 안기고 그 팔 아래 안겨 다닐 것이며, 특히 지치고 기분이 상하여 잠들게 해야 할 때 귀염둥이가 그러하듯 그 무릎 위에서 어루만짐을 받을 것이다. 교회에 연합된 자들은 이처럼 애정 어린 대우를 받아야 한다. 큰 목자께서 어린 양들을 그 팔로 모아 품에 안으시니, 하급 목자들도 그리해야 하며, 그리하여 어린 양들이 낙심하지 않게 해야 한다. 개종자들은 사랑받는 자가 되어야 한다. (2.) 하나님께서 친히 그들의 강력한 위로자가 되실 것이다. 어머니가 자기 자식이 병들거나 다쳤을 때, 혹은 어떤 일로든 슬픔에 잠겼을 때 그를 위로함같이, 내가 너희를 위로하리라. 곧 신중한 아버지가 사용하는 이성적인 논거로뿐 아니라, 사랑하는 어머니의 부드러운 애정과 긍휼로 위로하시리니, 그 어머니는 자기의 고난당하는 자식이 넘어져 다쳤을 때 그를 가엾이 여겨 달래고 편안하게 해 주며, 혹은 그를 꾸짖고 다툰 후에 그를 진정시키려고 애쓴다(렘 31:20). 내가 그를 책망하여 말할 때마다 그를 위하여 내 창자가 들끓으니, 그는 사랑하는 아들이요 기뻐하는 자식이로다. 어머니는 이같이 위로한다. 이같이 너희가 예루살렘에서 위로를 받으리니, 곧 너희가 함께 누릴 교회에 베풀어진 은혜 가운데서, 또 너희가 함께할 교회가 드리는 감사 가운데서 그리하리라. (3.) 그들은 이 위로의 복된 효과를 자기 영혼 가운데서 느낄 것이다(사 66:13). 너희가 이를, 곧 교회가 회복된 그 행복한 상태를 볼 때에, 너희의 혀와 너희의 얼굴빛뿐 아니라 너희의 마음이 기뻐하리라. 이것은 그리스도의 제자들이 자기 사역의 성공에서 누린 놀라운 만족 가운데 성취되었다. 그리스도께서 그것을 염두에 두시고 그들에게 이르시되(요 16:22), 너희 마음이 기뻐할 것이요 너희 기쁨을 빼앗을 자가 없으리라 하셨다. 그때에 마르고 시들었던(그 골수가 완전히 고갈되었던) 너희의 뼈가 젊음의 힘과 활력을 회복하여 풀같이 무성하리라. 신적인 위로는 속사람에까지 미치니, 그것은 뼈에 골수가 되고 윤택함이 된다(잠 3:8). 뼈는 몸의 힘이니, 그것이 이러한 위로로 무성하게 될 것이다. 여호와를 기뻐하는 것이 너희의 힘이 되리라(느 8:10).
이사야 66장 15-24 Matthew Henry's Complete Commentary
¹⁵ 보라, 여호와께서 불을 가지고 임하실 것이며, 그의 수레들은 회오리바람 같으리니, 맹렬함으로 그의 진노를 쏟으시며 불꽃으로 그의 책망을 베푸시리라.
¹⁶ 여호와께서 불과 그의 칼로 모든 육체와 더불어 다투시리니, 여호와께 죽임당한 자가 많으리라.
¹⁷ 동산에서 그 가운데 있는 한 나무 뒤에서 자신을 거룩하게 하며 정결하게 하고, 돼지고기와 가증한 것과 쥐를 먹는 자들이 다 함께 소멸되리라,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니라.
¹⁸ 내가 그들의 행위와 그들의 생각을 아노라. 때가 이르면 내가 모든 민족과 방언을 모으리니, 그들이 와서 나의 영광을 보리라.
¹⁹ 내가 그들 가운데 한 표징을 세우고, 그들 중에서 피한 자들을 여러 민족에게로 보내되, 곧 다시스와 불과 활을 당기는 룻에게로, 곧 두발과 야완에게로, 곧 나의 명성을 듣지도 못하고 나의 영광을 보지도 못한 먼 섬들에게로 보내리니, 그들이 이방인 가운데 나의 영광을 선포하리라.
²⁰ 그들이 모든 민족 가운데서 너희 모든 형제를 말과 수레와 가마와 노새와 빠른 짐승에 태워 여호와께 드릴 예물로 데리고, 나의 거룩한 산 예루살렘으로 이르게 하리라,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니라. 마치 이스라엘 자손이 정결한 그릇에 예물을 담아 여호와의 전으로 가져옴 같으리라.
²¹ 내가 또한 그들 중에서 택하여 제사장으로 또 레위인으로 삼으리라,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니라.
²² 내가 지을 새 하늘과 새 땅이 내 앞에 항상 있을 것 같이, 너희 자손과 너희 이름이 항상 있으리라,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니라.
²³ 그리고 이렇게 되리라, 곧 매 초하루마다 또 매 안식일마다 모든 육체가 내 앞에 나아와 경배하리라,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니라.
²⁴ 그들이 나가서 내게 범죄한 자들의 시체들을 보리니, 그 벌레가 죽지 아니하며 그 불도 꺼지지 아니하여, 그들이 모든 육체에게 가증함이 되리라.
이 구절들은 구름 기둥과 불 기둥처럼, 하나님 나라의 원수들과 그분의 왕권에 반역하는 모든 자에게는 어두운 면을 향하고, 그분의 신실하고 충성된 백성에게는 밝은 면을 향한다. 아마도 이 구절들은 바벨론에 사로잡혀 간 유대인들을 가리키는 듯한데, 그들 중 어떤 이들은 해를 받도록 그곳에 보내졌다고 일컬어지며, 하나님께서 여기서 그들과의 다투심을 계속하겠다고 위협하신다. 그들은 교정받기를 싫어하였으므로 그 재앙으로 멸망당하게 될 것이었다(렘 24:9). 다른 이들은 그들의 유익을 위하여 그곳에 보내졌으니, 그 고난이 그들에게 거룩하게 되어, 때가 되면 그것을 잘 통과하고 그 후에 많은 좋은 날을 보게 될 것이었다. 여기서 사용된 많은 표현은 그 영광스러운 경륜에 맞추어진 것이지만, 분명히 이 예언은 더 멀리, 곧 그리스도께서 한 번 이 세상에 오셨고 또 다시 오실 그 심판과, 그분의 말씀이 그 두 경우 모두에서 귀한 것과 천한 것 사이에 두시는 구별을 바라본다.
I. 그리스도께서는 그분께 끝까지 대항하는 모든 자의 혼란과 두려움이 되도록 나타나실 것이다. 때로는 그분께서 현세적 심판으로 나타나실 것이다. 불신앙을 고집한 유대인들은 불로 또 그분의 칼로 끊어졌다. 그 멸망은 매우 광범위하였으니, 그때 주께서 모든 육체와 더불어 다투셨고, 그들이 끊어진 것이 그분의 칼이었으므로 그들은 그분의 공의에 제물로 바쳐진 주께 죽임당한 자들이라 일컬어지며, 그들이 많으리라. 그 큰 날에 하나님의 진노는 그분의 불과 칼이 되어, 그것으로 회개하지 않는 모든 자를 끊고 소멸하실 것이다. 또 그분의 말씀은 죄인들의 양심을 사로잡을 때 불같이 타오르며 어떤 양날의 검보다도 예리하다. 진노의 날에는 특히 우상 숭배자들이 다루어질 것이다(사 66:17). 아마도 바벨론에서 돌아온 자들 가운데 일부는 여기에 언급된 것과 같은 우상 숭배와 미신의 사례들을 그대로 지니고 있어서, 그들의 동산에 우상들을 두고(감히 산당에 공개적으로 세우지는 못하고), 거기서 우상 숭배 의식을 행할 때, 하나씩 차례로, 또는 우리가 읽는 대로 그 가운데 있는 한 나무 뒤에서, 곧 그들이 그 이름으로 섬기던 어떤 우상인 아하드 또는 에하드 뒤에서, (참 하나님의 예배자들이 늘 하던 것처럼) 자신을 정결하게 하였으며, 그 우상을 기리어 (하나님의 율법으로 명백히 금지된) 돼지고기와, 쥐 같은, 또는 그와 비슷한 다른 짐승 같은 다른 가증한 것들을 먹었을 것이다. 그러나 이 예언은, 하나님을 멸시하며 살고 세상과 육신에 빠져 하나님을 노하시게 하는 죄인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하나님의 진노가 가져올 모든 심판을 가리킬 수도 있다. 그들은 다 함께 소멸되리라. 우리는 하늘의 행복에서 모든 우상 숭배자와 가증한 일을 행하는 모든 자가 명백히 제외됨을 본다(계 21:27, 22:15). 보응의 날에는 은밀한 악이 드러나고 그 책임을 묻게 될 것이니, 이는 (사 66:18) 내가 그들의 행위와 그들의 생각을 아노라 하셨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는 사람들이 무엇을 행하는지뿐 아니라 어떤 원리에서 어떤 의도로 행하는지도 아시며, 그러므로 사람들의 은밀한 것을 판단하실 수 있기에 세상을 심판하시기에 합당하시다(롬 2:16).
II. 그분께서는 이 세상에 그분의 나라, 곧 은혜의 나라이자 영광의 나라의 보증이며 첫 열매인 그 나라를 세우심에 있어서 그분께 신실한 모든 자의 위로와 기쁨이 되도록 나타나실 것이다. 그분께서 모든 민족과 방언을 자기에게로 모으셔서, 그들이 나아와 예수 그리스도의 얼굴에 빛나는 그분의 영광을 보게 하실 때가 이를 것이다(사 66:18). 이는 모든 민족이 제자가 되어야 하고 그 일을 위하여 방언의 은사가 주어졌을 때 성취되었다. 교회는 이때까지 한 민족에 국한되어 있었고 오직 한 언어로만 하나님께서 예배를 받으셨으나, 메시아의 날에는 그 막힌 담이 헐리고, 하나님께 낯선 자들이었던 이들이 그분을 알게 되어, 유대인들이 성소에서 그 영광을 보았던 것처럼, 복음 안에서 그분의 영광을 보게 될 것이었다. 이에 관하여 여기서 약속된 것은 이러하다.
1. 유대 민족 가운데 어떤 이들이 하나님의 은혜로 나머지와 구별되어 구원을 위하여 표시되리라는 것이다. 내가 그들 가운데 이방인들이 찾아올 모으는 기치를 세울 뿐 아니라(사 11:12에 약속된 대로), 그들 가운데 내가 구별하는 표징을 둘 자들이 있으리라. 그 말의 뜻이 그러하기 때문이다. 비록 그들이 부패하고 타락한 민족이지만, 하나님께서는 그들 중에서 한 남은 자를 따로 구별하셔서 그분께 헌신하고 그분을 위하여 쓰임받게 하시며, 그들에게 표를 두실 것이니, 그처럼 확실하게 하나님께서 그들을 자기 백성으로 인정하실 것이다(겔 9:4). 하나님의 종들이 그들의 이마에 인 침을 받으리라(계 7:3). 주께서는 자기에게 속한 자들을 아신다. 그리스도의 양들은 표가 찍혀 있다.
2. 이렇게 하나님의 은혜로 구별된 자들 자신이 다른 이들을 초청하여 와서 그 은혜의 유익을 누리게 하는 사명을 받으리라는 것이다. 그 민족 대다수를 불신앙에 붙들어 두는 그 편견들의 힘에서 벗어난 자들이 여러 민족에게 복음을 전하여 모든 피조물에게 그것을 전파하도록 여러 민족에게로 보내심을 받으리라. 주목하라. 장차 임할 진노에서 스스로 벗어난 자들은 다른 이들도 불에서 꺼낸 그슬린 나무토막처럼 낚아채기 위하여 할 수 있는 모든 일을 해야 한다. 하나님께서는 자기 심부름꾼으로, 그 메시지를 마음으로 또 체험으로 전할 수 있고, 스스로 그 위험을 가까스로 벗어난 자로서 사람들에게 죄로 인한 그들의 위험을 경고할 수 있는 자들을 보내기로 택하신다. (1.) 그들이 여러 민족에게로 보내심을 받을 것인데, 그중 몇이 여기에 다시스와 불과 룻 등으로 거명된다. 여기서 어떤 나라들을 가리키는지는 불확실하며 해석자들도 의견이 일치하지 않는다. 다시스는 일반적으로 바다를 뜻하나, 어떤 이들은 그것을 길리기아의 다소로 본다. 불은 때때로 앗수르 왕들 중 하나의 이름으로 언급되니, 아마도 그 나라의 어떤 지역도 같은 이름으로 불렸을 것이다. 룻은 활쏘기로 유명한 호전적인 민족 리디아로 여겨진다. 리디아 사람들은 활을 잡고 당긴다고 일컬어진다(렘 46:9). 두발은, 어떤 이들이 생각하기에, 이탈리아나 스페인이며, 야완은 대부분이 헬라, 곧 이오니아인으로 동의한다. 또 야벳의 후손이 거주한(창 10:5) 이방인의 섬들이, 아마도 여기서 나의 명성을 듣지도 못하고 나의 영광을 보지도 못한 먼 섬들로 의미된 것이다. 오직 유다에서만 하나님께서 알려지셨고, 거기서만 그분의 이름이 여러 세대 동안 위대하셨다. 다른 나라들은 어둠 속에 앉아 그 기쁜 소리를 듣지 못하고 그 기쁜 빛을 보지 못하였다. 그들의 이 통탄할 상태가 여기서 긍휼히 여김으로 말해지는 듯하다. 사람의 자녀 중 누구라도 자기를 지으신 이로부터 그토록 멀리 떨어져 그분의 이름을 듣지 못하고 그분의 영광을 보지 못한다는 것은 안타까운 일이기 때문이다. 이를 고려하여, (2.) 여러 민족에게 보내심을 받은 자들이 하나님의 심부름을 받들어 가서 이방인 가운데 그분의 영광을 선포할 것이다. 여러 민족 가운데 흩어진 유대인들이 그들의 민족에 관한 하나님의 섭리의 영광을 내내 선포할 것이며, 또한 그분의 규례 안에서 그들 가운데 나타난 하나님의 영광으로 인하여, 그것으로 많은 이들이 그들과 합류하도록 초청받을 것이다. 여러 민족의 모든 언어에서 나온 어떤 이들이 유대인 된 자의 옷자락을 붙잡고, 그에게 자기들을 주목해 주고 자기 무리에 받아 주고 자기들이 준비될 때까지 잠시 기다려 달라고 간청하며, '하나님이 너희와 함께 하심을 들었으니 우리가 너희와 함께 가려 하노라' 할 것이다(슥 8:23). 이렇게 하나님의 영광이 이방인 가운데 일부 선포되었으나, 사도들과 복음의 초기 전파자들에 의하여 더 명백하고 충만하게 선포되었으니, 그들은 복되신 하나님의 영광스러운 복음을 전파하기 위하여 온 세상으로, 곧 먼 섬들에까지 보내심을 받았다. 그들이 나가서 두루 전파하니 주께서 그들과 함께 역사하셨다(막 16:20).
3. 이로써 많은 회심자가 생기리라는 것이다(사 66:20).
(1.) 그들이 너희 모든 형제를 (개종자들은 형제로 인정받고 받아들여져야 하므로) 여호와께 드릴 예물로 데려오리라. 하나님의 영광이 그들에게 헛되이 선포되지 않고, 그들이 주께 연합하도록 초청받고 인도받을 것이다. 그들에게 보내심을 받은 자들이 그 교섭에서 매우 잘 성공하여, 그로 인하여, 온 나라 각처의 모든 남자가 빈손으로 나타나지 않고 그곳에 참석해야 했던 엄숙한 절기 때 늘 그러했던 것처럼, 예루살렘으로 크게 몰려드는 일이 있을 것이다. 주목하라. [1.] 그들이 오는 데에 갖추어질 편의들이다. 어떤 이들은 말을 타고 올 것이니, 그들이 먼 곳에서 왔고 유대인들이 절기에 흔히 했던 것처럼 걸어서 오기에는 그 여정이 너무 길었기 때문이다. 신분이 높은 사람들은 수레를 타고 올 것이며, 노인과 병자와 어린아이들은 가마나 덮개 있는 수레에 실려 올 것이고, 젊은이들은 노새와 빠른 짐승을 타고 올 것이다. 이는 그들이 오려는 열심과 적극성을 나타낸다. 그들은 예루살렘에 이르기 위하여 어떤 수고도 비용도 아끼지 않을 것이다. 말을 탈 수 없는 자들은 가마를 타고 올 것이며, 그들이 너무도 서두르고 지체를 너무도 참지 못하여, 탈 수 있는 자들은 노새와 빠른 짐승을 타고 올 것이다. 이 표현들은 비유적이며, 이렇게 여러 운송 수단을 쌓아 놓은 것은 (박학한 게이태커 씨가 말하듯이) 하나님의 택하신 자들을 그리스도께로 데려오는 데 필요한 그 모든 은혜로운 도움이 풍성히 마련되어 있음을 나타내기 위함이다. 모두가 환영받을 것이며, 그들을 돕고 격려하는 데에 부족한 것이 하나도 없을 것이다. [2.] 그들이 데려와지는 신분이다. 그들은 전에 예루살렘에 오던 것처럼 제물을 드리는 자로서가 아니라, 그들 자신이 여호와께 드리는 예물로서 올 것이니, 이는 그들이 산 제물로 하나님께 드려짐을 영적으로 이해해야 한다(롬 12:1). 사도가 이를 설명하며, 아마도 이를 가리키는 곳이 롬 15:16인데, 거기서 그는 이방인의 드림, 곧 이방인을 제물로 바치는 것이 받으실 만하게 되도록 자신이 이방인에게 복음을 섬기는 것을 말한다. 그들은 자기 자신을 드릴 것이며, 그들의 회심의 도구가 된 자들은 자기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취한 전리품으로서, 그분을 섬기고 영화롭게 하는 데에 바쳐진 자로서 그들을 드릴 것이다. 그들은 이스라엘 자손이 정결한 그릇에 예물을 담아 가져오는 것 같이 데려와질 것이니, 그들이 거룩하고 죄에서 정결케 되며 하나님께 성별되도록 큰 주의를 기울일 것이다. 회심한 이방인들에 관하여 (행 15:9) 그들의 마음이 믿음으로 깨끗하게 되었다고 말한다. 하나님께 가져온 것은 무엇이든 정결한 그릇, 곧 종교적 용도로 구별된 그릇에 담겨 가져와졌다. 하나님께서는 그분께서 정하신 방식으로, 곧 그분 자신이 제정하신 규례 안에서 섬김과 영광을 받으실 것이니, 그 규례들이 이 영적 예물들을 위한 합당한 운반 수단이다. 영혼이 하나님께 드려질 때 몸은 그것을 담는 정결한 그릇이 되어야 하니, 부정의 정욕으로가 아니라 거룩함과 존귀함으로 지녀야 한다(살전 4:4,5). 또 그리스도께 회심한 자들은 악한 양심에서 깨끗함을 받을 뿐 아니라, 그 몸도 맑은 물로 씻음을 받는다(히 10:22). 이제,
(2.) 이는 다음을 가리킬 수 있다. [1.] 메시아의 나라가 나타나기를 기대하며 예루살렘으로 함께 몰려든, 천하 각 나라에서 온 유대인들과 경건한 사람들과 개종자들이다(행 2:5,6,10). 그들은 각처에서 주께 드리는 예물로서 거룩한 예루살렘 산으로 왔고, 거기서 그들 중 많은 이가 사도들에게 부어진 방언의 은사로 말미암아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에 이르게 되었다. 내가 생각하기에 그 역사와 이 예언 사이에는 어떤 상응함이 있다. 그 내시도 얼마 후에 자기 수레를 타고 예루살렘에 예배하러 왔다가 그리스도와 그분의 거룩한 종교에 대한 지식을 가지고 집으로 돌아갔다. [2.] 그리스도께 회심하여 그분의 교회에 더해질, 모든 민족 중 일부인 이방인들이다. 이것은 영적인 더해짐이지만, 예언에서는 흔히 장소적 이동으로 표현된다. 사도는 모든 참 그리스도인에 관하여 그들이 시온 산과 하늘의 예루살렘에 이르렀다고 말하는데(히 12:22), 이는 이 구절을 설명하며, 이 모든 행렬의 의미가 다만 그들이 하나님의 은혜로, 또 그 은혜의 수단을 사용함으로써, 마치 수레와 가마에 실려 오는 것처럼 그렇게 정성스럽고 안전하고 편안하게 교회로 데려와지리라는 것임을 보여 준다. 이렇게 하나님께서 야벳을 권하시리니 그가 셈의 장막에 거하리라(창 9:27).
4. 교회가 이처럼 그토록 많은 회원이 더해짐으로 확장됨에 따라, 그 교회에 복음 사역이 세워지리라는 것이다(사 66:21). 내가 그들 중에서 (개종자들, 이방인 회심자들 중에서) 택하여 제사장과 레위인으로 삼아, 거룩한 일을 섬기고 그들의 종교 집회를 주관하게 하리니, 이는 교리와 예배와 권징을 위하여 매우 필요한 일이다. 이때까지 제사장과 레위인은 모두 유대인 가운데서 택함받았고 모두 한 지파에 속하였다. 그러나 복음 시대에는 하나님께서 회심한 이방인 중에서 택하셔서 거룩한 일로 그분을 섬기게 하시고, 백성을 가르치게 하시며, 주의 이름으로 그들을 축복하게 하시고, 율법 아래의 제사장과 레위인이 그러했듯이 하나님의 비밀을 맡은 청지기가 되게 하시며, 목사와 교사(또는 감독)가 되어 말씀과 기도에 전념하게 하시고, 집사가 되어 상 봉사를 하게 하시며, 레위인처럼 하나님의 집의 외적인 일을 돌보게 하실 것이다(빌 1:1, 행 6:2-4). 사도들은 모두 유대인이었고, 칠십 인의 제자들도 그러하였으며, 이방인의 위대한 사도 자신도 히브리인 중의 히브리인이었다. 그러나 이방인 가운데 교회들이 세워졌을 때에는, 그들 자신 중에서, 각 교회의 장로들로 세워진 사역자들을 두었으니(행 14:23, 딛 1:5), 이는 사역이 더 쉽게 퍼지고 더 친숙해지며, 더 존경받지는 못할지라도 더 받아들여지게 하였다. 복음의 은혜가, 선지자로 하여금 자기 고향에서 존경을 받지 못하게 하던 그 부패에서 사람들을 고쳐 주리라고 기대할 만하였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내가 택하리라 하시되, 그들 모두를 택하신다 하지 않으시니—비록 그들이 다 영적인 의미에서 우리 하나님께 대하여 왕과 제사장이 되었으나—그들 중에서, 곧 그들 중 일부를 택하신다 하신다. 사역자에게 위임을 주어 사역자로 세우는 것뿐 아니라, 그들에게 그 섬김에 합당한 자격을 갖추어 주고 그쪽으로 마음이 기울게 하여 사역자로 택하는 것도 본래 하나님의 일이다. 내가 그들을 택하리라, 곧 비록 이방인일지라도 내가 그들을 받아들이고, 그들과 그들의 섬김을 받으리라는 것이다. 이는,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의 아들 중에서 선지자를 일으키시고 그 청년 중에서 나실인을 일으키신 것이 유대 교회에 그러했던 것처럼(암 2:11), 이방인 교회에 큰 영광이요 유익이다.
5. 교회와 사역이 이렇게 세워진 후, 한 세대에서 다음 세대로 이어져 계속되고 유지되리라는 것이다(사 66:22). 메시아의 나라가 세워짐으로 일어날 변화가 여기서 다음과 같이 묘사된다. (1.) 매우 크고 보편적인 변화이다. 그것은 새 세상, 곧 앞서 약속된 새 하늘과 새 땅이 될 것이다(사 65:17). 옛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모든 것이 새롭게 되었도다(고후 5:17). 특수성의 옛 언약이 폐하여지고, 새 언약, 곧 은혜의 언약이 세워졌다(히 8:13). 우리는 이제 율법 조문의 묵은 것으로가 아니라 영의 새로운 것으로 섬길 것이다(롬 7:6). 하늘과 땅 양쪽에 관한 새 계명이 주어지고, 양쪽에 관한 새 약속이 주어지니, 이 둘이 함께 신약을 이룬다. 그러므로 그것들은 하나님께서 창조하실 새 하늘과 새 땅이며, 이것들은 시간의 끝에 예정된 새 하늘과 새 땅을 위한 준비이다(벧후 3:13). (2.) 하나님 자신이 이루시는 변화이다. 그분께서 새 하늘과 새 땅을 창조하실 것이다. 그 변화는 새 세상을 만드실 권능뿐 아니라 새 규례를 제정하실 권위도 가지신 분께서 이루신 것이다. (3.) 그것은 지속되고 항구적인 변화, 결코 바뀌지 않을 변화, 늘 새롭고 결코 낡지 않을 새 세상이 될 것이니, 사라지려 하는 것이 낡아 가는 것과는 다르다. 그것이 내 앞에 변함없이 있으리라. 복음의 경륜은 시간의 끝까지 계속되고 다른 어떤 것으로도 대체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스도의 나라는 흔들리지 않는 나라이며, 그 법과 특권은 흔들리지 못할 것들로서, 영원히 있을 것이다(히 12:27,28). 그것이 하나님 앞에 있기에 그러므로 있으리니, 그것은 그분의 눈과 돌보심과 특별한 보호 아래 있다. (4.) 그것은 그리스도를 섬길 한 자손 안에서 유지될 것이다. 너희 자손, 그리고 그들 안에서 너희 이름이 있으리라—사역자의 자손, 그리스도인의 자손이다. 이 둘의 한 세대가 지나가면 또 다른 세대가 올 것이며, 이렇게 그리스도의 이름이 그리스도인의 이름과 함께 땅이 있는 동안 땅 위에 계속될 것이고, 그분의 보좌는 하늘의 날과 같이 계속될 것이다. 음부의 문들이 비록 교회와 싸울지라도 이기지 못할 것이며, 지극히 높으신 이의 성도들을 닳아 없어지게 하지도 못할 것이다.
6. 이렇게 주께 드리는 예물로 데려와진 모든 자가 종교 집회에서 드리는 하나님께 대한 공적 예배에 정성스럽고 변함없이 참석하리라는 것이다(사 66:23). 이는 구약 경륜에 맞는 표현으로 묘사되어, 의식법이 폐지되고 성전 봉사가 끝날지라도 하나님께서 여전히 전과 같이 규칙적이고 변함없이, 또 받으실 만하게 예배받으시리라는 것을 보여 준다. 이전에는 오직 유대인만 하나님 앞에 나아갔고, 그들은 일 년에 세 번만, 그것도 남자들만 참석하도록 매여 있었다. 그러나 이제는 모든 육체가, 유대인뿐 아니라 이방인도, 남자뿐 아니라 여자도, 나아와 하나님 앞에서 예배할 것이니, 비록 예루살렘에 있는 그분의 성전에서가 아니라 온 세상에 흩어진 종교 집회에서일지라도 그분의 임재 안에서 그리할 것이며, 그 집회가 그들에게는 회막이 유대인에게 그러했던 것과 같을 것이다. 하나님께서 그 집회들 안에 자기 이름을 두실 것이며, 비록 두세 사람만 모일지라도 그들 가운데 계셔서 그들을 만나시고 그들을 축복하실 것이다. 또 그들은 전처럼 일 년에 세 번의 절기에만이 아니라, 매 초하루와 매 안식일마다 자주 이 거룩한 성회의 유익을 누릴 것이다. 옛적의 성전과 같은 어떤 한 정해진 장소가 필요하지 않다.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성전이시니, 모든 신자가 믿음으로 그분 안에서 만나며, 이제 교회가 그토록 멀리 확장되었으니 모두가 한 장소에서 만나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러나 어떤 정해진 시간이 지정되는 것이 합당하니, 이는 예배가 확실하고 자주 드려지게 하고, 그것으로 모든 그리스도인 집회가 믿음과 소망과 거룩한 사랑으로 서로 누리는 영적 교통의 표징을 주기 위함이다. 초하루와 안식일이 언급된 것은, 율법 아래에서 연례 절기는 예루살렘에서 지켜야 했으나, 초하루와 안식일은 처음에는 선지자의 학교에서, 나중에는 회당에서 온 나라 곳곳에서 경건히 지켜졌기 때문이며(왕하 4:23, 암 8:5, 행 15:21), 그 모형을 따라 그리스도인의 집회가 형성된 듯하다. 주의 날이 매주 거룩히 지켜지고, 주의 만찬이 매달 행해지며, 이 둘이 합당하게 참석되는 곳에서 이 약속이 성취되며, 거기서 그리스도인의 초하루와 안식일이 지켜지는 것이다. 여기서 보라. (1.) 하나님은 엄숙한 집회에서 예배받으셔야 하며, 기회 있는 대로 그 집회에서 하나님을 섬기는 것이 모든 이의 의무이다. 모든 육체가 와야 한다. 비록 육체가 연약하고 부패하고 죄가 있을지라도, 그 육체가 죽임당하도록 그들로 오게 하라. (2.) 하나님을 예배할 때 우리는 그분 앞에 우리 자신을 드리며, 특별한 방식으로 그분의 임재 안에 있다. (3.) 이를 행하기 위하여 정해진 시간이 있어야 하며, 또 그러하다. 그리고 우리는 이 시간들을 변함없이 그리고 양심적으로 지키는 것이 우리의 의무일 뿐 아니라 우리의 유익임을 알아야 한다.
7. 불신앙과 불경건을 고집하다가 그 가운데서 멸망하는 자들의 두려운 운명과 멸망을 생각함으로,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베푸신 구별하시는 은총에 대한 그들의 감사하는 마음이 크게 더해지리라는 것이다(사 66:24). 만군의 여호와를 예배하며 그분의 집의 선하심 안에서 그분 앞에서 기뻐하던 자들이, 자신들의 행복을 더욱 절감하기 위하여 악인들의 비참함을 살펴볼 것이다. 주목하라. (1.) 여기서 그 비참함이 묘사된 자들이 누구인가. 그들은 하나님께 범죄한 사람들이니, 그분의 법을 어겼을 뿐 아니라 그분과 맺은 언약을 깨뜨렸고, 스스로 그분과 다툴 수 있다고 여긴 자들이다. 이는 특히 그리스도의 복음을 거부한 믿지 않는 유대인들을 가리키는 것일 수 있다. (2.) 그들의 비참함이 무엇인가. 이는 여기서, 죽임당한 자들의 시체로 뒤덮인 전쟁터의 무서운 광경으로 표현되는데, 그 시체들은 땅 위에 썩어 누워 있고, 그것들을 기어다니며 파먹는 벌레로 가득하다. 또 그것들을 태우려 가면, 그것들이 너무 흩어져 있고 그것들을 한데 모으는 것이 너무도 역겨운 일이어서 끝이 없을 것이며, 그 불이 결코 꺼지지 않을 것이다. 그리하여 그것들이 모든 육체에게 가증함이 되어, 아무도 그것들 가까이 가려 하지 않는다. 이제 이것은 때때로 현세적 심판으로 이루어지는데, 아마도 로마인들에 의한 예루살렘과 유대 민족의 멸망에서보다 문자에 더 가까웠던 적은 없을 것이니, 그 멸망에서 처음부터 끝까지 이백만 명 이상이 칼로 끊어졌고, 이는 기근과 전염병으로 죽은 자들 외의 수로 계산된다. 이는 또한 믿지 않는 유대인들에게 임한 영적 심판을 가리킬 수도 있으니, 바울이 그것을 주목하여 우리에게 보여 준다(롬 11:8 등). 그들은 죄 가운데서 죽은 자, 두 번 죽은 자가 되었다. 유대인의 교회는 교회의 시체였으며, 그 모든 회원이 썩은 시체였다. 그들의 벌레가 죽지 않았으니, 그들 자신의 양심이 그들을 끊임없이 불안하게 하였고, 복음에 대한 그들의 분노의 불이 꺼지지 않았으니, 이것이 그들의 죄이자 동시에 그들의 형벌이었다. 또 그들은 해 아래 어떤 민족보다도 더 모든 육체에게 가증함이 되었다. 그러나 우리 구주께서는 이것을 장차 올 상태에서 회개하지 않는 죄인들의 영원한 비참함과 고통에 적용하시니, 거기서는 그들의 벌레가 죽지 않고 그들의 불이 꺼지지 않는다(막 9:44). 양심이 끊임없이 괴롭히는 자인 그 영혼은 죽지 않으며, 진노가 끊임없이 두렵게 하는 분이신 하나님은 영원하시기 때문이다. (3.) 그것에 대하여 어떤 주목이 있을 것인가. 하나님을 예배하는 자들이 나가서 그들을 바라볼 것이니, 자신들이 어떤 비참함에서 구속받았는지를 볼 때에, 자기 구속주의 사랑으로 자기 마음을 감동시키려는 것이다. 다른 이들은 하늘나라에 있고 자기들은 쫓겨난 것을 보는 것이 멸망당한 자들의 비참함을 가중시키듯이(눅 13:28), 자기 범죄 가운데서 죽은 자들이 어떻게 되는지를 보는 것은 복 받은 자들의 기쁨과 영광을 드러낼 것이며, 자기들 자신이 그 불에서 꺼낸 그슬린 나무토막과 같았음을 생각하는 것은 그들의 찬양을 드높일 것이다. 이렇게 그들을 구별하신 그 값없는 은혜의 영광을 위하여, 주께 구속받은 자들로 하여금 온전한 겸손으로, 또 거룩한 떨림이 없지 않게, 그들의 승리의 노래를 부르게 하라.
이 장의 취지는 앞 장의 취지와 거의 같으며, 표현들도 상당수 동일하다. 따라서 이 장도 같은 방향을 바라보는데, 곧 포로 생활에서 돌아올 때 유대인 가운데 선한 자들과 악한 자들의 서로 다른 처지를 다루지만, 그것은 또한 메시아 시대에 유대인이 버림받는 일과 이방인이 회심하는 일, 그리고 세상에 복음의 나라가 세워지는 일을 예표한다. 이 장의 사 66:1은 스데반이 그리스도의 교회를 세움으로 성전이 철폐되는 일에 적용하였는데(행 7:49,50), 이는 이 장 전체를 푸는 열쇠가 될 수 있다. 여기서 우리는 다음의 내용을 보게 된다. I. 도덕적 의무에 비하여 하나님께서 의식적(儀式的) 예배에 두시는 경멸과, 그 안에 담긴, 곧 성전을 폐하시고 제사를 끝내시며 그것에 매달리는 자들을 버리시려는 그분의 목적에 대한 암시(사 66:1-4). II. 하나님께서 때가 이르면 그분의 백성을 그 압제자들의 손에서 건져 내고자 이루실 구원(사 66:5)으로서, 박해하는 자들에게는 두려움을 선언하시고(사 66:6) 박해받는 자들에게는 위로를 주시며, 신속하고 완전한 구원(사 66:7-9)과 기쁨에 찬 안착(사 66:10,11), 이방인들이 그들에게 합류함과 그 안에서 누리는 넘치는 만족(사 66:12-14). III. 하나님께서 그분의 교회와 백성의 원수들에게 내리실 무서운 보응(사 66:15-18). IV. 넓고 견고한 기초 위에 교회가 행복하게 세워짐과, 교회가 하나님을 끊임없이 섬김과 그 원수들을 이김(사 66:19-24). 그리고 이 복음적인 선지자가 여기, 곧 그의 예언을 마무리하는 자리에서 (그가 실제로 그러하듯이) 마지막 날들, 곧 그 마지막 날과 영원의 날들에까지 멀리 내다보는 것은 우리가 충분히 기대할 만한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