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
종교란 무엇입니까? 그리고 그리스도교적 의미에서 신학이란 무엇입니까?
종교는 가장 일반적인 의미에서 사람이 하나님과 맺고 있는 관계들의 총합이며, 그 관계들에 상응하거나 그 관계들에서 생겨나는 진리와 경험과 행위와 제도를 포함한다.
신학은 가장 일반적인 의미에서 종교에 관한 학문이다.
그리스도교는 그리스도교 성경 안에 초자연적으로 제시된 계시에 의해 규정되는 진리와 경험과 행위와 제도의 체계이다. 그리스도교 신학은 그 성경들을 학문적으로 확정하고 해석하며 변호하는 일이고, 또한 그 성경이 계시하는 진리들이 모든 시대의 그리스도인들에게 어떻게 이해되었으며 그 성경이 부과하는 의무들이 어떻게 수행되었는지를 다루는 역사까지 포함한다.
1.2
신학 백과란 무엇입니까? 그리고 신학 방법론이란 무엇입니까?
신학 백과는 그리스도교 성경 안에 담긴 초자연적 계시의 내용을 발견하고 밝히며 변호하는 데 바쳐진 특수 학문들의 전체 범위를 학생에게 제시한다. 또한 그 학문들이 실제 발생과 가장 깊은 본성에 의해 규정되는 유기적 관계 안에서 드러나도록 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신학 방법론은 신학적 방법에 관한 학문이다. 인간 탐구의 각 분야가 자기에게 고유한 처리 방식을 요구하고, 각 일반 분야의 세부 분과도 자기에게 특수한 처리 방식의 수정을 요구하듯이, 신학 방법론은 신학 여러 학문을 추구하는 참된 방법, 곧 일반적 방법과 특수한 방법을 학문적으로 확정하게 한다.
1.3
모든 신학 학문을 학문적으로 배열하는 일은 어느 정도까지 가능합니까? 그리고 왜 그 시도가 바람직합니까?
그러한 배열은 이 학문들 자체가 최종적이고 절대적인 형태에 가까워지는 만큼만 완전에 가까워질 수 있다. 현재로서는 이런 모든 시도가 이생의 지식 상태에서는 도달할 수 없는 이상에 대한 어느 정도의 근사치일 수밖에 없다.
이 책이 취하는 관점은 복음주의적이며, 특별히 칼빈주의적 또는 아우구스티누스주의적 관점이다. 그것은 다음 기본 원리들을 전제한다. 첫째, 영감된 성경은 모든 종교 지식의 유일하고 무오한 표준이다. 둘째, 그리스도와 그의 사역은 모든 그리스도교 신학이 질서 있게 배열되는 중심이다. 셋째, 복음 안에서 밝혀진 구원은 초자연적이며 값없는 은혜에 속한다. 넷째, 모든 종교 지식은 실제적인 목적을 가진다.
신학 여러 학문을 이처럼 묶는 일의 유익은 분명하고 크다. 모든 진리의 관계는 그 본성에 의해 규정되므로, 그 관계들을 보여 주는 것은 곧 그 진리들의 본성을 드러내는 일이 된다.
1.4
모든 신학 학문이 답하려고 하며, 따라서 그 일반 학문의 여러 부문 배열을 결정하는 근본 질문들은 무엇입니까?
첫째, 하나님은 계시는가? 둘째, 하나님은 말씀하셨는가? 셋째, 하나님은 무엇을 말씀하셨는가? 넷째, 과거의 사람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어떻게 이해했으며, 그들의 인격과 제도 안에서 하나님의 뜻을 실제로 어떻게 구현했는가?
1.5
신학 학문 백과 안에서 인간 지식의 다른 분야들은 어떤 위치를 가져야 합니까?
하나님이 주신 초자연적 계시가 역사적 형태로 우리에게 왔기 때문에, 그 계시의 역사와 그리스도교 교회의 역사는 인간 역사 전체와 분리될 수 없다. 또한 모든 진리는 하나이므로, 계시된 진리와 의무는 인간 지식의 모든 분야 및 인간 사회의 제도들과 연결되어 있다.
그러므로 신학은 일반 학문과 완전히 떼어 놓을 수 없다. 신학 백과의 체계는 신학을 준비하고 보조하는 지식으로서 인간 지식의 각 분야를 어느 정도 포함해야 한다. 어떤 보조 학문들은 특정 신학 분과와 더 가까운 관련을 가지지만, 전체 신학을 섬기는 예비적·보조적 학문으로 함께 다루는 것이 유익하다.
1.6
제안된 신학 학문 배열의 주요 구분을 말해 보십시오.
제안된 배열은 먼저 신학 연구를 돕는 보조 학문들에서 시작한다. 이어서 변증학은 하나님이 계시는가와 하나님이 말씀하셨는가라는 질문에 답하는 분과로 자리 잡는다.
주해신학은 하나님의 계시의 정확한 말들을 확정하고 그 의미를 해석한다. 조직신학은 그 계시의 내용을 포괄적이고 자기 일관적인 체계로 전개하고, 그것을 밝히고 변호한다.
실천신학은 성경에 계시된 원리와 법을 교회의 계시 선포, 사람들을 실제적 순종으로 이끄는 일, 그리고 성경이 약속하는 복을 누리게 하는 일에 적용한다. 역사신학은 과거 모든 시대와 여러 민족 가운데서 계시의 이론적·실천적 요소가 교회의 믿음과 삶 속에서 실제로 어떻게 발전했는지를 연구한다.
1.7
신학 연구를 돕는 인간 지식의 주요 분야들을 말해 보십시오.
호지는 여러 보조 분야를 열거한다. 보편 역사는 모든 지식의 기초이며 조건이 되고, 신학 연구에는 특히 이집트, 바빌로니아, 앗수르, 그리스, 로마, 중세 및 근대 유럽의 역사가 중요하다. 넓은 의미의 고고학은 비문, 기념물, 동전, 예술 유물, 지리와 물리적 조건, 그리고 여러 민족의 정치적·종교적·사회적 제도와 관습을 해석한다.
민족학은 인류가 여러 인종과 민족으로 나뉘고 흩어진 과정을 연구하며, 그 기원과 관계, 신체적·지적·도덕적·종교적 성격의 차이를 살핀다. 비교문헌학은 언어와 방언의 관계와 기원을 추적하여 오래전 민족과 문명의 흔적을 밝힌다.
비교종교학은 여러 민족 종교의 역사, 신념, 정신, 제도, 실제적 성격을 비판적으로 연구한다. 또한 철학, 심리학, 미학, 자연과학, 통계학은 인간 이성, 의식, 아름다움과 예술, 피조 세계, 그리고 세계 속 인간 가족의 측정 가능한 상태를 밝혀 줌으로써 신학을 섬긴다.
1.8
변증학이라는 표제 아래에는 어떤 세부 사항들이 포함됩니까?
변증학은 두 질문, 곧 하나님이 계시는가와 하나님이 말씀하셨는가를 중심으로 구성된다. 먼저 그것은 하나님의 존재에 대한 증명을 포함한다. 하나님은 초월하시면서도 내재하시는 인격적 하나님으로서, 영원한 계획에 따라 만물을 창조하고 보존하며 다스리신다. 이 논의는 무신론, 범신론, 자연주의적 이신론, 유물론 같은 반유신론 체계들을 검토하고 반박하는 일도 포함한다.
또한 변증학은 자연신학을 포함한다. 이는 하나님이 지적이고 책임 있는 존재들과 어떤 관계를 맺으시는 도덕적 통치자인지, 그리고 자연의 빛으로 추적할 수 있는 하나님의 뜻과 목적, 인간의 의무와 운명에 관한 표지들을 살핀다.
마지막으로 변증학은 그리스도교의 증거들을 포함한다. 여기에는 종교 문제에서 이성을 바르게 사용하는 문제, 초자연적 계시의 가능성과 필요성과 개연성, 그리고 그러한 계시가 구약 선지자들과 신약 선지자들, 무엇보다 그리스도의 인격과 사역 안에서 실제로 주어졌다는 적극적 증명이 들어간다. 이 작업은 외적·내적, 역사적·이성적, 도덕적·영적, 자연적·초자연적, 이론적·실천적 증거를 살피고, 계시의 사실과 기록의 완전성을 공격하는 비판에 답하는 일을 요구한다.
1.9
주해신학에는 무엇이 포함됩니까?
주해신학은 “하나님이 무엇을 말씀하셨는가?”라는 질문에 답한다. 그것은 성경을 인간 언어로 기록되고 인간 경로를 통해 전달된 하나님의 말씀으로 해석하려 한다. 이를 위해 먼저 어떤 책들이 정경에 속하는지와 원저자들의 원본 글자가 정확히 무엇이었는지를 묻고, 이어서 그렇게 확정된 하나님의 말씀이 무엇을 뜻하는지를 묻는다.
호지는 이 표제 아래 일반 서론, 특별 서론, 본래적 주해를 둔다. 일반 서론은 성경 전체 또는 각 성경권 전체와 관련된 예비 지식을 다루며, 고등비평, 본문비평, 성경 문헌학, 성경 고고학, 해석학, 성경 영감, 해석사의 문제를 포함한다. 특별 서론은 각 성경책을 개별적으로 다루며, 방언, 저자, 저술 계기, 목적, 수용 과정을 살핀다.
본래적 주해는 앞선 예비 지식과 해석 규칙을 성경 본문이 놓인 본래 순서와 문맥에 적용하는 일이다. 호지는 또한 모형론, 구약 그리스도론, 성경신학, 예언 해석 원리도 주해신학과 연결된 특수 연구로 본다.
1.10
조직신학이라는 표제 아래에는 무엇이 포함됩니까?
조직신학은 성경이 믿음과 의무에 관해 가르치는 모든 것을 모아 하나의 일관된 체계로 제시한다. 그 방법은 주해의 결과에서 출발하는 귀납적 방법이다. 해석된 성경 구절들이 조직신학의 자료가 되며, 그 구절들은 그리스도의 인격과 사역을 중심으로 하는 체계 안에서 자기 관계와 자리를 드러낸다.
모든 진리는 하나이므로 조직신학은 계시된 진리가 물질과 심리의 참된 과학, 바른 사변철학, 도덕철학, 실제적 박애와 조화를 이룬다는 점도 밝혀야 한다. 호지는 여기에 세 큰 관심을 포함시킨다. 계시의 내용을 믿음과 의무의 완전한 체계로 구성하는 일, 교회 안에서 그 교리 구성 과정이 지나온 역사, 그리고 논쟁신학이다.
구성적 부분은 보통 신론, 인간론, 구원론, 그리스도교 윤리, 종말론, 교회론으로 배열된다. 교리사는 각 교리가 논쟁과 신앙고백을 통해 처음 나타나고 발전한 과정을 추적한다. 논쟁신학은 참된 교리 체계 전체와 그 세부 요소를 교회 안의 이단적 왜곡으로부터 변호한다.
1.11
실천신학이라는 표제 아래에는 무엇이 포함됩니까?
실천신학은 학문이면서 동시에 기술이다. 기술로서는 계시의 내용을 모든 사람 가운데 효과적으로 선포하고, 하나님의 지상 왕국을 보존하고 확장하며 세우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학문으로서는 그 일을 지배하는 계시된 원리와 법을 연구한다. 실천신학은 조직신학이 전개한 큰 원리들에 뿌리를 두며, 교회론은 두 분야가 만나는 공통 토대가 된다.
호지는 여기에 교회의 개념과 목적과 속성, 교회의 헌법과 행정, 변화하는 사회적·역사적 조건에 맞추어 교회 조직과 행정을 조정할 수 있는 재량의 범위를 포함시킨다. 또한 교회 회원권, 회원의 의무와 특권, 세례 받은 자녀와 교회의 관계, 그리고 비상직과 통상직을 포함한 교회 직분도 다룬다.
교회의 직분자는 교사, 예배 인도자, 치리자로 고찰된다. 따라서 교리문답 교육, 주일학교, 성스러운 수사학, 설교학, 그리스도교 문헌, 예전, 자유기도, 시편찬송, 교회음악, 장로, 목사, 당회, 노회, 대회, 총회가 논의된다. 실천신학은 또한 교회 통계, 청지기직과 사회·교회 경제, 신학교육, 국내선교, 교회와 국가의 관계, 그리스도인 시민의 의무, 문명과 도덕 개혁, 해외선교까지 다룬다.
1.12
역사신학이라는 표제 아래에는 무엇이 포함됩니까?
신학을 논리적으로 전개할 때에는 성경 해석과 계시된 진리와 의무의 체계적 구성이, 그것들이 교회 안에서 발전해 온 역사보다 앞선다. 그러나 실제 연구의 순서에서는 역사가 먼저 온다. 역사가 우리에게 성경을 전해 주고, 성경 본문을 확정하는 수단과 해석의 방법 및 결과를 제공하며, 교리가 발전해 온 신조와 신앙고백과 논쟁의 기록을 보존하기 때문이다.
역사신학은 성경사와 교회사로 나뉜다. 성경사는 주로 영감된 자료에서 나오며 신약 정경이 완성되는 시점까지 이어진다. 여기에는 족장 시대, 모세 시대, 예언자 시대, 구약과 신약 사이의 기간을 포함한 구약사와, 그리스도의 생애 및 사도들이 교회를 세운 일을 포함한 신약사가 들어간다.
교회사는 성경사가 끝나는 곳에서 시작해 현재까지 이어진다. 그것을 학문으로 수행하려면 지리, 연대기, 고대 유물, 통계, 일반 역사, 그리고 기념물과 문헌 자료에 대한 비판적 조사가 필요하다. 호지는 교회의 삶의 역사와 교회의 사상의 역사를 구분한다. 후자에는 교부학과 교부교리 연구, 그리스도교 고고학, 교리사, 그리고 신조와 신앙고백의 기원·권위·내용·비교를 다루는 상징학이 포함된다.
2.1
명목적 정의와 실질적 정의의 차이는 무엇이며, 하나님이라는 말의 참된 정의는 무엇입니까?
명목적 정의는 사용된 말의 뜻을 설명하는 것이고, 실질적 정의는 그 말이 가리키는 대상의 본질을 설명하는 것이다.
호지는 하나님이라는 말이 어떤 사람들에게는 비인격적 존재 근거나 알 수 없는 제일 원인을 뜻하는 데 쓰인다고 지적한다. 그러나 그리스도교적 사용에서, 그리고 오랜 세월 그리스도교 사상이 문명권 문헌에 미친 영향 속에서, 하나님이라는 말은 창조 세계와 구별되며 그 세계를 주권적으로 다스리시는 자존적이고 영원하며 절대적으로 완전한 자유로운 인격적 영을 뜻하게 되었다. 이런 존재를 부정하는 것은 그리스도교적 의미에서 하나님을 부정하는 것이다.
2.2
하나님에 대한 실질적 정의는 어떻게 구성될 수 있습니까?
하나님은 우리가 그분을 아는 만큼만 정의될 수 있다. 우리가 하나님을 알 수 있는 가능성은 사람이 하나님의 형상으로 창조되었다는 사실에 근거한다. 그러므로 하나님에 대한 모든 정의는 하나님과 지적 피조물 사이에 지식이 가능하게 하는 본질적 유사성이, 물론 피조물의 한계 안에서, 있음을 전제한다.
실질적 정의는 유와 종차를 제시하는 방식으로 구성된다. 유의 측면에서 하나님은 지적이고 인격적인 영이시다. 하나님을 하나님 되게 하는 종차의 측면에서 하나님은 그의 존재와 지혜와 능력과 거룩과, 그의 존재와 모순되지 않는 모든 완전성에서 무한하고 영원하며 불변하신다.
2.3
하나님 관념은 어느 정도까지 전통에 기인합니까?
호지는 완전한 그리스도교적 하나님 관념이 성경에 기록된 초자연적 계시를 통해서만 도달되었다고 인정한다. 역사적으로 영향력 있는 유신론적 종교들도 그 계시와 연결되어 있으며, 각 공동체가 하나님을 생각하는 구체적 형식과 연상은 조상에게서 물려받은 신학적 전통에 의해 형성된다.
그러나 하나님 관념은 단순히 권위나 전통의 산물이 아니다. 알려진 자연적 인간 조건 아래에서 사람들은 자기 영혼의 구조와 의식 경험, 그리고 외부 자연 안에 드러난 하나님의 존재를 자발적으로 인식한다. 이러한 보편적 인식은 그 증거가 어디에나 있으며 정상적으로 발달한 사람들에게 설득력을 가진다는 점을 보여 준다.
2.4
하나님 관념은 선천적입니까? 그리고 직관적 진리입니까?
하나님 관념은 아이가 태어날 때 이미 완성된 하나님 개념을 가지고 있다는 의미에서 선천적인 것이 아니다. 또한 단순히 자연적 조건 아래에서, 계시의 도움 없이 인간 정신이 신적 본성에 대한 충분한 개념에 도달할 수 있다는 의미도 아니다. 다만 인간 영혼의 구조적 능력이 자연적 조건 아래에서 사람들로 하여금 하나님을 존재의 궁극적 근거와 양심의 주로, 곧 영혼과 세계 안에 나타나시는 분으로 자발적으로 인식하게 한다는 의미에서는 선천적이라고 할 수 있다.
또한 하나님의 존재는 엄밀한 의미에서 필연적 진리를 직접 보는 직관은 아니다. 하나님을 인식하는 과정에는 직관적 요소들이 포함되지만, 하나님은 그의 일들을 통해 매개적으로 알려지며, 그의 임재와 활동을 인식하는 데에는 적어도 암묵적 추론이 들어 있다. 그럼에도 사람은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 받았기 때문에, 의식 특히 양심 안의 자기계시와 외부 세계의 특징들을 통해 하나님을 인식한다.
2.5
정상적인 의식 상태에서 모든 사람이 하나님의 존재를 자발적으로 인식한다면, 그 존재를 증명하는 형식적 논증의 가치는 무엇입니까? 그리고 일반적으로 사용되는 논증들은 무엇입니까?
형식적 논증은 하나님을 자발적으로 인식하는 일을 대신하지 않는다. 그 가치는 이미 그 자발적 인식 안에 들어 있는 정신 작용을 분석하고 학문적으로 검증하며, 회의론의 비판 앞에서 그 과정이 정당함을 변호하고, 다양한 증거에 주목하게 함으로써 그 인식을 깨우고 확증하는 데 있다.
호지는 이 논증들을 단순히 차례대로 이어지는 증명이 아니라 서로 수렴하는 논증들로 본다. 그것들은 하나의 유기적 전체를 이룬다. 우주론적 논증은 하나님을 제일 원인으로, 목적론적 논증은 우주의 질서와 적응을 통해 하나님을, 도덕적 논증은 인간의 도덕 의식과 역사 속 증거를 통해 하나님을, 성경적 논증은 성경에 기록된 현상과 초자연적 역사를 통해 하나님을, 선험적 논증은 무한하고 절대적인 하나님에 대한 이성의 증언을 제시한다.
2.6
우주론적 논증을 진술하십시오.
우주론적 논증은 변화에서 출발하여 변화하는 우주 바깥의 원인으로 나아간다. 새롭게 존재하게 된 것 또는 이미 존재하던 것 안에서 일어난 변화는 그보다 앞서 있고 충분한 원인을 필요로 한다. 우주는 전체로 보나 각 부분으로 보나 변화들의 체계이다. 그러므로 우주는 자기 밖의 원인을 가져야 하며, 그 궁극적 원인은 영원하고 원인 없는 불변의 원인이어야 한다.
호지는 인과 판단을 필연적 판단으로 옹호한다. 이 논증이 말하는 것은 모든 것이 원인을 가진다는 뜻이 아니라, 새롭게 생긴 것과 변화는 원인을 가진다는 뜻이다. 끝없는 원인과 결과의 연쇄는 그 판단을 만족시키지 못한다. 그 연쇄 전체도 여전히 설명을 요구하는 변화들의 연속이기 때문이다. 또한 에너지, 물질, 우주 발생에 대한 과학적 설명은 영원하고 불변하는 제일 원인을 제공하지 못하며, 오히려 여전히 원인을 요구하는 변화 조건들을 서술할 뿐이라고 본다.
2.7
목적론적 논증을 진술하십시오.
목적론적 논증, 곧 설계 논증은 자연 안의 질서와 조화와 적응에서 출발하여 지성적 원인으로 나아간다. 첫째 형식에서는 수많은 구별된 요소들이 함께 작용하여 이루는 보편적 질서가 지성적 원인을 통해서만 설명될 수 있다고 말한다. 우주가 복잡하고 대칭적인 질서라면, 그 영원하고 절대적인 원인은 정신이어야 한다. 둘째 형식에서는 부분들과 수단들이 목적을 이루도록 조정되어 있다는 사실이 설계하는 지성과 의지를 가리킨다고 말한다. 우주가 이런 적응들로 가득하다면, 그 제일 원인은 지성적 정신과 의지를 가진 원인이어야 한다.
호지는 의지가 없는 지성이라는 생각은 실제 사상이 아니라고 덧붙인다. 지성과 의지가 함께 인격성을 이룬다. 과학을 가능하게 하는 자연의 질서, 자연 법칙의 수학적 조화, 생물 안에서 보이는 특별한 적응은 모두 제일 원인이 영원하고 자존하는 인격이라는 점을 증언한다.
2.8
특별한 설계의 증거에서 유신론적 결론을 이끌어 내는 것에 대한 반론들을 진술하고 답하십시오.
호지는 먼저 설계 판단이 인간의 제작물과의 유비에서 나온 경험적 추론일 뿐이며 자연 전체에 적용될 수 없다는 흄의 반론에 답한다. 그는 우리가 다른 인간 정신도 직접 먼저 아는 것이 아니라 그가 나타내는 행위와 작품을 통해 안다고 말한다. 또한 질서와 적응이 지성을 함축한다는 확신은 인간 제작물에서 얻은 습관이 아니라 이성의 판단이라고 본다.
둘째 반론은 특별한 적응들이 광대한 우주 전체 안에서 일반 법칙이 낳은 부수적 결과일 뿐이므로, 부분에서 하나님의 목적을 읽어 낼 수 없다고 말한다. 호지는 오래된 자연신학이 때때로 개별 유기체를 더 큰 전체에서 지나치게 떼어 놓았다는 점은 인정한다. 그러나 어떤 특별한 배열의 내재적 목적은 그 더 넓은 관계를 다 알지 못해도 알 수 있다고 주장한다. 셋째 반론은 진화론에 호소한다. 호지는 하나님의 내재와 섭리적 통치를 흐리지 않는 진화 이론은 논증을 해치지 않는다고 보고, 순수 자연주의적 진화 설명은 생명, 감각, 지성, 의지, 양심, 안정된 종류, 인간의 기원을 설명하지 못한다고 답한다. 설령 연속적 진화가 사실로 입증된다 하더라도 그것은 수단의 방식을 설명할 뿐, 그 법칙과 조정 자체를 낳은 지성적 원인의 필요를 제거하지 않는다.
2.9
도덕적 논증을 진술하십시오.
도덕적 논증, 곧 인간학적 논증은 인간의 도덕 의식과 인류 역사에서 나오는 증거를 앞선 논증들에 더한다. 우주론적 논증은 영원한 제일 원인을 가리키고, 목적론적 논증은 그 원인이 지성과 의지를 가진다는 점을 보여 준다. 도덕적 논증은 이 결론을 확증하면서, 그 제일 원인이 거룩하고 의롭고 선하며 참되다는 속성을 더 밝혀 준다.
호지는 이 논증을 여러 연결된 사실에서 전개한다. 인간 의식은 자아를 영적이고 도덕적인 행위자로 즉각 인식하게 하며, 이성과 양심의 법칙은 유전된 감각 인상의 변형으로 환원될 수 없다. 또한 인간은 본질적으로 종교적 존재이다. 양심은 더 높은 도덕 권위 앞에서 책임을 진다는 감각을 품고 있다. 자연의 유익하고 아름다운 적응은 단순한 설계가 아니라 선한 목적을 가진 설계를 가리키며, 인류 역사는 인간 행위자들의 의도만으로 설명할 수 없는 도덕적 질서와 큰 계획을 드러낸다. 이 모든 사실은 인류를 다스리고 교육하는 지혜롭고 의롭고 선한 통치자를 가리킨다.
2.10
특별 설계와 섭리적 통치에서 나오는 유신론적 논증에 대한 밀의 반론을 진술하고 답하십시오.
밀의 반론은 자연과 역사 속 어두운 사실들을 들어, 세계가 전지하고 전능하며 의롭고 선한 인격적 하나님에게 다스림을 받는다는 주장에 이의를 제기한다. 그는 자연 법칙이 굽히지 않고 작용한다는 점, 동물의 고통, 인간 세계의 도덕적·물리적 악, 섭리적 혜택의 불균등한 분배를 지적한다. 자연이 인격적 의지의 산물이라면, 그 의지는 능력이나 선함에서 제한되어 있거나 도덕적으로 변호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호지는 하나님이 우주를 피조물의 행복 자체만을 위해, 더구나 그것을 최고 목적으로 삼아 창조하신 것이 아니라고 답한다. 더 높은 목적, 곧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일과 도덕적 피조물을 교육하고 훈련하여 가장 높은 탁월함에 이르게 하는 일이 관련되어 있다. 감각 있는 피조물의 기관들은 그들의 복지를 향하지만, 고통은 부수적이며 더 큰 목적에 쓰일 수 있다. 인간의 고난은 죄와 연결되어 형벌이거나 유익한 징계가 되며, 죄의 기원은 여전히 신비이지만 책임 있는 자유의 남용과 관련된다. 현세의 섭리적 불균등은 이 삶이 최종적인 상벌의 장이 아니라는 점을 보여 주고, 장차 있을 바로잡힘을 가리킨다. 마지막으로 목적론적 논증과 도덕적 논증은 유한한 관찰자가 모든 세부에서 완전한 지혜와 선을 이미 식별할 수 있다고 주장하지 않는다. 그것들은 자연과 섭리의 일반적 성격이 그런 속성을 가리킨다고 말하며, 많은 어두움은 우리의 제한된 지식에서 비롯된다고 본다.
2.11
성경적 증거를 진술하십시오.
호지는 성경을 하나님에 대한 증거를 밝히고 완성하는 증언으로 본다. 인간은 유한하고 죄책이 있으며 도덕적으로 부패했기 때문에, 자연 안에서 나타나는 하나님의 자기 계시를 마땅히 알아야 할 만큼 분명하게 붙잡지 못한다. 하나님이 역사 속 특별한 개입을 통해 주시고, 선지자들의 해석을 거쳐 성경에 기록하게 하신 초자연적 계시는 자연의 빛을 보충하고, 섭리의 신비를 설명하며, 참된 신정론의 원리를 제공한다.
이 성경적 증거의 결정적 중심은 그리스도이다. 자연은 하나님을 드러내면서도 동시에 가리지만,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은 지혜와 거룩과 사랑의 온전함으로 드러나신다. 그리스도의 인격은 유신론의 진리를 가장 충만한 형태로 증명한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참으로 인정하는 일은 지성과 양심과 삶 위에 계신 그리스도의 주권을 인정하는 일과 분리될 수 없다.
2.12
하나님의 존재에 대한 선험적 논증들이 의지하는 원리와 그 원리의 가치, 그리고 그 논증들이 제시되어 온 주요 형식들을 진술하십시오.
선험적 논증들은 관찰된 사실에서 원인으로 올라가는 방식이 아니라, 이성이 가진 필연적 관념에 의지한다. 후험적 논증들은 의식과 자연에서 출발하여 하나님을 제일 원인, 인격적 지성, 도덕적 통치자, 선한 다스리시는 분으로 인식하게 한다. 선험적 논증은 이성이 이미 가지고 있는 필연적 진리와 직관 안에 무엇이 필연적으로 포함되어 있는지를 묻는다.
호지가 제시하는 원리는 필연적 진리가 보편적이고 피할 수 없으며 객관적 타당성을 가진다는 것이다. 그런 진리는 주관적 의식이나 변화하는 사물에만 근거할 수 없다. 그 근거는 무한하고 영원하며 자존하고 불변하는 본성이어야 한다. 이 원리는 앞선 논증들이 도달한 하나님 관념에 일관성과 완성을 부여한다. 정신은 유한하거나 제한된 신 개념에 머물 수 없기 때문이다. 호지는 역사적으로 제시된 주요 형식으로 세 가지를 든다. 안셀무스는 무한히 완전한 존재의 관념에서 논증했고, 데카르트는 무한한 완전성의 관념이 유한한 근원에서 나올 수 없으며 필연적 객관성을 가진다고 논증했으며, 새뮤얼 클라크는 무한하고 필연적인 시간과 공간에서 영원하고 무한한 실체로 나아가는 논증을 제시했다.
3.1
무신론이란 무엇입니까?
호지의 용례에서 무신론은 하나님을 인격적 창조주이자 도덕적 통치자로 인정하는 일을 부정하는 것이다. 고대에는 대중 종교에 맞지 않는 사람들을 가리키는 말로 더 느슨하게 쓰이기도 했지만, 현대 신학적 용례에서는 유신론이 고백하는 하나님을 부정한다는 뜻을 가진다.
호지는 인격적 하나님에 대한 인식이 양심과 자연의 일들을 통해 자연스럽게 생겨난다고 보면서도, 무신론이 실제로 가능하다고 본다. 그것은 하나님이 계시지 않는 것처럼 사는 실천적 형태로 나타날 수 있고, 하나님을 부정하거나 의심하거나 알 수 없다고 선언하는 사변적 형태로도 나타날 수 있다. 또한 하나님에 대한 지식, 신적 속성, 하나님의 도덕적 통치, 인간의 도덕적 자유를 사실상 불가능하게 만드는 이론들 안에서도 가상적 무신론으로 나타난다.
3.2
이원론이란 무엇입니까?
이원론은 일원론의 반대 개념으로, 우주 안에 물질과 영이라는 두 종류의 본질적으로 구별되는 실재가 있다고 가르친다. 이 넓은 철학적 의미에서 호지는 일반적인 그리스도교 교리도 영과 물질을 구별하므로 이원론적이라고 말한다.
반유신론적 위험은 물질이나 악을 하나님 곁에 있는 영원하고 독립적인 원리처럼 다룰 때 생긴다. 고대 이교 철학자들은 흔히 물질의 독립적 영원성을 전제했고, 조로아스터교 같은 신화적 체계는 서로 대립하는 인격적 원리들로 악을 설명했다. 더 절대화된 형태에서는 악이 자존하는 물질에 귀속되었는데, 호지는 이런 경향을 몇몇 영지주의 운동, 마니교, 초기 그리스도교 안의 금욕주의적 왜곡과 연결한다.
3.3
다신론이란 무엇입니까?
다신론은 무한하신 하나님의 완전성과 기능을 여러 제한된 신들에게 나누어 돌리는 것이다. 호지는 그것이 자연 숭배에서 일어났고, 원시적 유일신 신앙을 널리 대체했다고 본다. 초기 형태에서는 별과 불 같은 자연 요소에 종교적 경배가 붙었고, 이후에는 각 민족의 전승과 성격과 문명 수준에 따라 서로 다른 모습을 취했다.
호지는 다신론의 여러 표현을 살핀다. 덜 발달한 형태의 물신 숭배, 영웅적 인간을 신격화한 그리스 종교적 상상력, 범신론적 사변과 수많은 신들이 결합된 인도 종교가 그 예이다. 다신론이 사변과 결합할 때, 호지는 그것을 범신론의 숨은 짝 또는 대중적 짝으로 본다. 여러 신들이 한 분 무한하신 하나님께 고백되어야 할 것을 흩어서 나누기 때문이다.
3.4
이신론이란 무엇입니까?
이신론은 어원상 유신론과 가깝지만, 호지는 역사적으로 굳어진 구별을 따라 이 말을 사용한다. 이신론은 인격적 창조주의 존재를 인정하지만, 하나님이 세계 안에 통제적으로 임재하신다는 것, 즉각적인 도덕적 통치를 행하신다는 것, 그리고 초자연적 개입과 계시를 모두 부정한다.
호지는 이 운동을 처버리의 허버트 경, 홉스, 섀프츠베리, 볼링브룩, 토머스 페인 같은 영국 이신론자들에게서 시작해 프랑스와 독일의 합리주의 흐름으로 이어지는 것으로 추적한다. 그의 설명에서 이신론은 종교를 자연 이성으로 축소하고, 하나님을 섭리와 계시에서 멀리 떼어 놓으며, 결국 범신론이나 물질주의적 무신론 같은 더 급진적인 형태로 넘어가는 경향을 가진다.
3.5
관념론이란 무엇입니까?
호지가 인용하는 관념론은 외부 대상을 지각할 때 우리가 직접 아는 것은 사물 자체가 아니라 관념이라고 말한다. 그는 근대 독일 관념론의 여러 형태를 언급한다. 피히테의 주관적 관념론은 지각되는 대상을 자아의 변형으로 보았고, 셸링의 객관적 관념론은 주체와 객체를 절대자의 현현으로 보았으며, 헤겔의 절대 관념론은 관념 또는 관계를 궁극적으로 실재하는 것으로 보았다.
호지는 극단적 관념론이 마음, 물질, 하나님, 인간 사이의 안정된 구별을 해체할 때 반유신론적 성격을 띤다고 본다. 그런 형태의 관념론은 단지 지각 이론에 머물지 않고, 실재론과 피조물의 독립된 존재, 그리고 그리스도교 유신론이 고백하는 인격적 하나님을 약화시킨다.
3.6
물질주의란 무엇입니까?
물질주의는 모든 실재를 물질, 원자, 힘, 또는 물리적 조직으로 환원한다. 호지는 먼저 두 종류의 현상이 구별된다고 말한다. 한쪽에는 생각과 감정과 의지가 있고, 다른 한쪽에는 연장성, 관성, 감각되는 성질들이 있다. 이 두 부류는 서로로 환원될 수 없으므로, 그는 각각 영과 물질이라는 실체에 연결해 이해한다.
호지의 설명에서 물질주의의 오류는 지성, 양심, 의지, 도덕적 의무, 자유를 물질이나 전환 가능한 에너지의 기능으로 설명하려는 데 있다. 그는 이런 설명이 진리와 의무, 도덕과 종교를 무너뜨린다고 본다. 또한 질서와 조직을 마음과 의지로 설명하는 편이, 의식과 지성을 물질로 설명하는 것보다 훨씬 더 합리적이라고 판단한다.
3.7
범신론이란 무엇입니까?
범신론은 절대적 일원론이다. 현상 세계 전체를 하나의 보편적 실체가 끊임없이 변해 나타나는 형식으로 보고, 그 실체를 하나님이라고 부른다. 호지는 이 주장을 하나님이 곧 모든 것이고 모든 것이 곧 하나님이라는 동일시로 요약한다. 따라서 유한한 것들은 절대적 존재의 일시적 형태에 지나지 않게 된다.
그는 스피노자의 단일 실체 범신론, 물질적 범신론, 셸링과 헤겔과 연결된 관념론적 범신론을 구분한다. 호지의 핵심 비판은 범신론이 결국 하나님의 도덕적 인격성이나 인간의 도덕적 인격성, 또는 둘 다를 부정하게 된다는 데 있다. 범신론은 신비롭고 경건한 언어로 표현될 때에도 자유로운 자기 결정, 도덕적 책임, 초자연적 계시, 참된 종교를 불가능하게 만든다.
4.1
신학은 어떤 두 큰 부문으로 나뉩니까?
호지는 신학을 자연신학과 계시신학이라는 두 큰 부문으로 나눈다. 자연신학은 하나님이 세계 밖에 계신 인격적 영으로서 실제 객관적으로 존재하신다는 사실을 충분한 증거로 세울 수 있는지, 그리고 자연의 빛만으로 하나님의 본성과 하나님이 세계 및 인간과 맺으시는 관계에 관해 무엇을 정당하게 알 수 있는지를 묻는다.
그는 또한 순수하게 도움받지 않은 자연적 지식과, 자신은 인정하지 않더라도 초자연적 계시의 빛을 빌려 자연을 해석하는 지식을 구별한다. 계시신학은 자연신학을 전제한 뒤, 하나님이 초자연적 통로를 통해 자신과 우주, 특히 인간과의 관계에 관해 알려 주신 내용을 다루는 학문이다.
4.2
자연신학과 계시신학의 가능성과 타당성을 설명하려 할 때 제시된 극단적 견해들은 무엇입니까?
호지는 서로 반대되는 두 극단을 지적한다. 이신론자들과 자연주의적 유신론자들은 초자연적 계시의 가능성이나 역사적 사실성을 부정하고, 자연신학만으로 인간이 하나님에 관해 알 수 있거나 알아야 할 모든 것을 충분히 발견할 수 있다고 본다. 어떤 합리주의자들은 계시의 역사적 사실은 인정하지만, 계시의 역할을 자연 종교 안에 이미 주어진 진리를 강조하거나 예시하는 정도로 축소한다.
반대편 극단에는 자연신학이 실제로 존재하지 않으며, 하나님이 존재하신다는 최초의 타당한 지식까지도 초자연적 계시에 전적으로 의존한다고 보는 일부 그리스도인들의 견해가 있다. 호지는 이 견해도 받아들이지 않는다. 그는 성경의 증언, 탁월한 이교 철학자들에게서 발견되는 하나님 지식, 의식과 외부 세계에서 이미 변증한 유신론적 추론, 그리고 어떤 계시를 하나님에게서 온 것으로 알아보려면 논리적으로 하나님에 대한 어느 정도의 선행 지식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근거로 든다.
4.3
신학에서 지식의 원천 또는 표준이 무엇인가 하는 질문에 대한 주요 답변들을 진술하십시오.
호지는 신학 지식의 원천 또는 표준으로 제시되어 온 여러 답변을 살핀다. 슐라이어마허와 초월주의 학파는 성경이 아니라 교회의 공통된 그리스도인 의식을 신앙 문제의 최종 호소처로 삼았다. 내적 빛을 말하는 신비주의적 견해는 종교적 진리의 근거를 마음 안의 조명에 두었다. 또 다른 견해는 영감받은 교회나 교회의 공적 교사들에게 권위를 두었다. 합리주의자들은 인간 이성을 종교 지식의 원천과 척도로 삼았다.
이에 맞서 호지는 개신교적 교리를 진술한다. 하나님의 영감으로 주어진 구약과 신약 성경은 우리에게 주신 하나님의 말씀이며, 믿음과 행위의 무오하고 권위 있는 규칙이다. 그리스도교 신학에서 성경은 여러 표준 가운데 하나가 아니라, 경쟁하는 궁극 권위들을 배제하는 유일한 원천과 표준이다.
4.4
종교 지식의 원천으로서 믿음과 대조되는 “이성”이라는 말은 어떤 정확한 의미로 쓰입니까?
호지는 합리주의자들이 이성이라는 말을 여러 의미로 사용한다고 본다. 어떤 이들은 필연적이고 궁극적인 진리를 파악하는 더 높은 능력을 뜻한다. 다른 이들은 경험의 영역에서 관찰하고 판단하며 추론하는 이해력 또는 논리적 능력을 뜻한다. 실제로 사람들은 자기 마음의 고정된 습관, 그리고 자기 안에 이미 자리 잡은 지식과 견해와 편견의 조직된 덩어리를 이성이라는 존중받는 이름으로 부르곤 한다.
이 논쟁에서 호지는 이성을 더 넓게 정의한다. 그것은 진리를 찾아내는 인간의 전체 자연적 능력이다. 여기에는 직관, 이해, 상상, 정서와 감정까지 포함된다. 그러나 그것들은 자연적 조건 아래서, 초자연적 도움과는 독립적으로 작용하는 능력으로 한정된다.
4.5
합리주의란 무엇입니까?
호지는 합리주의를 자연주의보다 더 넓은 범주로 설명한다. 자연주의자는 자연을 완결되고 스스로 지탱되는 영역으로 보며, 따라서 초자연적인 것의 실재를 부정하거나 그것이 인간 지식의 대상이 될 수 없다고 본다. 합리주의자는 여기에 더해, 하나님의 계시라는 사실을 어느 정도 인정하더라도 그 계시와 교리와 기록을 인간 이성이 최종 심판자로 측정하고 인정하거나 배척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까지 포함한다.
역사적으로 호지는 합리주의를 그리스도교 교회 안에서 일어난 자유사상적 경향으로 보며, 성경과 교리를 해석할 때 이성을 부당하게 사용한 흐름으로 설명한다. 그는 근대 독일 합리주의가 젬러와 수용 이론에서 출발해 통속 합리주의로 발전했고, 이어 피히테, 셸링, 헤겔 이후의 초월적 합리주의로 이어졌다고 본다. 그 흐름에서는 범신론적 사유가 기적을 불가능한 것으로 전제하고, 신약의 역사성을 사실이 아니라 경향, 신화, 전설로 설명하려 한다.
4.6
역사적 그리스도교에 반대하는 논증적 근거들은 어떤 두 부류로 나눌 수 있습니까?
호지는 역사적 그리스도교에 대한 반대 논증을 두 부류로 나눈다. 첫째는 선험적 반대다. 이것은 하나님의 존재와 본성, 하나님과 세계의 관계에 대한 잘못된 견해에 근거한다. 실증주의, 이신론, 범신론, 과학적 자연주의는 각기 다른 방식으로 기적의 가능성과 신빙성을 부정하고, 영감을 천재성으로 환원하며, 성경을 역사적 사실 기록이 아닌 것으로 설명하려 한다.
둘째는 역사적·비평적 반대다. 이것은 하나님과 자연에 관한 추상 이론에서 출발하기보다, 정경 각 책의 진정성과 신뢰성에 대한 역사적 증거가 부족하다는 주장, 또는 성경 안에 불일치와 역사적·과학적 부정확성이 있다는 주장에 근거한다. 호지는 이 문제들이 성경 입문과 주해의 영역에서 다루어져야 한다고 본다.
4.7
이성이 종교적 관념의 궁극적 원천이자 척도가 아니라는 것은 어떤 근거들로 분명해집니까?
호지는 세 가지 일반 근거를 제시한다. 첫째, 선험적으로 보아 현재 인간의 무지와 도덕적 타락과 죄책 아래 있는 이성은 하나님의 존재, 성품, 우리와의 관계, 우리를 향한 목적에 대해 확실성이나 충분한 실천적 지침을 제공할 능력이 없다. 둘째, 보편적 경험도 이를 확인한다. 도움받지 않은 이성은 그 목적을 이루지 못했고, 계시를 무시한 채 지나치게 의존될 때 회의와 혼란으로 사람을 이끌었다.
셋째, 실제로 초자연적 계시의 무오한 기록이 주어졌다. 이 계시는 성령의 조명 안에서 해석될 때 구원에 필수적인 지식을 전해 주며, 이성만으로는 결코 미리 알 수 없던 내용을 알려 준다. 호지는 이 논증을 세우려면 계시의 필요성, 가능성, 선험적 개연성, 그리스도교가 그런 계시라는 역사적 사실, 정경 기록의 진정성, 그리고 그 정경의 영감을 차례로 입증해야 한다고 본다.
4.8
현재 인간의 상태에서 초자연적 계시가 필요하다는 것을 입증하십시오.
호지는 먼저 이성 자체가 인간의 도덕적 본성이 무질서해졌고 하나님과의 관계가 죄책과 소외로 어그러졌다는 사실을 인정한다고 본다. 이성은 죄의 사실을 발견할 수 있고, 하나님의 공의가 죄를 벌하신다는 것도 추론할 수 있다. 그러나 하나님이 은혜로 치료책을 마련하거나 허락하실지 여부는 알 수 없다. 은혜는 하나님의 자유로운 뜻에 달려 있기 때문이다.
또한 모든 역사 속에 나타나는 하나님 자신의 계시와 개입을 향한 자연스럽고 보편적인 종교적 갈망은 초자연적 계시가 필요하다는 증거다. 어떤 역사적 공동체도 이성만으로 확실성에 이르거나, 인간의 필요를 만족시키거나, 삶을 다스릴 충분한 규범을 얻지 못했다. 합리주의는 공격과 파괴에는 강하지만 긍정적 구성에는 무력했고, 대표적 합리주의자들조차 이성이 확실히 가르치는 긍정적 결론에 대해 서로 일치하지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