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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arnes' Notes on the Bible

Albert Barnes · 18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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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arnes' Notes on the Bible

Albert Barnes · 18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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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lbert Barnes' Notes on Revelation Of St. John The Divine (New Testament, English original, public domain). Sourced from the Christian Classics Ethereal Library (CCEL). Public domain. Retrieval mirror: biblehub.com/commentaries/barn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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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가랴 2장 1 Barnes' Notes on the Bible

Zechariah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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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에 측량줄을 잡은 한 사람 - 에스겔이 이와 비슷한 환상에서 본 여호와의 천사일 가능성이 크다. 히에로니무스는 말한다. ‘이전에 눈을 들어 네 뿔이라는 슬픈 것들을 보았던 선지자는 이제 다시 눈을 들어 한 사람을 본다. 그에 관하여 “보라 순이라 이름하는 사람이”(스가랴 6:12)라고 기록되었고, 위에서는 “붉은 말을 탄 사람이 골짜기 속 화석류나무 사이에 섰고”(스가랴 1:8)라고 읽는다. 아버지께서도 그에 관하여 말씀하신다. 그는 “건축자와 지으신 이가 하나님이신”(히브리서 11:10) 나의 성읍을 건축했다. 에스겔도 이와 같은 묘사로 그를 본다. “그 모양이 놋같이 빛난 사람”(에스겔 40:3), 곧 “불같이 빛나고 광채가 나며 손에 삼줄과 측량하는 장대를 잡은” 사람이다(에스겔 1:7).’ 그 직무도 예루살렘의 실제 길이와 너비를 재는 것이 아니라 장차 어떠해야 할지를 정하는 권위의 직무로 보인다. 키릴루스의 말처럼 ‘넓고 매우 길게 경계를 정하는’ 것이다.

스가랴 2장 3 Barnes' Notes on the Bible

Zechariah 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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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안에서 말하던 천사가 나가고 - 아마 스가랴에게 줄 설명을 받으려고 나갔을 것이다. 또 다른 천사, 곧 그에게 임무를 주므로 더 높은 천사가 ‘그를 맞으러 나갔다.’ 이 천사는 성읍의 장래 크기를 정하신 여호와의 천사에게 지시받은 것으로 보인다. ‘다른 천사’라는 불특정한 묘사는 그가 여호와의 천사도 아니고, 이들이 서로 다른 존재라면 미가엘이나 측량줄을 잡은 사람도 아니라는 사실을 암시한다. 그는 더 높은 자에게 지시받아 더 낮은 자를 가르치고, 그 낮은 자가 곧바로 스가랴를 가르치는 중간 계급의 천사였다.

스가랴 2장 4 Barnes' Notes on the Bible

Zechariah 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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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에게 이르되 달려가서 이 청년에게 말하라 - 자기 백성에게 들은 것을 보고해야 할 선지자 자신을 가리킨다. 예레미야는 ‘나는 아이라’고 말하며(예레미야 1:6), ‘청년’ 곧 ‘젊은 선지자’는 엘리사에게서 예후에게로 예언의 소식을 전했다. 사람에게 흔히 사용하는 ‘청년’이라는 말은 인간처럼 나이에 따른 변화가 없고 창조된 모습 그대로 존재하는 천사에게는 적합하지도 않고 적용되지도 않는다.

예루살렘이 성벽 없는 고을같이 거주하리라 - 또는 마을들처럼 거주한다는 뜻이다(하박국 3:14 주석을 보라). 곧 성벽의 제약 없이 자유롭게 퍼져 나가며, 따라서 성벽이 필요하지도 않은 제한 없고 답답하지 않은 인구를 뜻한다. 그러므로 이는 분명 지상의 성읍이 아니다. 마을들처럼 거주하는 것은 강함이 아니라 약함이며, 복이 아니라 위험일 것이기 때문이다. 지상의 예루살렘은 성벽이 없는 동안 계속 두려움과 약함 가운데 있었다. 하나님께서는 자기 종의 마음에 예루살렘을 회복하려는 소원을 넣으셨고, 성벽이 세워진 뒤 성읍은 번영했다. 하나님께서는 친히 다니엘에게 ‘그 거리와 성벽이 환난 중에 다시 건축될 것이라’고 약속하셨다(다니엘 9:25). 이 일로부터 73년 뒤인 주전 443년에 느헤미야는 ‘그 지방 거기에서 포로를 면하고 남아 있는 자들이 큰 환난을 당하고 능욕을 받으며 예루살렘 성은 허물어지고 성문들은 불탔다’는 말을 듣고 슬퍼했다(느헤미야 1:3). 그는 아닥사스다에게 ‘내 조상들의 묘실이 있는 성읍이 황폐하고 성문이 불탔사오니 내가 어찌 얼굴에 수심이 없사오리이까?’라고 말했다(느헤미야 2:3). 아닥사스다에게 돌아가도록 허락받은 뒤에는 유대 지도자들에게 말했다. ‘우리가 당한 곤경은 너희도 보고 있는 바라 예루살렘이 황폐하고 성문들이 불탔으니 자, 예루살렘 성을 건축하여 다시 수치를 당하지 말자. 그들이 이르되 일어나 건축하자 하고 모두 힘을 내어 이 선한 일을 하려 하매’(느헤미야 2:17-18). ‘성벽 역사가 끝나매 우리의 모든 원수가 듣고 주위에 있는 이방 족속들이 다 보고 크게 낙담하여 이 역사를 우리 하나님이 이루신 것을 앎이니라’(느헤미야 6:15-16).

그러므로 이 예언은 그리스도의 시대를 직접 바라본다. 보호와 영광이 하나님이신 그리스도의 나라가 경계나 한계 없이 점진적으로 확장되는 모습과 그 방어의 성격을 놀랍게 묘사한다. 그 나라는 ‘마을들처럼 거주하며’ 자체의 증식 능력을 통하여 좌우로 평화롭고 온유하게 확장되어야 했다. 경계가 정해지지 않고 온 땅을 채울 성읍과 같다. 키릴루스는 말한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위하여 교회를 세우셨다. 참으로 거룩하고 유명한 성읍이다. 그리스도께서는 보이지 않는 능력으로 대적자들을 소멸시키고 자기 영광으로 교회를 채우며, 그 안에 거하는 자들 가운데 서 계신 것처럼 교회를 견고하게 하신다. 그가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고 약속하셨기 때문이다. 이사야도 이 거룩한 성읍을 언급했다. “네 눈은 안정된 처소인 예루살렘을 보리니 그것은 옮겨지지 아니할 장막이라 그 말뚝이 영영히 뽑히지 아니할 것이요 그 줄이 하나도 끊어지지 아니할 것이라”(이사야 33:20). 또 그에게 말한다. “네 장막터를 넓히며 네 처소의 휘장을 아끼지 말고 널리 펴되 너의 줄을 길게 하며 너의 말뚝을 견고히 할지어다 이는 네가 좌우로 퍼질 것임이라”(이사야 54:2-3). 그리스도의 교회는 언제나 그를 예배하는 무수한 영혼들을 받아들이며 끝없이 넓어지고 확장되기 때문이다.’ 루퍼투스는 말한다. ‘어떤 왕이나 황제가 온 세상을 포함할 만큼 넓은 성벽을 만들 수 있겠는가? 그러나 그렇지 않고서는 온 세상에 퍼진 교회인 그 예루살렘을 둘러쌀 수 없다. 하늘 예루살렘의 순례하는 부분인 이 예루살렘은 이 현세에서 성벽 없이 거주하며, 비천한 한 장소나 한 민족 안에 갇히지 않는다. 그러나 날마다 이곳에서 옮겨 가는 저 세상에서는 주 외에 그 주변에 어떤 성벽도 있을 수 없고 있어서도 안 되며 실제로 있지도 않다. 주께서는 그 가운데 계시는 영광이시기도 하다.’

스가랴 2장 5 Barnes' Notes on the Bible

Zechariah 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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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자신이 나의 본체로 그 사면에서 불 성곽이 되며 - 단지 보호만 하는 안쪽의 울타리가 아니며, 원수가 아무리 가까이 밀고 들어와도 그 원수들을 멸하는 성곽이라는 뜻이다. 이사야는 ‘너를 치려고 제조된 모든 연장이 쓸모가 없을 것이며 일어나 너를 대적하여 송사하는 모든 혀는 네가 정죄하리라’고 말한다(이사야 54:17). 이사야는 그 방어가 물질적이지 않을 것이라고 말한다. ‘우리에게 견고한 성읍이 있음이여 여호와께서 구원을 성벽과 외벽으로 삼으시리로다’(이사야 26:1). ‘네가 네 성벽을 구원이라 네 성문을 찬송이라 부를 것이라’(이사야 60:18). 다른 비유로는 ‘내가 내 집을 둘러 진을 쳐서 군대를 막으리라’고 말한다(스가랴 9:8).

내가 그 가운데에서 영광이 되리라 - 이사야가 ‘여호와가 네게 영원한 빛이 되며 네 하나님이 네 영광이 되리라’고 말한 것과 같다(이사야 60:19). 그리스도에 관해서도 ‘그 날에 여호와의 싹이 아름답고 영화로울 것이며 이스라엘의 피난한 자를 위하여 그러하리라’고 말한다(이사야 4:2).

스가랴 2장 6 Barnes' Notes on the Bible

Zechariah 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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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호라 오호라, 도망하라 - 예루살렘에 있는 하나님의 백성을 위하여 그러한 안전과 영광이 예비되었으므로, 그것을 마련하신 여호와의 천사는 곳곳에 있는 자기 백성에게 그곳으로 오라고 명하시며 바벨론에 닥칠 위험에서도 스스로 구원하라고 하신다. 이사야도 그들에게 명했다. ‘너희는 바벨론에서 나와 갈대아인을 피하고 즐거운 소리로 이를 선포하여 들려 주며 땅 끝까지 반포하여 이르기를 여호와께서 그의 종 야곱을 구속하셨다 하라’(이사야 48:20). ‘너희는 떠날지어다 떠날지어다 거기서 나오고 부정한 것을 만지지 말지어다 그 가운데에서 나올지어다 여호와의 기구를 메는 자들이여 스스로 정결하게 할지어다’(이사야 52:11). 예레미야도 말한다. ‘바벨론 가운데에서 도망하여 나와서 각기 생명을 구원하고 그의 죄악으로 말미암아 끊어짐을 보지 말지어다 이는 여호와의 보복의 때니 그에게 보복하시리라’(예레미야 51:6; 50:8도 보라). ‘나의 백성아 너희는 그 중에서 나와 각기 여호와의 진노에서 스스로 구원하라’(예레미야 51:45).

‘도망하여 스스로 구원하라’는 말씀은 이 예언으로부터 두 해 뒤인 다리오 제사년에 실제로 바벨론에 임한 것과 같은 급박한 위험을 암시한다. 그러나 명령의 간절함과 세 선지자에 의한 반복, 이사야와 예레미야의 문맥은 일시적 위험보다 더 큰 것을 암시한다. 곧 바벨론의 풍속에 감염될 위험이며, 이로 인해 돌아오지 않은 많은 사람이 그곳에 머물렀을 수 있다. 그러므로 신약에서는 이 말씀을 세상의 큰 악한 성읍에 관하여 인용한다. ‘그러므로 너희는 그들 중에서 나와서 따로 있고 부정한 것을 만지지 말라 내가 너희를 영접하리라’(고린도후서 6:17). 또 바벨론이라는 이름 아래 이렇게 말한다. ‘또 내가 들으니 하늘로부터 다른 음성이 나서 이르되 내 백성아, 거기서 나와 그의 죄에 참여하지 말고 그가 받을 재앙들을 받지 말라’(요한계시록 18:4).

내가 너희를 하늘의 사방 바람같이 흩어 놓았음이라 - 북방 땅은 수도와 중심이 바벨론이었지만 바벨론 제국 전체를 뜻했다. 그 침략이 언제나 북쪽에서 이스라엘에 임했으므로 ‘북방’이라고 불렸다(예레미야 1:13-14; 3:18; 4:6; 6:1, 22; 23:8). 그러나 에스더서는 이로부터 육십 년 뒤 유대인들이 인도 곧 펀자브에서 구스까지 바사 제국의 127지방에 흩어져 있었음을 보여 준다(에스더 1:1; 3:8, 12-14; 8:5, 9). 열 지파가 ‘메대의 여러 고을’에 배치된 것처럼(열왕기하 17:6) 정복자들의 정책으로 의도적으로 떨어진 집단들에 배치되었든, 더 큰 신뢰를 얻은 뒤 자발적으로 이주했든 그러했다. 하나님께서는 그들에게 돌아오라고 부르시면서 그들이 얼마나 크게 흩어졌는지를 상기시키신다. 하나님께서 그들을 하늘의 사방 바람처럼 널리 흩으셨고, 동일하신 그분이 그들을 다시 부르셨다.

스가랴 2장 7 Barnes' Notes on the Bible

Zechariah 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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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벨론의 딸과 함께 거하는 자여 - 이 특이한 관용구는 이스라엘이 피하여 나와야 할 멸망 예정의 백성에게까지 미치는 하나님의 부드러움을 표현하려고 선택되었을 수 있다.

스가랴 2장 8 Barnes' Notes on the Bible

Zechariah 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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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광 후에 - 요나단은 ‘너희에게 가져오기로 약속된 영광’이라고 풀이한다. 이것이 일반적인 구문이라면 이 말씀은 하나님의 섭리의 큰 과정을 포함한다. 곧 먼저 은총을 받을 자들에게 은총을 나타내신 뒤 나머지를 버리거나 벌하시는 것이다. 여덟 영혼이 방주에 들어간 뒤 홍수가 왔고, 롯과 그의 가족이 소돔에서 피한 뒤 하늘에서 불이 내려왔으며, 이스라엘이 홍해를 건넌 뒤 바로의 군대가 물에 빠졌다. 택하심을 받은 자들은 이스라엘이 구하던 것을 얻었으나 나머지는 우둔해졌다. 그러므로 ‘영광’은 하나님께서 ‘내가 너희 가운데 영광이 되리라’고 말씀하신 그 영광일 것이다(로마서 11:7).

더 나아가 말씀하시는 이는 전능하신 하나님이시다. ‘만군의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되 그가 나를 보내셨나니, 보라 내가 손을 그들 위에 움직이리니 그들이 자기를 섬기던 자들에게 노략거리가 될 것이라 너희가 만군의 여호와께서 나를 보내신 줄 알리라. 여호와의 말씀에 내가 임하여 네 가운데에 거하리라 그 날에 많은 나라가 여호와께 속하여 내 백성이 될 것이요 나는 네 가운데에 거하리라 네가 만군의 여호와께서 나를 너희에게 보내신 줄 알리라’(스가랴 2:8-10). 이 일련의 모든 약속에서, 이스라엘이 만군의 여호와께서 보내셨음을 알게 될 ‘나’는 오직 전능하신 하나님께만 속한 일을 자신에 관하여 확언하는 ‘나’이다. 그는 유다의 원수들에게 형벌을 내리고 교회와 백성 가운데 거하며 이방인을 자기 백성으로 받아들이신다. 바로 이 모든 능력과 사랑의 행위를 통하여 이스라엘은 만군의 여호와께서 그를 보내셨음을 알게 될 것이다.

히에로니무스는 말한다. ‘뒤이어 나오는 “만군의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되 영광 후에 그가 나를 보내셨다” 등의 말씀에는 구주께서 말씀하시는 모습이 제시된다. 전능하신 하나님이신 그는 전능하신 아버지께서 자신을 보내셨다고 말씀한다. 이는 그가 전능하시다는 본성에 따른 것이 아니라, 영광 후에 보내심을 받은 사실에 따른 것이다.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자기를 비워 종의 형체를 가지사 아버지께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빌립보서 2:6 이하). 그리스도께서 전능자라 불리시는 것은 놀라운 일이 아니다. 요한계시록에서 그분의 인격으로 “충성된 증인이 이같이 이르시되 나는 알파와 오메가요 처음과 마지막이라 이제도 있고 전에도 있었고 장차 올 자요 전능한 자라”고 읽기 때문이다(요한계시록 1:5, 8). 그에게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가 주어졌고(마태복음 28:18), 그는 “아버지께 있는 것은 다 내 것이라”고 말씀하신다(요한복음 16:15). 모든 것이 그의 것이라면, 곧 하나님에게서 나신 하나님, 주에게서 나신 주, 빛에서 나신 빛이시라면, 전능자에게서 나신 전능자이기도 하다. 본성이 하나인 분들의 영광이 서로 다를 수 없기 때문이다.’

너희를 범하여 해롭게 하는 자는 그의 눈동자를 범하는 것이라 - 곧 그를 보내신 전능하신 하나님의 눈동자를 범하는 것이다. 히에로니무스와 테오도레토스는 이렇게 풀이한다. 키릴루스 등은 자기 눈을 범하여 스스로 악을 당한다는 뜻으로 보지만 다른 구절들의 유비는 이에 반대된다. 모세의 노래에는 ‘여호와께서 그를 호위하시며 보호하시며 자기의 눈동자같이 지키셨도다’라고 되어 있고(신명기 32:10), 다윗은 ‘나를 눈동자같이 지키소서’라고 기도한다(시편 17:8).

스가랴 2장 9 Barnes' Notes on the Bible

Zechariah 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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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라 내가 손을 그들 위에 움직이리니 - 하나님께서 오래전에 자기 백성의 원수들을 대적하여 약속하신 것과 같으며, 그들은 습관적으로 자기들을 섬기던 자들에게 노략거리가 될 것이다.

너희가 만군의 여호와께서 나를 보내신 줄 알리라 - 테오도레토스는 말한다. ‘그는 하나님으로서가 아니라 사람으로서 보내심을 받았다. 하나님으로서는 아버지와 동등하시기 때문이다. 그는 “내가 아버지 안에 있고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시며 내 안에 계신 아버지께서 그의 일을 하신다”(요한복음 14:10), “나와 아버지는 하나이니라”(요한복음 10:30), “나를 본 자는 아버지를 보았느니라”(요한복음 14:9)고 말씀하신다. 그러나 사람으로서는 우리를 위한 경륜을 이루려고 보내심을 받으셨으며, 이는 하나님의 본성을 낮추지 않는다. 그러므로 선지자는 위격들의 구별뿐 아니라 동등함도 암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