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tthew Henry's Complete Commentary
Matthew Henry · 1714
Matthew Henry 사후(1714) 공개 도메인. 디지털판 CC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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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스라 사람 에단이 지은 마스길.
¹ 내가 영원히 여호와의 자비하심을 노래하겠사오며 내 입으로 주의 신실하심을 만대에 알리리이다.
² 내가 말하기를 주의 자비하심을 영원히 세우시며 주의 신실하심을 하늘에 굳게 세우리라 하였나이다.
³ 주께서 이르시기를 내가 나의 택한 자와 언약을 맺으며 나의 종 다윗에게 맹세하기를
⁴ 내가 네 자손을 영원히 견고히 하며 네 왕위를 대대에 세우리라 하셨도다. 셀라.
시편 기자는 이때 다윗 가문이 처한 참담한 형편을 두고 매우 슬픈 탄식을 쏟아내야 할 처지에 있었으나, 그럼에도 이 시편을 찬양의 노래로 시작한다. 우리는 모든 일에서, 어떤 형편에서든 감사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렇게 우리는 불 가운데서도 주를 영화롭게 해야 한다. 우리는 환난 중에 있을 때 탄식하면 마음이 가벼워진다고 여기지만, 사실은 그보다 더한 것을 얻으니 곧 찬양함으로써 기쁨을 얻는다. 그러므로 우리의 탄식을 감사로 바꾸자. 이 구절들에서 우리는 개인적인 일에서든 공적인 일에서든 가장 어두운 때에도 우리에게 찬양과 감사의 제목이 될 것을 발견한다.
형편이 어떠하든 영원하신 하나님은 선하시고 진실하시다. 시 89:1. 지금의 어두운 섭리를 하나님의 선하심 및 진실하심과 맞추어 이해하기 어려울 때가 있으나, 우리는 하나님의 자비가 다함이 없고 그분의 진실하심은 침범될 수 없다는 이 원칙을 굳게 붙들어야 한다. 바로 이것이 우리의 기쁨과 찬양의 내용이 되어야 한다. "내가 영원히 여호와의 자비하심을 노래하리이다" — 하나님의 영예를 위한 찬양의 노래를, 나 자신의 위안을 위한 즐거운 노래를, 그리고 다른 이들의 덕을 세우기 위한 교훈의 노래인 마스길을 부르겠다는 것이다. 우리는 하나님의 자비하심을 영원히 노래할 수 있으며, 그래도 그 주제는 결코 바닥나지 않는다. 우리는 사는 날 동안 하나님의 자비하심을 노래해야 하고, 우리가 떠난 뒤에도 다른 이들이 그것을 노래하도록 길러 내야 하며, 천국에서 세세토록 그것을 노래하기를 소망해야 한다. 이것이 곧 "영원히 여호와의 자비하심을 노래하는 것"이다. "내 입으로", 그리고 내 펜으로 — 우리는 펜으로도 말하기 때문이다 — "주의 신실하심을 만대에 알리리이다." 이는 내가 직접 보고 겪은 바를 근거로 후손에게, 하나님께서 하신 모든 말씀에 진실하시다는 것을 확증하여, 그들이 "하나님을 의지하는" 법을 배우게 하려는 것이다. 시 78:6.
형편이 어떠하든 영원한 언약은 굳게 서서 흔들리지 않는다. 시 89:2-4. 여기서 우리는 다음을 본다. (1.) 시편 기자의 믿음과 소망이다. "지금 형편은 암울하여 다윗의 집이 아주 뿌리 뽑힐 것처럼 보이지만, 나는 '자비가 영원히 세워지리라'고 말하였고, 하나님의 말씀에 근거하여 그렇게 말할 권한을 가지고 있다." 하나님의 본성이 선하시다는 것이 우리 노래의 내용이 되어야 한다면(시 89:1), 언약 안에서 우리를 위해 세워진 자비는 더욱더 그러하다. 그것은 지어져 올라가는 집처럼 지금도 계속 자라 가며, 다 지어진 집처럼 영원히 우리의 안식처로 남을 것이다. 그것은 영원히 세워질 것이니, 우리가 새 예루살렘에서 바라는 영원한 처소가 바로 이 건물에 속하기 때문이다. 자비가 영원히 세워진다면, "무너진 다윗의 장막"이 그 폐허에서 일으켜져 "옛적과 같이" 세워질 것이다. 암 9:11. "주의 신실하심을 하늘에 굳게 세우리라" 하셨으므로 자비가 영원히 세워지는 것이다. 우리의 기대가 몇몇 개별 사례에서 어긋난다 해도 하나님의 약속은 폐기되지 않는다. 그 약속들은 "하늘에 굳게" 세워져 있으니, 곧 그분의 영원한 경륜 안에 있다는 뜻이다. 그것들은 이 낮은 영역의 변화를 넘어서 있고, 지옥과 땅이 가하는 반대의 손이 닿지 않는 곳에 있다. 물질적인 하늘이 견고하다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이 참되다는 것을 보여 주는 표상이다. 하늘은 땅에서 올라오는 수증기로 흐려질 수는 있어도, 만져질 수는 없고 변할 수도 없다. (2.) 이 믿음과 소망이 그 위에 세워지는 언약의 요지다. 시편 기자는 "내가 그것을 말하였노라"고 하는데, 이는 "하나님께서 그것을 맹세하셨기" 때문이며, 약속의 상속자들이 그분의 뜻이 변하지 않음을 온전히 확신하게 하시려는 것이다. 그는 하나님께서 친히 말씀하시는 장면을 끌어들여(시 89:3), 자기 백성의 위로를 위해 "내가 언약을 맺었으니 그러므로 그것을 이루리라" 하고 인정하시게 한다. 이 언약은 다윗과 맺어진 것이다. 왕권의 언약이 그 집안의 아버지인 그와 맺어졌고, 그를 통하여 또 그를 보아서 그의 자손과도 맺어졌으니, 이는 교회의 머리이신 그리스도와 맺으신 은혜 언약, 그리고 그분의 영적 자손인 모든 신자와 맺으신 언약을 나타낸다. 다윗은 여기서 "하나님의 택하신 자"요 "그의 종"이라 불린다. 하나님은 변덕스러워 자신이 하신 선택에서 물러서시는 분이 아니며, 자기를 섬긴 자를 내치실 만큼 불의하신 분도 아니다. 시편 기자가 이 언약 위에 자기 믿음을 세우도록 북돋우는 것이 두 가지 있다. [1.] 언약의 비준이다. 그것은 맹세로 확정되었다. "여호와는 맹세하고 변치 아니하시리라." [2.] 언약의 영속성이다. 언약의 복은 다윗 자신에게만 보장된 것이 아니라 그의 집안에 세습되도록 정해졌다. 그의 가문이 존속하리라는 약속이 주어졌으니, "내가 네 자손을 영원히 견고히 하리라" 하셨고, 그리하여 "다윗에게 그 왕위에 앉을 아들이 끊어지지 아니하리라"고 하셨다(렘 33:20,21). 또 그 가문이 왕가로 존속하리라는 약속이 주어졌으니, "내가 네 왕위를 대대에 세우리라", 곧 시간의 모든 세대에 이르도록 세우시리라는 것이다. 이 약속은 다윗의 자손으로 나신 그리스도에게서만 성취된다. 그분은 영원히 살아 계시고, 하나님께서 그분에게 그 조상 다윗의 보좌를 주셨으며, 그분의 정사와 평강의 더함이 무궁하다. 이 언약에 대해서는 시편 기자가 시 89:19 이하에서 다시 더 자세히 말한다.
시편 89장 5-14 Matthew Henry's Complete Commentary
⁵ 하늘이 주의 기사를 찬양할 것이요 여호와여 주의 성실도 성도들의 회중에서 그러하리이다. ⁶ 대저 궁창에서 여호와와 견줄 자 누구며 권능 있는 자들 중에 여호와와 같은 자 누구리이까? ⁷ 하나님은 성도의 모임에서 심히 두려워할 만한 분이시요 그를 둘러선 모든 자에게 경외함을 받으실 이시라. ⁸ 만군의 하나님 여호와여 주와 같이 능하신 이가 누구리이까? 주의 성실하심이 주를 둘러 있나이다. ⁹ 주께서 바다의 파도를 다스리시며 그 파도가 일어날 때에 주께서 그것을 잠잠하게 하시나이다. ¹⁰ 주께서 라합을 살육당한 자 같이 쳐서 깨뜨리시고 주의 능력의 팔로 원수들을 흩으셨나이다. ¹¹ 하늘은 주의 것이요 땅도 주의 것이라 세계와 그 안에 충만한 것을 주께서 건설하셨나이다. ¹² 북과 남을 주께서 창조하셨사오니 다볼과 헤르몬이 주의 이름으로 말미암아 즐거워하나이다. ¹³ 주께는 능력의 팔이 있사오며 주의 손은 강하고 주의 오른손은 높으시니이다. ¹⁴ 의와 공의가 주의 보좌의 기초요 인자함과 진실함이 주의 앞에 있나이다.
이 구절들은 하나님의 찬양으로 가득합니다. 주목하십시오.
I. 하나님은 어디서, 누구에 의해 찬양받으시는가?
II. 하나님을 찬양하는 것은 무엇인가? 그것은 그분을 비할 데 없는 완전을 지닌 존재, 그와 같은 이가 없고 그와 비교될 이가 없는 분으로 인정하는 것이다, 시 89:6. 만일 하나님과 겨룰 수 있다고 주장하는 존재들이 있다면, 분명 그들은 천사들 가운데서 발견되어야 할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 모두는 그분께 한없이 미치지 못한다: 하늘에서 누가 여호와와 비교될 수 있으랴, 오직 그분께만 마땅히 드려야 할 경외와 숭배의 어떤 부분이라도 주장하거나, 사람들의 경배를 두고 그분과 경쟁할 수 있으랴? 그들은 능한 자들의 아들들이지만, 그들 중 누가 여호와와 같을 수 있으랴? 귀족은 왕자의 동료이다; 그들 사이에는 어느 정도 동등함이 있다. 그러나 하나님과 천사들 사이에는 아무것도 없다; 그들은 그분의 동료가 아니다. 너희가 나를 누구에게 비기며 나로 누구와 동등하게 하겠느냐? 거룩한 이가 말씀하시느니라, 사 40:25. 이것은 다시 강조된다 (시 89:8): 주와 같이 능하신 이가 누구리이까? 어떤 천사도, 어떤 지상의 권세자도 하나님과 비교될 수 없으며, 그분과 같은 팔을 가졌거나 그분과 같은 목소리로 천둥을 칠 수 있는 이는 없다. 주의 성실함이 주를 둘러 있나이다; 즉, "주를 둘러서서 찬양으로 주를 모시고 주의 심부름을 갈 준비가 된 주의 천사들은 모두 신실하다." 혹은 오히려, "주께서 하시는 모든 일에서, 모든 면에서, 주께서는 어떤 군주나 권세자보다도 당신의 말씀에 신실하심을 증명하신다." 사람들 사이에서는 자신의 말을 어길 능력이 가장 큰 자들이 그것을 지키는 데 가장 부주의하다는 것이 너무나 자주 발견된다; 그러나 하나님은 강하시고 신실하시다; 그분은 모든 것을 하실 수 있으며, 결코 불의한 일을 하지 않으실 것이다.
III. 찬양 중에 우리가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야 할 것은 무엇인가? 여기서 여러 가지가 언급된다.
¹⁵ 즐거운 소리를 아는 백성은 복이 있나니 여호와여 그들이 주의 얼굴 빛 안에서 다니리로다
¹⁶ 그들이 종일 주의 이름으로 즐거워하며 주의 의로 말미암아 높아지오니
¹⁷ 주는 그들의 힘의 영광이심이라 주의 은총으로 우리 뿔이 높아지오리이다
¹⁸ 여호와는 우리의 방패이시요 이스라엘의 거룩한 이는 우리의 왕이시니이다
시편 기자는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얼마나 복되신 분인지 길게 보여 준 뒤, 여기서는 하나님의 이스라엘이 누리는 복을 보여 준다. 여수룬의 하나님 같은 이가 없듯이, "이스라엘이여 너는 행복한 사람이로다! 백성이여 너 같은 자가 누구냐!" 특히 모든 참된 신자로 이루어진 복음의 이스라엘의 모형으로서 그러하니, 그들의 복이 여기에 묘사된다.
I. 그들에게는 영광스러운 계시가 열리고 좋은 소식이 전해진다. 그들은 "즐거운 소리"를 듣고 안다. 시 89:15. 이것은 다음을 가리킬 수 있다. 1. 승리한 군대의 함성, 곧 왕을 향한 함성이다. 민 23:21. 이스라엘은 전쟁에서 하나님께서 함께 계신다는 징표를 가졌다. "뽕나무 꼭대기에서 걸음 걷는 소리"는 참으로 "즐거운 소리"였고(삼하 5:24), 그들은 종종 승전가로 땅을 울리며 돌아왔다. 이런 것들이 즐거운 소리였다. 또는 2. 제물 위에서, 그리고 엄숙한 절기 날에 울리던 소리다. 시 81:1-3. 그들 가운데 하나님의 거룩한 신앙을 자유롭고 공공연히 고백할 수 있었고 제사에서 넘치는 기쁨을 누렸다는 것, 이것이 이스라엘의 복이었다. 또는 3. 희년 나팔 소리다. 그것은 종과 빚진 자에게 해방을 선포하는 즐거운 소리였다. 복음이야말로 참으로 즐거운 소리이니, 승리의 소리요 자유의 소리요 하나님과 교제하는 소리요 "큰 비 소리"다. 그것을 듣고 알고 기꺼이 맞아들이는 백성은 복이 있다.
II. 하나님의 은총을 보여 주는 특별한 징표가 그들에게 주어진다. "여호와여, 그들이 주의 얼굴 빛 안에서 다니리이다. 그들은 주의 지시를 따라 자신을 다스리고 주의 눈짓으로 인도받으며, 주의 위로 안에서 즐거워하리이다. 그들은 하나님의 은총을 입고, 자기가 그 은총을 입은 줄을 알며, 그것이 그들에게 끊임없는 기쁨과 즐거움의 제목이 되리이다. 그들은 하나님의 인자하심이 미치는 강한 감화 아래 거룩한 삶의 온갖 훈련을 감당하리니, 그 인자하심이 그들의 본분을 즐겁게 해 주고 그 본분에 진실하게 하며, 주께 받아들여지는 것을 그 목표로 삼게 하리이다." 우리가 하나님의 은총에서 모든 위로를 길어 오고 자신을 그분의 사랑 안에 지키기를 힘쓸 때, 우리는 주의 빛 가운데 행하는 것이다.
III. 그들에게는 기뻐할 거리가 떨어지는 법이 없다. 하나님의 백성은 복이 있다. 그들 자신의 잘못만 아니라면, 그분의 이름 안에서, 곧 그분께서 자신을 알리신 모든 것 안에서 "종일 즐거워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기뻐하고 하나님을 자기의 넘치는 기쁨으로 삼는 이들은 자기의 괴로움을 넉넉히 상쇄하고 슬픔을 잠잠하게 할 만한 것을 가지고 있다. 그러므로 그들의 기쁨은 충만하고(요일 1:4) 한결같다. 항상 기뻐하는 것이 그들의 본분이다.
IV. 하나님과 맺은 관계는 그들의 영예요 존귀다. 그들은 높은 자리에 있으므로 복되다. "진실로 여호와께", 곧 주 그리스도께 "의와 힘이 있다" 하겠고, 그리하여 그들은 그분으로 말미암아 하나님께 받아들여지도록 천거된다. 그러므로 "이스라엘 자손은 다 여호와로 말미암아 의롭다 함을 얻고 자랑하리라"고 한다. 사 45:24,25. 여기 시 89:16,17도 그러하다. 1. "그들이 높아지는 것은 주의 의로 말미암은 것이지 자기 자신의 어떤 의로 말미암은 것이 아니다." 우리가 위험에서 벗어나 영예에 이르도록 높아지는 것은 오로지 그리스도의 의로 말미암은 것이니, 그 의는 존귀를 위한 옷이자 방어를 위한 옷이다. 2. "주는 그들의 힘의 영광이시라." 곧 "주는 그들의 힘이시며, 주께서 그러하시다는 것이 그들의 영광이요 그들이 자랑하는 바"라는 뜻이다. "항상 우리를 이기게 하시는 하나님께 감사하노라." 3. "그리스도를 통하여 우리가 바라는 주의 은총으로 우리 뿔이 높아지리이다." 뿔은 아름다움과 풍요와 권세를 뜻하니, 사랑하시는 자 안에서 받아들여진 이들이 이것을 누린다. 이 세상에서 사람이 하나님의 총애를 받는 것보다 더 높은 신분에 오를 수 있겠는가?
V. 하나님과 맺은 관계는 그들의 보호요 안전이다(시 89:18). "우리의 방패는 여호와께 속하였고"(난외주가 그렇게 읽는다) "우리의 왕은 이스라엘의 거룩한 이에게 속하였도다. 하나님이 우리의 통치자이시면 우리의 방어자도 되실 것이니, 그렇다면 누가 우리를 해할 수 있겠는가?" 하나님께서 친히 그들의 성루를 세우시고 그들의 왕을 지명하셨다는 것이 이스라엘의 복이었다(어떤 이들은 이렇게 이해한다). 아니, 그보다도 하나님께서 친히 "그들을 둘러싼 불 성곽"이 되셨고, 거룩하신 이로서 그들의 거룩한 신앙의 창시자요 중심이 되셨다는 것이 그들의 복이었다. 그분이 그들의 왕이셨고, 그러기에 그들 가운데 계신 그들의 영광이셨다. 그리스도가 이스라엘의 거룩한 이시요 그 거룩한 자이시니, 이 특별한 백성이 무엇보다 복된 것은 그분이 유대인의 왕으로 나셨다는 데 있다. 하나님의 이스라엘이 누리는 복에 대한 이 서술이 여기 놓인 것은, 그것이 그들의 현재 참담한 형편과 조화시키기 어려운 것이었기 때문이다.
¹⁹ 그때에 주께서 주의 거룩한 자에게 환상으로 말씀하여 이르시기를 내가 능력이 있는 자에게 도움을 주었으며 백성 중에서 택한 자를 높였도다
²⁰ 내가 내 종 다윗을 찾아내어 나의 거룩한 기름으로 그에게 부었으니
²¹ 내 손이 그와 함께하여 견고히 하고 내 팔이 그를 힘 있게 하리로다
²² 원수가 그에게서 아무것도 빼앗지 못하며 악한 자가 그를 괴롭히지 못하리로다
²³ 내가 그 앞에서 그의 대적들을 꺾고 그를 미워하는 자들을 치리니
²⁴ 나의 성실함과 나의 인자함이 그와 함께할 것이요 내 이름으로 그의 뿔이 높임을 받으리로다
²⁵ 내가 그의 손을 바다에 두고 그의 오른손을 강들에 두리니
²⁶ 그가 내게 부르짖기를 주는 나의 아버지시요 나의 하나님이시요 나의 구원의 바위시라 하리로다
²⁷ 내가 또 그를 나의 맏아들로 삼고 세상 왕들보다 높이리라
²⁸ 나의 인자함을 그를 위하여 영원히 지키고 나의 언약을 그와 함께 견고하게 하리라
²⁹ 그의 자손을 영원히 계속하게 할 것이요 그의 왕위는 하늘의 날들과 같게 하리로다
³⁰ 만일 그의 자손이 내 율법을 버리며 내 규례를 행하지 아니하며
³¹ 내 법도를 깨뜨리며 내 계명을 지키지 아니하면
³² 내가 막대기로 그들의 허물을 징계하며 채찍으로 그들의 죄악을 벌할 것이나
³³ 나의 인자함은 그에게서 온전히 거두지 아니할 것이요 나의 성실함도 폐하지 아니하리로다
³⁴ 나의 언약을 깨뜨리지 아니하고 내 입에서 나간 것을 변경하지 아니하리로다
³⁵ 내가 한 번 내 거룩함으로 맹세하였사온즉 다윗에게 거짓말하지 아니할 것이라
³⁶ 그의 자손은 영원히 계속될 것이요 그의 왕위는 내 앞에서 해 같이 되리로다
³⁷ 또 달 같이 영원히 견고하며 하늘의 충실한 증인 같으리로다. 셀라.
하나님께서 다윗과 그의 자손과 맺으신 언약은 앞에서 이미 언급되었으나(시 89:3,4), 이 구절들에서는 그 언약이 더 폭넓게 펼쳐지고, 이제 거의 가라앉아 무너져 가는 왕가에 은혜를 베풀어 달라고 그 언약을 근거로 하나님께 호소한다. 그러나 이 언약은 분명히 그리스도를 내다보며, 다윗에게서보다 그분 안에서 훨씬 더 온전히 성취된다. 아니, 여기 몇몇 구절은 다윗에게는 거의 적용될 수 없고 오직 그리스도에 대해서만 이해해야 한다(그래서 그리스도를 "그들의 왕 다윗"이라 부른다. 호 3:5). 여기서 구속자께 주어진 약속들은 참으로 크고 보배로운 약속이며, 구속받은 자들의 믿음과 소망이 그 위에 세워질 든든한 기초다. 우리가 누리는 구속의 위로는 구속의 언약에서 흘러나오니, 우리의 모든 근원이 거기에 있다. 사 55:3. "내가 너희를 위하여 영원한 언약을 맺으리니 곧 다윗에게 허락한 확실한 은혜이니라." 행 13:34. 이제 여기서 우리는 그 확실한 은혜에 대한 설명을 얻는다. 주목하라.
I. 그 약속이 참되다는 것을 우리가 어떤 확증으로 알며, 그 확증이 우리로 하여금 그 위에 세우도록 북돋우는가. 여기서 우리는 이렇게 듣는다. 1. 그 약속이 어떻게 말해졌는가(시 89:19). "주께서 주의 거룩한 자에게 환상으로 말씀하셨도다." 여기서 특별히 가리키는 바 다윗에게 주신 하나님의 약속은 선지자 나단에게 환상으로 말씀된 것이다. 삼하 7:12-17. "이스라엘의 거룩한 이가 그들의 왕이시던"(시 89:18) 그때에 하나님께서 다윗을 자기 대리자로 세우셨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 거룩한 자들인 모든 선지자에게 그리스도에 관하여 "환상으로 말씀하셨고", 특히 그리스도 자신에게 그리하셨다. 그분은 영원 전부터 아버지 품속에 계셔서 구속의 전체 경륜을 온전히 아셨다. 마 11:27. 2. 그 약속이 어떻게 맹세로 확정되고 비준되었는가(시 89:35). "내가 한 번 내 거룩함으로 맹세하였은즉", 곧 그분께서 가장 아끼시는 그 속성으로 맹세하셨다. 자기 거룩함으로 맹세하실 때 그분은 자기 자신을 두고 맹세하신 것이다. 그분은 거룩하지 않게 되시느니 차라리 존재하기를 그치실 분이기 때문이다. 한 번 맹세하시면 그것으로 충분하니, 다윗이 그리했던 것처럼(삼상 20:17) 다시 맹세하실 필요가 없다. 그분의 말씀과 맹세는 변할 수 없는 두 가지이기 때문이다. 그리스도께서 제사장이 되신 것처럼 왕이 되신 것도 "맹세로" 된 일이다(히 7:21). 그분의 왕직과 제사장직은 둘 다 변하지 않기 때문이다.
II. 그 약속을 받을 자로 선택된 인물이다. 시 89:19,20. 다윗은 하나님께서 친히 택하신 왕이었고 그리스도도 그러하시니, 그래서 둘 다 "하나님의 왕"이라 불린다. 시 2:6. 다윗은 능력이 있었고 용맹하여 일을 감당하기에 합당한 사람이었다. 그는 백성 중에서 택함을 받았으니, 귀족 중에서가 아니라 목자 중에서 택함을 받았다. 하나님께서 그를 찾아내시고 높이시고 그에게 도움을 두시고, 사무엘에게 명하여 그에게 기름을 붓게 하셨다. 그러나 이것은 특히 그리스도께 적용해야 한다. 1. 그분은 능력이 있는 분이시니, 맡으신 그 큰 일에 모든 면에서 합당하시고 "온전히 구원하실 수 있는" 분이다. 힘에서 능력이 있으시니 하나님의 아들이시기 때문이요, 사랑에서 능력이 있으시니 시험받는 자들을 몸소 겪어 아시고 함께 아파하실 수 있기 때문이다. 그분은 "전능하신 하나님"이시다. 사 9:6. 2. 그분은 "백성 중에서 택함을 받은" 자시니, 우리 가운데 하나요 우리 뼈 중의 뼈로서 우리와 함께 혈과 육에 참여하신 분이다. 사람을 위하여 세우심을 받았으므로 사람 가운데서 취해지셨으니, 그 위엄이 우리를 두렵게 하지 않게 하려는 것이다. 3. 하나님께서 그를 찾아내셨다. 그분은 하나님께서 친히 마련하신 구주시니, 구원은 처음부터 끝까지 순전히 주께서 하신 일이기 때문이다. "그가 대속물을 얻으셨다." 욥 33:24. 우리는 이 큰 일을 감당할 만한 인물을 결코 찾아낼 수 없었을 것이다. 계 5:3,4. 4. 하나님께서 "그에게 도움을 두셨다." 그를 도우셨을 뿐 아니라 우리를 위하여 그 안에 도움을 쌓아 두셨고, 타락한 사람을 다시 일으키고 택하신 남은 자를 천국으로 이끄는 일을 그에게 임무로 맡기셨다. "너를 도울 이는 나뿐이니라." 호 13:9. 5. 하나님께서 그를 높이셨다. 그를 자기 교회의 선지자요 제사장이요 왕으로 세우시고, 권능으로 입히시며, 죽은 자 가운데서 일으키시고, 자기 오른편에 앉히심으로 그리하셨다. 하나님께서 택하시고 쓰시는 자는 반드시 높이신다. 6. 하나님께서 그에게 기름을 부으셨다. 성령을 한량없이, 그 동류들보다 무한히 뛰어나게 주심으로 그 직분에 합당하게 하시고 그 직분 안에서 그를 확증하셨다. 그래서 그분은 "메시아" 또는 "그리스도", 곧 "기름 부음 받은 이"라 불리신다. 7. 이 모든 일에서 하나님께서는 그분을 자기의 종으로 삼으셔서, 자신의 영원한 목적을 이루고 사람들 가운데서 자기 나라의 유익을 넓히게 하셨다.
III. 이 택함 받은 이에게 주어진 약속들이다. 모형인 다윗과 그 실체인 다윗의 자손에게 주어진 것이니, 여기서 그에 관하여 은혜로운 일만이 아니라 영광스러운 일도 말해진다.
왕이자 하나님의 종인 그분 자신에 관하여. 그분께 유익이 되는 것은 그분을 사랑하는 모든 백성에게도 유익이 된다. 여기서 이렇게 약속된다. (1.) 하나님께서 그분 곁에 서서 그 맡으신 일에 힘을 주시리라는 것이다(시 89:21). "내 손이 그와 함께"할 뿐 아니라 약속으로 말미암아 "견고하게 되리니", 그리하여 그가 그 모든 직분에서 견고히 서고 확증되어, 불법의 사람이 그 모든 직분을 찬탈하고 대적할지라도 어느 하나도 허물어지거나 뒤엎어지지 않을 것이다. 그리스도께는 감당할 어려운 일도 많았고 겪으실 험한 대우도 많았다. 그러나 그에게 사명을 주신 이가 그 사명을 이룰 만한 힘도 주셨다. "내 팔도 그를 힘 있게 하여" 모든 난관을 뚫고 나아가며 그것을 견디게 하리라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친히 힘 주시기로 하신 이들의 손에서는 어떤 선한 일도 실패하지 않는다. (2.) 그분이 원수들을 이기시고 그들이 그분을 침범하지 못하리라는 것이다(시 89:22). "악한 자가 그에게서 강제로 빼앗지 못하며 그를 괴롭히지 못하리로다." 처음에 평화를 깨뜨린 자가 평화를 이루려 나서신 분을 대적하고 그 계획을 망치려고 온 힘을 다하겠으나, 그가 미칠 수 있는 데는 그분의 발꿈치를 상하게 하는 것뿐이었다. 그 이상으로 그분에게서 빼앗거나 그분을 괴롭힐 수는 없었다. 그리스도께서 우리 빚의 보증인이 되셨고, 사탄과 죽음은 이로써 그분에 대하여 유리한 고지를 얻은 줄로 여겼다. 그러나 그분께서 하나님의 공의가 요구하는 바를 다 채우셨으니, 그 뒤로는 그들이 그분에게서 아무것도 강제로 받아 낼 수 없었다. "이 세상 임금이 오겠음이라 그러나 그는 내게 관계할 것이 없으니." 요 14:30. 아니, 그들은 그분을 이기지 못할 뿐 아니라 그분 앞에 엎드러질 것이다(시 89:23). "내가 그 앞에서 그의 대적들을 꺾으리니", 이 세상 임금은 쫓겨나고 정사와 권세는 무장이 해제되며, 그분은 죽음 자체의 죽음이 되시고 무덤의 멸망이 되실 것이다. 호 13:14. 어떤 이들은 이것을 그리스도를 박해하고 죽인 유대 민족에게 하나님께서 내리신 파멸에 적용한다. 그러나 그분을 미워하고 그분이 자기를 다스리시는 것을 원하지 않는 그리스도의 모든 원수는 끌려 나와 그분 앞에서 죽임을 당할 것이다. 눅 19:27. (3.) 그분이 하나님과 사람 사이의 언약을 맡은 큰 수탁자가 되셔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은혜로우시고 진실하시리라는 것이다(시 89:24). "나의 성실함과 나의 인자함이 그와 함께하리로다." 그것들은 다윗과 함께 있었으니, 하나님께서 그에게 계속 인자하셨고 그리하여 자신을 신실하신 분으로 나타내셨다. 그것들은 그리스도와 함께 있었으니, 하나님께서 그에게 하신 모든 약속을 이루셨다. 그러나 그것이 전부가 아니다.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인자하심과 우리를 향한 그분의 신실하심이 그리스도와 함께 있다. 하나님께서는 그분을 기뻐하실 뿐 아니라 그분 안에서 우리도 기뻐하시며, 하나님의 모든 약속이 그분 안에서 예가 되고 아멘이 된다. 그러므로 가련한 죄인이 하나님의 신실하심과 인자하심에서 오는 유익을 바란다면, 그것이 그리스도와 함께 있음을 알아야 한다. 그것은 그분의 손에 맡겨져 있으니 그분께 나아가 구해야 한다(시 89:28). "나의 인자함을 그를 위하여 영원히 지키리니", 곧 그분이 나누어 주시도록 맡겨 두신다는 것이다. 그리스도의 중보라는 물길을 통하여 하나님의 선하심의 모든 물줄기가 영원히 흐를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영생에 이르도록 기다리는" 것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긍휼"이다. 유 1:21; 요 17:2. 하나님의 자비가 그분을 통하여 우리에게 흘러오듯이, 하나님의 약속도 그분을 통하여 우리에게 확고하다. "나의 언약을 그와 함께 견고하게 하리라" 하셨으니, 그분과 맺으신 구속의 언약과 그분 안에서 우리와 맺으신 은혜 언약이 다 그러하다. 새 언약이 언제나 새롭고 굳게 서 있는 것은 "그러므로" 그것이 한 중보자의 손에 맡겨져 있기 때문이다. 히 8:6. 언약이 견고한 것은 이 기초 위에 서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것이 주 예수께 영원한 영예가 되니, 하나님과 사람 사이의 그 큰 사건이 온전히 그분께 위탁되었고 아버지께서 모든 심판을 그분께 맡기셔서 "모든 사람이 그를 공경하게" 하셨기 때문이다(요 5:22,23). 그래서 여기 "내 이름으로 그의 뿔이 높임을 받으리로다" 하니, 하나님의 "이름이 그 안에 있고"(출 23:21) 그가 하나님의 이름으로 행하신다는 것이 그분의 영광이 되리라는 뜻이다. "아버지께서 내게 명하신 그대로 내가 행하노라." (4.) 그분의 나라가 크게 넓어지리라는 것이다(시 89:25). "내가 그의 손을 바다에 두리니"(그가 바다와 바다의 섬들을 다스리실 것이다) "그의 오른손을 강들에 두리라" 하시니, 강물이 흐르는 내륙 지방을 가리킨다. 다윗의 나라는 대해와 홍해까지, 애굽 강과 유브라데 강까지 뻗었다. 그러나 이것이 온전히 이루어지는 것은 메시아의 나라에서이며, "세상 나라가 우리 주와 그의 그리스도의 나라가" 되고(계 11:15) "섬들이 그의 율법을 앙망할" 때에 더욱더 이루어질 것이다. (5.) 그분이 하나님을 자기 아버지로 인정하시고 하나님께서도 그분을 자기 아들, 곧 맏아들로 인정하시리라는 것이다. 시 89:26,27. 이는 솔로몬에 관한 나단의 전언에 나오는 말씀을 풀어 놓은 것이다(솔로몬도 다윗과 마찬가지로 그리스도의 모형이었다). "나는 그에게 아버지가 되고 그는 내게 아들이 되리니"(삼하 7:14) 하신 그 관계가 양편에서 다 인정될 것이다. [1.] "그가 내게 부르짖기를 주는 나의 아버지시라 하리로다." 솔로몬도 아마 그리했겠지만, 그리스도께서 육신으로 계실 때 그리하셨음은 우리가 확실히 안다. 그분은 하나님께 심한 통곡으로 부르짖으셨고, 그분을 "거룩하신 아버지", "의로우신 아버지"라 부르셨으며, 우리에게도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께 아뢰도록 가르치셨다. 그리스도께서는 고뇌 가운데 하나님께 "주는 나의 아버지시라"고 부르짖으셨고(마 26:39,42, "나의 아버지여"), 십자가 위에서 "아버지여, 저들을 사하여 주옵소서", "아버지여, 내 영혼을 아버지 손에 부탁하나이다" 하셨다. 그분은 또한 그분을 자기 하나님으로 여기셨으므로 온전히 순종하시고 맡으신 모든 일에서 그 뜻에 복종하셨으며("내 하나님 곧 너희 하나님", 요 20:17), 자기 구원의 반석으로 여기셨으니, 그분께서 자기를 붙드시고 그 일을 끝까지 이루게 하셔서 넉넉히 이기는 자, 곧 완전한 구주가 되게 하실 줄 아셨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그분은 흔들림 없는 결의로 "부끄러움을 개의치 아니하시고 십자가를 참으셨으니", 자기가 의롭다 인정받고 또한 영광을 받으실 것을 아셨기 때문이다. [2.] "내가 또 그를 나의 맏아들로 삼으리라." 이것이 어떻게 다윗에게 적용될 수 있는지 나로서는 알지 못한다. "모든 피조물보다 먼저 나신 이"가 되시고 그러한 자로서 "만유의 상속자"가 되시는 것은 그리스도만의 특권이다. 골 1:15; 히 1:2,6.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가 그리스도께 주어지고 아버지께서 만물을 그에게 넘겨 주셨을" 때, 하나님께서 그분을 자기 맏아들로 삼으시고 세상 왕들보다 훨씬 더 크고 존귀하게 하셨다. 그분은 만왕의 왕이시요, "천사들과 권세들과 능력들이 그에게 복종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벧전 3:22.
그분의 자손에 관하여. 하나님의 언약은 언제나 언약 당사자의 자손을 함께 품었으니, 이 언약도 그러하다(시 89:29,36). "그의 자손이 영원히 계속되고" 그와 함께 그의 왕위도 그러하리라는 것이다. 이제 이 말은 우리가 그것을 그리스도께 적용하느냐 다윗에게 적용하느냐에 따라 달리 이해된다.
(1.) 이것을 다윗에게 적용한다면, 그의 자손은 그의 뒤를 이은 자들, 곧 솔로몬과 다윗의 허리에서 난 그 후대 유다 왕들을 뜻한다. 그들이 타락하여 그 조상 다윗의 정신과 발자취를 따르지 않을 수도 있다고 상정된다. 그럴 경우에 그들은 하나님의 책망을 받으리라고 각오해야 하니, 다윗의 집이 지금 겪는 일이 바로 그것이다. 시 89:38. 그러나 이것이 그들에게 힘이 되니, 그들이 징계를 받을지언정 버림받거나 상속에서 제외되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이는 나단의 전언 가운데 "그가 죄를 범하면 내가 그를 징계하려니와 나의 인자함은 그에게서 떠나지 아니하리라" 하신 부분을 가리킨다(삼하 7:14,15). 이런 뜻에서 다윗의 자손과 왕위는 영원히 존속했다. 곧 그 집안의 수치가 된 후손이 많았음에도 그 가문은 존속했고, 아주 오랫동안 제왕의 위엄을 유지했다. 유다가 한 왕국으로 존속하는 동안 다윗의 후손이 그 왕이었고, 열 지파의 왕권이 처음에는 여로보암의 집안에, 다음에는 바아사의 집안에 있는 식으로 옮겨 다닌 것과 달리 유다의 왕권은 다른 가문으로 넘어간 적이 없었다. 그리고 다윗의 가문은 그 왕위가 영원히 있을 다윗의 그 자손이 오실 때까지 존귀한 가문으로 이어졌다. 눅 1:27,32; 2:4,11을 보라. 훗날 다윗의 후손이 하나님과 자기 본분을 저버리고 죄의 길로 돌아선다면 하나님께서는 그들에게 황폐하게 하는 심판을 내리시고 그 가문을 무너뜨리실 것이다. 그러나 그래도 다윗에게서 그 인자하심을 거두지 않으시고 그와 맺으신 언약을 깨뜨리지 않으실 것이니, 그의 허리에서 나실 메시아 안에서 이 모든 약속이 온전히 성취될 것이기 때문이다. 이와 같이 유대인이 버림받았을 때에도, 사도는 하나님께서 아브라함과 맺으신 언약이 깨진 것이 아님을 보인다. 그 언약이 그의 영적 자손, 곧 믿음의 의를 상속받은 자들 안에서 이루어졌기 때문이다. 롬 11:7.
(2.) 이것을 그리스도께 적용한다면, 그의 자손은 그분의 백성, 곧 모든 신자, 그분의 영적 자손, 하나님께서 그분께 주신 자녀들을 뜻한다. 히 2:13. 이들이 곧 영원히 존속하게 될 그 자손이며, 그분의 왕위는 그들 가운데, 곧 교회 안에 그리고 마음 안에 "하늘의 날들과 같이" 있을 것이다. 마지막까지 그리스도께는 이 세상에서 자기를 섬기고 높일 백성이 있을 것이다. "그가 자기 씨를 볼 것이며 그의 날은 길 것이다." 이 거룩한 자손은 시간과 날이 다한 뒤에도 영화롭게 된 상태로 영원히 존속할 것이다. 그리하여 그리스도의 왕위와 나라가 영원히 이어지니, 그분의 은혜의 나라는 시간의 모든 세대를 통과하여 계속되고 그분의 영광의 나라는 끝없는 영원까지 계속될 것이다.
[1.] 여기서 그리스도의 나라가 계속될지는 그 백성의 죄와 고난 때문에 의심스러워 보인다. 그들의 죄악과 재앙이 그 나라를 무너뜨리려고 위협한다. 이 경우를 여기에 미리 놓아둔 것은, 실제로 그런 일이 벌어질 때 우리가 걸려 넘어지지 않고 오히려 그것을 언약의 견고함과 맞추어 이해하며 그럼에도 언약이 굳건함을 확신하게 하려는 것이다. 첫째, 여기서는 그리스도 나라의 백성 가운데 잘못된 것이 많으리라고 상정한다. 그분의 자녀들이 해야 할 일을 하지 않음으로 "하나님의 율법을 버릴" 수 있고(시 89:30), 해서는 안 될 일을 함으로 "그의 법도를 깨뜨릴" 수 있다(시 89:31). 하나님의 자녀들에게 있는 흠이라는 것이 있다. 신 32:5. 교회의 지체들의 마음속만이 아니라 교회의 속 깊은 곳에도 부패가 많으며, 그 부패가 밖으로 터져 나온다. 둘째, 그들이 그 일로 매를 맞으리라고 여기서 일러 준다(시 89:32). "내가 막대기로 그들의 허물을 징계하리니", 다른 이들의 허물보다 그들의 허물을 먼저 징계하신다. "내가 너희만을 알았나니 그러므로 내가 너희 모든 죄악을 너희에게 보응하리라." 암 3:2. 그리스도와 관계가 있다고 해서 그들이 셈을 치르는 자리에 불려 나오지 않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백성에게 고난이 어떤 것인지 주목하라. 1. 그것은 막대기일 뿐 도끼도 칼도 아니다. 멸하려는 것이 아니라 바로잡으려는 것이다. 이것은 그 고난에 담긴 부드러움을 나타내니, 사람이 자기 자녀를 훈계할 때 쓰는 그런 사람의 막대기다. 또 그 고난을 통해 선을 이루려는 뜻을 나타내니, 의의 평강의 열매를 맺게 하는 그런 막대기다. 2. 그것은 하나님의 손에 들린 막대기다("내가 징계하리라"). 그분은 지혜로우셔서 자기가 하시는 일을 아시고, 은혜로우셔서 가장 좋은 것을 행하실 것이다. 3. 그것은 꼭 필요할 때가 아니면 그들이 그 아픔을 느낄 일이 없는 막대기다. "만일 그들이 내 율법을 깨뜨리면 내가 막대기로 그들의 허물을 징계하리라" 하셨을 뿐, 그렇지 않으면 징계하지 않으신다. 그때에는 하나님의 영예가 옹호되어야 하고 그들이 낮아져 돌이켜야 하기 때문이다.
[2.] 이 모든 일에도 불구하고 그리스도의 나라가 계속되리라는 것은 하나님의 어길 수 없는 약속과 맹세로 확실하다(시 89:33). "그러할지라도 나의 인자함은 그에게서" 아주 그리고 영영 "거두지 아니하리라." 첫째, "그들이 나를 노엽게 할지라도 나의 언약은 깨어지지 않으리라"는 것이다. 여기서 유의할 것은, 고난이 언약의 사랑과 어긋나지 않을 뿐 아니라 하나님의 백성에게는 바로 그 언약의 사랑에서 흘러나온다는 점이다. 다윗의 자손이 징계를 받는다고 해서 상속에서 끊어지는 것은 아니다. 그들은 거꾸러질 수는 있어도 버림받지는 않는다. 하나님의 은총이 그 백성에게 계속되는 까닭은 이러하다. 1. 그리스도 때문이다. 그분 안에 우리를 위한 자비가 쌓여 있고, 하나님께서 "내가 그에게서 그것을 거두지 아니하리라"(시 89:33), "내가 다윗에게 거짓말하지 아니하리라"(시 89:35) 하고 말씀하신다. 우리는 합당하지 않으나 그분은 합당하시다. 2. 언약 때문이다. "나의 성실함도 폐하지 아니하며 나의 언약을 깨뜨리지 아니하리라." 그들이 하나님의 법도를 깨뜨려 그것을 "더럽히고 욕되게 하였다"고 상정되었으나(그 단어가 그런 뜻이다), 하나님께서는 "나는 내 언약을 깨뜨리지 아니하며 더럽히고 욕되게 하지 아니하리라" 하신다. 같은 단어다. 말씀하시고 맹세하신 바는 해와 달이 있는 한 하나님께서 이 세상에 교회를 두시리라는 것이다. 시 89:36,37. 해와 달은 창조주의 지혜와 권능과 선하심을 하늘에서 증언하는 충실한 증인이며, 자기들이 재는 그 시간이 지속되는 동안 계속될 것이다. 그러나 "그리스도의 자손은 영원히 견고하게 되어" 세상이 서 있는 동안은 "세상의 빛"으로 그 안에서 빛나고, 세상이 끝난 뒤에는 아버지의 궁창에서 빛나는 견고한 빛이 될 것이다.
시편 89장 38-52 Matthew Henry's Complete Commentary
³⁸ 그러나 주께서는 주의 기름 부음 받은 자를 버리시고 미워하셨으며, 그에게 진노하셨습니다.
³⁹ 주께서는 주의 종의 언약을 무효로 만드셨으며, 그의 왕관을 땅에 내던져 더럽히셨습니다.
⁴⁰ 주께서는 그의 모든 울타리를 허무셨으며, 그의 요새를 폐허로 만드셨습니다.
⁴¹ 지나가는 모든 자가 그를 약탈하며, 그는 그의 이웃에게 비난거리가 되었습니다.
⁴² 주께서는 그의 적대자들의 오른손을 높이셨으며, 그의 모든 원수들을 기쁘게 하셨습니다.
⁴³ 주께서는 또한 그의 칼날을 무디게 하셨고, 그가 전쟁에서 서 있지 못하게 하셨습니다.
⁴⁴ 주께서는 그의 영광을 사라지게 하셨고, 그의 왕좌를 땅에 내던지셨습니다.
⁴⁵ 주께서는 그의 젊은 날들을 짧게 하셨고, 그에게 수치를 덮으셨습니다. 셀라.
⁴⁶ 주님, 언제까지입니까? 주께서 영원히 자신을 숨기시겠습니까? 주의 진노가 불같이 타오르겠습니까?
⁴⁷ 내 삶이 얼마나 짧은지 기억하소서. 어찌하여 주께서는 모든 사람을 헛되이 만드셨습니까?
⁴⁸ 살아서 죽음을 보지 않을 사람이 누구입니까? 그가 자기 영혼을 무덤의 손에서 건질 수 있겠습니까? 셀라.
⁴⁹ 주님, 주의 옛 사랑은 어디에 있습니까? 주께서 주의 진실함으로 다윗에게 맹세하셨던 그 사랑은 어디에 있습니까?
⁵⁰ 주님, 주의 종들의 비난을 기억하소서. 제가 모든 강한 백성의 비난을 품에 안고 있습니다.
⁵¹ 주의 원수들이 주를 비난하였고, 주님, 그들이 주의 기름 부음 받은 자의 발자취를 비난하였습니다.
⁵² 영원히 주를 찬송할지어다. 아멘, 아멘.
이 구절들에서 우리는 다음을 본다.
I. 다윗 가문이 지금 처한 참담한 형편에 대한 매우 침울한 탄식이다. 시편 기자는 이 형편을 하나님께서 다윗과 맺으신 언약과 조화시키기 어렵다고 여긴다. "주께서 주의 인자하심을 거두지 아니하리라 하셨거늘 주께서 버리셨나이다." 하나님의 섭리를 그분의 약속과 맞추어 이해하는 일이 쉽지 않을 때가 있으나, 그 둘이 조화될 수 있다는 것은 우리가 확신한다. 하나님의 행하심은 그분의 말씀을 이루는 것이지 결코 그 말씀과 어긋나지 않기 때문이다. 1. 다윗의 집은 하나님 안에서 누리던 몫을 잃은 것처럼 보였으니, 그것이야말로 그 집의 가장 큰 힘이요 아름다움이었다. 하나님께서 자기의 기름 부으신 자를 기뻐하셨으나 이제는 "그에게 진노하셨고"(시 89:38), 그 가문과 언약을 맺으셨으나 이제 그가 알아볼 수 있는 한에서는 그 언약을 무효로 만드셨으니, 조항 몇 개를 어기신 것이 아니라 언약을 파기하신 것이다. 시 89:39. 섭리의 책망이 언약을 무효로 만든다고 여긴다면 우리는 그 책망을 잘못 읽는 것이다. 그 위대한 기름 부음 받은 이, 곧 그리스도께서 친히 십자가에 달리셨을 때에도 하나님께서는 그를 버리신 듯하셨고 그에게 진노하신 듯하셨으나, 그와 맺으신 언약을 무효로 만드신 것은 아니었다. 그 언약은 영원히 세워졌기 때문이다. 2. 다윗 가문의 영예가 사라져 티끌에 떨어졌다. "주께서 그의 왕관을"(그 왕관은 언제나 거룩한 것으로 여겨졌다) "땅에 내던져" 짓밟히게 하심으로 "더럽히셨다." 시 89:39. "주께서 그의 영광을 사라지게 하셨다." 세상의 영광이란 이토록 덧없어 이토록 빨리 시든다. 그리고 "그의 왕좌를 땅에 내던지셨으니", 왕을 그 자리에서 끌어내리셨을 뿐 아니라 그 나라를 끝나게 하셨다. 시 89:44. 이 시편이 르호보암 때에 기록되었다면 그 나라의 태반, 곧 여섯 중 다섯에 대하여 사실이었고, 시드기야 때라면 그 가련한 남은 자들에 대하여 더욱 뚜렷하게 사실이었다. 유의하라. 왕좌와 왕관은 흔들리는 것이어서 자주 티끌에 떨어진다. 그러나 그리스도의 영적 자손을 위하여 예비된, 결코 시들지 않는 영광의 관이 있다. 3. 그 집은 드러나 모든 이웃의 먹이가 되었고, 이웃들은 그 유서 깊고 존귀한 가문을 조롱하였다(시 89:40). "주께서 그의 모든 울타리를 허무셨으니", 곧 그들에게 방어가 되던 모든 것을 허무셨고, 특히 하나님의 언약과 약속이 그들 주위에 둘러 주었다고 그들이 여기던 그 보호의 울타리를 허무셨으며, "그의 요새마저 폐허로 만드셔서" 그것이 그들에게 피난처가 되기는커녕 오히려 수치가 되게 하셨다. 그러자 "지나가는 모든 자가 그를 노략하여"(시 89:41) 손쉬운 먹이로 삼는다. 시 80:12,13을 보라. 원수들이 오만하게 떠들어 댄다. "그가 그의 이웃에게 비웃음거리가 되었으니", 그들은 그토록 높던 영예에서 떨어진 그를 두고 우쭐댄다. 아니, 저마다 그 재앙을 부추긴다(시 89:42). "주께서 그의 대적들의 오른손을 높이셨으니", 그들에게 힘을 주셨을 뿐 아니라 그 힘을 이쪽으로 돌리도록 그들을 기울이셨다는 것이다. 교회의 원수들이 교회를 치려고 손을 든다면, 우리는 하나님께서 그 손을 세우고 계심을 보아야 한다. 위에서 주시지 아니하였다면 그들에게 아무 권한도 없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그들이 자기 교회를 해치도록 허락하실 때에 그들은 그것을 기뻐한다. "주께서 그의 모든 원수들을 기쁘게 하셨나이다. 그리고 주를 미워하는 자들이 주를 사랑하는 자들의 눈물과 환난을 보는 즐거움을 누리는 이 일이 주의 영광을 위한 것이니이다." 4. 그 집은 스스로를 도울 힘조차 잃었다(시 89:43). "주께서 그의 칼날을 돌이켜" 무디게 하심으로 예전처럼 위력을 내지 못하게 하셨고, 더 나쁘게는 그 심령의 날을 돌이키시고 그 용기를 거두어 가셔서 "그가 전쟁에서" 예전처럼 "서지 못하게 하셨나이다." 사람의 심령이 어떠한가는 영들의 아버지요 지으신 이가 만드시는 대로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붙들어 주시는 그만큼이 아니고서는 우리가 어떤 힘이나 결의로도 설 수 없다. 사람의 마음이 녹아내린다면 그렇게 기운을 빼신 이는 하나님이시다. 그러나 교회를 위하여 서야 할 이들이 서지 못한다면 그 교회의 형편은 딱하다. 5. 그 집은 영예롭지 못한 종말의 벼랑 끝에 있었다(시 89:45). "주께서 그의 젊은 날을 짧게 하셨으니", 한창 나이의 젊은이처럼 곧 끊어지려 한다. 이는 이 시편이 르호보암 때에 기록되었음을 넌지시 비치는 듯하다. 그때 다윗의 집은 아직 젊은 날에 있었는데도 벌써 늙어 쇠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그 집은 수치로 덮였다. 첫째와 둘째 치세에는 그토록 위풍당당하고 그토록 이름을 떨치던 가문이 셋째 치세에 이르러 르호보암 때의 다윗의 집처럼 오그라들어 보잘것없이 된 것은 큰 치욕이었다. 그러나 이 말은 바벨론 포로기에도 적용할 수 있다. 기대했던 바에 비하면 그때는 그 나라의 젊은 날에 지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어쨌든 그때의 왕들은 "젊은 날이 짧아진" 것이 뚜렷했다. 여호야긴과 시드기야가 서른 살 안팎의 젊은 날에 바벨론으로 사로잡혀 갔기 때문이다.
이 모든 탄식에서 우리는 이것을 배우자. 1. 죄가 가정에, 존귀한 왕가에, 신앙이 으뜸 자리를 차지했던 집안에 어떤 일을 저지르는지를 배우자. 후손이 타락하면 그 집안은 치욕에 떨어지고 죄악이 그들의 영광을 더럽힌다. 2. 우리가 교회에 약속된 영예와 복을 얼마나 쉽게 겉으로 드러나는 것에 두는지, 그리고 그것을 얻지 못하면 약속이 실패하고 언약이 무효가 되었다고 얼마나 쉽게 생각하는지를 배우자. 우리 주님께서 자기 나라가 이 세상에 속한 것이 아니라고 그토록 분명히 말씀하셨으니, 오늘 우리가 이런 잘못에 빠진다면 변명할 여지가 없다.
II. 이 일을 두고 하나님께 드리는 매우 간절한 항변이다. 그들은 긍휼을 얻으려고 네 가지를 하나님께 아뢴다.
환난이 오래 계속된다는 것이다(시 89:46). "여호와여 어느 때까지니이까? 주께서 영원히 자신을 숨기시리이까?" 그들을 가장 괴롭힌 것은, 하나님께서 친히 언짢으신 분처럼 선지자를 통하여 그들을 위로하러 나타나지 않으시고 섭리로 그들을 건지러 나타나지도 않으신 채 오래도록 그들을 어둠 속에 두셨다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물러나셨을 때 그것은 끝나지 않는 밤 같았다. "주께서 영원히 자신을 숨기시나이다." 아니, 하나님께서는 그들에게서 자신을 숨기셨을 뿐 아니라 그들을 대적하시는 듯 보이셨다. "주의 진노가 불같이 타오르리이까? 얼마나 오래 타오르리이까? 결코 꺼지지 아니하리이까? 지옥이란 영원히 타오르는 하나님의 진노가 아니고 무엇이니이까? 그것이 주의 기름 부음 받은 자의 몫이니이까?"
인생이 짧고 죽음이 확실하다는 것이다. "주여, 주의 진노를 그치시고 우리에게 긍휼로 돌아오소서. 내 날이 얼마나 짧은지, 내 날의 끝이 얼마나 확실한지 기억하소서. 주여, 내 생명이 이토록 덧없어 머지않아 끝날 것이오니, 차라리 아예 없느니만 못한 그런 존재가 되기를 택할 만큼 늘 비참하게 하지 마소서." 욥도 이렇게 아뢴다. 욥 10:20,21. 시편 기자도 아마 여기서 다윗의 집을 대신하여, 그리고 그 "젊은 날이 짧아진"(시 89:45) 그 집의 현재 군주를 대신하여 이렇게 아뢰는 듯하다.
(1.) 그는 인생이 짧고 허무함을 아뢴다(시 89:47). "내 날이 얼마나 짧은지 기억하소서", 어떤 이들은 "내가 얼마나 덧없는 존재인지"라고 옮긴다. 그러므로 나는 주의 진노의 힘을 견딜 수 없고, 그러므로 주의 긍휼을 받기에 합당한 대상이다. "어찌하여 주께서 모든 사람을 헛되이 지으셨나이까?" 또는 "주께서 아담의 모든 자손을 무슨 허무한 것이 되게 창조하셨나이까!" 이 말은 두 가지로 이해할 수 있다. [1.] 큰 진리를 밝히는 말로 볼 수 있다. 만일 앞에서 말한 그 옛 인자하심(시 89:49), 곧 또 다른 생명에 관한 인자하심을 잊어버린다면 사람은 참으로 헛되이 지음받은 것이다. 사람을 죽을 존재로만 볼 때, 죽음 저편에 내세가 없다면 우리는 사람이 헛되이 지음받았다고, 이성이라는 고귀한 능력과 재능을 헛되이 부여받았고 그토록 큰 계획과 갈망으로 헛되이 채워졌다고 생각하기 쉬울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사람을 헛되이 지으셨을 리 없다. 그러므로 주여, 그 인자하심을 기억하소서. 또는 [2.] 시편 기자가 빠져 있던 강한 시험을 드러내는 말로 볼 수 있다. 하나님께서 모든 사람을, 아니 어느 한 사람도 "헛되이 지으신" 것이 아님은 확실하다. 사 45:18. 그 까닭은 이러하다. 첫째, 이 세상에서 많은 사람이 짧은 생애를 살고 오랜 고난을 겪는다고 하여 하나님께서 사람을 헛되이 지으셨다고 여긴다면, 하나님께서 그들을 그렇게 지으신 것은 사실이지만 "그러므로" 그들이 헛되이 지음받았다는 것은 사실이 아니다. 날이 적고 괴로움이 가득한 이들도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얼마간 선을 행할 수 있으며, 하나님과 나누는 교제를 지키고 천국에 이를 수 있으니, 그렇다면 그들은 헛되이 지음받은 것이 아니다. 둘째, 대다수 사람이 하나님을 섬기지도 않고 누리지도 않는다고 하여 하나님께서 사람을 헛되이 지으셨다고 여긴다면, 그들 자신에 관한 한 헛되이 지음받았다는 것은 사실이니, 거듭나지 못할 바에는 태어나지 않는 편이 그들에게 더 나았을 것이다. 그러나 그들이 헛되이 지음받은 것은 하나님 탓이 아니라 그들 자신의 탓이다. 또 하나님께 대하여는 그들이 헛되이 지음받은 것이 아니니, 하나님께서 "만물을 자기를 위하여 지으셨고 악인도 악한 날에 적당하게 하셨기" 때문이며, 그분께서 그들에게서 영광을 받지 못하시면 그들 위에서 영광을 받으실 것이기 때문이다.
(2.) 그는 죽음이 누구에게나 오며 피할 수 없음을 아뢴다(시 89:48). "누가 살아서 죽음을 보지 아니하리이까?"(원문은 "강한 사람"이다) 다윗의 집 왕 자신도 이 선고에서, 이 타격에서 면제되지 않는다. "주여, 그가 반드시 죽어야 할 운명 아래 있사오니 그의 온 생애를 이토록 비참하게 하지 마소서. 그가 자기 영혼을 무덤의 손에서 건지리이까?" 아니, 때가 이르면 건지지 못한다. "그러니 그때가 이르기 전에 죽어 가는 삶의 비참함으로 그를 무덤의 손에 넘기지 마소서." 우리는 여기서 죽음이 모든 사람의 끝임을 배워야 한다. 우리 눈도 머지않아 감겨 죽음을 보게 될 것이다. 그 전쟁에서는 면제가 없고, 무덤이라는 감옥에서 우리를 빼낼 보석금도 받아 주지 않는다. 그러므로 우리는 죽음과 무덤 저편의 복을 확실히 해 두어야 하니, "우리가 다할 때에 영원한 처소로 영접받게" 하려는 것이다.
다음 간청은 하나님께서 자기 종 다윗에게 품으신 인애와 그와 맺으신 언약에서 나온다(시 89:49). "주여, 주께서 주의 진실하심으로 다윗에게 보이셨고 나아가 맹세하신 그 옛 인자하심이 어디 있나이까? 주께서 약속하신 것을 이루지 아니하시겠나이까? 주께서 행하신 것을 도로 무르시겠나이까? 주는 여전히 동일하신 분이 아니시니이까? 그렇다면 어찌하여 우리는 다윗에게 허락하신 그 옛 확실한 은혜를 누리지 못하나이까?" 하나님의 불변하심과 신실하심은, 하나님께서 자기가 택하시고 언약을 맺으신 이들을 버리지 않으시리라는 것을 우리에게 보증한다.
마지막 간청은 원수들의 오만함과 하나님의 기름 부음 받은 자가 당한 모욕에서 나온다(시 89:50,51). "주여, 그 비방을 기억하시고 그것을 우리에게서 굴려 내어 우리 원수들에게 돌리소서." (1.) 비방을 당한 이들은 하나님의 종들이었고, 그들이 당한 학대는 그들의 주인에게 되돌아갔으니, 더욱이 그들이 그분을 섬긴다는 이유로 비방을 당했기 때문이다. (2.) 하나님의 종들에게 쏟아진 비방은 하나님의 영예를 생각하는 모든 이에게 매우 무거운 짐이었다. "내가 모든 강한 백성의 비방을 내 품에 안고 있어 그 무게에 짓눌리나이다. 그것을 내가 깊이 마음에 두어 그 무게 아래 좀처럼 기운을 차리지 못하나이다." (3.) "우리를 이렇게 비방하는 자들은 주의 원수들이오니, 주께서 그들을 그런 자로 여겨 맞서지 아니하시겠나이까?" (4.) "그들이 주의 기름 부음 받은 자의 발자취를 비방하였나이다." 그들은 왕이 나라를 다스리며 밟아 온 모든 걸음을 헐뜯었고, 그가 말하고 행한 모든 것을 두고 시비를 걸려고 그의 일거수일투족을 뒤쫓았다. 또는 이 말을 주의 메시아이신 그리스도께 적용한다면, 그들은 그분의 발자취, 곧 그분께서 더디 오심을 두고 유대인을 비방한 것이다. 해먼드(Dr. Hammond) 박사는 그들이 메시아의 지체됨을 비방한 것이라고 본다. 그들은 그분을 "오실 그이"라 불렀으나, 그분이 아직 오지 않으셨다는 이유로, 그리고 그들을 건질 자가 하나도 없을 때에 그분께서 원수의 손에서 그들을 건지러 오지 않으셨다는 이유로, 그분은 결코 오지 않으실 터이니 기다리기를 그만두라고 그들에게 말했다. 마지막 때의 조롱하는 자들도 이와 마찬가지로 "주께서 강림하신다는 약속이 어디 있느냐"고 물으며 메시아의 발자취를 비방한다. 벧후 3:3,4. 기름 부음 받은 자의 발자취를 비방한다는 말을, 어떤 이들은 뱀이 "여자의 후손의 발꿈치를 상하게 하는" 일에 연결하고, 어떤 이들은 그분의 발자취를 따라 걷다가 그분의 이름 때문에 비방을 받는 그리스도의 제자들이 겪는 고난에 연결한다.
III. 이런 슬픈 탄식을 하고서도 이 시편은 찬양으로 끝난다(시 89:52). "여호와를 영원히 찬송할지어다. 아멘 아멘." 이로써 그는 원수들의 비방에 맞선다. 남들이 하나님을 모독할수록 우리는 더욱 그분을 송축해야 한다. 이로써 그는 자기 탄식을 바로잡고, 하나님의 섭리와 다투며 그분의 약속을 의심한 자신을 꾸짖는다. 이 두 가지 죄된 감정은 하나님을 찬양함으로 잠잠하게 하자. 형편이 어떠하든 하나님은 선하시니 우리는 결코 그분을 야박하게 생각하지 않을 것이고, 하나님은 진실하시니 우리는 결코 그분을 불신하지 않을 것이다. 다윗의 집의 영광은 더럽혀지고 빛이 바랬을지라도, 하나님께서 영원히 송축을 받으시고 그분의 영광은 가려질 수 없다는 것이 우리의 위로가 된다. 하나님의 약속이 굳게 선다는 데서 위로를 얻으려면 우리는 그 일로 그분을 찬양해야 한다. 하나님을 송축하는 가운데 우리는 스스로 힘을 얻는다. 여기에 "아멘"이 두 번 나오는데, 그 뜻이 둘이기 때문이다. "아멘 — 그러하다", 하나님은 영원히 송축을 받으신다. "아멘 — 그리 될지어다", 하나님께서 영원히 송축을 받으시기를 빈다. 그는 이 시편을 감사로 시작하여 탄식을 내놓았고(시 89:1), 이제는 송영으로 마친다. 하나님께서 행하신 일로 그분께 감사하는 이들은 그분께서 앞으로 행하실 일로도 감사할 수 있다. 하나님께서는 마땅한 방식으로 찬양을 드리며 그분을 따르는 이들을 자기 자비로 뒤따르실 것이다.
불평과 기도로 시작해 기쁨과 찬양으로 끝나는 시편이 많지만, 이 시편은 기쁨과 찬양으로 시작해 슬픈 탄식과 간구로 끝난다. 시편 기자가 먼저 하나님께서 이전에 베푸신 은혜를 하나하나 되새기고, 그 은혜를 헤아리는 가운데 현재의 고통을 한층 무겁게 느끼기 때문이다. 이 시편이 언제 기록되었는지는 확실하지 않다. 다만 다윗의 집이 참담하게 빛을 잃은 때였다는 것만은 일반적으로 인정된다. 어떤 이들은 바벨론 포로기, 곧 시드기야 왕이 느부갓네살에게 능욕과 학대를 당하던 때에 기록되었다고 보는데, 이 견해를 따르면 표제는 이 시편이 마스길이라 불리는 세라의 아들 에단의 노래 곡조에 맞춰졌다는 뜻 이상이 아니게 된다. 다른 이들은 솔로몬의 기사에 언급되는 에단이 지었다고 추정한다. 곧 에단이 그 영화로운 군주보다 오래 살아남아, 다음 치세에 열 지파가 배반함으로써 다윗의 집에 닥친 큰 수치를 이렇게 애도했다는 것이다.
I. 시편 기자는 이 시편의 기쁘고 밝은 부분에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자기 자신과 벗들이 위로를 얻게 한다. 그는 하나님의 자비하심과 진실하심(시 89:1), 그리고 그 언약(시 89:2-4)을 언급하는 데서는 비교적 간략하지만, 이어지는 절들에서는 훨씬 폭넓게 다룬다. 거기서 그는,
II. 이 시편의 침울한 부분에서 그는 군주와 왕가가 처한 현재의 참담한 형편을 탄식하고(시 89:38-45), 그 일을 두고 하나님께 항변하며(시 89:46-49), 회복을 구하는 기도로 마무리한다. 시 89:50,51.
이 시편을 노래할 때 우리는 하나님을 높이 생각하고, 구속자와 맺으신 그분의 언약을 살아 있는 믿음으로 붙들며, 교회의 고난받는 지체들과 함께 아파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