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속
신학잃어버렸던 것을 속전을 치러 도로 사는 것으로, 신약은 그리스도의 고난을 속전의 사상으로 표현한다.
잃어버렸던 어떤 것을 속전을 치름으로 도로 사는 것이다. 이렇게 번역되는 헬라어 단어는 '아폴뤼트로시스'인데, 성경에 아홉 번 나오며 언제나 속전 또는 치러진 값의 사상을 지닌다. 곧 '뤼트론'에 의한 구속이다(마 20:28; 막 10:45 참조). 구약 칠십인역에는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에서 '뤼트론'을 사용한 사례들이 있으며(레 19:20; 25:51; 출 21:30; 민 35:31, 32; 사 45:13; 잠 6:35), 사람과 하나님의 관계에서도 같은 뜻으로 쓰인 사례가 있다(민 3:49; 18:15).
신약에는 그리스도의 고난을 속전 또는 값의 사상으로 표현하고, 그로써 확보된 결과를 사들임 또는 구속으로 표현하는 구절이 많다(행 20:28; 고전 6:19, 20; 갈 3:13; 4:4, 5; 엡 1:7; 골 1:14; 딤전 2:5, 6; 딛 2:14; 히 9:12; 벧전 1:18, 19; 계 5:9 비교). 이 모든 본문은 그 가리키는 바가 다양하더라도 그 가운데 흐르는 사상은 우리의 구속을 위해 치러진 값의 사상이다. 우리를 향한 빚은 단순히 탕감된 것으로 여겨지지 않고 온전히 갚아진다. 그리스도께서 그들을 위해 내어주신 그의 피 또는 생명은, 그의 백성을 죄의 종노릇과 그 형벌의 결과에서 건져 내는 일을 확보하는 '속전'이다. '그리스도께서 단지 능력의 발휘로도, 그의 교훈으로도, 그의 본보기로도, 그가 끼치신 도덕적 감화로도, 자연적이든 신비적이든 그의 백성에게 미친 어떤 주관적 영향으로도 우리를 구원하시는 것이 아니라, 신적 공의에 대한 만족으로서, 죄에 대한 속죄로서, 율법의 저주와 권세로부터의 속전으로서, 그리하여 죄인을 향해 자비를 베푸시는 일을 자기의 완전하심과 일치하게 하심으로써 우리를 하나님과 화목하게 하심으로 구원하신다'는 것이 성경의 분명한 교리이다(하지의 조직신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