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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tthew Henry's Complete Commentary

Matthew Henry · 17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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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tthew Henry's Complete Commentary

Matthew Henry · 17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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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tthew Henry 사후(1714) 공개 도메인. 디지털판 CC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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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가 7장 서론 Matthew Henry's Complete Comment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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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장에서 I. 선지자는 교회의 이름으로 그가 살았던 시대의 비참한 종교의 부패와 국가를 압도하는 불경과 부도덕의 홍수를 슬프게도 애도합니다. 이는 정의롭고 신성한 모든 것의 차이를 균등화하고 울타리를 무너뜨렸습니다(미가 7:1-6). II. 선지자는 교회를 위하여 그러한 때에 도움이 될 위로를 처방하고 무엇을 해야 할지 권고한다. 1. 그들은 하나님을 바라보는 눈을 가져야 합니다, 미가 7:7. 2. 그들은 적의 무례함에 맞서 용감하게 맞서야 합니다, 미가 7:8-10. 3. 그들은 하나님의 꾸지람을 받고 인내해야 합니다, 미가 7:9. 4. 그들은 고난이 오래 지속될 것이라는 것 외에는 아무것도 기대해서는 안 되며, 그것을 최대한 활용하려고 노력해야 합니다(미가 7:11-13). 5. 그들은 선지자의 기도에 대한 응답으로 하나님의 약속으로 스스로를 격려해야 합니다(미가 7:14,15). 6. 그들은 지금 그들을 이겼던 그들의 적들의 몰락을 예견해야 합니다, 미가 7:16,17. 7. 그들은 하나님의 자비와 은혜, 그리고 그의 언약에 대한 그의 신실하심 안에서 스스로 승리해야 하며(미가 7:18-20), 그 편안한 말씀으로 예언은 끝납니다.

미가 7장 1-6 Matthew Henry's Complete Commentary

The Sins of the People (700 B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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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성의 죄 (기원전 700년)

¹ 나야말로 화난다! 나는 그들이 여름 실과를 거둘 때와 포도를 따는 것과 같으니 먹을 송이가 없도다 내 영혼이 처음 익은 열매를 사모하였도다
² 선한 사람이 땅에서 멸망하였고 사람 중에 의로운 자는 하나도 없습니다. 그들은 모두 피를 흘리려고 매복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그물로 각 사람의 형제를 사냥합니다.
³ 그들이 두 손으로 악을 행하기를 간절히 원하노라 왕자가 구하고 재판관도 보상을 구하느니라. 그리고 위대한 사람은 그의 장난스러운 욕망을 말하며, 그래서 그들은 그것을 포장합니다.
⁴ 그 중에 가장 좋은 자는 찔레 같으며 가장 정직한 자는 가시 울타리보다 더 날카로우니 네 파수꾼의 와 주의 징벌의 날이 이르리니 이제 그들의 당혹감이 될 것입니다.
⁵ 친구를 믿지 말며 인도자를 신뢰하지 말고 네 품에 누운 여자에게서 네 입의 문을 지키라.
⁶ 아들이 아버지를 욕되게 하고, 딸이 자기 어머니를 대적하고, 며느리가 자기 시어머니를 대적합니다. 사람의 원수는 자기 집안의 남자들이다.

여기 그려진 악한 시대는 어떤 이들이 보기에 이 선지자가 예언하던 히스기야의 시대와는 좀처럼 들어맞지 않는다. 그래서 그들은 이것을 오히려 므낫세 시대에 있을 일에 대한 예언으로 본다. 그러나 우리는 이것을 아하스의 시대(그가 그 시대에 예언하였다, 미 1:1)나 히스기야 초기, 곧 그가 앞장선 개혁이 있기 전으로 보는 편이 낫다. 아니, 그의 가장 좋은 시절에도, 그리고 그가 부패를 몰아내려고 온 힘을 다한 뒤에도 잘못된 것이 많이 남아 있었다. 선지자는 재앙이로다 하고 부르짖는다. 그는 자기 몫이 이토록 타락한 시대에 떨어진 것을 슬퍼하며, 멸망을 향해 빠르게 무르익어 가는 백성 가운데 사는 것을 큰 불행으로 여긴다. 그 멸망에는 선한 사람도 많이 휩쓸릴 수밖에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다윗도 이렇게 부르짖었다. 메섹에 머무는 내게 화가 있도다. 그가 슬퍼하는 것은 이러하다. 1. 선한 사람이 그토록 적었다는 것이다. 하나님의 백성이라는 자들 가운데서도 그러하였으니 그것이 그들의 수치였다. 선한 사람이 땅에서 멸망하였다. 곧 가나안 땅에서 그러하였다. 그것은 좋은 땅이요 정직한 자의 땅이었으나(사 26:10) 그 안에 선한 사람이 적었고 그들 가운데 정직한 자가 없었다(미 7:2). 선한 사람은 곧 경건한 사람이요 자비로운 사람이다. 그 말이 둘 다를 뜻한다. 하나님을 향하여 경건하고 사람을 향하여 긍휼하고 너그러운 자, 인자를 사랑하고 하나님과 함께 걷는 자가 온전히 선한 사람이다. "이런 이들이 멸망하였다. 얼마 전만 해도 우리 나라를 부요하게 하고 아름답게 하던 그 몇 안 되는 정직한 이들이 이제 죽어 없어졌고, 그 자리에 일어나 그 발자취를 밟는 이가 아무도 없다. 정직이 쫓겨났고 선한 사람이라 할 만한 이를 만날 수가 없다. 경건하게 자란 자들도 타락하여 가장 악한 자들처럼 되었으니 경건한 자가 끊어졌다"(시 12:1). 이것이 한 비유로 밝혀진다(미 7:1). 그들은 여름 실과를 거둔 뒤와 같았다. 선한 사람 하나를 찾기가 추수가 끝난 뒤에 여름 실과 하나를 찾기만큼 어려웠다. 여름 실과는 가장 좋은 것이라 조심스레 거두어들이기 때문이다. 선지자는 자기 시대의 엘리야처럼(왕상 19:10) 오직 나만 남았나이다 하고 말할 지경이다. 송이로 달려 있곤 하던 선한 사람들이 이제는 포도를 딴 뒤의 이삭 같아 여기 한 알 저기 한 알이다(사 17:6). 포도송이처럼 무리 지은 그들의 모임을 찾을 수 없고, 있다 해도 낱낱의 사람뿐이다. 먹을 송이가 없다. 그런데 가장 좋고 가장 실한 포도알은 큰 송이에 달린 것이다. 어떤 이들은 이 말이 선한 사람이 적을 뿐 아니라, 남아서 선한 사람으로 통하는 그 몇도 별 쓸모가 없어, 따는 자에게도 줍는 자에게도 버림받아 남겨진 작고 말라비틀어진 포도알 같다는 뜻이라고 본다. 이 두루 퍼진 타락을 보며 선지자는 처음 익은 열매를 사모하게 되었다. 그는 지난 시대에 있던 그런 훌륭하고 선한 이들을 보고 싶어 하였다. 그들은 초기 시대의 아름다움이었고, 처음 익어 잘 여문 열매가 결코 익지 못하는 늦은 열매보다 훨씬 나은 것처럼 이 시대의 가장 나은 자들보다 훨씬 나았다. 지난 시대에 신앙을 고백한 이들의 지혜와 열심, 엄정함과 양심적임, 경건과 사랑에 대하여 읽고 들으면서 이 시대의 고백자들에게서 그 반대를 볼 때, 우리는 주저앉아 한숨과 함께 아, 초기 그리스도교가 다시 있었으면 하고 바라지 않을 수 없다. 우리보다 앞선 이들의 순박함과 성실함이 어디 있는가. 간사한 것이 없는 참 이스라엘 사람이 어디 있는가. 우리 영혼이 그들을 사모하나 헛되다. 황금시대는 지나갔고 되부를 수 없다. 우리는 있는 것으로 최선을 다해야 하니, 지난 그런 시대를 다시 보게 될 것 같지 않기 때문이다. 2. 악하고 해를 끼치는 자들이 그토록 많았다는 것이다. 선을 행하는 자가 없을 뿐 아니라 할 수 있는 온갖 해를 다 끼치는 자가 수두룩하였다. "그들은 모두 피를 흘리려고 매복하며 각기 그물로 자기 형제를 사냥한다. 자기 재물을 불리려고 그들은 이웃과 가장 가까운 친족에게 어떤 잘못을, 어떤 해를 끼치든 개의치 않는다. 그들은 마치 인류가 전쟁 중이며 힘만이 유일한 권리이기라도 한 듯 행한다. 그들은 이웃에게 사나운 짐승 같으니, 사자가 먹이를 노리듯 모두 피를 흘리려고 매복하기 때문이다. 그들은 그것에 목말라 있어, 제 잇속을 채우려고 남의 목숨이나 생계를 앗는 것을 아무렇지 않게 여기며 그럴 기회를 노리고 엎드려 있다. 그들의 이웃도 그들에게 사나운 짐승 같으니, 각기 그물로 자기 형제를 사냥하기 때문이다. 그들은 이웃을 해로운 짐승인 양, 잡아 없애 마땅한 것인 양 뒤쫓는다. 실은 그들이 죄 없고 훌륭한 이들인데도 그러하다." 우리는 법의 보호를 잃은 자를 두고 그는 이리처럼 사냥당할 자다 하고 말한다. "혹은 그들은 사람이 사냥감을 잡아 잔치하듯 그들을 사냥한다. 그들에게는 자기만 이득을 볼 수 있다면 사람을 옭아 망하게 하는 저주받을 재주가 천 가지나 있다. 이렇게 그들은 두 손으로 부지런히 악을 행한다. 그 마음이 그것을 바라고 그 머리가 그것을 꾸미며 그다음에 두 손이 그것을 실행할 준비를 한다." 여기서 배운다. 죄된 일을 좇는 데 더 열심이고 더 마음을 쏟으며 더 애쓸수록 그것이 하나님을 더 노엽게 한다. 3. 직분상 옳은 것을 지키고 감싸야 할 위정자들이 도리어 잘못을 행하고 부추기는 자가 되었다는 것이다. 그들이 두 손으로 부지런히 악을 행하려고 스스로를 부추기고 북돋우니, 왕자가 구하고 재판관도 보상을 구한다. 곧 뇌물을 구하니, 그것으로 그들이 고용되어 온갖 악한 계획을 뒷받침하고 밀고 나가는 데 두 손으로 자기 권세를 다 쓴다. 그들이 두 손으로 악을 잘도 행한다고 읽는 이들도 있다. 곧 그들이 온갖 재주와 솜씨로 악을 행하며 그것을 잘 해냈다고 스스로 칭찬한다는 것이다. 어떤 이들은 이렇게 읽는다. 악을 행하는 데는 그들에게 두 손이 있으나(해를 끼칠 기회를 덥석 붙잡는다) 선을 행하는 데는 왕자와 재판관이 보상을 구한다. 곧 무슨 좋은 일을 하더라도 삯을 바라고 하며 값을 받아야 한다는 것이다. 재물과 권세로 선을 행할 수 있는 그 높은 자가 자기 악한 욕심을 왕자와 재판관과 나란히 말하기를 부끄러워하지 않으니, 그들이 그 일에서 자기를 뒷받침하고 곁에 서 줄 준비가 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그들이 그것을 포장한다. 어떤 이들은 이것을 그들이 일을 복잡하게 얽고 뒤엉키게 만들어, 공평이 안개 속에 사라지게 하고 그 송사를 자기 좋을 대로 돌린다는 뜻으로 이해한다. 한 백성의 방백과 재판관과 높은 자들이 손잡고 공의를 굽게 할 때 그 백성의 형편은 딱하다. 그리고 그들에 대하여 주어진 평가가 참으로 슬프다(미 7:4). 그중에 가장 좋은 자가 찔레 같고 가장 정직한 자가 가시 울타리보다 더 날카롭다. 그들과 무슨 상관을 갖는 것은 위태로운 일이다. 그들을 만지는 자는 철로 무장해야 하며(삼하 23:6,7) 반드시 긁히고 옷이 찢기며 눈이 뽑힐 뻔할 것이다. 가장 좋고 가장 정직한 자가 그러하다면 가장 악한 자는 어떠하겠는가. 그리고 일이 이 지경에 이르면 네 파수꾼의 날이 온다. 곧 뒤이어 말하듯 주의 징벌의 날이니, 그때 하나님이 이 모든 악을 네게 셈하실 것이다. 그것이 파수꾼의 날이라 불리는 것은, 하나님이 그들 위에 파수꾼으로 세우신 선지자들이 그날을 자주 경고하였기 때문이다. 모든 육체가 자기 길을 부패하게 하였고 가장 좋고 가장 정직한 자까지 그러하다면, 땅에 강포가 가득하여 옛 세상을 물에 잠기게 하였던 그런 징벌의 날, 심판의 홍수 말고 무엇을 기대할 수 있겠는가. 4. 사람에게 믿을 만한 것이 남지 않았다는 것이다. 사람들이 어찌나 두루 배신하게 되었는지, 누구를 믿어야 할지 알 수 없었다(미 7:5). "명예에 대한 감각이나 덕의 불씨가 조금이라도 남아 있는 자는 우정의 법을 굳게 지킨다. 그들은 사사로운 대화에서 오간 것을 밝히거나 벗에게 해가 되도록 비밀을 흘리지 않을 것이다. 그런데 이제 그런 것이 웃음거리가 되었다. 네가 믿을 만한 벗, 그 말을 그대로 받을 만한 벗, 너를 부드럽게 대하고 마음을 써 줄 벗을 만나지 못할 것이다. 그러므로 지혜로운 사람은 이것을 법칙으로 주고받을 것이다. 친구를 믿지 말라. 그가 거짓됨을 알게 될 것이며, 네 눈에 보이는 만큼만 믿을 수 있을 뿐이다. 정직한 사람으로 통하는 자도 잘 살펴보아야만 그러함을 알게 될 것이다. 아니, 네 인도자로 나서서 자기가 너보다 더 잘 안다는 일로 너를 이끌겠다는 자에게도 신뢰를 두지 말라. 그가 그로써 무엇을 얻을 수만 있다면 반드시 너를 그릇 인도할 것이기 때문이다." 어떤 이들은 인도자를 남편으로 이해하니, 남편이 네 어린 시절의 짝이라 불리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것이 뒤이은 말과 잘 어울린다. "네 품에 누운 자에게서 네 입의 문을 지키라. 곧 네 아내에게서 그리하라. 그 앞에서 무슨 말을 하는지 조심하라. 들릴라가 삼손을 팔아넘긴 것처럼 그가 너를 팔아넘길까 함이요, 네 침실에서 하는 말을 공중의 새가 전할까 함이다"(전 10:20). 슬기로운 자가 이 정도까지 잠잠할 수밖에 없다면 참으로 악한 때다. 5. 자녀가 부모를 함부로 대하고, 사람이 제 집과 가장 가까운 관계에서 아무 위로도 만족도 얻지 못하였다는 것이다(미 7:6). 아들이 아버지를 욕되게 하고 그에게 험한 말을 하고 그를 부끄럽게 하고 그를 위협하며 그를 해치려 꾀할 때, 딸이 일어나 제 어머니를 대적하여 본분도 타고난 정도 없을 때, 그때가 참으로 악한 때다. 그러니 며느리가 제 시어머니와 다투고 그를 괴롭게 하는 것도 이상하지 않다. 재산과 이익을 두고 뜻이 맞지 않거나, 그 성미와 격정이 부딪히거나, 아니면 광신과 핍박의 마음에서 형제가 형제를, 아버지가 자식을 죽는 데 내주게 된다(마 10:21, 눅 21:16). 사람을 팔아넘기는 자요 그 가장 나쁜 원수가 곧 자기 집안 식구, 자기 자녀와 종이라면 참으로 슬픈 일이다. 그들은 마땅히 그를 지켜 주고 그 가장 좋은 벗이 되어야 할 자들이다. 여기서 배운다. 집안에서 지켜야 할 본분의 법을 업신여기고 어기는 것은 온 백성의 행실이 부패하였다는 슬픈 징후다. 부모에게 본분을 다하지 않고 그들을 노엽게 하며 거스르기를 일삼는 자는 결코 잘될 리 없다.

미가 7장 7-13 Matthew Henry's Complete Commentary

Seeking Comfort in God; The Sins of the People (700 B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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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 안에서 위로를 구함; 백성의 죄 (기원전 700년)

⁷ 그러므로 내가 여호와를 바라보며 나는 나의 구원의 하나님을 기다리니 나의 하나님이 내 말을 들으시리로다
⁸ 나의 원수여, 나를 향하여 기뻐하지 말라 나는 넘어질지라도 일어날 것이요 내가 어둠 속에 앉아 있을 때, 주님께서 나에게 빛이 되실 것입니다.
⁹ 내가 여호와께 범죄하였으니 여호와께서 나를 위하여 신원하시고 신원하실 때까지는 그의 진노를 당하리라. 주께서 나를 인도하사 빛에 이르게 하시리니 내가 그의 의를 보리로다.
¹⁰ 그리하면 나의 원수인 그가 그것을 보고 나에게 '네 하나님 여호와는 어디 계시느냐'고 말한 그 사람이 수치를 당할 것이다. 내 눈이 그를 바라보리니 이제 그가 거리의 진흙 같이 밟히리라.
¹¹ 네 성벽이 건축되는 날에는 그 날에 법령이 멀리 옮겨질 것이다.
¹² 그 날에도 그가 앗시리아에서, 요새화된 도시들에서, 요새에서 강까지, 바다에서 바다까지, 산에서 산까지 네게로 올 것이다.
¹³ 그러나 그 땅은 거기 거하는 자들의 행위의 열매로 말미암아 황폐하게 되리라.

선지자는 자기가 사는 시대의 악함을 슬프게 하소연하고 나서, 여기서 그 일과 관련하여 자기와 자기 벗들을 위로할 몇 가지를 붙든다. 형편이 나쁘기는 하나 절망할 것은 아니다. 이 일에 관하여는 이스라엘에게 아직 소망이 있다.

I. "하나님이 지금 언짢아하시나 우리와 화목하게 되실 것이며, 그러면 다 잘될 것이다(미 7:7,9). 우리는 지금 여호와의 진노 아래 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노하셨고 그것이 마땅하니, 우리가 그분께 범죄하였기 때문이다." 여기서 배운다. 하나님을 거스른 우리 죄가 우리를 향한 그분의 진노를 부른다. 그리고 하나님의 책망 아래 있을 때마다 우리는 그것을 보고 인정해야 하니, 그리하여 하나님을 옳다 하고, 죄를 회개하고 그것에서 끊어짐으로 그분이 우리를 치신 그 목적에 답하기를 힘써야 한다. 이제 그런 때에 이러하다. 1. 우리는 환난 중에 하나님께 나아가야 한다(미 7:7). 그러므로 나는 여호와를 바라보리라. 하나님의 자녀가 여기 선지자처럼(미 7:1) 재앙이로다 하고 부르짖을 일이 아무리 많아도, 자기가 바라볼 하나님, 나아갈 하나님, 피할 하나님이 계시어 그분 안에서 기뻐하고 만족할 수 있다는 것이 그에게 위로가 된다. 자기 둘레가 온통 캄캄해 보여도 자기 위는 온통 밝을 수 있다. 선지자는 땅에서 벗과 친족에게서 얻을 위로도 둘 만한 확신도 없다고 하소연하였는데, 그것이 그를 자기 하나님께로 몰아간다. 그러므로 나는 여호와를 바라보리라. 어떤 피조물도 기뻐할 이유가 적을수록 하나님을 기뻐할 이유는 더 커진다. 방백을 믿을 수 없다면 우리는 이렇게 말할 수 있다. 야곱의 하나님을 자기 도움으로 삼는 자는 복이 있다. 그리고 그분이 내 도움이시라면 지금 이 재앙 한가운데서도 나는 복이 있다. 사람이 거짓되어도 하나님은 신실하시다는 것이 우리 위로다. 친족이 매정해도 그분은 은혜로우시며 앞으로도 그러하실 것이다. 그러므로 그것들 너머를 바라보고, 그것들에게서 겪은 실망을 지나쳐 버리고, 여호와를 바라보자. 2. 우리는 환난 중에 하나님의 뜻에 순복해야 한다. "내가 여호와의 진노를 당하리니, 곧 원망하고 투덜거림 없이 참고 견디리니, 내가 그분께 범죄하였기 때문이다." 여기서 배운다. 죄를 참으로 뉘우치는 자는 환난 중에 참고 견딜 이유를 많이 보게 된다. 사람이 자기 죄의 벌을 두고 어찌 원망하겠는가. 시대가 악하다고 하나님께 하소연할 때 우리는 마땅히 우리 자신의 마음이 악한 것을 두고 우리 자신에게 하소연해야 한다. 3. 우리는 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여 건지시고 때가 되면 우리 환난을 좋게 끝맺으시리라 의지해야 한다. 우리는 그분을 바라볼 뿐 아니라 그분을 기다려야 한다. "내가 나의 구원의 하나님을 기다리며 그분이 내게 은혜로 돌아오시기를 기다리리라." 아무리 큰 곤경에 처하여도, 믿음으로 하나님을 우리 구원의 하나님으로 바라보면 구원을 절망할 이유가 없다. 그분은 가장 약한 자라도 겸손히 구하면 능히 구원하시고, 가장 악한 자라도 참으로 뉘우치면 기꺼이 구원하신다. 그리고 그분을 우리 구원의 하나님으로 의지한다면, 우리는 그분을, 그리고 그분의 구원을 그분의 방식과 그분의 때에 따라 기다려야 한다. 이제 형편이 마지막 극단에 이르렀을 때에도 교회가 하나님께 무엇을 기대하고 스스로 약속하도록 여기서 배우는지 보자. (1.) 나의 하나님이 내 말을 들으시리라. 여호와께서 우리 하나님이시면 우리 기도를 들으시고 화평의 응답을 주실 것이다. (2.) "내가 넘어질지라도, 그 넘어짐으로 산산이 부서질 위험에 놓일지라도 일어날 것이다. 내가 넘어지나 아주 엎드러지지는 아니한다"(시 37:24). (3.) "내가 어둠 속에 앉아 버려지고 위로 없이 우울하고 답답하여 무엇을 해야 할지도, 어디서 도움을 찾아야 할지도 모를 때에도, 그때에 여호와께서 나에게 빛이 되시어 나를 위로하고 살리시며 가르치고 깨우치시며 이끄시리니, 내 눈의 빛이요 내 발의 빛이요 어두운 데의 빛이 되신다." (4.) 그가 나를 위하여 신원하시고 나를 위하여 심판을 행하시리라(미 7:9). 우리가 하나님의 편, 곧 옳으면서도 억울한 신앙과 덕의 편을 마음으로 들고 그것을 우리 일로 삼으면, 그분도 우리 일을 자기 일로 삼아 우리를 위하여 신원해 주시리라 바랄 수 있다. 교회의 일이 한동안은 교회에 불리하게 돌아가는 듯 보여도, 마침내 열심으로 신원될 것이며, 그 원수들에게 심판이 내려질 뿐 아니라 집행되기까지 할 것이다. (5.) "그가 나를 인도하사 빛에 이르게 하시리니, 나를 어둠에서 이끌어 내어 빛나게 하시고 드러나게 하시며, 비방의 짙은 구름 아래 있던 내 의를 환히 빛나게 하실 것이다(시 37:6, 사 58:10). 길고 어두운 환난의 밤에서 위로의 아침이 밝아 올 것이다." (6.) "내가 그의 의를 보리라. 나를 다루시는 그분의 공평하심과 내게 하신 약속을 이루심을 보게 될 것이다."

II. 원수가 우쭐하며 조롱하여도 그들이 입을 다물고 부끄러움을 당하리라는 것이다(미 7:8,10). 여기를 보자.

1. 하나님의 백성이 곤경에 처하였을 때 그 원수들이 얼마나 교만하게 그들을 짓밟는가. 그들이 말하기를 네 하나님 여호와가 어디 계시냐 하였다. 마치 그들이 고난받으므로 하나님이 그들을 버리셨고, 그들은 기도를 들고 어디로 그분을 찾아가야 할지 모르며 그분도 은총으로 어떻게 도우실지 모르시기라도 하는 듯 말한 것이다. 다윗의 원수들이 그에게 이 말을 하였고 그것이 그의 뼈를 찌르는 칼이 되었다(시 42:10). 시 115:2도 보라. 이렇게 그들은 이스라엘을 버림받은 백성이라 비방하면서 이스라엘의 하나님을 매정하고 신실하지 못한 하나님으로 욕한 것이다.

2. 하나님의 백성이 믿음으로 이 모욕 아래서 얼마나 든든히 자기를 붙드는가(미 7:8). "나의 원수여 나를 향하여 기뻐하지 말라. 내가 지금 엎드러져 있으나 늘 그렇지는 않을 것이다. 내 하나님이 나를 위하여 나타나실 때에 나의 원수인 그가 그것을 보고 부끄러움을 당할 것이다." 교회가 아주 망하리라던 그 기대가 어긋나 부끄러울 뿐 아니라, 자기 손에도 같은 비틀거림의 잔이 놓이기 때문이다. "그때에 내 눈이 그를 바라보리니, 지금 내가 처한 것과 같은 그 딱한 처지에 놓인 그를 보게 될 것이다. 이제 그가 밟히리라." 여기서 배운다. 교회가 건짐받는 것이 곧 그 원수가 당황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들의 수치는 갑절이 되리니, 그들이 하나님의 백성을 짓밟은 그대로 자기도 짓밟힐 것이기 때문이다.

III. 그 땅이 오래도록 황폐한 채로 있을지라도, 그 건짐의 때 곧 정한 때가 이르면 마침내 다시 사람으로 채워지리라는 것이다. 1. 그 구원은 그 땅이 황폐하게 된 뒤에야 올 것이다. 난외주가 그렇게 읽는다(미 7:13). 하나님이 그 땅과 다투실 일이 있으시니, 거기 거하는 자들로 말미암아 그 땅이 오래도록 그 책망 아래 있어야 한다. 그 땅을 황폐하게 만드는 것은 그들의 죄악이다(시 107:34). 그것은 그들의 행위의 열매로 말미암은 것이니, 곧 그들 자신이 저지른 악한 행위와 그 악한 열매, 그리고 그들이 나쁜 영향과 본으로 거들었던 남들의 죄 때문이다. 이것 때문에 그들은 오래도록 아파야 할 것이다. 하나님이 자기 백성 안에 있는 죄까지도 미워하심을 온 세상이 알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2. 그러나 그 구원이 올 때에는 온전한 구원이 될 것이다. 이 말은 고레스로 말미암은 바벨론에서의 건짐을 가리키는 듯하니, 이사야가 이 무렵 그것을 예언하며 그리스도로 말미암은 우리 구속의 예표로 삼았다. (1.) 법령이 멀리 옮겨질 것이다. 그들의 사로잡힘에 관한 하나님의 작정과, 그것을 영원히 지속하려는 느부갓네살의 작정, 곧 그들을 결코 놓아주지 않겠다는 그 결심, "이것들이 물러가고 뒤집혀 너희가 다시는 그것을 듣지 않을 것이며, 다시는 그것이 네 목에 멍에로 놓이지 않을 것이다." (2.) 예루살렘과 유다의 성읍들이 다시 세워질 것이다. 그때 네 성벽이 건축되리니, 살 곳을 두르는 성벽이요 지킬 성벽이요 집의 담이요 성의 담이요 성전의 담이다. 그 법령이 뒤집히는 것은 바로 이것을 위함이다(사 44:28). 시온의 성벽이 오래도록 폐허로 놓여 있을지라도 그것이 다시 세워질 날이 올 것이다. (3.) 이스라엘 땅에 속한 모든 이가 어디로 흩어졌든, 어떤 곤경에 처하였든, 온 땅 어디에 멀리 흩어져 있든 다시 그리로 몰려올 것이다(미 7:12). 그가 네게로 오리니, 돌아올 자유와 돌아올 마음을 얻어 앗수르에서 올 것이다. 열 지파가 그리로 끌려갔고 그곳이 멀리 떨어져 있으나 그러하다. 또한 요새화된 성읍들에서, 요새에서 올 것이다. 그들이 그 견고한 곳에 자기를 단단히 가두어 두었다고 여겼으나, 하나님의 때가 이르면 바로가 그 백성을 보내려 하지 않아도 하나님이 강한 손으로 그들을 이끌어 내실 것이다. 그들이 먼 곳에서 다 올 것이니 바다에서 바다까지, 산에서 산까지 올 것이다. 그들은 낙심할 일이 두려워 돌아서지 않고 힘을 얻고 더 얻어 마침내 시온에 이를 것이다. 이렇게 저 큰 구속의 날에 하나님이 사방에서 자기 택하신 자들을 모으실 것이다.

미가 7장 14-20 Matthew Henry's Complete Commentary

Encouraging Prospects; Encouraging Promises (700 B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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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망 장려; 약속을 격려하다(기원전 700년)

¹⁴ 갈멜 가운데 수풀에 홀로 거하는 주의 백성 곧 주의 기업의 양 떼를 주의 지팡이로 먹이시되 그들이 옛날과 같이 바산과 길르앗에서 먹게 하소서.
¹⁵ 네가 이집트 땅에서 나오는 날을 따라 내가 그에게 놀라운 일을 보여 주겠다.
¹⁶ 민족들은 그들의 모든 힘을 보고 부끄러워할 것이며, 그들의 손으로 그들의 입을 막고 그들의 귀는 막힐 것이다.
¹⁷ 그들은 뱀처럼 티끌을 핥고 땅의 벌레처럼 그 구멍에서 나오며 우리 하나님 여호와를 두려워하며 주를 두려워하리이다
¹⁸ 주와 같은 신이 누구이기에 죄악을 사하시며 자기 기업의 남은 자의 범법을 용서하시나이까? 그분은 자비를 기뻐하시기 때문에 영원히 분노를 품지 않으십니다.
¹⁹ 그분은 다시 돌이켜 우리를 불쌍히 여기실 것입니다. 그분은 우리의 죄악을 정복하실 것입니다. 그리고 당신은 그들의 모든 죄를 바다 깊은 곳에 던지실 것입니다.
²⁰ 당신께서는 옛적부터 우리 조상들에게 맹세하신 대로 야곱에게 진리를 행하시며 아브라함에게 인자를 베푸시나이다.

여기 이런 내용이 있다. I. 하나님이 자기 백성과 그 일과 그 유익을 돌보아 주시기를 구하는 선지자의 기도다(미 7:14). 하나님은 자기 백성을 건지려 하실 때 그 벗들을 일깨워 그들을 위하여 기도하게 하시고 은총과 간구하는 심령을 부어 주신다(슥 12:10). 그리고 하나님이 긍휼의 길로 우리에게 오시는 것이 보일 때 우리는 기도로 그분을 맞으러 나아가야 한다. 이것은 예언적 기도이니, 곧 구하는 그 좋은 것에 대한 약속이나 다름없다. 하나님이 자기 선지자에게 구하라고 이르신 것을 주시려 하셨음은 의심할 바 없다. 이제 이러하다. 1. 이스라엘 백성이 여기서 주의 기업의 양 떼라 불린다. 그들은 그분의 손의 양이요 그 초장의 양이며 세상에서 그분의 작은 무리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들은 그분의 기업이니 세상에서 그분의 몫이다. 야곱은 그의 기업의 분깃이다. 2. 이 양 떼가 수풀에 홀로 거하니 곧 높은 산 갈멜 가운데 있는 숲이다. 이스라엘은 홀로 살며 뭇 나라 가운데 수에 들지 않는 남다른 백성이었으니, 숲속의 양 떼 같았다. 그들은 이제 황폐한 백성이 되었고(미 7:13) 사로잡힘의 땅에서 숲속의 양처럼 있어, 길을 잃고 숲의 짐승에게 먹이가 될 위험에 놓였다. 그들이 목자 없는 양같이 산에 흩어졌다. 3. 그는 하나님이 거기서 주의 지팡이로 그들을 먹이시기를 구한다. 곧 그들이 사로잡혀 있는 중에 그들을 돌보시고 지켜 주시고 먹여 주시며 선한 목자의 몫을 다해 주시기를 구한다. "저 어두운 골짜기에서라도 주의 지팡이와 막대기로 그들을 안위하시고, 거기서도 그들에게 유익한 것이면 아무것도 모자라지 않게 하소서. 그들이 원수의 지팡이가 아니라 주의 지팡이로 다스림받게 하소서. 그들은 주의 백성이기 때문입니다." 4. 그는 하나님이 때가 되면 그들을 다시 데려와 바산과 길르앗의 들에서 먹게 하시고, 더는 숲과 산에서 먹지 않게 하시기를 구한다. 그들이 옛날과 같이 제 나라에서 먹게 하소서. 어떤 이들은 이것을 영적으로 풀어, 선지자가 그리스도께 드리는 기도이거나 아버지께서 그분께 맡기시는 부탁으로 본다. 곧 양의 큰 목자로서 자기 교회를 돌보시고, 그들이 이 세상이라는 숲에 있는 동안 그들 앞에 드나드시어 그들이 갈멜에서처럼, 바산과 길르앗에서처럼 꼴을 얻게 하시라는 것이다.

II. 이 기도에 대한 하나님의 약속이다. 우리는 하나님의 약속을 믿음의 기도에 대한 참된 응답으로 받아 그대로 붙들어도 좋다. 그분에게는 말씀하시는 것과 행하시는 것이 둘이 아니기 때문이다. 선지자는 하나님이 그들을 먹이시고 그들에게 선을 베푸시기를 구하였다. 그런데 하나님은 그들에게 놀라운 일을 보이시겠다고 답하신다(미 7:15). 곧 그들이 구하거나 생각할 수 있는 것 이상으로 행하시고 그들의 소망과 기대를 뛰어넘으시겠다는 것이다. 그분이 자기 놀라운 인자하심을 그들에게 보이실 것이다(시 17:7). 1. 그분이 그들을 위하여 앞선 시대의 기이한 일과 기적을 되풀이하는 일을 행하시리니, 네가 애굽 땅에서 나오던 날과 같이 하실 것이다. 그들이 바벨론에서 건짐받는 것이 애굽에서 건짐받은 것에 못지않은 기이함과 은혜의 일이 될 것이며, 아니 그 빛을 가릴 만한 일이 될 것이다(렘 16:14,15). 그리스도로 말미암은 구속의 일은 더욱 그러하다. 여기서 배운다. 하나님이 전에 자기 교회에 베푸신 은총은 앞으로 베푸실 은총의 본이며, 때가 되면 다시 그대로 베풀어질 것이다. 2. 그분이 그들을 위하여 이 시대가 놀라 입을 다물 만한 일을 행하실 것이다(미 7:16,17). 주위의 나라들이 그것을 알아보고 이방 중에서 여호와께서 그들을 위하여 큰일을 행하셨다 하고 말할 것이다(시 126:2). 유대인이 바벨론에서 건짐받은 일이 이웃 나라들에게 남길 자국은 하나님의 영예를 위해서도 그 교회의 영예를 위해서도 매우 클 것이다. (1.) 하나님의 백성이 곤경에 처하였을 때 그들을 짓밟으며, 자기가 눌러 두었으니 계속 눌러 두겠다고 우쭐하던 자들이, 그들이 이토록 놀랍게 일어서는 것을 보고 부끄러워할 것이다. 그들은 영영 힘을 잃었다고 여기던 그 사로잡힌 자들이 이제 발휘하는 그 모든 힘 앞에서 부끄러워할 것이다. 그들은 이제 손으로 자기 입을 막으리니, 자기가 한 말을 부끄러워하고 이스라엘을 조롱하는 말을 더는 할 수 없기 때문이다. 아니, 그 귀도 막힐 것이니, 그 놀라운 건짐 앞에 어찌나 부끄러운지 자기가 그토록 업신여기고 조롱하던 그 백성을 위하여 하나님이 행하신 기이한 일을 더는 듣고 싶지 않아 귀를 막을 것이다. (2.) 하나님 자신을 뻔뻔하게 맞서던 자들이 이제 그분을 두려워하게 되어, 적어도 겉으로는 그분께 굴복하게 될 것이다(미 7:17). 그들이 뱀처럼 티끌을 핥으리니, 마치 뱀에게 내린 그 저주(창 3:14, 네가 배로 다니고 티끌을 먹을지니라)를 자기도 선고받기라도 한 듯 낮아질 것이다. 그들은 상상할 수 있는 가장 낮은 자리로 끌어내려질 것이며, 기력이 어찌나 다하는지 순순히 거기에 굴복할 것이다. 그의 원수들이 티끌을 핥을 것이다(시 72:9). 아니, 그들이 교회의 발의 티끌을 핥을 것이다(사 49:23). 교만한 압제자들이 이제 위대하신 하나님 앞에서 자기가 얼마나 하찮고 얼마나 작은지 절감하게 될 것이며, 떨며 가장 낮게 굽혀 자기가 기어 들어갔던 그 구멍에서 나올 것이다(사 2:21). 그들은 제 모습대로 땅의 벌레 같아서, 부끄럽고 두려워 머리를 들지 못할 것이다. 그들이 낮아질 때 그토록 낮게 끌어내려지고 그토록 비참한 자가 될 것이다. 하나님이 자기 교회를 위하여 기이한 일을 행하셨을 때 그 땅 백성이 많이 유대인이 되었으니, 유대인을 두려워하는 마음이 그들에게 임하였기 때문이다(에 8:17). 여기서도 그렇게 약속된다. 그들이 우리 하나님 여호와를 두려워하며 이스라엘아 너로 말미암아 두려워하리라. 억지로 하는 굴복은 흔히 꾸며 낸 굴복이다. 그러나 그것도 하나님과 그 교회의 영광으로 돌아가니, 겉으로 꾸미는 자들 자신에게는 유익이 되지 않을지라도 그러하다.

III. 하나님의 긍휼에 대한 선지자의 감사이니, 교회를 대신하여 그 약속을 믿고 의지하며 드리는 것이다(미 7:18-20). 여기서 우리는 이것을 배운다.

1. 하나님께 용서하시는 긍휼의 영광을 돌리는 것이다(미 7:18). 하나님이 자기 백성의 사로잡힘을 돌이키겠다고 약속하시자 선지자는 그 대목에서 용서하시는 긍휼을 놀랍게 여긴다. 그것이 이 모든 일의 밑바닥에 있기 때문이다. 그들을 매임에 넘긴 것이 그들의 죄였듯이, 그들을 거기서 끌어낸 것은 하나님이 그 죄를 용서하신 일이었다(시 85:1,2, 사 33:24, 38:17, 60:1,2). 죄 사함은 언약이 주는 다른 모든 긍휼의 터다(히 8:12). 선지자는 이것을 놀랍게 여기는데, 둘레의 나라들은 다만 이것의 열매에 지나지 않는 그 건짐만을 놀랍게 여겼다. 여기서 배운다. (1.) 하나님의 백성 곧 그 기업의 남은 자에게도 범법이 많이 지워져 있다. 남은 자요 아주 적은 수이니 다 아주 선하기를 바랄 만한데도 그렇지 않다. 하나님의 자녀에게도 흠이 있고 그들도 자주 자기 아버지를 언짢게 한다. (2.) 은혜로우신 하나님은 자기 백성이 회개하고 자기에게 돌아오면 그 죄악과 범법을 기꺼이 지나치시고 용서하신다. 하나님의 백성은 용서받은 백성이며 그들이 지닌 모든 것을 그것에 빚지고 있다. 하나님이 죄를 용서하실 때 그분은 그것을 지나치시며, 마땅히 하실 수 있는 대로 그것을 벌하지 않으시고 죄인을 그 마땅한 값대로 다루지 않으신다. (3.) 하나님이 자기 백성을 한동안 그 언짢으심의 표 아래 두실 수 있으나, 영원히 진노를 품지는 아니하신다. 근심하게 하시나 긍휼히 여기시니 그분은 마음이 모진 분이 아니다. 그러나 그 기업의 남은 자에 들지 않아 용서받지 못한 자들에게는 영원히 진노를 품으실 것이다. (4.) 하나님이 죄를 용서하시고 영원히 진노를 품지 않으시는 까닭은 다 그분 자신 안에 있다. 그가 인자를 기뻐하시기 때문이며, 죄인이 죽고 정죄받는 것이 아니라 구원받는 것을 기뻐하시기 때문이다. (5.) 죄를 용서하시는 데서 드러나는 하나님의 영광은 다른 일에서와 마찬가지로 견줄 데가 없다. 이 일에서 그와 같은 신이 없다. 어떤 위정자도 어떤 사람도 하나님처럼 용서하지 않는다. 이 일에서 그분의 생각과 길은 우리 것보다 한없이 높다. 이 일에서 그분은 사람이 아니요 하나님이시다. (6.) 용서하시는 긍휼을 겪어 본 자는 다 그 긍휼을 놀랍게 여기지 않을 수 없다. 그것이 무엇인지 안다면 우리가 서서 놀랄 만한 일이다. 하나님이 우리 범법을 용서하셨는가. 그렇다면 우리는 주와 같은 신이 누구이니이까 하고 말할 만하다. 용서하시는 긍휼 앞에서 우리가 거룩하게 놀라는 것이 곧 우리가 그 긍휼에 참여하고 있다는 좋은 증거가 될 것이다.

2. 그 긍휼과 그것과 함께 오는 모든 은혜와 진리를 우리 위로로 삼는 것이다. 여기 하나님의 백성은 하나님이 자기 죄를 용서하신 것을 감사히 돌아보는 동시에, 그분이 자기를 위하여 더 행하실 일을 확신을 가지고 내다본다. 그분의 긍휼은 영원하므로 그분이 긍휼을 베푸신 것같이 또 베푸실 것이다(미 7:19,20). (1.) 그분이 우리에게 은총을 새롭게 하실 것이다. 그가 다시 돌이켜 우리를 불쌍히 여기시리니, 곧 전에 그러하셨던 것처럼 다시 우리를 불쌍히 여기실 것이다. 그 긍휼이 아침마다 새로울 것이다. 그분이 노하여 우리를 떠나시는 듯하였으나 다시 돌이켜 우리를 불쌍히 여기실 것이다. 그분이 우리를 자기에게로 돌이키시고 그다음에 우리에게 돌이키사 긍휼을 베푸실 것이다. (2.) 그분이 우리를 새롭게 하시어 우리를 그 은총에 알맞게 준비시키실 것이다. 그가 우리의 죄악을 정복하시리니, 곧 죄의 죄책을 없애시어 그것이 우리를 정죄하지 못하게 하실 때, 죄의 힘도 꺾으시어 그것이 우리를 지배하지 못하게 하시고 우리가 죄를 두려워하거나 그것에 사로잡히지 않게 하실 것이다. 죄는 우리를 치는 원수요 우리를 억누르는 폭군이다. 오직 전능하신 은혜만이 그것을 정복할 수 있으니, 타락한 사람 안에서 그 힘이 그토록 크고 그토록 오래 자리를 잡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하나님이 우리가 저지른 죄를 용서하신다면 우리 안에 사는 죄도 정복하실 것이며, 그 일에서도 용서하시는 일에서와 마찬가지로 그분 같은 이가 없다. 그리고 죄를 용서받은 자는 다 자기 부패가 죽고 자기 죄악이 정복되기를 간절히 바라고 소망하며 그 소망을 기뻐한다. 우리가 우리 자신에게 맡겨지면 우리 죄악이 우리보다 강할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의 은혜가 그것을 정복하기에 넉넉하리라 우리는 믿는다. 그리하여 그것이 우리를 다스리지 못하게 되면 그것이 우리를 망하게 하지도 못할 것이다. (3.) 그분이 이 선한 일을 굳게 하시고, 자기 은혜의 결정이 결코 뒤집히지 않도록 확실히 하실 것이다. 주께서 그들의 모든 죄를 바다 깊은 곳에 던지시리니, 그분이 그들을 애굽에서 이끌어 내실 때(여기 약속에서 그것을 염두에 두고 계신다, 미 7:15) 바로와 애굽 사람들을 꺾어 바다 깊은 곳에 던지신 것과 같다. 이는 하나님이 죄를 용서하실 때 그것을 다시 기억하지 아니하시며, 그것이 죄인에게 다시는 기억되지 않도록 하심을 보여 준다. 겔 18:22에 그 범죄한 것이 하나도 기억함이 되지 아니하리라 하였다. 그것은 다시는 나타나지 않는 구름같이 씻어졌다. 그분은 그것을 바다에 던지시되, 썰물 때 다시 드러날 물가에 던지지 않으시고 다시는 떠오르지 않을 바다 깊은 곳에 던지신다. 그들의 모든 죄가 하나도 남김없이 거기 던져질 것이니, 하나님이 죄를 용서하실 때에는 다 용서하시기 때문이다. (4.) 그분이 우리에 관한 일을 온전히 이루시며, 이 선한 일과 함께 우리 형편이 요구하는 모든 것, 그분이 약속하신 모든 것을 우리를 위하여 행하실 것이다(미 7:20). 주께서 야곱에게 진리를 베푸시며 아브라함에게 인자를 베푸시리이다. 우리 죄가 용서받고 우리 정욕이 죽는 것은 그 언약을 따른 일이다. 그 샘에서 이 모든 물줄기가 흐르며, 그것과 함께 그분이 모든 것을 우리에게 값없이 주실 것이다. 그 약속이 아브라함에게 인자라 불리는 것은, 그것이 그에게 처음 주어졌을 때 그가 어떤 처지에 있었는지를 생각하면 순전한 긍휼이요 앞서 베푸신 긍휼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것이 야곱에게 진리인 것은, 아브라함의 상속자로서 그와 그 씨에게 아브라함에게 은혜로 약속하신 모든 것을 이루시겠다고 하나님의 신실하심이 매여 있기 때문이다. 여기를 보라. [1.] 은혜의 언약이 우리에게 얼마나 엄숙히 확정되었는가. 그것은 말해지고 기록되고 인 쳐졌을 뿐 아니라, 무엇보다 확실하게 우리 조상들에게 맹세되었다. 그것은 요즈음 생긴 계획이 아니라 오랜 세월로도 확정된 것이니, 옛적부터 맹세된 것이요 오래된 헌장이다. [2.] 우리가 그것을 얼마나 만족스럽게 적용하고 의지할 수 있는가. 우리는 가장 큰 확신을 가지고 주께서 진리와 인자를 베푸시리이다 하고 말할 수 있다. 그중 한 획 한 점도 땅에 떨어지지 않을 것이다. 약속하신 이는 미쁘시니 또한 이루시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