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tthew Henry's Complete Commentary
Matthew Henry · 1714
Matthew Henry 사후(1714) 공개 도메인. 디지털판 CC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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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tthew Henry · 1714
Matthew Henry 사후(1714) 공개 도메인. 디지털판 CC0-1.0.
Robert Jamieson, A. R. Fausset, David Brown · 1871
Commentary Critical and Explanatory on the Whole Bible (1871). CCEL expanded electronic edition states it is in the public domain.
Albert Barnes · 1834
Albert Barnes' Notes on Revelation Of St. John The Divine (New Testament, English original, public domain). Sourced from the Christian Classics Ethereal Library (CCEL). Public domain. Retrieval mirror: biblehub.com/commentaries/barnes.
Adam Clarke · 1831
Public domain English commentary by Adam Clarke, normalized from Wikisource book pages for scripture.how. Public domain. Retrieval mirror: biblehub.com/commentaries/clarke.
John Gill · 1763
John Gill(1697-1771), Exposition of the Old and New Testament(1746-1763). Public domain. Retrieval mirror: biblehub.com/commentaries/gill.
John Calvin · 1850
종교개혁 신학 원천 (영역본 PD, 대부분 — 전권 아님)
Matthew Poole · 1685
간결 절별 전권 개혁주의 주석
ed. H.D.M. Spence & Joseph S. Exell · 1890
전권 강해·설교·예화 풍부 (항목 대량)
Carl F. Keil, Franz Delitzsch · 1866
구약 학술 표준 — 히브리어·문헌비평·고대근동 배경
ed. Charles J. Ellicott · 1878
학술+가독 균형 전권 주석
Cambridge (다저자) · 1900
준전권 준학술 (권별 저자·연도 확인)
Marvin R. Vincent · 1887
신약 헬라어 단어 연구
A.T. Robertson · 1933
헬라어 시제·문법 해설 결정판 (KR PD / US 1931+ 권별)
ed. W. Robertson Nicoll (다저자) · 1910
헬라어 신약 학술 (권별 저자 PD 확인 필요)
Heinrich A.W. Meyer · 1880
신약 학술 정밀주해 (독일 — K&D 대응)
John Wesley · 1755
간결 실용 전권(NT 1755 / OT 1765) 웨슬리안
Joseph Benson · 1815
웨슬리안 전권 주석
Charles H. Spurgeon · 1885
시편 주석 고전 (설교 자료 풍부)
Alexander Maclaren · 1910
설교형 강해 명저 (전권, 절별 가공 필요)
B.W. Johnson · 1891
평이 절별 신약 해설 (일반신자·모바일)
Thomas Coke · 1803
감리교 전권 주석
John Trapp · 1660
청교도 전권 주석 — Henry/Gill 보완
Charles Hodge · 1860
프린스턴 조직신학 관점 신약 정밀 주석 (롬·고전후·엡)
제1절
저자. 이 시는 앞의 시와 마찬가지로 표제가 없고, 시 자체에도 저자를 나타내는 것이 없다. 그러므로 저자를 알 수 있다면 다른 곳에서 알아야 한다. 그러나 다윗이 저자라고 볼 충분한 이유가 있으며, 신약의 권위를 인정하는 사람은 이를 의심하지 않을 것이다.
(a) 사도행전 4:25–26은 이 시를 명시적으로 다윗에게 돌린다. ‘주의 종 우리 조상 다윗의 입을 통하여 말씀하시기를 어찌하여 이방 나라들이 분노하며 민족들이 헛된 일을 꾸미는고’라고 하였다. 이 인용이 본 시를 가리킨다는 데 의심의 여지가 없고, 이는 유대인들 사이의 통상적 이해였음을 보여 준다. 이런 문제에서는 일반 전승이 옳을 가능성이 크며, 사도들의 영감을 인정한다면 다윗의 작품으로 인용했다는 사실이 결정적이다.
(b) 히브리 저술가들의 통설도 그러하다. 김히와 아벤 에스라는 명시적으로 다윗에게 돌리며, 이는 히브리 백성의 지배적 견해를 대변한다고 여겨진다.
(c) 다윗의 시편들 사이에 놓인 위치도 이를 시사할 수 있다. 시편 72편까지는 아삽에게 돌리거나 ‘아삽을 위하여’라고 한 50편 외에 다른 저자를 명시한 시가 없고 저자 미상인 시만 몇 편 있다. 시편 수집자가 이 부분을 다윗의 작품으로 이해했기 때문에 그렇게 배열했다는 것이 일반적 인상이다.
(d) 작품의 성격도 이 견해와 잘 맞는다. 문체만으로 다윗의 저자임을 입증할 독특한 특징은 없지만, 사상·문체·암시 가운데 그의 붓에서 나올 수 없거나 그를 저자로 보기에 부적절한 것도 없다. 유일하게 제기될 수 있는 반론은 ‘내가 나의 왕을 내 거룩한 산 시온에 세웠다’는 시편 2:6인데, 이는 뒤에서 살핀다.
제2절
저작 시기. 저자를 절대 확실히 정할 수 없으므로 정확한 시기도 알 수 없다. 다윗을 저자로 인정해도 저작 계기는 밝혀낼 수 없다. 시의 중심인 기름 부음 받은 이를 대적해 공모하는 왕들과 민족의 이름이 없고, 시편 2:6의 ‘시온 산’ 외에는 지역적 암시도 없다. 이 시는 저자 시대에 일어난 특정 사건을 직접 가리키려 한 것이 아니라, 제4절에서 보듯 먼 훗날 오실 메시아를 주로 가리킨 것으로 보인다. 다만 저자 시대의 사건에서 착상했을 수 있다.
주변 민족이 다윗과 히브리 백성을 대적하고 그 왕을 무너뜨리려 했던 일, 하나님이 원수에게 승리를 주고 백성의 왕으로 세우신 일, 그가 누린 번영과 승리가 이 시의 관념과 심상을 낳았을 수 있다. 다윗이 받은 대우와 메시아가 받을 대우가 매우 비슷하여 하나가 다른 하나를 떠올리게 했을 것이다. 확정할 수 없는 데서 추측이 허용된다면, 다윗이 주변 민족과 싸워 보좌와 나라를 세우려 했던 전쟁이 끝나고 하나님의 백성을 평화롭고 승리롭게 다스리게 된 뒤 지었다고 볼 수 있다. 그때 그는 자기 운명을 인성으로는 자기 후손인 하나님의 아들, 미래의 메시아와 자연스럽게 비교했을 것이다. 땅의 통치자들은 다윗에게 그랬듯 메시아에게도 ‘분노’할 것이나, 하나님은 다윗을 보좌에 세우셨듯 모든 반대를 이기고 메시아를 영구한 보좌에 세우실 것이며, 다윗의 홀은 메시아가 땅의 민족들을 다스릴 홀의 표상이 될 수 있었다.
이렇게 이해하면 이 시는 본래 다윗 자신이나 파울루스가 생각한 솔로몬 또는 다른 이스라엘 왕을 특별히 가리키지 않는다. 저자 다윗의 역사에서 일어난 사건이 언어를 제공했지만 오직 메시아만을 가리킨다. 많은 반대 속에서 자기 보좌를 세우고 이제 평안히 바라보는 사람이, 기름 부음 받은 이가 통과할 유사한 갈등과 승리를 내다보며 한 고요하고 행복한 성찰이다.
제3절
구조와 내용. 이 시는 구성이 매우 규칙적이고 극적인 성격이 강하며, 각각 세 절인 네 부분으로 자연스럽게 나뉜다.
I. 시편 2:1–3은 격동하는 민족들의 행동과 목적을 묘사한다. 그들은 크게 동요하며 야훼와 그의 기름 부음 받은 이를 대적해 계획하고, 그들의 결박을 끊고 권위를 벗어 버리려고 공모한다. 곧 2:6이 보여 주듯 기름 부음 받은 이를 거룩한 시온 산의 왕으로 세우지 못하게 하려 한다. 시작은 대담하고 갑작스럽다. 시편 기자는 문득 민족들을 바라보며 격렬한 소동에 빠진 모습을 본다.
II. 시편 2:4–6은 하나님의 감정과 목적을 묘사한다. 하나님은 확정된 작정으로(2:7 비교) 기름 부음 받은 이를 왕으로 세우기로 하셨다. 하늘에 평온히 앉아 반대자들의 헛된 계략을 비웃으시고, 무력한 분노를 웃으시며 계획을 꾸준히 이루신다. 자기 왕을 거룩한 시온 산에 세우셨다고 엄숙히 선언하시므로 그들의 모든 노력은 헛되다.
III. 시편 2:7–9에서는 왕, 곧 기름 부음 받은 이가 친히 말하여 자신에 관한 작정과 약속을 밝힌다. 그는 야훼의 아들로 선포될 것이며, 구하면 땅의 민족들을 소유로 받아 절대적인 홀로 다스릴 것이다.
IV. 시편 2:10–12에서 시편 기자는 민족의 통치자들에게 기름 부음 받은 이의 요구에 복종하라고 권한다. 거절하는 이에게 하나님의 진노를 경고하고 그를 의지하는 이에게 복을 약속한다.
따라서 이 시는 규칙적으로 구성되고, ‘기름 부음 받은 이’의 높은 권리와 궁극적 승리, 그의 작정에 대항하는 일의 헛됨, 그의 권위에 복종할 의무와 유익이라는 중심 사상을 전편에 걸쳐 전개한다. ‘각 문장도 형태가 매우 규칙적이며 대단히 균일한 평행법을 보인다’(알렉산더 교수). 히브리 시 특유의 이상에 비추어 시편 가운데 구조가 가장 완전한 작품 중 하나다.
제4절. 이 시가 누구를 가리키는가. 가능한 견해는 세 가지뿐이다. (a) 오직 다윗이나 다른 기름 부음 받은 이스라엘 왕을 가리킨다. (b) 본래 그 왕을 가리키지만 이차적으로 메시아도 가리킨다. (c) 오직 메시아만을 가리킨다.
첫 견해를 지지하는 이는 거의 없다. ‘코케이우스는 어디서나 그리스도를 찾고 그로티우스는 어디서도 찾지 못했다’고 비교되는 그로티우스조차 본래 다윗과 그의 원수인 블레셋·모압·암몬·에돔 등을 가리키지만 ‘더 신비롭고 심오한 의미에서는 메시아에게 속한다’고 인정한다. 시의 표현은 어떤 히브리 군주에게만 적용할 수 없으므로 그 왕만을 가리킨다고 볼 수 없다. 이는 해설에서 드러날 것이다. 같은 이유로 다윗을 일차적으로, 메시아를 이차적이고 더 높은 의미로 가리킨다고도 볼 수 없다. 이중 의미의 표지가 없으며 다윗에게 배타적으로 적용할 수 없다면 그에게 적용할 수 없다.
나는 이사야 53장처럼 본래부터 오직 메시아만을 가리킨다고 본다.
(1) 신약은 오직 그렇게 적용한다. 사도행전 4:24–27에서 사도 공동체는 첫 구절들을 그리스도에게 돌린다. ‘그들이 한마음으로 하나님께 소리를 높여 이르되 대주재여 … 또 주의 종 우리 조상 다윗의 입을 통하여 말씀하시기를 어찌하여 이방 나라들이 분노하며 족속들이 헛된 일을 경영하였는고 세상의 군왕들이 나서며 관리들이 함께 모여 주와 그의 그리스도를 대적하도다 하신 이로소이다. 과연 헤롯과 본디오 빌라도는 이방인과 이스라엘 백성과 합세하여 하나님께서 기름 부으신 거룩한 종 예수를 거슬러 모였나이다.’ 사도들의 권위를 인정하면 이 시가 메시아를 가리켰다는 데 의심이 없다. 이는 당시의 지배적 해석이었을 가능성도 보여 준다.
바울도 사도행전 13:32–33에서 그리스도와 메시아의 부활에 적용한다. ‘우리도 조상들에게 주신 약속을 너희에게 전파하노니 곧 하나님이 예수를 일으키사 우리 자녀들에게 이 약속을 이루게 하셨다 함이라 시편 둘째 편에 기록한 바와 같이 너는 내 아들이라 오늘 너를 낳았다 하셨고.’ 히브리서 1:5도 메시아가 천사보다 높은 지위임을 보이려고 같은 구절을 인용한다. ‘하나님께서 어느 때에 천사 중 누구에게 너는 내 아들이라 오늘 내가 너를 낳았다 하셨으며.’ 신약 저자들에게 이 시는 본래 메시아를 가리켰으며, 그들은 그 적용이 문제 될 것을 염려하지 않은 듯하므로 당시 유대인의 통설이기도 했다.
(2) 고대 히브리인들의 지배적 해석이었다는 다른 증거도 있다. 소하르와 탈무드 같은 오래된 유대 문헌의 여러 곳이 메시아적으로 해석한다. Raymond Martini, Pug. Fid., Carpzov 판 여러 곳과 Schöttgen, de Messia, pp.227 이하를 보라. 김히와 야르히도 조상들의 지배적 해석이었음을 인정한다. 야르히는 ‘이단자들’, 곧 그리스도인들이 여기서 끌어낸 논증의 힘을 깨뜨리기 위해 다윗으로 해석한다고 솔직히 말한다(Hengstenberg, Christ. I.77).
(3) 시 자체에서도 메시아를 가리키는 것이 분명하다. (a) 다윗이나 어떤 지상 왕에게도 적절히 적용할 수 없는 표현들이 있다. 특히 ‘아들’이라는 독특한 말과 ‘땅끝’을 그에게 맡기겠다는 약속이다. ‘아들들’은 입양으로 하나님의 자녀가 된 의인들에게 복수로 쓰이지만, 여기처럼 단수로 지상 군주나 경건한 사람에게 적용되지는 않는다.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칭호는 어떤 지위의 필멸자보다 하나님과 더 가까운 관계를 나타내며(요한복음 5:18 주석 비교), 유대인들도 그렇게 이해했다. 구약은 지상 군주에게 여기와 같은 방식으로 쓰지 않는다. 이는 이 본문이 때때로 가르친다고 여겨지는 하나님의 아들의 ‘영원 발생’ 교리가 옳은지와 무관하다.
(b) 여기 약속된 통치의 범위와 나라의 영속성은 다윗이나 다른 군주에게 적용할 수 없고 메시아에게 온전히 적용된다(2:8, 10). (c) 그를 의지하는 이에게 주는 약속과 순종하지 않는 이에게 주는 경고(2:12)도 메시아에게만 온전히 맞는다. (d) 메시아 해석을 부정한 이들이 그럴듯한 다른 해석이나 대상을 제시하지 못했다는 사실도 강한 개연성을 준다. 이스라엘 왕 가운데 다윗이나 솔로몬 외에는 후보가 없으나 그들의 생애에도 맞는 사건이 없고 지지자들 사이에도 실질적 합의가 없다. 로젠뮐러와 드 베테도 다윗이나 솔로몬을 가리킬 수 없다고 본다.
일부 현대 유대인은 블레셋이 다윗을 치러 올라왔을 때(사무엘하 5:17) 다윗이 자신에 관해 지었다고 하지만, 그 사건은 시의 언어와 맞지 않는다. 그때 시온 산을 특별히 봉헌한 일도 없었고(2:6), 그 산은 블레셋 전쟁 후 성막이 세워질 때까지 거룩한 곳으로 여겨지지 않았다. 압살롬의 반역이나 다윗의 다른 상황에도 마찬가지다. 솔로몬에게 적용할 이유는 더 적다. 그에 대한 반역, 멍에를 벗으려는 보편적 시도, 그런 시도 때문에 또는 그것을 무릅쓰고 왕으로 엄숙히 봉헌된 사건이 없기 때문이다.
(e) 전체 구조와 세부가 메시아에 관한 기록과 일치한다. 유력한 반론은 드 베테의 말처럼 ‘기독교 교리에 따르면 메시아는 쇠홀을 든 민족 정복자가 아니며 그의 나라는 이 세상에 속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러나 시편 2:9은 그가 땅의 민족 위에 나라를 세우고 모든 원수를 굴복시키며 확고하고 저항할 수 없는 홀을 휘두른다는 뜻일 수 있다. 메시아 적용은 2:9 주석을 보라.
(4) 이 시는 히브리인이 지닌 메시아관을 고려할 때 그들의 시 문학에서 당연히 기대할 작품이다. 약속된 메시아는 가장 깊은 관심의 대상이고 모든 소망의 중심이었다. 그들은 그를 위대한 구원자, 왕자, 정복자, 구주로 바라보았고 하나님의 백성에 관한 기대를 모두 그에게 모았다. 화려한 종교 의식은 그를 예표했고 거룩한 시인들은 그의 오심을 노래했다. 시가 발달했고 이 높은 소망을 품은 민족에게 그의 성품과 통치의 영광을 전적으로 다룬 시 한 편이 있다는 것은 자연스럽다. 거룩한 시인들이 영감 아래 썼다는 사실까지 더하면 오직 메시아만을 가리키는 작품을 기대하는 것이 가장 자연스럽다. 이런 견해와 소망이 지배하고 구약의 많은 부분이 거룩한 시인데도, 본래 오직 메시아를 가리키는 제2편 같은 작품이 전혀 없었다면 오히려 지극히 부자연스러웠을 것이다.
이 시편은 그리스도의 나라를 대적하여 유대인과 이방인 모두가 일으킨 반대를 다룬다(Psalm 2:1-3). 그리스도의 승리와 그의 원수들의 혼란을 다룬다(Psalm 2:4-6). 그의 부활 후 복음의 선포를 다룬다(Psalm 2:7-9). 또한 그것을 거절하는 자들에게 임할 멸망 때문에, 땅의 모든 권세자와 재판관들에게 그것을 받아들이라고 부르는 요청을 다룬다(Psalm 2:10-12).
시편 2편 서론
이 시편은 순서상 둘째 시편이며, Acts 13:33에서도 그렇게 불린다. 이는 시편이 사도들의 때에도 지금과 같은 형태였고 또 언제나 그러하였음을 보여 준다. 그리고 비록 표제가 없으나 이것이 다윗의 시편임은 확실하니, 그리스도의 열두 사도가 한목소리로 이것을 그에게 돌리기 때문이다. 이 점에서 그들은 의심의 여지 없이 유대 의 일반적으로 받아들여진 견해를 (Acts 4:24). 그리고 메시아가 의 주제이며 이것이 그와 그의 인격과 직분과 나라에 관한 예언이라는 것은 다음에서 드러난다. 곧 그를 거스르는 반대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주의 기름 부음 받은 자 곧 메시아가 시온 위에 왕으로 세워지신다고 명백히 언급된 데서, 또 여기서 말하는 인물이 하나님의 아들이라 불리되 천사들과 사람들이 그렇게 불리지 않는 뜻으로 불려서 어떤 피조물에게도 그것이 속할 수 없다는 데서, 또 그가 그토록 큰 기업과 이방 나라들에 대한 그러한 권세를 지니신다는 데서, 또 땅의 왕들과 재판관들이 그에게 돌려야 할 경외와 섬김과 순종에서, 또 그에게 두어야 할 신뢰와 확신 곧 신적 위격이 아니고서는 두어서는 안 될 신뢰에서 드러난다. 그리고 더욱 특별하게는 신약에서 이 시편의 여러 구절이 인용되어 메시아에게 적용된 데서 드러난다(Acts 4:25). 여기에 덧붙일 것은, 옛 유대 학자들이 이 시편을 메시아에 관한 것으로 해석하였고(s), 근래의 어떤 이들은 이것이 다윗에 관한 것으로도 메시아에 관한 것으로도 이해될 수 있으며 어떤 것들은 다윗보다 메시아에 관한 것으로 더 분명하다는 점을 인정한다는 사실이다(t). 또 그 가운데 몇몇 구절은 유대인들 가운데 옛 저술가들과 후대 저술가들 모두에 의하여 그에게 적용된다. 이를테면 Psalm 2:1의 "어찌하여 이방 나라들이 분노하며" 등이 그러하다.
(u). Psalm 2:6의 "내가 세웠도다" 등(w), Psalm 2:7의 "내가 그 작정을 선포하리라" 등(x), 그리고 Psalm 2:8의 "내게 구하라" 등이 그러하다(y). 그러므로 우리는 그 전체를 그에 관한 것으로 해석하여도 매우 안전하다.
(s) Jarchi in loc. (t) Kimchi in v. 12. & Aben Ezra in v. 6. 12. (u) T. Bab. Avodah Zarah, fol. 3. 2. Pirke Eliezer, c. 19. (w) R. Saadiah Gaon in Daniel 7.13. (x) Yalkut Simeoni, par. 2. fol. 90. 2. Zohar in Numb. fol. 82. 2. Maimon in Misn Sanhedrin, c. 11. 1. & Abarbinel Mashmiah Jeshuah, fol. 37. 4. &. 38. 1. (y) T. Bab. Succah, fol. 52. 1. & Bereshit Rabba, s. 44. fol. 38. 4.
II.
As Psalms 1 describes the results of fulfilling the covenant for the individual by contrasting the condition of those who fail in their allegiance, so Psalms 2 shows how the covenant relation exalts Israel over the heathen; but some particular political situation seems to be indicated. Jerusalem appears to be threatened by a confederacy of hostile and rebellious powers—a confederacy that took advantage of the succession of a young and inexperienced monarch to throw off the bonds of subjection and tribute. David, Solomon, Ahaz, and Uzziah, have each of them been regarded as the hero and theme of the poem, but in each case there is some lack of correspondence between the history and the psalm. The psalm must therefore be regarded as expressing an ideal view of the future—an ideal which the poet felt, from his historic knowledge of the past, would not shape itself except under difficulties and opposition. Doubtless there were in his mind the prophetic words spoken of David’s son, “I will be his father, and he shall be my son”—words embodying the vital principle of the Hebrew monarchy, the essential idea of the Israelitish polity, that the king was only a regent in God’s name, the deputy of Jehovah, and the chosen instrument of His will. Starting from these words, the poet shapes an ideal monarchy and an ideal king—one who, though encountered by the worst forms of opposition, would prove himself a true son of David, and by his fidelity to his God and nation, a true son of God. Undismayed by the threatening aspect of things, and with prophetic words ringing in his ears, the youthful monarch aims at re-asserting God’s supremacy over the heathen, and imposing once more that restraint of His law and religion from which they longed to be free. Such a view of the psalm alone explains its want of exact historic coincidence, and vindicates the claims universally made for it of Messianic prevision; for there is but a step between the ideal king and the Messianic king—a step which, though perhaps unconsciously, the poets and prophets of Israel were for ever taking.
The psalm is lyric, with intense dramatic feeling. The poet begins and ends in his own person; but we hear the heathen muttering their threats, Jehovah answering them in thunder from heaven, and holding animated dialogue with His anointed, who, in turn, takes up the address, and declares His Divine mission and asserts His power. The strophical arrangement is fairly marked.
The circumstances which called forth this Psalm stand out clearly. A king of Israel, recently placed upon the throne, and consecrated by the solemn rite of anointing to be Jehovah’s representative in the government of His people, is menaced by a confederacy of subject nations, threatening to revolt and cast off their allegiance. The moment is critical: but his cause is Jehovah’s; their endeavour is futile. He asserts his high claims; and the nations are exhorted to yield a willing submission, and avoid the destruction which awaits rebels against the authority of Jehovah.
Who then was the king? and what was the occasion referred to? The king’s consciousness of his high calling, and the confidence with which he appeals to the divine promise, point to a time when that promise was still recent, and the lofty ideal of the theocratic kingdom had not been blurred and defaced by failure and defeat. For such a time we must go back to the reigns of David and Solomon.
(1) The language of Acts 4:25 does not decide the question, for ‘David’ in the N.T. may mean no more than ‘the Psalter’ (Hebrews 4:7) or ‘a Psalmist.’ The older commentators however attribute the Psalm to David, and suppose the occasion to have been the attack of the Philistines shortly after he was anointed king over all Israel (2 Samuel 5:17 ff.), or of the confederacy of Ammonites and Syrians described in 2 Samuel 10. But the Psalm speaks plainly (Psalm 2:3) of subject nations, while the Philistines certainly were not David’s subjects at the time, and it is doubtful if the Syrians were. See note on 2 Samuel 10.
(2) On the other hand there is good reason for supposing that Solomon was the king referred to. He was anointed at Gihon, and solemnly enthroned on Zion (1 Kings 1:45). Zion was already ‘Jehovah’s holy mountain’ in virtue of the presence of the Ark there. So strongly was the theocratic character of the kingdom then realised that he is said to have sat ‘on the throne of Jehovah’ (1 Chronicles 29:23; cp. Psalm 28:5). The Psalm is based upon the great promise in 2 Samuel 7:12 ff., which, although not limited to Solomon, would naturally be claimed by him with special confidence. Solomon succeeded to the great kingdom which his father had built up. But he was young. The succession was disputed. What more likely than that some of the subject nations should threaten to revolt upon his accession? Hadad’s request (1 Kings 11:21) shews that his enemies thought that their opportunity was come. It is true that we have no account of any such revolt in the Historical Books. But their records are incomplete and fragmentary; and the language of the Psalm implies that the revolt was only threatened, and had not as yet broken out into open war. There was still hope that wiser counsels might prevail (Psalm 2:10 ff.); and if they did, we should hardly expect to find any reference in Kings and Chron. to a mere threat of rebellion. Moreover, though Solomon’s reign was on the whole peaceful, there are incidental notices which make it plain that it was not uniformly and universally so. He made great military preparations (1 Kings 4:26; 1 Kings 9:15 ff; 1 Kings 11:27, 2 Chronicles 8:5 ff.), and engaged in wars (2 Chronicles 8:3); and Hadad and Rezon succeeded in ‘doing him mischief’ (1 Kings 11:21-25).
(3) The conjectures which refer the Psalm to a later occasion have but little probability. The confederacy of Pekah and Rezin against Ahaz (Isaiah 7); and the invasion of Judah by the Moabites and their allies (2 Chronicles 20) have been suggested: but neither of these was a revolt of subject nations.
The question still remains whether Solomon was himself the writer. The king and the poet appear to be identified in Psalm 2:7 ff.; but in such a highly dramatic Psalm, it is at least possible that the poet might introduce the king as a speaker, as he introduces the nations (Psalm 2:3), and Jehovah (Psalm 2:6).
The particular historical reference is however of relatively small moment compared with the typical application of the Psalm to the Kingdom of Christ. To understand this, it is necessary to realise the peculiar position of the Israelite king. Israel was Jehovah’s son, His firstborn (Exodus 4:22; Deuteronomy 32:6); and Israel’s king, as the ruler and representative of the people, was adopted by Jehovah as His son, His firstborn (2 Samuel 7:13 ff.; Psalm 89:26-27). It was a moral relationship, sharply distinguished from the supposed descent of kings and heroes from gods in the heathen world in virtue of which they styled themselves Zeus-born, sons of Zeus, and the like. It involved on the one side fatherly love and protection, on the other filial obedience and devotion.
The king moreover was not an absolute monarch in his own right. He was the Anointed of Jehovah, His viceroy and earthly representative. To him therefore was given not only the sovereignty over Israel, but the sovereignty over the nations. Rebellion against him was rebellion against Jehovah.
Thus, as the adopted son of Jehovah and His Anointed King, he was the type of the eternal Son of God, the ‘Lord’s Christ.’ Then, as successive kings of David’s line failed to realise their high destiny, men were taught to look for the coming of One who should fulfil the Divine words of promise, giving them a meaning and a reality beyond hope and imagination. See Introd. p. lxxvi ff.
This Psalm then is typical and prophetic of the rebellion of the kingdoms of the world against the kingdom of Christ, and of the final triumph of the kingdom of Christ. To Him all nations are given for an inheritance; if they will not submit He must judge them. This typical meaning does not however exclude (as some commentators think), but rather requires, a historic foundation for the Psalm.
In connexion with this Psalm should be studied 2 Samuel 7; Psalms 89; and Psalms 21, 45, 72, 110.
The references to this Psalm in the N.T. should be carefully examined.
(1) In Acts 4:25-28, Psalm 2:1-2 are applied to the confederate hostility of Jews and Gentiles against Christ.
(2) Psalm 2:7 was quoted by St Paul at Antioch (Acts 13:33) as fulfilled in the Resurrection of Christ (cp. Romans 1:4): and in the Epistle to the Hebrews the words are cited (the Messianic reference of the Psalm being evidently generally admitted) to describe the superiority of the Son to angels (Psalm 1:5): and as a declaration of the Divine sonship of Christ, in connexion with the proof of the Divine origin of His high-priesthood (Psalm 5:5).[2]
[2] In D and cognate authorities the words, “Thou art my son, this day have I begotten thee” are substituted for “Thou art my beloved son, in thee I am well pleased,” in Luke 3:22. This was also the reading of the Ebionite Gospel.
(3) It contains the titles ‘my Son’ (Matthew 3:17), and ‘the Lord’s Christ’ (Luke 2:26), which describe the nature and office of the Messiah. Comp. Matthew 16:16 : John 20:31.
(4) Its language is repeatedly borrowed in the Revelation, the great epic of the conflict and triumph of Christ’s kingdom. He ‘rules the nations with a rod of iron’ (Revelation 12:5; Revelation 19:15); and delegates the same power to His servants (Revelation 2:26-27). ‘Kings of the earth’ occurs no less than nine times in this book (Psalm 1:5, &c). ‘He that sitteth in the heavens’ is the central figure there (Psalm 4:2 and frequently).
These quotations sufficiently explain the choice of the Psalm as one of the Proper Psalms for Easter Day.
In a few Heb. MSS. the Second Psalm is reckoned as the First, the First being treated as an independent prologue to the whole book; in a few other MSS. the two are united. Origen says that this was the case in one of two copies he had seen (Op. ii. 537): and there was an ancient Jewish saying, “The first Psalm begins with blessing (Psalm 1:1), and ends with blessing” (Psalm 2:12). Some recensions of the LXX appear to have followed this arrangement, though Origen speaks as if all the Greek copies with which he was acquainted divided the two Psalms. Justin Martyr in his Apology (i. 40) cites Psalms 1, 2 as a continuous prophecy, and in Acts 13:33 D and cognate authorities representing the ‘Western’ text, read, ‘in the first Psalm.’
But though there are points of contact in phraseology (blessed, Psalm 1:1, Psalm 2:12; meditate, Psalm 1:2, Psalm 2:1; perish connected with way, Psalm 1:6; Psalm 2:12); they are clearly distinct in style and character. Psalms 1 is the calm expression of a general truth; Psalms 2 springs out of a special occasion; it is full of movement, and has a correspondingly vigorous rhythm. Probably the absence of a title to Psalms 2 (contrary to the usual practice of Book I) accounts for its having been joined to Psalms 1.
The Psalm is dramatic in form. The scene changes. Different persons are introduced as speakers. Its structure is definite and artistic. It consists of four stanzas, each (except the second) of seven lines.
i. The poet contemplates with astonishment the tumult of the nations, mustering with the vain idea of revolt from their allegiance (Psalm 2:1-3).
ii. But looking from earth to heaven he beholds Jehovah enthroned in majesty. He mocks their puny efforts. He has but to speak, and they are paralysed (Psalm 2:4-6).
iii. The king speaks, and recites the solemn decree by which Jehovah has adopted him for His son, and given him the nations for is inheritance, with authority to subdue all opposition (Psalm 2:7-9).
iv. The poet concludes with an exhortation to the nations to yield willing submission, instead of resisting to their own destruction (Psalm 2:10-12).
Jamieson-Fausset-Brown Commentary Critical and Explanatory on the Whole Bible
시편 2:1-12.
이 시편의 번호와 저자는 행 4:25; 13:33에 제시되어 있다. 다윗 통치 때의 전쟁 사건들이 그 이미지의 배경이 되었을 수 있으나, 여기에 묘사된 장면들과 제시된 주제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역사와 성품 안에서만 성취될 수 있다. 위에서 인용한 구절들과 히 1:5; 5:5에서 신약 저자들이 매우 분명히 증언하는 바와 같다. 시인은 매우 생동감 있고 고도의 시적 문체로, "각각 세 절로 된 네 연" 안에서 하나님과 그의 기름 부음 받은 자를 향한 사람들의 뿌리 깊고 격렬하지만 헛된 적대, 자기 뜻을 이루시려는 하나님의 결심, 그 아들이 더 온전히 밝히는 그 뜻, 중보적 왕국의 확립, 저항하는 모든 자에게 임박한 위험과 이 강하고 승리하시는 왕을 맞이하는 모든 자의 복을 제시한다.
1. 어찌하여 이방 나라들이, 등--시인은 예언적 환상 속에서 백성들과 나라들이 소란한 회중처럼 모여, 바다의 격랑 같은 분노로 하나님의 통치를 거스르려 하는 모습을 본다. 그리고 그들의 어리석음에 대한 놀라움과 반역에 대한 분노가 뒤섞인 외침을 터뜨린다.
이방 나라들--유대인과 대립되는 의미가 아니라 일반적인 나라들을 가리킨다.
민족들--문자적으로는 "백성들" 또는 사람들의 종족들이다.
어찌하여 이방 나라들이 분노하며 — ‘어찌하여 민족들이 소동하는가?’(알렉산더 교수). 여기서 ‘이방 나라들’ גוים(gôyim)은 본래 그 성격과 관계없이 ‘민족들’을 뜻한다. 히브리인은 주변 민족 또는 자기 민족 아닌 모든 백성에게 이 말을 썼고, 그들이 실제로 이교도와 우상 숭배자였으므로 그런 뜻을 띠게 되었다(느헤미야 5:8; 예레미야 31:10; 에스겔 23:30; 30:11; אדם(’âdâm), 예레미야 32:20 비교). 히브리인에게 ‘이방인’을 나타낸 헬라어 ἔθνος(ethnos)도 같은 뜻이다(마태복음 4:15; 6:32; 10:5, 18; 12:21 등).
‘분노하며’로 번역한 רגשׁ(râgash)는 소음이나 소동을 일으킨다는 뜻으로 격렬한 동요를 나타낸다. 히브리어 성경에는 여기만 나오지만 대응하는 아람어 רגשׁ(regash)는 다니엘 6:6, 11, 15에 나온다. 6절 본문은 ‘함께 모여’, 난외주는 ‘소동하며 와서’라고 하고 11절과 15절도 ‘모여’라고 번역한다. 시편 기자는 민족들이 큰 흥분 속에서 어떤 목적을 이루거나 어떤 일을 막으려고 돌진하는 모습을 본다. 아마 군중 또는 질서 없이 소동하는 집회의 모습이 그 관념을 잘 전할 것이다. 이 말 자체로 동요의 범위를 정할 수는 없지만, 둘 이상의 민족이나 백성이 참여한 어느 정도 보편적인 움직임이 분명히 함축된다. 모든 민족에 영향을 주고 그들 가운데 격렬한 동요를 일으킬 사안이었다.
민족들이 — לאמים(Le’umiym). ‘백성’ 또는 ‘민족’이라는 거의 같은 뜻의 말이며, 히브리 시의 평행법에 따라 앞의 ‘이방 나라들’과 같은 대상을 가리킨다. 여기서는 백성들이 격렬히 동요하며, 그들과 연합한 통치자들의 행동은 다음 절에서 말한다.
헛된 일을 꾸미는고 — 우리의 ‘상상하다’라는 말은 여기의 뜻을 정확히 나타내지 않는다. 그 말은 ‘마음에 개념이나 생각을 만들다, 공상하다’를 뜻한다(Webster). 히브리어 הגה(hâgâh)는 시편 1:2에서 ‘묵상하다’로 번역한 것과 같은 말이다. 그 절의 주석을 보라. 여기서는 마음이 숙고하고 계획하고 고안하여 목적을 세운다는 뜻이다. 곧 이들은 여기서 헛된 목적이라 불리는 일을 깊이 생각하고 계획하지만, 그것은 효력을 낼 수 없다.
헛된 일 — 그 결과 헛된 것으로 드러나거나 이룰 수 없는 일이다. 그들이 스스로 헛되다고 여긴 계획을 세웠다는 뜻일 수는 없다. 아무도 그런 계획을 세우지 않기 때문이다. 성공하지 못할 것임이 결과로 드러날 계획에 몰두했다는 뜻이다. 하나님이 메시아를 세상의 왕으로 세우려는 목적과, 그것이 땅의 민족들 사이에서 불러일으킬 반대를 가리킨다. 2:2 주석을 보라. 그가 육신으로 왔을 때 받은 반대와, 죽은 뒤 그의 지상 통치에 대해 곳곳에서 이어진 저항에서 충분히 성취되었다. 이것보다 세상을 더 크게 소동시킨 것은 없고(사도행전 17:6 비교), 지금도 이것보다 더 단호한 저항을 일으키는 것은 없다.
이 절이 가르치는 진리는 다음과 같다. (1) 죄인들은 하나님의 계획과 작정, 특히 메시아의 통치를 반대하며, 그 반대는 마음의 격렬한 동요와 확고하고 단호한 목적까지 낳는다. (2) 이에 저항하려는 그들의 계획은 헛되고 효력이 없다. 계략이 아무리 지혜로워 보이고 실행 결심이 아무리 굳어도 결국 헛됨을 발견할 수밖에 없다. 메시아를 대적한 이 특별한 계획에 함축된 것은 하나님의 통치에 맞서는 죄인들의 모든 목적에도 참되다.
앞의 시편이 도덕적이어서 우리의 의무를 보여 주었다면, 이 시편은 복음적이어서 우리의 구주를 보여 준다. 다윗 왕국이라는 예표 아래에서(그 왕국은 하나님의 정하심에 따른 것이었고, 많은 반대를 만났으나 마침내 승리하였다) 다윗의 자손이신 메시아의 왕국이 예언된다. 이것이 이 시편의 주된 의도와 범위이다. 그리고 나는 복음 시편들 가운데 이 시편만큼 예표의 요소는 적고 원형의 요소는 많은 것이 없다고 생각한다. 이는 그 안에 그리스도께 적용될 수 없는 것은 아무것도 없고, 오히려 다윗에게는 전혀 적용될 수 없는 몇 가지가 있기 때문이다(시 2:6,7): “너는 내 아들이라”(시 2:8), “내가 땅 끝까지 네 소유로 주리라”, 그리고 (시 2:12), “그 아들에게 입맞추라.” 이 시편은 행 4:24, 13:33, 히 1:5에서 그리스도에 관한 것으로 해석된다. 성령께서는 여기서 미리 말씀하신다. I. 메시아의 왕국에 가해질 반대, 시 2:1-3. II. 그 반대가 좌절되고 징계받을 것, 시 2:4,5. III. 그 반대에도 불구하고 그리스도의 왕국이 세워질 것, 시 2:6. IV. 그 왕국의 확증과 견고한 수립, 시 2:7. V. 그 왕국의 확장과 성공에 대한 약속, 시 2:8,9. VI. 왕들과 군주들에게 이 왕국의 자원하는 신하로 자신을 드리라는 부르심과 권면, 시 2:10-12. 또는 이렇게 볼 수도 있다. 우리는 여기서, I. 그리스도의 왕국의 대적들에게 선포된 위협, 시 2:1-6. II. 이 왕국의 머리이신 그리스도 자신에게 주어진 약속, 시 2:7-9. III. 모든 사람에게 이 왕국의 유익을 받아들이라고 주어진 권고, 시 2:10-12를 본다. 이 시편은 앞의 시편과 마찬가지로 이 경건의 책 앞에 매우 알맞게 놓여 있다. 하나님께 받아들여지기 위해 우리가 그의 율법의 명령에 복종해야 하는 것이 필요하듯이, 또한 그의 복음의 은혜에 복종하고 중보자의 이름으로 그분께 나아가는 것도 필요하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