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tthew Henry's Complete Commentary
Matthew Henry · 1714
Matthew Henry 사후(1714) 공개 도메인. 디지털판 CC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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¹ 이 일 후에 내가 보니, 보라, 하늘에 문이 열려 있고 내가 들은 첫 음성은 나팔 소리 같은데 나와 말하여 이르되, 이리로 올라오라. 이후에 마땅히 일어날 일들을 네게 보이리라 하더라.
² 곧 내가 성령 안에 있었고, 보라, 하늘에 보좌가 놓였으며 그 보좌 위에 한 분이 앉아 계시더라.
³ 앉으신 이의 모습은 벽옥과 홍보석 같고, 그 보좌 둘레에는 녹보석 같은 무지개가 있더라.
⁴ 또 보좌 둘레에는 스물네 보좌가 있고, 그 보좌들 위에는 흰 옷을 입은 스물네 장로가 앉아 있었으며, 그들의 머리에는 금 면류관이 있더라.
⁵ 보좌로부터 번개와 천둥과 음성들이 나오고, 보좌 앞에는 일곱 등불이 타고 있었으니 이는 하나님의 일곱 영이라.
⁶ 보좌 앞에는 수정 같은 유리 바다가 있고, 보좌 가운데와 보좌 둘레에는 앞뒤에 눈이 가득한 네 생물이 있더라.
⁷ 첫째 생물은 사자 같고, 둘째 생물은 송아지 같고, 셋째 생물은 사람 같은 얼굴을 가졌고, 넷째 생물은 날아가는 독수리 같더라.
⁸ 네 생물은 각각 여섯 날개를 가졌고, 그 안에는 눈이 가득하더라—
여기에는 사도 요한이 은혜로 받은 두 번째 환상에 대한 기록이 있다. 이 일 후에라는 말은 단지 “내가 금 촛대들 가운데 거니시는 그리스도의 환상을 본 후에”라는 뜻만이 아니라, “내가 그의 입에서 여러 교회들에게 주시는 말씀을 받아 그의 명령대로 그것들을 써서 각 교회에 보낸 후에, 그 후에 또 다른 환상을 보았다”는 뜻이다. 이미 하나님께 받은 계시를 잘 활용하는 사람들은 그로 말미암아 더 많은 계시를 받을 준비가 되며, 그것을 기대할 수 있다. 살펴보자.
I. 사도가 이 환상을 받도록 준비된 일.
1. 하늘에 문이 열려 있었다. 여기서 우리는 배운다. (1.) 땅에서 이루어지는 모든 일은 먼저 하늘에서 계획되고 확정된다. 거기에는 하나님의 모든 일의 원형이 있다. 그러므로 그 모든 일은 그의 눈앞에 있으며, 그는 하늘 주민들이 보기에 합당한 만큼 그것들을 보게 하신다. (2.) 우리는 하나님께서 기꺼이 우리에게 드러내 주시는 것 외에는 장래의 일에 관하여 아무것도 알 수 없다. 그것들은 하나님께서 문을 여시기 전까지 휘장 안에 있다. 그러나 (3.) 하나님께서 그의 뜻을 우리에게 계시하신 만큼, 우리는 그것을 받아들일 수 있고 또 받아들여야 하며, 계시된 것 이상으로 지혜로운 척해서는 안 된다.
2. 요한이 그 환상을 볼 준비를 하도록 나팔 소리가 울렸고, 그는 이후에 있을 일들을 그곳에서 보도록 하늘로 올라오라는 부름을 받았다. 그는 셋째 하늘로 부름을 받은 것이다. (1.) 지성소로 들어가는 길이 열려 있다. 하나님의 자녀들은 지금은 믿음과 거룩한 정서로, 죽을 때에는 그 영으로, 마지막 날에는 온 인격으로 그곳에 들어갈 수 있다. (2.) 우리는 하나님의 임재의 은밀한 곳에 함부로 끼어들어서는 안 되며, 그곳으로 부름을 받을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
3. 이 환상을 준비하기 위하여 사도는 성령 안에 있었다. 그는 앞서와 같이 황홀경에 있었다(계 1:10). 몸 안에 있었는지 몸 밖에 있었는지는 우리가 알 수 없고, 아마 그 자신도 알 수 없었을 것이다. 어쨌든 모든 육체의 활동과 감각은 한동안 정지되었고, 그의 영은 예언의 영에 사로잡혀 전적으로 신적 영향 아래 있었다. 우리가 모든 육적인 것들로부터 자신을 더 많이 분리할수록 하나님과 교제하기에 더 적합해진다. 몸은 하나님과의 교통에서 마음을 가리는 휘장이요, 구름이며, 거치는 짐이다. 우리는 의무를 행하며 주 앞에 나아갈 때 그것을 잊은 듯해야 하며, 하늘에서 그분께 올라가기 위하여 그것을 기꺼이 벗어 놓을 마음을 가져야 한다. 이것이 환상을 위한 준비 장치였다. 이제 살펴보자.
II. 환상 그 자체. 그것은 사도가 본 놀라운 광경들로 시작되는데, 그것들은 다음과 같았다. 1. 그는 하늘에 놓인 보좌를 보았다. 그것은 존귀와 권위와 심판의 자리이다. 하늘은 하나님의 보좌이다. 거기서 그는 영광 가운데 거하시며, 거기서 교회와 온 세상에 법을 내리신다. 땅의 모든 보좌는 하늘에 놓인 이 보좌의 관할 아래 있다. 2. 그는 보좌 위에 계신 영광스러운 한 분을 보았다. 이 보좌는 비어 있지 않았다. 그 안에는 그 보좌를 충만하게 채우시는 한 분이 계셨는데, 그분은 하나님이시다. 여기서 그는 우리 세상에서 가장 기쁘고 귀한 것들로 묘사된다. 그의 얼굴은 벽옥과 홍보석 같았다. 그는 어떤 형상으로 표현될 수 있도록 인간의 이목구비로 묘사되지 않고, 오직 그의 초월적인 광채로만 묘사된다. 이 벽옥은 투명한 돌이면서도 눈에는 가장 선명한 여러 빛깔을 드러내는데, 이는 하나님의 영광스러운 완전하심을 뜻한다. 홍보석은 붉은빛을 띠는데, 이는 하나님의 공의를 뜻한다. 공의는 하나님께서 그 누구를 위해서도 결코 벗어 버리지 않으시는 본질적 속성이며, 그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세상, 특히 교회를 다스리실 때 그것을 영광스럽게 행사하신다. 이 속성은 죄인을 벌하실 때뿐 아니라 용서하실 때에도, 멸하실 때뿐 아니라 구원하실 때에도 드러난다. 3. 그는 보좌 둘레에 녹보석 같은 무지개를 보았다, 계 4:3. 무지개는 하나님께서 노아와 그의 후손과 맺으신 섭리의 언약의 인장과 표징이었고, 하나님께서 교회의 머리이신 그리스도와 그 안에 있는 그의 모든 백성과 맺으신 약속의 언약을 나타내기에 적합한 상징이다. 그 언약은 하나님께 노아의 물과 같으며, 모든 일에 질서 있고 확실한 영원한 언약이다. 이 무지개는 녹보석처럼 보였다. 가장 두드러진 색은 기분 좋은 녹색이었는데, 이는 새 언약의 되살리고 새롭게 하는 성격을 보여 주기 위함이다. 4. 그는 보좌 둘레에 스물네 보좌를 보았다. 그것들은 비어 있지 않고 스물네 장로, 곧 장로들로 채워져 있었다. 이들은 매우 그럴듯하게도 구약 시대와 신약 시대에 있는 하나님의 온 교회를 대표한다. 교회의 사역자들이라기보다 백성의 대표자들이라고 보는 편이 더 낫다. 그들이 앉아 있음은 그들의 존귀와 안식과 만족을 나타낸다. 그들이 보좌 둘레에 앉아 있음은 하나님과의 관계, 그분께 가까움, 그분을 뵙고 누리는 즐거움을 뜻한다. 그들은 흰 옷을 입고 있다. 이는 성도들의 의로서, 전가된 의와 내재한 의를 모두 뜻한다. 그들의 머리에는 금 면류관이 있었다. 이는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주신 존귀와 권위, 그리고 그들이 하나님과 함께 누리는 영광을 뜻한다. 이 모든 것은 낮은 의미로는 땅 위의 복음 교회, 곧 예배하는 모임들에 적용될 수 있고, 더 높은 의미로는 하늘에서 승리한 교회에 적용될 수 있다. 5. 그는 보좌로부터 번개와 음성들이 나오는 것을 보았다. 이는 하나님께서 그의 교회에 자신의 주권적 뜻과 기쁘신 뜻을 두렵고 엄숙하게 선포하시는 것을 가리킨다. 그는 이와 같이 시내 산에서 율법을 내셨다. 복음은 율법보다 더 영적인 성격을 지녔지만, 그 영광과 권위는 율법보다 결코 작지 않다. 6. 그는 보좌 앞에 타고 있는 일곱 등불을 보았다. 이것은 하나님의 일곱 영이라고 설명된다(계 4:5). 곧 그리스도의 교회들 안에서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영의 여러 은사와 은혜와 작용이다. 이 모든 것은 보좌에 앉으신 이의 뜻과 기쁘신 뜻에 따라 나누어진다. 7. 그는 보좌 앞에 수정 같은 유리 바다를 보았다. 성전에 물이 가득 담긴 큰 놋그릇이 있어서 제사장들이 주 앞에서 섬기러 들어갈 때 씻어야 했고, 그것이 바다라 불렸던 것처럼, 복음 교회에서 정결하게 하는 바다 혹은 물두멍은 주 예수 그리스도의 피이다. 그 피는 모든 죄, 심지어 성소에서 범한 죄까지도 깨끗하게 한다. 땅에서 하나님의 은혜로운 임재에 들어가거나 하늘에서 그의 영광스러운 임재에 받아들여지는 모든 사람은 이 안에서 씻김을 받아야 한다. 8. 그는 보좌와 장로들의 원형 사이에 있는 듯 보이는 네 생물, 곧 살아 있는 피조물들을 보았다. 그들은 하나님과 백성 사이에 서 있었다. 이들은 복음의 사역자들을 나타내는 듯하다. 그들이 하나님께 더 가까운 곳, 곧 하나님과 그리스도인 백성의 장로들 또는 대표자들 사이에 위치해 있고 백성보다 수가 적기 때문만이 아니라, 여기서 그들이 묘사되는 방식 때문이기도 하다. (1.) 그들의 많은 눈은 통찰력과 깨어 있음과 신중함을 나타낸다. (2.) 사자 같은 용기, 소와 닮은 큰 수고와 부지런함, 사람에게 합당한 지혜와 분별, 그리고 그들이 독수리 같은 날개로 하늘을 향해 올라가는 숭고한 정서와 사색을 나타낸다(계 4:7). 그 날개 안에 눈이 가득한 것은, 그들의 모든 묵상과 사역에서 지식을 따라 행해야 하며, 특별히 자기 자신과 자기 영혼의 상태를 잘 알아야 하고, 신앙의 위대한 교리와 의무들 속에서 자신에게 관련된 바를 보아야 하며, 백성의 영혼뿐 아니라 자기 영혼도 살펴야 함을 보여 준다. (3.) 그들의 계속되는 직무로 묘사된다. 그것은 하나님을 찬양하는 것이며, 밤낮으로 쉬지 않고 그렇게 하는 것이다. 장로들은 앉아서 섬김을 받지만, 이들은 서서 섬긴다. 그들은 밤낮 쉬지 않는다. 이것이 이제 그 묘사의 다른 부분으로 우리를 이끈다.
⁸ 그들이 밤낮 쉬지 않고 이르되, 거룩하다, 거룩하다, 거룩하다, 주 하나님 곧 전능하신 이여, 전에도 계셨고 지금도 계시며 장차 오실 이시라 하더라.
⁹ 그 생물들이 보좌에 앉으사 세세토록 살아 계시는 이에게 영광과 존귀와 감사를 드릴 때에,
¹⁰ 스물네 장로들이 보좌에 앉으신 이 앞에 엎드려 세세토록 살아 계시는 이에게 경배하고, 자기들의 면류관을 보좌 앞에 던지며 이르되,
¹¹ 우리 주여, 주는 영광과 존귀와 능력을 받으시기에 합당하시니, 주께서 만물을 창조하셨고 주의 기쁘신 뜻으로 그것들이 존재하며 창조되었나이다 하더라.
우리는 사도가 하늘에서 본 광경들을 살펴보았다. 이제 그가 들은 찬송들을 살펴보자. 하늘에는 성화된 눈을 매우 기쁘게 할 볼 것만 있는 것이 아니라, 성화된 귀를 크게 즐겁게 할 들을 것도 있다. 이것은 땅 위의 하늘인 이곳 그리스도의 교회에 관해서도 참되며, 하늘들의 하늘에서 완전하게 된 교회에서는 더욱 탁월하게 그러할 것이다.
I. 그는 네 생물, 곧 교회의 사역자들의 노래를 들었다. 이것은 선지자 이사야의 환상, 사 6:1-13을 가리킨다. 여기서, 1. 그들은 한 하나님, 오직 한 분이신 주 하나님 전능하신 이, 변함없고 영원하신 분을 경배한다. 2. 그들은 이 한 하나님 안에 있는 세 거룩하심, 곧 거룩하신 아버지와 거룩하신 아들과 거룩하신 성령을 경배한다. 이 세 분은 보좌에 앉아 계시며 세세토록 살아 계시는 한 분의 무한히 거룩하고 영원한 존재이시다. 선지자는 이 영광 가운데서 그리스도를 보았고, 그에 대하여 말하였다.
II. 그는 스물네 장로의 경배, 곧 그들로 대표되는 그리스도인 백성의 경배를 들었다. 사역자들이 인도하고 백성이 따라 하나님을 찬양하였다, 계 4:10,11. 여기서 살펴보자.
1. 그들의 예배 대상은 사역자들이 경배한 대상과 동일하다. 곧 보좌에 앉으신 이, 영원히 살아 계시는 하나님이시다. 하나님의 참된 교회는 하나이며 동일한 예배 대상을 가진다. 서로 다른 두 예배 대상이 동등한 것이든 종속적인 것이든 존재한다면, 예배를 혼란하게 하고 예배자들을 나누게 될 것이다. 예배 대상을 잘못 알거나 늘리는 자들과 함께 신적 예배에 참여하는 것은 불법이다. 하나님은 오직 한 분이시며, 그분만이 하나님으로서 땅의 교회와 하늘의 교회에 의해 예배를 받으신다.
2. 경배의 행위들. (1.) 그들은 보좌에 앉으신 이 앞에 엎드렸다. 그들은 가장 깊은 겸손과 경외와 경건한 두려움을 드러냈다. (2.) 그들은 자기들의 면류관을 보좌 앞에 던졌다. 그들은 하나님께서 땅에서 그들의 영혼에 씌워 주신 거룩함의 영광과, 하늘에서 그들에게 씌워 주시는 존귀와 행복의 영광을 하나님께 돌렸다. 그들은 자신들의 모든 은혜와 모든 영광을 그분께 빚지고 있으며, 그의 면류관이 그들의 것보다 무한히 더 영광스럽고,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것이 곧 그들의 영광임을 인정한다.
3. 경배의 말. 그들은 말했다. 우리 주여, 주는 영광과 존귀와 능력을 받으시기에 합당하시나이다, 계 4:11. 살펴보라. (1.) 그들은 우리가 주께 영광과 존귀와 능력을 드리나이다라고 말하지 않는다. 어떤 피조물이 하나님께 무엇을 드린다고 감히 주장할 수 있겠는가? 다만 그들은 주는 영광을 받으시기에 합당하시나이다라고 말한다. (2.) 이 말 속에서 그들은 하나님께서 모든 송축과 찬양보다 훨씬 높이 들리신 분임을 암묵적으로 인정한다. 그는 영광을 받으시기에 합당하셨지만, 그들은 찬양하기에 합당하지도 않았고, 그의 무한한 탁월하심에 맞게 찬양할 능력도 없었다.
4. 우리는 그들의 경배의 근거와 이유를 보는데, 그것은 세 가지이다.—(1.) 그는 만물의 창조주, 곧 제일 원인이시다. 만물의 창조주 외에는 누구도 경배를 받아서는 안 된다. 지음 받은 어떤 것도 종교적 예배의 대상이 될 수 없다. (2.) 그는 만물의 보존자이시며, 그의 보존은 계속되는 창조이다. 만물은 여전히 하나님의 붙드시는 능력으로 창조되고 있다. 하나님 외의 모든 존재는 하나님의 뜻과 능력에 의존한다. 그러므로 의존하는 어떤 존재도 종교적 예배의 대상으로 세워져서는 안 된다. 가장 뛰어난 의존적 존재들의 본분은 예배자가 되는 것이지, 예배를 받는 것이 아니다. (3.) 그는 만물의 최종 원인이시다. 주의 기쁘신 뜻으로 그것들이 존재하며 창조되었나이다. 만물을 창조하신 것은 그의 뜻과 기쁘신 뜻이었다. 그는 다른 이의 뜻에 의해 그렇게 하도록 강요받지 않으셨다. 다른 이의 뜻과 능력 아래서 행하는 종속적 창조자라는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 만일 그런 것이 있다고 해도, 그는 경배를 받아서는 안 된다. 하나님께서 자신의 기쁘신 뜻에 따라 만물을 지으셨듯이, 또한 자신의 기쁨을 위하여 만물을 지으셨다. 곧 그 뜻대로 그것들을 다루시고, 이러저러한 방식으로 그것들을 통해 자신을 영화롭게 하시기 위함이다. 비록 그는 죄인들의 죽음을 기뻐하지 않으시고 도리어 그들이 돌이켜 살기를 기뻐하시지만, 여호와께서 온갖 것을 그 쓰임에 적당하게 지으셨다, 잠 16:4. 이제 이것들이 종교적 예배의 참되고 충분한 근거이며, 그것들이 오직 하나님께만 고유한 것이라면, 그리스도께서는 반드시 하나님이시며 아버지와 성령과 하나이시고, 그러한 분으로서 예배를 받으셔야 한다. 왜냐하면 우리는 같은 원인성이 그에게 돌려지는 것을 발견하기 때문이다. 골 1:16,17, 만물이 그에게서 창조되되 그를 통하여 그를 위하여 창조되었고, 그가 만물보다 먼저 계시고 만물이 그 안에 함께 섰느니라.
이 장에서 예언적 장면이 열린다. 서신 부분이 그리스도에 대한 환상으로 시작되었듯이(계 1:1-20), 이 부분도 하늘에 보좌를 두시고 천상의 무리에게 둘러싸이신 위대하신 하나님께서 영광스럽게 나타나시는 장면으로 시작된다. 이 계시는 요한에게 주어진 것이며, 이 장에서 그는, I. 자신이 본 하늘의 광경을 기록하고 있다, 계 4:1-7. 그리고 이어서, II. 자신이 들은 하늘의 찬송들을 기록하고 있다, 계 4:8-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