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죄

신학

그리스도의 죽으심으로 이루어진 하나님과의 화목 그 자체를 가리키며, 죄에 대한 만족과 그로 인한 화해를 뜻한다.

이 말은 로마서 5:11을 제외하고는 신약성경의 흠정역에 나오지 않는데, 그곳에서도 개정역은 "화목(reconciliation)"이라는 말을 쓴다. 구약성경에서는 자주 나온다.

이 말의 뜻은 단순히 '하나 됨(at-one-ment)', 곧 하나가 되거나 화목하게 된 상태이며, 따라서 속죄는 화목이다. 그래서 이 말은 그리스도의 죽으심에서 흘러나오는 효과를 가리키는 데 쓰인다.

그러나 이 말은 또한 이 화목을 이루어 내는 수단, 곧 그리스도의 죽으심 자체를 가리키는 데에도 쓰인다. 그렇게 쓰일 때에는 만족(satisfaction)을 뜻하며, 이 의미에서 누군가를 위해 속죄한다는 것은 그의 죄과에 대해 만족을 이루는 것이고(출 32:30; 레 4:26; 5:16; 민 6:11), 그 사람에 관하여는 그를 위하여 하나님을 화목하게 하고 진노를 누그러뜨리는 것이다.

그리스도의 속죄라 할 때 우리는 보통 그분이 우리 죄를 속하신 사역을 뜻한다. 그러나 성경의 용법에서 이 말은 화목 자체를 가리키지, 그것을 이루는 수단을 가리키지 않는다. 그리스도의 구원 사역을 말할 때에는 종교개혁 신학자들이 쓴 "만족(satisfaction)"이라는 말이 "속죄(atonement)"라는 말보다 낫다. 그리스도의 만족은 그분이 죄인들을 대신하여, 죄인들을 위하여, 하나님의 율법과 공의의 요구를 충족시키려고 행하신 모든 것이다. 그리스도의 사역은 고난과 순종으로 이루어졌으며, 이는 대리적이었다. 곧 단지 우리의 유익을 위함이 아니라, 우리의 대리자 또는 대신자의 고난과 순종으로서 우리를 대신한 것이었다. 우리의 죄책은 우리의 대리자가 짊어진 형벌로 속하여졌고, 이로써 하나님은 호의를 베푸시게 되었다. 곧 이제 그분의 공의와 일치하게 범죄자들을 향한 그분의 사랑을 나타내실 수 있게 된 것이다. 죄를 위한 속함(expiation)이 이루어졌으니, 곧 죄가 가려졌다. 그것을 가리는 수단은 대리적 만족이며, 그것이 가려진 결과가 곧 속죄 또는 화목이다. 속죄한다는 것은, 그로 인해 소외가 그치고 화목이 이루어지는 그 일을 행하는 것이다. 그리스도의 중보 사역과 고난은 하나님과의 화목의 근거 또는 작용인이다. 그것은 하나님과 사람 사이의 어그러진 관계를 바로잡아, 죄로 인해 그들의 교제와 화합에 놓인 장애물을 제거한다. 이 화목은 상호적이다. 곧 죄인이 하나님을 향한 화목일 뿐 아니라, 무엇보다도 하나님이 죄인을 향한 화목이며, 하나님 자신이 마련하신 속죄제로 이루어졌다. 그리하여 그분의 다른 속성들과 일치하게 그분의 사랑이 사람들에게 모든 충만한 복으로 흘러나올 수 있게 되었다. 성경 전반에 여러 형태로 우리에게 제시되는 일차적 개념은, 그리스도의 죽으심이 하나님의 율법과 공의에 바쳐진 무한한 가치의 만족이며, 사람이 마땅히 받아야 할 바로 그 형벌을 대신하여 하나님께 받아들여졌다는 것이다. 또한 속죄가 죄책 있는 사람들을 향한 하나님의 사랑의 원인이 아니라 그 결과임을 늘 명심해야 한다(요 3:16; 롬 3:24, 25; 엡 1:7; 요일 1:9; 4:9). 속죄는 또한 절대적 의미가 아니라 상대적 의미에서 필연적이라 볼 수 있다. 곧 사람이 구원받으려면, 하나님이 고안하여 이루신 이 길 외에 다른 길이 없다는 것이다(출 34:7; 수 24:19; 시 5:4; 7:11; 나 1:2, 6; 롬 3:5). 이것이 하나님의 계획이며 분명히 계시되었으니, 우리가 알기에 그것으로 족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