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전, 둘째 성전(스룹바벨 성전)

지명

포로 귀환 후 스룹바벨과 대제사장 예수아의 지도 아래 재건된 성전으로, 주전 516년에 완공되었다.

포로에서 돌아온 후, 스룹바벨과 대제사장 예수아의 지도 아래 오래 황폐했던 나라를 재조직하기 위한 준비가 거의 즉시 이루어졌다. 어린아이를 포함하여 4만 2,360명의 무리를 이룬 순례자들은 유프라테스 강변에서 예루살렘까지 약 넉 달의 길고 고달픈 여정을 마쳤는데, 그 모든 행보에 강한 신앙적 충동이 함께하였으므로, 그들의 첫 관심사 중 하나는 성전을 재건하여 그들의 옛 예배를 회복하는 것이었다. 총독 스룹바벨이 친히 금 다릭 1,000개(아마 약 6,000달러)를 기부하는 등 그 밖의 예물로 후한 모범을 보이며 권하자, 백성은 큰 열심으로 그들의 예물을 거룩한 곳간에 쏟아 부었다(스 2장). 먼저 그들은 옛적에 서 있던 바로 그 자리에 여호와의 제단을 세우고 봉헌하였으며, 그 후 옛 성전 자리를 차지하고 있던 불탄 잔해 더미를 치웠다. 그리고 둘째 해 둘째 달(주전 535년)에 큰 공중의 흥분과 기쁨 가운데(시 116; 117; 118편) 둘째 성전의 기초가 놓였다. 이 큰 운동에 폭넓은 관심이 쏠렸으나, 구경꾼들은 엇갈린 심정으로 그것을 바라보았다(학 2:3; 슥 4:10). 사마리아인들은 그 일에 협력하겠다고 제안하였다. 그러나 스룹바벨과 예수아와 장로들은 그러한 모든 협력을 거절하였으니, 유다는 도움 없이 성전을 지어야 했다. 곧 유대인들에 관한 악한 보고가 퍼졌다. 사마리아인들은 그들의 "계획을 좌절시키려"(스 4:5) 하였고, 엑바타나와 수사로 사자를 보냈으며, 그 결과 공사는 중단되었다. 이로부터 7년 후 고레스가 애굽에서 동방으로 돌아오는 길에 시리아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어 불명예스럽게 죽었고, 그의 아들 캄비세스(주전 529-522년)가 뒤를 이었는데, 그가 죽자 사기꾼인 "가짜 스메르디스"가 약 7-8개월 동안 왕위에 올랐고, 그 후 다리오 히스타스페스가 왕이 되었다(주전 522년). 이 군주 둘째 해에 성전 재건 공사가 재개되어 완공에 이르렀으니(스 5:6-17; 6:1-15), 선지자 학개와 스가랴의 간절한 권면과 책망에 자극을 받았다. 그것은 주전 516년 봄, 포로 귀환 후 20년 만에 봉헌할 준비가 되었다.

이 둘째 성전에는 궤, 우림과 둠밈, 거룩한 기름, 거룩한 불, 돌판, 만나를 담은 항아리, 아론의 지팡이가 없었다. 성막에서처럼 그 안에는 성소를 위한 금 등잔대 하나, 진설병 상 하나, 그리고 분향단만이 있었고, 금 향로들과, 솔로몬 성전에 속하였다가 바벨론으로 옮겨졌으나 고레스에 의해 돌려진 많은 금 그릇들이 있었다(스 1:7-11).

이 둘째 성전은 또한 첫째 성전과 달랐는데, 후자(첫째 성전)에는 "여호와의 뜰에 심긴 많은 나무들"이 있었으나 전자(둘째 성전)에는 없었다. 둘째 성전에는 또한 처음으로, 바깥뜰의 일부로서, 유대교의 율법에 매이지는 않았으나 여호와를 예배하는 개종자들을 위한 공간이 마련되었다.

성전은 완공되었을 때 온 백성의 큰 기쁨 가운데 봉헌되었으나(스 6:16), 유대인들이 더 이상 독립된 백성이 아니라 외세에 예속되어 있다는 외적 증거가 없지 않았다.

학 2:9은 개정역(R.V.)에서 "이 성전의 나중 영광이 이전 영광보다 크리라"로 바르게 번역되었으니, 흠정역(A.V.)의 "이 나중 성전의 영광" 등이 아니다. 성전은 그 존재의 여러 시기에 걸쳐 단 하나의 집, 곧 유일한 하나님의 집으로 여겨진다(학 2:3 참조). 여기 예언된 영광은 영적 영광이지 물질적 화려함이 아니다. "그리스도 자신이 이 땅에 사시는 동안 시온 산의 성전에 몸으로 임재하시고, 지금은 교회에 영적으로 임재하시며, 그분이 곧 성전이신 거룩한 성, 하늘의 예루살렘에 임재하셔서 영적 예배와 헌신을 불러일으키시니, 이것이 여기 예언된 영광이다"(페로운).

대표/관련 구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