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tthew Henry's Complete Commentary
Matthew Henry · 1714
Matthew Henry 사후(1714) 공개 도메인. 디지털판 CC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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¹ 사데 교회의 사자에게 편지하라. 하나님의 일곱 영과 일곱 별을 가지신 이가 이르시되, 내가 네 행위를 아노니 네가 살았다 하는 이름은 가졌으나 죽은 자로다.
² 깨어 있어 죽게 된 남은 것들을 굳게 하라. 내가 네 행위가 하나님 앞에서 온전한 것을 찾지 못하였노라.
³ 그러므로 네가 어떻게 받았으며 어떻게 들었는지 기억하고 굳게 지켜 회개하라. 만일 깨어 있지 아니하면 내가 도둑같이 네게 이르리니 어느 때에 네게 이를는지 네가 알지 못하리라.
⁴ 그러나 사데에 그 옷을 더럽히지 아니한 몇 이름이 네게 있어 흰 옷을 입고 나와 함께 다니리니, 그들은 합당한 자들이라.
⁵ 이기는 자는 이와 같이 흰 옷을 입을 것이요, 내가 그 이름을 생명책에서 결코 지우지 아니하고 그 이름을 내 아버지 앞과 그의 천사들 앞에서 시인하리라.
⁶ 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지어다.
여기에 I. 서문이 있다. 그것은, 1. 이 편지가 누구에게 향하는지를 보여 준다. 사데 교회의 사자에게 보낸 것이다. 사데는 두몰로 산 기슭에 자리한 루디아의 고대 도시로, 소아시아의 으뜸 도시였다고 하며, 요한의 설교를 통해 그 지역에서 처음으로 회심한 도시였다고 전해진다. 또 어떤 이들은 이 도시가 기독교에서 가장 먼저 떠난 도시였고, 가장 먼저 폐허가 된 도시들 가운데 하나였다고 말한다. 지금도 그 폐허 가운데 놓여 있으며, 교회도 사역도 없다. 2. 이 메시지가 누구에게서 보내졌는지를 보여 준다. 곧 주 예수께서 보내신 것이다. 여기서 그는 계 1:4에서 취한 표현, 곧 하나님의 일곱 영과 일곱 별을 가지신 이라는 성품으로 자신을 나타내신다. 거기서는 일곱 영이 보좌 앞에 있다고 말한다. (1.) 그는 일곱 영을 가지셨다. 곧 여러 능력과 은혜와 역사를 지니신 성령을 가지셨다는 뜻이다. 성령은 인격적으로는 한 분이시나, 효력에 있어서는 다양하시다. 여기서 일곱이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은 교회들의 수와 교회들의 사자들의 수가 일곱이기 때문이며, 모든 사역자와 모든 교회에게 유익을 얻게 하려는 성령의 분배와 분량이 주어져 있음을 보이기 위함이다. 곧 그 사역자와 교회가 확장과 지속을 위하여 활용해야 할 영적 영향력의 자본이 주어진 것이다. 이 성령의 분량은 보통 그들이 잘못 사용하여 상실하기 전까지는 그들에게서 거두어지지 않는다. 개별 신자들에게 영적 자본과 기금이 있듯이 교회들에게도 그러한 것이 있다. 그리고 이 서신이 쇠약해져 가는 사역과 교회에 보내졌으므로, 그들은 그리스도께서 일곱 영, 곧 한량없고 완전한 성령을 가지셨다는 사실을 상기하는 것이 매우 합당하다. 그들은 자신들 가운데 주의 일을 소생시키기 위하여 그분께 나아갈 수 있다. (2.) 그는 일곱 별, 곧 교회들의 사자들을 가지셨다. 그들은 그분에 의해 배치되고 그분께 책임을 진다. 이 사실은 그들을 충성되고 열심 있게 만들어야 한다. 그분은 고용하실 사역자들을 가지셨고, 자기 교회의 유익을 위하여 그 사역자들에게 전달하실 영적 영향력을 가지셨다. 성령께서는 보통 사역을 통하여 일하시며, 사역은 성령 없이는 아무 효력이 없다. 같은 신적 손이 이 둘을 함께 붙들고 계신다.
II. 이 서신의 본문이다. 여기서 주목할 만한 점은, 다른 서신들에서는 그리스도께서 교회들 안에 있는 선한 것을 칭찬하는 것으로 시작하신 뒤 잘못된 것을 말씀하시는 데 반하여, 이 서신에서는(그리고 라오디게아에 보낸 서신에서도) 이렇게 시작하신다는 것이다.
1. 책망으로 시작하시되, 매우 엄중한 책망으로 시작하신다. 내가 네 행위를 아노니 네가 살았다 하는 이름은 가졌으나 죽은 자로다. 외식과 종교의 비참한 쇠퇴가 이 교회에 부과된 죄목이다. 그것은 이 교회와 그 모든 행위를 잘 아시는 분이 하신 고발이다. (1.) 이 교회는 큰 명성을 얻고 있었다. 그것은 번성하는 교회라는 이름, 참되고 활기 있는 신앙이라는 이름, 교리의 순수성, 서로 간의 일치, 예배의 통일성, 단정함과 질서라는 매우 존귀한 이름을 가지고 있었다. 우리는 그들 가운데 불행한 분열이 있었다는 말을 읽지 못한다. 사람들의 관찰 아래 들어오는 것에 관한 한 모든 것이 좋아 보였다. (2.) 그러나 이 교회는 실제로는 그 평판과 같지 않았다. 그들은 살았다는 이름은 있었으나 죽어 있었다. 경건의 모양은 있었으나 능력은 없었고, 살았다는 이름은 있었으나 생명의 원리는 없었다. 생명이 완전히 박탈된 것은 아니었다 하더라도, 그들의 영혼과 봉사에는 큰 죽음의 상태가 있었고, 그 사역자들의 영과 그들의 사역, 그들의 기도, 설교, 교제에는 큰 죽음의 상태가 있었으며, 백성들도 듣는 일과 기도와 대화에서 큰 죽음의 상태에 있었다. 그들 가운데 아직 남아 있던 작은 생명마저도 말하자면 꺼져 가고 있었고 죽을 지경에 이르러 있었다.
2. 우리 주께서는 이 타락한 교회에 가장 좋은 권면을 주신다. 깨어 있어 남은 것들을 굳게 하라 등이다, 계 3:2. (1.) 그는 그들에게 경계하고 깨어 있으라고 권하신다. 그들의 죄악 된 죽음과 쇠퇴의 원인은 그들이 경계를 늦추었기 때문이다. 우리가 경계를 풀 때마다 우리는 지위를 잃는다. 그러므로 우리는 죄와 사탄과 경건의 생명과 능력을 파괴하는 모든 것에 대하여 다시 깨어 있어야 한다. (2.) 남아 있는 것들, 곧 죽게 된 것들을 굳게 하라고 하신다. 어떤 이들은 이것을 사람들에 관한 말로 이해한다. 자기들의 성실함을 지켜 온 소수의 사람들이 있었으나, 그들도 나머지 사람들과 함께 쇠퇴할 위험에 있었다. 우리 주위에 보편적인 죽음과 쇠퇴가 만연한 것을 볼 때, 우리 자신이 경건의 생명과 능력을 유지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또는 이것을 이어지는 말씀처럼 행위들에 관한 말로 이해할 수도 있다. 내가 네 행위가 하나님 앞에서 온전한 것을 찾지 못하였노라. 곧 채워지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 안에는 부족한 것이 있다. 껍데기는 있으나 알맹이는 없고, 시체는 있으나 영혼은 없으며, 그림자는 있으나 실체는 없다. 내적인 것이 결핍되어 있다. 네 행위는 속이 비고 공허하다. 기도는 거룩한 소원으로 채워지지 않았고, 구제는 참된 사랑으로 채워지지 않았으며, 안식일은 하나님께 드리는 합당한 영혼의 헌신으로 채워지지 않았다. 외적인 행위와 표현에 어울리는 내적 애정이 없다. 이제 영이 결핍되면 형식은 오래 존속할 수 없다. (3.) 그들 자신을 되돌아보고 그들이 어떻게 받았으며 어떻게 들었는지 기억하라고 하신다(계 3:3). 그들이 무엇을 받았고 들었는지, 하나님께로부터 어떤 메시지를 받았는지, 그들을 향한 하나님의 긍휼과 은총의 어떤 표징을 받았는지, 어떤 설교를 들었는지를 기억할 뿐 아니라, 그들이 어떻게 받았고 들었는지를 기억하라는 것이다. 하나님의 긍휼이 처음에 그들의 영혼에 어떤 인상을 남겼는지, 말씀과 규례 아래에서 어떤 애정들이 그들 안에서 움직이는 것을 느꼈는지, 그들의 약혼 때의 사랑과 젊은 날의 친절, 그들이 처음 복음과 하나님의 은혜를 받았을 때 그것들이 그들에게 얼마나 환영받았는지를 기억하라는 말이다. 그때 그들이 말하던 복은 어디에 있는가? (4.) 그들이 받은 것을 굳게 붙들어 모든 것을 잃지 않게 하고, 종교의 생명을 그토록 많이 잃어버렸으며 모든 것을 잃을 위험에 처하게 된 일을 진심으로 회개하라고 하신다.
3. 그리스도께서는 이 권면이 멸시될 경우에 있을 무서운 위협으로 그것을 강화하신다. 내가 도둑같이 네게 이르리니 네가 그 때를 알지 못하리라, 계 3:3. 주목하라. (1.) 그리스도께서 은혜로운 임재에 있어서 어떤 백성을 떠나실 때, 그는 심판으로 그들에게 오신다. 그리고 그의 심판적 임재는 그의 은혜로운 임재를 죄로 몰아낸 자들에게 매우 두려운 것이 될 것이다. (2.) 죽고 쇠퇴해 가는 백성에게 그의 심판적 접근은 뜻밖의 일이 될 것이다. 그들의 죽음의 상태는 그들을 안일하게 만들 것이며, 그것이 그리스도의 진노의 방문을 그들에게 초래하듯이, 그들이 그것을 분별하고 준비하는 것을 막을 것이다. (3.) 그리스도의 그러한 방문은 그들에게 손실이 될 것이다. 그는 도둑같이 오셔서 그들에게 남아 있는 누림과 긍휼을 벗겨 가실 것이다. 그것은 속임수로가 아니라 공의와 의로 하시는 일이며, 그들이 그분께 잃어버린 모든 것의 몰수를 거두시는 것이다.
4. 우리의 복되신 주께서는 이 죄 많은 백성을 아무 위로와 격려 없이 내버려 두지 않으신다. 심판 가운데서도 그는 긍휼을 기억하신다(계 3:4). 그리고 여기서 (1.) 그는 사데에 있는 충성된 남은 자들을, 비록 적은 수라 하더라도 존귀하게 언급하신다. 사데에 그 옷을 더럽히지 아니한 몇 이름이 네게 있다. 그들은 자기들이 살던 시대와 장소에 만연한 부패와 더러움에 빠져들지 않았다. 하나님께서는 그와 함께 거하는 자들의 가장 작은 수까지도 주목하신다. 그리고 그 수가 적을수록 그들은 그의 눈에 더욱 귀하다. (2.) 그는 그들에게 매우 은혜로운 약속을 하신다. 그들이 흰 옷을 입고 나와 함께 다니리니, 그들은 합당한 자들이라. 곧 칭의와 양자 됨과 위로의 흰 예복인 스톨라를 입고, 또는 저 세상에서 존귀와 영광의 흰 예복을 입고 다닐 것이다. 그들은 하늘 낙원의 즐거운 길에서 그리스도와 함께 걸을 것이다. 그들이 이렇게 함께 걸을 때 그리스도와 그들 사이에는 얼마나 기쁜 교제가 있을 것인가! 이것은 그들의 성실함에 적절하고 알맞은 영예이며, 그들의 충성이 그들을 위해 준비한 것이고, 그리스도께서 그들에게 수여하시기에 결코 합당하지 않은 일이 아니다. 다만 그들에게 돌려지는 합당함은 율법적 합당함이 아니라 복음적 합당함이며, 공로가 아니라 적합성이다. 여기서 참되고 실제적인 거룩함의 깨끗한 옷을 입고 그리스도와 함께 걸으며 세상으로부터 자신을 더럽히지 않는 자들은 저 세상에서 존귀와 영광의 흰 예복을 입고 그리스도와 함께 걸을 것이다. 이것은 합당한 상이다.
III. 이제 우리는 이 서신의 결론에 이른다. 여기서도 앞에서처럼 다음이 있다.
1. 이기는 그리스도인에게 약속된 큰 상이 있다(계 3:5). 그것은 이미 언급된 것과 매우 비슷하다. 이기는 자는 흰 옷을 입을 것이다. 은혜의 순결은 영광의 완전한 순결로 보상받을 것이다. 거룩함은 완전해질 때 그 자체가 상이 될 것이다. 영광은 은혜의 완성으로서, 종류가 다른 것이 아니라 정도가 다를 뿐이다. 이제 여기에 그 경우에 매우 알맞은 또 하나의 약속이 더해진다. 내가 그의 이름을 생명책에서 지우지 아니하고, 그의 이름을 내 아버지 앞과 그의 천사들 앞에서 시인하리라. 주목하라. (1.) 그리스도께는 그의 생명책, 곧 영생을 상속할 모든 사람들의 등록부와 명부가 있다. [1.] 영원한 선택의 책이다. [2.] 악한 때에도 하나님께 살며 경건의 생명과 능력을 유지한 모든 사람들을 기억하는 책이다. (2.) 그리스도께서는 자기의 택함 받고 충성된 자들의 이름을 이 생명책에서 지우지 않으실 것이다. 사람들은 세례를 받은 자로서, 신앙을 고백한 자로서, 살았다는 이름을 가진 자로서 교회의 명부에 등록될 수 있다. 그러나 그것이 단지 이름, 곧 영적 생명 없는 살았다는 이름에 불과한 것으로 드러날 때 그 이름은 그 명부에서 지워질 수 있다. 그런 사람들은 흔히 죽기 전에 그 이름 자체마저 잃는다. 하나님께서 그들을 버려 두셔서 그들 자신의 추하고 공개적인 악으로 자기 이름을 스스로 지우게 하신다. 그러나 이기는 자들의 이름은 결코 지워지지 않을 것이다. (3.) 그리스도께서는 이 생명책을 내어 보이시고, 거기에 서 있는 충성된 자들의 이름을 하나님과 모든 천사들 앞에서 시인하실 것이다. 책들이 펴질 때 그는 그들의 심판자로서 이렇게 하실 것이며, 또한 그들의 대장과 머리로서 그들을 자신과 함께 승리 가운데 하늘로 인도하시고 아버지께 제시하시며 이렇게 하실 것이다. 보소서, 나와 하나님께서 내게 주신 자녀들이니이다. 이 영예와 상은 얼마나 클 것인가!
2. 보편적인 주의 요청이 이 메시지를 마무리한다. 하나님께로부터 오는 모든 말씀은 사람들의 주의를 받을 만하다. 어떤 한 무리의 사람들에게 더 특별히 향한 것처럼 보이는 말씀에도 모든 사람에게 교훈이 되는 것이 들어 있다.
⁷ 빌라델비아 교회의 사자에게 편지하라. 거룩하고 참되시며 다윗의 열쇠를 가지신 이, 여시면 닫을 사람이 없고 닫으시면 열 사람이 없는 이가 이르시되,
⁸ 내가 네 행위를 아노라. 보라, 내가 네 앞에 열린 문을 두었으되 능히 닫을 사람이 없으리라. 네가 작은 능력을 가지고도 내 말을 지키며 내 이름을 배반하지 아니하였도다.
⁹ 보라, 사탄의 회당 곧 자칭 유대인이라 하나 그렇지 아니하고 거짓말하는 자들 중에서 몇을 네게 주리니, 보라, 그들이 와서 네 발 앞에 절하게 하고 내가 너를 사랑한 줄을 알게 하리라.
¹⁰ 네가 나의 인내의 말씀을 지켰은즉, 나도 너를 지켜 땅에 거하는 자들을 시험하려고 온 세상에 임할 시험의 때를 면하게 하리라.
¹¹ 보라, 내가 속히 오리니 네가 가진 것을 굳게 붙들어 아무도 네 면류관을 빼앗지 못하게 하라.
¹² 이기는 자는 내가 내 하나님 성전에 기둥이 되게 하리니 그가 결코 다시 나가지 아니하리라. 내가 하나님의 이름과, 내 하나님의 성 곧 하늘에서 내 하나님께로부터 내려오는 새 예루살렘의 이름과, 나의 새 이름을 그 위에 기록하리라.
¹³ 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지어다.
우리는 이제 아시아 교회들 가운데 하나에게 보내진 여섯째 편지에 이르렀다. 여기서 주목할 것은 다음과 같다.
I. 수신자와 발신자를 보여 주는 표제이다.
1. 이 편지가 더 직접적으로 누구를 위하여 의도되었는가. 빌라델비아 교회의 사자에게 보낸 것이다. 이곳 역시 소아시아의 도시로, 무시아와 루디아의 경계에 자리하고 있었으며, 그 도시가 뛰어났던 형제 사랑에서 그 이름을 얻었다. 우리는 이 이름이 그 도시가 기독교를 받아들인 뒤에 붙여졌다고, 곧 한 아버지의 자녀요 그리스도의 형제들로서 모든 신자가 서로에게 가져야 하고 실제로 가지는 그리스도인의 애정에서 그렇게 불렸다고 보기는 어렵다. 오히려 시민들이 시민적 형제 관계 안에서 서로에게 가지고 보였던 사랑과 친절 때문에 붙은 그 고대의 이름이라고 보는 편이 더 낫다. 이것은 훌륭한 정신이었고, 복음의 은혜로 거룩하게 될 때 그들을 훌륭한 교회가 되게 했을 것이다. 실제로 그들은 그러했다. 이 교회에는 아무 책망도 발견되지 않기 때문이다. 물론 그 안에도 일반적인 연약함에서 오는 허물들이 있었을 것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 그러나 사랑은 그러한 허물들을 덮는다.
2. 이 편지가 누구에 의해 서명되었는가. 곧 홀로 모든 교회의 보편적 머리이신 동일한 예수에 의해 서명되었다. 여기서 그가 이 교회에 자신을 어떤 칭호로 나타내기를 택하셨는지 주목하라. 거룩하신 이, 참되신 이, 다윗의 열쇠를 가지신 이 등이다. 그의 인격적 성품이 있다. 곧 거룩하신 이와 참되신 이이다. 그는 본성상 거룩하시므로 자기 말씀에 참되실 수밖에 없다. 이는 그가 자기의 거룩함 안에서 말씀하셨기 때문이다. 또한 그의 통치적 성품도 있다. 그는 다윗의 열쇠를 가지셨고, 열면 아무도 닫지 못한다. 그는 다윗의 집의 열쇠, 곧 교회 안에서와 교회 위에서의 다스림과 권위의 열쇠를 가지셨다. 주목하라. (1.) 그의 통치 행위들. [1.] 그는 여신다. 그는 자기 교회들에게 기회의 문을 여신다. 자기 사역자들에게 발언의 문을 여신다. 들어가는 문을 여시고, 마음을 여신다. 그는 가시적 교회 안으로 받아들여지는 문을 여시며, 교제의 조건을 정하신다. 또한 그가 정하신 구원의 조건에 따라 승리한 교회 안으로 받아들여지는 문을 여신다. [2.] 그는 문을 닫으신다. 그가 기뻐하실 때 그는 기회의 문과 발언의 문을 닫으시고, 완고한 죄인들을 그 마음의 완악함 가운데 갇히게 내버려 두신다. 그는 불신자들과 불경건한 자들에게 교회의 교제의 문을 닫으신다. 또한 은혜의 날을 잠으로 흘려보낸 미련한 처녀들과 불법을 행하는 자들에게, 그들이 아무리 헛되이 자신만만하다 할지라도, 하늘 문을 닫으신다. (2.) 그가 이러한 행위들을 수행하시는 방식과 양식은 절대 주권이다. 사람의 뜻에 의존하지 않고 사람의 힘으로 저항할 수 없다. 그가 여시면 아무도 닫지 못하고, 그가 닫으시면 아무도 열지 못한다. 그는 뜻하게도 하시고 행하게도 하시며, 그가 일하실 때에는 아무도 막을 수 없다. 이것들은 거룩함과 진리 안에서 그리스도를 닮고자 힘썼으며, 그의 돌보심과 통치 아래서 자유와 기회의 넓은 문을 누렸던 교회에게 말씀하실 때 그에게 매우 적합한 성품들이다.
II. 이 서신의 주제이다. 여기서,
1. 그리스도께서는 그들을 위하여 자신이 행하신 일을 상기시키신다. 내가 네 앞에 열린 문을 두었으되 능히 닫을 사람이 없으리라, 계 3:8. 내가 그 문을 열어 두었고, 많은 대적이 있음에도 그것을 열린 채로 지켜 왔다는 뜻이다. 여기서 배우라. (1.) 그리스도는 그의 교회들이 누리는 모든 자유와 기회의 창시자로 인정되어야 한다. (2.) 그는 그들이 누리는 영적 자유와 특권을 얼마나 오래 보존해 주셨는지 주목하시고 계산하신다. (3.) 악한 사람들은 하나님의 백성이 가진 자유의 문을 시기하며, 그것을 그들에게 닫아 버리기를 기뻐할 것이다. (4.) 우리가 그리스도를 격노케 하여 이 문을 우리에게 닫게 하지 않는다면, 사람들은 그것을 닫을 수 없다.
2. 이 교회는 칭찬을 받는다. 네가 작은 능력을 가지고도 내 말을 지키며 내 이름을 배반하지 아니하였도다, 계 3:8. 이 안에는 부드러운 책망이 담겨 있는 듯하다. “네가 작은 능력 곧 작은 은혜를 가지고 있다. 그것이 내가 네게 열어 둔 넓은 기회의 문에 비례하지는 않지만, 참된 은혜이며 너를 충성되게 지켜 왔다.” 참된 은혜는 약할지라도 하나님의 인정을 받는다. 그러나 그리스도께서 작은 능력을 받아들이신다 하더라도, 신자들은 작은 것에 만족하여 머물러서는 안 되며 은혜 안에서 자라고, 믿음에 강하여져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기 위해 힘써야 한다. 참된 은혜는 약할지라도 가장 큰 은사나 보통 은혜의 가장 높은 정도보다 더 많은 일을 할 것이다. 그것은 그리스도인으로 하여금 그리스도의 말씀을 지키고 그의 이름을 부인하지 않게 하기 때문이다. 순종과 충성, 그리고 그리스도의 이름에 대한 자유로운 고백은 참된 은혜의 열매이며, 그런 것으로서 그리스도를 기쁘시게 한다.
3. 여기에는 하나님께서 이 교회에 베푸실 큰 은총의 약속이 있다, 계 3:9,10. 이 은총은 두 가지로 이루어진다.
(1.) 그리스도께서 이 교회의 원수들을 그 교회에 복종하게 하실 것이다. [1.] 그 원수들은 자칭 유대인이라 하나 그렇게 말함으로 거짓말하는 자들로 묘사된다. 그들은 자기들이 하나님의 유일하고 특별한 백성이라고 가장했으나 실제로는 사탄의 회당이었다. 영과 진리로 하나님을 예배하는 모임들은 하나님의 이스라엘이다. 그러나 거짓 신들을 예배하거나 참 하나님을 거짓된 방식으로 예배하는 모임들은 사탄의 회당이다. 그들이 하나님의 유일한 백성이라고 고백할지라도 그들의 고백은 거짓말이다. [2.] 그들이 교회에 복종하게 되는 일이 묘사된다. 그들이 네 발 앞에 절하리라. 이것은 교회 자체나 그 사역에 종교적이고 신적인 영예를 바친다는 뜻이 아니라, 자신들이 잘못되었고 이 교회가 옳으며 그리스도께 사랑받는다는 것을 확신하게 된다는 뜻이다. 그리하여 그들은 그 교회의 교제 안으로 받아들여지기를 원하고, 같은 하나님을 같은 방식으로 예배하기를 원하게 될 것이다. 이 큰 변화가 어떻게 이루어질 것인가? 하나님의 원수들의 마음 위에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능력과, 자기 교회를 향한 그의 특별한 은총을 뚜렷이 드러내심으로 이루어질 것이다. 그들이 내가 너를 사랑한 줄 알리라. 주목하라. 첫째, 어떤 교회가 누릴 수 있는 가장 큰 영예와 행복은 그리스도의 특별한 사랑과 은총에 있다. 둘째, 그리스도께서는 자기 백성을 향한 이 은총을 그들의 원수들까지도 보게 되고 인정하지 않을 수 없도록 드러내실 수 있다. 셋째, 이것은 그리스도의 은혜로 말미암아 그 원수들의 마음을 부드럽게 하며, 그들로 그 백성의 교제 안에 받아들여지기를 바라게 할 것이다.
(2.) 그리스도께서 이 교회에 약속하시는 또 하나의 은총의 사례는 가장 시험이 큰 때에도 견디게 하는 은혜이다(계 3:10). 이것은 그들의 지난 충성에 대한 보상으로 주어진다. 있는 자에게는 더 주어질 것이다. 여기서 주목하라. [1.] 그리스도의 복음은 그의 인내의 말씀이다. 그것은 죄 많은 세상을 향한 하나님의 오래 참으심의 열매이다. 그것은 사람들을 위하여 당하신 모든 고난 가운데 보이신 그리스도의 모범적 인내를 사람들 앞에 제시한다. 또한 그것을 받아들이는 자들에게 그리스도를 닮아 인내를 실천하라고 부른다. [2.] 이 복음을 누리는 모든 사람은 그것을 주의 깊게 지켜야 한다. 그들은 복음에 규정된 믿음과 실천과 예배를 지켜야 한다. [3.] 인내의 날 뒤에는 시험의 때를 예상해야 한다. 복음의 평화와 자유의 날은 하나님의 오래 참으심의 날이다. 그러나 그것은 마땅히 그래야 할 만큼 잘 사용되는 일이 드물기 때문에, 흔히 시련과 시험의 때가 뒤따른다. [4.] 때로 그 시련은 더 일반적이고 보편적이다. 그것은 온 세상에 임한다. 그리고 그렇게 보편적일 때에는 대개 더 짧다. [5.] 평화의 때에 복음을 지키는 자들은 시험의 때에 그리스도께 보존될 것이다. 복음을 지킴으로 그들은 시련을 준비하게 된다. 그리고 평화의 때에 그들을 열매 맺게 하신 같은 신적 은혜가 박해의 때에 그들을 충성되게 할 것이다.
4. 그리스도께서는 앞서 그가 그 교회로 하여금 할 수 있게 하겠다고 약속하신 바로 그 의무, 곧 견디며 자기가 가진 것을 굳게 붙드는 일을 교회에게 요구하신다. (1.) 그 의무 자체이다. “네가 가진 것을 굳게 붙들라. 그 믿음, 그 진리, 그 은혜의 능력, 그 열심, 형제들을 향한 그 사랑을 붙들라. 너는 이 탁월한 보화를 소유해 왔으니 그것을 굳게 붙들라.” (2.) 동기들은 그리스도의 신속한 나타나심에서 취해진다. “보라, 내가 속히 오리라. 보라, 내가 곧 와서 시련 아래 있는 그들을 구원하고, 그들의 충성을 보상하며, 떨어져 나가는 자들을 벌할 것이다. 그들은 한때 자신들이 권리를 가진 것처럼 보였고 바라며 그 생각으로 기뻐했던 그 면류관을 잃게 될 것이다. 견디는 그리스도인은 한때 그 상을 받을 만한 좋은 위치에 서 있던 뒤로 물러나는 고백자들에게서 그 상을 빼앗아 차지할 것이다.”
III. 이 서신의 결론이다, 계 3:12,13. 여기서,
1. 우리 구주께서는 늘 하시던 방식대로 승리하는 신자에게 영광스러운 상을 약속하신다. 그것은 두 가지로 나타난다. (1.) 그는 하나님의 성전 안에 기념비적인 기둥이 될 것이다. 성전을 지탱하는 기둥이 아니라(하늘은 그런 버팀목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하나님의 자유롭고 강력한 은혜의 기념비, 로마 황제들과 장군들을 기념하여 세운 많은 웅장한 기둥들이 그러했던 것처럼 훼손되거나 옮겨지는 일이 결코 없는 기념비가 될 것이다. (2.) 이 기념비적인 기둥 위에는 그런 경우에 흔히 그러하듯 존귀한 글이 새겨질 것이다. [1.] 그가 이 전쟁에서 그 명분을 위하여 싸우고, 섬기고, 고난받았던 하나님의 이름과 하나님의 성의 이름, 곧 하나님의 교회인 하늘에서 내려온 새 예루살렘의 이름이다. 이 기둥 위에는 그 신자가 하나님의 교회를 위하여 행한 모든 봉사, 곧 그 교회의 권리를 주장하고, 그 경계를 넓히며, 그 순결과 영예를 지킨 일이 기록될 것이다. 이것은 아시아티쿠스나 아프리카누스보다 더 큰 이름이 될 것이다. 곧 교회의 전쟁에서 하나님 아래 있는 군사라는 이름이다. 그리고 그 글의 또 다른 부분은 [2.] 중보자, 구속자, 우리 구원의 대장이신 그리스도의 새 이름이다. 이것으로 이 이기는 신자가 누구의 깃발 아래 입대했는지, 누구의 지휘 아래 행동했는지, 누구의 모범으로 격려를 받았는지, 누구의 영향 아래 선한 싸움을 싸우고 승리로 마쳤는지가 드러날 것이다.
2. 이 서신은 주의를 요구하는 말로 닫힌다. 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지어다. 곧 그리스도께서 자기의 충성된 백성을 어떻게 사랑하고 귀히 여기시는지, 그들의 충성을 어떻게 칭찬하시며 어떻게 관 씌우실 것인지를 들으라는 것이다.
¹⁴ 라오디게아 교회의 사자에게 편지하라. 아멘이시요 충성되고 참된 증인이시요 하나님의 창조의 시작이신 이가 이르시되,
¹⁵ 내가 네 행위를 아노니 네가 차지도 아니하고 뜨겁지도 아니하도다. 네가 차든지 뜨겁든지 하기를 원하노라.
¹⁶ 네가 이같이 미지근하여 차지도 아니하고 뜨겁지도 아니하므로 내가 너를 내 입에서 토하여 내치리라.
¹⁷ 네가 말하기를 나는 부자라 부요하여 부족한 것이 없다 하나, 네가 곤고하고 가련하고 가난하고 눈멀고 벌거벗은 것을 알지 못하는도다.
¹⁸ 내가 너를 권하노니 내게서 불로 연단한 금을 사서 부요하게 되고, 흰 옷을 사서 입어 벌거벗은 수치를 보이지 않게 하며, 안약을 사서 눈에 발라 보게 하라.
¹⁹ 무릇 내가 사랑하는 자를 책망하여 징계하노니 그러므로 네가 열심을 내라, 회개하라.
²⁰ 볼지어다, 내가 문 밖에 서서 두드리노니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내가 그에게로 들어가 그와 더불어 먹고 그는 나와 더불어 먹으리라.
²¹ 이기는 그에게는 내가 내 보좌에 함께 앉게 하여 주기를, 내가 이기고 아버지 보좌에 함께 앉은 것과 같이 하리라.
²² 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지어다.
우리는 이제 아시아의 일곱 교회 중 마지막이자 가장 나쁜 교회에 이르렀다. 이는 빌라델비아 교회의 반대이다. 그 교회에는 책망할 것이 없었던 것처럼, 이 교회에는 칭찬할 것이 아무것도 없다. 그러나 이 교회 역시 일곱 금 촛대 가운데 하나였다. 부패한 교회도 여전히 교회일 수 있기 때문이다. 여기서도 앞에서처럼 다음이 있다.
I. 표제, 곧 누구에게 보내졌으며 누구에게서 왔는가이다. 1. 누구에게 보내졌는가. 라오디게아 교회의 사자에게 보내졌다. 이곳은 한때 리쿠스 강 근처의 유명한 도시였고, 매우 넓은 둘레의 성벽과 세 개의 대리석 극장을 가지고 있었으며, 로마처럼 일곱 언덕 위에 세워져 있었다. 사도 바울이 이 도시에 복음을 심는 데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한 것으로 보인다. 그는 골로새서 마지막 장에서 언급하듯 이 도시로 편지를 보냈고, 그들에게 문안도 전했다. 라오디게아는 골로새에서 이십 마일도 떨어져 있지 않았다. 이 도시에서는 4세기에 공의회가 열렸으나, 오래전에 무너져 오늘날까지 폐허 가운데 놓여 있으며, 어린양의 진노를 보여 주는 두려운 기념물이 되었다. 2. 이 메시지가 누구에게서 보내졌는가. 여기서 우리 주 예수께서는 자신을 아멘이시요, 충성되고 참된 증인이시요, 하나님의 창조의 시작이라고 칭하신다. (1.) 아멘이시다. 그는 자기의 모든 목적과 약속에서 견고하고 변하지 않는 분이시며, 그 약속들은 모두 예가 되고 모두 아멘이 된다. (2.) 충성되고 참된 증인이시다. 하나님에 대하여 사람들에게 하시는 그의 증언은 받아들여지고 온전히 믿어져야 하며, 사람들에 대하여 하나님께 하시는 그의 증언도 온전히 믿어지고 고려될 것이다. 또한 그것은 무관심하고 미지근한 모든 고백자들을 대적하는 신속하면서도 참된 증언이 될 것이다. (3.) 하나님의 창조의 시작이시다. 이는 첫 창조에 관한 말일 수도 있다. 그러면 그는 시작, 곧 첫 원인이요 창조주요 그 통치자이시다. 또는 둘째 창조, 곧 교회에 관한 말일 수도 있다. 그러면 그는 그 몸의 머리요 죽은 자들 가운데서 먼저 나신 이시다. 이는 이 칭호들이 취해진 계 1:5의 표현과 같다. 그리스도께서는 자기 자신의 신적 능력으로 자신을 일으키심으로 새 세계의 머리가 되셨고, 죽은 영혼들을 일으켜 자신을 위한 살아 있는 성전과 교회가 되게 하신다.
II. 주제이다. 여기서 주목하라.
1. 이 교회의 사역자들과 백성들에 대하여, 그들이 자기 자신을 아는 것보다 그들을 더 잘 아시는 분이 작성하신 무거운 고발이 있다. 네가 차지도 아니하고 뜨겁지도 아니하도다. 그러나 그 어느 쪽보다도 더 나쁘다. 네가 차든지 뜨겁든지 하기를 원하노라, 계 3:15. 종교에서의 미지근함, 또는 무관심은 세상에서 가장 나쁜 성향이다. 만일 종교가 실제적인 것이라면 그것은 가장 탁월한 것이므로 우리는 그 일에 진지해야 한다. 만일 그것이 실제적인 것이 아니라면 그것은 가장 비열한 사기이므로 우리는 그것을 반대하는 데 열심이어야 한다. 종교가 조금이라도 가치 있는 것이라면 그것은 모든 것을 걸 만한 가치가 있다. 여기서의 무관심은 변명할 수 없다. 너희가 어느 때까지 두 사이에서 머뭇머뭇하려느냐? 하나님이 하나님이면 그를 따르고, 바알이 하나님이면 그를 따르라. 여기에는 중립의 자리가 없다. 공개적인 원수는 신의를 저버리는 중립자보다 더 나은 대우를 받을 것이다. 그런 사람보다 이방인에게 더 많은 소망이 있다. 그리스도께서는 사람들이 그를 위하든지 그를 대적하든지 진지하게 자신을 드러내기를 기대하신다.
2. 엄중한 형벌이 위협된다. 내가 너를 내 입에서 토하여 내치리라. 미지근한 물이 속을 메스껍게 하고 토하게 하듯이, 미지근한 고백자들은 그리스도의 마음을 그들에게서 돌이키게 한다. 그는 그들에게 싫증을 내시며 오래 참으실 수 없다. 그들은 자기들의 미지근함을 사랑, 온유, 절제, 그리고 넓은 마음이라고 부를지 모른다. 그러나 그것은 그리스도께 역겨운 것이며, 그것을 스스로 허용하는 자들 또한 그렇게 만든다. 그들은 거절당할 것이며 마침내 완전히 거절당할 것이다. 거룩하신 예수께서 이처럼 거절된 것에게 다시 돌아가신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3. 우리는 종교에서의 이 무관심과 일관성 없음의 한 원인이 제시되는 것을 본다. 그것은 자만 또는 자기기만이다. 그들은 이미 매우 잘 되어 있다고 생각했으므로 자신들이 더 나아지는지 아닌지에 대해 매우 무관심했다. 네가 말하기를 나는 부자라 부요하여 부족한 것이 없다 하므로 등이다, 계 3:17. 여기서 그들이 자신에 대해 가진 생각과 그리스도께서 그들에 대해 가지신 생각 사이에 얼마나 큰 차이가 있었는지 주목하라. (1.) 그들이 자신에 대해 가진 높은 생각이다. 네가 말하기를 나는 부자라 부요하여 부족한 것이 없다 하였다. 부자이며 더욱 부유해지고, 어떤 결핍이나 결핍 가능성도 초월할 만큼 증가했다는 것이다. 아마도 그들은 육체에 관한 한 잘 공급받고 있었고, 이것이 그들로 영혼의 필요를 간과하게 했을 것이다. 또는 그들은 자기 영혼도 잘 갖추어졌다고 생각했다. 그들에게는 학문이 있었고 그것을 종교로 여겼다. 그들에게는 은사가 있었고 그것을 은혜로 여겼다. 그들에게는 재치가 있었고 그것을 참된 지혜로 여겼다. 그들에게는 규례들이 있었고, 규례의 하나님 대신 그것들에 만족했다. 우리는 우리 자신의 영혼을 속이지 않도록 얼마나 조심해야 하는가! 의심할 여지 없이 지옥에는 한때 자신이 천국으로 가는 길에 있다고 생각했던 많은 사람들이 있다. 우리는 영혼의 일에 있어서 우리 자신을 아첨하고 속이도록 버려지지 않게 해 달라고 날마다 하나님께 간구해야 한다. (2.) 그리스도께서 그들에 대해 가지신 낮은 생각이다. 그리고 그는 잘못 보신 것이 아니었다. 그들은 알지 못했지만, 그는 그들이 곤고하고 가련하고 가난하고 눈멀고 벌거벗은 자들임을 아셨다. 그들의 상태는 그 자체로 곤고했고, 다른 사람들에게 긍휼과 동정을 불러일으킬 만한 것이었다. 그들은 자신을 자랑했지만, 그들의 형편을 아는 모든 사람에게 불쌍히 여김을 받았다. 왜냐하면 [1.] 그들은 가난했다. 그들이 부자라고 말하고 생각했을 때 실제로는 가난했다. 그들에게는 영혼이 먹고 살 양식이 없었다. 그들의 영혼은 풍요 한가운데서 굶주리고 있었다. 그들은 하나님의 공의에 막대한 빚을 지고 있었으나 그 빚의 가장 작은 부분도 갚을 것이 없었다. [2.] 그들은 눈멀었다. 그들은 자기들의 상태도, 길도, 위험도 볼 수 없었다. 자기 자신 안을 들여다볼 수 없었고, 앞을 내다볼 수 없었다. 그들은 눈멀었으나 자신들이 본다고 생각했다. 그들 안에 있는 빛 자체가 어둠이었으니, 그 어둠은 얼마나 크겠는가! 그리스도께서 그들의 눈앞에 분명히 제시되고 십자가에 못 박히신 분으로 보였음에도 그들은 그리스도를 볼 수 없었다. 하나님께서 그들 안에 항상 임재하셨음에도 그들은 믿음으로 하나님을 볼 수 없었다. 죽음이 바로 그들 앞에 있었음에도 그들은 죽음을 볼 수 없었다. 그들이 끊임없이 영원의 문턱 위에 서 있었음에도 영원을 들여다볼 수 없었다. [3.] 그들은 벌거벗었다. 영혼을 위한 옷도 없고 집과 피난처도 없었다. 그들은 옷이 없었다. 칭의의 옷도 성화의 옷도 없었다. 죄책과 오염으로 인한 그들의 벌거벗음은 둘 다 덮개가 없었다. 그들은 항상 죄와 수치에 노출되어 있었다. 그들의 의는 더러운 누더기에 불과했다. 그것들은 누더기라 그들을 덮지 못하고, 더러운 누더기라 그들을 더럽힐 것이었다. 또한 그들은 집이나 피난처 없이 벌거벗은 자들이었다. 그들은 하나님 없이 있었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모든 시대에 자기 백성의 거처가 되어 오셨다. 오직 그 안에서만 사람의 영혼은 안식과 안전과 모든 합당한 처소를 찾을 수 있다. 육체의 부는 영혼을 부유하게 하지 못하고, 육체의 시력은 영혼을 밝게 하지 못하며, 육체를 위한 가장 편리한 집도 영혼에게 안식이나 안전을 제공하지 못한다. 영혼은 몸과 다른 것이며, 그 본성에 알맞은 처소를 가져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육체적 번영 한가운데서도 곤고하고 가련할 것이다.
4. 우리는 그리스도께서 이 죄 많은 백성에게 주시는 선한 권면을 본다. 그것은 그들이 자신에 대해 가지고 있던 헛되고 거짓된 의견을 버리고, 겉으로 보이고자 하는 바로 그것이 실제로 되도록 힘쓰라는 것이다. 내가 너를 권하노니 내게서 사라 등이다, 계 3:18. 주목하라. (1.)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그의 권면을 등 뒤로 던져 버린 자들에게도 계속 선한 권면을 주신다. (2.) 죄인들이 그리스도의 은혜로운 부르심과 권면을 누리고 있는 동안에는 그들의 상태가 결코 절망적이지 않다. (3.) 우리의 복되신 주, 곧 상담자께서는 언제나 가장 좋은 조언, 죄인의 형편에 가장 알맞은 조언을 주신다. 여기서도 그러하다. [1.] 이 사람들은 가난했다. 그리스도께서는 그들에게 자신에게서 불로 연단한 금을 사서 부요하게 되라고 권하신다. 그는 그들에게 참된 부를 어디서 얻을 수 있으며 어떻게 얻을 수 있는지 알려 주신다. 첫째, 그들이 어디서 그것을 얻을 수 있는가. 바로 그 자신에게서이다. 그는 그들을 팍톨루스의 물줄기나 포토시의 광산으로 보내지 않으시고, 값진 진주이신 자신에게로 초대하신다. 둘째, 그러면 그들은 어떻게 이 참된 금을 그에게서 얻어야 하는가? 그들은 그것을 사야 한다. 이것은 다시 모든 말을 취소하는 것처럼 보인다. 가난한 자들이 어떻게 금을 살 수 있단 말인가? 그들이 그리스도에게서 포도주와 젖을 사는 것과 같다. 곧 돈 없이 값없이 사는 것이다, 사 55:1. 참으로 버려야 할 것이 있기는 하다. 그러나 그것은 가치 있는 대가가 아니다. 그것은 오직 참된 부를 받을 자리를 마련하기 위한 것일 뿐이다. “죄와 자기충족을 버리고, 너희의 가난과 공허를 깨닫고 그리스도께 나아오라. 그리하면 그의 감추인 보화로 채움을 받을 것이다.” [2.] 이 사람들은 벌거벗었다. 그리스도께서는 그들에게 어디서 옷을 얻을 수 있는지, 곧 그들의 벌거벗은 수치를 덮을 수 있는 옷을 어디서 얻을 수 있는지 말씀하신다. 그들은 이것을 그리스도에게서 받아야 한다. 그리고 그들이 더러운 누더기를 벗어야만 그가 그들을 위하여 사시고 마련하신 흰 옷을 입을 수 있다. 곧 칭의를 위한 그의 전가된 의와 거룩함과 성화의 옷이다. [3.] 그들은 눈멀었다. 그래서 그는 그들에게 자신에게서 안약을 사서 보게 하라고 권하신다. 이는 하나님의 일에 있어서는 눈멂에 불과한 자기 지혜와 이성을 포기하고, 그의 말씀과 성령께 자신을 맡기라는 것이다. 그러면 그들의 눈이 열려 자기들의 길과 끝, 의무와 참된 유익을 보게 될 것이다. 그때 새롭고 영광스러운 장면이 그들의 영혼에 열릴 것이다. 가장 아름답고 탁월한 대상들로 가득 찬 새 세계가 열릴 것이며, 이 빛은 방금 전까지 어둠의 권세에서 건짐 받은 자들에게 놀라운 빛이 될 것이다. 이것이 그리스도께서 부주의한 영혼들에게 주시는 지혜롭고 선한 권면이다. 그리고 그들이 그것을 따른다면, 그는 그것을 유효하게 만드는 일을 자신의 영예에 비추어 마땅히 해야 할 일로 여기실 것이다.
5. 여기에 이 죄 많은 백성이 그리스도께서 그들에게 주신 책망과 권면을 잘 받아들이도록 하는 크고 은혜로운 격려가 더해진다, 계 3:19,20. 그는 그들에게 말씀하신다. (1.) 그것은 참되고 부드러운 사랑에서 주어진 것이다. “내가 사랑하는 자를 책망하고 징계하노라. 너희는 내가 너희에게 거친 말과 엄한 책망을 주었다고 생각할 수 있다. 그러나 그것은 모두 너희 영혼을 사랑하기 때문이다. 내가 너희 영혼을 사랑하는 자가 아니었다면, 너희의 죄악 된 미지근함과 헛된 확신을 이렇게 공개적으로 책망하고 바로잡지 않았을 것이다. 내가 너희를 미워했다면, 너희가 죄 가운데 계속 나아가 마침내 멸망에 이르도록 내버려 두었을 것이다.” 죄인들은 하나님의 말씀과 막대기의 책망을 자기 영혼을 향한 그의 선의의 표징으로 받아들여야 하며, 그에 따라 진심으로 회개하고 자신들을 치시는 이에게 돌아서야 한다. 원수의 아첨하는 미소보다 친구의 찌푸림과 상처가 더 낫다. (2.) 그들이 그의 권고에 응한다면, 그는 그것들을 그들의 영혼에 유익하게 할 준비가 되어 계셨다. 볼지어다, 내가 문 밖에 서서 두드리노니 등이다, 계 3:20. 여기서 주목하라. [1.] 그리스도께서는 은혜롭게도 그의 말씀과 성령으로 죄인들의 마음 문에 오기를 기뻐하신다. 그는 긍휼의 방식으로 그들에게 가까이 오시며, 그들에게 친절한 방문을 하실 준비가 되어 있다. [2.] 그는 이 문이 그에게 닫혀 있는 것을 발견하신다. 사람의 마음은 본성상 무지와 불신과 죄악 된 편견으로 그리스도께 닫혀 있다. [3.] 그가 마음이 닫혀 있음을 발견하실 때 즉시 물러나지 않으시고, 그의 머리에 이슬이 가득할 때까지라도 은혜 베풀기를 기다리신다. [4.] 그는 죄인들을 깨우고 그들이 그에게 열게 하시기 위해 모든 적절한 수단을 사용하신다. 그는 말씀으로 부르시고, 성령의 충동으로 그들의 양심을 두드리신다. [5.] 그에게 여는 자들은 그의 임재를 누리게 되며, 그것은 그들에게 큰 위로와 유익이 될 것이다. 그는 그들과 함께 먹으실 것이다. 그는 그들 안에 있는 선한 것을 받아들이실 것이다. 그는 자기의 향기로운 열매를 먹으실 것이며, 잔치의 가장 좋은 부분을 친히 가지고 오실 것이다. 그가 발견하는 것이 가난한 잔치에 불과하다 하더라도, 그가 가져오시는 것이 그 부족을 채울 것이다. 그는 은혜와 위로를 새롭게 공급하시고, 그로써 믿음과 사랑과 기쁨의 새 행위들을 일으키실 것이다. 이 모든 가운데 그리스도와 그의 회개하는 백성은 서로 즐거운 교제를 누리게 될 것이다. 아, 부주의하고 완고한 죄인들이 그리스도께 마음 문을 열기를 거절함으로 무엇을 잃고 있는가!
III. 이제 우리는 이 서신의 결론에 이른다. 여기에도 앞에서처럼 다음이 있다.
1. 이기는 신자에게 주어진 약속이다. 여기에는 다음이 암시되어 있다. (1.) 이 교회가 미지근함과 자기 확신에 완전히 뒤덮이고 정복당한 것처럼 보였지만, 그리스도의 책망과 권면으로 새 열심과 활력을 받아 영적 전쟁에서 승리자로 나올 가능성이 있었다. (2.) 만일 그들이 그렇게 한다면, 이전의 모든 허물은 용서받을 것이며 큰 상을 받을 것이다. 그 상은 무엇인가? 그들이 나와 함께 내 보좌에 앉으리니, 내가 이기고 내 아버지와 함께 그의 보좌에 앉은 것과 같다, 계 3:21. 여기에는 다음이 암시되어 있다. [1.] 그리스도 자신도 시험과 싸움을 만나셨다. [2.] 그는 그 모든 것을 이기셨고, 넉넉히 이기는 자 이상이 되셨다. [3.] 그의 싸움과 승리의 보상으로 그는 하나님 아버지와 함께 그의 보좌에 앉으셨고, 영원 전부터 아버지와 함께 가지셨던 그 영광을 소유하셨다. 다만 그는 땅 위에서는 그 영광을 크게 감추기를 기뻐하셨고, 마치 그것을 아버지의 손에 맡겨 두신 것처럼 하셨다. 이는 그가 그 드러난 영광을 다시 취하기 전에 구주의 일을 완수하겠다는 보증으로 삼으신 것이다. 그리고 그렇게 하신 뒤에는 pignus reposcere—그 보증을 요구하신다. 곧 아버지와 동등한 신적 영광으로 나타나시는 것이다. [4.] 그리스도의 시련과 승리에 있어서 그리스도를 닮는 자들은 그의 영광에 있어서도 그를 닮게 될 것이다. 그들은 그의 보좌, 곧 세상 끝의 심판 보좌와 영원토록 누릴 영광의 보좌에 그와 함께 앉을 것이다. 그들은 그와의 연합과 그와의 관계, 곧 그가 머리이신 신비한 몸의 지체라는 관계로 말미암아 그의 광선 안에서 빛날 것이다.
2. 모든 것은 일반적인 주의 요청으로 마무리된다(계 3:22). 이는 이 서신들이 이르게 될 모든 사람들에게, 그 안에 담긴 것이 사사로운 해석에 속한 것이 아니며, 그 특정 교회들만의 교훈과 책망과 교정을 위한 것이 아니라 모든 시대와 세상 모든 지역에 있는 그리스도의 모든 교회를 위한 것임을 상기시킨다. 그리고 이후의 모든 교회들 안에는 그 은혜와 죄에 있어서 이 교회들과 닮은 점이 있을 것이므로, 그들은 하나님께서 이 교회들을 대하신 것처럼 자신들을 대하실 것을 기대할 수 있다. 이 교회들은 모든 시대에 대하여, 충성되고 열매 맺는 교회들이 하나님께 무엇을 받을 수 있는지, 그리고 불충성한 자들이 그의 손에서 무엇을 당할 수 있는지 보여 주는 본보기이다. 참으로 하나님께서 그의 교회들을 대하시는 방식은 세상의 나머지 사람들에게도 유익한 교훈을 제공하여 그들로 생각하게 한다. 만일 심판이 하나님의 집에서 시작된다면, 그리스도의 복음에 순종하지 않는 자들의 마지막은 어떠하겠는가? 벧전 4:17. 이렇게 하여 아시아 교회들에게 보내신 그리스도의 메시지들, 곧 이 책의 서신 부분이 끝난다. 이제 우리는 예언 부분으로 들어간다.
여기에는 그리스도께서 교회들에게 보내신 서신 세 편이 더 있다. I. 사데에게, 계 3:1-6. II. 빌라델비아에게, 계 3:7-13. III. 라오디게아에게, 계 3:14-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