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am Clarke's Commentary and Critical Notes on the Bible
Adam Clarke · 18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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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지자 요엘서 서론
브두엘의 아들 요엘은 열두 소선지자 가운데 둘째로, 전해지는 바에 따르면 르우벤 지파 사람이요 벧호론 성읍 출신이라고 한다. 아니, 오히려 벧하란이라 해야 옳을 것이다. 벧호론은 요단 이편 에브라임 지파 안에 있었고, 벧하란은 그 강 저편 르우벤 지파 안에 있었기 때문이다. 요엘은 유다 왕국에서 예언하였다. 어떤 비평가들은 그가 열 지파가 옮겨 가고 이스라엘 왕국이 무너진 뒤에야 그곳에 나타났다고 본다. 그가 예언하기 시작한 해도, 그가 죽은 해도 우리는 분명히 알지 못한다. 그는 큰 기근과 유대 땅을 휩쓴 메뚜기 떼의 범람을 말한다. 그러나 이런 재앙은 그 지방에서 드문 일이 아니고 또 온갖 종류의 사건이 다 역사에 기록되지도 않았으므로, 우리는 거기에서 요엘의 예언이 있었던 특정한 시기를 확정할 만한 것을 아무것도 추론해 낼 수 없다.
히에로니무스는, 고대와 근래의 그를 따르는 많은 이들과 더불어, 요엘이 호세아와 동시대 사람이라고 믿었다. 이는 그가 세운 다음의 원칙에 따른 것이니, 곧 어떤 선지자가 살았던 때에 관하여 확실한 증거가 없을 경우에는 연대가 더 잘 알려진 앞선 선지자의 시기를 따라 추정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 원칙이 언제나 확실하지는 않으며, 우리에게 달리 할 만한 충분한 이유가 있다면 다른 체계를 따르는 것을 이 원칙이 가로막아서는 안 된다. 히브리인들은 요엘이 므낫세 치하에서 예언하였다고 주장한다. 그리고 방증이 되는 정황들이 이 가설에 유리한 쪽으로 기우는 듯하므로, 난외주에서도 그에 따랐다. 선지자는 원수의 군대라는 관념 아래, 그의 시대에 유대 땅에 내려 큰 황폐를 일으킨 메뚜기 구름을 그려 보인다. 이것이 황충과 가뭄과 더불어 그 땅에 무서운 기근을 가져왔다.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의 재난과 기도에 감동하시어 메뚜기를 흩으시니, 바람이 그것들을 바다로 몰아넣었다. 이 불행들 뒤에는 풍요와 결실이 뒤따랐다. 그 후에 선지자는 주의 날과, 주께서 이스르엘 골짜기에서 행하실 보응을 예언하였다. 그는 하나님께서 보내실 의의 교사에 관하여 말하며, 모든 육체 위에 부어질 성령에 관하여 말한다. 그는 예루살렘이 영원히 사람 사는 곳이 되리라고, 구원이 거기에서 나오리라고, 누구든지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고 말한다. 이 모든 것은 새 언약과 메시아의 때에 관련된 것이다. 칼메를 보라.
로우스 주교는 이렇게 말한다. “요엘의 문체는 호세아의 문체와 크게 다르다. 그러나 종류가 다를 뿐 시적이기는 마찬가지다. 그것은 우아하고 명료하며 맑고 넉넉하며 유창하다. 동시에 매우 숭고하고 힘차며 생동한다. 그는 첫째 장과 둘째 장에서 시적 묘사의 온 역량을 펼쳐 보이며, 아울러 은유와 비유와 알레고리를 즐겨 쓰는 그의 취향도 드러낸다. 또한 그가 다루는 주제들의 연결은 그 표현의 아름다움에 못지않게 두드러진다. 어떤 곳에서는 그가 매우 모호하다는 것을 부인할 수 없으니, 주의 깊은 독자라면 누구나 이를 알아차릴 것이며 특히 이 예언의 끝부분에서 그러하다.” Prael. xxi. 또한 도드를 보라. 앞의 두 장은 견줄 데 없이 아름다우며, 그 언어는 힘에 있어서, 또 흔히 그 울림에 있어서 주제에 잘 들어맞는다. 요엘 1:1의 주석을 보라.
이 장과 다음 장의 첫머리는 이중 예언을 담고 있다. 그 일차적 의미에서는 그 땅을 삼키려고 오는 메뚜기 재앙에 적용되니, 이 재앙에는 혹독한 가뭄과 기근이 뒤따를 것이었다. 그리고 이차적 의미에서는 갈대아의 침입을 가리킨다. 두 의미를 다 인정해야 한다. 어떤 표현들은 곤충으로 말미암은 흉년에만 적용되고, 다른 표현들은 전쟁으로 말미암은 황폐에만 적용되기 때문이다. 그 둘을 엮어 짠 솜씨는 아름답고도 잘 운용되었다. 이 장에서는 모든 계층의 사람이 겪는 고통이 강렬하게 그려진다. 자연의 하나님께서 노하실 때에 자연의 얼굴이 시들 뿐 아니라(1~19절), 대담한 비유로써 들의 짐승들까지도 그 고통 가운데 하나님께 간구하며 사람의 우둔함을 책망하는 것으로 그려진다(요엘 1: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