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무엘
인물이름의 뜻: 하나님이 들으심
한나의 기도로 태어나 주께 바쳐진 선지자요 사사로서, 사울과 다윗에게 기름을 부어 왕정 시대를 열었다.
하나님이 들으심. 그의 출생과 관련된 특별한 정황은 삼상 1:20에 기록되어 있다. 엘가나의 두 아내 중 하나인 한나는 실로에 올라가 여호와 앞에 예배하며, 자기가 아들의 어머니가 되게 해 달라고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하였다. 그녀의 기도는 은혜로이 응답되었고, 아이가 젖을 뗀 후 그녀는 그를 실로로 데려가 영원한 나실인으로 주께 바쳤다(1:23-2:11). 여기서 그의 육신의 필요와 양육은 성막에서 섬기던 여인들이 돌보았고, 엘리는 그의 종교적 교육을 맡았다. 이렇게 그의 생애에서 아마도 십이 년이 지나갔다. "아이 사무엘이 점점 자라매 여호와와 사람들에게 은총을 더욱 받더라"(2:26; 눅 2:52 비교). 그때는 이스라엘에 큰 타락이 점점 자라던 시기였다(삿 21:19-21; 삼상 2:12-17, 22). 근래에 수와 세력이 크게 늘어난 블레셋 사람들은 사실상 그 땅의 주인이 되어 백성을 복종 아래 두었다(삼상 10:5; 13:3).
이때 하나님께서 이 경건한 아이에게 새로운 말씀을 주시기 시작하셨다. 밤에 신비한 음성이 그의 이름을 부르며 그에게 임하였고, 엘리의 가르침을 받아 그는 "여호와여 말씀하옵소서 주의 종이 듣겠나이다" 하고 대답하였다. 여호와께로부터 온 그 메시지는 엘리와 그의 방탕한 아들들에 대한 화와 멸망의 말씀이었다. 사무엘이 그것을 다 엘리에게 전하니, 그 무서운 책망(삼상 3:11-18)에 대한 엘리의 유일한 대답은 "이는 여호와시니 선하신 대로 하실 것이니라"였다. 이는 약한 인물의 수동적 복종이었으며, 그의 경우에는 가장 높은 신뢰와 믿음의 표현은 아니었다. 이제 여호와께서는 여러 모양으로 사무엘에게 자신을 나타내셨고, 하나님께 부르심을 받아 선지자의 직분을 맡은 자로서 그의 명성과 영향력은 온 땅에 더해 갔다. 이제 하나님 나라 역사에 새로운 시대가 시작되었다.
블레셋의 멍에는 무거웠고, 백성은 널리 퍼진 압제 아래 신음하다가 갑자기 일어나 반란을 일으켜 "블레셋 사람과 싸우려고 나갔다." 에벤에셀 근처 아벡에서 격렬하고 참담한 전투가 벌어졌다(삼상 4:1, 2). 이스라엘은 패하여 사천 명이 "전쟁터에서" 죽었다. 백성의 지도자들은 여호와의 임재의 상징인 언약궤를 함께 가져감으로 이 큰 패배를 만회하려 하였다. 그래서 그들은 사무엘과 의논하지 않고 그것을 실로에서 아벡 근처 진영으로 가져왔다. 자기들 가운데 있는 궤를 보고 백성이 "큰 소리로 외치니 땅이 울렸다." 두 번째 전투가 벌어졌고, 블레셋 사람이 또다시 이스라엘을 이겨 진영을 점령하고 삼만 명을 죽였으며 거룩한 궤를 빼앗았다. 이 참담한 전투의 소식은 곧 실로에 전해졌고, 나이 든 엘리는 하나님의 궤를 빼앗겼다는 말을 듣자 성소 문 옆 자기 자리에서 뒤로 넘어져 목이 부러져 죽었다. 성막과 그 기구들은 아마 당시 약 스무 살이던 사무엘의 권고로 실로에서 어떤 안전한 곳으로 옮겨졌고, 마침내 놉으로 옮겨져 여러 해 동안 거기 있었다(21:1).
블레셋 사람은 그 승세를 몰아 실로로 진군하여 그곳을 약탈하고 파괴하였다(렘 7:12; 시 78:59 비교). 이는 이스라엘 역사에서 큰 전환점이었다. 아벡에서의 이 참담한 전투 이후 이십 년 동안 온 땅은 블레셋의 압제 아래 놓였다. 이 모든 암울한 세월 동안 사무엘은 그 땅의 영적 능력이었다. 그가 거하던 고향 라마에서부터 그의 영향력은 사방으로 백성 가운데 퍼져 나갔다. 그는 지칠 줄 모르는 열심으로 이곳저곳을 오르내리며 백성을 책망하고 꾸짖고 권면하여, 그들 안에 자기 죄에 대한 자각을 일깨우고 회개로 이끌고자 애썼다. 그의 수고는 "온 이스라엘 족속이 여호와를 사모하니라" 할 만큼 성공을 거두었다. 사무엘은 백성을 미스바로 불러 모았는데, 그곳은 중앙 팔레스타인에서 가장 높은 언덕 중 하나로, 백성은 거기서 금식하며 기도하였고, 그의 지도 아래 이제 온 군대를 미스바로 진군시켜 이스라엘을 단번에 짓밟으려는 블레셋 사람과의 큰 전쟁을 준비하였다. 사무엘의 간구로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위해 개입하셨다. 사무엘 자신이 그들의 지도자였는데, 이는 그가 전쟁에서 지도자로 행한 유일한 경우였다. 블레셋 사람은 완전히 무너졌다. 그들은 이스라엘 군대 앞에서 두려워 도망하였고 큰 살육이 뒤따랐다. 아마 기원전 1095년경에 벌어진 이 전투로 사십 년에 걸친 블레셋의 압제가 끝났다. 이 큰 구원을 기념하고 베푸신 도우심에 대한 감사의 표로, 사무엘은 전쟁터에 큰 돌을 세우고 "여호와께서 여기까지 우리를 도우셨다" 하며 그것을 "에벤에셀"이라 불렀다(삼상 7:1-12). 이곳은 이십 년 전 하나님의 궤를 빼앗겼을 때 이스라엘이 큰 패배를 당했던 바로 그 자리였다.
블레셋 사람에 대한 이 승리에 이어 이스라엘에게 오랜 평화의 시기가 따라왔으며(삼상 7:13, 14), 그동안 사무엘은 사사의 직무를 행하여 "해마다 순회하며" 고향 라마에서 벧엘로, 거기서 길갈로(요단 골짜기의 길갈이 아니라 에발과 그리심 서쪽에 있던 길갈), 다시 미스바를 거쳐 라마로 돌아왔다. 그는 실로에 정규 예배를 세우고 거기에 제단을 쌓았으며, 라마에서는 젊은이들의 무리를 그 주위에 모아 선지자 학교를 세웠다. 이렇게 시작되어 이후 기브아, 벧엘, 길갈, 여리고에도 세워진 선지자 학교는, 점점 커지는 부패 가운데서 순수한 신앙을 지킴으로 백성의 민족적 성품과 역사에 중요한 영향을 끼쳤다. 그것은 유대 공동체의 끝까지 이어졌다.
이제 여러 해가 지나가는 동안 사무엘은 자기 사사 직무를 행하며 사사로운 일과 공적인 일 모든 면에서 백성의 친구요 조언자가 되었다. 그는 개혁자일 뿐 아니라 위대한 정치가였으며, 모든 사람이 그를 "선견자", 곧 여호와의 선지자로 우러러보았다. 이 시기가 끝날 무렵 그가 이제 노인이 되었을 때, 이스라엘 장로들이 라마로 그에게 나아왔다(삼상 8:4, 5, 19-22). 그들은 사무엘이 자기 보조자로 사사 직무를 맡겨 블레셋 접경의 브엘세바에 두었던 그의 아들들의 비행과, 또한 위협적인 암몬 사람의 침략으로 나라가 처한 큰 위험을 느끼고, 자기들 위에 왕을 세워 줄 것을 요구하였다. 이 요청은 사무엘에게 매우 못마땅한 것이었다. 그는 그들을 책망하며 그러한 일의 결과를 경고하였다. 그러나 마침내 그 일을 하나님께 아뢴 후, 그는 그들의 소원에 응하여 사울에게 기름을 부어 그들의 왕으로 삼았다(11:15). 공적인 생활에서 물러나기 전에 그는 백성의 모임을 길갈에 소집하고(12장), 거기서 사사요 선지자로서의 백성에 대한 자기 관계를 두고 그들에게 엄숙히 고하였다.
그는 남은 생애를 라마에서 은퇴하여 보냈으며, 다만 특별한 경우에 가끔 다시 공적으로 나타나(삼상 13, 15) 사울 왕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였다. 이제 나라에 닥친 많은 악을 슬퍼하던 중, 그는 갑자기 부르심을 받아(16장) 베들레헴으로 가서 사울 대신 이스라엘의 왕이 될 이새의 아들 다윗에게 기름을 부었다. 그 후 그의 죽음 때까지 그에 관해 알려진 바는 거의 없는데, 그의 죽음은 라마에서 아마도 그가 약 여든 살 되었을 때 일어났다. "온 이스라엘 무리가 모여 그를 위하여 슬피 울며 라마 그의 집에서 그를 장사하니라"(25:1). 이는 집 자체가 아니라 그 집의 뜰이나 정원에 장사한 것이었다(왕하 21:18; 대하 33:20; 왕상 2:34; 요 19:41 비교).
사무엘의 하나님께 대한 헌신과, 하나님께서 그를 특별히 돌보신 일은 렘 15:1과 시 99:6에 언급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