Question 1
사람의 제일 되는 목적은 무엇입니까?
답: 사람의 제일 되는 목적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영원토록 그분을 즐거워하는 것입니다.
문 1. 사람의 제일 되는 목적이란 무엇을 뜻합니까?
답. 사람이 으뜸으로 삼아야 할 목표와 계획이며, 그가 최고의 행복으로 추구해야 할 것입니다.
문 2. 사람이 으뜸으로 삼아야 할 목표와 계획은 무엇입니까?
답. 하나님의 영광입니다. 대상 16:28-29, "만국의 족속들아 영광과 권능을 여호와께 돌릴지어다. 여호와의 이름에 합당한 영광을 그에게 돌릴지어다."
문 3. 사람은 무엇을 최고의 행복으로 추구해야 합니까?
답. 하나님을 즐거워하는 것입니다. 사 26:8, "주의 이름, 곧 주를 기억함이 우리 영혼의 사모하는 바니이다."
문 4.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것과 그분을 즐거워하는 것 사이에는 어떤 연결이 있습니까?
답. 둘은 풍성하고 주권적인 은혜로 연결됩니다. 그 은혜는 죄인으로 하여금 하나님과 영광에 이르는 유일한 길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받아들이도록 설득하고 능하게 합니다. 엡 2:8, "너희가 그 은혜에 의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았으니 이것은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요 14:6에서 그리스도께서는 "내가 곧 길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고 말씀하십니다.
문 5. 제일 되는 목적은 종속적인 목적들을 배제합니까?
답. 아닙니다. 사람은 하나님의 영광을 주된 목표로 삼으면서도 몸을 새롭게 하기 위하여 자연 생명의 공급물을 사용할 수 있습니다(고전 10:31). 또한 자기와 가족을 부양하기 위하여 각자의 소명에서 부지런해야 합니다(살전 4:11-12; 딤전 5:8).
문 6. 왜 하나님의 영광이 사람의 제일 되는 목적과 계획이어야 합니까?
답. 하나님의 영광은 사람의 창조와 보존과 구속과 중생에서 하나님 자신의 제일 되는 목적이기 때문입니다. 잠 16:4, "여호와께서 온갖 것을 그 쓰임에 적당하게 지으셨나니." 그러므로 하나님의 영광은 사람의 제일 되는 목적이기도 해야 합니다. 고전 6:19-20, "너희는 너희 자신의 것이 아니라 값으로 산 것이 되었으니 그런즉 너희 몸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
문 7. 하나님의 영광은 몇 가지입니까?
답. 두 가지입니다. 하나님의 본질적 영광과 선언적 영광입니다.
문 8. 하나님의 본질적 영광은 무엇입니까?
답. 하나님께서 절대적으로 그 자신 안에서 어떠하신가입니다. 출 3:14, "나는 스스로 있는 자이니라."
문 9. 하나님의 선언적 영광은 무엇입니까?
답. 하나님께서 자신의 영광을 피조물에게, 피조물 안에서, 피조물을 통하여 보이시고 알리시는 것입니다(사 44:23; 살후 1:10).
문 10. 어떤 피조물이라도 하나님의 본질적 영광에 무엇을 더할 수 있습니까?
답. 없습니다. 하나님의 본질적 영광은 무한하고 영원하며 변하지 않기 때문입니다(욥 35:7).
문 11. 하늘과 땅과 모든 하등 피조물도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지 않습니까?
답. 그렇습니다. 수동적인 방식으로, 하나님의 모든 작품이 그분을 찬양합니다(시 19:1; 145:10).
문 12. 사람은 어떻게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야 합니까?
답. 사람은 이성 있는 영혼을 부여받았으므로 능동적인 방식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야 합니다(시 63:4). 곧 그분의 찬송을 선포하고(시 103:1-2), 그분의 이름에 합당한 영광을 드리기를 힘써야 합니다(시 96:7-8).
문 13. 무죄 상태에서 사람은 어떻게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야 했습니까?
답. 하나님의 율법에 대한 완전하고 인격적이며 영속적인 순종으로, 그리고 하나님의 모든 작품의 영광을 그분께 돌림으로 해야 했습니다(창 1:27; 2:19).
문 14. 사람은 자기의 제일 되는 목적을 이루었습니까?
답. 아닙니다.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였"기 때문입니다(롬 3:23).
문 15. 그렇다면 하나님께서는 사람을 지으신 목적을 잃으셨습니까?
답. 아닙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담의 가족 중 어떤 이들에게는 자신의 공의와 권능을, 다른 이들에게는 자신의 은혜와 긍휼을 영광스럽게 나타내실 것이기 때문입니다(롬 9:22-23).
문 16. 아담의 타락 이후 완전한 순종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린 일이 있었습니까?
답. 둘째 아담이신 그리스도께서 새 언약의 머리로 나타나시기 전까지는 결코 없었습니다(사 42:21; 49:3).
문 17. 둘째 아담이신 그리스도께서는 땅에서 우리의 보증과 대표자로서 어떻게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셨습니까?
답. 아버지께서 그분에게 하라고 주신 일을 완수하심으로 그렇게 하셨습니다(요 17:4).
문 18. 아버지께서 그리스도께 하라고 주신 일은 무엇이었습니까?
답. 거룩한 인성을 취하시고(눅 1:35), 온 율법에 완전하고 죄 없는 순종을 드리시며(마 3:15), 공로 있는 고난과 죽음으로 사람의 죄에 대하여 공의에 완전한 만족을 드리시는 것이었습니다(눅 24:26).
문 19. 그리스도께서는 하늘에서 어떻게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십니까?
답. 우리를 위하여 하나님 앞에 나타나시고(히 9:24), 땅에서 자기 피의 값으로 사신 구속을 그분의 영의 능력으로 적용하심으로 그렇게 하십니다(딛 3:5-6).
문 20. 죄인은 언제 바르게 하나님의 영광을 목표로 삼기 시작합니까?
답. 하나님께서 역사하시는 믿음으로 그리스도를 믿을 때입니다. 행 8:37, 39, "내가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믿노라"고 내시가 대답했고, "기쁘게 길을 가"게 되었습니다.
문 21. 사람이 먼저 그리스도를 믿지 않으면 하나님께 받아들여질 만하게 영광을 돌릴 수 없습니까?
답. 그렇습니다.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지 못하"며(히 11:6), "믿음을 따라 하지 아니하는 것은 다 죄"이기 때문입니다(롬 14:23).
문 22.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은 어떻게 하나님께 영광을 돌립니까?
답. 믿음은 하나님의 증거에 인을 치고(요 3:33), 우리를 그리스도와 연합하게 하며, 우리의 열매는 오직 그리스도에게서 나오기 때문입니다(호 14:8).
문 23. 신자들의 선행으로도 하나님께 영광이 돌려지지 않습니까?
답. 그렇습니다. 그리스도께서 "너희가 열매를 많이 맺으면 내 아버지께서 영광을 받으실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요 15:8).
문 24.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신자들의 열매는 무엇으로 요약될 수 있습니까?
답. 사랑으로 역사하는 믿음으로 요약될 수 있습니다(갈 5:6). 또는 그리스도의 능력 안에서 의무의 규칙인 율법에 보편적으로 순종하기를 목표로 삼는 것으로 요약될 수 있습니다. 빌 4:13,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
문 25. 먹고 마실 때 우리는 어떻게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야 합니까?
답. 둘째 아담, 곧 만물의 상속자이신 그리스도를 통하여 자연 생명의 공급물에 대한 권리를 취함으로 해야 합니다. 그분은 자기 백성을 위하여 영적인 긍휼뿐 아니라 현세적인 긍휼에 대해서도 언약적 권리를 사 주셨습니다(고전 3:21-23). 또한 그 일에 대해 하나님께 감사로 인정해야 합니다(딤전 4:4-5).
문 26. 종교적 예배와 다른 순종의 행위에서 우리는 어떻게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야 합니까?
답. 우리가 무엇을 하든지 주 예수의 이름으로 하고(골 3:17), 성령 안에서 하나님께 예배하며,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기뻐하고, 육체를 신뢰하지 않음으로 해야 합니다(빌 3:3).
문 27. 하나님의 영광 다음으로 우리가 목표로 삼아야 할 것은 무엇입니까?
답. 하나님의 영광 다음으로 우리는 그분을 즐거워하는 것을 목표로 삼아야 합니다(시 73:25-26).
문 28. 왜 우리는 하나님을 즐거워하는 것을 목표로 삼아야 합니까?
답. 하나님은 이성 있는 피조물의 최고의 선이시기 때문입니다(시 116:7). 또한 하나님 외에는 불멸하는 영혼의 본성에 맞거나 그 갈망을 만족시킬 수 있는 것이 없기 때문입니다(시 144:15).
문 29. 유한한 피조물이 어떻게 무한하신 하나님을 즐거워할 수 있습니까?
답. 하나님을 자신의 영원하고 자기를 온전히 세워 주는 분깃으로 받아들이고 그분 안에서 기뻐함으로 그렇게 할 수 있습니다(시 16:5-6; 48:14).
문 30. 우리의 시조는 무죄 상태에서 하나님을 즐거워했습니까?
답. 그렇습니다. 하나님과 그들 사이에는 완전한 우정과 교제가 있었습니다. "하나님은 사람을 정직하게 지으셨"기 때문입니다(전 7:29).
문 31. 그 복된 우정과 교제를 깨뜨린 것은 무엇입니까?
답. 죄입니다. 우리의 죄악이 우리와 하나님 사이를 갈라놓았고, 우리의 죄가 하나님의 얼굴을 우리에게서 가렸습니다(사 59:2).
문 32. 자연 상태의 죄인이 하나님을 즐거워하거나 그분과 어떤 교제를 가질 수 있습니까?
답. 없습니다. "빛과 어둠이 어찌 사귀며 그리스도와 벨리알이 어찌 조화되겠습니까?"(고후 6:14-15).
문 33. 잃어버린 죄인은 어떻게 하나님을 즐거워함과 그분과의 교제를 회복할 수 있습니까?
답. 우리가 첫째 아담 안에서 타락하여 그것을 잃었듯이, 그것은 둘째 아담과의 연합으로만 회복될 수 있습니다(롬 5:18-19). 그분을 통하지 않고는 하나님께 나아갈 수 없기 때문입니다(요 14:6).
문 34. 죄인은 언제 하나님을 즐거워하기 시작합니까?
답. 믿음으로 그리스도를 받아들인 뒤, 의와 힘을 위하여 그리스도와 그리스도 안에 계신 하나님께 의지할 때입니다(사 45:24). 그리고 그분의 충만에서 은혜 위에 은혜를 받을 때입니다(요 1:16).
문 35. 우리가 하나님을 즐거워하기 위하여 찾아야 할 외적 방편은 무엇입니까?
답. 공적, 사적, 은밀한 모든 예배 규례들 안에서 찾아야 합니다. 곧 읽고 듣는 말씀, 성례, 기도, 묵상, 금식, 감사와 같은 것들입니다.
문 36. 하나님의 성도들은 이 방편들 안에서 그분을 즐거워하도록 허락받습니까?
답. 그렇습니다. 그것들은 하나님의 이름이 기록된 만남의 장소이며,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오셔서 복 주시겠다고 약속하신 곳입니다. 출 20:24, "내가 내 이름을 기념하게 하는 모든 곳에서 네게 임하여 복을 주리라."
문 37. 성도들이 하나님께서 정하신 의무와 규례 안에서 하나님을 즐거워한다는 성경의 증거는 무엇입니까?
답. 그들이 종교적 의무에 많이 힘쓴 것을 봅니다(아 3:1-3). 또한 은혜의 규례들에 대해 지극한 관심을 표현한 것을 봅니다(시 84:1-2).
문 38. 하나님을 즐거워할 때 영혼은 어떤 만족을 얻습니까?
답. 곡식과 포도주와 모든 땅의 위로가 가장 풍성할 때보다 말할 수 없이 더 큰 기쁨을 얻습니다(시 4:7).
문 39. 이 생에서 하나님을 즐거워하는 것과 성도들이 오는 생에서 얻게 될 즐거움 사이에는 차이가 있습니까?
답. 본질적인 차이는 없고, 그 방식과 정도에서 단계적인 차이가 있습니다.
문 40. 이곳과 이후의 즐거움은 그 방식에서 어떤 차이가 있습니까?
답. 이곳의 즐거움은 방편의 개입을 통하여 매개적입니다. 이후에는 이런 방편의 사용 없이 직접적일 것입니다. "우리가 지금은 거울로 보는 것 같이 희미하나 그 때에는 얼굴과 얼굴을 대하여" 볼 것입니다(고전 13:12).
문 41. 이 생에서의 즐거움과 오는 생에서의 즐거움은 그 정도에서 어떤 차이가 있습니까?
답. 이 생에서의 즐거움은 부분적일 뿐입니다. 오는 생에서는 충만하고 완전할 것입니다(요일 3:2). 여기서는 즐거움이 씨앗이나 첫 열매일 뿐이나, 거기서는 충만한 추수가 될 것입니다(시 126:5-6).
문 42. 이곳 은혜 안에서 하나님을 부분적으로 즐거워하는 것은 이후 영광 안에서 그분을 온전히 즐거워할 것에 대한 확실한 보증입니까?
답. 그것은 그 즐거움의 보증이자 보증금입니다(엡 1:13-14; 시 84:11).
문 43. 은혜로운 영혼은 그 상태에서 자기의 제일 되는 목적을 온전히 받습니까?
답. 그렇습니다. 그때 그 영혼은 하나님으로 가득 차며, 영원토록 높고 끊임없는 할렐루야로 그분의 찬송을 노래할 것이기 때문입니다(시 16:11; 사 35:10).
문 44. 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것이 사람의 제일 되는 목적의 앞부분이 되고, 그분을 즐거워하는 것보다 먼저 놓입니까?
답. 하나님께서 자신을 영화롭게 하려는 계획이, 사람을 그분을 즐거워함 안에서 행복하게 하려는 계획의 이유와 기초였기 때문입니다(롬 11:26). 또한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그분의 영광을 우리의 제일 되는 목적으로 삼는 것을, 그 즐거움에 이르는 바로 그 길과 방편으로 삼으셨기 때문입니다(시 50:23).
문 45. 하나님을 즐거워하는 우리의 행복이 우리의 제일 되는 목적입니까?
답. 아닙니다. 하나님의 영광 자체가 우리의 제일 되는 목적입니다(사 42:8). 우리가 그것을 주된 목표로 삼을 때, 우리는 그분을 즐거워함을 놓칠 수 없습니다(시 91:14-15).
문 46. 하나님의 영광을 기뻐하는 우리의 기쁨을 우리의 제일 되는 목적으로 보아야 하지 않습니까?
답. 아닙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영광을 그 영광 안에서 느끼는 우리의 기쁨보다 위에 두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의 기쁨은 하나님께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 자신에게 주로 있게 됩니다(사 2:11). 하나님의 영광 안에서 주관적으로 기뻐하는 것은 그분을 즐거워하는 일에 속합니다. 하나님의 영광은 하늘들보다 높고, 그 영광 안에서 느끼는 우리의 기쁨보다 무한히 높습니다(시 113:4).
문 47. 하나님께서는 시간 속에서와 영원 속에서 누구에게 자신을 즐거워하게 하는 존귀를 주십니까?
답. 하나님께서 능동적으로 자신에게 영광과 존귀를 돌리도록 도우시는 사람들입니다. 하나님께서 "나를 존중히 여기는 자를 내가 존중히 여기"겠다고 말씀하셨기 때문입니다(삼상 2:30).
문 48. 하나님을 즐거워하는 우리의 행복을 하나님의 영광이 그 안에서 가지는 관심만큼 확실히 보장하는 것이 있습니까?
답.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자신의 영광이라는 큰 목적에 반드시 이르실 수밖에 없는 것처럼, 그분이 창세 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에게 영생을 약속하셨을 때(딛 1:2), 우리는 그것에 미치지 못할 수 없습니다. 그것을 이루는 일이 하나님의 신실하심의 존귀에 달려 있기 때문입니다. 히 10:23, "약속하신 이는 미쁘시니라."
문 49.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것과 연결된 하나님을 즐거워함이 영원하다는 것은 어떻게 나타납니까?
답. 즐거움의 대상이 되시는 분이 영원하신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사 40:28). 또한 그분을 즐거워하는 것은 시간 속의 지나가는 즐거움처럼 일시적인 것이 아니라, 영원하신 하나님을 영원히 즐거워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시 48:14).
Question 2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고 즐거워할 방도를 우리에게 가르쳐 주시려고 하나님께서 주신 법칙은 무엇입니까?
답: 구약과 신약의 성경에 담긴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가 어떻게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고 그분을 즐거워할 수 있는지를 가르쳐 주는 유일한 법칙입니다.
문 1.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고 즐거워할 방도를 우리에게 가르쳐 주는 법칙이 왜 필요합니까?
답. 하나님께서는 이성 있는 피조물에게서 영광을 받으시기를 원하시므로, 그 목적을 위한 완전한 법칙은 하나님 자신의 계시된 뜻 외에는 있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롬 12:2).
문 2. 사람이 자기 지혜나 능력으로, 첫째 아담 안에서 타락하여 미치지 못하게 된 하나님을 영화롭게 함과 그분을 즐거워함에 이를 수 있습니까?
답. 없습니다. 하나님의 일들에 관한 사람의 지혜와 지식은 어리석음과 무지가 되었고(욥 11:12), 선을 행할 능력은 완전한 무능으로 바뀌었기 때문입니다(요 6:44).
문 3. 하나님께서는 사람이 자기 창조의 목적을 회복하고 그 목적에 이를 수 있는 길을 어디에 계시하셨습니까?
답. 구약과 신약의 성경에 담긴 하나님의 말씀 안에 계시하셨습니다. 요 5:39은 성경을 살피라고 말합니다.
문 4. 구약과 신약의 성경이 하나님의 말씀임을 어떻게 압니까?
답. 성경 위에 분명히 보이는 하나님의 인장으로 압니다. 하나님처럼 일하시는 이가 없듯이(사 43:13), 하나님처럼 말씀하시는 이도 없기 때문입니다(요 7:46).
문 5. 성경에서 분명히 식별되는 하나님의 인장 또는 흔적이란 무엇을 뜻합니까?
답. 말씀 자체 안에서 빛나는 위엄과 거룩함과 빛과 생명과 효력입니다(롬 1:16; 시 19:7).
문 6. 말씀을 읽으면서도 그 안의 하나님의 인장을 보지 못하는 사람들에 대해서는 무엇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까?
답. 이 세상의 신이 믿지 않는 자들의 마음을 어둡게 하였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고후 4:4).
문 7. 모든 사람이 본성상 영적으로 눈멀었다면, 그들이 성경을 읽는 것은 헛된 일입니까?
답. 아닙니다. 그들이 성경을 읽고 살피는 것은 하나님의 뜻이며(요 5:39), 하나님의 말씀의 입구는 눈먼 자들에게 빛과 시야를 주기 때문입니다(시 119:130).
문 8. 성경이 자기에게 봉인된 책으로 남지 않게 하려면 사람은 무엇을 해야 합니까?
답. 하나님의 말씀을 들여다볼 때마다 그 말씀의 저자이신 하나님을 우러러보며, 하나님의 율법에서 놀라운 것을 보게 눈을 열어 달라고 구해야 합니다(시 119:18). 또한 하나님의 빛과 진리가 자신을 인도하게 해 달라고 구해야 합니다(시 43:3).
문 9. 불신자들이 성경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아들이도록 설득할 때 어떤 논증들을 사용할 수 있습니까?
답. 성경의 오래됨, 내용의 하늘에 속한 성격, 문체의 위엄, 서로 다른 시대에 기록되었음에도 모든 부분이 조화를 이루는 점, 예언의 정확한 성취, 말씀 안에 담긴 신비와 내용의 숭고함, 많은 사람을 죄에 대해 깨닫게 하고 회심시키는 효력과 능력, 전체 목적이 사람을 자기 구원 안에서 하나님의 영광이라는 제일 되는 목적에 이르게 하는 점, 그리고 그 안의 교리들의 진리를 확증하기 위해 행해진 많은 기적들에서 나오는 이성적 논증으로 다룰 수 있습니다.
문 10. 이런 이성적 논증이나 그와 같은 논증들이 신적인 믿음을 만들어 낼 수 있습니까?
답. 없습니다. 이성적 논증은 이성에 근거한 단순한 이성적 믿음만 만들어 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신적이고 구원하는 믿음은 말씀 자체 안에 내재한 신적 증언, 곧 "주께서 이같이 말씀하신다"는 증언 위에 전적으로 의지합니다.
문 11. 이 내재적 증언은 어떻게 발견됩니까?
답. 말씀을 받아쓰게 하신 바로 그 하나님의 영으로 발견됩니다(벧후 1:21). 그분은 "천 사람 가운데 하나"인 해석자이십니다(요 16:13).
문 12. 성경이 참으로 하나님의 말씀임을 사람에게 온전히 설득하고 확신시키는 것은 무엇입니까?
답. 성령께서 사람의 마음속에서 성경으로, 또 성경과 함께 증언하시는 것만이 성경이 바로 하나님의 말씀임을 온전히 설득할 수 있습니다(요 16:13-14; 요일 2:27).
문 13. 성경이 믿어지고 순종되어야 할 권위는 교회의 증언에 의존합니까, 아니면 전적으로 하나님께 의존합니까?
답. 전적으로 하나님께 의존합니다. 하나님은 진리 자체이시며 성경의 저자이십니다. 그러므로 성경은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이유로 받아들여져야 합니다(요일 5:9; 살전 2:13).
문 14. 왜 성경의 권위는 교회에 의존할 수 없습니까?
답. 그리스도의 참된 교회는 그 존재 자체가 성경에 의존하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성경은 자기 권위에 관하여 교회에 의존할 수 없습니다(엡 2:20, 22).
문 15. 자연의 빛과 창조와 섭리의 일들은 우리가 어떻게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고 즐거워할 수 있는지를 가르치기에 충분하지 않습니까?
답. 그것들은 하나님의 선하심과 지혜와 권능을 어느 정도 드러내어 사람에게 핑계할 수 없게 합니다(롬 2:14-15; 1:19-20). 그러나 구원에 필요한 하나님과 하나님의 뜻에 관한 지식을 주기에는 충분하지 않습니다(고전 2:13-14).
문 16. 자연의 빛보다 더한 계시가 필요하게 만드는 것은 무엇입니까?
답. 하나님의 완전하심들의 영광, 특히 그분의 긍휼과 은혜와 사랑과 신실하심(시 85:8, 10-11), 인류의 심한 무지와 타락(고전 1:20-21), 그렇지 않았다면 사람이나 천사도 결코 알 수 없었을 계시된 것들의 숭고함(요 1:18), 그리고 사람들의 영들과 교리들을 시험하고 마귀의 속임수를 드러내는 필요성입니다(요일 4:1-3).
문 17. 성경이 인류를 속이기 위한 것이 아니라는 점은 어떻게 나타납니까?
답. 성경의 기록자들이 속이려 했다면, 그들이 사귄 사람들의 성향에 자신을 맞추고 그들의 정욕을 눈감아 주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그들이 사람들의 오류와 악덕을 신실하게 드러내고, 부패한 본성이 좋아하는 모든 것에 공평하게 맞섰음을 봅니다. 그 일 때문에 그들이 가장 큰 고난과 고통에 노출되었음에도 그렇게 했습니다(행 5:29-41).
문 18. 성경이라는 말은 무슨 뜻입니까?
답. 그것은 기록들을 뜻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특별히 그렇게 불리는 까닭은, 하나님께서 그 안에 자신의 율법과 언약의 큰 일들을 우리에게 기록하셨기 때문입니다(호 8:12).
문 19. 왜 하나님의 말씀은 기록으로 맡겨졌습니까?
답. 진리를 더 잘 보존하고 전파하기 위해서이며, 육체의 부패와 사탄과 세상의 악의에 맞서 교회를 더 확실히 세우고 위로하기 위해서입니다(눅 1:3-4; 잠 22:20-21).
문 20. 하나님의 뜻은 기록으로 맡겨지기 전에 교회에 어떻게 알려졌습니까?
답. 직접 계시로(창 2:16-17; 3:15), 하나님의 아들이 미리 인성을 입어 보기를 기뻐하시며 자주 나타나심으로(창 18:2와 18:3 비교; 삿 13:11과 13:18-19 비교), 거룩한 천사들의 사역으로(창 19:1, 15; 히 2:2), 그리고 족장들의 사역으로 알려졌습니다(유 14-15; 히 11:7).
문 21. 구약과 신약의 성경은 왜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불립니까?
답.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영감으로 된 것"이며(딤후 3:16), 성령께서 직접 받아쓰게 하셨기 때문입니다(벧후 1:21).
문 22. 성경은 왜 보통 바이블이라고 불립니까?
답. 바이블이라는 말은 책을 뜻합니다. 거룩한 성경은 탁월한 의미에서 그렇게 불립니다. 그것은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과 영생을 위한 변하지 않는 근거를 담고 있으므로 모든 책 가운데 비교할 수 없이 가장 뛰어난 책이기 때문입니다. 요 20:31은 이것들이 기록된 목적이 예수께서 그리스도요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믿고, 그 이름으로 생명을 얻게 하려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문 23. 거룩한 성경은 왜 언약이라고 불립니까?
답. 그것은 영광스러운 유언자이신 그리스도의 마지막 뜻이기 때문입니다. 그 뜻은 먼저 모형적으로, 그리고 실제로는 그분의 죽음으로 확증되었으며, 그 안에는 그분의 영적 씨에게 유증된 풍성한 유산이 담겨 있습니다. 히 9:16은 유언이 있으면 유언자의 죽음도 반드시 있어야 한다고 말합니다.
문 24. 모세와 선지자들의 기록은 왜 구약이라고 불립니까?
답. 유언자이신 그리스도의 뜻이 가려져 있었고, 율법적으로 집행되었으며, 희생 짐승의 피로 모형적으로 인봉되었기 때문입니다. 그 때문에 그것은 비교적 흠이 있는 것으로 불리며(히 8:7-8), 사라져야 할 것이었습니다(히 8:13).
문 25. 구약 아래에서 하나님의 말씀들은 누구에게 맡겨졌습니까?
답. 유대인의 교회에 맡겨졌습니다. 롬 3:1-2는 유대인의 유익이 여러 면에서 많으며, 특히 하나님의 말씀들이 그들에게 맡겨졌다고 말합니다.
문 26. 마태복음부터 요한계시록 끝까지의 성경은 왜 신약이라고 불립니까?
답. 그것들이 약속의 언약에 대한 가장 분명하고 충만한 계시와 실제적 확증을 담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 확증은 유언자이신 그리스도의 죽음으로 이루어졌고, 그리스도는 또한 자기 언약의 살아 계신 집행자이십니다. 계 1:18은 그분이 살아 있는 자이며 죽었었으나 영원히 살아 계신다고 말하고, 요 14:19는 그분이 살아 계시므로 그분의 백성도 살 것이라고 말합니다.
문 27. 하나님의 은혜의 신약 경륜은 또 다른 변화를 겪게 됩니까?
답. 아닙니다. 그것은 주 예수의 재림 때까지 새롭고 변하지 않는 것으로 남을 것입니다(마 26:29).
문 28. 신약 아래 사는 우리에게도 구약 성경은 믿음과 실천의 법칙으로 계속 남아 있습니까?
답. 그렇습니다. 구약 성경도 신약 성경과 마찬가지로 그리스도에 관한 하나님의 기록이기 때문입니다. 모든 선지자는 그리스도에 관하여 예언했고, 그분에 대해 증언했습니다(행 10:43). 또한 그리스도께서는 영생이 그 안에 있고 그것들이 자신에 대해 증언하기 때문에 성경을 살피라고 명령하십니다(요 5:39).
문 29. 유언자의 죽음으로 확증되지 않았는데도 구약은 어떻게 효력을 가질 수 있었습니까?
답. 유언자이신 그리스도의 죽음이 그 경륜의 모든 속죄 제사들 안에서 모형으로 나타났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분은 창세로부터 죽임을 당한 어린양이라고 불리십니다(계 13:8).
문 30. 그 모형적 경륜은 신약 아래에서 이제 완전히 폐지되지 않았습니까?
답. 그렇습니다. 메시아가 제사와 예물을 그치게 하실 것이 약속되었고, 그에 따라 그리스도께서는 염소와 송아지의 피가 아니라 자기 피로 단번에 성소에 들어가 우리를 위하여 영원한 구속을 얻으셨습니다(히 9:11-12).
문 31. 왜 그 의식적 경륜은 폐지되었습니까?
답. 그것은 장차 올 좋은 일의 그림자일 뿐이고, 그 일들의 참 형상, 곧 그 자체가 아니었기 때문입니다(히 10:1).
문 32. 신약은 어떤 점에서 구약보다 뛰어납니까?
답. 여러 면 가운데 증거, 예배, 범위, 은사, 지속 기간에서 뛰어납니다.
문 33. 신약은 증거 면에서 어떻게 구약보다 뛰어납니까?
답. 구약은 오실 메시아를 말하지만, 신약은 이미 오신 메시아를 제시합니다(요 1:29, 41). 구약은 어둡고 구름 낀 듯했지만, 신약은 분명하고 명료합니다(고후 3:18).
문 34. 신약은 예배 면에서 어떻게 뛰어납니까?
답. 구약의 예배는 종의 멍에였지만, 신약의 예배는 자유롭고 영적이며 쉬운 것입니다(갈 5:1).
문 35. 신약은 범위 면에서 어떻게 구약보다 뛰어납니까?
답. 구약은 유대인들과(시 147:19-20) 이방인 가운데 몇몇 개종자들에게 제한되어 있었지만(출 12:48), 신약은 온 세상으로 확장됩니다(막 16:15). 또한 그 회심자들은 옛 경륜 아래에서보다 훨씬 더 많습니다(계 7:9).
문 36. 신약은 은사 면에서 어떻게 뛰어납니까?
답. 성령의 은사들이 구약 아래에서보다 신약 아래에서 더 풍성하고 더 효력 있게 주어집니다(행 2:17-18).
문 37. 신약은 지속 기간 면에서 어떻게 뛰어납니까?
답. 모형과 제사로 이루어진 구약의 경륜은 한동안만 지속되었습니다(히 8:13). 그러나 신약의 경륜은 세상 끝까지 변하지 않고 계속될 것입니다(마 28:20).
문 38. 왜 성경은 우리가 어떻게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고 즐거워할 수 있는지를 가르쳐 주는 유일한 법칙이라고 말합니까?
답. 성경의 저자이신 하나님 외에는 누구도, 성경을 통하여, 타락한 인류의 죄인들이 하나님 자신을 어떻게 영화롭게 하고 즐거워해야 하는지를 보여 줄 수 없기 때문입니다(미 6:6, 9; 마 11:25, 28).
문 39. 자연의 빛 또는 자연 이성이 유일한 법칙은 아니더라도, 우리가 어떻게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고 즐거워할 수 있는지를 가르치는 충분한 법칙으로 인정될 수는 없습니까?
답. 결코 그럴 수 없습니다. 자연 이성은 새 언약의 중보자이신 그리스도에 관하여 가장 작은 발견도 줄 수 없기 때문입니다(고전 2:14). 그리스도는 아담의 잃어버린 죄인들에게 구원의 유일한 길이십니다(요 14:6).
문 40.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를 인도하는 주된 법칙이라고 말하는 것으로 충분합니까?
답. 아닙니다. 그렇게 말하면 성경 외에 다른 법칙이 있다고 생각할 여지를 남기기 때문입니다. 그것이 주된 법칙이라고 불리지 않더라도, 죄인들을 그들의 제일 되는 목적에 이르게 하기에 그 자체로 충분히 선하고 충분할 수 있다고 생각하게 됩니다. 그러나 이것은 거짓이며 성경에 반합니다(눅 16:29, 31; 사 8:20; 행 4:12).
문 41. 성경의 완전성은 무엇에 있습니까?
답. 하나님의 영광과 사람의 구원과 믿음과 삶에 필요한 모든 것에 관한 하나님의 온전한 뜻이 성경에 명시적으로 기록되어 있거나, 선하고 필연적인 귀결로 성경에서 이끌어 낼 수 있다는 데 있습니다(딤후 3:15-17; 갈 1:8-9).
문 42. 명백하고 필연적인 성경의 귀결들도 명시적 성경 말씀과 마찬가지로 법칙의 일부로 인정되어야 합니까?
답. 그렇습니다. 주님께서 사두개인들을 반박하며 부활 교리를 증명하신 예에서 분명합니다(마 22:31-32). 하나님께서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하나님이라고 말씀하신 것은, 하나님이 죽은 자의 하나님이 아니라 살아 있는 자의 하나님이심을 보여 줍니다.
문 43. 성경은 분명하고 명료한 법칙입니까?
답. 구원을 위하여 알고 믿고 지켜야 할 모든 것은 성경의 이곳저곳에 매우 분명히 제시되어 있습니다. 그러므로 누구든지 일반적인 방편을 바르게 사용하면 그것들을 충분히 이해할 수 있습니다(시 119:105, 130).
문 44. 아무리 오래된 인간의 전통과 기록되지 않은 전통이라도 법칙의 일부로 인정되어야 합니까?
답. 아닙니다. 모든 인간 전통은 성경으로 검토되어야 합니다. 그것들이 이 말씀에 따라 말하지 않는다면, 그 안에는 빛이 없기 때문입니다(사 8:20).
문 45. 이방인들은 계시 없이 자신들이 가진 모든 도움으로 구원에 필요한 하나님과 하나님의 뜻에 관한 지식에 이를 수 있습니까?
답. 결코 그럴 수 없습니다. 그들은 하나님도 없고 세상에서 소망도 없는 자들로 선언되어 있기 때문입니다(엡 2:12). 계시가 없으면 백성이 망하며(잠 29:18), 우리가 구원을 받아야 할 이름은 하늘 아래 사람들 가운데 예수의 이름 외에는 없습니다(행 4:12).
문 46. 퀘이커파와 다른 열광주의자들이 주장하는, 말씀 없는 사람 안의 빛이나 말씀 없는 영을 우리의 인도를 위한 어떤 법칙으로 사용해야 합니까?
답. 아닙니다. 말씀 없이 주장되는 어떤 빛이나 영도 어둠과 미혹과 오류의 영일 뿐이기 때문입니다(요일 4:1, 6).
문 47. 성경은 원래 어떤 언어로 기록되었습니까?
답. 구약은 원래 히브리어로, 신약은 헬라어로 기록되었습니다.
문 48. 성경이 들어가는 모든 나라의 일반 언어로 성경이 번역되어야 하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답. 인류의 죄인들은 성경에 대한 권리와 이해관계를 가지고 있으며(잠 8:4), 하나님을 경외함으로 성경을 읽고 살피라는 명령을 받았기 때문입니다(요 5:39).
문 49. 종교의 모든 논쟁을 결정하고 사람들의 결정과 교리들을 검토할 때, 우리가 그 판결에 안식해야 할 최고의 재판관은 누구입니까?
답. 성경 안에서 말씀하시는 성령 외에는 없습니다(마 22:29; 행 28:25).
문 50. 외경이라고 불리는 책들은 왜 성경의 정경 일부가 아닌 것으로 배척되어야 합니까?
답. 그것들은 구약의 원래 언어로 기록되지 않았고, 하나님의 말씀들이 맡겨졌던 유대인들에게 성경으로 인정되지 않았으며, 구약과 신약의 성경에서 그토록 뚜렷하게 빛나는 위엄과 거룩함과 효력의 인장을 가지고 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또한 그것들은 선지자들의 끝이라고 불리는 말라기 이후에 기록되었고, 거짓되고 모순되며 이단적인 것들을 많이 담고 있기 때문입니다.
문 51. 성경의 비교할 수 없는 탁월함과 유익함은 무엇에 있습니까?
답. 성경은 모든 주권적 치료제가 잘 갖추어진 약방이며(시 107:20), 모든 참된 위로의 풍성한 창고이고(롬 15:4), 모든 영적 무기의 완전한 무기고이며(엡 6:13-18), 영광의 항구로 인도하는 틀림없는 나침반입니다(벧후 1:19).
Question 3
성경은 주로 무엇을 가르칩니까?
답: 성경은 주로 사람이 하나님에 관하여 믿어야 할 것과 하나님께서 사람에게 요구하시는 의무를 가르칩니다.
문 1. 성경이 가르치는 것을 믿는다는 것은 무엇입니까?
답. 성경의 진리들에 동의하고 그것을 신뢰하는 것입니다. 성경은 하나님의 말씀이므로, 그 진리들은 하나님의 권위 때문에 믿어야 합니다. 요 3:33, "그의 증언을 받는 자는 하나님이 참되시다는 데 자기 인장을 친 것입니다."
문 2. 믿음의 문제에서는 성경에서 배우는 것 외에는 아무것도 믿지 않고, 의무의 문제에서는 성경에서 배우는 것 외에는 아무것도 행하지 말아야 합니까?
답. 그렇습니다. 성경은 세상에서 신적 권위를 가진 유일한 책이기 때문입니다. 성경 안에 계시된 하나님의 뜻과 명령은 지극히 넓으므로, 우리가 믿고 행해야 할 것은 성경에 직접적으로나 필연적 귀결로 규정된 것뿐입니다(사 8:20).
문 3. 성경은 왜 주로 믿음과 실천의 문제들을 가르친다고 말합니까?
답. 성경에 계시된 모든 것은 똑같이 참이지만, 그 안의 모든 것이 구원에 똑같이 필수적인 것은 아니기 때문입니다(고전 7:12-13).
문 4. 이 질문에 제시된 교리의 순서는 무엇입니까?
답. 믿음 또는 믿는 것이 의무, 곧 순종의 기초로 세워집니다. 우리의 순종이나 의무가 우리의 믿음의 기초로 세워지는 것이 아닙니다(딛 3:8).
문 5. 믿어야 할 것들이 실천해야 할 것들보다 앞에 놓인 이유는 무엇입니까?
답. 은혜 언약에서의 일들의 순서를, 무죄 상태의 행위 언약에서 있었던 순서와 구별하기 위해서입니다(갈 3:12).
문 6. 행위 언약에서 일들의 순서는 어떠했습니까?
답. 행함, 곧 율법에 대한 완전한 순종이 약속된 생명의 특권의 기초였습니다. 롬 10:5, "이를 행하는 자는 그로 말미암아 살리라."
문 7. 이 순서는 은혜 언약, 곧 복음 계시에서 뒤집혔습니까?
답. 그렇습니다. 약속은 믿어져야 하고, 약속된 특권인 생명은 값없이 받아들여져야 합니다. 그리고 그 위에 감사와 사랑에서 나오는 율법에 대한 우리의 순종이 뒤따릅니다(렘 31:18-19).
문 8. 이것이 복음 교리의 순서라는 점은 어떻게 나타납니까?
답. 하나님께서 시내산에서 율법을 주실 때 세우신 순서가 바로 이것이기 때문입니다. 믿음의 기초가 먼저 "나는 여호와 네 하나님이라"는 서문의 말씀에 놓입니다. 이것은 은혜 언약의 요약이자 실체입니다. 그 다음 십계명이 뒤따르는데, 그것은 주권적인 은혜와 사랑의 이 허여 위에 접붙여진 것과 같습니다(출 20:2-17).
문 9. 이것은 스코틀랜드 교회의 표준문서들에 제시된 교리의 순서입니까?
답. 그렇습니다. 소요리문답의 "십계명의 서문은 우리에게 무엇을 가르칩니까?"라는 질문에 대한 답에서 드러납니다. 그 답은 "하나님은 주이시며 우리의 하나님과 구속자이시므로, 우리는 그분의 모든 계명을 지킬 의무가 있다"는 것입니다.
문 10. 그렇다면 하나님께서 우리의 하나님이 되시도록 하기 위해 우리가 계명을 지켜야 합니까?
답. 아닙니다. 그렇게 하면 행위 언약으로 미끄러져 들어가는 것입니다. 우리는 은혜 언약의 취지에 따라 "그가 우리의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계명을 지켜야 합니다. 시 45:11의 운문역은 "그분이 네 주이시니, 너는 그분을 경건히 예배하라"고 말합니다.
문 11. 왜 사람들은 본성적으로 자신들이 어떤 행위를 하면 하나님께서 그들의 하나님이 되실 것이라고 생각합니까?
답. 사람의 마음이 행위 언약의 순서, 곧 "행하라, 그러면 살리라"는 순서로 기울어지는 자연적 성향을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롬 9:32; 10:3).
문 12. 이 순서가 율법을 무효로 만들거나 율법의 의무에 대한 우리의 책임을 약화하지 않습니까?
답. 결코 아닙니다. 도리어 율법을 세우고, 의무를 이행해야 할 우리의 책임을 그 고유한 기초 위에 자리 잡게 합니다. 롬 3:31, "그런즉 우리가 믿음으로 말미암아 율법을 폐하느냐? 그럴 수 없느니라. 도리어 율법을 굳게 세우느니라."
문 13. 이 교리의 순서는 어떻게 더 증명됩니까?
답. 사도 바울이 지킨 교리의 방법에서 증명됩니다. 그는 모든 참된 복음적 순종이 믿음의 순종이라고 말합니다(롬 16:26). 그에 따라 그는 서신들에서 먼저 믿어야 할 믿음의 교리를 제시하고, 그 기초 위에서 실천되어야 할 의무들을 거듭 가르칩니다.
문 14. 복음적 순종이 하나님을 우리의 하나님으로 소유하게 하는 권리를 우리에게 줍니까?
답. 아닙니다. 그것은 우리가 그분 안에 가진 관계의 열매와 증거입니다(요일 2:3, 5).
문 15. 이 순서를 뒤집어, 우리가 행한 의무를 주께서 우리의 하나님이심을 믿는 기초로 삼는 데 위험이 있습니까?
답. 매우 큰 위험이 있습니다. 그것은 교황주의의 바로 그 영혼입니다. 이 순서를 뒤집음으로써 그들은 행위 언약과 선행 공로의 교리로 되돌아갔습니다. 그것은 전체 적그리스도적 구조물의 기초입니다.
문 16. 성경에서 선행에 보상이 약속된 것을 자주 보지 않습니까? 시 19:11은 "이를 지킴으로 상이 크니이다"라고 하고, 시 58:11은 "진실로 의인에게 갚음이 있다"고 말합니다.
답. 참입니다. 그러나 이것은 빚의 보상이 아니라 은혜의 보상입니다. 보상받는 사람은 그리스도를 믿는 신자여야 합니다. 그의 어떤 행위나 의무가 받아들여지기 전에, 믿음으로 그리스도와 연합하고 그리스도의 의가 전가됨으로 그 사람 자신이 먼저 받아들여져야 합니다(엡 1:6; 창 4:4).
문 17. 믿음이 없는 사람의 행위에 대해서는 무엇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까?
답. 그것들은 죽은 행위이므로 살아 계신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습니다. 나쁜 나무가 좋은 열매를 맺을 수 없으며(마 7:18), 그리스도와 그분과의 연합 없이는 우리가 아무것도 할 수 없습니다(요 15:4-5).
문 18. 새 출생과 믿음으로 그리스도와 연합해야 할 필요성을 드러내지 않은 채, 받아들여질 만한 모든 순종의 샘으로서 도덕적 의무만 가르치는 사람들은 어떻게 보아야 합니까?
답. 그들은 모래 위에 기초를 놓는 어리석은 건축자들이며, 그리스도의 복음을 왜곡하는 자들입니다. 사도는 그런 자들을 향해 두려운 심판을 선포합니다. 갈 1:9, "누구든지 너희가 받은 것 외에 다른 복음을 전하면 저주를 받을지어다."
Question 4
하나님은 무엇이십니까?
문제 4. 하나님은 무엇이십니까?
답: 하나님은 영이시며, 그의 존재와 지혜와 권능과 거룩함과 공의와 선하심과 진리에 있어서 무한하시고 영원하시며 불변하십니다. 하나님의 본성과 완전하심 일반에 관하여.
문 1. 믿어야 할 첫 번째 근본 진리는 무엇이며, 다른 모든 진리는 무엇에 의존합니까?
답. 하나님이 계시다는 것, 곧 하나님이 존재하신다는 것입니다. 히 11:6은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그가 계신 것과 그분을 믿어야 한다고 말합니다.
문 2. 이 근본 진리는 자연 이성의 빛으로도 알려집니까?
답. 그렇습니다. 사도가 롬 1:20에서 말하듯이, 창세로부터 하나님의 보이지 않는 것들, 곧 그의 영원하신 능력과 신격은 만드신 만물을 통하여 분명히 보입니다.
문 3. 하나님께서는 모든 인류에게 자신에 관한 지식을 어떤 책들 안에서 드러내셨습니까?
답. 창조와 섭리라는 큰 책들 안에서 드러내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 책들을 온 세상에 펼쳐 놓으십니다.
문 4. 창조라는 책은 하나님의 존재에 관하여 무엇을 말합니까?
답. 모든 피조물 전체와 각 피조물 하나하나가, 하나님께서 우리를 지으셨고 우리가 우리 자신을 지은 것이 아니라고 말합니다(시 100:3).
문 5. 섭리라는 책은 무엇을 말합니까?
답. 우리에게 존재를 주신 바로 그 하나님께서 우리를 그 존재 안에 붙드시고, 우리를 지으신 목적을 향하여 다스리신다고 말합니다(히 1:3).
문 6. 각 사람 자신의 존재도 하나님이 계시다는 설득력 있는 증거가 아닙니까?
답. 그렇습니다. 우리는 그분 안에서 살고 움직이며 존재하기 때문입니다. 아무도 모태에서 자기 형성에 관여할 수 없고(시 139:15-16), 자기 키를 한 자라도 더하거나 자기 머리털 하나를 희거나 검게 할 수도 없습니다(마 6:27; 5:36).
문 7. 창조와 섭리의 일들이 하나님께서 계시다는 것은 선포하지만, 하나님이 어떠하신 분인지도 말해 줄 수 있습니까?
답. 그것들은 하나님의 영원하신 능력과 지혜와 위대하심과 선하심에 대하여 희미한 빛을 조금 줄 뿐입니다. 그러나 진리의 성경이 하나님의 영으로 영혼에 적용될 때에만 우리는 하나님과 그의 완전하심에 관한 구원하는 지식에 이를 수 있습니다(요 5:39; 벧후 1:19; 롬 15:4).
문 8. 말씀 안에서 사람의 아들들에게 하나님을 계시하시는 분은 누구입니까?
답. 하나님의 영원하신 아들이신 그리스도입니다. 요 1:18은 아무도 하나님을 본 사람이 없으나, 아버지 품속에 있는 독생하신 아들이 그분을 나타내셨다고 말합니다.
문 9. 하나님께서는 성경에서 자신에 관하여 어떤 설명을 주셨습니까?
답. 하나님께서는 성경에서 짧지만 포괄적인 세 가지 설명을 주셨습니다. 첫째, 하나님은 빛이십니다(요일 1:5). 둘째, 하나님은 사랑이십니다(요일 4:8, 16). 셋째, 하나님은 영이십니다(요 4:24).
문 10. 왜 하나님은 빛이라고 불립니까?
답. 하나님의 무한한 순결과 전지 때문이며(합 1:13; 히 4:13), 또한 하나님께서 물질적 빛, 자연적 빛, 은혜의 빛, 영광스러운 빛 등 모든 빛의 샘과 아버지이시기 때문입니다(약 1:17).
문 11. 왜 하나님은 사랑이라고 불립니까?
답. 하나님께서 그리스도 안에서 자신을 나타내신 바에 따르면, 사랑은 하나님의 본성에서 다스리는 탁월함이며, 죄인들의 구원에 관하여 하나님의 다른 모든 완전하심이 밖으로 나가고 행사될 때 그 모든 완전하심에 색조를 주기 때문입니다(요 3:16; 요일 4:8-10).
문 12. 왜 하나님은 영이라고 불립니까?
답. 하나님께서는 필연적으로 그리고 본질적으로 살아 있고 지성 있는 실체이시며, 부패하지 않으시고, 육체가 아니시며, 살이나 뼈나 몸의 지체가 없으시기 때문입니다(눅 24:39).
문 13. 하나님은 모든 피조된 영들을 얼마나 뛰어넘으십니까?
답. 하나님은 모든 피조된 영들의 존재보다 무한히 높으시며, 모든 지성 있는 피조물의 이해보다도 무한히 높으십니다. 욥 37:23은 전능자를 우리가 찾아낼 수 없다고 말합니다.
문 14. 하나님께서 지극히 단순하고 순수한 영이신데도, 왜 성경은 눈, 귀, 손, 얼굴 같은 몸의 지체들을 하나님께 돌립니까?
답. 그런 비유적 표현들은 문자적 의미로 이해해서는 안 되고, 그 참된 목적과 의도에 따라 이해해야 합니다. 그것은 그 몸의 지체들이 희미하게 닮은 하나님의 본성의 어떤 행위와 완전하심을 나타내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눈과 귀는 하나님의 전지를 뜻하고, 손은 하나님의 권능을 나타내며, 얼굴은 하나님의 은총의 나타남을 뜻합니다. 하나님께 적용되는 이와 같은 다른 은유들도 이 빛 안에서 설명되어야 합니다.
문 15. 손으로 하나님에 대한 외적 형상을 만들거나, 상상 속에서 하나님에 대한 내적 관념의 형상을 만드는 것이 합법적입니까?
답. 그것은 절대적으로 불법이며 우상숭배입니다. 제2계명과 다른 성경들이 그것을 정죄합니다(신 4:12, 15; 롬 1:23). 사람은 자기 자신의 영혼이나 영에 대한 상상적 관념도 만들 수 없는데, 하물며 영들의 아버지이신 분에 대해서는 더욱 그렇습니다.
문 16. 하나님께서 영이시라는 데서 우리는 무엇을 배울 수 있습니까?
답. 하나님께 영과 진리로 예배해야 함을 배울 수 있습니다(요 4:24).
문 17. 하나님께 영과 진리로 예배한다는 것은 무엇입니까?
답. 잃어버린 인류의 죄인들에게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에 대한 실제적이고 구원하는 지식으로 하나님께 예배하는 것입니다(요 17:3).
문 18. 사람이 하나님에 대한 실제적이고 구원하는 지식에 이를 수 있습니까?
답. 사람이나 천사 어느 누구도 하나님을 포괄적으로 알 수는 없습니다(욥 11:7-9). 그러나 사람들이 자연의 빛으로 어느 정도 가질 수 있는 사변적이고 단순히 이성적인 지식 외에, 하나님에 대한 구원하고 만족시키는 지식은 얻을 수 있으며 말씀 안에서 약속되어 있습니다. 렘 24:7은 하나님께서 자신을 아는 마음을 주시겠다고 하며, 요 6:45는 모든 사람이 하나님께 가르침을 받을 것이라고 말합니다.
문 19. 하나님에 대한 구원하는 지식은 무엇에 있습니까?
답. 그것은 받은 자 외에는 아무도 모르는 흰 돌과 새 이름과 같습니다(계 2:17). 그것을 얻은 사람은 말로 다 표현하지 못하고, 이해할 수 없는 것을 조용히 경탄할 뿐입니다. 다만 하나님에 대한 구원하는 지식은 구주 그리스도 안에서, 또 그리스도를 통해서만 있습니다(고후 4:6).
문 20.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을 보고 구원적으로 아는 영혼의 언어는 무엇과 같습니까?
답. 모세가 출 15:11에서 "여호와여 신 중에 주와 같은 자가 누구니이까, 거룩함으로 영광스러우며 찬송할 만한 위엄이 있으며 기이한 일을 행하는 자가 누구니이까"라고 한 말과 같습니다. 또는 시편 기자가 시 48:14에서 "이 하나님은 영원히 우리 하나님이시니 그가 우리를 죽을 때까지 인도하시리로다"라고 한 말과 같습니다.
문 21. 우리가 하나님을 구원적으로 알게 되는 예수 그리스도의 얼굴에 있는 신적 영광의 광선들은 무엇입니까?
답. 그것들은 하나님께서 자신을 나타내시기를 기뻐하시는 그 본성의 속성과 완전하심들입니다. 곧 하나님께서 그의 존재와 지혜와 권능과 거룩함과 공의와 선하심과 진리에 있어서 무한하시고 영원하시며 불변하신다는 것입니다.
문 22. 하나님의 이 속성들은 하나님 자신 또는 신적 본질과 구별되는 것들입니까?
답. 결코 그렇지 않습니다. 하나님 안에 있는 것은 무엇이든 하나님 자신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모든 완전하심의 무한성은 신적 본질과 분리될 수 없습니다.
문 23. 신적 속성들은 서로 분리될 수 있습니까? 예를 들어 무한한 것이 영원하지 않을 수 있고, 무한하고 영원한 것이 불변하지 않을 수 있습니까?
답. 어떤 완전하심이든 하나님과 분리될 수 없으므로 서로도 분리될 수 없습니다. 우리는 연약함 때문에 그것들을 따로 생각하고 말해야 하지만, 엄밀히 말하면 그것들 모두를 합한 것은 신적 본성의 하나의 무한한 완전하심일 뿐입니다. 그것을 신적 본성에서 분리하려면 하나님께서 무한히 완전하지 않다고 인정해야 하는데, 그것을 가정하는 것은 최고의 신성모독입니다.
문 24. 하나님의 완전하심들이 왜 하나님의 속성이라고 불립니까?
답. 그것들이 하나님의 본성의 본질적 성질로서 하나님께 돌려지고 귀속되기 때문입니다(대상 29:11).
문 25. 하나님의 속성들은 보통 어떻게 나뉩니까?
답. 비공유적 속성과 공유적 속성으로 나뉩니다.
문 26. 답변에 언급된 하나님의 비공유적 속성은 무엇입니까?
답. 하나님의 무한성, 영원성, 불변성입니다.
문 27. 왜 비공유적이라고 불립니까?
답. 피조물 가운데서는 그것들의 가장 작은 닮음도 발견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문 28. 공유적이라고 불리는 속성들은 무엇입니까?
답. 존재, 지혜, 권능, 거룩함, 공의, 선하심, 진리입니다.
문 29. 왜 공유적이라고 불립니까?
답. 피조물, 곧 천사들과 성도들 가운데서 그것들의 희미한 닮음이나 유사성이 발견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성경은 그것들을 우리가 본받을 것으로 제시합니다. 시 11:6은 의로우신 여호와께서 의를 사랑하신다고 하며, 벧전 1:16은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하라"고 말합니다.
문 30. 이 공유적 속성들은 하나님 안에 있는 방식 그대로 어떤 피조물에게도 돌릴 수 있습니까?
답. 없습니다. 그것들은 하나님 안에서 무한하고 영원하며 불변하게 있습니다. 하나님은 그의 존재에 있어서 무한하시고 영원하시며 불변하시고, 그의 지혜에 있어서도 무한하시고 영원하시며 불변하시며, 나머지 속성들도 그러합니다. 어떤 피조물에게 이것을 말하는 것은 신성모독입니다. 그래서 마 19:17은 하나님 한 분 외에는 선한 이가 없다고 말합니다. 무한하고 영원하며 불변하게 선하신 분은 하나님뿐입니다.
하나님의 무한하심
문 31. 하나님께서 무한하시다는 것은 무엇입니까?
답. 하나님의 존재와 완전하심에 있어서 모든 경계와 한계가 전혀 없으시다는 것입니다(욥 11:7-9).
문 32. 하나님의 무한하심은 무엇을 포함합니까?
답. 하나님의 이해할 수 없으심, 무한 광대하심, 무소부재를 포함합니다.
문 33. 하나님께서 이해할 수 없으신다는 것은 무엇입니까?
답. 하나님의 존재와 완전하심에 관하여, 하나님께서 사람이나 천사의 가장 넓은 역량도 무한히 초월하신다는 것입니다(시 145:3; 욥 36:26).
문 34. 하나님의 무한 광대하심은 무엇입니까?
답. 그것이 하나님의 무소부재를 포함한다는 점에서, 그것은 하나님께서 모든 피조물 각각과 함께 어디에나 계시며 그 모든 한계와 경계를 무한히 넘어서시는 본성의 완전하심입니다(왕상 8:27).
문 35. 하나님의 무소부재와 무한 광대하심은 어떤 차이가 있습니까?
답. 하나님의 무소부재는 하나님의 무한 광대하심 안에 포함되고 그것과 분리될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무소부재는 모든 피조 실체 각각과 관련하여, 하나님께서 그 각각에 친밀하게 계시는 것으로 생각될 수 있습니다. 반면 하나님의 무한 광대하심은 모든 피조 실체의 경계를 무한히 넘어섭니다(대하 6:18).
문 36. 하나님께서는 지식과 권능에 있어서만 어디에나 계십니까?
답. 아닙니다. 하나님께서는 존재의 본질에 있어서도 어디에나 계십니다. 이것은 렘 23:23-24에서 분명합니다.
문 37. 이것은 이성으로도 어떻게 입증될 수 있습니까?
답. 이성은 어떤 피조물도 자기 스스로 존속할 수 없고, 그 존재와 작용을 붙드시는 하나님의 임재 없이는 존속할 수 없다고 가르칩니다. 행 17:28은 우리가 그분 안에서 살고 움직이며 존재한다고 말합니다.
문 38. 하나님께서는 땅 위의 교회와 어떻게 함께 계십니까?
답. 보이는 교회와는 하나님께서 제정하신 규례들과 표징들로 함께 계시며(출 20:24), 보이지 않는 교회 곧 신자들과는 성령의 내주와 역사로 함께 계십니다(겔 36:27).
문 39. 하나님께서는 하늘에서 어떻게 계십니까?
답. 하나님의 영광을 가장 밝고 직접적으로 드러내심으로 계십니다. 위 성소의 모든 거주자들이 하나님을 계신 그대로 보고, 영원히 끊김 없이 그분을 즐거워합니다(요일 3:2; 시 16:11).
문 40. 하나님께서는 지옥에서 어떻게 계십니까?
답. 무서운 권능과 공의의 방식으로 계십니다. 정죄받은 자들을 그 존재 안에 붙드셔서, 그들이 하나님의 보복적 진노의 타격 아래 영원히 있게 하십니다(시 90:11; 마 25:46).
문 41. 하나님의 무소부재에서 우리는 무엇을 배울 수 있습니까?
답. 성도들에게 어떤 환난이나 시험도 하나님의 지식과 동정 없이 닥칠 수 없다는 것을 배울 수 있습니다(사 43:2).
하나님의 영원하심
문 42. 시간과 영원의 차이는 무엇입니까?
답. 시간에는 계속적인 연속이 있어서 앞선 시간이 지나가고 다른 시간이 뒤따릅니다. 그러나 영원은 무한하고 불변하는 지속입니다.
문 43. 하나님께서 영원하시다는 것은 무엇입니까?
답. 하나님께서 시작도 끝도 시간의 연속도 없이 계속 존재하시는 본성의 완전하심입니다.
문 44. 하나님께서 시작이 없으심을 어떻게 증명합니까?
답. 시 90:2로 증명합니다. "산이 생기기 전, 땅과 세계도 주께서 조성하시기 전 곧 영원부터 영원까지 주는 하나님이시니이다." 곧 하나님께서 산들이 생기기 전, 시간의 시작 전부터 존재하셨으므로 절대적으로 영원하십니다.
문 45. 하나님께서 끝이 없으심을 어떻게 증명합니까?
답. 시 102:12, 27로 증명합니다. "여호와여 주는 영원히 계시고... 주의 연대는 무궁하리이다." 지속의 시작이 없는 것은 결코 그 끝을 가질 수 없고, 항상 필연적으로 존재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문 46. 하나님께 시간의 연속이 없으심을 어떻게 증명합니까?
답. 시 90:4는 주의 목전에는 천 년이 지나간 어제 같다고 말하고, 벧후 3:8은 주께는 하루가 천 년 같고 천 년이 하루 같다고 말합니다. 하나님은 항상 존재 안에 남아 계실 뿐 아니라, 그 존재 안에서 항상 동일하십니다(시 102:27).
문 47. 하나님의 영원성과 천사들 및 사람 영혼들의 영원성은 어떤 차이가 있습니까?
답. 하나님의 영원성은 본질적이고 절대적이며 독립적이고, 끝이 없을 뿐 아니라 시작도 없습니다. 그러나 천사들과 사람 영혼들의 영원성은 전혀 다른 성격입니다. 그들에게는 시작이 있었고, 시간이 계속되는 한 그들의 지속에는 연속이 있습니다. 그들이 끝을 갖지는 않을 것이지만, 그들의 이런 영원성은 그 본성에 필연적이고 본질적인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과 권능에서 흘러나옵니다.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면 그들에게 시작을 주신 것처럼 끝도 주실 수 있습니다.
문 48. 악인들은 하나님의 영원하심을 어떻게 사용해야 합니까?
답. 그들이 악함 가운데 계속 머무는 동안 이것은 그들에게 가장 큰 두려움의 재료가 되어야 합니다. 이 경우 하나님은 그들의 영원한 원수가 되시며, 영원한 멸망으로 그들을 벌하실 것이기 때문입니다(살후 1:9).
문 49. 경건한 자들, 곧 그리스도를 믿는 신자들은 하나님의 영원하심을 어떻게 사용해야 합니까?
답. 말할 수 없는 위로의 재료로 삼아야 합니다. 그들의 하나님께서 영원하신 하나님이시므로, 그들의 마음의 힘과 영원한 분깃이 되실 것이기 때문입니다(시 73:26).
하나님의 불변하심
문 50. 하나님께서 불변하신다는 것을 어떻게 이해합니까?
답. 하나님께서 실제적이거나 가능적인 어떤 변화에서도 무한히 자유로우시며 항상 동일하신, 가장 완전한 항구성입니다.
문 51. 하나님의 불변하심은 성경에서 어떻게 증명됩니까?
답. 말 3:6, "나 여호와는 변하지 아니하나니"와 약 1:17, "변함도 없으시고 회전하는 그림자도 없으신 빛들의 아버지"라는 말씀으로 증명됩니다.
문 52. 이성으로는 어떻게 증명됩니까?
답. 이성은 하나님께서 변하신다면 더 나은 쪽으로 변하시거나 더 나쁜 쪽으로 변하셔야 한다고 가르칩니다. 그러나 그 어느 것도 하나님의 절대적 완전성과 양립할 수 없습니다(마 5:48).
문 53. 어떤 피조물이 그 본성에서 불변할 수 있습니까?
답. 없습니다. 모든 피조물은 존재와 작용에 있어서 하나님께 의존하기 때문입니다(행 17:28).
문 54. 거룩한 천사들과 영화롭게 된 성도들은 불변하지 않습니까?
답. 그들은 변하지 않는 행복의 상태에 있습니다(엡 1:10). 그러나 이것은 주권적 은혜 때문이지 그들 자신의 본성 때문이 아닙니다(롬 6:23).
문 55. 창조는 하나님 안에 어떤 변화를 만들었습니까?
답. 창조는 피조물 안에 무에서 존재로의 변화를 만들었지만, 하나님 안에는 아무 변화도 만들지 않았습니다. 창조하려는 하나님의 뜻과 권능은 영원부터 동일했기 때문입니다.
문 56. 창 6:6이나 욘 3:10처럼 성경에서 하나님께서 때때로 후회하신다고 말할 때, 하나님은 어떻게 불변하십니까?
답. 이런 곳이나 그와 비슷한 곳에서 하나님께서 후회하신다고 말할 때, 그것은 하나님의 오류 없는 예지에 따른 방식이나 외적 행위의 변경만을 뜻합니다. 하나님의 마음이나 뜻의 변화는 아닙니다(욥 23:13).
문 57. 하나님의 불변하심에서 우리는 무엇을 배울 수 있습니까?
답. 하나님께서 그의 약속을 이루시고(미 7:20), 그의 사랑 안에서 안식하시며(습 3:17), 영혼 안에서 시작하신 선한 일을 완성하실 것임을 배울 수 있습니다(빌 1:6).
문 58. 하나님은 무엇에 있어서 무한하시고 영원하시며 불변하십니까?
답. 그의 존재와 지혜와 권능과 거룩함과 공의와 선하심과 진리에 있어서입니다.
하나님의 존재
문 59. 하나님의 존재란 무엇을 뜻합니까?
답. 보통 하나님의 본질이라고 불리는 것입니다.
문 60. 신적 본질은 무엇입니까?
답. 하나님께서 자기 안에서 무한히 복되시고, 하나님 자신 외에는 아무도 포괄할 수 없는 영광스럽고 초월적인 하나님의 본성입니다.
문 61. 존재의 가장 높은 완전성은 무엇입니까?
답. 아무것도 더할 수 없고 아무것도 뺄 수 없으며, 다른 모든 것에 독립적인 것입니다(욥 35:6-8).
문 62. 존재 자체, 곧 고유하고 엄밀한 의미의 존재는 하나님 외에 다른 이에게 돌릴 수 있습니까?
답. 없습니다. 하늘과 땅, 천사와 사람이 존재를 가지고 있기는 하지만, 무한하고 영원하며 불변하는 존재는 하나님뿐입니다. "나는 스스로 있는 자"라고 말씀하실 수 있는 분은 하나님뿐입니다(출 3:14).
문 63. "나는 스스로 있는 자"라는 이름의 의미는 무엇입니까?
답. 그것은 여호와라는 이름과 같은 의미입니다. 하나님께서 "나는 존재 자체이며, 하늘과 땅에 있는 모든 존재의 창시자요 샘이다"라고 말씀하신 것과 같습니다.
문 64. 하나님의 존재와 비교할 때 다른 모든 존재들은 무엇입니까?
답. 다른 모든 존재들은 말씀으로 존재하게 하신 하나님과 비교하면 창조되고 우연적이며 그림자 같은 존재들일 뿐입니다(시 33:6, 9).
문 65. 지극히 높고 무한하며 영원하신 존재를 전혀 생각하지 않고, 창조된 존재들에만 마음을 빼앗긴 사람들에 대하여 하나님께서는 무엇이라고 말씀하십니까?
답. 그들은 백성 가운데서 짐승 같고, 지혜가 없는 어리석은 자들이며(시 94:8), 자기 주인을 아는 소보다 더 짐승 같다고 말씀하십니다(사 1:3).
문 66. 모든 창조된 존재와 그들의 완전성은 원래 하나님 안에 있고 하나님에게서 나온 것이 아닙니까?
답. 그렇습니다. 하나님의 영의 반박할 수 없는 논증에서 분명합니다. 시 94:9-10은 "귀를 지으신 이가 듣지 아니하시랴, 눈을 만드신 이가 보지 아니하시랴, 사람에게 지식을 가르치시는 이가 알지 아니하시랴"고 말합니다.
문 67. 하나님의 존재에서 우리는 무엇을 배울 수 있습니까?
답. 하나님께서 모든 피조물에게 존재를 주셨듯이, 자신의 모든 약속에도 그것들이 온전히 성취되는 존재를 주실 것임을 배울 수 있습니다(출 6:8).
하나님의 지혜
문 68. 전지, 곧 무한한 지식과 이해는 무한한 지혜와 분리될 수 없이 연결되어 있지 않습니까?
답. 그렇습니다. 삼상 2:3은 여호와께서 지식의 하나님이시며 행동을 달아 보신다고 말합니다.
문 69. 하나님의 전지는 무엇입니까?
답. 하나님께서 한 영원한 행위로 자기 안에서 모든 것을 가장 완전하게 아시는 본성의 완전하심입니다(행 15:18).
문 70. 하나님께서 모든 것을 아신다는 것을 성경에서 어떻게 증명합니까?
답. 요일 3:20로 증명합니다. 하나님은 우리 마음보다 크시고 모든 것을 아십니다.
문 71. 하나님의 전지는 이성으로 어떻게 나타납니까?
답. 만물을 지으신 분은 자기의 작품을 알고 이해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시 94:9).
문 72. 하나님께서 지성 있는 피조물들에 대하여 완전한 지식을 가지고 계심은 어떻게 나타납니까?
답. 하나님께서 그들과 그들의 행위를 완전히 알지 못하신다면 그들의 최고 통치자와 재판장이 되실 수 없기 때문입니다(히 4:13).
문 73. 신적 지식 또는 전지의 대상은 무엇입니까?
답. 하나님 자신과(마 11:27) 그 밖의 모든 것 전부입니다(요 21:17).
문 74. 하나님께서 자신과 자신의 영광스러운 탁월함들에 대하여 가장 완전한 지식을 가지고 계시다는 것은 어떻게 분명합니까?
답. 그렇지 않다면 하나님의 이해가 무한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 자신 외의 모든 대상은 유한한데, 성경은 하나님의 명철이 무한하다고 말합니다(시 147:5).
문 75. 하나님의 지식은 피조물에게 절대적으로 의존하지 않습니까?
답. 그렇습니다. 하나님의 지식은 피조물에게서 매우 독립적이어서, 하나님께는 우발적이거나 불확실한 것이 전혀 없습니다(행 15:18; 겔 11:5).
문 76. 하나님께서 우리에게는 우연하고 돌발적으로 보이는 우발적 행위들에 대하여도 확실하고 오류 없는 지식을 가지고 계신다는 것은 어떻게 나타납니까?
답. 사람의 의지의 자유나 제2원인들에 달려 있는 미래 사건들이 성경에서 명시적으로 예언되었고,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확실히 미리 아신다는 데서 나타납니다. 예를 들면 요셉의 높아짐, 이스라엘이 애굽에서 압제받음, 우연히 쏜 화살에 의한 아합의 죽음, 온 세상에 호적하게 한 가이사의 명령이 그리스도의 베들레헴 탄생을 이루게 한 일, 그리고 다른 많은 사례들이 있습니다.
문 77. 하나님께서는 가능할 뿐인 것들을 어떻게 아십니까?
답. 하나님께서 그것들을 자기 권능 안에서 아십니다. 하나님께서 그렇게 작정하셨다면 그 권능으로 그것들을 쉽게 일어나게 하실 수 있기 때문입니다(마 19:26).
문 78. 하나님께서는 미래의 일들, 곧 실제로 시간 속에서 일어나는 것들을 어떻게 아십니까?
답. 하나님께서는 그것들을 이루실 수 있는 권능 안에서만 아시는 것이 아니라, 그것들의 장래 존재를 결정하시는 자신의 뜻 안에서도 아십니다(창 17:21).
문 79. 하나님의 지식은 일반적입니까, 개별적입니까?
답. 모든 개별 피조물과 그것에 관한 모든 상황에 대한 개별적인 지식입니다(시 139:2; 마 10:29-30).
문 80. 하나님의 지식에는 연속이 있습니까? 하나님께서 어떤 것을 다른 것보다 먼저 아십니까?
답. 하나님의 본질에 연속이 없듯이, 그의 지식에도 연속이 없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자기의 무한한 이해의 단일한 행위로 모든 것을 영원히, 오류 없이, 불변하게 아십니다. 히 4:13은 만물이 우리가 상대해야 할 이의 눈앞에 벌거벗은 것 같이 드러난다고 말합니다.
문 81. 하나님의 무한한 지식과 지혜의 차이를 어떻게 생각할 수 있습니까?
답. 하나님의 무한한 지식은 무한한 마음의 한 직관적 시선으로 하늘과 땅의 모든 것을 포괄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무한한 지혜는 하나님께서 그것들에게 존재를 주신 고유한 목적들로 그 모든 것을 이끄십니다(롬 11:36).
문 82. 하나님의 지혜는 창조의 일에서 어떻게 나타납니까?
답. 창조의 모든 부분에서 보이는 탁월한 질서와 아름다움과 조화에서 나타납니다(시 19:1-7). 또한 한 것이 다른 것에 봉사하도록 짜인 데서(호 2:21-22), 전체가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는 방향으로 향한 데서(계 4:11), 그리고 사람을 특별히 사랑받는 자로 삼아 그의 유익을 위하여 계산된 데서 나타납니다(시 115:16).
문 83. 하나님의 지혜는 섭리의 일들에서 어떻게 나타납니까?
답. 하나님께서 영원부터 자신의 무한한 마음 안에 세우신 계획에 따라 모든 경륜을 조정하시는 데서, 곧 그분의 뜻을 가장 신중하고 질서 있게 실행하시는 데서 나타납니다(시 33:10-11).
문 84. 하나님의 지혜는 구속의 일에서 어떻게 빛납니까?
답. 복되신 보증자의 순종과 죽음으로 하나님의 공의를 충만히 만족시키는 방식 안에서, 인류의 죄인들에게 하나님의 긍휼과 사랑이 존귀하게 나아가고 흘러나올 길을 만드신 데서 빛납니다(롬 5:21).
문 85. 우리는 하나님의 지혜에서 어떤 격려를 받아야 합니까?
답. 하나님께서 모든 것이 우리의 선을 위하여 함께 일하게 하실 것이라는 격려를 받아야 합니다(롬 8:28). 또한 우리를 무너뜨리려는 어떤 음모가 아무리 깊이 놓였다 해도 하나님의 지혜는 그것을 쉽게 좌절시키고 무너뜨릴 수 있다는 격려를 받아야 합니다(욥 5:13).
하나님의 권능
문 86. 하나님의 권능은 무엇입니까?
답. 하나님께서 하늘과 땅과 바다와 모든 깊은 곳에서 기뻐하시는 것은 무엇이든 하실 수 있는, 그 본성의 본질적 완전하심입니다(시 135:6).
문 87. 신적 권능의 대상은 무엇이며, 그것은 어디까지 미칩니까?
답. 가능한 모든 것에 미칩니다. 다만 하나님의 뜻에 의해, 하나님께서 행하기로 작정하신 것들에만 제한됩니다(마 26:53-54).
문 88. 하나님께서 거짓말하실 수 없고 자신을 부인하실 수 없다는 것이 하나님의 전능을 훼손합니까?
답. 결코 그렇지 않습니다. 오히려 하나님께서 악을 행하시거나 자기 뜻의 무한한 바름에서 떠나시는 것이 불가능하기 때문에 하나님은 전능하십니다. 삼상 15:29은 이스라엘의 힘이신 이는 거짓말하지 않으신다고 말합니다.
문 89.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무한한 권능을 무엇에서 나타내십니까?
답. 창조와 섭리와 구속에서 나타내십니다.
문 90. 하나님의 권능은 창조에서 어떻게 나타납니까?
답. 아무의 도움이나 수단 없이, 없는 것들을 있는 것처럼 부르시는 데서 나타납니다(롬 4:17; 사 44:24).
문 91. 하나님의 권능은 섭리의 운행에서 어떻게 나타납니까?
답. 모든 피조물이 원래의 무로 가라앉지 않도록 붙들고 보존하시는 데서 나타납니다(히 1:3). 특별히 교회를 둘러싼 모든 위험과 원수들 가운데서 교회를 보호하고 지키시는 데서 나타납니다(마 16:18).
문 92. 하나님의 권능은 영광스러운 구속의 일에서 어떻게 설명됩니까?
답. 그 구속의 주된 모퉁잇돌을 하나님의 아들의 위격에 인성이 연합되는 일에 놓으시고, 우리의 죄 때문에 신적 진노의 이해할 수 없는 짐 아래 계신 그리스도를 붙드시며, 사탄이 처음에 정복했던 바로 그 본성 안에서 통치자들과 권세들을 무장 해제시키심으로 설명됩니다. 그래서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능력"(고전 1:24), "여호와의 팔"(사 53:1), "주의 오른손의 사람"(시 80:17)이라고 불립니다.
문 93. 사람들은 하나님의 권능을 어떻게 부인하거나 남용합니까?
답. 이스라엘처럼 하나님의 권능을 제한함으로(시 78:19), 하나님의 팔보다 육신의 팔을 더 의지함으로(렘 17:5), 그리고 하나님의 진노보다 사람의 진노를 더 두려워함으로 그렇게 합니다(사 51:12-13).
문 94. 믿음은 약속하시는 하나님의 권능을 어떻게 활용할 수 있습니까?
답. 믿음은 하나님의 은혜로운 말씀의 성취를 위하여 그 권능을 붙잡을 수 있습니다(롬 4:20-21). 또한 죄와 사탄과 세상을 대적하고 이기기 위하여 "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시면 누가 우리를 대적하리요"라고 말하며 붙잡을 수 있습니다(롬 8:31). 또 아무리 어려운 명령된 의무라도 실천하기 위하여 "내게 능력 주시는 그리스도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고 말하며 붙잡을 수 있습니다(빌 4:13).
하나님의 거룩하심
문 95. 하나님의 거룩함은 무엇입니까?
답. 하나님께서 자기 자신의 순결과 자기 뜻에 합한 모든 것을 무한히 기뻐하시고(합 1:13), 그것에 반대되는 모든 것을 완전한 미움과 혐오로 미워하시는 본성의 본질적 바름 또는 온전함입니다(렘 44:4).
문 96. 하나님은 필연적으로 거룩하십니까?
답. 거룩함은 하나님의 존재만큼 하나님께 필연적입니다. 하나님께서 필연적으로 하나님이신 것처럼, 필연적으로 거룩하십니다. 계 15:4는 주님만 거룩하시므로 누가 주를 두려워하지 않겠느냐고 말합니다.
문 97.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거룩하심에 어떤 특별한 존귀를 두십니까?
답.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약속과 위협을 이루실 때 맹세하시는 속성으로 거룩하심을 특별히 택하십니다. 시 89:35는 하나님께서 자신의 거룩함으로 한 번 맹세하셨으니 다윗에게 거짓말하지 않겠다고 말합니다.
문 98. 유한한 피조물들이 하나님의 거룩하심의 밝음을 볼 수 있습니까?
답. 없습니다. 천사들 자신도 그리스도 안에 나타난 하나님의 무한한 거룩하심을 볼 때, 자기 날개로 얼굴을 가리는 것으로 묘사됩니다(사 6:2).
문 99. 인류의 죄인들은 어떻게 하나님의 거룩하심에 참여하게 됩니까?
답. 중생시키는 은혜와 둘째 아담에게 영적으로 접붙여짐으로 그렇게 됩니다(요 15:4-5). 또한 믿음으로 지극히 크고 보배로운 약속들을 활용함으로(벧후 1:4), 그리고 복음 계시의 거울 안에서 우리 눈앞에 제시된 하나님의 아들의 인격과 고난 안에 이 속성의 영광이 빛나는 것을 바라봄으로 그렇게 됩니다(고후 5:21).
문 100. 하나님께 속한 모든 것은 하나님의 거룩하심의 표와 인상을 지니고 있습니까?
답. 그렇습니다. 하나님은 자신의 모든 일에서 거룩하시고(시 145:17), 그의 말씀도 거룩하며(롬 1:2), 그의 언약 또는 약속도 거룩합니다(시 105:42). 그의 안식일도 거룩하고(사 58:13), 그의 백성도 거룩하며(사 62:12), 그의 섬기는 영들은 거룩한 천사들이고(계 14:10), 그가 거하시는 곳은 높고 거룩한 곳입니다(사 57:15).
문 101. 하나님의 거룩하심은 사람의 창조에서 무엇에 나타났습니까?
답. 사람을 정직하게, 자기 형상대로 지으신 데서 나타났고(전 7:29; 창 1:27), 하나님의 거룩하심의 사본인 율법을 사람의 마음에 기록하신 데서 나타났습니다(롬 7:12).
문 102. 하나님께서는 섭리적 절차에서 자신의 거룩하심을 어떻게 드러내셨습니까?
답. 범죄한 천사들을 아끼지 않으신 데서, 그리고 이 생에서 악명 높은 범죄자들에게 가하신 보이는 주목할 만한 심판들에서 드러내셨습니다(벧후 2:4-6).
문 103. 하나님의 거룩하심과 죄에 대한 혐오가 가장 높이 드러난 것은 무엇입니까?
답. 우리의 죄악을 담당하신 자기의 사랑하는 아들에게서 자기 얼굴을 숨기신 것입니다(마 27:46).
문 104. 하나님의 거룩하심에 가장 크게 반대되는 것은 무엇입니까?
답. 죄입니다. 그래서 죄는 하나님께서 미워하시는 그 가증한 것이라고 불립니다(렘 44:4).
문 105. 하나님께서는 죄를 어떻게 미워하십니까?
답. 하나님께서는 죄를 필연적으로, 그리고 완전한 미움으로 미워하십니다(시 5:4-6).
문 106. 하나님께서 이처럼 죄를 미워하신다면, 죄를 허락하시는 것이 하나님의 거룩하심과 어떻게 일치합니까?
답. 완전히 일치합니다. 하나님의 죄 허락은 죄의 실행에 영향을 주지 않으며, 죄의 실행은 전적으로 죄인의 자유의지에서 흘러나오기 때문입니다(약 1:13-14). 게다가 하나님께서는 그 일을 통하여, 아담이 무죄 가운데 계속 머물렀을 때보다 자신의 거룩하심과 죄에 대한 혐오를 더 밝게 나타내실 기회를 취하셨습니다. 곧 하나님께서는 자기 아들을 아끼지 않으시고 죄 때문에 죽음에 내주셨습니다(롬 8:32).
문 107. 우리는 하나님의 거룩하심을 어떻게 활용해야 합니까?
답. 그의 거룩하심을 기억하며 감사하고(시 30:4), 그 영광을 선포하며(출 15:11), 모든 행실에서 거룩함을 힘써야 합니다(벧전 1:15).
문 108. 우리가 하나님의 거룩하심에 합당한 인상을 가지고 있는지 어떻게 알 수 있습니까?
답. 하나님께 범죄하는 것을 두려워하고(창 39:9), 하나님께 더 닮아가려는 습관적 갈망을 가지고 있다면 알 수 있습니다(요일 3:3).
하나님의 공의
문 109. 하나님의 공의는 무엇입니까?
답. 하나님께서 자기 자신 안에서, 또 피조물을 향한 모든 길에서 무한히 의롭고 공평하신 본성의 본질적 속성입니다(신 32:4).
문 110. 하나님의 공의는 어떻게 고찰될 수 있습니까?
답. 하나님 자신과 관련하여, 또는 이성 있는 피조물들과 관련하여 고찰될 수 있습니다.
문 111. 하나님 자신과 관련된 하나님의 공의는 무엇입니까?
답. 하나님께서 자기 자신의 영광을 자신의 모든 절차의 고정되고 변하지 않는 규칙으로 삼으시는 것입니다(사 42:8).
문 112. 이성 있는 피조물들과 관련된 하나님의 공의는 무엇입니까?
답. 그들의 본성과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주신 율법에 따라 그들을 의롭게 다스리시는 것입니다(롬 2:12, 14-15).
문 113. 하나님의 공의는 보통 어떻게 구별됩니까?
답. 입법적 공의와 분배적 공의로 구별됩니다.
문 114. 입법적 공의는 무엇입니까?
답. 하나님께서 이성 있는 피조물들에게 가장 거룩하고 의롭고 선한 법을 주셔서, 그들이 행하거나 삼가기에 합당한 것을 명령하고 금하시는 것입니다(사 33:22).
문 115. 사람에게는 이 법들에 순종할 능력이 있습니까?
답. 사람에게 한때는 능력이 있었지만, 타락으로 그것을 잃었습니다(롬 3:23).
문 116. 사람이 줄 능력이 없는 순종을 하나님께서 요구하시는 것은 하나님의 공의와 어떻게 일치합니까?
답. 사람이 순종할 능력을 잃었다고 해서 하나님께서 자신의 법에 대한 순종을 요구하실 권리를 잃으실 수는 없습니다. 특히 사람의 무능은 사람 자신의 자발적 배교와 반역으로 얻게 된 것이기 때문입니다. 전 7:29은 하나님께서 사람을 정직하게 지으셨으나 사람들이 많은 꾀를 냈다고 말합니다.
문 117. 하나님의 분배적 공의는 무엇입니까?
답. 율법에 따라, 사람을 외모로 보지 않고, 이성 있는 피조물들에게 그 마땅한 것을 갚으시려는 하나님의 변함없는 뜻입니다(욥 34:11; 벧전 1:17).
문 118. 하나님께서 사람들 가운데 공의를 분배하실 때 따르시는 법들은 무엇입니까?
답. 두 가지입니다. 행위의 법과 믿음의 법입니다.
문 119. 그것들은 어디에 언급됩니까?
답. 롬 3:27에 언급됩니다. "그런즉 자랑할 데가 어디냐 있을 수 없느니라. 무슨 법으로냐 행위로냐 아니라 오직 믿음의 법으로니라."
문 120. 행위의 법과 믿음의 법은 무엇을 뜻합니까?
답. 행위의 법은 행위 언약을 뜻하고, 믿음의 법은 은혜 언약을 뜻합니다.
문 121. 행위의 법에 따르면 죄인에게 공의상 마땅한 것은 무엇입니까?
답. 죽음과 저주입니다. 그것은 시간 속에서와 영원에 걸쳐 모든 화와 비참을 포함합니다(롬 6:23; 갈 3:10).
문 122. 믿음의 법에 따르면 죄인에게 마땅한 것은 무엇입니까?
답. 보증자의 의가 그에게 전가되고 믿음으로 붙잡히는 것 때문에 받는 무죄 선언과 받아들여짐입니다(롬 3:24; 8:1).
문 123. 그리스도를 믿는 경건하지 않은 죄인을 하나님께서 이렇게 대하시는 것은 공의롭습니까?
답. 그렇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렇게 하심으로 자신의 의가 드러납니다. 롬 3:25-26은 하나님께서 그리스도를 그의 피를 믿음으로 말미암는 화목제물로 세우셔서 자기의 의로우심을 나타내셨고, 예수를 믿는 자를 의롭다 하시면서도 친히 의로우려 하셨다고 말합니다.
문 124. 하나님께서는 자기 백성이 생명의 규칙인 율법에 보이는 진실하지만 불완전한 순종에 보상하십니까?
답.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는 데에는 참으로 큰 상이 있습니다(시 19:11). 그러나 그 상은 전적으로 값없는 은혜에서 나는 것이며 빚에서 나는 것이 아닙니다(롬 4:4-5). 그것은 그들의 순종 안에 있는 어떤 가치 때문이 아니라(시 115:1), 오직 그리스도께서 죽기까지 순종하심으로 공로를 이루신 것 때문입니다(벧전 2:5).
문 125. 이런 종류의 공의는 무엇이라고 불립니까?
답. 보상적 또는 상 주는 공의라고 불립니다. 시 58:11은 의인에게 상이 있다고 말합니다.
문 126. 하나님께서 범법자들에게 보복하시는 것은 의로운 공의의 행위가 아닙니까?
답. 그렇습니다. 모든 범법과 불순종은 공정한 보응을 받기 때문입니다(히 2:2). 또 괴롭게 하는 자들에게 환난으로 갚으시는 것은 의로운 일입니다(살후 1:6). 그래서 같은 사도는 롬 3:5-6에서, 보복하시는 하나님이 불의하시냐고 묻고 결코 그렇지 않다고 하며, 그렇다면 하나님께서 어떻게 세상을 심판하시겠느냐고 말합니다.
문 127. 하나님의 이 공의는 무엇이라고 불립니까?
답. 보복적 또는 벌 주는 공의라고 불립니다(행 28:4).
문 128. 보복적 공의는 무엇입니까?
답. 율법에서 위협된 죄에 대한 형벌을 하나님께서 죄 위에 가하시는 것입니다(창 2:17; 겔 18:4).
문 129. 하나님께서 자기의 자유로운 뜻으로 자기 공의에 대한 만족 없이 죄를 용서하실 수 있었습니까?
답. 없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죄악과 허물과 죄를 용서하시면서도, 곧 만족 없이, 결코 죄 있는 자를 무죄하다 하지 않겠다고 선언하셨기 때문입니다(출 34:7).
문 130. 보복적 또는 벌 주는 공의가 하나님께 본질적이라는 것을 어떻게 증명합니까?
답. 죄를 미워하지 않으실 수 없고 따라서 벌하지 않으실 수 없는 하나님의 무한한 거룩하심에서 증명됩니다(합 1:12-13). 또한 위협하신 말씀에 대한 하나님의 신실하심에서(창 2:17; 시 95:11), 이 생에서 죄인들에게 가해진 주목할 만한 심판들에서(유 5, 7), 그리고 죄를 용서할 수 있는 다른 가능한 길이 있었다면 반드시 아끼셨을 하나님의 독생자의 고난과 죽음에서 증명됩니다. 죄 용서는 그리스도의 만족을 통하지 않고는 불가능했습니다(마 26:42; 고후 5:21).
문 131. 자기 아들의 만족시키는 죽음으로 영광스럽게 된 하나님의 공의를 우리는 어떻게 활용해야 합니까?
답. 완전하고 충만하게 만족된 그 공의를 보증자 안에서 주장해야 합니다. 그것은 모든 긍휼과 은혜가 우리에게 풍성히 흘러오기를 기대하는 존귀한 통로입니다. 시편 기자도 시 25:11에서 "여호와여 나의 죄악이 크오니 주의 이름으로 말미암아 사하소서"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선하심
문 132. 하나님의 선하심은 무엇입니까?
답. 하나님께서 자기 자신 안에서 무한히 선하시며, 다른 이들에게 모든 선의 창시자와 샘이 되시는 본성의 본질적 성질입니다(시 119:68).
문 133. 하나님의 선하심은 어떻게 구별될 수 있습니까?
답. 하나님의 절대적 선하심과 관계적 선하심으로 구별될 수 있습니다.
문 134. 하나님의 절대적 선하심은 무엇입니까?
답. 피조물과의 관계에서 고찰하지 않은 하나님의 본성의 본질적 선하심입니다. 마 19:17은 하나님 한 분 외에는 선한 이가 없다고 말합니다.
문 135. 하나님의 관계적 선하심은 무엇입니까?
답. 하나님의 선하심이 피조물들과 맺는 관계입니다. 그것은 피조물들에게 선을 행하시려는 하나님의 본성의 성향에서 나타나며(출 33:19), 창조와 섭리와 구속 안에서 하나님의 풍성하심의 복을 피조물들에게 실제로 나타내고 전달하시는 데서 나타납니다(출 34:6-7).
문 136. 하나님의 선하심은 일반적인 창조의 일에서 어떻게 나타납니까?
답. 하나님께서 피조물들을 전혀 필요로 하지 않으시고, 어떤 피조물도 만들어지지 않았더라도 자기 안에서 무한히 행복하셨는데도 피조물들에게 존재를 주신 데서 나타납니다(시 16:2). 또한 모든 것을 심히 좋게 만드신 데서 나타납니다(창 1:31).
문 137. 하나님의 선하심은 특별히 사람의 창조에서 어떻게 드러납니까?
답. 사람을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으시고, 사람이 사용하도록 세상에 다양한 피조물들을 갖추시며, 사람에게 그것들을 다스릴 권세를 주시고(창 1:27-28), 사람과 언약을 맺으신 데서 드러납니다(창 2:16-17).
문 138. 하나님의 선하심은 하나님의 섭리에서 어떻게 나타납니까?
답. 피조물들을 보존하시고 그들을 위하여 풍성하게 공급하시는 데서 나타납니다(시 145:9, 15-16).
문 139. 이 선하심은 어떻게 구별됩니까?
답. 일반적 선하심과 특별한 선하심으로 구별됩니다.
문 140. 하나님의 일반적 선하심은 무엇입니까?
답. 이 생의 좋은 것들을 피조물들 가운데 구별 없이 나누어 주시는 것입니다. 마 5:45은 하나님께서 해를 악인과 선인에게 비추시며 비를 의로운 자와 불의한 자에게 내려 주신다고 말합니다.
문 141. 하나님께서는 자기 원수인 악인들에게도 선하십니까?
답. 그렇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들에게 공급하시며 그 마음에 음식과 기쁨을 채우실 뿐 아니라(행 14:17), 그들을 향하여 오래 참으심을 베푸시고(느 9:17), 보이는 교회 안에 있는 그런 사람들에게는 구원의 방편들도 주십니다(행 13:26).
문 142. 하나님의 특별한 선하심은 무엇입니까?
답. 잃어버린 인류 가운데 일정한 수의 사람들을 향한 하나님의 구별하시는 사랑으로, 그리스도를 통한 그들의 구속 안에 나타납니다(계 5:9).
문 143. 하나님의 선하심은 구속의 일에서 무엇에 나타납니까?
답. 구속의 계획과 실행 모두에 나타납니다.
문 144. 하나님의 선하심은 구속의 계획에서 어떻게 나타납니까?
답. 우리의 낮은 상태를 기억하시고(시 136:23), 자기 아들 곧 능하신 분 위에 우리의 도움을 두시며(시 89:19), 그를 영원부터 새 언약의 머리로 세우신 데서 나타납니다(잠 8:23).
문 145. 하나님의 선하심은 우리의 구속 실행에서 어떻게 나타납니까?
답. 자기 아들을 보내셔서 우리의 본성을 취하게 하시고, 그렇게 하여 우리를 위하여 모든 의를 이루게 하신 데서 나타납니다(요 3:16; 렘 23:6). 또한 그 의의 기초 위에서, 찬물 한 잔부터 그분의 보좌에 함께 앉는 자리까지 은혜와 영광과 모든 좋은 것을 우리에게 주시는 데서 나타납니다(시 84:11; 계 3:21).
문 146. 하나님의 특별한 선하심은 어떤 흐름들로 흘러나옵니까?
답. 사랑과 은혜와 긍휼의 흐름들로 흘러나옵니다. 하나님의 이름에 따라 출 34:6은 "여호와라 여호와라 자비롭고 은혜로운 하나님"이라고 말합니다.
문 147.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와 긍휼은 어떤 차이가 있습니까?
답. 그것들은 대체로 같은 것입니다. 다만 사랑은 죄인을 단순히 하나님의 피조물로 보고, 은혜는 죄인을 받을 자격이 없는 자로 보며, 긍휼은 만족을 통하여 죄인을 비참 가운데 있는 자로 봅니다.
문 148. 하나님의 특별한 선하심의 대상은 누구입니까?
답. 하나님의 택하신 자들입니다. 시 106:4-5는 "주의 택하신 자가 형통함을 내가 보게 하시며"라고 말합니다.
문 149. 하나님의 이 특별한 선하심은 말로 표현될 수 있습니까?
답. 없습니다. 고전 2:9은 하나님께서 자기를 사랑하는 자들을 위하여 예비하신 것은 눈으로 보지 못하고 귀로 듣지 못하고 사람의 마음으로 생각하지도 못했다고 말합니다. 또 시 31:19은 주를 두려워하는 자들을 위하여 쌓아 두신 주의 선하심이 얼마나 큰지 노래합니다.
문 150. 하나님의 이 선하심은 어디에 쌓여 있습니까?
답. 그리스도 안에 쌓여 있습니다. 그리스도께서 사람들을 위하여 하나님의 선하심의 선물들을 받으셨기 때문입니다. 시 68:18과 엡 4:8은 그가 높은 곳에 오르실 때 사람들에게 선물을 주셨다고 말합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그를 영원토록 지극히 복되게 하셨습니다(시 21:6).
문 151. 이 선하심은 어떻게 펼쳐지고 우리 가까이에 오게 됩니까?
답. 지극히 크고 보배로운 약속들 안에 펼쳐지고(벧후 1:4), 복음의 충만하고 값없고 막힘 없는 제안 안에서 가까이 옵니다(막 16:15).
문 152. 우리는 어떻게 이 모든 선하심에 구원적으로 참여하게 됩니까?
답. 믿음으로, 복음 안에서 값없이 제시되신 그리스도만을 구원을 위하여 받아들이고 의지함으로 참여하게 됩니다(요 1:12; 고전 3:22-23).
문 153. 이 선하심의 성질들은 무엇입니까?
답. 그것은 때에 맞는 선하심이고(히 4:16), 영혼을 만족시키는 선하심이며(시 107:9), 불변하고 영원한 선하심입니다(시 52:1).
문 154. 우리는 하나님의 선하심을 어떻게 활용해야 합니까?
답. 여호와의 선하심과 사람의 자녀들에게 행하신 기이한 일들로 말미암아 그분을 찬송해야 합니다(시 107:8). 또한 하나님의 선하심을 생각하여 회개로 이끌려야 하며(롬 2:4), 그 선하심을 본받아야 합니다(히 13:16).
하나님의 진리
문 155. 하나님의 진리는 무엇입니까?
답.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것은 무엇이든 반드시 성취하고 이루시며, 말씀하신 대로 행하지 않으실 수 없는 본성의 본질적 완전하심입니다(민 23:19).
문 156. 하나님의 이 완전하심은 무엇과 특별한 관계를 가집니까?
답. 하나님의 말씀 안에 있는 그의 뜻의 계시와 특별한 관계를 가집니다. 그러므로 성경 전체는 오류 없는 진리입니다. 모든 것이 이루어지기까지 일점일획도 결코 없어지지 않을 것입니다(마 5:18). 또한 주의 말씀은 영원히 있습니다(벧전 1:25).
문 157. 하나님의 말씀과 관련된 하나님의 진리는 보통 무엇이라고 불립니까?
답. 하나님의 신실하심 또는 진실하심이라고 불립니다. 히 10:23은 약속하신 이가 신실하시다고 말합니다.
문 158. 하나님의 진리 또는 신실하심은 무엇에 반대됩니까?
답. 마음의 모든 변화에 반대됩니다. 욥 23:13은 하나님께서 한 마음이시니 누가 돌이키겠느냐고 말합니다. 또한 모든 거짓말과 가장에도 반대됩니다. 히 6:18은 하나님께서 거짓말하실 수 없다고 말합니다.
문 159. 하나님의 말씀들 안에 어떤 모순이 있을 수 있습니까?
답. 없습니다. 진리는 언제나 자기 자신과 조화를 이루며, 하나님은 영원히 진리를 지키시기 때문입니다(시 146:6).
문 160.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것을 잊으실 수 있습니까?
답. 결코 그럴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자기 언약을 영원히 기억하실 것이기 때문입니다(시 111:5).
문 161. 하나님의 진리 또는 신실하심은 무엇에서 나타납니까?
답. 하나님의 약속들이 정확하게 성취되는 데서 나타나고(수 23:14), 하나님의 위협들이 확실하게 집행되는 데서 나타납니다(슥 1:6).
문 162. 우리는 어떻게 하나님의 진리와 신실하심에 존귀를 돌립니까?
답. 믿음으로 그렇게 합니다. 믿음은 하나님이 참되시다는 데 인을 치고(요 3:33), 약속하신 이를 신실하신 분으로 판단합니다(히 11:11).
문 163. 하나님의 이 속성은 어떤 죄로 가장 크게 불명예스럽게 됩니까?
답. 불신앙의 죄로 가장 크게 불명예스럽게 됩니다. 불신앙은 하나님께서 자기 아들에 관하여 주신 증언을 믿지 않기 때문에 하나님을 거짓말하는 자로 만들기 때문입니다(요일 5:10).
문 164. 하나님께서는 자기 아들에 관하여 어떤 증언을 주십니까?
답. "이 증언은 이것이니 하나님이 우리에게 영생을 주신 것과 이 생명이 그의 아들 안에 있는 그것"입니다(요일 5:11).
문 165. 이 증언은 누구에게 주어집니까?
답. 믿음의 근거로서 복음을 듣는 모든 사람에게 주어집니다. 막 16:15은 온 천하에 다니며 만민에게 복음을 전파하라고 말하고, 행 2:39은 이 약속이 너희와 너희 자녀와 모든 먼 데 사람, 곧 주 우리 하나님이 얼마든지 부르시는 자들에게 있다고 말합니다.
문 166. 이 증언이 복음을 듣는 모든 사람에게 믿음의 근거로 주어진다는 것은 어떻게 나타납니까?
답. 그렇지 않다면 복음 아래 있는 불신자들이 하나님을 거짓말하는 자로 만드는 것이 불가능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들이 이 증언과 아무 상관이 없고, 그것을 자신에게 적용하여 믿을 의무가 없다면, 그것을 거절하는 것이 그들의 죄가 될 수 없습니다. 율법이 없으면 범법도 없기 때문입니다(롬 4:15).
문 167. 진리의 하나님께서 그 증언 또는 약속을 복음을 듣는 모든 사람에게 하셨다면, 하나님은 그 경우 모든 사람에게 그것을 이루실 의무가 있지 않습니까?
답. 결코 그렇지 않습니다. 불신자는 고의로 그 약속을 거절하고, 그로부터 아무 유익도 얻지 못할 것이기 때문입니다(시 81:10-13).
문 168. 성경의 어떤 예로 이것을 설명할 수 있습니까?
답. 애굽에서 나온 모든 이스라엘에게 무차별적으로 주어진 가나안의 약속의 예로 설명할 수 있습니다(출 6:6, 8). 그러나 그들 중 많은 사람은 불신앙 때문에 들어갈 수 없었습니다(히 3:19). 이와 같이 영생의 약속은 복음을 듣는 모든 사람에게 주어지지만, 그들 중 많은 사람이 그것에 이르지 못합니다. 들은 말씀이 듣는 자들 안에서 믿음과 결합되지 않아 유익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히 4:1-2).
문 169. 그렇다면 복음 아래 있는 불신자들의 비참한 상태는 무엇입니까?
답. 그들은 이미 정죄를 받았고, 하나님의 진노가 그들 위에 머물러 있습니다(요 3:18, 36).
문 170. 우리는 하나님의 진리와 신실하심을 어떻게 활용해야 합니까?
답. 진리의 길을 택하고(시 119:30), 그 안에서 걸으며(요삼 4), 세상 앞에서 그것을 증언하고(히 10:23), 하나님의 진리로 말미암아 그분을 찬송하며(시 148:2), 불신앙으로 약속을 의심하지 않고 하나님의 말씀 위에서 그분을 신뢰해야 합니다(롬 4: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