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tthew Henry's Complete Commentary
Matthew Henry · 17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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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세기 46장 28-34 Matthew Henry's Complete Commentary
이 장에는 다음과 같은 사례들이 있다. I. 요셉이 자기 친족들에게 보인 친절과 애정이다. 그는 먼저 형제들을, 그 다음에는 아버지를 바로에게 소개하였고(창 47:1-10), 그들을 고센에 정착시키며 그곳에서 그들에게 필요한 것을 공급하였으며(창 47:11,12), 아버지가 그를 부르자 아버지께 예를 다하였다, 창 47:27-31. II. 매우 중대한 일에서 요셉이 왕과 백성 사이에 공의를 행한 일이다. 그는 바로의 곡식을 그의 백성들에게 팔아 바로에게 합당한 이익을 얻게 하면서도 백성들에게는 아무런 부당한 일을 하지 않았다, 창 47:13-26 등. 이와 같이 그는 사적인 지위에서도 공적인 지위에서도 지혜롭고 선한 사람임을 입증하였다.
창세기 47장 1-12 Matthew Henry's Complete Commentary
¹ 요셉이 가서 바로에게 아뢰어 이르되 내 아버지와 내 형들과 그들의 양 떼와 소 떼와 그 모든 소유가 가나안 땅에서 왔사온데 보소서 그들이 고센 땅에 있나이다 하고
² 그의 형들 중 다섯 사람을 택하여 바로에게 보이니
³ 바로가 그의 형들에게 이르되 너희 생업이 무엇이냐 그들이 바로에게 아뢰되 주의 종들은 목자이온데 우리와 우리 조상들이 다 그러하니이다 하고
⁴ 그들이 또 바로에게 아뢰되 가나안 땅에 기근이 심하여 주의 종들의 양 떼를 칠 목초지가 없기로 이 땅에 우거하러 왔사오니 이제 청하건대 주의 종들이 고센 땅에 살게 하소서 하니
⁵ 바로가 요셉에게 말하여 이르되 네 아버지와 네 형들이 네게 왔은즉
⁶ 애굽 땅이 네 앞에 있으니 땅의 가장 좋은 곳에 네 아버지와 네 형들이 살게 하라 그들이 고센 땅에 살게 하고 그들 중에 능력 있는 자가 있거든 그들로 내 가축을 맡아 다스리게 하라 하니라
⁷ 요셉이 그의 아버지 야곱을 인도하여 바로 앞에 서게 하니 야곱이 바로에게 축복하매
⁸ 바로가 야곱에게 묻되 네 나이가 얼마냐
⁹ 야곱이 바로에게 아뢰되 내 나그네 길의 세월이 백삼십 년이니이다 내 나이가 얼마 못 되니 험악한 세월을 보내었나이다 내 나이가 내 조상들의 나그네 길의 세월에는 미치지 못하나이다 하고
¹⁰ 야곱이 바로에게 축복하고 그 앞에서 나오니라
¹¹ 요셉이 바로의 명령대로 그의 아버지와 그의 형들을 거주하게 하고 애굽 땅의 가장 좋은 곳, 곧 라암셋 땅을 그들에게 소유로 주고
¹² 또 그의 아버지와 그의 형들과 그의 아버지의 온 집에 그 가족 수대로 먹을 것을 공급하였더라
여기에 나타난 것은, I. 요셉이 신하로서 자기 군주에게 보인 존경이다. 그는 바로의 총애를 받는 사람이며 국무총리였고, 또 바로에게서 자기 아버지를 애굽으로 모셔 오라는 특별한 명령을 받은 바 있었지만, 바로에게 그 일을 알리기 전에는 아버지가 정착하게 하지 않았다, 창 47:1. 우리의 요셉이신 그리스도께서도 자기 제자들을 아버지께서 예비하신 나라 안에 두시며, 내가 주는 것이 아니라고 말씀하셨다, 마 20:23.
II. 요셉이 형제로서 자기 형들에게 보인 존경이다. 그는 전에 그들에게서 온갖 냉대를 받았음에도 그렇게 하였다.
1. 그는 위대한 사람이었고 그들은 그에 비하면 낮고 보잘것없는 사람들이었으며, 특히 애굽에서는 더욱 그러했지만, 그는 그들을 자기 형제로 인정하였다. 세상에서 부유하고 위대한 사람들은 여기서 배워 가난한 친족들을 못 본 체하거나 멸시하지 말아야 한다. 나무의 모든 가지가 꼭대기 가지인 것은 아니다. 그러나 낮은 가지라고 해서 그것이 나무의 가지가 아니란 말인가? 우리 주 예수께서도 여기의 요셉처럼 우리를 형제라 부르시기를 부끄러워하지 않으신다.
2. 그들은 이방인이요 궁정 사람이 아니었으므로, 요셉은 그들 중 몇 사람을 바로에게 소개하여, 우리가 말하듯이 그의 손에 입 맞추게 하였다. 이는 애굽 사람들 가운데서 그들에게 영예를 얻게 하려는 뜻이었다. 이와 같이 그리스도께서도 자기 형제들을 하늘 궁정에 세우시고, 그들 자신은 무가치하며 애굽 사람들에게 가증한 자들일지라도 그들을 위하여 자신의 중보적 지위를 사용하신다. 그들이 바로 앞에 소개되자, 요셉이 미리 일러 준 지시에 따라 그들은 바로에게 말하였다. (1.) 자기들의 생업이 무엇인지, 곧 그들이 목자라는 사실이다, 창 47:3. 바로가 그들에게 물었다(요셉은 그것이 그의 첫 질문들 중 하나가 되리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창 46:33). 너희 생업이 무엇이냐? 바로는 그들이 할 일이 있는 사람들임을 전제하였다. 그렇지 않다면 애굽은 그들이 있을 곳이 아니며, 게으른 떠돌이들이 머물 항구가 될 수 없었다. 그들이 일하려 하지 않는다면, 이 궁핍한 때에 바로의 양식을 먹을 수 없었다. 주목하라. 세상에서 자리를 차지하고 사는 모든 사람은 자기 능력에 맞는 일, 곧 정신적이든 육체적이든 어떤 직업을 가져야 한다. 먹을 양식을 얻기 위해 일할 필요가 없는 사람들도 게으름에 빠지지 않도록 할 일이 있어야 한다. 또한 통치자들은 공공의 복지를 돌보는 자들로서 백성의 직업을 살펴야 한다. 게으른 사람들은 벌집의 수벌과 같아서 공동체에 아무 유익도 주지 못하는 짐이기 때문이다. (2.) 그들이 애굽에 온 목적, 곧 그 땅에 우거하려는 것이다(창 47:4). 그들은 그곳에 영원히 정착하려는 것이 아니라, 기근이 가나안에서 심하게 계속되는 동안 잠시 머물려 한 것이다. 가나안은 지대가 높아 목자들이 살기에 적합하지 않았으니, 낮은 지대인 애굽보다 풀이 훨씬 더 타 버렸기 때문이다. 애굽에서는 주로 곡식이 부족했지만 목초지는 그럭저럭 괜찮았다.
3. 그는 그들을 위하여 고센 땅에 정착할 허락을 얻어 내었다, 창 47:5,6. 이것은 바로가 요셉에게 보인 감사의 한 사례였다. 요셉이 바로와 그의 나라에 그처럼 큰 복이 되었으므로, 바로는 순전히 요셉 때문에 그의 친족들에게 친절을 베풀고자 하였다. 그는 그들 가운데 능력 있는 자가 있다면 자기 가축을 맡아 다스리는 목자의 직분으로 등용하겠다고 제안하였다. 자기 일에 부지런한 사람이 왕 앞에 서게 되는 법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우리의 직업이나 일이 무엇이든, 우리는 그 일에 탁월해지기를 목표로 삼고, 지혜롭고 근면한 사람임을 입증해야 한다.
III. 요셉이 아들로서 자기 아버지에게 보인 존경이다.
1. 그는 아버지를 바로에게 소개하였다, 창 47:7. 여기서,
(1.) 바로는 야곱에게 흔히 묻는 질문을 하였다. 네 나이가 얼마냐? 창 47:8. 이것은 보통 노인들에게 하는 질문이다. 노년을 경탄하고 공경하는 것은 우리에게 자연스러운 일이며(레 19:32), 그것을 멸시하는 것은 매우 부자연스럽고 합당하지 못한 일이다, 사 3:5. 야곱의 얼굴은 틀림없이 그가 매우 늙었음을 보여 주었을 것이다. 그는 수고와 슬픔의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애굽 사람들은 가나안 사람들만큼 장수하지 못했으므로, 바로는 야곱을 놀라움으로 바라보았다. 그는 바로의 궁정에서 하나의 볼거리와도 같았다. 우리가 자신을 돌아볼 때에는 이 물음도 계산에 넣어야 한다. “우리는 몇 살인가?”
(2.) 야곱은 바로에게 평범하지 않은 대답을 하였다, 창 47:9. 그는 족장에게 어울리게, 바로를 교훈하려는 엄숙한 태도로 말하였다. 우리의 말이 항상 은혜에 관한 말은 아닐지라도, 언제나 은혜롭게 해야 한다. 여기서 살펴보라. [1.] 그는 자기 생애를 나그네 길이라고 부른다. 그는 자신을 이 세상에서는 낯선 자요 다른 세계를 향해 가는 여행자로 보았다. 이 땅은 그의 여관이지 그의 집이 아니었다. 사도는 이것을 가리켜 말한다(히 11:13). 그들은 자신들이 나그네요 거류민임을 고백하였다. 그는 전에 와 본 적 없는 낯선 나라 애굽에 있을 때에만 자신을 나그네로 여긴 것이 아니었다. 그의 출생지 땅에서의 삶까지도 나그네 길이었다. 그렇게 여기는 사람들은 고향 땅에서 쫓겨나는 불편도 더 잘 견딜 수 있다. 그들은 여전히 나그네일 뿐이며, 언제나 그러했기 때문이다. [2.] 그는 자기 생애를 날수로 계산한다. 그렇게 하면 곧 계산이 끝나며, 우리는 그것이 하루 끝까지 계속될 것이라고도 확신할 수 없다. 한 시간도 채 예고받지 못하고 이 장막에서 떠나게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우리의 날을 계수하게 하소서(시 90:12), 또 그것을 헤아리게 하소서, 시 39:4. [3.] 그가 자기 날들에 대해 내린 평가는 이러하다. 첫째, 그 날들이 적었다는 것이다. 그는 이제 130년을 살았지만, 영원의 날들, 영원하신 하나님, 영원한 상태와 비교하면 그것들은 그에게 며칠에 불과해 보였다. 그곳에서는 어떤 사람도 살아 보지 못한 긴 세월인 천 년도 하루와 같기 때문이다. 둘째, 그 날들이 험악했다는 것이다. 이것은 일반적으로 인간에게 참되다. 여인에게서 태어난 사람은 생애가 짧고 걱정이 가득하다(욥 14:1). 그의 날들이 험악하므로 그 날들이 적은 것은 오히려 다행이다. 특히 야곱의 생애는 험악한 날들로 이루어져 있었다. 그리고 그의 생애에서 가장 즐거운 날들은 아직 앞에 있었다. 셋째, 그 날들이 그의 조상들의 날들에 미치지 못했다는 것이다. 수효로도, 즐거움으로도 그들의 날에 미치지 못했다. 노년이 그의 몇몇 조상들에게보다 더 일찍 그에게 찾아왔다. 젊은이가 자기 힘이나 아름다움을 자랑하지 말아야 하듯이, 노인도 자기 나이와 백발의 면류관을 자랑하지 말아야 한다. 비록 다른 사람들이 그것을 마땅히 공경한다 해도 그러하다. 매우 늙었다고 여겨지는 사람들도 족장들의 연수에는 이르지 못하기 때문이다. 백발은 오직 의의 길에서 발견될 때에만 영화의 면류관이다.
(3.) 야곱은 바로에게 인사할 때와 그를 떠날 때 모두 축복하였다(창 47:7). 야곱이 바로에게 축복하였고, 또 창 47:10에서도 그러하였다. 이것은 단지 예의의 행위만이 아니었다(그는 바로에게 존경을 표하고 그의 친절에 감사하였다). 그것은 경건의 행위이기도 했다. 그는 선지자요 족장으로서의 권위를 가진 사람답게 바로를 위하여 기도하였다. 세상 재물로는 바로가 더 큰 자였으나, 하나님과의 관계에서는 야곱이 더 큰 자였다. 그는 하나님의 기름 부음 받은 자였다, 시 105:15. 족장의 축복은 멸시할 것이 아니었고, 강력한 군주에게도 그러했다. 다리오는 자신과 자기 아들들을 위한 교회의 기도를 귀히 여겼다, 스 6:10. 바로는 야곱을 친절히 맞아들였고, 선지자의 이름으로 한 것이든 아니든, 이로써 그는 선지자의 상을 받았다. 그것은 야곱과의 정중한 대화뿐 아니라, 그와 그의 가족에게 베푼 다른 모든 친절에 대해서도 충분한 보상이 되었다.
2. 그는 아버지와 그 가족을 잘 공급하였다. 그는 그를 고센에 거주하게 하였고(창 47:11), 그와 그의 모든 가족에게 알맞은 양식을 공급하였다, 창 47:12. 이것은 요셉이 가난한 친족들을 이렇게 다정하게 돌본 선한 사람이었음을 말해 줄 뿐 아니라, 하나님이 선하신 하나님이심도 말해 준다. 하나님께서 바로 이 목적을 위해 그를 세우시고, 그 일을 할 수 있는 지위에 두셨기 때문이다. 에스더가 이때를 위하여 왕후의 자리에 이른 것과 같다. 하나님께서 여기서 야곱을 위하여 하신 일은, 사실상 하나님을 섬기고 의지하는 모든 자기 백성에게도 하시겠다고 약속하신 일이다. 시 37:19, 그들은 기근의 날에도 풍족할 것이다. 누가 궁핍하든 하나님의 자녀들은 그렇지 않을 것이다, 시 34:10.
창세기 47장 13-26 Matthew Henry's Complete Commentary
¹³ 온 땅에 먹을 것이 없고 기근이 심하여 애굽 땅과 가나안 땅이 기근으로 쇠약하니
¹⁴ 요셉이 사람들이 사는 곡식의 값으로 애굽 땅과 가나안 땅에 있는 모든 돈을 거두어 그 돈을 바로의 궁으로 가져가니라
¹⁵ 애굽 땅과 가나안 땅에 돈이 떨어진지라 모든 애굽 사람이 요셉에게 와서 이르되 돈이 다하였사오니 우리에게 먹을 것을 주소서 어찌 주 앞에서 죽으리이까 하매
¹⁶ 요셉이 이르되 돈이 다하였으면 너희 가축을 내라 내가 너희 가축과 바꾸어 주리라
¹⁷ 그들이 그들의 가축을 요셉에게 끌어오는지라 요셉이 그 말들과 양 떼와 소 떼와 나귀들을 받고 먹을 것을 주되 그 해 동안 그 모든 가축과 바꾸어 먹을 것을 주니라
¹⁸ 그 해가 다하고 새해가 되매 그들이 요셉에게 와서 그에게 이르되 우리가 내 주께 숨기지 아니하나이다 우리의 돈이 다하였고 우리의 가축 떼도 내 주께 돌아갔사오니 내 주 앞에 남은 것은 우리의 몸과 우리의 토지뿐이라
¹⁹ 우리가 어찌 우리의 토지와 함께 주의 눈앞에서 죽으리이까 우리와 우리의 토지를 먹을 것으로 사소서 우리와 우리의 토지가 바로의 종이 되리이다 우리에게 씨를 주시면 우리가 살고 죽지 아니하며 토지도 황폐하게 되지 아니하리이다
²⁰ 그러므로 요셉이 애굽의 모든 토지를 바로를 위하여 사니 애굽 사람들이 기근에 몰려 각기 자기 밭을 팔았으므로 그 땅이 바로의 것이 되니라
²¹ 요셉이 애굽 이 끝에서 저 끝까지 백성을 성읍들로 옮겼으나
²² 제사장들의 토지는 사지 아니하였으니 제사장들은 바로에게서 정해 받은 몫이 있어 바로가 주는 그 몫을 먹었으므로 그들의 토지를 팔지 아니하였음이더라
²³ 요셉이 백성에게 이르되 오늘 내가 너희와 너희 토지를 바로를 위하여 샀노라 보라 여기 너희를 위한 씨가 있으니 너희는 그 땅에 뿌리라
²⁴ 추수할 때에 그 오분의 일을 바로에게 바치고 오분의 사는 너희가 가져서 밭의 종자도 삼고 너희의 양식과 너희 집안 사람들과 너희 어린아이들의 양식도 삼으라
²⁵ 그들이 이르되 주께서 우리의 생명을 구원하셨사오니 우리가 내 주께 은혜를 입고 바로의 종이 되겠나이다 하니라
²⁶ 요셉이 애굽 토지에 대하여 오늘까지 법을 세워 그 오분의 일이 바로에게 돌아가게 하였으나 제사장들의 토지만은 바로의 것이 되지 아니하였더라
야곱과 그의 가족에 대한 배려가 이루어졌다. 요셉의 높아짐을 통해 섭리께서 특별히 의도하신 것은 바로 그 가족의 보존이었다. 이제는 애굽 왕국 또한 파멸에서 구원된 일이 기록된다. 하나님은 성도들의 왕이실 뿐 아니라 열방의 왕이시며, 모든 육체에게 먹을 것을 주시는 분이시기 때문이다. 요셉은 이제 바로가 자기 손에 맡긴 그 큰 신임의 일을 다시 관리하기 시작한다. 그에게는 고센에 가서 아버지와 형제들과 함께 사는 것이 충분히 즐거운 일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의 직무가 그것을 허락하지 않았다. 그는 아버지를 뵙고 잘 정착하신 것을 확인한 뒤, 이전처럼 충실하게 자기 직무 수행에 전념하였다. 주목하라. 자연스러운 애정도 필요한 일 앞에서는 양보해야 한다. 부모와 자녀는 하나님을 섬기거나 자기 세대를 섬기기 위하여 어느 쪽에서든 필요하다면 서로 떨어져 지내는 것을 감수해야 한다. 요셉이 애굽 사람들과 거래한 일에서 살펴볼 것은 다음과 같다.
I. 애굽과 그 인근 지역이 기근으로 말미암아 빠진 큰 극한 상황이다. 먹을 것이 없었고 그들은 쇠약해졌다(창 47:13). 그들은 죽을 지경이었다, 창 47:15,19. 1. 여기서 우리가 하나님의 섭리에 얼마나 의존하고 있는지 보라. 하나님의 일상적인 은혜가 잠시만 중지되어도 우리는 죽고, 멸망하고, 모두 멸망한다. 하늘의 비가 단지 이삼 년만 그쳐도 우리의 모든 재산은 우리를 굶주림에서 지켜 주지 못할 것이다. 우리가 하나님의 긍휼 아래 얼마나 놓여 있는지 보라. 그러므로 우리는 항상 그의 사랑 안에 머물러야 한다. 2. 우리의 무분별함 때문에 우리가 얼마나 고통을 받는지 보라. 만일 모든 애굽 사람이 풍년 일곱 해 동안 요셉이 바로를 위하여 한 것처럼 자신들을 위하여 했더라면, 지금 이런 곤경에 빠지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그들은 흉년의 해들에 대해 받은 경고를 주의하지 않았다. 그들은 내일도 오늘 같고, 내년도 올해 같으며, 더 풍성하리라고 단정하였다. 주목하라. 사람은 자기 때, 곧 모을 수 있을 때의 모을 때를 알지 못하기 때문에, 쓰는 때가 오면 그에게 큰 불행이 임한다, 전 8:6,7. 3. 하나님께서 후에 재앙들 가운데서 그러셨듯이(출 8:22; 9:4; 10:23), 얼마나 일찍부터 애굽 사람과 이스라엘 사람 사이에 구별을 두셨는지 보라. 야곱과 그의 가족은 나그네였지만 값없이 풍성히 먹었고, 애굽 사람들은 부족으로 죽어 가고 있었다. 사 65:13을 보라. 내 종들은 먹을 것이나 너희는 주릴 것이다. 이스라엘아 너는 행복한 사람이로다. 누가 부족하든 하나님의 자녀들은 부족하지 않을 것이다, 시 34:10.
II. 이 긴급한 형편에서 그들이 공급을 받기 위해 치른 대가이다. 1. 그들은 쌓아 두었던 모든 돈을 내놓았다, 창 47:14. 은과 금은 그들을 먹일 수 없었고, 그들에게는 곡식이 필요했다. 이 일로 왕국의 모든 돈이 국고로 들어왔다. 2. 돈이 다하자 그들은 모든 가축을 내놓았다. 말과 나귀처럼 일을 위한 가축도, 양 떼와 소 떼처럼 먹을 것을 위한 가축도 그러하였다, 창 47:17. 이로 보아 우리는 고기 없이 빵만 먹고 사는 것이 빵 없이 고기만 먹고 사는 것보다 낫다고 할 수 있다. 우리는 그들이 가축을 더 쉽게 내놓았다고 생각할 수 있다. 그들에게는 가축을 먹일 풀이 거의 없거나 전혀 없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제 바로는 전에 환상으로 보았던 것을 실제로 보았다. 마른 소들뿐이었다. 3. 그들이 땅 위의 가축을 다 팔고 나자, 굶어 죽느니 차라리 땅도 파는 것이 쉽게 설득될 수 있었다. 뿌릴 곡식도 없고 그 땅에서 먹을 가축도 없다면 그 땅이 무슨 유익이 되겠는가? 그러므로 그들은 더 많은 곡식 공급을 받기 위해 다음으로 땅을 팔았다. 4. 땅이 팔려서 살아갈 것이 아무것도 없게 되자, 그들은 당연히 자기 자신들도 팔아야 했다. 그래야 오직 자기 노동으로 살 수 있고, 왕의 은혜에 의존하는 농노적 보유 조건으로 땅을 붙들 수 있었기 때문이다. 주목하라. 가죽으로 가죽을 바꾸오니 사람이 자기 생명과 바꿀 것은 무엇이든지, 심지어 자유와 재산(그토록 사랑스러운 쌍둥이)까지도 내놓을 것이다. 생명은 소중하기 때문이다. 노예 상태와 전제 권력에 의존하며 살기보다는 감히 죽기를 택할 사람은 드물다(어쩌면 몇몇은 있을지라도). 또한 그런 경우에 흥분 속에서는 칼에 죽을 수 있는 사람도, 훨씬 더 고통스러운 굶주림으로는 신중히 죽음을 택하지 못할 수 있다, 애 4:9. 이제 이 곤경 가운데서 애굽 사람들에게는 어떤 대가를 치르더라도 곡식을 얻을 수 있었다는 것이 큰 긍휼이었다. 만일 그들이 모두 굶어 죽었다면, 아마도 상속자가 없어 그들의 땅은 당연히 왕에게 귀속되었을 것이다. 그러므로 그들은 나쁜 상황에서도 최선을 택하기로 결심하였다.
III. 요셉이 왕과 백성 사이의 문제를 조정한 방식이다. 그는 왕에게 정당한 이익이 돌아가게 하면서도 백성들이 완전히 파멸하지 않게 하였다. 1. 그들의 토지에 관하여, 그는 기근의 해들이 계속되는 동안에는 그들과 어떤 협정을 맺을 필요가 없었다. 그러나 그 해들이 끝났을 때(하나님은 영원히 다투지 아니하시며 항상 진노하지도 않으신다), 그는 양쪽 모두 만족한 것으로 보이는 합의에 이르렀다. 백성들은 요셉이 배정해 주는 대로 토지를 차지하고 누리며, 왕의 창고에서 자기들의 합당한 사용과 유익을 위하여 씨앗을 받아 뿌리고, 해마다 나는 수확의 오분의 일만을 지대로 왕에게 바치기로 한 것이다. 이것은 영구적인 법이 되었다, 창 47:26. 그들과 그 가족이 달리 굶어 죽을 수밖에 없던 때에 먹을 것을 얻기 위해 땅을 내놓고, 그 뒤에는 그처럼 쉬운 조건으로 땅을 다시 얻게 된 것은 매우 좋은 거래였다. 주목하라. 지혜와 성실로 왕과 백성 사이의 균형을 공평하게 지켜, 자유와 재산이 왕권을 침해하지 않게 하고, 왕권도 자유와 재산을 무겁게 짓누르지 않게 하는 국가의 대신들은 갑절의 존경을 받을 만하다. 그런 모사들이 많으면 안전이 있다. 훗날 애굽 사람들이 자기 땅에서 왕에게 그처럼 큰 세금을 내는 것이 무겁다고 생각했다면, 그 세금이 처음 부과될 때 얼마나 정당했는지뿐 아니라 얼마나 친절한 조치였는지도 기억해야 했다. 모든 것이 왕에게 돌아갈 수도 있었던 곳에서 오분의 일을 감사히 낼 수 있었다. 요셉이 자기를 임명한 자에게 얼마나 충성스러웠는지는 주목할 만하다. 그는 돈을 자기 주머니에 넣지 않았고, 땅을 자기 가족에게 세습시키지도 않았다. 그는 둘 다 전적으로 바로의 용도로 돌렸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의 후손들이 애굽에서 나올 때 그들의 가난한 형제들보다 더 부유하게 나왔다는 기록을 보지 못한다. 공적인 신임을 맡은 사람들이 큰 재산을 모은다면, 그것이 훨씬 더 귀한 선한 양심을 희생하여 이루어지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 2. 그들의 인신에 관하여, 그는 그들을 성읍들로 옮겼다, 창 47:21. 그는 그들을 이주시켜 바로의 주권적 권세가 그들 위에 있음을 보이려 하였고, 시간이 지나면서 그들이 자기 땅에 대한 권리 주장을 잊고 새 종속 상태에 더 쉽게 적응하게 하려 하였다. 유대인 저술가들은 말한다. “그가 그들을 이전 거처에서 옮긴 것은, 그들이 그의 형제들을 나그네라고 비난했기 때문이며, 그 비난을 잠잠하게 하려고 사실상 그들 모두를 나그네가 되게 한 것이다.” 짧은 시간이 한 백성에게 어떤 변화를 일으킬 수 있는지, 하나님께서 가라앉은 찌꺼기 위에 안주하던 자들을 얼마나 빨리 이 그릇에서 저 그릇으로 비우실 수 있는지 보라. 이것이 그들에게 아무리 가혹해 보일지라도, 그들 자신은 그때 그것을 매우 큰 친절로 여겼고, 더 나쁜 대우를 받지 않은 것에 감사하였다. 주께서 우리의 생명을 구원하셨나이다, 창 47:25. 주목하라. 우리 생명의 구원자가 우리 생명의 주인이 되셔야 할 충분한 이유가 있다. “주께서 우리를 구원하셨으니, 주의 뜻대로 우리에게 행하소서.”
IV. 그가 제사장들을 위하여 남겨 둔 예외이다. 그들은 값없이 부양을 받았으므로 자기 토지를 팔 필요가 없었다, 창 47:22. 모든 백성이 이와 같이 자기 신의 이름으로 행할 것이다. 그들은 자기 신의 공적 예배를 섬기고 거룩한 일로 그들에게 봉사하는 자들을 친절히 대할 것이다. 우리도 마찬가지로, 하나님의 사역자들을 그들의 일로 말미암아 사랑 안에서 귀히 여김으로써 우리 하나님을 영화롭게 해야 한다.
창세기 47장 27-31 Matthew Henry's Complete Commentary
²⁷ 이스라엘 족속이 애굽 땅 고센 지방에 거주하며 거기서 생업을 얻어 생육하고 번성하였더라
²⁸ 야곱이 애굽 땅에 십칠 년을 살았으니 그의 나이가 백사십칠 세라
²⁹ 이스라엘이 죽을 날이 가까우매 그의 아들 요셉을 불러 그에게 이르되 내가 네게 은혜를 입었거든 청하노니 네 손을 내 허벅지 아래에 넣고 인애와 성실로 내게 행하여 나를 애굽에 장사하지 아니하도록 하라
³⁰ 내가 조상들과 함께 눕거든 너는 나를 애굽에서 메어다가 그들의 묘지에 장사하라 하니 그가 이르되 내가 아버지의 말씀대로 행하리이다
³¹ 야곱이 또 이르되 내게 맹세하라 하매 그가 맹세하니 이스라엘이 침상 머리에서 하나님께 경배하니라
살펴보라. 1. 야곱이 누린 위로이다(창 47:27,28). 애굽 사람들은 자기 땅에서 가난해졌지만, 야곱은 낯선 땅에서 풍족하게 되었다. 그는 애굽에 온 뒤 십칠 년을 더 살았는데, 이는 그 자신의 기대를 훨씬 넘어선 것이었다. 십칠 년 동안 그는 요셉을 길렀다(요셉이 팔려 나갔을 때 그 나이가 바로 십칠 세였다, 창 37:2). 그리고 이제 보답하듯이 십칠 년 동안 요셉이 그를 봉양하였다. 섭리께서 야곱의 일을 얼마나 인자하게 질서 있게 하셨는지 보라. 그가 늙어 염려나 피로를 감당할 힘이 가장 적을 때, 스스로 앞일을 대비하지 않아도 아들이 잘 공급해 주었으므로 그런 일을 감당할 필요도 가장 적었다. 이와 같이 하나님은 자기 백성의 체질을 아신다. 2. 야곱이 죽을 때 품은 염려이다. 마침내 이스라엘이 죽을 날이 가까웠다, 창 47:29. 하나님과 겨룬 왕자요 천사와 겨루어 이긴 이스라엘도 죽음에는 굴복해야 했다. 피할 길이 없다. 그는 죽어야 한다. 모든 사람에게 정해진 일이므로 그에게도 그러하다. 그 전쟁에서는 면제가 없다. 요셉은 그가 기근으로 죽지 않도록 양식을 공급해 주었지만, 그것이 그를 노쇠나 병으로 죽는 일에서 지켜 주지는 못하였다. 그는 서서히 죽어 갔다. 그의 등불은 갑자기 꺼진 것이 아니라 심지 끝까지 점차 타 내려갔으므로, 그는 어느 정도 떨어진 거리에서 그때가 가까워 오는 것을 보았다. 주목하라. 죽음이 우리를 붙잡기 전에 그 접근을 보는 것은 유익하게 사용할 수 있는 이점이다. 그래야 우리가 손이 일을 얻는 대로 힘을 다하여 행하도록 각성될 수 있기 때문이다. 어쨌든 죽음은 우리 중 누구에게도 멀리 있지 않다. 이제 야곱이 그 날이 다가오는 것을 보며 염려한 것은 자기 장례에 관한 것이었다. 그는 장례의 화려함에 대해서는 전혀 마음 쓰지 않았다. 그가 마음 쓴 것은 장사될 장소였다. (1.) 그는 가나안에 묻히고자 하였다. 그가 그렇게 결심한 것은 단순한 기분 때문, 곧 가나안이 자기 출생지였기 때문만이 아니었다. 그것은 믿음에서 나온 것이었다. 가나안은 약속의 땅이었고, 그는 자기 후손이 그 땅의 주인이 될 때가 올 때까지 그렇게 하여 말하자면 그 땅의 소유를 계속 붙들고자 했다. 또한 그 땅은 하늘, 곧 더 나은 본향의 표상이었기 때문이다. 이런 말을 한 그는 자신이 그것을 기대하고 있음을 분명히 드러낸 것이다, 히 11:14. 그는 죽음 저편에서 자기 안식과 복락이 될 좋은 땅을 바라보았다. (2.) 그는 요셉에게 자기를 그곳으로 메어 가 장사하겠다고 맹세하게 하였다(창 47:29,31). 요셉이 그런 엄숙한 의무 아래 있게 되면, 달리 제기될 수 있었던 반대들에 대하여 답할 근거를 갖게 될 것이며, 또한 죽어 가는 지금 야곱에게 더 큰 만족을 줄 수 있었기 때문이다. 죽음 뒤에 가나안에서 안식할 확실한 전망보다 임종의 침상을 더 편안하게 해 주는 것은 없다. (3.) 이 일이 이루어지자 이스라엘은 침상 머리에서 몸을 굽혔다. 이는 말하자면 죽음의 타격에 자신을 내어 맡기는 것이었다(“이제 오게 하라. 그것도 기꺼이 맞이하리라”). 또는 히 11:21에서 설명하듯 하나님께 경배한 것이었다. 그는 하나님의 모든 은혜에 감사하였고, 특별히 요셉이 그의 눈 위에 손을 얹어 감겨 줄 준비가 되어 있을 뿐 아니라, 그의 장사에 관하여 그가 바라는 만족을 주려고 자기 허벅지 아래에 손을 넣을 준비가 되어 있음에 감사하였다. 이와 같이 티끌로 내려가는 자들은 겸손한 감사로 하나님, 곧 자기들에게 긍휼을 베푸신 하나님 앞에 몸을 굽혀야 한다, 시 22:29.
이스라엘이 죽을 때가 가까워졌다. 앞 장에서 그는 자신의 장례에 관하여 명한 뒤, 이 장에서는 요셉을 통해 얻은 손자들에게 작별하고, 다음 장에서는 모든 자녀에게 작별한다. 이처럼 야곱의 임종 유언이 기록된 것은 그가 그때 예언의 영으로 말했기 때문이다. 아브라함과 이삭의 유언은 기록되어 있지 않다. 하나님의 은사와 은혜는 어떤 성도들의 임종 자리에서 다른 이들보다 훨씬 더 밝게 드러난다. 성령은 바람과 같아서 임의로 부신다. 이 장에서, I. 요셉은 아버지가 병들었다는 소식을 듣고 두 아들을 데리고 그를 찾아간다(창 48:1,2). II. 야곱은 그의 두 아들을 엄숙히 양자로 삼아 자기 아들로 받아들인다(창 48:3-7). III. 그는 그들에게 축복한다(창 48:8-16). IV. 그는 그들에게 축복할 때 손을 엇갈리게 한 일을 설명하고 정당화한다(창 48:17-20). V. 그는 요셉에게 특별한 유산을 남긴다(창 48:21,22).
¹ 이 일 후에 어떤 사람이 요셉에게 말하였다. 보라, 네 아버지가 병들었다 하니, 요셉이 두 아들 므낫세와 에브라임을 데리고 갔다.
² 어떤 사람이 야곱에게 말하여 이르되, 보라, 네 아들 요셉이 네게 왔다 하니, 이스라엘이 힘을 내어 침상에 앉았다.
³ 야곱이 요셉에게 이르되, 전능하신 하나님이 가나안 땅 루스에서 내게 나타나 복을 주시며,
⁴ 내게 말씀하시기를, 보라, 내가 너로 생육하게 하고 번성하게 하며, 너로 여러 백성의 무리가 되게 하고, 이 땅을 네 뒤를 이을 네 자손에게 영원한 소유로 주리라 하셨다.
⁵ 내가 애굽으로 네게 오기 전에 애굽 땅에서 네게 태어난 네 두 아들 에브라임과 므낫세는 이제 내 것이다. 르우벤과 시므온처럼 그들도 내 것이 될 것이다.
⁶ 그들 뒤에 네가 낳을 자녀는 네 것이 될 것이며, 그들의 기업에서는 그 형제들의 이름을 따라 불릴 것이다.
⁷ 나로 말하자면, 내가 밧단에서 올 때 라헬이 가나안 땅 길에서, 에브랏에 이르기까지 아직 조금 남은 곳에서 내 곁에서 죽었으므로, 내가 그를 에브랏 길에 장사하였으니 그곳이 곧 베들레헴이다.
여기서, I. 요셉은 아버지의 병 소식을 듣고 그를 보러 간다. 그는 존귀한 사람이고 일이 많은 사람이었지만, 늙은 아버지에게 마땅히 보여야 할 이 공경을 빠뜨리지 않았다(창 48:1). 우리가 의무를 지고 있거나, 몸이나 영혼에 선을 행할 기회가 있는 병든 사람을 방문하는 것은 우리의 의무이다. 병상은 다른 이들에게 위로와 권면을 주고 우리 자신도 교훈을 받기에 적절한 자리이다. 요셉은 두 아들을 데리고 갔다. 그들이 임종을 앞둔 할아버지의 축복을 받게 하고, 그에게서 보는 것과 듣는 것이 그들에게 오래 남는 인상을 주게 하려는 것이었다. 주목하라. 1. 세상에 들어서고 있는 젊은이들에게 세상을 떠나려 하는 하나님의 늙은 종들을 알게 하는 것은 좋다. 하나님의 선하심과 지혜의 길이 즐거움에 대한 그들의 임종 증언은 자라나는 세대에게 큰 격려가 될 수 있다. 므낫세와 에브라임은, 감히 말하건대, 이때 있었던 일을 결코 잊지 않았을 것이다. 2. 경건한 부모는 자신뿐 아니라 자녀를 위한 복도 간절히 바란다. “오, 그들이 하나님 앞에서 살기를!” 요셉은 그의 형제들 가운데 누구보다도 아버지에게 친절하였으므로, 아버지에게서 특별한 은총을 기대할 만한 이유가 있었다.
II. 야곱은 아들이 찾아온다는 소식을 듣고, 그를 맞이하기 위해 할 수 있는 한 자신을 준비하였다(창 48:2). 그는 자기 정신을 일깨우고 자기 안에 있는 은사를 불러일으키기 위해 할 수 있는 일을 했다. 몸에 남아 있는 얼마 안 되는 힘을 최대한 내어 침상에 앉았다. 주목하라. 병들고 늙은 사람들은 가능한 한 생기 있고 명랑하게 지내는 것이 매우 좋다. 그래야 환난의 날에 낙심하지 않는다. 여기의 야곱처럼 스스로 힘을 내라. 그러면 하나님께서 너를 강하게 하실 것이다. 스스로 마음을 북돋우고 자신을 도우라. 그러면 하나님께서 도우시고 네 마음을 북돋우실 것이다. 영이 연약함을 지탱하게 하라.
III. 야곱은 요셉이 자기에게 기울인 모든 정성을 갚는 뜻으로 그의 두 아들을 양자로 삼았다. 이 양자 삼음의 증서에는 다음이 있다. 1. 이 일과 관련된 하나님의 약속을 구체적으로 되새긴다. “하나님이 내게 복을 주셨으니(창 48:3), 그 복이 그들에게 상속되게 하라.” 하나님은 그에게 두 가지, 곧 많은 후손과 기업으로서의 가나안을 약속하셨다(창 48:4). 이에 따라 요셉의 아들들은 각각 한 지파로 번성하고, 야곱의 친아들들과 동등하게 가나안에서 각기 분명한 몫을 받게 될 것이다. 그가 하나님께서 자기에게 말씀하신 것을 믿음으로 붙들고 그들을 축복한 것을 보라(히 11:21). 주목하라. 우리 자신과 자녀를 위한 모든 기도에서 우리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약속을 특별히 바라보고 기억해야 한다. 2. 요셉의 아들들을 자기 가족으로 명백히 받아들인다. “네 아들들은 내 것이다(창 48:5). 내 손자일 뿐 아니라 내 친자식과 같다.” 그들은 애굽에서 태어났고, 그들의 아버지는 그때 자기 형제들과 떨어져 있었으므로, 그들이 여호와의 기업에서 끊어진 것처럼 보일 수도 있었다. 그러나 야곱은 그들을 받아들이고 보이는 교회의 지체로 인정한다. 그는 이것을 창 48:16에서 설명한다. 내 이름과 내 조상들의 이름이 그들에게 불리게 하소서. 이는 마치 이렇게 말한 것과 같다. “그들이 여기 애굽에서 아버지의 권세와 영화만을 이어받지 말고, 아브라함에게 주신 약속의 기업을 내게서 이어받게 하라.” 야곱은 그것을 훨씬 더 귀하고 영예로운 것으로 여겼으며, 그들도 그에 따라 그것을 귀히 여기고 사모하기를 원했다. 이렇게 늙어 죽어 가는 족장은 이제 장성한 이 젊은이들, 곧 스물한 살쯤 된 이들에게 애굽을 자기 본향으로 여기지 말고, 애굽 사람들과 한 몸이 되지 말며, 훗날 같은 시험 속에서 모세가 그랬던 것처럼 하나님의 백성과 함께 자기 몫을 취하라고 가르친다(히 11:24-26). 그들이 애굽에서 높은 자리에 오를 가능성이 컸는데도 멸시받는 히브리인들에게 붙어 있는 것은 자기 부인의 일이었으므로, 야곱은 그들을 격려하려고 각각 한 지파의 머리로 세운다. 주목하라. 하나님의 은혜로 세상 부와 출세의 유혹을 뚫고, 수치와 가난 속에서도 신앙을 받아들이는 사람들은 갑절의 존귀를 받을 만하다. 야곱은 에브라임과 므낫세가 교회 밖에서 높은 자리에 있는 것보다 교회 안에서 낮은 자리에 있는 것이 낫고, 부유한 요셉의 이름으로 불리는 것보다 가난한 야곱의 이름으로 불리는 것이 낫다는 것을 믿게 하려 한다. 3. 그 뒤에 요셉이 낳을 자녀들에 관한 단서가 삽입된다. 그들은 에브라임과 므낫세처럼 지파의 머리로 여겨지지 않고, 그 형제들 중 어느 한쪽에 속하게 될 것이다(창 48:6). 요셉에게 더 많은 자녀가 있었던 것으로 보이지는 않는다. 그러나 혹시 있을 다툼과 잘못된 처리를 막기 위해 이런 지침을 주는 것은 야곱의 신중함이었다. 주목하라. 재산과 지위를 정할 때에는 조언을 구하고, 앞으로 무슨 일이 일어날지 예견할 수는 없더라도 일어날 수 있는 일에는 대비하는 것이 좋다. 우리의 신중함은 하나님의 섭리를 따라야 한다. 4. 요셉의 어머니이자 야곱이 가장 사랑한 아내 라헬의 죽음과 장사에 대한 언급이 있다(창 48:7). 이는 창 35:19의 이야기를 가리킨다. 주목하라. (1.) 우리 자신이 죽음에 가까이 갈 때, 우리보다 먼저 간 사랑하는 친족과 친구들의 죽음을 기억하는 것은 좋다. 그래야 죽음과 무덤이 우리에게 더 익숙해진다. 민 27:13을 보라. 우리에게 우리의 생명과 같았던 이들도 죽어 장사되었다. 그런데 우리가 같은 길을 따르는 것을 대단한 일로 여겨야 하겠는가? (2.) 사랑하는 이들이 우리에게서 떠나는 것은 오래도록 그 기억이 우리 안에 남을 수밖에 없는 고난이다. 누릴 때의 강한 애정은 잃을 때의 긴 슬픔을 낳는다.
창세기 48장 8-22 Matthew Henry's Complete Commentary
⁸ 이스라엘이 요셉의 아들들을 보고 이르되, 이들은 누구냐?
⁹ 요셉이 아버지에게 이르되, 이는 하나님께서 이곳에서 내게 주신 내 아들들입니다 하니, 그가 이르되, 그들을 내게로 데려오라. 내가 그들에게 축복하리라.
¹⁰ 이스라엘의 눈은 나이로 말미암아 어두워져 볼 수 없었다. 요셉이 그들을 그에게 가까이 데려가니, 그가 그들에게 입 맞추고 그들을 안았다.
¹¹ 이스라엘이 요셉에게 이르되, 나는 네 얼굴을 보리라고 생각하지 못했는데, 보라, 하나님께서 네 자손까지도 내게 보이셨다.
¹² 요셉이 그들을 그의 무릎 사이에서 물러나게 하고, 얼굴을 땅에 대고 절하였다.
¹³ 요셉이 두 아들을 데려오되, 에브라임은 자기 오른손으로 이스라엘의 왼손을 향하게 하고, 므낫세는 자기 왼손으로 이스라엘의 오른손을 향하게 하여 그에게 가까이 데려갔다.
¹⁴ 이스라엘이 오른손을 펴서 어린 에브라임의 머리 위에 얹고, 왼손은 므낫세의 머리 위에 얹어, 므낫세가 장자였으나 의도적으로 손을 엇갈리게 하였다.
¹⁵ 그가 요셉을 축복하여 이르되, 내 조상 아브라함과 이삭이 그 앞에서 행하던 하나님, 지금까지 내 평생 나를 먹이신 하나님,
¹⁶ 모든 환난에서 나를 구속하신 그 천사께서 이 아이들에게 복을 주시며, 내 이름과 내 조상 아브라함과 이삭의 이름이 그들에게 불리게 하시고, 그들이 땅 가운데서 크게 번성하게 하시기를 원하노라.
¹⁷ 요셉은 아버지가 오른손을 에브라임의 머리 위에 얹은 것을 보고 기뻐하지 않았다. 그래서 아버지의 손을 붙들어 에브라임의 머리에서 므낫세의 머리로 옮기려 하였다.
¹⁸ 요셉이 아버지에게 이르되, 내 아버지여, 그리하지 마소서. 이는 장자이니 아버지의 오른손을 그의 머리 위에 얹으소서.
¹⁹ 그의 아버지가 거절하며 이르되, 나도 안다, 내 아들아, 나도 안다. 그도 한 백성이 되고 그도 크게 될 것이다. 그러나 참으로 그의 아우가 그보다 더 크게 되고, 그의 자손은 여러 민족의 무리가 될 것이다.
²⁰ 그날 그가 그들에게 축복하여 이르되, 이스라엘이 너로 말미암아 축복하며 이르기를, 하나님이 너를 에브라임 같고 므낫세 같게 하시기를 원하노라 하리라 하고, 에브라임을 므낫세보다 앞세웠다.
²¹ 이스라엘이 요셉에게 이르되, 보라, 나는 죽지만 하나님께서 너희와 함께 계셔서 너희를 다시 너희 조상들의 땅으로 돌아가게 하실 것이다.
²² 또 내가 네게 네 형제들보다 한 몫을 더 주었으니, 이는 내가 내 칼과 활로 아모리 사람의 손에서 빼앗은 것이다.
여기에는, I. 야곱이 요셉의 두 아들에게 준 축복이 있다. 사도가 이 일을 특별히 언급했다는 점에서 이것은 더욱 주목할 만하다(히 11:21). 그는 야곱이 나머지 아들들에게 선포한 축복에 대해서는 아무 말도 하지 않는데, 그 일 역시 믿음으로 행해진 것이었다. 여기서 관찰하라.
1. 야곱은 나이로 인해 눈이 어두웠다(창 48:10). 이것은 노년의 흔한 연약함 가운데 하나이다. 창문으로 내다보는 자들이 어두워진다(전 12:3). 죽음이 곧 우리의 눈을 감길 것을 알고, 또한 죽음에 이르기 전 어떤 사고가 우리의 눈을 어둡게 할지 알지 못하면서도, 우리 눈에 보이는 대로 행하고 마음이 눈을 따라가게 하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다. 야곱은 자기 아버지처럼 늙었을 때 시력이 흐려졌다. 주목하라. (1.) 노년의 영예를 가진 사람들은 그와 함께 노년의 짐도 기꺼이 감당해야 한다. (2.) 육신의 눈이 매우 흐려져도 믿음의 눈은 매우 맑을 수 있다.
2. 야곱은 요셉의 아들들을 매우 사랑하였다. 그가 그들에게 입 맞추고 그들을 안았다(창 48:10). 노인들이 손자들에게 아주 특별한 애정을 갖는 것은 흔한 일이다. 어쩌면 자기 자녀들이 어렸을 때보다 더 그럴 수도 있는데, 솔로몬은 그 이유를 이렇게 말한다(잠 17:6). 손자는 노인의 면류관이다. 야곱이 여기서 얼마나 만족스럽게 말하는가(창 48:11). 나는 네 얼굴을 보리라고 생각하지 못했는데 곧 여러 해 동안 그를 잃은 줄로 여겼는데, 보라, 하나님께서 네 자손까지도 내게 보이셨다! 여기서 보라. (1.) 이 두 선한 사람이 자기들의 위로 가운데서 하나님을 인정한다. 요셉은 말한다(창 48:9). 그들은 하나님께서 내게 주신 내 아들들입니다. 그리고 그 은총을 더욱 크게 드러내려고 “이곳에서, 곧 내 유배와 종살이와 옥살이의 자리에서”라고 덧붙인다. 야곱은 여기서 말한다. 하나님께서 네 자손을 내게 보이셨다. 우리의 위로가 하나님의 손에서 온 것임을 볼 때, 그것은 우리에게 갑절로 달다. (2.) 하나님께서는 자비로운 섭리 가운데 얼마나 자주 우리의 기대를 넘어서시며, 그렇게 하심으로 자기 은총을 크게 드러내시는가. 그는 우리의 두려움을 막아 주실 뿐 아니라 우리의 소망을 뛰어넘으신다. 우리는 이것을 우리와 우리 자녀에게 주어진 약속에 적용할 수 있다. 우리의 죄책과 부패를 생각하면 우리 자신이 하나님과 언약 안으로 받아들여질 줄도 생각할 수 없었는데, 보라, 그는 우리 자손도 자신과의 언약 안에서 우리에게 보이셨다.
3. 야곱은 축복을 상속으로 넘겨주기 전에, 하나님께서 자기에게 베푸신 선하심의 경험을 되새긴다. 그는 앞서(창 48:3) 하나님께서 자기에게 나타나신 일을 말하였다. 하나님의 은혜가 특별히 찾아오신 일들과 우리가 때때로 그분과 나누었던 특별한 교제는 결코 잊혀서는 안 된다. 그러나 창 48:15,16에서 그는 하나님의 섭리가 자기 평생 동안 끊임없이 돌보아 주신 일을 언급한다. (1.) 하나님은 지금까지 그의 평생 그를 먹이셨다(창 48:15). 주목하라. 우리가 이 세상에 살아온 동안, 자연적 생명을 유지하도록 공급하시는 하나님의 선하심을 계속 경험해 왔다. 우리 몸은 날마다 양식을 요구했고, 우리를 먹이는 데 적지 않은 것이 필요했으나, 우리는 적절한 양식이 부족했던 적이 없었다. 우리를 평생 동안 먹이신 분께서 마지막에 우리를 저버리지 않으실 것이 분명하다. (2.) 하나님은 그의 천사를 통해 모든 악에서 그를 구속하셨다(창 48:16). 그는 자기 시대에 많은 고난을 겪었지만, 하나님께서는 은혜롭게도 그 고난들의 악에서 그를 지켜 주셨다. 이제 죽어 가는 그는 자신을 모든 악에서 구속받은 사람으로 보며, 죄와 슬픔에 영원한 작별을 고하고 있었다. 언약의 천사이신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모든 악에서 구속하시는 분이시다(딤후 4:18). 주목하라. [1.] 하나님의 종들이 늙어 죽어 갈 때, 우리 하나님이 은혜로우신 분임을 경험했다는 증언을 하는 것은 마땅하다. [2.]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베푸신 선하심의 경험은 다른 이들이 하나님을 섬기도록 격려하는 데에도, 우리가 그들을 축복하고 그들을 위해 기도하는 데에도 유익하게 사용될 수 있다.
4. 야곱은 아브라함과 이삭의 축복과 이름을 그들에게 부여하면서, 아브라함과 이삭의 본과 모범을 그들에게 권한다(창 48:15). 그는 하나님을 자기 조상 아브라함과 이삭이 그 앞에서 행하던 하나님이라고 부른다. 곧 그들이 믿고, 주목하며 순종하고, 언약의 조건에 따라 제정된 규례 가운데 그분과 교제를 유지했던 하나님이라는 뜻이다. 너는 내 앞에서 행하라(창 17:1). 주목하라. (1.) 경건한 조상들의 복을 상속하고, 그들과 맺으신 하나님의 언약의 유익을 얻고자 하는 사람들은 그들의 경건의 발자취를 따라 걸어야 한다. (2.) 하나님께서 우리 조상들의 하나님이셨고, 그들이 그 앞에서 행하는 데 만족을 누렸다는 사실은 신앙과 하나님 섬김을 우리에게 권하는 이유가 되어야 한다.
5. 그들을 축복할 때 야곱은 손을 엇갈리게 했다. 요셉은 야곱의 오른손이 장자인 므낫세의 머리 위에 얹히도록 그들을 세웠다(창 48:12,13). 그러나 야곱은 그것을 어린 에브라임의 머리 위에 얹으려 했다(창 48:14). 요셉은 장자의 명예를 지켜 주고 싶었으므로 이 일을 기뻐하지 않았고, 그래서 아버지의 손을 옮기려 하였다(창 48:17,18). 그러나 야곱은 자기가 무엇을 하고 있는지 알고 있으며, 그것이 실수나 변덕이나 한쪽을 더 사랑하는 편애에서 나온 것이 아니라, 예언의 영과 하나님의 뜻에 순종한 것임을 그에게 알게 했다. 므낫세도 크게 될 것이지만, 참으로 에브라임은 더 크게 될 것이다. 광야에서 지파들이 계수되었을 때 에브라임은 므낫세보다 수가 많았고, 그 진영의 군기를 맡았으며(민 1:32,33,35; 2:18,20), 시 80:2에서도 먼저 이름이 나온다. 여호수아가 그 지파 사람이었고, 여로보암도 그러했다. 므낫세 지파는 둘로 나뉘어 절반은 요단 이쪽에, 절반은 요단 저쪽에 있었으므로 그만큼 세력과 비중이 약해졌다. 이 일을 내다보고 야곱은 손을 엇갈리게 했다. 주목하라. (1.) 하나님께서는 자기 백성에게 복을 베푸실 때 어떤 이들에게 다른 이들보다 더 많이 주신다. 더 많은 은사와 은혜와 위로, 그리고 이생의 좋은 것들을 더 많이 주신다. (2.) 그는 흔히 가장 그럴 듯하지 않은 사람들에게 가장 많이 주신다. 그는 세상의 약한 것들을 택하시며, 가난한 자를 먼지에서 일으키신다. 은혜는 자연의 질서를 따르지 않으며,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더 높아지기에 가장 적합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을 우선하지 않으시고, 자기 기쁘신 뜻대로 하신다. 하나님께서 자기 언약의 구별된 은총으로 얼마나 자주 어린 자를 형보다 높이셨는지는 주목할 만하다. 아벨을 가인보다, 셈을 야벳보다, 아브라함을 나홀과 하란보다, 이삭을 이스마엘보다, 야곱을 에서보다 높이셨다. 유다와 요셉은 르우벤보다 앞섰고, 모세는 아론보다, 다윗과 솔로몬은 그 형들보다 앞섰다. 삼상 16:7을 보라. 하나님은 유대인들에게 장자권을 지키도록 명하셨지만(신 21:17), 자신을 그것에 묶어 두지는 않으셨다. 어떤 이들은 이것을 이방인이 유대인보다 우선권을 받은 일의 예표로 본다. 이방인 회심자들은 유대인 회심자들보다 훨씬 많았다. 갈 4:27을 보라. 이처럼 값없는 은혜가 더욱 빛나게 된다.
II. 요셉에게 베푼 특별한 은총의 표가 있다. 1. 야곱은 그들이 애굽에서 돌아오리라는 약속을 거룩한 맡김으로 그에게 남겼다. 나는 죽지만 하나님께서 너희와 함께 계셔서 너희를 다시 돌아가게 하실 것이다(창 48:21). 이에 따라 요셉도 죽을 때 그 약속을 자기 형제들에게 남겼다(창 50:24). 이 확신이 그들에게 주어지고 그들 가운데 조심스럽게 보존된 것은, 애굽이 그들을 좋게 대할 때 애굽을 지나치게 사랑하지도 않고, 애굽이 그들에게 찡그릴 때 지나치게 두려워하지도 않게 하려는 것이었다. 야곱의 이 말은 우리 친구들의 죽음과 관련하여 우리에게 위로를 준다. 그들은 죽지만,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 계실 것이며, 그의 은혜로운 임재는 그 상실을 충분히 보상한다. 그들은 우리를 떠나지만, 그는 결코 우리를 버리지 않으실 것이다. 더 나아가 그는 우리를 우리 조상들의 땅, 곧 우리의 경건한 조상들이 우리보다 먼저 간 하늘의 가나안으로 인도하실 것이다. 우리가 이 세상에 뒤에 남아 있는 동안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 계시고, 곧 더 나은 세상으로 먼저 간 이들과 함께 있게 하시려고 우리를 받아 주실 것이라면, 우리는 소망 없는 자들처럼 슬퍼해서는 안 된다. 2. 그는 요셉에게 그 형제들보다 한 몫을 더 주었다(창 48:22). 유증된 땅은 그가 자기 칼과 활로 아모리 사람의 손에서 빼앗은 땅으로 설명된다. 그는 그것을 먼저 샀고(수 24:32), 그 뒤에 아모리 사람들에게 빼앗긴 듯하나, 칼로 되찾아 힘에는 힘으로 맞서고, 달리 회복할 수 없을 때 무력으로 자기 권리를 회복하였다. 그는 이 땅을 요셉에게 정해 주었다. 이 증여에 대한 언급은 요 4:5에 나온다. 이에 따라 이 땅은 에브라임 지파에게 그들의 권리로 주어졌고, 그 위에 제비가 던져진 적은 없었다. 그곳에 요셉의 뼈가 장사되었는데, 아마 야곱은 이 정착에서 다른 어떤 것만큼이나 그 일을 염두에 두었을 것이다. 주목하라. 어떤 자녀에게 다른 자녀보다 더 많은 몫을 주는 것이 때로는 공의롭고 신중한 일이 될 수 있다. 그러나 이 땅에서 우리가 가장 확실히 우리 것이라고 기대할 수 있는 것은 무덤이다.
야곱과 요셉의 만남 (주전 1706년)
여기에는, I. 야곱과 그의 아들 요셉 사이의 기쁜 만남이 있다. 이 만남에서 다음을 관찰하라.
야곱은 고센에 도착했다는 소식을 요셉에게 알리려고 유다를 자기보다 앞서 보낸 신중함을 보였다. 이것은 이 나그네들이 보호 아래 들어온 정부에 대하여 마땅히 보여야 할 존중의 한 부분이었다, 창 46:28. 우리는 어떤 사람에게도, 특히 높은 권세들에게는 더욱, 걸림이 되지 않도록 매우 조심해야 한다.
요셉이 그에게 보인 자식다운 공경이다. 요셉은 병거를 타고 그를 맞으러 갔고, 그 만남에서 다음을 보여 주었다. (1.) 그가 아버지를 얼마나 존경했는가. 그에게 자신을 보였다. 주목하라. 자녀들은 부모를 공경해야 할 의무가 있다. 섭리가 외적인 처지에서 자녀를 부모보다 높여 놓았다 하더라도 그렇다. (2.) 그가 아버지를 얼마나 사랑했는가. 시간은 그가 받은 은혜에 대한 감각을 닳게 하지 않았다. 오히려 아버지를 보게 된 기쁨으로 그의 목에 풍성히 흘린 눈물은 그가 아버지에게 품은 진실하고 강한 애정의 참된 표시였다. 이 세상에서 슬픔과 기쁨이 얼마나 가까이 있는지 보라. 눈물이 둘 다를 표현하는 데 쓰이기 때문이다. 저 세상에서는 울음이 오직 슬픔에만 제한될 것이다. 하늘에는 완전한 기쁨이 있지만 기쁨의 눈물은 없다. 그곳에서는 모든 눈물, 심지어 그런 눈물까지도 씻겨질 것이다. 거기 있는 기쁨은 이 세상의 어떤 기쁨과도 달리 어떤 섞임도 없기 때문이다. 요셉이 베냐민을 안았을 때에는 그의 목을 안고 울었지만, 아버지를 안았을 때에는 한참 동안 그의 목을 안고 울었다. 그의 형제 베냐민도 귀했지만, 그의 아버지 야곱은 더 귀해야 했다.
이 만남에서 야곱이 얻은 큰 만족이다. 지금 죽어도 족하도다, 창 46:30. 요셉과 함께 살며 그의 영예와 유익함을 보는 것이 더 바랄 만하지 않았다는 뜻은 아니다. 다만 그는 이 첫 만남에서 너무도 큰 기쁨과 만족을 얻었으므로, 우리의 위로가 언제나 불완전할 수밖에 없는 이 세상에서 더 이상 무엇을 바라거나 기대하는 것은 지나치다고 생각했다. 야곱은 즉시 죽기를 바랐으나, 그 뒤에도 십칠 년을 더 살았다. 오늘날 우리의 수명으로 보아도 그것은 한 사람의 생애에서 상당한 부분이다. 주목하라. 죽음은 우리가 슬픔의 격정에서 부르든 기쁨의 격정에서 부르든 언제나 우리가 부르는 바로 그때 오지는 않는다. 우리의 때는 우리 손에 있지 않고 하나님의 손에 있다. 우리는 생의 즐거움에 물렸을 바로 그때도 아니고, 생의 슬픔에 짓눌렸을 바로 그때도 아니라,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바로 그때 죽어야 한다.
II. 요셉이 그의 형제들의 정착에 관하여 보인 신중한 배려가 있다. 그런 무리가 바로의 영토에 정착하러 왔다는 사실을 바로에게 알리는 것은 바로에게 대한 의리였다. 주목하라. 다른 사람들이 우리를 신뢰한다면, 우리는 그들에게 속임수를 써서 그 신뢰를 악용할 만큼 비열하고 불성실해서는 안 된다. 야곱과 그의 가족이 애굽 사람들에게 부담이 된다 하더라도, 그들이 몰래 숨어 들어와 그들 가운데 들어왔다고 말하게 해서는 결코 안 되었다. 이처럼 요셉은 바로에게 경의를 표하도록 신경을 썼다, 창 46:31. 그러나 그는 형제들을 어떻게 배치할 것인가? 한때 그들은 요셉을 없애 버리려고 꾀했지만, 이제 요셉은 그들이 만족하고 유익을 얻도록 정착시키려 꾀하고 있다. 이것이 악을 선으로 갚는 것이다. 이제, 1. 그는 그들이 애굽 사람들과 가능한 한 떨어져 따로 살기를 원했다. 곧 고센 땅에서 살기를 원했다. 그곳은 가나안에서 가장 가까운 곳이었고, 아마 애굽 사람들이 비교적 드물게 살았으며, 가축을 위한 목초지가 잘 갖추어진 곳이었을 것이다. 그는 그들이 따로 살기를 바랐다. 이는 그들이 애굽 사람들의 악습에 감염될 위험도, 애굽 사람들의 악의로 모욕당할 위험도 줄어들게 하려는 것이었다. 목자들은, 보아하니, 애굽 사람에게 가증히 여김을 받았다. 곧 애굽 사람들은 그들을 멸시하고 그들과 사귀기를 업신여겼다. 요셉은 자기 형제들을 애굽으로 불러 짓밟히게 하려 하지 않았다. 그러나, 2. 그는 그들이 계속 목자로 지내며, 바로 앞에서 그 직업을 자기들의 생업으로 인정하기를 부끄러워하지 않게 하려 했다. 그는 그들을 자기 아래서 곡물 거래에 종사하게 할 수도 있었고, 혹은 왕에게 가진 영향력으로 그들에게 궁정이나 군대의 직책을 마련해 줄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들 중 적어도 몇몇은 그만한 자격이 충분했다. 그러나 그런 승진은 그들을 애굽 사람들의 시기 앞에 노출시켰을 것이며, 그들로 하여금 가나안과 조상들에게 주어진 약속을 잊도록 시험했을 것이다. 그러므로 그는 그들이 예전의 직업을 계속하도록 계획했다. 주목하라. (1.) 정직한 직업은 불명예가 아니며, 우리 자신에게서든 우리의 친족에게서든 그렇게 여겨서는 안 된다. 오히려 게으르거나 할 일이 없는 것을 부끄러움으로 여겨야 한다. (2.) 사람들은 대체로 어려서부터 배워 익숙해진 부르심 안에 머무는 것이 가장 좋다, 고전 7:24. 하나님께서 섭리 가운데 우리에게 배정하신 일이든 처지든, 우리는 그것에 자신을 맞추고 그것으로 만족해야 하며, 높은 데 마음을 두지 말아야 한다. 높은 자리의 수치가 되는 것보다 낮은 자리의 명예가 되는 것이 낫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