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tthew Henry's Complete Commentary
Matthew Henry · 1714
Matthew Henry 사후(1714) 공개 도메인. 디지털판 CC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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¹ 내가 여호와를 사랑함은 그가 내 음성 내 간구를 들으심이로다
² 그의 귀를 내게 기울이셨으므로 내가 평생에 기도하리로다
³ 사망의 줄이 나를 두르고 스올의 고통이 내게 이르므로 내가 환난과 슬픔을 만났을 때에
⁴ 내가 여호와의 이름으로 기도하기를 여호와여 주께 구하오니 내 영혼을 건지소서 하였도다
⁵ 여호와는 은혜로우시며 의로우시며 우리 하나님은 긍휼이 많으시도다
⁶ 여호와께서는 순진한 자를 보존하시나니 내가 낮게 되었을 때에 나를 구원하셨도다
⁷ 내 영혼아 네 평안함으로 돌아갈지어다 여호와께서 너를 후대하심이로다
⁸ 주께서 내 영혼을 사망에서, 내 눈을 눈물에서, 내 발을 넘어짐에서 건지셨나이다
⁹ 내가 생존하는 땅에서 여호와 앞에 행하리로다
시편의 이 부분에는 이런 것이 있다.
I. 다윗의 경험과 그의 경건한 결심을 전반적으로 서술한 것이다(시 116:1, 2). 이 두 절은 이 시편 전체의 요약과 같아서 시편의 얼개를 보여 준다. 1. 그는 기도에 응답하여 베푸신 하나님의 선하심을 경험하였다. 그가 내 음성과 내 간구를 들으셨다. 다윗은 궁지에서 겸손하고 간절하게 하나님께 자비를 구하였고 하나님이 그를 들으셨다. 곧 그의 기도를 은혜롭게 받으시고 그의 형편을 살펴 아시고 평강의 응답을 주셨다. 그가 그의 귀를 내게 기울이셨다. 이 말은 그분이 기도를 들으실 준비가 되어 있고 기꺼이 들으심을 나타낸다. 그분은 이를테면 기도하는 입에 귀를 대고 들으시니, 그 기도가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속삭여질 때에도 그러하시다. 그분은 귀를 기울여 들으신다(렘 8:6). 그러나 이 말은 하나님이 기도를 들으시는 것이 놀라운 낮추심임도 함께 나타낸다. 그것은 그분이 귀를 굽히시는 일이다. 주여, 사람이 무엇이기에 하나님이 이토록 몸을 굽혀 그에게 향하시나이까! 2. 그는 이를 생각하고 자신을 온전히 하나님과 그분의 영예에 바치기로 결심하였다. (1.) 그는 하나님을 더욱 사랑할 것이다. 그는 마음에 가득 찬 것을 고백하면서 다소 대뜸 이 시편을 시작한다. 내가 여호와를 사랑한다(시 18:1처럼). 이렇게 시작하는 것이 마땅하니, 첫째 되는 큰 계명에 맞고 또 하나님이 우리에게 후한 선물을 주시는 목적에도 맞기 때문이다. "나는 그분만 사랑하고 그분 외에는 아무것도 사랑하지 않되, 그분 때문에 사랑하는 것만은 예외다."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긍휼의 사랑은 그분을 기뻐하는 우리의 사랑을 마땅히 요구한다. (2.) 그는 기도를 더욱 사랑할 것이다. 그러므로 내가 그를 부르리로다. 기도에 응답하여 베푸신 하나님의 선하심을 경험한 일은 우리가 계속 기도하도록 크게 격려한다. 우리가 합당하지 못하고 기도에도 연약함이 있었으나 잘되었으니 어찌 계속하지 않겠는가? 하나님은 우리로 기도를 사랑하게 하시려고 기도에 응답하시며, 그 은혜에 대한 보답으로 우리에게 이것을 기대하신다. 이 밭에서 이토록 후한 대접을 받았는데 어찌 다른 밭에서 이삭을 줍겠는가? 아니, 내가 평생에 그를 부르리로다(히브리어로 내 날 동안에). 날마다 마지막 날까지 그리하리라. 주목하라. 우리가 사는 동안에는 계속 기도해야 한다. 이 숨은 마지막 숨을 쉴 때까지 쉬어야 하니, 그때에야 이 숨과 작별할 것이고 그때까지는 늘 이 숨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II. 하나님이 그를 은혜롭게 대하신 일과 그로 말미암아 그에게 새겨진 선한 감화를 더 자세히 서술한 것이다.
(1.) 다윗의 경험을 되짚어 보자. [1.] 그는 큰 곤경과 환난에 처하였다(시 116:3). 사망의 줄이 나를 둘렀으니, 곧 그를 죽일 듯한 고통, 죽음의 진통이라 여겨질 만한 고통이었다. 아마도 극심한 몸의 아픔이나 마음의 괴로움을 여기서 스올의 고통이라 부른 것이니, 죄를 자각하는 데서 오는 양심의 두려움이다. 주목하라. 사망의 고통은 큰 고통이고 스올의 고통은 큰 아픔이다. 그러므로 앞의 것을 대비하기에 힘써서 뒤의 것을 면하자. 이 고통들이 사방에서 그를 둘렀다. 그것들이 그를 붙들어 사로잡았으므로 그가 벗어날 수 없었다. 밖으로는 다툼이요 안으로는 두려움이었다. "내가 환난과 슬픔을 만났다. 그것들이 나를 찾아왔을 뿐 아니라 내가 그것들을 찾아내기도 하였다." 우울한 사람들은 스스로 찾아낸 슬픔이 많고, 공상과 감정에 빠져 스스로 만들어 낸 괴로움이 많다. 이것이 때로는 선한 사람들의 약점이기도 하였다. 하나님의 섭리가 우리 형편을 어렵게 하실 때 우리 자신의 지각없음으로 그것을 더 어렵게 만들지 말자. [2.] 환난 중에 그는 믿음과 뜨거움으로 기도하여 하나님께 나아갔다(시 116:4). 그는 자기가 기도하였다고 말한다. 그때에 내가 여호와의 이름을 불렀다. 그때, 곧 마지막 궁지에 몰렸을 때 그는 이 방법을 썼는데, 최후의 수단으로 쓴 것이 아니라 모든 상처에 듣는 약임을 이미 알고 있던 오래되고 유일한 약으로 쓴 것이다. 그는 자기 기도가 무엇이었는지 알려 준다. 짧지만 요긴한 기도였다. "여호와여 주께 구하오니 내 영혼을 건지소서. 나를 사망에서 구하시고 죄에서 구하소서. 죄야말로 영혼을 죽이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의 기도의 겸손함과 간절함이 다 이 말에 담겨 있다. 여호와여 주께 구하오니. 우리가 은혜의 보좌 앞에 나아갈 때에는 자선과 그날의 양식을 구하는 걸인처럼 나아가야 한다. 이어지는 말 여호와는 은혜로우시며(시 116:5)는 그의 기도의 일부로, 곧 그의 간구를 뒷받침하고 그의 믿음과 소망을 북돋우는 근거로 볼 수 있다. "주여, 내 영혼을 건지소서. 주는 은혜로우시며 긍휼이 많으시니 제가 의지할 것은 오직 그것뿐입니다." [3.] 하나님은 그의 기도에 응답하여 때에 맞고 실효 있는 도움을 베푸셨다. 그는 하나님이 은혜롭고 긍휼이 많으시며 그 불쌍히 여기심으로 순진한 자를 보존하심을 겪어 알았다(시 116:6). 그들이 순진하기 때문에, 곧 진실하고 정직하며 속임이 없기 때문에 하나님이 그들을 보존하신다. 바울을 보존하신 것과 같으니, 그는 세상에서 육체의 지혜로 하지 아니하고 하나님의 거룩함과 진실함으로 처신하였다. 또 그들이 순진하기 때문에, 곧 약하고 무력하여 스스로 앞가림을 못하고 깊은 속셈도 계략도 없는 자들이기 때문에 하나님이 그들을 보존하신다. 그들이 자기를 그분께 맡기고 자기 능력을 의지하지 않기 때문이다. 믿음으로 하나님의 보호 아래 자기를 두는 자들은 안전할 것이다.
(2.) 다윗이 자기 경험을 직접 말하게 하자. [1.] 하나님이 그를 환난 중에 붙드셨다. "내가 낮아졌을 때, 곧 비참함의 깊은 데로 빠졌을 때 그가 나를 도우셨다. 가장 나쁜 일을 견디도록 도우시고 가장 좋은 것을 바라도록 도우셨으며, 기도하도록 도우셨으니 그렇지 않았다면 소원이 끊겼을 것이고, 기다리도록 도우셨으니 그렇지 않았다면 믿음이 꺼졌을 것이다. 나는 하나님이 보존하신 순진한 자들 가운데 하나였으니, 이 곤고한 자가 부르짖으매 여호와께서 들으셨다"(시 34:6). 주목하라. 하나님의 백성이 아무리 낮아져도 그 아래에는 영원하신 팔이 있으니, 그렇게 붙들린 자는 가라앉을 수 없다. 오히려 하나님은 가장 아쉬운 때, 곧 힘이 다한 그때에 돕기를 택하신다(신 32:36). [2.] 하나님이 그를 환난에서 건지셨다(시 116:8). 주께서 건지셨나이다. 이 말은 그가 막 빠지려던 곤경을 미리 막아 주셨다는 뜻일 수도 있고, 이미 빠져 있던 곤경에서 그를 되돌려 내셨다는 뜻일 수도 있다. 하나님이 은혜롭게 건지셨다. 첫째, 그의 영혼을 사망에서 건지셨다. 주목하라. 우리가 살아 있는 것은 하나님의 큰 자비다. 죽음의 문턱까지 갔다가 살아나 다시 일으켜졌다면 그 자비를 더욱 절실히 느낀다. 여러 번 잃을 뻔하고 여러 번 위태로웠던 생명이 그래도 이어진다는 것은 자비의 기적이다. 영혼을 영적인 죽음과 영원한 죽음에서 건지신 일은 이제 거룩하게 되었고 머지않아 영광을 얻을 모든 자가 특별히 인정해야 할 일이다. 둘째, 그의 눈을 눈물에서 건지셨으니, 곧 그의 마음을 지나친 슬픔에서 건지신 것이다. 슬픔의 빌미, 곧 슬픔을 일으키는 재앙에서 지켜 주시거나 적어도 지나친 슬픔에 삼켜지지 않게 하시는 것은 큰 자비다. 하나님이 낙심한 자를 위로하시고 슬퍼하는 자의 베옷을 벗기시고 기쁨으로 띠 띠우실 때, 그분은 그들의 눈을 눈물에서 건지신다. 다만 이 일은 하나님이 우리 눈에서 모든 눈물을 씻어 주실 저 세상에 이르기까지는 온전히 이루어지지 않는다. 셋째, 그의 발을 넘어짐에서, 곧 죄에 빠지고 그로 인해 비참함에 빠지는 데서 건지셨다. 우리 발이 거의 미끄러질 때 하나님이 우리 오른손을 붙드시는 것은 큰 자비이니(시 72:2, 23), 그리하여 우리가 시험에 들어가도 그 시험에 압도되어 넘어지지 않는다. 또는 "내가 이미 한 발을 무덤에 들여놓았을 때 주께서 내 발이 그리로 떨어지지 않도록 건지셨나이다"라는 뜻이다.
(1.) 그는 하나님을 기뻐하는 삶을 살 것이다(시 116:7). 내 영혼아 네 평안함으로 돌아갈지어다. [1.] "너 자신을 쉬게 하고 편안하게 하라. 전에 그랬듯이 하나님을 믿지 못하여 불안해하며 스스로를 들볶지 말라. 너 자신을 잠잠하게 하고 그러고 나서 너 자신을 누리라. 하나님이 너를 인자하게 대하셨으니 그분이 언젠가 너를 모질게 대하시리라고 두려워할 까닭이 없다." [2.] "하나님 안에서 쉬라. 그분께 네 안식처로 돌아가고, 오직 그분에게만 있는 안식을 피조물에게서 찾지 말라." 하나님이 영혼의 안식처시다. 오직 그분 안에서만 영혼이 편안히 거할 수 있다. 그러므로 영혼은 그분께로 물러가 그분을 기뻐해야 한다. 그분이 우리를 후대하셨다. 우리의 위로와 새 힘을 넉넉히 마련해 주셨고, 언제 어느 때든 그 유익을 얻으러 자기께 나아오라고 격려하셨다. 그러니 우리는 그것으로 만족하자. 그리스도께서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에게 주시는 그 안식으로 돌아가라(마 11:28). 네 노아에게로 돌아가라. 그 이름은 안식을 뜻하니, 비둘기가 쉴 곳을 찾지 못하고 방주로 돌아간 것과 같다. 우리가 밤에 잠들며 눈을 감을 때에도, 저 긴 잠인 죽음에서 눈을 감을 때에도 이보다 더 알맞은 말을 나는 알지 못한다. 내 영혼아 네 평안함으로 돌아갈지어다.
(2.) 그는 하나님께 헌신하는 삶을 살 것이다(시 116:9). 내가 생존하는 땅에서 여호와 앞에 행하리로다. 곧 내가 이 세상에 사는 동안 그리하겠다는 것이다. 주목하라. [1.] 여호와 앞에 행하는 것이 우리의 큰 본분이다. 곧 우리가 하는 모든 일을 그분의 임재 안에서 그분의 눈 아래 합당하게 행하는 것이요, 우리의 주권자이신 주께 우리를 맞추고 그 뜻에 복종함으로 거룩하신 하나님께 인정받는 것이며, 스스로 넉넉하신 하나님을 기쁘게 신뢰함으로 그리하는 것이다. 나는 전능한 하나님이라 너는 내 앞에서 행하라(창 17:1). 우리는 주께 합당하게 행하여 범사에 기쁘시게 해야 한다. [2.] 우리가 생존하는 땅에 있다는 사실을 생각하면 우리는 마땅히 그렇게 살아야 하고 또 그렇게 살도록 재촉받는다. 우리가 생존하는 땅에 살아남아 있는 것은 우리 하나님의 능력과 오래 참으심과 부드러운 자비 덕분이니, 그러므로 우리는 그분을 향한 본분을 양심으로 지켜야 한다. 생존하는 땅은 자비의 땅이니 우리가 감사할 일이요, 기회의 땅이니 우리가 잘 써야 할 일이다. 가나안이 생존하는 땅이라 불렸으니(겔 26:20), 그런 환상의 골짜기에 몫을 받은 자들은 특별히 항상 여호와를 자기 앞에 모시는 일에 마음을 써야 한다. 하나님이 우리 영혼을 사망에서 건지셨다면 우리는 그분 앞에서 행해야 한다. 새 생명은 참으로 새 삶이어야 한다.
시편 116장 10-19 Matthew Henry's Complete Commentary
¹⁰ 내가 믿었으므로 말하였노라 내가 큰 곤경에 빠졌을 때도: ¹¹ 내가 급히 말하기를, 모든 사람은 거짓말쟁이라 하였도다. ¹² 내게 주신 모든 은혜를 내가 여호와께 무엇으로 보답할꼬? ¹³ 내가 구원의 잔을 들고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리로다. ¹⁴ 내가 여호와께 나의 서원을 갚으리이다 이제 그의 모든 백성 앞에서. ¹⁵ 그의 성도들의 죽음은 여호와 보시기에 귀하도다. ¹⁶ 오 여호와여, 진실로 나는 주의 종이니 나는 주의 종이요, 주의 여종의 아들이니 주께서 나의 결박을 푸셨나이다. ¹⁷ 내가 주께 감사의 제사를 드리고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리로다. ¹⁸ 내가 여호와께 나의 서원을 갚으리이다 이제 그의 모든 백성 앞에서, ¹⁹ 여호와의 집 뜰에서, 예루살렘아, 네 한가운데서. 여호와를 찬양하라.
칠십인역과 몇몇 다른 옛 역본은 이 구절들을 앞 시편과 구별되는 별개의 시편으로 삼는다. 어떤 이들은 이 시편을 순교자의 시편이라 불렀는데, 아마도 시편 116:15 때문일 것이다. 여기서 다윗은 세 가지를 고백한다.
I. 그의 믿음이다(시 116:10). 내가 믿었으므로 말하였도다. 사도는 이 말을 인용하여(고후 4:13) 자기와 동료 사역자들에게 적용하는데, 그들은 그리스도를 위하여 고난을 받으면서도 그분을 시인하기를 부끄러워하지 않았다. 다윗은 하나님의 존재와 섭리와 약속을 믿었고, 특히 사무엘을 통하여 하나님이 그에게 주신 보증, 곧 그가 목자의 막대기를 왕의 규로 바꾸게 되리라는 보증을 믿었다. 그는 이것을 믿는 가운데 많은 고생을 겪었고 그래서 말하였다. 그는 기도로 하나님께 말하였고(시 116:4) 찬양으로도 말하였다(시 116:12). 하나님을 믿는 자들은 그분께 아뢴다. 그는 자기 자신에게도 말하였으니, 믿었으므로 자기 영혼에게 네 평안함으로 돌아갈지어다 하고 말하였다. 그는 다른 이들에게도 말하여 자기 소망이 무엇이며 그 근거가 무엇인지 벗들에게 알렸다. 그 일로 사울이 그에게 더욱 분노하였고 그는 그 때문에 큰 고난을 받았다. 주목하라. 마음으로 믿는 자는 입으로 시인해야 한다. 하나님께 영광이 되게 하고 다른 이들을 격려하며 자기 진실함을 드러내기 위해서다(롬 10:10; 행 9:19, 20). 영광의 나라를 바라며 사는 자들은 그 나라를 자기들을 위하여 사신 분께 진 빚을 두려워하거나 부끄러워하지 말고 시인해야 한다(마 10:22).
II. 그의 두려움이다(시 116:11). 내가 큰 곤고를 당하였고, 그때 내가 급하여 이르기를—다소 성급하고 생각 없이, 어떤 이들의 풀이로는 넋을 잃고 곧 정신이 아득할 때에, 또 다른 이들의 풀이로는 도망하는 중에 곧 사울이 나를 뒤쫓을 때에—모든 사람이 거짓말쟁이라 하였다. 곧 그가 상대해야 했던 모든 사람, 사울과 그의 모든 신하가 그러하다는 것이다. 자기 편에 서 주리라 여겼던 벗들도 그가 궁정에서 총애를 잃자 그를 버리고 모르는 체하였다. 어떤 이들은 이 말이 특히 사무엘을 두고 한 말이라고 본다. 사무엘은 그에게 왕위를 약속하였으나 그를 속인 셈이 되었기 때문이다. 그가 말하기를 내가 언젠가는 사울의 손에 망하리라 하였다(삼상 27:1). 살펴보라. 1. 가장 뛰어난 성도의 믿음도 온전하지 않고 늘 한결같이 강하고 활발하지도 않다. 다윗은 믿고 잘 말하였으나(시 116:10) 이제는 믿지 못하여 잘못 말하였다. 2. 우리가 크고 쓰라린 고난 아래 있을 때, 특히 그 고난이 오래 이어질 때 우리는 쉬이 지치고 낙심하며 좋은 결말을 거의 단념하게 된다. 그러니 남을 함부로 판단하지 말고, 우리가 환난 중에 있을 때 우리 자신을 조심스럽게 지키자(시 39:1-3). 3. 선한 사람이 잘못 말한다면 그것은 급한 중에, 시험이 갑자기 닥친 가운데 한 말이지, 악인이 오만한 자의 자리에 앉아(시 1:1) 자기 형제를 공박하듯(시 50:19, 20) 곰곰이 생각하고 미리 벼려서 하는 말이 아니다. 4. 급한 중에 잘못 말한 것은 회개로 거두어들여야 하며(다윗이 시편 31:22에서 그리하였다), 그리하면 그것이 우리에게 허물로 돌아가지 않는다. 어떤 이들은 이것이 다윗의 경솔한 말이 아니라고 본다. 그는 크게 고난을 당하여 도망해야 했으나 사람을 의지하지 않았고 육신으로 자기 팔을 삼지 않았다. 도리어 그는 이렇게 말한 것이다. "모든 사람이 거짓말쟁이라. 낮은 자도 헛되고 높은 자도 거짓되니, 그러므로 나의 신뢰는 오직 하나님께 있었고 그분 안에서는 실망할 수 없다." 사도도 이런 뜻으로 받은 듯하다. 롬 3:4에 하나님은 참되시다 할지어다 사람은 다 거짓되다 하였으니, 하나님과 견주어 그러하다는 것이다. 사람은 다 변덕스럽고 한결같지 않으며 쉬이 바뀐다. 그러므로 사람에게서 손을 떼고 하나님께 붙어 있자.
III. 그의 감사다(시 116:12 이하). 하나님은 그가 두려워한 것보다 그를 더 잘 대해 주셨고 그의 곤경에서 그를 은혜롭게 건져 주셨다. 그것을 생각하여,
그는 무엇으로 갚을지 묻는다(시 116:12). 내게 주신 모든 은혜를 내가 여호와께 무엇으로 보답할꼬? 여기서 그는 이렇게 말한다. (1.) 하나님께 받은 많은 자비를 절실히 느끼는 사람으로서 말한다. 곧 그의 모든 은혜를 느낀다. 이 시편은 어떤 한 가지 은혜를 계기로 지어진 듯하나(시 116:6, 7), 그는 그 하나에서 많은 은혜를 보았고 그 하나가 많은 은혜를 떠올리게 하였으므로, 이제 그는 자기에게 베푸신 하나님의 모든 은혜를 헤아린다. 주목하라. 하나님의 자비를 말할 때에는 그것을 크게 여기고 높이 말해야 한다. (2.) 어떻게 감사를 나타낼지 마음을 쓰고 애쓰는 사람으로서 말한다. 내가 여호와께 무엇으로 보답할꼬? 그는 자기가 받은 것에 값하거나 그것에 상응하는 대가를 드릴 수 있다고 생각한 것이 아니다. 우리는 하나님께 보상을 드릴 수 없고 그분께 어떤 은혜를 받을 공로도 세울 수 없다. 다만 그는 감사하는 마음의 표시로 하나님이 기뻐 받으실 만한 무엇을 드리고자 한 것이다. 그는 하나님께 무엇으로 보답할꼬? 하고 묻고, 제사장에게 묻고, 벗들에게 묻고, 아니 오히려 자기 자신에게 물으며 자기 마음과 의논한다. 주목하라. 하나님께 많은 은혜를 받았으니 우리도 무엇으로 보답할까? 하고 물어야 마땅하다.
그는 무엇으로 갚을지 결심한다.
(1.) 그는 가장 경건하고 엄숙한 방식으로 하나님께 찬양과 기도를 올릴 것이다(시 116:13, 17). [1.] "내가 구원의 잔을 들리라. 곧 율법이 정한 전제를 드려 하나님께 감사를 표하고, 하나님이 내게 베푸신 선하심을 두고 벗들과 함께 기뻐하리라." 이것을 구원의 잔이라 부르는 것은 자기가 건짐 받은 일을 기억하며 마시기 때문이다. 경건한 유대인들은 집에서 밥을 먹을 때에도 때때로 축복의 잔을 두었는데, 집안의 가장이 하나님께 감사하며 먼저 마시고 그 상에 앉은 모든 사람이 그와 함께 마셨다. 그러나 어떤 이들은 이 말을 그가 하나님께 올려 드리는 잔이 아니라 하나님이 그의 손에 쥐여 주시는 잔으로 이해한다. 내가 받으리라. 첫째, 고난의 잔이다. 훌륭한 해석자들 여럿이 이것을 그 잔, 곧 저 쓴 잔으로 이해하는데, 그 잔도 성도에게는 거룩하게 되어 그들에게 구원의 잔이 된다. 빌 1:19에 이것이 도리어 나의 구원에 이르게 하리라 하였으니, 그것은 영혼의 건강에 쓰이는 방편이다. 다윗의 고난은 그리스도의 고난의 모형이었고, 우리도 우리의 고난에서 그분의 고난에 참여하며, 그분의 잔은 참으로 구원의 잔이었다. "하나님이 내게 이토록 많은 은혜를 베푸셨으니, 그분이 내 손에 어떤 잔을 쥐여 주시든지 나는 기꺼이 받고 따지지 않으리라. 그분의 거룩한 뜻을 반겨 맞으리라." 여기서 다윗은 다윗의 자손이 하실 말씀을 하였다. 요 18:11에 아버지께서 주신 잔을 내가 마시지 아니하겠느냐 하셨다. 둘째, 위로의 잔이다. "하나님이 내게 베푸시는 은혜를 그분의 손에서 받는 것으로 알고 그 안에서 그분의 사랑을 맛보리라. 그 사랑은 저 세상에서 내 기업의 몫일 뿐 아니라 이 세상에서도 내 잔의 몫이다." [2.] 내가 주께 감사제를 드리리이다. 곧 하나님이 요구하신 감사의 제물이다(레 7:11, 12 등). 주목하라. 마음이 참으로 감사하는 자들은 그 감사를 감사의 제물로 나타낸다. 우리는 먼저 우리 자신을 하나님께 산 제물로 드리고(롬 12:1; 고후 8:5), 그다음에 우리가 가진 것을 그분의 영예를 위하여 경건과 자선의 일에 써야 한다. 선을 행함과 나누어 주기는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제사이며(히 13:15, 16), 이 일이 그분의 이름에 감사하는 일과 함께 가야 한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후히 베푸셨다면 우리가 보답으로 할 수 있는 최소한의 일은 가난한 자에게 후히 베푸는 것이다(시 16:2, 3). 값이 들지 않는 것을 어찌 하나님께 드리겠는가? [3.] 내가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리로다. 그는 이것을 약속하였고(시 116:2) 여기서 다시 되풀이하며(시 116:13), 또 한 번 되풀이한다(시 116:17). 우리와 같은 사람에게 신세를 지면 우리는 다시는 폐를 끼치지 않겠다고 말한다. 그러나 하나님은 자기 백성의 기도를 자기에게 영예가 되고 기쁨이 되는 일로 여기시며 조금도 성가시게 여기지 않으신다. 그러므로 우리는 전에 받은 자비에 감사하여 더 많은 자비를 그분께 구하며 계속 그분을 불러야 한다.
(2.) 그는 하나님에 대하여 늘 선한 생각을 품을 것이니, 곧 그분이 자기 백성의 생명과 위로를 매우 아끼신다는 생각이다(시 116:15). 그의 성도들의 죽음은 여호와께서 보시기에 귀중하다. 얼마나 귀중한지, 사울에게도 압살롬에게도 다윗의 어떤 원수에게도 그 죽음을 내주어 그들이 아무리 간절히 바라던 것을 이루게 하지 않으실 만큼 귀중하다. 다윗은 곤경과 위험이 깊었을 때 이 진리로 자기를 위로하였고, 일이 그대로 이루어져 이 진리가 확증되었으므로 이제 같은 위험에 놓일 다른 이들을 이 진리로 위로한다. 하나님께는 이 세상에도 자기 백성이 있으니, 그들은 그분의 성도, 곧 자비를 입은 자들이요 자비를 베푸는 자들이다. 그들은 그분께 자비를 받았고 그분을 위하여 자비를 베푼다. 하나님의 성도들도 죽을 몸이라 죽어 간다. 아니, 그들의 죽음을 바라며 그것을 앞당기려고 온 힘을 다하는 자들이 있고 때로는 정말로 그들을 죽이기도 한다. 그러나 그 죽음은 여호와께서 보시기에 귀중하다. 그들의 생명이 그러하고(왕하 1:13) 그들의 피가 그러하다(시 72:14). 하나님은 성도가 죽음과 한 걸음 사이에 있을 때에도 그 죽음을 여러 번 놀랍게 막으신다. 또 그들의 죽음에 각별히 마음을 쓰셔서 그 모든 정황이 가장 좋게 되도록 정하신다. 그들을 죽이는 자가 그 일을 아무리 가볍게 여겨도, 성도의 피를 찾으실 때에 그들은 비싼 값을 치르게 된다(마 23:35). 의인이 죽어도 마음에 두는 자가 없어도 하나님은 그 일을 마음에 두고 계심을 드러내실 것이다. 이 사실은 우리로 기꺼이 죽게 하며, 부름을 받는다면 그리스도를 위하여 죽게 한다. 우리의 죽음이 하늘에 기록될 것이기 때문이다. 하나님께 귀중한 것을 우리에게도 귀중하게 여기자.
(3.) 그는 평생 하나님의 종으로 살겠다고 자기를 매어 놓는다. 무엇으로 보답할꼬? 하고 물은 뒤에 그는 자기 자신을 내어 드리니, 이것이 모든 번제물과 희생 제물보다 나은 일이다(시 116:16). 여호와여 진실로 나는 주의 종이니이다. 여기에 이런 것이 있다. [1.] 다윗이 하나님께 대하여 고백하는 관계다. "나는 주의 종이니이다. 나는 그것을 택하고 그것을 결심하오니, 주를 섬기는 일에 살고 죽겠나이다." 그는 하나님께 사랑받는 하나님의 백성을 그의 성도라 불렀다. 그러나 자기 자신에게 그 말을 적용할 때에는 진실로 나는 주의 성도니이다라고 하지 않고—그것은 자기에게 너무 높은 이름으로 보였다—나는 주의 종이니이다라고 한다. 다윗은 왕이었으나 자기가 하나님의 종이라는 것을 자랑으로 여긴다. 땅의 가장 큰 왕들에게도 하늘의 하나님의 종이 되는 것은 수치가 아니라 영예다. 여기서 다윗은 사람들이 흔히 인사치레로 "나는 당신의 종이오" 하고 말하듯 하나님께 빈말을 한 것이 아니다. 아니다. "주여, 진실로 나는 주의 종이니이다. 주는 모든 것을 아시오니 내가 그러한 줄을 아시나이다." 그리고 그는 이 말을 거듭한다. 그 생각만으로도 기뻤고 그 자리를 끝까지 지키기로 결심하였기 때문이다. "나는 주의 종이요 나는 주의 종이니이다. 다른 이들은 무슨 주인이든 섬기라지. 진실로 나는 주의 종이니이다." [2.] 그 관계의 근거다. 사람이 종이 되는 길은 두 가지다. 첫째, 태어남으로 된다. "주여, 내가 주의 집에서 났나이다. 나는 주의 여종의 아들이니 그러므로 주의 것이니이다." 경건한 부모의 자녀로 나는 것은 큰 자비이니, 그것이 우리를 본분에 매어 놓고 또 하나님께 자비를 구할 근거가 되기 때문이다. 둘째, 속량함으로 된다. 사로잡힌 자를 풀어 준 사람이 그를 자기 종으로 삼는다. "주여, 주께서 나의 결박을 푸셨나이다. 나를 두르던 저 사망의 슬픔에서 주께서 나를 놓아 주셨으니, 그러므로 나는 주의 종이요 주의 일을 할 사람이며 또한 주의 보호를 받을 사람이니이다." 주께서 풀어 주신 그 결박이 도리어 나를 주께 더욱 단단히 매리이다. 패트릭의 말이다.
(4.) 그는 자기 서원을 갚고 고난의 날에 하나님께 약속한 것을 지키기를 양심으로 힘쓸 것이다. 곧 자기가 드리기로 서원한 찬양의 제물을 드릴 뿐 아니라, 환난의 날에 스스로 하나님께 지운 다른 모든 의무도 이행할 것이다(시 116:14). 내가 나의 서원을 갚으리이다. 그리고 다시 (시 116:18) 이제 그의 모든 백성 앞에서 갚으리라고 한다. 주목하라. 서원은 반드시 갚아야 할 빚이니, 서원하고 갚지 않느니 차라리 서원하지 않는 것이 낫다. 그는 자기 서원을 갚되 [1.] 곧바로 갚을 것이다. 그는 못난 빚쟁이처럼 갚기를 미루거나 날짜를 늦추어 달라고 하지 않고 "내가 이제 갚으리이다" 한다(전 5:4). [2.] 공개적으로 갚을 것이다. 그는 자기 찬양을 구석에서 서둘러 해치우지 않고, 하나님을 위하여 할 일이 있으면 그의 모든 백성 앞에서 할 것이다. 자랑하려는 것이 아니라, 자기가 하나님을 섬기는 일을 부끄러워하지 않음을 보이고 다른 이들도 함께하도록 이끌기 위해서다. 그는 이스라엘 백성이 무리로 모여 있는 성막 뜰에서, 예루살렘 한가운데서 자기 서원을 갚아 예배가 더 존중받게 할 것이다.
이 시편은 감사의 시편이다. 다윗이 어떤 특정한 일을 계기로 이 시편을 지었는지, 아니면 하나님이 여섯 가지 환난과 일곱 가지 환난에서 자기를 건져 주신 수많은 은혜로운 구원을 두루 돌아보며 지었는지는 분명하지 않다. 그 구원들이 그에게서 헌신과 사랑과 감사를 담은 매우 생생한 표현들을 끌어냈다. 우리도 이 시편을 노래할 때 그와 같은 경건한 마음으로 우리 영혼을 하나님께 들어 올려야 한다. 살펴보라. I. 시편 기자가 겪은 큰 곤경과 위험이니, 그것이 그를 거의 절망으로 몰아갔다(시 116:3, 10, 11). II. 그 곤경에서 그가 하나님께 드린 간구다(시 116:4). III. 기도에 응답하여 그에게 베푸신 하나님의 선하심을 그가 경험한 일이다. 하나님이 그의 기도를 들으셨고(시 116:1, 2), 그를 불쌍히 여기셨으며(시 116:5, 6), 그를 건지셨다(시 116:8). IV. 하나님이 자기에게 베푸신 선하심을 어떻게 갚아 드릴지에 대한 그의 마음 씀이다(시 116:12). 1. 그는 하나님을 사랑할 것이다(시 116:1). 2. 그는 계속해서 그분을 부를 것이다(시 116:2, 13, 17). 3. 그는 그분 안에서 쉴 것이다(시 116:7). 4. 그는 그분 앞에서 행할 것이다(시 116:9). 5. 그는 감사의 서원을 갚을 것이며, 그렇게 하여 하나님이 자기를 얼마나 자상히 돌보셨는지 인정하되 공개적으로 그리할 것이다(시 116:13-15, 17-19). 마지막으로, 그는 생애가 끝날 때까지 하나님의 신실한 종으로 남을 것이다(시 116:16). 이것은 거룩한 영혼이 내쉬는 숨결이며, 그 영혼이 참으로 복됨을 말해 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