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ohn Gill's Exposition of the Bible
John Gill · 1763
John Gill(1697-1771), Exposition of the Old and New Testament(1746-1763). Public domain. Retrieval mirror: biblehub.com/commentaries/gil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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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호와 하나님이 그 땅에서 보기에 아름답고 먹기에 좋은 모든 나무가 나게 하시니. 곧 에덴 동산의 땅에서 난 것이며, 이는 온 땅이 풀과 채소와 나무를 낸 셋째 날에 행해졌다. 그러나 사람을 위하여 특별한 한 뙈기 땅이 정해졌고, 그의 용도를 위한 온갖 종류의 나무가 그 안에 갖추어졌으니, 그에게 합당하고 즐거운 양식이 될 열매를 맺는 나무뿐 아니라, 바라보기에 기쁨을 줄 다른 나무들도 있었다. 곧 높이와 펼쳐진 가지와 푸른 잎으로 인한 키 큰 백향목 같은 것들과 그 밖의 많은 것이다. 그리하여 미각과 후각을 즐겁게 할 나무뿐 아니라 시각을 즐겁게 할 나무도 있었으니, 바라보기에 그러한 보기 좋고 아리따운 나무가 지식의 나무였다. 창 3:6. 이 나무들은 성도들 곧 의의 나무, 여호와의 심으신 바, 그의 영과 은혜의 영향으로 그가 자라게 하시는 나무들의 표상일 수 있으며, 그가 그들을 자기 동산 곧 교회들에 심으시고 하늘의 낙원으로 옮겨 심으시니, 종종 종려나무, 백향목, 감람나무, 석류나무 등에 비유된다. 동산 가운데에는 생명나무도 있고. 가장 빼어난 자리인 듯 거기 두어졌으니, 가장 눈에 잘 띄고 다가갈 수 있는 곳이었다. 아담이 죄를 짓기 전에는 그것을 먹는 데 대한 금지가 없었듯이 그것에 이르는 데 대한 장애도 없었다. 그리고 그가 다른 나무들과 더불어 그것을 먹도록 허락받았으므로, 그것은 그의 용도를 위하여, 곧 그의 자연적 생명을 떠받치고 유지하기 위하여 의도되었다. 만일 그가 자기의 순종과 무죄의 상태에 머물렀더라면 그 생명은 계속되었을 것이며, 아마도 주로 이 나무를 통하여 그러하였을 것이다. 그래서 집회서 저자(son of Sirach)는 그것을 불멸의 나무(tree of immortality)라 부른다. "주의 계명들에 대한 지식은 생명의 교훈이며, 그를 기쁘시게 하는 일을 행하는 자들은 불멸의 나무의 열매를 받으리라."(집회서 19:19) 그리고 그것은 또한 그가 하나님께 의존함을 그에게 보이는 표징과 기념과 상징이었을 수 있으니, 곧 그가 자기 생명을 그분에게서 받았으며, 그것이 자기의 힘과 기술이 아니라 그분의 복과 섭리로 보존되며, 그가 신적 율법을 범하지 않는다면 계속되리라는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더 나아가 그리스도로 말미암는 영생까지도 가리키는 듯하다. 비록 무죄의 상태에 있던 아담에게는 그 생명의 상징이 아니었을지라도, 그의 타락 후에는 그렇게 되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리스도께서는 때때로 생명나무로 표시되니(잠 3:18), 그는 자연적·영적 생명의 창시자일 뿐 아니라 영생을 주시는 분이시다. 영생의 약속이 그 안에 있고 그 복도 그러하며, 그는 자기의 순종과 고난과 죽음으로 그 길을 여셨고 그리로 가는 길이시며, 영생은 그의 선물 안에 있어 그가 그것을 자기의 모든 백성에게 베푸시니, 영생은 그를 누리는 데 크게 있을 것이다. 이 나무가 동산 가운데 자리한 것은 그의 교회와 백성 가운데 계신 분과 잘 어울린다(계 1:13). 그는 이제 그들 모두에게 활짝 열려 있고 보이며 다가갈 수 있으니, 이제 그들이 그에게 나아와 그의 은혜의 열매와 복에 참여할 수 있으며, 그것은 많고 한결같으며 지속적이다(계 22:2). 그리고 그는 영원토록 모두에게 보이고 누려질 것이다.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도 있더라. 그렇게 불린 것은 하나님과 관련해서이니, 곧 그가 사람을 지으신 후 이것으로 그가 선할지 악할지를 시험하셨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것은 그가 미리 아셨다. 그러므로 도리어 사람과 관련해서이니, 그 열매를 먹는 것이 실제로 그에게 그러한 지식을 줄 수 있었기 때문이 아니며, 그가 그것을 필요로 한 것도 아니다. 그의 마음에 새겨진 본성의 법으로 그는 선과 악의 차이를, 곧 하나님이 명하신 것은 선이요 그가 금하신 것은 악임을 알았기 때문이다. 도리어 그것은 사탄이 그것에 돌린 효력에서 그 이름을 얻었거나(창 3:5), 혹은 사람이 그 열매를 먹은 뒤 따라온 슬픈 사건에서 그 이름을 얻었으니, 그로써 그는 하나님의 뜻에 대한 순종과 불순종 곧 선과 악의 차이를 경험으로 깨닫게 되었다. 그는 자기가 잃어버린, 혹은 누릴 수 있었던 선과, 자기 자신과 후손에게 가져온, 피할 수 있었던 악이 무엇인지를 슬픈 경험으로 알게 되었다. 이 나무가 무엇이었는지는 확실하지 않다. 그것에 관해 여러 추측이 있으나 그 밖에는 아무것도 알아낼 수 없다. 어떤 이들은 그것을 무화과나무로 보는데, 야르키와 아벤 에스라 위(on Gen 3:6)의 어떤 이들이 그러하니, 이는 무화과 잎이 가까이 있어 그 열매를 먹자마자 즉시 사용되었기 때문이다. 어떤 이들은 포도나무, 특히 검은 포도라 하니, 조하르(Zohar) 책(d)에서 그러하다. 다른 이들은, 바알 핫투림(Baal Hatturim, on Gen 1:29)처럼, 시트론(citron) 곧 시트론 사과나무라 한다(e). 다른 이들은 옛 닛체콘(Nizzechon)의 저자(f)처럼 흔한 사과라 하니, 이것이 통속적 견해이다. 악(evil)과 사과(apple)가 같은 라틴어 "malum"으로 불리기 때문이다. 탈무드(g)에서는 어떤 이들은 포도나무, 어떤 이들은 무화과나무, 다른 이들은 밀(wheat)이라 한다(h). 이슬람교도들은 그것이 아프리카인들이 무사(Musa)라는 이름으로 부르는 나무라고 말한다(i). (d) In Exod. fol. 59. 4. & in Numb. fol. 53. 3. So in Bereshit Rabba, sect. 12. fol. 155. 2. (e) Vid. Caphtor Uperah, fol. 49. 1. & 60. 2. & 63. 2. (f) P. 147. Ed. Wagenseil. (g) T. Bab. Beracot, fol. 40. 1. & Sanhedrin, fol. 70. 1. 2. So in Tzeror Hammor, fol. 15. 2. Tikkune Zohar correct. 24. fol. 68. (h) Vid. Bartenora in Misn. Roshhashanah, c. 1. sect. 2. (i) Leo. African. Desriptio Africae, c. 9. p. 772.
강이 에덴에서 흘러 나와 동산을 적시고. 아벤 에스라가 관찰하듯 사람이 창조되기 전에 이 강이 에덴에서 흘러 나와 사방에서 그것을 적셨다. 그러나 여기서 어떤 강이 뜻해지는지는 말하기 어렵다. 그것은 티그리스와 만나 하나의 흐름 곧 강이 되어 에덴에 들어가 그곳을 가로질러 흘렀던 유프라테스 강이라고 더 흔히 여겨지며, 그 후 네 강으로 갈라졌는데 그중 둘은 그 이름을 그대로 지녔다. 박식한 렐란드(Reland)(k)는 이 강이 이제 사라졌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앞서 언급한 박식한 저술가는 관찰한 대로 그것이 요단 강이라고 생각한다. 창 2:8 주를 보라. 그리고 플리니우스(Pliny)(l)가 말하듯 그것은 매우 즐거운 강이었다. 거기서부터 갈라져 네 근원이 되었으니. 그것이 에덴과 그 안의 동산을 지나며 적신 후 네 부분 곧 네 물줄기의 근원, 곧 뒤에 언급되는 네 주요한 강으로 나뉘었다. 위의 저술가는 이 정황이 그것을 요단 강일 가능성이 더 크게 만든다고 생각하는데, 요단과 더불어 그 네 강이 집회서(Sirach)에서 함께 언급되기 때문이니, 외경에 이렇게 있다. "25 그가 비손(Phison)처럼, 햇 열매의 때의 티그리스처럼 만물을 자기 지혜로 채우신다. 26 그가 유프라테스처럼, 추수 때의 요단처럼 깨달음을 넘치게 하신다. 27 그가 지식의 교훈을 빛처럼, 포도 수확 때의 기혼(Geon)처럼 나타나게 하신다."(집회서 24장) 이에 관해서는 다음 절들에서 다룬다. 이 강은 하나님의 영원하신 사랑, 곧 사람의 믿음과 사랑과 순종이 아니라 신적 주권에서, 하나님과 어린양의 보좌에서 솟아나는 저 순수한 생명수의 강의 표상일 수 있으니, 그 시내가 하나님의 성을 기쁘게 하고 동산 곧 교회를 적시며 그 식물을 소생시키고 열매 맺고 즐겁게 만든다. 그 네 근원 곧 가지는 하나님의 영원한 선택, 그리스도로 말미암는 특별한 구속, 성령으로 말미암는 거듭남과 성화, 그리고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값없는 선물로 주어지는 영생과 행복이다. 시 46:4를 보라. (k) Dissert. de Paradiso, p. 53. (l) Nat. Hist. l. 5. c. 15.
첫째의 이름은 비손이라. 야르키처럼 애굽의 나일 강이 아니니, 그는 그것이 증대하고 펼쳐지고 퍼지는 것을 뜻하는 "파샤(Pashah)"에서 파생되었다고 생각하는데, 나일이 특정한 때에 그렇게 하여 애굽 땅 위로 퍼지기 때문이며, 혹은 그곳에서 자라는 베 곧 "피슈텐(Pishten)"에서 나왔다고 한다(사 19:9). 또한 요세푸스(m)와 다른 이들처럼 인도의 갠지스 강도 아니니, 그것이 뒤에 흐른다고 하는 지방이 애굽과도 인도와도 맞지 않기 때문이다. 도리어 그것은 플리니우스(n)와 스트라보(o)의 파시스(Phasis), 크세노폰(Xenophon)(p)의 피스쿠스(Physcus), 필로스토르기우스(Philostorgius)(q)의 히파시스(Hyphasis), 곧 아르메니아와 콜키스(Colchis) 부근의 강과 동일한 강인 듯하며, 이는 때때로 파시티그리스(Pasitigris)라 불리니 그 강의 한 지류로서, 티그리스와 유프라테스 및 다른 물들에서 끌어온 수로에서 섞이거나 솟아난다(r). 그것은 금이 있는 하윌라 온 땅을 둘렀으며. 이 지방은 구스(Cush)의 아들 중 하나인 하윌라(Havilah)에게서 그 이름을 얻었으니(창 10:7), 그는 아마도 자기 형제 스바(Seba) 근처에 자리를 잡았을 것이며, 스바에게서 아라비아의 한 부분에 거한 스바 사람들(Sabeans)이 나왔다. 그리고 하윌라는 분명히 애굽 앞 곧 앗수르로 가는 길에 있었고, 아라비아 데세르타(Arabia Deserta)에 거한 이스마엘 사람들과 접경하였다(창 25:16). 그러므로 그것은 아라비아의 한 지방, 곧 구스 혹은 아라비아 쿠세아(Arabia Cusea)에 가깝거나 그 일부이며, 스바 곧 아라비아 펠릭스(Arabia Felix)에 가까운 듯하다. 그래서 스트라보는 아라비아인의 민족들 가운데, 나바테아인들(Nabatheans)과 더불어 카울로타에아인들(Chaulotaeans)(s)을 두는데, 이들은 하윌라의 후손에 다름 아닌 듯하다. 박식한 렐란드(t)에 따르면 그것은 스키티아(Scythia)의 한 부분인 콜키스와 동일하며, 파시스가 콜키스의 강임은 잘 알려져 있다. 그리고 그것은 플리니우스(u)에서 드러나듯 폰토스(Pontus)로 흘러 들어가며, 유스티누스(Justin)(w)가 말하듯 스키티아를 포함한다. 그렇다면 그것은 욕단(Joktan)의 아들 하윌라에게서 그 이름을 얻었음이 틀림없다(창 10:29). 그리고 이 두 지방 어느 쪽에든 금이 있었으니, 풍성하고 가장 좋은 것이 있었다. 다음과 같다. (노아 홍수의 전 지구적 파괴 이후, 오늘날 이 강들의 위치를 어느 정도의 확실성으로도 결정할 수 있을지는 의심스럽다. 편집자 주.) (m) Antiqu. l. 1. c. 1. sect. 3. (n) Nat. Hist. l. 6. c. 4. 17. (o) Geograph. l. 11. p. 343, 345, 364. (p) Cyr. Minor. l. 2. (q) Hist. Ecclesiast. l. 3. c. 10. (r) Curtius, l. 5. c. 3. Strabo. Geograph. l. 15. p. 501. (s) Ib. p. 528. (t) De Paradiso, p. 16, &c. (u) Ut supra. (Nat. Hist. l. 6. c. 4. 17.) (w) E Trogo, l. 2. c. 2.
그 땅의 금은 순금이요. 아라비아는 금으로 유명하였다. 디오도로스 시켈로스(Diodorus Siculus)(x)는 아라비아의 "아피루스(apyrus)"라 불리는 금에 관해 말하는데, 그것은 다른 것처럼 작은 줄밥에서 불로 녹여 내는 것이 아니라, 캐자마자 순금이라고 하며, 밤톨 크기에 그 빛깔이 매우 불꽃 같아서 장인들이 가장 귀한 보석을 그 안에 박아 장식한다. 그리고 콜키스와 스키티아에는 스트라보(y)가 전하듯 금을 산출하는 강들이 있으니, 거기서 황금 양털(golden fleece)의 전설이 나왔고 아르고나우타이(Argonauts)가 그것을 위하여 콜키스로 갔다. 베델리엄과 호마노가 있으며. 이 중 첫째는 향기로운 수지(樹脂)이거나, 그 나무는 플리니우스(z)에 따르면 검고 감람나무 크기이며 떡갈나무 잎을 가지고 그 열매는 풍조목(capers) 같다. 그것은 아라비아, 인도, 메디아, 바벨론에서 발견되나, 그에 따르면 가장 좋은 것은 박트리아나(Bactriana)에 있고 그다음이 아라비아의 베델리엄이다. 혹은 그것은 귀한 보석으로, 유대인 저술가들(a)은 흔히 그것을 수정(crystal)으로 본다. 그리고 솔리누스(Solinus)(b)에 따르면 가장 좋은 수정은 스키티아에 있다. 보카르트(Bochart)(c)는 그것이 진주를 뜻한다고 보려 하니, 그 흰빛과 둥근 모양 때문이며, 만나가 그것에 비유되기 때문이고(민 11:7), 더욱이 카티파(Catipha)의 진주 채취 때문에 하윌라를 페르시아 만에 면한 아라비아의 그 부분으로 보기 때문이다. 후자 곧 호마노(onyx)는 귀한 보석으로, 사람의 손톱 빛깔이기에 그 이름을 얻었다. 그리고 플리니우스(d)에 따르면 호마노 대리석은 아라비아의 산들에서 발견되며, 옛 사람들은 다른 어디에도 없다고 생각하였다. 그리고 그는 다른 곳에서 아라비아의 호마노 보석과 사르도닉스(sardonyx)를 같은 지방에 있는 것으로 말한다(e). 그리고 어떤 이들은 그것이 여기서 뜻해진다고 생각한다. 다만 이 단어는 칠십인역에서 때때로 에메랄드로 옮겨지며, 그 가장 좋은 것은 솔리누스(f)와 플리니우스(g)에 따르면 스키티아에 있었다. (노아 홍수의 전 지구적 파괴 이후, 오늘날 이 곳들의 위치를 어느 정도의 확실성으로도 결정할 수 있을지는 의심스럽다. 편집자 주.) (x) Bibliothec. l. 2. p. 133. (y) Geograph. l. 1. p. 31. & l. 11. p. 344. (z) Nat. Hist. l. 12. c. 9. (a) Jarchi in Numb. xi. 7. David de Pomis Tzemach David, fol. 8. 3. (b) Polyhistor. c. 25. (c) Hierozoic. par. 2. l. 5. c. 5. p. 675, &c. (d) Nat. Hist. l. 36. c. 7. (e) lb. l. 37. c. 6. (f) Polyhistor. ut supra. (c. 25) (g) Ut supra, (Nat. Hist. l. 36.) c. 5.
둘째 강의 이름은 기혼이라. 이스라엘 땅에 이 이름의 강이 하나 있었는데, 그것이나 그 한 지류가 예루살렘 가까이 흘렀다(왕상 1:33). 아벤 에스라는 여기서 이것이 뜻해진다고 시사하며, 이는 에덴 동산이 이스라엘 땅에 있었다는 앞의 박식한 사람의 견해를 지지한다. 요세푸스(h)는 그것을 나일 강으로 보며 다른 많은 이들도 그러하다. 그것은 비손이 서편에 있었듯이 동편에서 유프라테스나 티그리스 강의 한 지류였던 듯하다. 그래서 아벤 에스라는 그것이 남동쪽에서 왔다고 말한다. 박식한 렐란드(i)는 그것을 아락세스(Araxes) 강으로 보려 한다. 야르키에 따르면 그것은 그것이 흐르는 힘과 내는 소리에서 그 이름을 얻었다. 그리고 그것은 큰 힘으로 솟아 나옴을 뜻하는 말에서 그 이름을 얻은 듯한데, 이 강이 발트해로 쏟아질 때 그렇게 한다고 한다. 구스 온 땅을 둘렀고. 곧 애굽 위쪽의 에티오피아(Ethiopia)이며, 이는 기혼을 나일로 보는 이들의 견해를 지지한다. 파우사니아스(Pausanias)(k)는 나일이 유프라테스였다고 흔히 전해진다고 말하는데, 그것이 늪에서 사라졌다가 에티오피아 위쪽으로 솟아올라 나일이 되어 그 지방을 적셨다는 것이며, 이는 모세의 기술과 매우 잘 들어맞는다고 여겨진다. 혹은 미디안에 접경하였고 아라비아의 한 부분이어서 아라비아 쿠세아(Arabia Chusea)라 불릴 수 있는 저 구스 곧 에티오피아이니, 성경에서 구스로 흔히 뜻해지는 곳이다. 렐란드(l)는 메디아에 접경한 백성인 코사이아인들(Cossaeans) 혹은 쿠사이아인들(Cussaeans)의 지방, 곧 페르시아의 한 지방인 쿠헤스탄(Kuhestan)이 뜻해진다고 생각한다. (노아 홍수의 전 지구적 파괴 이후, 오늘날 이 강들의 위치를 어느 정도의 확실성으로도 결정할 수 있을지는 의심스럽다. 편집자 주.) (h) Antiqu, l. 1. c. 1. sect. 3. Philostorg. Eccl. Hist. l. 3. c. 10. p. 482. (i) De situ Paradisi, p. 32. (k) Corinthiaca sive, l. 2. p. 94. (l) Ut supra, (De situ Paradisi) p. 38.
셋째 강의 이름은 힛데겔이라. 페르시아의 수산(Shushan) 곁을 흐른 강으로, 다니엘 시대에도 그 이름을 지녔으니(단 10:4), 거기서 그것은 큰 강이라 불린다. 그리고 그것은 지금도 페르시아인들 가운데 같은 이름을 지니는 듯하다. 적어도 라우볼프(Rauwolff)(m)가 그 지방을 여행하던 백오십 년 전에는 그러하였다. 요나단의 타르굼(Targum)은 여기서 그것을 디글라트(Diglath)라 부르는데, 이는 플리니우스(n)의 디글리토(Diglito)와 같으며, 그에 따르면 그것은 그 빠름에서 티그리스(Tigris)라 불리니, 빠른 짐승인 호랑이(tiger)에서거나 갈대아 말로 "쏘다(to dart)"에서 온 것이다. 그래서 쿠르티우스(Curtius)(o)는 페르시아 말로 그들이 화살을 "티그리스"라 부른다고 말한다. 그리고 이와 일치하여 "힛데겔(Hiddekel)"이라는 말은 히브리어로 갈고 닦은 화살처럼 날카롭고 빠름을 뜻한다. 그리고 야르키는 그 물이 날카롭고 빠르기에 그렇게 불린다고 말한다. 다만 이는 어떤 근래 여행자들(p)에 의해 반박되는데, 그들은 그것이 유프라테스보다 더 느린 흐름이며 매우 굽이지고 사행(蛇行)이 많을 뿐 아니라 섬들과 큰 돌 둑들로 막혀 있다고 말한다. 그것은 앗수르 동편으로 흘렀으며. 이 지방은 셈의 아들 앗수르(Ashur)에게서 그 이름을 얻었고(창 10:11), 유명한 왕국이자 제국이 되었으며, 니느웨(Nineveh)가 그 수도로서 티그리스 곧 힛데겔 강 위에 세워졌다. 그리고 앞서 관찰한 대로 그것은 페르시아의 수산 곁을 흘렀으며, 디오도로스 시켈로스(Diodorus Siculus)(q)가 말하듯 메디아를 지나 메소포타미아로 흘렀으니, 이는 모세에 따라 그것이 에덴의 강 중 하나라는 것과 매우 잘 들어맞는다. 한때 니느웨가 섰던 모술(Mosul)에서 이 강을 십이 마일 거슬러 올라가면 티그리스 한가운데 에덴의 섬(island of Eden)이라 불리는 섬이 있으니, 둘레가 약 영국 십 마일이며 의심할 바 없이 낙원의 일부라고 한다(r). 넷째 강은 유브라데더라. 곧 히브리어로 "프랏(Phrat)"이다. 렐란드(s)는 그 앞에 붙은 음절 "에우(eu)"가 페르시아의 "아우(au)" 혹은 "쿠(cu)"로서 그 말로 "물"을 뜻한다고 옳게 판단하는 듯하다. 그리하여 "유프라테스(Euphrates)"는 "프랏의 물"에 다름 아니며, 그 비옥함에서 그렇게 불렸으니, 야르키가 말하듯 그 물이 땅을 결실케 하고 증대시키며 기름지게 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는 이 이름들과 여기 언급된 다른 강들과 지방들의 이름이 예변법 곧 선취로 명명되었다고 옳게 관찰하니, 이것들은 모세가 기록할 때 그것들이 지녔던 이름이었다. 다만 그것이 히브리어 "후, 더, 댓 프랏(Hu, the, that Phrat)"이라고 생각될 수도 있으니, 헬라인들이 그것을 "에우"로 만들었을 수 있다. (노아 홍수의 전 지구적 파괴 이후, 오늘날 이 강들의 위치를 어느 정도의 확실성으로도 결정할 수 있을지는 의심스럽다. 편집자 주.) (m) Travels, part. 2. c. 9. p. 159. ed. Ray. (n) Nat. Hist. l. 6. c. 27. (o) Hist. l. 4. c. 9. (p) De la Valle & Thevenot, apud Universal History, vol. 4. p. 248. (q) Bibliothec. l. 2. p. 99. (r) Cartwright's Preacher's Travels, p. 91. (s) Ut supra, (De Situ Paradisi) p. 45.
여호와 하나님이 그 사람을 이끌어 에덴 동산에 두어. 이는 앞서 창 2:8에서 관찰되었으며, 여기서는 다음에 이어지는 것을 도입하기 위하여 반복된다. 그리고 이는 신적 권능으로 그가 있던 곳에서 그를 들어 올려 다른 곳으로 옮기는 육체적 옮김으로 이해할 것이 아니라, 도리어 손으로 이끎(manuduction) 곧 손을 잡고 그리로 인도함으로 이해해야 한다. 그래서 옹켈로스(Onkelos)는 그것을 그가 그를 "이끄셨다" 곧 그를 그리로 명하고 인도하셨다고 옮긴다. 그래서 야르키는 그가 좋은 말로 그를 데려가 그리로 가도록 설득하셨다고 부연한다. 그가 데려와졌다고 어떤 이들이 상정하는 그 장소는 그가 창조되었다고 그들이 말하는 다메섹 근처거나, 유대 저술가들이 말하듯 후에 성전이 세워진 곳이다. 요나단의 타르굼은 이러하다. "여호와 하나님이 그 사람을, 그가 창조된 곳인 섬김의 산(mount of Service)에서 데려와 에덴 동산에 거하게 하셨다." 그리고 다른 곳에서는(t) 이렇게 말한다. "거룩하시고 복되신 하나님이 첫 아담을 지극히 큰 사랑으로 사랑하셨으니, 이는 그를 순수하고 거룩한 곳에서 창조하셨기 때문이다. 그러면 그를 어느 곳에서 데려오셨는가? 성소의 집의 곳에서이며, 그를 자기 궁전으로 데려오셨으니, '여호와 하나님이 그 사람을 이끌어'(창 2:15) 운운이라 한 대로이다." 다만 이 표현으로 의도된 것은 하나님이 그에게 말씀하셨거나 그의 마음에 새기시어 그를 그리로 가거나 거기 머물도록 기울게 하셨다는 것 이상은 아닐 것이다. 그것을 다스리며 지키게 하시고. 그리하여 사람이 무죄의 상태에서 한가한 삶을 살도록 되어 있지 않았던 듯하다. 그러나 이는 타락 후에 그러하듯 수고와 노역, 피로와 곤경, 슬픔과 땀을 동반할 수 없었고, 도리어 그의 휴식과 즐거움을 위한 것이었다. 다만 본성으로 남겨져 기술로 개량되어야 할 것이 무엇이며 아담이 할 일이 무엇이었는지는 말하기 쉽지 않다. 당시에는 밭갈이나 씨뿌리기나 심기나 물주기가 필요 없었으니, 하나님이 모든 나무를 보기에 아름답고 먹기에 좋게 그곳에서 자라게 하셨고, 강이 그곳을 가로질러 흘러 그것을 적셨기 때문이다. 그래서 앞서 언급한 유대 문헌(u)에서는 동산에서 그의 일이 율법의 말씀을 연구하고 생명나무의 길을 지키며 준행하는 것 외에 다른 것이 아니었다고 말한다. 그리고 요나단과 예루살렘의 타르굼이 이에 동의한다. "그가 그를 에덴 동산에 두어 율법을 섬기고 그 계명들을 지키게 하셨다." 그리고 다른 문헌(w)에서는 이렇게 말한다. "하나님이 아담에게 율법을 가져오셨고(욥 28:27), '그를 에덴 동산에 두셨으니' 곧 율법의 동산이라. '그것을 다스리게'(to dress it) 하셨으니 율법의 긍정적 계명을 행하게 하심이요, '그것을 지키게'(to keep it) 하셨으니 부정적 계명을 지키게 하심이라." 다만 아벤 에스라는 이 섬김을 동산에 물을 주고 들짐승이 그리로 들어오지 못하게 지키는 것으로 해석한다. 그리고 참으로 이 말은 다스리다(to dress)뿐 아니라 갈다(to till)로도 옮길 수 있으니, 창 3:23에서 그러하며 에인스워스(Ainsworth)도 여기서 그렇게 한다. 그래서 밀턴(Milton)(x)도 그렇게 표현한다. 그리고 어떤 이들은 아담이 동산에 머물렀더라면 심고 씨를 뿌렸을 것이라고 생각하였다. (t) Pirke Eliezer, c. 2. fol. 72. 2. (u) Pirke Eliezer, c. 2. fol. 72. 2. (w) Tikkune Zohar, correct. 54. fol. 91. 2. (x) Paradise Lost, B. 8. l. 320.
여호와 하나님이 동방의 에덴에 동산을 창설하시고. 혹은 "이미 창설하셨고"(m)이니, 이는 사람이 형성된 후가 아니라 그 전에 행해진 것이다. 그래서 "동방의"로 번역된 단어를 어떤 이들은 "먼저(before)"(n)로 옮긴다. 그 분명한 뜻은 하나님께서 사람을 지으시기 전에, 곧 모든 채소와 식물과 나무가 땅에서 산출된 셋째 날에 동산을 이미 창설하셨다는 것이다. 온 세상은 타락 이후 지금의 모습과 비교할 때 하나의 동산과도 같았다. 그렇다면 나머지로부터 분리되고 구별되었으며 하나님의 더욱 직접적인 식재(植栽)였던—그래서 여호와의 동산이라 불리는(창 13:10)—이 한 뙈기 땅, 이 동산은 얼마나 더 그러하였겠는가? 플라톤(Plato)(o)은 이것을 "유피테르의 동산"이라 부른다. 이 동산은 에덴 땅에 창설되었는데, 아마도 매우 즐겁고 기쁜 지방이었기에 그렇게 불렸을 것이다. 그것이 정확히 어디에 있었는지 확실하지도 알 수도 없으나, 메소포타미아의 일부였던 듯하다. 이는 그곳이 그 지방에 있던 하란(Haran)과 한 번 이상 함께 언급되며(왕하 19:12), 또한 티그리스와 유프라테스 강이 하나의 흐름이 되어 이 지방을 가로질러 흐르다가 이 동산에서 다시 갈라졌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곳의 땅은 헤로도토스(Herodotus)(p)가 말하듯 그가 본 가장 비옥한 곳이다. 그러므로 이 강들의 발원지가 있다고 하는 아르메니아보다 여기에 두는 편이 훨씬 나아 보인다. 그래서 투른포르(Tournefort)(q)는 그곳이 아르메니아의 세 교회 지방(곧 에치미아진) 곧 유프라테스와 아락세스의 발원지에서 약 20프랑스 리(league) 떨어졌고 파시스(Phasis)에서도 거의 그만큼 떨어진, 지극히 즐겁고 비옥한 지방에 있었다고 생각한다. 한 매우 박식한 사람(r)은 에덴 동산이 유대 땅 동편, 게네사렛 혹은 디베랴 호수와, 사해라 불리는 아스팔티테스 호수 곁에 있었다고 보며, 그 범위 안에 저 유명한 골짜기 곧 큰 평지와 여리고 평지, 갈릴리의 큰 부분, 게네사렛에서 소돔 지방에 이르기까지 요단이 곁을 흐르는 그 온 지역을 포함시킨다. 그리고 그는 요단 강을 "에덴의 강"으로 보아 거기서 요단이라는 이름이 나왔다고 하며, 게네사렛은 "간사르(Gansar)" 곧 군주의 동산, 즉 온 인류의 군주인 아담의 동산인 것처럼 해석한다. 그는 그곳의 위치와 즐겁고 비옥함, 여리고의 향유, 그곳에서 자라던 다른 향기로운 식물들, 이른바 낙원의 사과들을 근거로 든다. 그리고 이 지방이 동산과 과수원으로 풍성하였음은 인정해야 한다. 이는 유대인의 미슈나(Misnah)에 언급되어 있는데, 주석자들(s)은 이곳이 이스라엘 땅의 한 지방으로 빼어난 열매를 산출하는 동산과 과수원이 많았다고 말한다. 그리고 게네사렛의 열매는 탈무드(Talmud)(t)에서 지극히 단 것으로 일컬어진다. 그리고 이는 요세푸스(u)가 그곳에 대해 주는 기술과 일치하니, 곧 그곳은 "본성과 좋음에 있어 놀라우며, 그 비옥함으로 인하여 어떤 식물도 거부하지 않는다. 모든 것이 여기 심긴다. 공기의 기질이 서로 다른 것들에 어울린다. 여기에는 호두와 더 많은 겨울 열매가 자라고, 저기에는 열기로 자라는 종려나무가 있으며, 그 근처에는 더 부드러운 공기를 요하는 무화과와 감람나무가 있다. … 그것은 갖가지 종류의 사과를 믿을 수 없을 만큼 산출할 뿐 아니라 오래 보존하며, 참으로 가장 빼어난 열매들이다. 포도와 무화과는 끊임없이 열 달 동안, 다른 열매는 일 년 내내 공급하며, 그것들과 함께 묵어 간다." 그리고 더 나아가 관찰할 만한 것은, 유대 랍비들이 왜 그곳이 게네사르(Genesar)라 불리느냐고 묻는데, 그 답은 "군주들의 동산"이기 때문이니, 곧 그 한가운데 동산을 가진 왕들이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또 다른 이유가 주어지는데, 그것이 납달리에게 속하여 그 한가운데 한 몫이 있었기 때문이라는 것이니, "납달리의 천 군주"라 한 대로이다. 대상 12:34.(w) 그리고 주목할 만한 것은, 스트라보(Strabo)가 이 지역 안에 있던 여리고를 "향유의 낙원"(x)이라 부른다는 점이며, 거기서 그리고 그 근처에서 디오도로스 시켈로스(Diodorus Siculus)(y)와 유스티누스(Justin)(z)가 전하듯 이 향료 식물이 자랐고 다른 어디에도 없었으니, 세상 어느 다른 곳에서도 찾을 수 없었다. 그리고 성경에서 드러나듯, 요단 평지가 에덴 동산이 아니었다 해도 "여호와의 동산 같았다"고 하니(창 13:10), 만일 "카프(caph)" 곧 "~같이"가 때때로 그러하듯 비유의 표지가 아니라 실체의 표지라면, 이는 그곳이 바로 그곳임을 증명한다. 그리고 위의 박식한 저술가는 이를 비교적(comparative)이 아니라 추론적(illative)으로 보아, 그곳이 여호와의 동산이었기에 그토록 잘 물을 받았음을 보여 주는 이유로 받아들인다. 그리고 유대인들은 이에 대해 어떤 관념을 가지고 있으니, 에덴 동산이 이스라엘 땅에 있다면 벧샨(Bethshean)이 그 문 곧 입구라고 말한다. 주석(gloss)이 그 이유를 대니, 그 열매가 다른 어느 것보다 달았기 때문이며, 이곳은 앞서 언급한 큰 평지의 입구 가까이에 있었고, 요세푸스가 말하듯(b) 그 앞에 이곳이 있었다. 그리고 에덴 동산이 그 부근에 있었다면, 첫 아담이 처음 거하고 죄를 지어 타락한 곳에 둘째 아담이신 그리스도께서 자주 계셨음을 관찰할 수 있다. 여기서 그는 많이 교제하시고 자기 교훈을 가르치시며 자기 이적을 행하셨고, 심지어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신 후에도 여기 나타나셨다. 그러나 이곳에 관한 사람들의 견해는 매우 많아서, 온 세상에 이런저런 이가 에덴 동산을 두지 않은 지방이 거의 없으며, 어떤 이들은 심지어 땅 밖의 여덟째 천구(sphere)에 그 자리를 정하기도 하였다. 그런 동산이 어딘가에 분명히 있었으며, 그것은 "동방에" 두어졌다고 하니, 곧 에덴 지방의 동편이거나(창 4:16을 보라), 모세가 이를 기록할 때 있던 광야의 동편이거나, 메소포타미아가 그러했듯 유대의 동편이다. 그리고 이 동산이 위의 박식한 사람이 그곳에 배정한 대로 유대에 있었다면, 그 지방의 동편에 있었다. 민 32:19를 보라. 이 동산은 땅 위의 그리스도의 교회의 표상이거나—그것은 둘러싸인 동산으로 신적 권능에 둘러싸이고 신적 은혜로 구별되며, 세상에 비하면 작은 뙈기이고, 여호와의 식재이며 그의 소유이고, 그의 백성에게 큰 영적 즐거움과 기쁨을 누리는 에덴이다—혹은 저세상에서 성도들의 행복의 처소와 상태의 표상이니, 이에 빗대어 흔히 낙원(paradise)이라 불리며(눅 23:43), 그것은 하나님의 식재이므로 하나님의 낙원이라 불리고, 영원한 즐거움이 있는 에덴이다. 그리고 이것은 유대인들이 에덴 동산 곧 낙원이 세상이 있기 전에 창조되었다고 말할 때(c) 뜻하는 바인 듯한데, 이는 그리스도께서 다른 말로 그에 관해 말씀하신 것과 다르지 않다. 마 25:34. 그 지으신 사람을 거기 두시고. 동산을 창설하시자마자가 아니라 사람을 지으시자마자이다. 이로부터 사람이 동산 밖에서 지어져 형성된 곳에서 옮겨져 그 안에 두어졌다고 흔히 결론짓는다. 어떤 이들은 그곳이 다메섹 근처라고 한다. 그러나 그곳이 어디였든, 동산에서 멀지 않았음이 가장 그럴 법하다. 다만 그가 동산 밖에서 지어졌다고 상정할 필요는 없어 보인다. 그를 거기 두셨다는 것은 그를 거기 있도록 정하고 명하셨으며, 앞서 언급한 목적과 용도를 위하여 그를 거기 고정하고 정착시키셨다는 뜻일 수 있기 때문이다. 창 2:15를 보라. (노아 홍수의 전 지구적 파괴 이후, 오늘날 에덴 동산의 위치를 어느 정도의 확실성으로도 결정할 수 있을지는 의심스럽다. 편집자 주.) (m) "plantaverat", V. L. Vatablus, Piscator, Pareus, Drusius, Cartwright; "ornaverat plantis", Junius & Tremellius. (n) "a principio", V. L. so Onkelos; "antes vel antequam", same in Fagius, Cartwright. (o) In Symposio, apud Euseb. praepar. Evangel. l. 12. c. 11. p. 584. (p) Clio sive, l. 1. c. 193. (q) Voyage to the Levant, vol. 3. p. 161, 162. (r) Nichol. Abrami Pharus Vet. Test. l. 2. c. 16. p. 56. So Texelius (Phoenix, l. 3. c. 7. sect. 7.) takes it to be in the land of Promise, not far from the Dead sea, or sea of Sodom, and in the country about Jordan; and of the same opinion is Heidegger (Hist. Patriarch. Exerc. 4. sect. 42. p. 15.) (s) Maimon. & Bartenora in Misn. Maaserot, c. 3. sect. 7. (t) T. Bab. Beracot, fol. 44. 1. Erubin, fol. 30. 1. & Pesachim, fol. 8. 2. (u) De Bello Jud. l. 3. c. 9. sect. 8. (w) Aruch in voce fol. 37. 1. (x) Geograph. l. 16. p. 525. (y) Bibliothec. l. 19. p. 734. (z) E Trogo, l. 36. c. 3. (a) T. Bab. Erubin, fol. 19. 1. (b) Antiqu. l. 12. c. 8. sect. 5. 1 Maccab. v. 52. (c) T. Bab. Pesachim, fol. 54. 1. Nedarim, fol. 39.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