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arnes' Notes on the Bible
Albert Barnes · 1834
Albert Barnes' Notes on Revelation Of St. John The Divine (New Testament, English original, public domain). Sourced from the Christian Classics Ethereal Library (CCEL). Public domain. Retrieval mirror: biblehub.com/commentaries/barn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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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 성경의 어떤 부분도 이 장에서 시작하여 이사야 9:7에서 끝나는 예언만큼 해석하기 어렵다고 여겨지고 그처럼 다양한 해석을 낳은 적은 없을 것이다. 메시아에 관한 예언(이사야 7:14 이하, 8:7, 9:1–7)의 중요성은 해석자들이 진정한 의미를 확정하려고 그토록 애쓴 한 이유이다. 메시아를 가리킨다고 보는 견해에 따르는 어려움들도 참된 의미를 알아내려는 큰 관심을 낳은 원인 가운데 하나였다.
이 장의 시작에서 출발하는 예언은 이사야 9:7까지 계속된다. 이 모든 내용은 분명 같은 때에 주어졌고 하나의 환상 또는 신탁을 이룬다. 장 구분에서도 이를 나타냈어야 했다. 성경에 채택된 자의적이고 많은 경우 터무니없는 장 구분 방식 때문에 큰 모호함이 생긴다.
설명의 편의를 위해 이 장을 네 부분으로 나눌 수 있다.
I. 전체 기록을 시작하는 역사적 진술, 이사야 7:1–2. 이 장에서 언급되는 주요 사건들은 아하스 시대에 일어났다. 그의 성품과 통치에 관해서는 서론 제3절을 보라. 그는 우상 숭배자였으며 곳곳에 우상의 형상들과 제단들과 산당 숲을 세웠다. 바알들에게 제사하고 몰렉을 영화롭게 하려고 힌놈 골짜기에서 자기 자녀들을 불살랐으며, 예루살렘 전역을 가증한 일들로 다스렸다(열왕기하 16:2–4, 역대하 28:1–4). 이러한 가증한 일들 때문에 그는 시리아 왕의 손에 넘겨졌고, 시리아와 사마리아 연합군이 위협적으로 침입해 오는 재앙을 겪었다. 당시 다메섹을 수도로 둔 시리아의 왕은 르신이었고, 이스라엘 또는 사마리아의 왕은 베가였다. 이 왕들은 아하스의 전임자인 요담의 통치 말기에 동맹을 맺고 예루살렘을 치러 올라갔으나 점령하지 못했다.
요담 시대에 이 연맹이 형성된 사실은 열왕기하 15:37에 분명히 선언되어 있다. 이사야는 이사야 7:1에서 이 연맹을 언급하면서 그것이 요담 시대에 일어났다고 말한다. 이사야가 여기서 이 진술을 한 것은 의심할 여지 없이 자신이 언급하는 중요한 사건을 그 시작까지 거슬러 올라가 설명하기 위해서였다. 그 뒤의 말은 특별히 아하스와 관련되어 있지만 말이다. 연맹은 요담 시대에 형성되었으나 그 결과는 오래 계속되어 히스기야 시대에 산헤립이 패배할 때까지 끝나지 않았다. 이사야 37장을 보라. 여기 이사야 7:1에서 선지자는 일반적으로 그들이 예루살렘을 치러 올라왔으나 점령하지 못했다고 말한다. 이는 그들이 요담 시대에 감행한 원정을 가리킬 수도 있고, 그들의 “모든” 시도의 결과, 곧 그들이 예루살렘을 점령하지 못했다는 사실을 나타내는 “일반적인” 진술일 수도 있다. 후자가 올바른 해석이라면 이사야 7:1의 진술은 이사야가 이후 시점에 한 것이며 일어난 “모든” 일을 진술하려는 것이다.
그러나 그들이 요담 시대에 예루살렘을 점령하려 시도했으나 성공하지 못했다고 보는 것이 더 자연스럽다. 아하스가 왕위에 올랐을 때 동맹은 계속되었고 예루살렘을 점령하려는 시도도 다시 시작되었다. 전쟁을 위한 무서운 준비가 이루어졌고 침략군이 그 땅에 올라왔다. 아하스의 신하들 가운데 많은 사람이 포로가 되어 다메섹으로 끌려갔다. 베가는 하루에 십이만 명을 죽이고 이십만 명을 사로잡아 사마리아로 끌고 갔다. 한 선지자 오뎃은 형제들을 포로로 잡는 것이 부당하다고 그들에게 설명하며 간청했고, 그 결과 포로들은 속박에서 풀려나 여리고로 다시 보내졌다(역대하 28:5–15). 거의 같은 때에 앗수르인들은 엘랏을 점령하고 자기들에게 속한 성읍으로 보유했다(열왕기하 16:6). 이 강력한 동맹에 대한 소식과 연합군이 저지른 황폐 때문에 아하스는 놀라 예루살렘 자체의 안전을 염려하며 떨었다(이사야 7:3).
그러나 그는 도움을 구하려고 하나님을 바라보는 대신 “앗수르” 왕과 동맹을 맺을 계획을 세웠다. 이를 위해 국고를 고갈시켜 마련할 수 있는 가장 값비싼 선물들과 깊은 존경을 표하는 말과 함께 사자들을 디글랏빌레셀에게 보내 그의 우호와 협력을 확보하려 했다(열왕기하 16:7–8). 앗수르 왕은 이에 동의하고 다메섹을 공격하여 전쟁에 개입했다(열왕기하 16:9). 아하스가 이사야에게 이사야 7:12의 답을 하고 주께 표징을 구하기를 거절한 것은 바로 이 동맹과 그것에 둔 신뢰 때문이었다. 또한 이후 앗수르의 침입으로 예루살렘을 그토록 큰 곤경에 빠뜨린 것도 이 동맹이었다. 예상할 수 있었듯 앗수르인들은 아하스의 이익이 아니라 자기들의 이익을 도모했다. 그들은 그 기회를 이용해 가능하다면 유다 자체를 정복하려 했다. 그 결과 나중에 그들이 그 땅을 침입했고 예루살렘 자체가 위험에 빠졌다. 이 결과는 이사야 7:17–25와 8:7–8에서 분명히 예언되었다. 그러나 동맹이 성사되기 전 아하스는 깊은 경악과 두려움에 빠져 있었고, 바로 그 시점에 이사야가 그에게 보냄을 받았다(이사야 7:2–3).
II. 이처럼 경악하고 두려워하던 때에 이사야는 아하스에게 보내져 예루살렘이 안전하며 실제로 두려워할 이유가 없다고 확증했다(이사야 7:3–9). 그의 주된 목적은 왕이 야훼를 신뢰하고 하나님께 보호받는 그의 왕국이 무너질 수 없음을 믿게 하는 것이었다. 이사야는 자기 아들을 데리고 가라는 지시를 받았다. 그 아들의 이름(스알야숩, “남은 자가 돌아오리라”) 자체가 민족이 “완전히” 멸망하지 않으며, 따라서 시리아나 사마리아에 영구히 복속될 수 없다는 표징 또는 보증이었다(이사야 7:3). 그는 윗못에서 아하스를 만나러 갔다. 아마 아하스는 많은 궁정 신하를 거느리고 그곳에 가서 적이 물을 얻지 못하도록 물길을 막는 일이 가능한지 살펴보고 있었을 것이다. 역대하 32:4과 비교하라. 이사야는 다가오는 원수들을 두려워하지 말라고 지시했다. 그들은 연기만 나는 반쯤 꺼진 횃불 같아서 거의 해를 끼칠 수 없기 때문이다(이사야 7:4). 그는 동맹한 왕들의 계획이 이루어지지 않으리라고 확증했다. 야훼께서 그들의 계획은 서지 못한다고 말씀하셨고, 예루살렘을 정복하여 자기 영토에 더하더라도 각 왕국의 경계는 당시와 동일하며 넓어지지 않으리라는 것이다. 다메섹은 여전히 시리아의 수도로, 사마리아는 에브라임의 수도로 남을 것이며, 육십오 년 안에 에브라임 왕국이 완전히 멸망할 것이므로 예루살렘과 유다는 당연히 그 왕국에 영구히 더해질 수 없었다. 르말랴가 예상한 것처럼 예루살렘을 조공을 바치는 종속 지방으로 삼기는커녕, 그의 왕국 자체가 완전히 최종적으로 멸망할 것이었다(이사야 7:4–9). 이 모든 말씀의 목적은 아하스의 두려움을 가라앉히고 그가 하나님을 신뢰하게 하는 것이었다.
III. 한 표징, 곧 선지자가 말한 진실성에 대한 증거나 입증이 약속된다(이사야 7:10–17). 이사야 7:4–9에서 예루살렘의 안전을 확증한 이사야의 말에 아하스는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는다. 그러나 그의 모든 행동은 이사야의 말에 전혀 감동받지 않았고 아무 영향도 받지 않았으며, 선지자의 확언을 전혀 신뢰하지 않았음을 보여 준다. 그는 도움을 얻으려고 하나님이 아니라 앗수르 왕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그의 도움을 얻지 못하면 자기 왕국이 멸망하리라고 의심할 여지 없이 느꼈다. 그는 분명 하나님을 믿지 않았고 선지자를 신뢰하지 않았다. 그의 마음은 임박한 위험과 앗수르 왕의 도움을 얻을 수 있을지에 대한 불확실성 때문에 불안하고 동요하는 상태였다. 그의 주의를 유일한 보호자이신 하나님께 돌리고 두려움을 가라앉히기 위해, 아하스는 선지자가 말한 것을 확증할 수 있도록 자신이 원하는 어떤 표징이나 기적이든 야훼께 구하라는 명령을 받는다(이사야 7:10–11).
아하스는 이를 거절한다(이사야 7:12). 그는 경건한 체하며 야훼를 시험하는 것처럼 보이고 싶지 않다는 명분으로 그렇게 한다. 그러나 “실제” 원인은 의심할 여지 없이 그가 야훼를 신뢰하지 않았고, 그분이 말씀하신 것을 믿지 않았으며, 은밀히 앗수르 왕의 도움에 의존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의 대답은 공손한 표현으로 되어 있었고 경건한 모양을 띠었으며 심지어 율법에서 빌린 언어로 표현되었다(신명기 5:16). 그러나 선지자가 말한 일이 이루어지리라는 표징 또는 증거가 주어짐으로써 중요한 목적들이 성취되어야 했다. 유다 왕이며 백성의 우두머리인 아하스가 그 말이 참이라는 증거를 얻는 것이 중요했다. 그 자리에 있던 사람들과 백성 대다수에게 알맞은 인상을 주어 야훼를 신뢰하게 하는 것이 중요했다. 그들이 미래의 시대, 민족의 확실한 안전, 그리고 위대한 구원자가 올 때까지 그 민족이 “반드시” 보존되어야 한다는 증거를 바라보는 것이 중요했다.
그러므로 한 표징이 아하스의 주의를 억지로라도 끌게 된다. 선지자는 그가 아무리 표징을 구하기 싫어하고 아무리 믿지 않더라도 야훼께서 자신이 말한 모든 것을 충분히 확증하는 표와 증거와 입증을 주시리라고 말한다. “오직 야훼만 행하실 수 있고 오직 그분만 아실 수 있는 일이 이루어질 것이며”, “그것”이 임박한 이 침입에서 예루살렘이 안전하리라는 증명이 될 것이다. 처녀가 아들을 낳고, 그가 분별의 나이에 이르거나 선악의 차이를 구별할 수 있기 전, 곧 짧은 시간 안에 두 왕의 땅이 모두 버림받을 것이다(이사야 7:14–16). 이 처녀가 누구이며 이 예언의 정확한 의미가 무엇인지는 아마 성경의 거의 어떤 부분보다 주석가들을 더 당혹스럽게 했다. “명백한” 의미는 다음과 같은 듯하다.
당시 처녀였고 선지자가 말할 때 결혼하지 않은 어떤 젊은 여자가 임신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다. “그” 아들에게 한 이름이 주어지거나, 그 출생이 이루어진 정황 때문에 하나님이 그들과 함께하시고 그들의 보호자가 되심을 나타내는 그러한 이름이 적절하게 될 것이다. 모성애는 그 아이에게 임마누엘이라는 이름을 붙일 것이다. 그 아이는 선악을 구별할 수 있을 때, 곧 분별의 나이에 이를 때까지 유대인들 사이에서 통상적인 방식으로 양육될 것이다(이사야 7:15). 아이를 잉태한 때부터 그가 선악을 구별할 나이에 이르기까지, 곧 약 삼 년 사이에 그 땅은 적대적인 두 왕에게서 벗어날 것이다(이사야 7:16). 이것이 이 구절의 명백한 의미인 듯하다. 오직 이런 방식으로만 이것이 그 땅이 그 침입에서 완전히 영구적으로 벗어나리라는 사실을 아하스에게 분명하고 만족스럽게 입증할 수 있었다.
오직 하나님만 이 사실을 아실 수 있었으므로 이것은 이사야가 말한 바의 확실성에 대한 증거였다. 그러나 이것이 명백한 의미이고 오직 그런 사건만이 그 땅이 침략한 두 왕 모두에게서 버림받으리라는 표징이 될 수 있었다 하더라도, 선지자가 자신이 한 말을 성령의 지시에 따라 “그런 식으로 구성하여” 훨씬 더 중요한 또 다른 사건에도 적용되게 했다는 사실을 의심할 이유는 없다. 그 사건도 하나님의 보호에 대한 표징이 될 것이며, 훨씬 더 중요한 의미에서 그러할 메시아의 탄생이었다. 그러므로 그는 즉시 일어날 사건에 적용되면서도 훨씬 더 넓은 범위를 포괄하고 더 중요한 사건들을 묘사할 단어들을 선택했다. 그 사건들은 즉시 일어날 일과 “같은 계열과 방향”에 있는 것, 곧 하나님의 보호가 확실함과 마침내 모든 위험에서 벗어나는 일이었다.
그러므로 이 예언을 시작하는 언어에는 즉시 일어날 사건만으로는 완전히 충족되지 않는 풍성한 의미가 있다. 그것은 이사야가 언제나 바라보았던 위대한 사건, 곧 메시아의 탄생으로만 완전히 성취될 수 있다. 이사야의 마음은 매우 자연스럽게 그 미래 사건으로 나아갔을 것이다. 서론 제7절 iii.(3)을 보라. 이사야서에서 끊임없이 예시되는 이른바 “예언적 암시 또는 연상의 법칙”에 따라, 그의 마음은 더 나은 시대와 더 행복한 사건들에 머물렀을 것이다. 그는 미래 시대에 태어날 한 아이를 보았으며, 지금의 아이는 그 아이의 상징에 불과했다. 그 아이는 문자 그대로 처녀에게서 태어날 것이었다. 그의 본성과 하나님의 은총과 임재의 증거라는 사실 때문에 그의 “적절한” 이름은 “임마누엘”일 것이었다. 마찬가지로 지금 이 아이도 하나님의 보호와 임재의 보증이 되므로 임마누엘이라는 이름이 적절했다. 그 사상은 사용된 말에 “풍성한 의미”가 있어 저자가 바로 앞에 둔 사건보다 미래의 사건들에 더 적절히 적용된다는 것이다. 사용된 언어가 “암시한”, 화자나 저자의 마음에서 처음 언급한 사건보다 훨씬 더 중요하여 주의를 완전히 사로잡는 미래의 더 중요한 사건에 마음이 급속히 전환되어 갑자기 머문다는 것이다. 여기 제시한 견해의 이유는 이사야 7:14–16 주석에서 상세히 설명한다.
IV. 지금까지 선지자는 그들이 위험을 염려하던 방면에서는 아무것도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는 사실을 아하스에게 확신시키는 데 모든 노력을 기울였다. 그러나 이제 이사야 7:17–25에서 그는 그들이 가장 예상하지 않은 방면, 곧 아하스가 도움과 구원을 구하던 바로 그 방면인 앗수르 왕에게서 위험이 오리라고 확언한다. 앗수르 왕은 동맹을 이용하고 그를 돕는다는 명분 아래 모든 일을 자기 이익을 위해 돌리며, 마침내 유다 땅에 황폐를 가져올 것이라고 확언한다. 선지자는 이 불행한 동맹에서 뒤따를 재앙들을 계속 진술하고 펼쳐 보이며 그것으로 이 장을 끝낸다. 열왕기하 16:7을 보면 이사야의 말이 아하스의 마음에 아무런 인상도 주지 못한 것이 분명하다. 그는 귀중한 선물들과 함께 사자들을 앗수르 왕 디글랏빌레셀에게 보냈다. 디글랏빌레셀은 표면상 아하스의 견해에 동의하고 도움을 약속했다.
아하스가 르신과 베가의 연합군에게 무서운 패배를 당한 뒤, 디글랏빌레셀은 다메섹을 치러 올라가 점령했다(열왕기하 16:9). 그는 사마리아 땅을 황폐하게 하고 주민의 큰 부분을 앗수르로 사로잡아 갔다(열왕기하 15:29). 이처럼 두 왕의 땅이 버림받으리라는 이사야의 예언(이사야 7:16)이 성취되었다. 그러나 아하스는 그들의 침략에서 구원받기 위해 엄청난 대가를 치렀다. 디글랏빌레셀의 실제 목적은 아하스를 돕는 것이 아니라 그와 그의 왕국을 종속시켜 조공을 바치게 하는 것이었다(역대하 28:21). 이 동맹은 유다와 예루살렘에 닥친 연속적인 재앙들의 첫 사건이었으며, 히스기야 시대에 산헤립의 군대가 완전히 멸망할 때에야 끝났다. 이사야 37장을 보라. 아하스의 남은 통치 기간에 그는 앗수르에 조공을 바쳤다. 히스기야가 앗수르의 멍에를 벗어 버리려 했을 때(열왕기하 18:7), 그 시도는 그를 전쟁에 휘말리게 했고 그의 왕국을 침략에 노출시켰으며 왕국의 적지 않은 성읍과 마을을 잃게 했다. 열왕기하 18–20장과 이사야 36–37장을 보고, 이사야 8장과 10:28–32 주석과 비교하라. 이처럼 이 예언의 둘째 부분도 성취되었다. 이 중요한 사건들에 관한 더 충실한 진술은 이 사건들과 관련된 여러 구절의 주석에서 찾을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