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tthew Henry's Complete Commentary
Matthew Henry · 1714
Matthew Henry 사후(1714) 공개 도메인. 디지털판 CC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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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tthew Henry · 1714
Matthew Henry 사후(1714) 공개 도메인. 디지털판 CC0-1.0.
Robert Jamieson, A. R. Fausset, David Brown · 1871
Commentary Critical and Explanatory on the Whole Bible (1871). CCEL expanded electronic edition states it is in the public domain.
Albert Barnes · 1834
Albert Barnes' Notes on Revelation Of St. John The Divine (New Testament, English original, public domain). Sourced from the Christian Classics Ethereal Library (CCEL). Public domain. Retrieval mirror: biblehub.com/commentaries/barnes.
Adam Clarke · 1831
Public domain English commentary by Adam Clarke, normalized from Wikisource book pages for scripture.how. Public domain. Retrieval mirror: biblehub.com/commentaries/clarke.
John Gill · 1763
John Gill(1697-1771), Exposition of the Old and New Testament(1746-1763). Public domain. Retrieval mirror: biblehub.com/commentaries/gill.
John Calvin · 1850
종교개혁 신학 원천 (영역본 PD, 대부분 — 전권 아님)
Matthew Poole · 1685
간결 절별 전권 개혁주의 주석
ed. H.D.M. Spence & Joseph S. Exell · 1890
전권 강해·설교·예화 풍부 (항목 대량)
Carl F. Keil, Franz Delitzsch · 1866
구약 학술 표준 — 히브리어·문헌비평·고대근동 배경
ed. Charles J. Ellicott · 1878
학술+가독 균형 전권 주석
Cambridge (다저자) · 1900
준전권 준학술 (권별 저자·연도 확인)
Marvin R. Vincent · 1887
신약 헬라어 단어 연구
A.T. Robertson · 1933
헬라어 시제·문법 해설 결정판 (KR PD / US 1931+ 권별)
ed. W. Robertson Nicoll (다저자) · 1910
헬라어 신약 학술 (권별 저자 PD 확인 필요)
Heinrich A.W. Meyer · 1880
신약 학술 정밀주해 (독일 — K&D 대응)
John Wesley · 1755
간결 실용 전권(NT 1755 / OT 1765) 웨슬리안
Joseph Benson · 1815
웨슬리안 전권 주석
Charles H. Spurgeon · 1885
시편 주석 고전 (설교 자료 풍부)
Alexander Maclaren · 1910
설교형 강해 명저 (전권, 절별 가공 필요)
B.W. Johnson · 1891
평이 절별 신약 해설 (일반신자·모바일)
Thomas Coke · 1803
감리교 전권 주석
John Trapp · 1660
청교도 전권 주석 — Henry/Gill 보완
Charles Hodge · 1860
프린스턴 조직신학 관점 신약 정밀 주석 (롬·고전후·엡)
Matthew 1:1. The book of the generation— The lineage of Jesus Christ, son of David, son of Abraham. Campbell. Commentators are divided with regard to this phrase; some supposing that it means, and should be rendered, the history of the life of Jesus Christ; and that it is a general preface to St. Matthew's Gospel; while others, and, I think, with greater probability, render it, An account of the lineage or genealogy, and conceive it merely as the introduction to the genealogy following. See the note on Genesis 5:1. As St. Matthew wrote for the Jews, he deduces the genealogy of Christ only from Abraham, and brings it down from him through David, to shew his title to the kingdom of Israel; while St. Luke, who wrote for the use of the Gentile converts, deduces the genealogy from Adam. See Genesis 22:18. Psalms 2 : But concerning these genealogies, and the variations in them, we will speak when we come to St. Luke, Luke 3:23. St. Matthew gives to Jesus the name of Christ, which signifies anointed, and marks out the royal, sacerdotal, and prophetical offices; answering to the name of Messiah, by which the Redeemer was always known and spoken of by the Jews. One right way of estimating things, says Dr. Heylin, (in nearly these words,) is by our want of them. If we look into ourselves, we shall find a want of Christ in all his offices; for, before some considerable proficiency is made in religion through the grace of God, men are at a distance from God, alienated from him, and incapacitated for that free access to the Creator, which, it should seem, an intelligent being might naturally hope for. Hence we want a mediator, an intercessor; in a word, a Christ, in his priestly functions. This regards our situation with respect to God. With respect to ourselves, we find a total darkness, blindness, ignorance of God, and the things of God: here we want a Christ in his prophetic office, to enlighten our minds, and teach us the whole will of God. We also find within us a strong misrule of appetites and passions, and discordant interests, blindly espoused: for these we want a Christ, in his regal office, to govern our hearts, and establish his kingdom within us. Calmet observes, that as the Jewish converts, for whom this Gospel was principally written, had no doubt of the Divinity of the Messiah, St. Matthew did not judge it necessary to dwell here upon that subject. He contents himself with giving an account of his incarnation and birth, of a virgin; not that these truths were disputed by the faithful, but because they had been gain-said by the credulous and hardened Jews. St. John, on the contrary, who wrote among the Gentiles, applied himself to set forth and make known the Divinity of the Saviour; for this was the point to which they made the strongest objection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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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book of the generation of Jesus Christ, the son of David, the son of Abraham.
The Book — That is, a roll or register, catalogue or calendar, a ciphering and summing up. (Genesis 5:1 , æç ñôø úåìãú αυτη η βιβλος γενεξεως .)
Of the generations — That is, of the genealogies, as touching his humanity (St Matthew’s main drift), for touching on his divinity (St John’s chief scope and subject), "who can declare his generation?" Isaiah 53:8 ; "What is his name and what is his son’s name, if thou canst tell?"Proverbs 30:4; Proverbs 30:4 . He is without descent or pedigree, as Melchisedec, Hebrews 7:3 .
Of Jesus Christ — Jesus shows he was God (for "besides me there is no Saviour," Isaiah 45:21 ). Christ, that he was man, the anointed; for in respect of his manhood chiefly is this anointing with gifts and graces attributed to Christ. The name of Jesuits, therefore, savoureth of blasphemous arrogance. One of their own gives the reason; -becanse he hath communicated unto us the thing signified by the name Christ, but not by the name Jesus. Rem signatam nomine Christi nobis communicavit, non autem Iesu. Lindwood. And yet it is notoriously known (saith Dr Fulke, out of another of their own writers) that the most honourable name of Christians is in Italy and at Rome a name of reproach, and usually abused to signify a fool or a dolt. (Fulke in Rhem. Testara. on Acts xi., sect. 4, out of Christoph. Franch. Col. Jesuit. in fine. )
The Son of David — God’s darling, David, amatus vel amabilis. Unde Dido Poenis, Hinc Solomon dictus est Iedidiah. one that observed all his wills, Acts 13:22 , and faithfully served out his time, Acts 13:36 .
The son of Abraham — The friend of God and father of the faithful, reckoned here (for honour’s sake) as the next immediate father of Christ, whose day indeed he saw and rejoiced, John 8:56 ; ( ηγαλλιασατο ); he laughed, yea, leapt for joy of this man child to be born into the world. Whose children we are, so long as we walk in the steps of his faith; that Christ, being formed in us, may "see of the travail of his soul and be satisfied,"Isaiah 53:10-11; Isaiah 53:10-11 ; he may "see his seed, and prolong his days upon earth." Such honour have all his saints, Psalms 149: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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¹ 아브라함과 다윗의 자손 예수 그리스도의 세계라. ² 아브라함이 이삭을 낳고 이삭은 야곱을 낳고 야곱은 유다와 그의 형제들을 낳고, ³ 유다는 다말에게서 베레스와 세라를 낳고 베레스는 헤스론을 낳고 헤스론은 람을 낳고, ⁴ 람은 아미나답을 낳고 아미나답은 나손을 낳고 나손은 살몬을 낳고, ⁵ 살몬은 라합에게서 보아스를 낳고 보아스는 룻에게서 오벳을 낳고 오벳은 이새를 낳고, ⁶ 이새는 다윗 왕을 낳으니라. 다윗 왕은 우리야의 아내였던 여인에게서 솔로몬을 낳고, ⁷ 솔로몬은 르호보암을 낳고 르호보암은 아비야를 낳고 아비야는 아사를 낳고, ⁸ 아사는 여호사밧을 낳고 여호사밧은 요람을 낳고 요람은 웃시야를 낳고, ⁹ 웃시야는 요담을 낳고 요담은 아하스를 낳고 아하스는 히스기야를 낳고, ¹⁰ 히스기야는 므낫세를 낳고 므낫세는 아몬을 낳고 아몬은 요시야를 낳고, ¹¹ 바벨론으로 사로잡혀 갈 때에 요시야는 여고냐와 그의 형제들을 낳으니라. ¹² 바벨론으로 사로잡혀 간 후에 여고냐는 스알디엘을 낳고 스알디엘은 스룹바벨을 낳고, ¹³ 스룹바벨은 아비훗을 낳고 아비훗은 엘리아김을 낳고 엘리아김은 아소르를 낳고, ¹⁴ 아소르는 사독을 낳고 사독은 아킴을 낳고 아킴은 엘리웃을 낳고, ¹⁵ 엘리웃은 엘르아살을 낳고 엘르아살은 맛단을 낳고 맛단은 야곱을 낳고, ¹⁶ 야곱은 마리아의 남편 요셉을 낳았으니 마리아에게서 그리스도라 칭하는 예수가 나시니라. ¹⁷ 그런즉 모든 대 수가 아브라함부터 다윗까지 열네 대요, 다윗부터 바벨론으로 사로잡혀 갈 때까지 열네 대요, 바벨론으로 사로잡혀 간 후부터 그리스도까지 열네 대더라.
우리 구주의 이 족보에 관하여 다음과 같은 점들을 살펴보자.
I. 그 표제. 이것은 책(또는 히브리어 세페르[sepher], 곧 책이라는 단어가 때때로 의미하듯이 기록)이니, 곧 육신을 따른 그의 조상들에 관한 예수 그리스도의 세계의 책이다. 다시 말해, 이는 그의 탄생에 관한 기록이다. 이것은 비블로스 게네세오스(Biblos Geneseos)—곧 세계(창세)의 책이다. 구약은 세상의 창조(세계)의 책으로 시작하며, 그렇게 시작한다는 것이 구약의 영광이다. 그러나 신약은 이 점에서 더 뛰어난 영광을 지니니, 곧 세상을 지으신 분의 세계의 책으로 시작한다는 것이다. 하나님으로서 그의 근본은 상고에, 영원에 있었으나(미 5:2), 아무도 그 세대(나심)를 능히 말할 수 없다. 그러나 사람으로서 그는 때가 차매 보내심을 받아 여자에게서 나셨으니, 여기에 선포된 것이 바로 그 세계(나심)이다.
II. 그 주된 의도. 이것은 끝없거나 쓸데없는 족보가 아니며, 위대한 인물들의 족보가 흔히 그러하듯 헛된 자랑을 위한 것도 아니다. 스템마타, 퀴드 파키운트?(Stemmata, quid faciunt?)—고대의 혈통이 무슨 소용이 있는가? 이 족보는 권리를 증명하고 청구를 입증하기 위해 증거로 제시되는 혈통서와 같다. 그 목적은 우리 주 예수께서 다윗의 자손이요 아브라함의 자손이시며, 따라서 메시아가 나오기로 되어 있던 그 민족과 가문에서 나셨음을 증명하는 데 있다. 아브라함과 다윗은 당대에 메시아와 관련된 약속을 맡은 위대한 수탁자들이었다. 복의 약속은 아브라함과 그 후손에게 주어졌고, 통치의 약속은 다윗과 그 후손에게 주어졌다. 그러므로 땅의 모든 족속이 그로 말미암아 복을 받을 아브라함의 자손이신 그리스도 안에서 분깃을 얻고자 하는 자들은, 땅의 모든 족속을 다스릴 다윗의 자손이신 그분께 신실하고 충성된 백성이 되어야 한다. 그리스도께서 아브라함에게서 나오시리라는 것은 아브라함에게 약속되었고(창 12:3, 22:18), 다윗에게서 나오시리라는 것은 다윗에게 약속되었다(삼하 7:12, 시 89:3, 132:11). 그러므로 예수께서 다윗의 자손이요 아브라함의 자손이심을 증명할 수 없다면, 우리는 그분을 메시아로 인정할 수 없다. 이제 이것이 여기서 문장관(紋章官)의 관청에 보존된 진본 기록들로부터 증명된다. 유대인들은 자기 혈통을 보존하는 일에 매우 정확하였으니, 이는 아버지들로부터 이어지는 메시아의 혈통을 밝히기 위한 하나님의 섭리였다. 그리고 그분이 오신 이후로 그 민족이 너무나 흩어지고 혼란하여, 오늘날 세상의 어느 누가 자기가 아브라함의 자손임을 합법적으로 증명할 수 있을지조차 의문이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아무도 자기가 아론의 자손이나 다윗의 자손임을 증명할 수 없다는 사실이다. 따라서 제사장직과 왕직은 영원히 잃어버린 것으로 포기되든지, 아니면 우리 주 예수의 손에 맡겨지든지 해야 한다. 그리스도는 여기서 먼저 다윗의 자손이라 일컬어지시는데, 이는 그 칭호로 그분이 유대인들 사이에서 흔히 일컬어지고 기대되었기 때문이다. 그분을 그리스도로 인정한 자들은 그분을 다윗의 자손이라 불렀다(마 15:22, 20:31, 21:15). 그러므로 복음서 기자는 이와 같이, 그분이 단지 다윗의 자손일 뿐 아니라 그 정사를 어깨에 메기로 한 다윗의 자손이시며, 단지 아브라함의 자손일 뿐 아니라 많은 민족의 아버지가 되기로 한 아브라함의 자손이심을 밝히고자 한다.
그리스도를 다윗의 자손이요 아브라함의 자손이라 부름으로써, 그는 하나님께서 그 약속에 신실하시며 친히 하신 모든 말씀을 이루실 것을 보여 준다. 그리고 이는 다음과 같다. 1. 비록 그 성취가 오래 지연될지라도 그러하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세상의 큰 복이 될 아들을 약속하셨을 때, 아마도 그는 그것이 자기 직계 아들이리라 기대했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마흔두 대, 곧 약 2000년이나 떨어진 후손으로 드러났다. 하나님은 이토록 오래 전에 무엇이 이루어질지를 미리 말씀하실 수 있고, 또한 때로는 약속하신 것을 이토록 오랜 후에 이루신다. 주목하라. 약속된 자비가 지연되는 것은 우리의 인내를 연단할지언정 하나님의 약속을 약화시키지 않는다. 2. 비록 그 성취가 절망스럽게 보이기 시작할지라도 그러하다. 아버지 집의 영광이 되기로 한 이 다윗의 자손이요 아브라함의 자손은, 아브라함의 후손이 멸시받는 백성이 되어 최근 로마의 멍에 아래 조공을 바치게 되고 다윗의 집이 무명(無名) 가운데 묻혀 있을 때에 나셨다. 이는 그리스도께서 마른 땅에서 나온 줄기 같으셨기 때문이다. 주목하라. 하나님께서 그 약속을 성취하실 때는, 그것이 가장 일어날 법하지 않은 정황 가운데 놓여 있을 때이다.
III. 그 구체적인 계보. 이는 역대기 첫머리에 기록된 족보들을 따라(그 족보가 미치는 데까지) 아브라함으로부터 아래로 직계로 이어진다. 여기서 우리는 그 족보들의 쓰임새를 본다.
이 족보에서 우리가 살펴볼 만한 몇 가지 세부 사항이 있다.
1. 형제가 있었던 그리스도의 조상들 가운데, 그는 대체로 동생으로부터 나셨다. 아브라함 자신과 야곱, 유다, 다윗, 나단, 르사가 그러하였다. 이는 그리스도의 탁월하심이 지상의 군주들의 경우처럼 조상들의 장자권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라, 그 섭리의 방식을 따라 비천한 자를 높이시고 부족한 부분에 더욱 귀중함을 더하시는 하나님의 뜻에서 비롯되었음을 보여 주기 위함이다.
2. 야곱의 아들들 가운데, 실로가 나오기로 한 유다 외에도 그의 형제들이 여기 언급된다. 곧 유다와 그의 형제들이다. 아브라함의 아들 이스마엘이나 이삭의 아들 에서에 관해서는 언급이 없으니, 이는 그들이 교회에서 제외되었기 때문이다. 반면에 야곱의 모든 자녀는 받아들여졌으며, 비록 그들이 그리스도의 직접 조상은 아닐지라도 교회의 족장들이었으므로(행 7:8) 이 족보에 언급된다. 이는 흩어진 열두 지파를 격려하기 위함이니, 그들도 유다와 마찬가지로 그리스도 안에서 분깃을 가지며 그분과 관계 가운데 있음을 알려 주기 위함이다.
3. 유다의 쌍둥이 아들 베레스와 세라도 마찬가지로 둘 다 거명된다. 비록 베레스만이 그리스도의 조상이지만, 유다의 형제들이 언급된 것과 같은 이유에서이다. 또한 어떤 이들은 베레스와 세라의 출생에 무언가 알레고리적인 것이 담겨 있었기 때문이라고 본다. 세라가 장자처럼 먼저 손을 내밀었으나 그 손을 도로 들이매 베레스가 장자권을 얻었다. 유대 교회는 세라처럼 먼저 장자권을 향해 손을 뻗었으나 불신앙으로 그 손을 거두어들였고, 이방 교회는 베레스처럼 터져 나와 장자권을 가지고 갔다. 이와 같이 이방인의 충만한 수가 들어오기까지 이스라엘의 더러는 우둔하게 되었으니, 그 후에야 세라가 태어나리라—곧 온 이스라엘이 구원을 받으리라(롬 11:25, 26).
4. 이 족보에는 네 여인, 오직 네 여인만이 거명된다. 그중 둘은 본래 이스라엘 나라 밖의 이방인이었으니, 곧 가나안 여인이며 또한 기생이었던 라합과 모압 여인 룻이다. 이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는 헬라인이나 유대인이나 차별이 없으며, 외인이요 나그네였던 자들이 그리스도 안에서 성도와 함께 한 시민이 되도록 환영받기 때문이다. 다른 둘은 간음한 여인들이니, 곧 다말과 밧세바이다. 이는 우리 주 예수께 더해진 또 하나의 낮아지심의 표징이었으니, 곧 그가 그러한 자들에게서 나셨을 뿐 아니라, 그들에게서 나신 그의 혈통이 그의 족보에 특별히 기록되어 아무 가림막도 드리워지지 않았다는 점이다. 그는 죄 있는 육신의 모양을 입으셨고(롬 8:3), 큰 죄인이라 할지라도 그들이 회개할 때에 자기와 가장 가까운 관계 안으로 받아들이신다. 주목하라. 우리는 사람들을 그 조상들의 추문으로 책망해서는 안 된다. 그것은 그들이 어쩔 수 없는 일이며, 가장 선한 자들, 심지어 우리 주님 자신의 처지이기도 하였다. 다윗이 우리야의 아내였던 여인에게서 솔로몬을 낳은 것이 언급된 것은 (휘트비 박사[Dr. Whitby]의 말에 따르면), 회개한 다윗의 죄가 그에게 하신 약속을 막기는커녕, 하나님께서 바로 이 여인을 통하여 그 약속을 이루기를 기뻐하셨음을 보여 주기 위함이다.
5. 비록 여기 여러 왕이 거명되지만, 다윗 외에는 아무도 명시적으로 왕이라 일컬어지지 않는다(마 1:6). 다윗 왕이라 하니, 이는 왕권의 언약이 그와 더불어 맺어졌고 메시아 왕국의 약속이 그에게 주어졌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그분은 그 조상 다윗의 위를 물려받으신다고 일컬어진다(눅 1:32).
6. 유다 왕들의 혈통에서 요람과 웃시야 사이에(마 1:8) 셋이 빠져 있으니, 곧 아하시야, 요아스, 아마샤이다. 그러므로 요람이 웃시야를 낳았다고 할 때, 이는 히브리어 어법을 따라 웃시야가 그에게서 직계로 내려왔다는 뜻이다. 마치 히스기야에게 그가 낳을 아들들이 바벨론으로 사로잡혀 가리라고 한 것과 같으니, 실제로 그들은 그로부터 여러 대 떨어져 있었다. 이 셋이 빠진 것은 오류나 망각 때문이 아니라, 아마도 복음서 기자가 참고한 족보표에서 이미 빠져 있었던 것으로 보이며, 그 족보표는 그럼에도 진본으로 인정되었다. 어떤 이들은 이에 대해 다음과 같은 이유를 든다. 곧 기억하기 쉽도록 그리스도의 조상 수를 열넷씩 세 묶음으로 줄이는 것이 마태의 의도였으므로, 이 시기에 셋을 빼는 것이 마땅하였다. 그리고 저주받은 아달랴—아합의 우상 숭배를 다윗의 집에 끌어들인 자—의 직계 후손들보다 더 적합한 자들은 없었다. 이 일로 인하여 그 가문에 이러한 낙인이 찍혔고, 그 죄악이 삼사 대까지 이렇게 갚아졌다. 이 셋 중 둘은 배교자였으니, 하나님은 흔히 그러한 자들에게 이 세상에서 그 진노의 표를 두신다. 그리고 이 셋 모두 그 머리가 피와 함께 무덤으로 내려갔다.
7. 어떤 이들은 이 왕들의 계승에 선과 악이 어떻게 뒤섞여 있는지를 주목한다. 예컨대(마 1:7, 8), 악한 르호보암이 악한 아비야를 낳고, 악한 아비야가 선한 아사를 낳고, 선한 아사가 선한 여호사밧을 낳고, 선한 여호사밧이 악한 요람을 낳았다. 은혜는 혈통을 따라 흐르지 않으며, 지배하는 죄 또한 그러하다. 하나님의 은혜는 그분 자신의 것이니, 그분은 기뻐하시는 대로 그것을 주시거나 거두신다.
8. 바벨론 포로는 이 계보에서 주목할 만한 한 시기로 언급된다(마 1:11, 12). 모든 것을 고려할 때, 다른 민족들이 그러하였듯이 유대인이 그 포로 가운데 사라지지 않은 것은 놀라운 일이었다. 그러나 이는 그 민족의 줄기가 그 사해(死海)를 통과하면서도 순수하게 흐르도록 지켜진 까닭을 알려 준다. 곧 육신을 따라서는 그들에게서 그리스도가 나시기로 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상하게 하지 말라 그 가운데 복이 있느니라—곧 복 중의 복이신 그리스도 자신이 그 안에 계셨다(사 65:8, 9). 그들이 회복된 것은 그분을 바라봄에서였으며, 황폐해진 성소가 주를 위하여 은혜로운 눈길로 돌아보아진 것도 그러하였다(단 9:17).
9. 요시야가 여고냐와 그의 형제들을 낳았다고 한다(마 1:11). 여기서 여고냐는 요시야의 장자인 여호야김을 가리킨다. 그러나 여고냐가 스알디엘을 낳았다고 할 때(마 1:12), 그 여고냐는 바벨론으로 사로잡혀 간 저 여호야김의 아들로서 거기서 스알디엘을 낳은 자이다(휘트비 박사가 밝히는 바와 같이). 그리고 여고냐가 자식이 없을 것이라고 기록된 것은(렘 22:30) 이렇게 설명된다. 곧 그의 자손 중 형통한 자가 하나도 없으리라는 뜻이다. 여기서 스알디엘이 스룹바벨을 낳았다고 하지만, 실제로는 스알디엘이 브다야를 낳고 그가 스룹바벨을 낳았다(대상 3:19). 그러나 앞에서와 같이 손자가 흔히 아들이라 일컬어지니, 브다야는 아마도 그 아버지의 생전에 죽었을 것이고, 그리하여 그의 아들 스룹바벨이 스알디엘의 아들이라 일컬어진 것이다.
10. 이 계보는 우리 주님의 어머니 마리아까지가 아니라 마리아의 남편 요셉까지 내려온다(마 1:16). 이는 유대인이 항상 남자 계통으로 족보를 셈하였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마리아는 요셉과 같은 지파와 가문 출신이었으므로, 그분은 어머니로 보나 명목상의 아버지로 보나 다윗의 집안에 속하셨다. 그러나 그 존귀에 대한 그분의 권리는 요셉을 통하여 이어지니, 정작 육신을 따라서는 그분이 요셉과 실제 혈연 관계가 없었다. 이는 메시아의 왕국이 다윗으로부터의 자연적 혈통에 기초한 것이 아님을 보여 준다.
11. 이 모든 계보가 만나는 중심점은 그리스도라 칭하는 예수이시다(마 1:16). 이분이야말로 그토록 간절히 사모하고 그토록 애타게 기다린 분이시며, 족장들이 그토록 자녀를 갈망했던 것도—그리하여 그 거룩한 혈통에 들어오는 영예를 얻고자 했던 것도—이분을 바라봄에서였다. 하나님께 감사할지어다. 우리는 이제 그때 그들이 처했던 것과 같은 어둡고 흐릿한 기대의 상태에 있지 않고, 그 선지자들과 왕들이 거울로 보는 것같이 희미하게 보았던 것을 분명하게 본다. 그리고 우리는, 그것이 우리 자신의 잘못이 아니라면, 그들이 그토록 사모하던 것보다 더 큰 영예를 누릴 수 있다. 이는 하나님의 뜻대로 행하는 자들이 육신을 따라 그분과 친족이었던 자들보다 그리스도와 더 존귀한 관계 가운데 있기 때문이다(마 12:50). 예수는 그리스도라 일컬어지니, 곧 기름 부음 받은 자라는 뜻이며, 이는 히브리어 이름 메시아와 같다. 그분은 메시아 곧 왕이라 일컬어지며(단 9:25), 또 자주 하나님의 기름 부음 받은 자라 일컬어진다(시 2:2). 그분은 이 칭호 아래 기대되었으니, 당신이 그리스도—곧 기름 부음 받은 자—냐? 다윗 왕도 기름 부음을 받았고(삼상 16:13), 제사장 아론도(레 8:12), 선지자 엘리사도(왕상 19:16), 선지자 이사야도(사 61:1) 그러하였다. 그리스도는 이 모든 직분에 임명되시고 또 그에 합당하게 갖추어지셨으므로 기름 부음 받은 자—곧 그 동류들보다 뛰어나게 즐거움의 기름으로 부음 받으신 분이라 일컬어지신다. 그리고 부어진 향유와 같은 이 이름에서 비롯하여, 그의 모든 추종자가 그리스도인이라 일컬어지니, 이는 그들 또한 기름 부음을 받았기 때문이다.
끝으로. 이 모든 족보의 일반적 요약은 마 1:17에 있으니, 여기서 그것은 주목할 만한 시기들로 구분된 열넷씩 세 묶음으로 요약된다. 첫째 열넷에서 우리는 다윗의 가문이 일어나 아침처럼 비쳐 나오는 것을 본다. 둘째 열넷에서 우리는 그것이 정오의 광채 가운데 번성하는 것을 본다. 셋째 열넷에서 우리는 그것이 점점 더 쇠하여 가난한 목수의 집안으로 쪼그라드는 것을 보며, 그런 후에 그리스도께서 그 가운데서 비쳐 나오시니, 곧 그 백성 이스라엘의 영광이시다.
“아브라함은 이삭을 낳고, 이삭은 야곱을 낳고, 야곱은 유다와 그의 형제들을 낳았다.” 여기서는 야곱의 넷째 아들만 이름이 언급된다. 메시아가 그의 허리에서 나올 것이었기 때문이다(창 49:10).
Matthew 1:1. The book — That is, This is the book, the verb being elegantly omitted, according to the custom of the Hebrews, and also of the Greeks and Romans; of the generation — Or, as the Syriac expresses it, The writing, narrative, or account of the generation, or birth of Jesus, &c. The word γενεσις, indeed, here rendered generation, sometimes signifies the history of a person’s life, yet it is much more frequently used for genealogy, or birth; and it seems to be intended to be taken in this restrained sense here. Dr. Macknight renders the phrase, The table of the genealogy of Jesus: observing that the word Βιβλος, book, is used in this limited sense Mark 10:4, where a bill of divorce is so called: and Jeremiah 32:12, where a deed of conveyance is termed ספר, a book. Indeed, the Jews, and also the Greeks, called all writings books, whether short or long. Of Jesus Christ — Jesus is his proper name, given him by God, his true Father, Matthew 1:21; Luke 1:31; Luke 2:21. Christ is, as it were, a surname, descriptive of his unction to the prophetic, priestly, and kingly offices. To the name Christ, that of Jesus is often superadded in the New Testament, not only that Christ might be pointed out for the Saviour, as the word Jesus signifies, but that Jesus might be shown to be the true Messiah, or Christ, in opposition to the unbelief of the Jews. The son of David, the son of Abraham — i.e., a descendant of David and Abraham; the word son, in the language of the Hebrews, being put for any descendant, however remote. Here the evangelist proposes what he is going to prove; viz, that Jesus Christ, whose history he is about to give, was the son of David and Abraham, which it was necessary he should show because the grand prophetical character of the Messiah was, that he was to spring from Abraham and David. The sense of the latter clause, indeed, the son of Abraham, is ambiguous: it may mean either that David was the son of Abraham, or, which seems the more probable sense, that Christ, who was the son of David, was also the son of Abraham. This sense accords better both with the following words, and with the design of the evangelist, which was to show, that Christ was descended from both these renowned patriarchs, and that in him was fulfilled the promises made to both. David is first named, 1. That the catalogue, to begin from Abraham, might proceed regularly, without the repetition of his name; 2. Because the memory of David was more fresh upon the minds of the Jews, and his name in greater repute than that of Abraham, especially when the discourse related to the Messiah, John 7:42; more plain and explicit promises of him being made to David, and the prophets having spoken of Christ under the name of David. Add to this, that David was both a prophet and a king, and therefore a more manifest type of the Messiah, who sustains both of these offices, as well as that of a priest. Hence those who had entertained higher conceptions of Christ than others, termed him the son of David, as appears from many passages in the gospel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