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tthew Henry's Complete Commentary
Matthew Henry · 17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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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호수아 9장 1-2 Matthew Henry's Complete Commentary
¹ 요단 이쪽 산지와 골짜기와 레바논 맞은편 큰 바다 온 해변에 있는 모든 왕들, 곧 헷 사람과 아모리 사람과 가나안 사람과 브리스 사람과 히위 사람과 여부스 사람이 그 일을 듣고,
² 일제히 모여 여호수아와 이스라엘과 싸우려 하였다.
지금까지 가나안 사람들은 방어적으로 행동해 왔다. 여리고와 아이를 공격한 쪽은 이스라엘이었다. 그러나 여기서는 가나안 왕들이 이스라엘을 치려고 의논하고, 승리하며 전진하는 이스라엘의 무력을 저지하기 위하여 자신들의 연합군으로 힘찬 시도를 하도록 일을 협의한다. 이제, 1. 그들이 이것을 더 일찍 하지 않은 것은 이상한 일이었다. 그들은 오래전부터 이스라엘이 가까이 오고 있다는 소식을 들었다. 이스라엘이 가나안을 향해 품은 의도는 비밀이 아니었다. 일반적인 안전을 염려하는 신중함이 있었다면, 그들이 요단을 건너오는 것을 막고 그 나루를 지키거나, 그들이 건너오자마자 뜨겁게 맞이할 어떤 조치를 취했을 것이라고 예상할 만했다. 그들이 여리고의 포위를 풀려고 시도하지 않은 것도, 또는 적어도 아이 사람들이 이스라엘에게 한 차례 패배를 안겼을 때 그들과 합세하지 않은 것도 이상했다. 그러나 그들은 자만 때문이든 절망 때문이든 놀랄 만큼 미혹되어 어찌할 바를 몰랐다. 많은 사람은 자기 평안에 관한 일이 자기 눈에 감추어지기까지 그것을 알지 못한다. 2. 그들이 이제야 그렇게 한 것은 더욱 이상했다. 여리고 정복은 하나님의 능력에 대한 뚜렷한 증거를 주었고, 아이 정복은 이스라엘의 책략을 보여 주었다. 그렇다면 그들의 의논의 결론은 이스라엘과 싸우는 것이 아니라 그들과 화친하고, 자기들에게 가능한 최선의 조건을 얻어 내는 것이어야 했다고 생각할 수 있다. 이것이 그들의 지혜였을 것이다(눅 14:32). 그러나 그들의 마음은 눈멀었고, 그들의 심령은 그들 자신의 멸망을 향해 완고해졌다. 살펴보라. (1.) 무엇이 마침내 이제 그들로 하여금 이 의논을 시작하게 했는가. 그들이 “그 일을 들었을 때”(수 9:1), 곧 여리고와 아이의 정복 소식뿐 아니라 바로 앞에서 우리가 읽은 에발 산에서의 회중 집회 소식까지 들었을 때였다. 여호수아가 마치 이미 그 땅의 완전한 주인이 된 것처럼 모든 백성을 한데 모아, 그들이 따라 다스림을 받아야 할 율법을 읽어 주고 그 율법에 복종하겠다는 약속을 받아 냈다는 말을 들었을 때, 그들은 이스라엘 사람들이 진심으로 나아가고 있음을 깨닫고 자기들도 서둘러 움직여야 할 때라고 생각했다. 하나님의 백성의 경건한 헌신은 때때로 다른 어떤 것보다도 그들의 원수들을 더 자극하고 격분시킨다. (2.) 그들의 결의가 얼마나 일치했는가. 그들은 헷 사람, 아모리 사람, 브리스 사람 등 여러 민족의 많은 왕들이었고, 의심할 것 없이 이해관계도 달랐으며, 서로 자주 다투었을 것이다. 그런데도 그들은 nemine contradicente, 곧 이견 없이 만장일치로 이스라엘을 대적하여 연합하기로 결정했다. 오, 이스라엘이 가나안 사람들에게서 이것을 배워, 사사로운 이익을 공공의 복리를 위해 희생하고, 자기들 사이의 모든 적의를 내려놓아 사람들 가운데 있는 하나님 나라의 공동 원수들을 진심으로 대적하여 연합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겠는가!
여호수아 9장 3-14 Matthew Henry's Complete Commentary
³ 기브온 주민들이 여호수아가 여리고와 아이에 행한 일을 듣고,
⁴ 꾀를 내어 사신처럼 꾸미고, 낡은 자루를 나귀에 싣고 낡아 찢어져 기운 포도주 부대를 가지고,
⁵ 낡고 기운 신을 발에 신고 낡은 옷을 입었으며, 그들의 모든 양식의 떡은 마르고 곰팡이가 났다.
⁶ 그들이 길갈 진영에 있는 여호수아에게 나아와 그와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말하였다. “우리는 먼 나라에서 왔습니다. 그러므로 이제 우리와 조약을 맺어 주십시오.”
⁷ 이스라엘 사람들이 히위 사람들에게 말하였다. “혹시 너희가 우리 가운데 사는 자들이라면, 우리가 어떻게 너희와 조약을 맺을 수 있겠느냐?”
⁸ 그들이 여호수아에게 말하였다. “우리는 당신의 종들입니다.” 여호수아가 그들에게 말하였다. “너희는 누구이며 어디에서 왔느냐?”
⁹ 그들이 그에게 말하였다. “당신의 종들은 당신의 하나님 여호와의 이름 때문에 매우 먼 나라에서 왔습니다. 우리가 그의 명성과 그가 애굽에서 행하신 모든 일을 들었고,
¹⁰ 요단 건너편에 있던 아모리 사람의 두 왕, 곧 헤스본 왕 시혼과 아스다롯에 있던 바산 왕 옥에게 행하신 모든 일을 들었습니다.
¹¹ 그러므로 우리 장로들과 우리 나라의 모든 주민이 우리에게 말하기를, ‘여행할 양식을 가지고 그들을 만나러 가서, 우리는 당신들의 종입니다. 그러므로 이제 우리와 조약을 맺어 주십시오 하고 말하라’ 하였습니다.
¹² 우리가 당신들에게 오려고 떠나던 날, 이 떡은 우리 집에서 양식으로 뜨거운 채 가져온 것입니다. 그런데 이제 보십시오. 마르고 곰팡이가 났습니다.
¹³ 우리가 채웠던 이 포도주 부대들은 새것이었는데 보십시오, 찢어졌습니다. 또 우리의 이 옷과 신도 매우 긴 여행 때문에 낡아졌습니다.”
¹⁴ 사람들이 그들의 양식을 취하고 여호와의 입에서 나오는 조언을 구하지 않았다.
여기서, I. 기브온 사람들은 여리고의 멸망 소식을 듣고 두려워하여 이스라엘과 화친하기를 원한다(수 9:3). 다른 백성들은 그 소식을 듣고 자극을 받아 이스라엘과 전쟁하려 했지만, 기브온 사람들은 그 소식을 듣고 이스라엘과 화친하려는 마음을 갖게 되었다. 이처럼 복음 안에 나타난 하나님의 영광과 은혜의 드러남은 어떤 사람에게는 “생명으로부터 생명에 이르는 냄새”가 되지만, 다른 사람에게는 “사망으로부터 사망에 이르는 냄새”가 된다(고후 2:16). 같은 해가 밀랍은 부드럽게 하고 진흙은 단단하게 한다. 우리는 어디에서도 기브온 왕에 대해 읽은 기억이 없다. 그때 그들의 정부가 한 사람에게 집중되어 있었다면, 아마 그의 마음은 이스라엘에게 굴복하기에는 너무 교만했을 것이고, 다른 왕들과 함께 이스라엘을 대적했을 것이다. 그러나 이 네 연합 성읍(수 9:17에 언급됨)은 장로들이나 원로들(수 9:11)에 의해 다스려졌던 것으로 보이며, 그들은 자기 개인의 존엄보다 공동의 안전을 더 깊이 생각했다. 기브온 주민들은 자기들을 위해 잘한 것이다. 우리는 다음을 본다.
II. 그들이 그 목적을 이루기 위해 취한 방법. 그들은 가나안 땅의 모든 주민이 끊어져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아마 그들은 율법이 읽힐 때 에발의 회중 가운데 정탐꾼들을 두었고, 그 정탐꾼들은 이스라엘에게 주어진 명령(신 7:1-3), 곧 가나안 사람들에게 긍휼을 베풀지 말고 전투에서 항복 조건도 주지 말라는 명령을 살펴보고 알려 주었을 것이다. 그래서 그들은 이스라엘과 싸우기를 두려워했다. 또한 이스라엘이 그들과 언약을 맺지 말라는 명령도 받았다는 것을 알았으므로, 협상으로 어떤 유익을 얻을 희망도 잃었다. 그러므로 그들이 자기들을 변장시켜, 이스라엘이 전쟁하라는 명령을 받지 않았고 화친하는 것도 금지되지 않았으며, 오히려 특별히 화친을 제안하라고 명령받은(신 20:10,15) 매우 먼 나라에서 왔다고 여호수아가 믿게 만드는 것 외에는, 이스라엘의 칼에서 생명을 구할 길이 없었다. 그들이 이런 자격으로 받아들여질 수 없다면, 자기들에게는 오직 한 길, 곧 여리고와 아이의 운명을 따르는 길뿐임을 알았다. 이웃의 군주들이 “그 모든 사람이 강한 자들”임을 알았고(수 10:2), 그들 자신도 그것을 알았지만, 그들은 전능하신 하나님을 편으로 둔 이스라엘과 감히 맞서지 못했다. 그러므로 이것이 그들이 할 수 있는 유일한 수였고, 이제 그것을 보라.
1. 그들은 그것을 매우 교묘하고 성공적으로 실행했다. 어떤 일도 이보다 더 간교하게 처리된 적이 거의 없었다.
(1.) 그들은 외국 국가에서 온 사신의 자격으로 왔다. 그들은 그것이 이스라엘의 지도자들을 기쁘게 하고, 먼 나라들이 자기들을 찾아와 청한다는 영예에 그들을 우쭐하게 만들 것이라고 생각했다. 히스기야가 먼 나라에서 자기에게 온 사람들을 반긴 것을 우리는 본다(사 39:3). 그들은 이렇게 청함을 받는 일에 익숙하지 않았다.
(2.) 그들은 매우 긴 여행의 피로를 겪은 것처럼 꾸미고, 그것을 눈으로 확인할 수 있는 증거처럼 보이는 것들을 내놓았다. 그때에는 먼 여행을 떠나는 사람들이 오늘날 긴 항해를 떠날 때처럼 여러 종류의 양식을 직접 가지고 가는 것이 관례였던 것 같다. 당시의 나라는 오늘날처럼 여행자의 편의를 위한 숙박 시설이 마련되어 있지 않았기 때문이다. 우리가 그런 시설을 사용할 일이 있을 때에는 그 편의를 두고 크게 감사할 이유가 있다. 이제 그들은 자기들이 고향에서 가져올 때에는 양식이 신선하고 새것이었지만, 이제는 낡고 마른 것처럼 보인다고 꾸몄다. 그들이 지체하지 않고 최선을 다해 길을 서둘렀을 것이라고 추정할 수 있으므로, 여기서 그들이 말한 대로 매우 먼 나라에서 왔다고 결론 내리게 하려는 것이었다. 그들의 자루나 여행 가방은 낡았고, 포도주는 다 마셨으며 그것을 담았던 부대는 찢어졌고, 그들의 신과 옷은 사십 년을 지낸 이스라엘 사람들의 것보다 더 형편없었으며, 그들의 떡은 곰팡이가 났다(수 9:4,5, 다시 수 9:12,13). 이처럼 하나님의 이스라엘은 종종 오래되어 보이는 겉모양에 속고 기만당했다. 그러나 홀 감독의 표현처럼, 오류는 기운다고 해서 더 오래된 것이 되지 않는다. 오래되어 보일 뿐이다. 이런 기브온식 계략에 걸려드는 사람들은 하나님과 의논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드러낸다. 또 이와 같이 궁핍과 고난의 표식을 달고 스스로 가난한 자처럼 꾸미지만 실제로는 큰 부를 가진 사람들(잠 13:7), 적어도 구제를 필요로 하지 않는 사람들이 있다. 이런 속임수 때문에 자선은 잘못 배치되고, 참으로 그것을 받을 대상에게서 다른 곳으로 돌려진다.
(3.) 그들이 의심을 받고 어디에서 왔는지 더 엄격히 심문을 받았을 때, 그들은 계약이 확정될 때까지 자기 나라의 이름을 말하기를 부지런히 피했다. [1.] 이스라엘 사람들은 속임수를 의심했다(수 9:7). “혹시 너희가 우리 가운데 사는 자들이라면, 우리는 너희와 어떤 조약도 맺을 수 없고, 맺어서는 안 된다.” 이 말은 기브온 사람들로 하여금 더 이상 그 일을 밀어붙이지 못하게 낙심시킬 수도 있었다. 만일 그들이 “우리 가운데 사는 자들”이라면, 이스라엘이 이렇게 엄숙히 항의한 이상 화친을 맺더라도 그것을 지켜야 한다고 여기지 않을 것이라고 결론 내릴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버티면 전혀 희망이 없음을 알았으므로, 그들은 용감하게 굴복을 시도했다. “이스라엘 백성이 약속에 얽매였으니 우리를 살려 둘지도 누가 알겠는가. 결국 사실을 말하면 우리는 죽을 뿐이다.” [2.] 여호수아는 그들에게 질문했다. 너희는 누구이며 어디에서 왔느냐? 그는 드러난 무력뿐 아니라 은밀한 속임수에 대해서도 경계해야 한다는 것을 알았다. 우리의 영적 전쟁에서도 우리는 마귀가 우는 사자일 뿐 아니라 간교한 뱀이기도 함을 기억하며 마귀의 간계를 대적하여 서야 한다. 모든 관계와 우정의 언약에서 우리는 먼저 시험한 뒤 신뢰해야 한다. 서둘러 맺은 합의를 나중에 천천히 후회하지 않기 위해서다. [3.] 그들은 어디서 왔는지 말하려 하지 않았고, 같은 말만 되풀이했다. 우리는 매우 먼 나라에서 왔습니다(수 9:9). 그들은 여호수아가 알지도 못하고 들어 본 적도 없는 나라라고 생각하게 만들려 했다. 그래서 그 나라의 이름을 말해도 여호수아가 더 지혜로워지지 못할 것이라고 여긴 것이다.
(4.) 그들은 여호수아의 호의를 더 얻기 위해 이스라엘의 하나님을 존중한다고 고백했다. 그리고 우리는 사랑으로 그들이 이 고백에서 진실했으리라고 믿는다. “우리가 당신의 하나님 여호와의 이름 때문에 왔습니다(수 9:9). 우리가 그 이름에 대해 들은 것 때문에 왔고, 그 이름이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난 이름임을 확신했기 때문이며, 우리가 그 이름과 그 기억을 사모하고 그 보호 아래 들어가고 싶기 때문입니다.”
(5.) 그들은 모세 시대에 얼마 전에 일어난 일들, 곧 애굽의 재앙과 시혼과 옥의 멸망(수 9:9,10)에서 자기들의 동기를 끌어왔다. 그 소식은 이제쯤 먼 지역에도 쉽게 전해졌을 것이라고 생각할 수 있었다. 그러나 그들은 여리고와 아이의 멸망에 대해서는 지혜롭게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사실 그것이 참된 동기였지만(수 9:3), 그들은 그 정복들이 이루어지기 오래전에 고향을 떠난 것으로 보이게 하려 했기 때문이다. 우리가 이스라엘의 하나님께 복종해야 할 이유를 찾기 위해 오래 헤맬 필요는 없다. 원한다면 새 이유든 옛 이유든 얼마든지 찾을 수 있다.
(6.) 그들은 포괄적으로 복종을 표했다. 우리는 당신들의 종입니다. 그리고 겸손하게 포괄적인 협정을 구했다. 우리와 조약을 맺어 주십시오(수 9:11). 그들은 조건을 고집하지 않고, 어떤 조건으로든 평화를 얻는 것만으로 기뻐하려 했다. 또한 속임수가 드러날까 염려하여 지체할 수도 없는 형편이었다. 그들은 즉시 거래가 성사되기를 간절히 바랐다. 여호수아가 그들과 조약을 맺기만 하면 그들이 온 목적은 모두 이루어지는 것이었고, 그들은 자기들의 누더기 옷과 기운 신이 거절 사유가 되지 않기를 바랐다. 하나님과 이스라엘은 가난하다는 이유로 아무도 거절하지 않는다. 그러나,
2. 그들의 행위에는 선과 악이 섞여 있다. (1.) 그들의 거짓은 정당화될 수 없고, 본보기로 삼아서도 안 된다. 우리는 선이 오게 하려고 악을 행해서는 안 된다. 그들이 자기 나라를 인정하면서도 그 우상숭배를 버리고, 그 땅의 소유권을 이스라엘에게 넘기며 자신들을 이스라엘의 하나님께 맡겼다면, 하나님께서 신탁으로 여호수아에게 그들의 생명을 아끼라고 지시하셨으리라고 생각할 이유가 있다. 그들은 이런 꾸밈을 할 필요가 없었을 것이다. 주목할 만한 것은, 그들이 한 번 우리는 먼 나라에서 왔습니다(수 9:6)라고 말하자, 다시 그것을 말할 수밖에 없었고(수 9:9), 자기들의 떡과 부대와 옷에 대해 완전히 거짓된 말을 해야 했다는 점이다(수 9:12,13). 한 거짓말은 다른 거짓말로 들어가는 문이고, 그것은 또 세 번째 거짓말로 이어지며 계속 그렇게 된다. 그 죄의 길은 내리막길이다. 그러나 (2.) 그들의 믿음과 신중함은 크게 칭찬받을 만하다. 우리 주님은 불의한 청지기까지도 그가 자기 일을 지혜롭게 잘 처리했다고 칭찬하셨다(눅 16:8). 그들이 이스라엘에게 복종한 것은 이스라엘의 하나님께 복종한 것이며, 이는 그들이 섬기던 신을 버리고 참된 종교의 법에 자신을 맡기는 것을 뜻했다. 그들은 이스라엘의 하나님의 무한한 능력을 확신하기에 충분히 들었고, 거기서 그의 지혜와 선하심이라는 다른 완전성들도 추론할 수 있었다. 그러므로 무한한 지혜 앞에 조건 없이 항복하고, 무한히 선하신 하나님의 긍휼에 자신을 맡기는 것보다 우리가 자신을 위해 더 잘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이겠는가. 이 기브온 사람들의 복종은 더욱 칭찬받을 만했다. [1.] 그것은 특이했다. 그들의 이웃들은 다른 길을 택했고, 그들도 자기들과 합류하리라고 기대했다. [2.] 그것은 신속했다. 그들은 이스라엘이 자기 성읍들을 포위할 때까지 기다리지 않았다. 그때라면 항복 조건을 의논하기에는 너무 늦었을 것이다. 그들은 아직 이스라엘이 어느 정도 떨어져 있을 때 평화의 조건을 구했다. 심판을 피하는 길은 회개로 그것을 맞이하는 것이다. 우리도 이 기브온 사람들을 본받아 낮아짐과 경건한 슬픔과 죄 죽임의 누더기 속에서 하나님과 화평을 이루자. 그러면 우리의 죄악이 우리의 멸망이 되지 않을 것이다. 우리의 복되신 여호수아이신 예수의 종이 되고, 그와 하나님의 이스라엘과 언약을 맺자. 그러면 우리는 살 것이다.
여호수아 9장 15-21 Matthew Henry's Complete Commentary
¹⁵ 여호수아가 그들과 화친하여 그들을 살리기로 조약을 맺었고, 회중의 지도자들이 그들에게 맹세하였다.
¹⁶ 그들과 조약을 맺은 지 사흘 뒤에, 그들이 이웃 사람들이며 자기들 가운데 살고 있다는 말을 들었다.
¹⁷ 이스라엘 자손이 길을 떠나 사흘째 되는 날 그들의 성읍들에 이르렀다. 그들의 성읍은 기브온과 그비라와 브에롯과 기럇여아림이었다.
¹⁸ 그러나 회중의 지도자들이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로 그들에게 맹세했기 때문에 이스라엘 자손은 그들을 치지 않았다. 온 회중은 지도자들을 원망하였다.
¹⁹ 그러나 모든 지도자들이 온 회중에게 말하였다. “우리가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로 그들에게 맹세하였으니, 이제 우리는 그들을 건드릴 수 없다.
²⁰ 우리가 그들에게 이렇게 하자. 곧 그들을 살려 두자. 우리가 그들에게 맹세한 맹세 때문에 진노가 우리에게 임하지 않게 하려 함이다.”
²¹ 지도자들이 또 그들에게 말하였다. “그들을 살려 두라. 다만 지도자들이 그들에게 약속한 대로 그들이 온 회중을 위하여 나무를 패고 물을 긷는 자가 되게 하라.”
여기에는, I. 기브온 사람들과 곧 체결된 조약이 있다(수 9:15). 이 일은 매우 엄격한 형식을 갖추어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간단히 처리되었다. 1. 그들은 기브온 사람들을 살려 두기로 동의했고, 기브온 사람들은 그 이상을 구하지 않았다. 보통 전쟁이라면 이것은 허락하기에 작은 일에 불과했을 것이다. 그러나 전면적인 멸망을 이루어야 했던 가나안 전쟁에서, 가나안 사람에게 생명을 노략물로 받는 것은 큰 은혜였다(렘 45:5). 2. 이 협정은 여호수아 혼자만이 아니라 회중의 지도자들이 그와 함께 맺었다. 여호수아는 통치에 대한 특별한 부르심과 특별한 자격을 가지고 있었지만, 이런 성격의 일에서는 지도자들의 조언과 동의 없이 행동하려 하지 않았다. 그들은 어둠 속에 방치되거나 발밑에 눌린 사람들이 아니라, 그에게서 통치에 참여하는 동역자로 대우받았다. 3. 그것은 맹세로 확증되었다. 그들은 가나안의 어떤 신들의 이름이 아니라 오직 이스라엘의 하나님으로 그들에게 맹세했다(수 9:19). 정직하게 행하려는 사람들은 보증을 꺼리지 않고, 자기들과 협상하는 사람들을 만족시키며, 하나님을 자신들의 의도가 진실함의 증인으로 부름으로써 하나님께 영광을 돌린다. 4. 이 모든 일에서 책망받을 만한 것은 그것이 성급하게 이루어졌다는 것뿐이다. 그들은 그들의 양식을 취했고, 그 양식이 참으로 오래되고 마른 것임을 확인했다. 그러나 그것이 고향에서 신선한 채 가져왔다는 증거는 아니라는 점을 생각하지 않았다. 그래서 그들은 감각만 사용하고 이성은 사용하지 않은 채, 난외주가 읽듯이 그들의 양식 때문에 그 사람들을 받아들였다. 아마 그들은 그 떡을 보고 맛보면서 지금은 오래되었지만 처음에는 고운 좋은 떡이었음을 알아차렸고, 거기서 그들이 어느 정도 품격 있는 사람들이며 그들의 나라와의 우정을 경멸해서는 안 된다고 추론했을 것이다. 그러나 그들은 여호와의 입에서 조언을 구하지 않았다. 그들에게는 우림과 둠밈이 있었고, 이런 어려운 경우에 그것을 통해 조언을 구할 수 있었다. 그것은 그들에게 거짓말하지 않았을 것이며 어떤 오류로도 이끌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그들은 자기들의 정치적 판단을 너무 신뢰한 나머지 그 문제를 신탁에 가져갈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다. 여호수아 자신도 이 일에서 전혀 책임이 없지는 않았다. 유의하라. 어떤 일에서든 하나님을 모시고 가지 않고, 말씀과 기도로 그분께 묻기를 기다리지 않을 때, 우리는 빠른 듯하나 좋은 속도로 가는 것이 아니다. 우리는 종종 어떤 일이 잘못된 까닭이 여호와의 입에서 조언을 구하지 않았기 때문임을 후회하며 돌아보게 된다. 우리가 모든 길에서 그분을 인정한다면, 그 길들이 더 안전하고 쉽고 성공적임을 알게 될 것이다.
II. 이 조약을 얻어 낸 속임수가 곧 드러났다. 거짓된 혀는 잠시뿐이며, 진실은 시간이 낳는 딸이다. 사흘 안에 그들은 크게 놀랍게도, 이 사신들이 협상 대상으로 삼았던 성읍들이 자기들에게 매우 가까운 곳, 길갈 진영에서 하룻밤 걸음 거리밖에 되지 않는 곳에 있음을 알게 되었다(수 10:9). 그들 자신의 정탐꾼들이나 그 땅을 알아보려고 나간 부대들, 혹은 어쩌면 적진에서 그들에게 넘어온 탈영자들이 이 일의 진상을 알려 주었을 것이다. 사탄의 간계에 속도록 자신을 내버려 두는 사람들은 곧 수치 가운데 속임수에서 깨어나게 될 것이며, 자기가 아주 멀리 있다고 생각한 것이 사실은 가까이, 바로 문 앞에 있음을 알게 될 것이다.
III. 이에 대한 회중의 불쾌함이 있다. 그들은 이 조약이 그들에게 부과한 제한에는 실제로 복종하여 기브온 사람들의 성읍들을 치지 않았고, 사람들을 죽이지도 전리품을 취하지도 않았다. 그러나 이렇게 손이 묶인 것을 괴로워하여 지도자들을 원망했다(수 9:18). 그들 중 일부는 하나님의 명령이 이루어져야 한다는 열심을 가졌을 수도 있지만, 두려운 것은 그 원망이 하나님의 명령에 대한 열심보다 자기들의 이익에 대한 질투에서 더 많이 나온 것이라는 점이다. 많은 사람은 지도자들의 행동의 동기를 알지도 못하고, 그들을 움직이는 국가적 이유를 판단할 능력도 없으면서, 지도자들의 행동을 고발하고 비난하는 데 앞장선다. 그러므로 우리 위에 있는 사람들이 일반적으로 공공의 선 외에는 아무것도 목표로 삼지 않고, 자기 백성의 복지를 진실로 구한다는 점에 만족한다면, 우리는 그들이 하는 일을 가능한 한 선하게 해석해야 하며, 우리에게 너무 높은 일들에 스스로 관여하지 말아야 한다.
IV. 불만을 품은 회중을 진정시키고 문제를 조정하려는 지도자들의 신중한 노력이 있다. 여기에서 모든 지도자들은 뜻을 같이했고 만장일치였으며, 이것이 분명 백성으로 하여금 받아들이도록 이끌었을 것이다.
1. 그들은 기브온 사람들의 생명을 보존하기로 결정했다. 그들이 그렇게 하겠다고 명시적으로 맹세했기 때문이다(수 9:15). 곧 그들을 살려 두겠다는 것이다. (1.) 그 맹세는 합법적인 것이었다. 그렇지 않았다면 헤롯의 맹세가 그에게 세례 요한의 머리를 베도록 구속하지 못했던 것처럼, 그 맹세도 그들을 더 이상 구속하지 않았을 것이다.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모든 가나안 사람들을 멸하라고 정하신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그 법은 in favorem vitae, 곧 생명을 향한 어느 정도의 너그러운 고려를 두고 해석되어야 한다. 즉 그 법은 끝까지 버티고 자기들의 땅을 그들에게 넘겨주려 하지 않는 자들만을 뜻하는 것이지, 한 번도 그들을 향해 손을 든 적이 없고 앞으로도 들지 않을 자들, 어떤 극한 상황에 몰리기 전이나 어떤 적대 행위를 시도하기 전에 한마음으로 자신을 낮춘 자들을 죽이기 위해 명예와 인도주의의 감각까지 벗어 버리도록 그들을 묶는 것은 아니다. 이스라엘의 왕들은 그렇게 할 만큼 잔혹한 왕들이 아님이 분명했으며(왕상 20:31), 이스라엘의 하나님은 그것을 명하실 만큼 무자비한 하나님이 아니시다. Satis est prostrasse leoni, 곧 사자를 엎드리게 한 것으로 충분하다. 게다가 법의 이유가 곧 법이다. 그 법으로 막고자 한 해악은 그들의 우상숭배가 이스라엘 사람들을 감염시키는 것이었다(신 7:4). 그러나 기브온 사람들이 자기들의 우상숭배를 버리고 하나님의 집의 친구와 종이 된다면, 그 위험은 실질적으로 방지되고, 법의 이유가 사라지며, 따라서 특히 이런 성격의 일에 대한 그 의무도 사라진다. 죄인들의 회심은 그들의 멸망을 막을 것이다. (2.) 맹세가 합법적이었으므로, 지도자들과 그들이 대신하여 처리한 백성은 모두 그 맹세에 묶였다. 양심으로 묶였고, 그들이 그 이름으로 맹세한 이스라엘의 하나님께 대한 명예로 묶였다. 만일 그들이 이 맹세를 어겼다면, 그분의 이름은 가나안 사람들 가운데서 모독을 받았을 것이다. 그들이 “우리가 맹세한 맹세 때문에 진노가 우리에게 임하지 않게 하려고 그들을 살려 두자”(수 9:20)고 논증했을 때, 그들은 맹세를 두려워하는 사람들처럼 말했다(전 9:2). 약속을 맹세로 확증하는 사람은 자기 약속을 고의로 어길 경우 하나님의 보복을 스스로 불러들이는 것이며, 하나님의 공의가 그의 말을 그대로 받아들이리라고 예상할 이유가 있다. 하나님은 조롱당하지 않으시며, 그러므로 맹세도 농담거리로 삼아서는 안 된다. 지도자들은 자기들의 말을 지키려 했다. [1.] 그것으로 손해를 보더라도 그랬다. 시온의 시민은 자기에게 해로울지라도 맹세한 것을 바꾸지 않는다(시 15:4). 여호수아와 지도자들은 자신들이 이렇게 스스로를 묶은 것이 자기들에게 불리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을 때에도, 엘르아살에게 면제를 청하지 않았고, 더구나 이단자나 가나안 사람들에게는 신의를 지킬 필요가 없다고 주장하지도 않았다. 그들은 가장 거룩한 결속을 피하고 심지어 위증을 거룩하게 만들려는 로마 교회의 현대적 술책과는 무관한 사람들이었다. [2.] 백성이 불편해하고 그들의 불만이 폭동으로 끝날 수도 있었지만, 지도자들은 기브온 사람들과의 약속을 어기려 하지 않았다. 우리는 위엄 있는 자에게든 다수에게든 압도되어 죄를 짓고 양심을 거스르는 일을 해서는 결코 안 된다. [3.] 그들이 이 조약에 속임수로 끌려 들어갔고, 그것을 무효라고 선언할 매우 그럴듯한 구실을 가질 수도 있었지만, 그들은 그것을 지켰다. 그들은 “우리가 비준서를 교환한 사람들이 바로 이 사람들이기는 하지만, 이 성읍들은 조약에서 의도한 성읍들이 아니다. 우리는 이름도 알 수 없는 아주 먼 성읍들을 살려 주겠다고 약속했고, 그것이 멀리 있다는 명백한 고려 위에서 그렇게 했다. 그러나 이 성읍들은 매우 가까우므로 우리가 언약한 성읍들이 아니다”라고 변명할 수 있었다. 그리고 많은 학자들은 기브온 사람들이 그들을 너무 심하게 속였으므로 약속을 철회하는 것이 합법적이었을 것이라고 생각해 왔다. 그러나 그들은 자기 명성을 보존하고 이스라엘 가운데 맹세에 대한 존중을 유지하기 위해 그것을 지키려 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그들이 스스로 그것에 불가피하게 묶였다고 생각했고, 그것을 어기면 하나님의 진노가 자기들에게 내릴까 두려워했다는 사실이다. 그들이 그것을 지킨 것이 회중에게는 불쾌했을지라도, 하나님께는 받아들여졌음이 분명하다. 이 조약에 따라 그들이 기브온 사람들을 보호하러 나섰을 때, 하나님께서 그들의 모든 전쟁 가운데 가장 영광스러운 승리를 주셨기 때문이다(수 10:1-43). 또 오랜 뒤에 사울이 이 조약을 어기고 기브온 사람들에게 행한 잘못을 하나님께서 엄하게 갚으셨다(삼하 21:1). 이것이 우리 모두로 하여금 우리의 약속을 얼마나 경건하게 이행하고 우리의 계약을 얼마나 성실히 지켜야 하는지를 확신하게 하라. 또한 한번 말이 주어졌을 때 우리의 말에 대해 얼마나 양심을 가져야 하는지도 깨닫게 하라. 그렇게 많은 거짓과 속임수로 얻어진 언약도 깨뜨릴 수 없었다면, 가능한 모든 정직과 공정함으로 맺어진 언약들의 의무를 우리가 피할 수 있다고 생각하겠는가? 다른 사람의 속임수가 우리의 거짓을 정당화하거나 변명하지 못한다면, 우리와 거래하는 다른 사람의 정직은 그들과 거래하는 우리의 부정직을 분명히 더 무겁게 하고 정죄할 것이다.
2. 그들은 그들의 생명은 아꼈지만 자유는 빼앗아, 그들을 회중을 위하여 나무를 패고 물을 긷는 자로 선고했다(수 9:21). 이 제안으로 불만을 품은 회중은 진정되었다. (1.) 기브온 사람들이 살아 있는 것에 분노한 사람들은, 그들이 일반적인 생각으로는 죽음보다 더 나쁜 것, 곧 영구한 종살이에 처해진 것을 보고 만족할 수 있었다. (2.) 그들이 노략당하지 않은 것에 분노한 사람들은, 그들이 회중을 섬기는 것이 그들의 가장 좋은 재물보다 공공의 유익에 더 클 것임을 보고 만족할 수 있었다. 요컨대 이스라엘은 기브온 사람들과의 이 평화로 명예나 이익에서 손해 보는 자들이 되지 않을 것이다. 그들에게 이것을 납득시키면 그들은 만족할 것이다.
²² 여호수아가 그들을 불러 말하였다. “너희가 우리 가운데 살면서도 ‘우리는 너희에게서 매우 멀리 있다’고 말하여 어찌하여 우리를 속였느냐?
²³ 그러므로 이제 너희는 저주를 받았다. 너희 가운데 종의 신분에서 벗어날 자가 없을 것이며, 내 하나님의 집을 위하여 나무를 패고 물을 긷는 자가 될 것이다.”
²⁴ 그들이 여호수아에게 대답하여 말하였다. “당신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그의 종 모세에게 명하여 이 온 땅을 당신들에게 주고, 그 땅의 모든 주민을 당신들 앞에서 멸하라 하셨다는 일이 당신의 종들에게 분명히 전해졌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당신들 때문에 우리의 목숨을 심히 두려워하여 이 일을 행했습니다.
²⁵ 이제 보십시오. 우리는 당신의 손 안에 있습니다. 당신이 보기에 선하고 옳은 대로 우리에게 행하십시오.”
²⁶ 여호수아가 그들에게 그렇게 행하여 그들을 이스라엘 자손의 손에서 건져 내어 죽임을 당하지 않게 하였다.
²⁷ 그날 여호수아가 그들을 회중과 여호와의 제단을 위하여, 여호와께서 택하실 곳에서 나무를 패고 물을 긷는 자로 삼았으니, 오늘날까지 이르렀다.
여기서 여호수아와 기브온 사람들 사이의 문제가 정리되고, 맺어진 조약의 의미가 설명된다. 이제는 처음 보냈던 사신들이 아니라 기브온과 그에 속한 성읍들의 장로들이 직접 와서 협상했을 것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이는 그 일이 충분히 타협되도록 하기 위함이었다.
I. 여호수아는 그들의 속임수를 책망한다(수 9:22). 그리고 그들은 할 수 있는 한 그것을 변명한다(수 9:24). 1. 여호수아는 매우 온유하게 책망한다. 너희가 어찌하여 우리를 속였느냐? 그는 그들에게 어떤 나쁜 이름을 덧씌우지 않고, 거칠고 자극적인 말을 하지도 않으며, 그들이 마땅히 불렸을 법한 천한 거짓말쟁이들이라고 부르지도 않는다. 다만 *왜 우리를 속였느냐?*고 묻는다. 가장 큰 도발 아래서도 우리의 지혜와 의무는 성품을 지키고 격정을 제어하는 것이다. 정당한 명분은 그것을 변호하기 위해 분노를 필요로 하지 않으며, 나쁜 명분은 분노로 조금도 나아지지 않는다. 2. 그들은 그 일이 감당할 수 있는 최선의 변명을 한다(수 9:24). 그들은 하나님의 말씀으로 자기들에게 사형 선고가 내려졌음을 알았다. 명령은 예외 없이 그 땅의 모든 주민을 멸하라는 것이었다. 또 이미 행해진 하나님의 일들을 통해, 이 선고의 집행을 막을 수 없음을 알았다. 그들은 하나님의 주권은 다툴 수 없고, 그의 공의는 굽힐 수 없으며, 그의 능력은 저항할 수 없다고 생각했다. 그러므로 그의 긍휼이 어떠한지 시험해 보기로 결심했고, 그 긍휼에 자신을 던지는 것이 헛되지 않음을 알았다. 그들은 자기들의 거짓을 정당화하려 들지 않고, 사실상 그것에 대해 용서를 구한다. 오직 자기 목숨을 구하기 위해 그렇게 했다고 호소하는 것이다. 자기 안에서 자기 보존의 법칙이 얼마나 강한지를 아는 모든 사람은, 특별히 이런 경우에는 그것을 크게 참작할 것이다. 여기서의 두려움은 단지 사람의 능력에 대한 두려움만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만일 그것뿐이었다면 사람은 거기서 하나님의 보호로 도망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들이 본 것은 하나님 자신의 능력이 자기들을 대적하여 역사하고 있다는 두려움이었다.
II. 여호수아는 그들의 속임수에 대한 벌로 그들을 종살이에 처한다(수 9:23). 그들은 그 판결에 복종한다(수 9:25). 겉으로 보기에는 양편이 모두 만족한 듯하다.
1. 여호수아는 그들이 영구한 종이 될 것이라고 선고한다. 그들은 거짓말로 자기들의 생명을 샀지만, 그것은 정당한 대가가 아니었다. 그러므로 그는 나무를 패고 물을 긷는 가장 천하고 수고로운 일에 계속 노동하는 것을 세와 조건으로 삼아 그들의 생명을 보유하게 한다. 이렇게 그들의 거짓은 벌을 받았다. 그들이 이스라엘에게 공정하고 솔직하게 대했다면, 아마 더 명예로운 조건을 허락받았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제 그들은 종살이의 표식인 누더기 옷과 기운 신으로 생명을 얻었으므로, 영원히 그런 것을 입어야 하는 것으로 정죄된다. 그것이 그들의 운명이어야 했다. 또 이렇게 그들의 생명의 속전이 지불된다. 긍휼에 달려 있던 생명을 보존함으로 지배권이 획득된다(servus dicitur a servando, 곧 종은 “구원하다”라는 행위에서 그렇게 불린다). 그들은 자기들의 생명을 빚진 자들에게 자기들의 섬김을 빚졌다. 그들에게 내려진 판결이 어떠한지 살펴보라. (1.) 그들의 종살이는 그들에게 저주가 된다. “이제 너희는 너희가 그 후손인 가나안의 옛 저주로 저주를 받았다. 종들의 종이 될 것이다”(창 9:25). 거짓된 혀에게 무엇을 해야 하겠는가? 그것은 저주를 받을 것이다. (2.) 그러나 이 저주는 복으로 바뀐다. 그들은 종이 되어야 하지만, 그것은 내 하나님의 집을 위한 종살이가 될 것이다. 지도자들은 그들을 온 회중에게 종으로 삼으려 했다(수 9:21). 적어도 불만을 품은 백성을 진정시키기 위해 그렇게 표현하기를 택했다. 그러나 여호수아는 하나님께 영예를 돌리고 기브온 사람들에게 호의를 베풀어 그 판결을 완화한다. 그들을 모든 사람의 막일꾼으로 만드는 것은 그들에게 너무 가혹한 일이었을 것이다. 만일 그들이 왕의 성읍 시민들이며 모두 강한 사람들(수 10:2)인 자들에게 더할 수 없는 모욕인 나무를 패고 물을 긷는 자가 되어야 한다면, 그들은 또한 그보다 더 큰 승진이 있을 수 없는 내 하나님의 집을 위해 그렇게 될 것이다. 다윗 자신도 그곳의 문지기가 되기를 바랄 수 있었다. 종의 일도 우리 하나님의 집과 그 직무들을 위해 행해질 때에는 존귀하게 된다. [1.] 그들은 이로써 참 이스라엘로 태어난 자들의 자유와 특권에서 제외되었고, 그들의 후손에게는 모든 세대에 걸쳐 구별의 표가 남겨졌다. [2.] 그들은 이로써 하나님께서 택하실 곳에 있는 하나님의 제단에서 직접 섬겨야 하는 일들에 고용되었다(수 9:27). 이것은 그들을 하나님의 율법을 아는 데로 이끌고, 그들이 개종해 들어온 그 거룩한 종교에 엄격히 붙들어 두며, 조상들의 우상숭배로 돌아가는 것을 막아 줄 것이다. [3.] 이렇게 많은 사람들, 그것도 강한 사람들을 항상 곁에 두고, 직무상 성막의 모든 힘든 일을 하게 하는 것은 제사장들과 레위 사람들에게 큰 유익이 되었을 것이다. 하나님의 집에는 제단 위의 불을 계속 타오르게 할 뿐 아니라 화목제물의 고기를 삶는 등의 일을 위해 많은 나무가 필요했다. 또한 율법이 규정한 여러 씻음을 위해 많은 물을 길어야 했다. 그릇을 씻고, 재를 치우고, 뜰을 쓸어 내는 일 등 이와 같은 종의 일들은 본래 레위 사람들이 직접 해야 했을 일이었으나, 이 기브온 사람들이 하도록 지정되었다. [4.] 그들은 이 일에서 회중에게도 종이었다. 하나님의 예배를 촉진하고 도와주는 것은 무엇이든 공동체에 대한 참된 봉사이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제단이 잘 섬김을 받는 것은 모든 이스라엘 사람의 이익이다. 또한 이로써 회중은 그렇지 않았다면 그들 중 일부에게 요구되었을 수도 있는 많은 종의 일에서 면제되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사람들이 결코 자기 형제들을 종으로 삼지 말라는 법을 주셨다. 그들에게 종이 있다면, 그것은 그들 주변의 이방인들 가운데서 얻어야 했다(레 25:44). 이제 이 법과 그 법으로 존귀하게 된 이스라엘을 존중하여, 하나님은 그 힘든 일, 성막 자체의 일이라 할지라도, 이스라엘 사람이 아니라 기브온 사람들이 하게 하셨다. 그들은 후에 느디님이라 불렸는데, 이는 레위 사람들이 제사장들에게 주어진 것처럼(민 3:9), 레위 사람들에게 주어진 사람들로서 하나님의 섬김에서 그들을 돕는 자들이었다. [5.] 이것은 이방인들이 복음 교회에 들어오게 되는 것을 예표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이제 그들은 복종을 통해 하급 직분자로 받아들여졌지만, 후에는 하나님께서 그들 중에서 제사장과 레위인을 택하실 것이라고 약속하신다(사 66:21).
2. 그들은 이 조건에 복종한다(수 9:25). 이스라엘 사람들을 속이려고 거짓말을 꾸민 잘못을 의식하고, 또한 자기들이 얼마나 간신히 생명을 건졌으며 그 생명을 보존받은 것이 얼마나 큰 호의인지 깨달았기 때문에, 그들은 그 제안에 순응한다. 당신 보기에 옳은 대로 행하십시오. 종살이, 특별히 이런 종살이로 사는 것이 전혀 살지 못하는 것보다 낫다. 가장 낮고 멸시받는 처지에 있는 사람들은 나무를 패고 물을 긷는 자로 묘사된다(신 29:11). 그러나 “가죽으로 가죽을 바꾸듯이,” 자유와 노동과 사람이 가진 모든 것을 자기 생명을 위해 내놓는 것은 나쁜 거래가 아니다. 그에 따라 그 일이 결정되었다. (1.) 여호수아는 그들이 죽임을 당하지 않도록 그들을 이스라엘 사람들의 손에서 건져 냈다(수 9:26). 여호수아가 자기 권위로 개입하지 않았다면 그들에게 칼을 들고 달려들 사람들이 있었던 것 같다. 그러나 지혜로운 장군은 칼을 뽑을 때뿐 아니라 칼을 집어넣을 때도 안다. (2.) 그런 다음 그는 그들을 다시 이스라엘 사람들의 손에 넘겨 종이 되게 했다(수 9:27). 그들은 자기 성읍들의 소유권을 계속 지킬 수 없었다. 이후에 그 성읍들 중 셋은 베냐민의 몫으로, 하나는 유다의 몫으로 떨어졌음을 우리는 본다. 또한 그들 자신도 자기 마음대로 처신할 수 없었다. 패트릭 주교의 생각처럼, 그들은 제사장들과 레위 사람들의 성읍들에 흩어져 살며, 그들의 반열을 따라 올라와 제단에서 섬겼고, 아마 그 제단의 소득에서 생계를 유지했을 것이다. 이렇게 이스라엘의 종들은 주님의 자유인이 되었다. 가장 낮은 직무에서 그분을 섬기는 것도 자유이며, 그분의 일은 그 자체가 삯이기 때문이다. 이것을 그들은 일찍 복종함으로 얻었다. 우리도 이와 같이 우리 주 예수께 복종하고 우리의 생명을 그분께 맡기며 말하자. “우리는 주님의 손 안에 있습니다. 주께서 보시기에 선하고 옳은 대로 우리에게 행하소서. 다만 우리 영혼을 구원하소서. 그러면 우리는 그것을 후회하지 않겠습니다.” 그분이 우리에게 그의 십자가를 지고 그의 멍에를 끌며 그의 제단에서 섬기도록 정하신다면, 하나님의 섬김에서 가장 낮은 직무도 우리에게 평생 여호와의 집에 거하는 권리를 줄 것이므로, 그것은 후에 우리에게 부끄러움도 슬픔도 되지 않을 것이다.
이 장에는 다음 내용이 있다. I. 가나안 왕들이 이스라엘을 대적하여 맺은 무례한 연합, 수 9:1,2. II. 기브온 주민들이 이스라엘과 맺은 정중한 연합, 1. 기브온 사람들이 먼 나라에서 온 것처럼 가장하여 교묘하게 제안하고 간청한 일, 수 9:3-13. 2. 여호수아와 이스라엘 사람들이 신중하지 못하게 그것을 받아들였고, 속임수가 드러났을 때 회중이 불쾌해한 일, 수 9:14-18. 3. 그들과 언약을 맺었기 때문에 그 기브온 사람들의 생명은 살려 주되, 그 언약이 정당하게 얻어진 것이 아니었기 때문에 그들의 자유는 빼앗음으로써 모든 편이 받아들일 수 있게 그 일을 조정한 일, 수 9:19-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