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ohn Gill's Exposition of the Bible
John Gill · 1763
John Gill(1697-1771), Exposition of the Old and New Testament(1746-1763). Public domain. Retrieval mirror: biblehub.com/commentaries/gil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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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이런 일이 있었으니, 요단 저쪽 서편에 있던 아모리 사람의 모든 왕들이,…. 곧 이스라엘 사람들이 지금 있는 쪽이다. 이렇게 밝힌 것은 그들을 요단 저편 동쪽에 있던 다른 아모리 왕들, 곧 이미 이스라엘에게 정복된 시혼과 옥과 구별하기 위함이다. 시혼과 옥은 가나안의 아모리 사람들에게서 건너가 모압 땅의 일부를 차지한 한 무리였던 것으로 보인다. 여기서 이들은 언급되지 않은 그 땅의 여러 다른 민족을 대신하여 놓인 듯한데, 그 민족들도 분명 이들 못지않게 기가 꺾여 있었다. 이들이 특별히 언급된 것은 그들이 주요한 민족이요 매우 강력하고 호전적인 민족이었기 때문이다. Amos 2:9 을 보라.
또 바다 곁에 있던 가나안 사람의 모든 왕들이. 곧 지중해다. 칠십인역은 그들을 페니키아의 왕들이라 부른다. 엄밀하고 본래적인 의미의 페니키아는 그 연안에 있었고 그 안에 두로와 시돈 성읍이 있었다. 다만 가나안 온 땅이 때로 그렇게 불리기도 했다. 그렇지 않다면 이는 사해나 갈릴리 바다를 두고 한 말로 이해해야 한다. 그 가나안 사람들에 관하여는 Numbers 13:29 를 보라. 어쨌든 그 어느 쪽이든, 혹은 십중팔구 그렇듯 둘 다이든, 그들이
여호와께서 우리가 건너기까지 이스라엘 자손 앞에서 요단 물을 말리셨음을 듣고 그들의 마음이 녹았고.
또 이스라엘 자손으로 말미암아 그들에게 다시는 기력이 남아 있지 아니하였더라. 곧 그들은 용기를 다 잃고 다시는 회복하지 못했으니,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을 위하여 그토록 놀라운 일들을 행하셨으므로 자기들은 이제 끝났다고 결론지은 것이다. "우리"라는 말은 이 역사의 기록자가 요단을 건넌 사람이었음을 보여 주는데, 여호수아 자신 말고 누구를 상정할 수 있겠는가? 내가 보기에 이 정황은 그 견해를 강력하게 뒷받침한다.
그때에 여호와께서 여호수아에게 이르시되,…. 곧 백성이 요단을 건너 길갈에 진 치고 여호수아가 거기에 돌들을 세웠을 때다. 특히 가나안 주민들이 그들에 대한 두려움에 사로잡혀 용기를 다 잃었을 때이니, 다음에 명령되는 일을 시행하기에 알맞은 때였다. 그리고 하나님의 섭리 안에서 이 시점은 다른 여러 이유와 함께 특별히 그 일을 위하여 마련된 것으로 보인다.
너는 그들을 위하여 날카로운 칼들을 만들어. 여호수아가 몸소 그것을 만들어야 했다는 것이 아니라 만들도록 명하라는 것이니, 앞으로 쓰일 용도를 생각하면 상당한 수가 필요했을 것이다. 탈굼은 이를 예리한 면도칼이라 부르고, 벤 게르솜(Ben Gersom)은 그것이 놋으로 만들어졌다고 말하는데 그가 뜻한 바는 아마도 철이나 강철일 것이다. 그러나 히브리어 본문은 "바위의 칼" 곧 "부싯돌"이나 "돌"의 칼이다. 마이모니데스(p)도 그렇게 해석하며 여러 역본에서도 그렇게 옮긴다(q). 십보라도 그런 도구로 자기 아들에게 할례를 행했다. 신들의 어머니를 섬기는 제사장들을 거세하는 데 쓰던 "samia testa"(r)도 그런 것이었고, 오비디우스(s)의 "saxum acutum"도 그러하다. 아메리카 사람들은 짐승을 잡는 데 그런 것을 썼고, 애굽 사람들(t)은 시신을 절개하는 데 그것을 썼다. 탈무드 학자들도 그것을 합당한 것으로 인정하며, 동방의 유대인들은 오늘날까지 할례에 돌칼을 쓴다(u). Exodus 4:25에 대한 길(Gill)의 주석을 보라.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다시 두 번째로 할례를 행하라. 이는 이미 할례를 받은 자들에게 할례를 되풀이해야 한다는 뜻이 아니다. 곧 후대의 어떤 이들처럼 포피를 다시 끌어당겨 덮는 방법을 찾아낸 자들에게 다시 행하라는 뜻도 아니고, 아브라함에게 명해진 규례대로 온전히 할례받지 못한 자들에게 다시 행하라는 뜻도 아니다. 어떤 유대인 저술가들은 그 규례가 온전하지 않았다고 말하지만, 둘 다 여기 해당하는 경우가 아니다. 킴히(Kimchi)와 벤 멜렉(Ben Melech)은 이 말을 "여러 번", "자주", "잇달아"라는 뜻으로 해석한다. 마치 여호수아가 그들에게 할례를 행하거나 행해지도록 살피되 얼마는 이때에 얼마는 저때에 하여 전부가 끝나기까지 그리했다는 뜻인 것처럼 말이다. 그러나 그런 뜻이 아니라, 이는 이전에 있었던 전체적 할례를 가리킨다. 아브라함 시대에 처음 시행된 그 할례를 가리키는 것은 아니니, 그 이후로 할례의 사례가 무수히 많았기 때문이다. 오히려 이스라엘 사람들이 애굽에서 나올 무렵이나 나온 직후에 받은 할례를 가리킨다. 야르키(Jarchi)(w)에 따르면 그들이 애굽에서 나오던 밤에 첫 유월절을 먹기 전에 받았거나, 오히려 라이트풋(Lightfoot) 박사(x)가 생각하듯 애굽 사람들에게 임한 사흘 흑암 동안 어느 때에 받았거나, 그렇지 않으면 그들이 시내산 근처에 있을 때 거기서 유월절을 지키기 직전에 받았을 것이다. Numbers 9:1. 그때 이후로 할례는 소홀히 되어 왔다. 이는 그들이 광야에 있는 동안 다른 이들과 구별할 필요가 없어서가 아니었다. 구별은 할례의 주된 용도가 아니었고 적어도 유일한 용도는 아니었기 때문이다. 또 그들의 불순종과 원망과 반역 때문에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할례가 금지되었기 때문도 아니었다. 하나님이 그런 이유로 자기가 주신 계명의 준수를 금하셨으리라고 보기는 어렵기 때문이다. 또 할례를 범죄적으로 소홀히 했다거나 하물며 경멸했기 때문이라기보다는, 그들이 자주 이동했고 할례를 행하기에 형편이 마땅치 않았기 때문이다. 그들은 장막을 친 뒤에도 얼마나 머물지, 언제 옮길지를 늘 알 수 없었으니, 그것이 구름이 떠오르는 데 달려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적당한 기간 머무르리라는 확신이 없이는 할례를 시행하는 것이 안전하지 않았다. 그런데 이제 그것이 명령된 것은, 한편으로는 그들이 유월절을 지키려던 참이었고 유월절에 참여하는 모든 자에게 할례가 요구되었기 때문이며(Exodus 12:43), 다른 한편으로는 그들이 이제 가나안 땅에 들어왔는데 그 땅은 할례 언약으로 그들에게 주어진 것이기 때문이다(Genesis 17:8). 그러므로 이제 그것을 지키는 것이 그들에게 합당했다. 또 할례는 하늘 가나안에 들어가는 데 필요한 영적 할례의 모형이었고, 그들이 이제 함께 살게 될 할례받지 않은 가나안 사람들과 그들을 구별하는 표이기도 했다. 어떤 이들은 그들이 그 땅에 정착하기까지는 할례를 지킬 의무가 있다고 여기지 않았다고 보며, 이로써 그들이 오랫동안 할례를 소홀히 한 것을 설명한다.
(p) Moreh Nevochim, par. 1. c. 16. (q) , Sept. "cultros lapideos", V. L. "cultros petrarum", Munster, Montanus, Piscator. (r) Plin. Nat. Hist. l. 35. c. 12. Arnob. adv. Gentes, l. 5. p. 189. (s) Fast. l. 4. ver. 237. (t) Herod. Euterpe, sive, l. 2. c. 86. (u) Vid. Pfeiffer. Dubia Vexata, cent. 2. loc. 46. (w) So in Pirke Eliezer, c. 29. (x) Works, vol. 1. p. 40.
그리고 여호수아가 자기를 위하여 날카로운 칼들을 만들어 이스라엘 자손에게 할례를 행하니라,…. 여호수아가 몸소 칼을 만들지 않은 것처럼 몸소 그들에게 할례를 행한 것도 아니며, 그는 두 가지가 다 행해지도록 명하고 그것이 이루어지도록 살폈다. 또 솜씨가 있는 사람이면 누구나 칼을 만들 수 있었듯이 누구나 할례를 행할 수 있었다. 할례는 어떤 특정한 계층의 사람들에게, 곧 제사장과 레위 사람에게 국한되지 않았고 누구나 시행할 수 있었다. 그러므로 할례받아야 할 사람의 수가 많았어도 그 일은 곧 끝날 수 있었다. 그리고 이 일이 행해진 곳은
포피의 언덕에서였더라. 그곳이 이 일로 말미암아 후에 그렇게 불렸다. 유대인의 말에 따르면(y) 포피가 하나 위에 하나씩 쌓여 언덕을 이루었고 흙으로 덮였다고 한다. 여호수아가 행했거나 그의 명령으로 행해진 이 할례는, 여호수아의 원형(原型)이신 예수를 믿는 자들이 참여하는, 손으로 하지 아니한 영적 할례의 모형이었다.
(y) Pirke Eliezer, ut supra. (c. 29.) Jarchi in loc.
그리고 여호수아가 할례를 행한 까닭은 이러하니,…. 곧 이때에 이스라엘 자손에게 할례를 행하라고 그에게 주어진 명령의 이유이니, 다음과 같다.
애굽에서 나온 모든 백성 가운데 남자들 곧 모든 싸움에 나갈 자들이. 곧 스무 살 이상 된 자들을 말한다.
광야에서, 곧 길에서, 그들이 애굽에서 나온 후에 죽었는데. 곧 곧바로 죽은 것이 아니라 광야를 지나는 사십 년의 여정 동안 죽었다는 것이다. 이는 여호수아와 갈렙과 엘르아살 등을 예외로 두고 이해해야 한다. 다만 애굽에서 나올 때 스무 살 미만이었고 지금 살아 있는 사람은 많은 수였다.
이제 나온 백성은 모두 할례를 받은 자들이었으나,…. 애굽에서 나온 남자는 스무 살 미만이든 이상이든 다 할례를 받았다. 모두가 애굽에서 나오기 전에 할례를 받았을 가능성이 있는데, 이는 라이트풋(Lightfoot) 박사의 견해를 뒷받침한다. 곧 그들이 애굽 사람들에게 임한 사흘 밤 흑암 동안 할례를 받았으리라는 것이니, 그때에는 레위와 시므온이 세겜 사람들에게 그리했던 것처럼 애굽 사람들이 그 틈을 타 이용할 수 없었다. 이 견해는 그들이 애굽에서 나오던 밤에 할례를 받았다는 견해보다 더 개연성이 있어 보인다. 그 밤이었다면 많은 이가 여행하기에 부적합한 상태였을 것이기 때문이다. 또 이 견해는 그들이 시내산에서 할례를 받았다는 견해보다도 나아 보이니, 시내산은 그들이 애굽에서 나온 지 일 년 뒤의 일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들이 애굽에서 나온 후에 광야 길에서 난 모든 백성에게는 그들이 할례를 행하지 아니하였음이라. 그렇게 소홀히 한 이유에 대하여는 Joshua 5:2에 대한 길(Gill)의 주석을 보라. "길에서"라는 어구는 그 참된 이유를 가리키는 듯하며, 적어도 거기서 제시한 이유 곧 그들의 여정 때문이라는 이유를 뒷받침한다. 다시 말해 그들이 어느 곳에 머무는 기간이 불확실하고 불안정했기 때문이다. 유대인도 여정의 고생과 수고 때문에 이스라엘 사람들이 자기 자녀에게 할례를 행하지 않았다고 말한다(z). 이는 광야에서 태어난 남자에게만 해당하는 말로 이해해야 하니, 그들만이 할례의 대상이었기 때문이다.
(z) Pirke Eliezer, ut supra. (c. 29.)
이는 이스라엘 자손이 사십 년 동안 광야에서 걸었음이니,…. 며칠이 모자라나 어림수로 말한 것이다. 칠십인역처럼 사십이 년이 아니다.
애굽에서 나온 백성 곧 싸움에 나갈 만한 자들이
다 소멸되기까지 그리하였으니. 곧 여호수아와 갈렙을 제외하고 스무 살이 넘은 자들이 다 그러했다.
이는 그들이 여호와의 음성에 순종하지 아니하였음이라. 도리어 그들은 여호와를 거슬러, 또 그분의 종들을 거슬러, 특히 대제사장인 아론을 거슬러 원망했다. 그중에서도 주로 정탐꾼들의 보고 때문에, 또 그때 그들이 원망한 일 때문에 그러했으니, 이 일이 여호와의 진노를 크게 사서 그분이 그들의 시체가 다 소멸되리라고 경고하셨고 그대로 이루어졌다. 다음 어구가 이를 가리킨다.
여호와께서 그들에게 맹세하시기를, 여호와께서 그들의 조상에게 우리에게 주리라 맹세하신 땅, 곧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을 그들에게 보이지 아니하리라 하셨음이라. Numbers 14:23 을 보라.
그리고 그가 그들을 대신하여 일으키신 자녀들, 그들에게 여호수아가 할례를 행하였으니,…. 곧 광야에서 그들에게 태어나 그들을 뒤이은 자들이니, 그중에는 마흔 살에 가까운 이도 있었을 것이다. 그 이전에 태어난 자들로 말하면, 지금 살아 있는 이가 많이 있었을 텐데 그들은 이미 할례를 받았고 다른 이들은 받지 못했다.
그들이 할례를 받은 것은 길에서 그들에게 할례를 행하지 아니하였음이라. 곧 광야에서 사십 년을 여행하는 동안 행하지 않았다는 것이니, 앞서 살핀 대로 이것이 할례를 빠뜨린 참된 이유로 보인다.
여호수아 5장 서론
이스라엘 자손이 요단을 건넌 일로 가나안 사람들이 기가 꺾인다. Joshua 5:1. 여호수아는 이스라엘 백성 가운데 할례받지 않은 자들에게 할례를 행하라는 명을 받는다. Joshua 5:2. 이는 이제 지켜야 할 유월절을 그들이 먹게 하려는 것이었다. Joshua 5:10. 또 그들에게 이제 곡식이 넉넉히 공급되자 만나가 그쳤다. Joshua 5:11. 그리고 한 신적 인격이 사람의 모습으로 여호수아에게 나타나, 그 땅을 정복하는 일에서 특히 여리고에 관하여 그를 격려하고 무엇을 할지 지시한다. Joshua 5: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