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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조·신앙고백 Guido de Brès 1561 reform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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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 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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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That there is one only God
우리는 모두 마음으로 믿고 입으로 고백하노니, 우리가 하나님이라 부르는 단일하고 영적인 한 분 존재만이 계시며, 그분은 영원하시고, 헤아릴 수 없으시며, 보이지 않으시고, 변하지 않으시며, 무한하시고, 전능하시며, 온전히 지혜로우시고, 의로우시며, 선하시고, 모든 선이 넘쳐흐르는 샘이시다.
2 By what means God is made known unto us
우리는 두 가지 방편으로 그분을 안다. 첫째는 우주의 창조와 보존과 통치로써이니, 그것은 가장 아름다운 책처럼 우리 눈앞에 있어, 그 안의 크고 작은 모든 피조물이 마치 수많은 글자처럼 우리를 이끌어 하나님의 보이지 않는 것들 곧 그분의 영원하신 권능과 신성을 깊이 생각하게 한다. 사도 바울이 로마서 1장 20절에서 말한 바와 같다. 이 모든 것은 사람들을 깨우치고 그들을 변명할 수 없게 하기에 충분하다. 둘째로, 그분은 자신의 거룩하고 신적인 말씀으로 자기를 우리에게 더 분명하고 충만하게 알리시니, 곧 이생에서 그분의 영광과 우리의 구원을 위하여 우리가 알아야 할 만큼 알리신다.
3 Of the written word of God
우리는 고백하노니, 이 하나님의 말씀은 사람의 뜻으로 보내지거나 전해진 것이 아니라, 사도 베드로가 말한 대로 하나님의 거룩한 사람들이 성령에 감동되어 말한 것이다. 그리고 그 후에 하나님께서는 우리와 우리의 구원을 위하여 가지신 특별한 돌보심으로, 자기 종들인 선지자들과 사도들에게 명하사 자신의 계시된 말씀을 기록하게 하셨으며, 또 그분 자신이 친히 손가락으로 율법의 두 돌판을 쓰셨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러한 기록들을 거룩하고 신적인 성경이라 부른다.
4 Canonical Books of the Holy Scriptures
우리는 믿노니, 성경은 두 권의 책 곧 구약과 신약에 담겨 있으며, 이것들은 정경이어서 그것에 반하여 아무것도 제기될 수 없다. 이것들은 하나님의 교회에서 이렇게 이름 붙여졌다. 구약의 책들은 모세의 다섯 책, 곧 창세기, 출애굽기, 레위기, 민수기, 신명기이며, 여호수아, 사사기, 룻기, 사무엘 두 권, 열왕기 두 권, 역대기 두 권(흔히 파랄리포메논이라 불림), 에스라 첫째 책, 느헤미야, 에스더, 욥기, 다윗의 시편, 솔로몬의 세 책 곧 잠언, 전도서, 아가, 네 대선지서 곧 이사야, 예레미야, 에스겔, 다니엘, 그리고 열두 소선지서 곧 호세아, 요엘, 아모스, 오바댜, 요나, 미가, 나훔, 하박국, 스바냐, 학개, 스가랴, 말라기이다. 신약의 책들은 네 복음서 기자 곧 마태, 마가, 누가, 요한이며, 사도행전, 사도 바울의 열네 서신 곧 로마서 한 통, 고린도서 두 통, 갈라디아서 한 통, 에베소서 한 통, 빌립보서 한 통, 골로새서 한 통, 데살로니가서 두 통, 디모데서 두 통, 디도서 한 통, 빌레몬서 한 통, 히브리서 한 통이며, 다른 사도들의 일곱 서신 곧 야고보서 한 통, 베드로서 두 통, 요한서 세 통, 유다서 한 통, 그리고 사도 요한의 계시록이다.
5 From whence do the Holy Scriptures derive their dignity and authority
우리는 이 모든 책을, 오직 이것들만을, 거룩하고 정경적인 것으로 받아들여, 우리 믿음의 규범과 기초와 확증으로 삼으며, 그 안에 담긴 모든 것을 조금도 의심 없이 믿는다. 이는 교회가 그것들을 그러한 것으로 받아들이고 인정하기 때문이라기보다는, 더욱이 성령께서 그것들이 하나님께로부터 왔음을 우리 마음에 증언하시기 때문이니, 그것들은 그 증거를 자체 안에 지니고 있다. 참으로 눈먼 자라도 그 안에 예언된 일들이 이루어지고 있음을 알아볼 수 있기 때문이다.
6 The difference between the canonical and apocryphal books
우리는 그 거룩한 책들을 외경과 구별한다. 곧 에스드라 셋째와 넷째 책, 토비트서, 유딧서, 지혜서, 예수스 시락(집회서), 바룩서, 에스더서의 부록, 풀무불 속 세 아이의 노래, 수산나 이야기, 벨과 용 이야기, 므낫세의 기도, 그리고 마카베오 두 책이다. 교회는 이 모든 것을 정경의 책들과 일치하는 한도에서 읽고 교훈을 얻을 수 있으나, 그것들은 우리가 그 증언으로 믿음의 어떤 조항이나 그리스도교의 어떤 것을 확증할 만한 권위와 효력을 결코 가지지 못하며, 하물며 다른 거룩한 책들의 권위를 깎아내릴 수는 더더욱 없다.
7 The sufficiency of the Holy Scriptures, to be the only rule of faith
우리는 믿노니, 그 거룩한 성경은 하나님의 뜻을 온전히 담고 있으며, 사람이 구원에 이르도록 마땅히 믿어야 할 것은 무엇이든 그 안에 충분히 가르쳐져 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요구하시는 예배의 온 방식이 그 안에 자세히 기록되어 있으므로, 비록 사도라 할지라도 우리가 이제 성경에서 배운 것과 다르게 가르치는 것은 합당하지 않으며, 사도 바울이 말한 대로, 하늘에서 온 천사라 할지라도 그러하다. 하나님의 말씀에 무엇을 더하거나 빼는 것이 금지되어 있으므로, 그 교리가 모든 면에서 가장 완전하고 온전함이 이로써 분명히 드러난다. 또한 우리는 사람의 어떤 글도, 아무리 거룩할지라도, 그 신적인 성경과 비교해서는 안 되며, 관습이나 많은 무리나 오랜 연조나 시대와 인물의 계승이나 공의회나 결정이나 법령을 하나님의 진리와 견주어서도 안 된다. 진리는 모든 것 위에 있기 때문이니, 모든 사람은 스스로 거짓되며 헛것보다 더 헛되다. 그러므로 우리는 사도들이 우리에게 가르친 이 무오한 규범과 일치하지 않는 것은 무엇이든 마음을 다하여 배척하노니, 사도들은 ‘영들이 하나님께 속하였나 분별하라’ 하였고, 또한 ‘누구든지 너희에게 나아와 이 교훈을 가지지 아니하거든 그를 집에 받아들이지 말라’ 하였다.
8 That God is one in essence, yet nevertheless distinguished in three persons
이 진리와 이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우리는 한 분 하나님만을 믿으니, 그분은 하나의 단일한 본질이시며, 그 안에 세 위격이 그 전달될 수 없는 고유성을 따라 실제로, 참으로, 영원히 구별되어 계시니, 곧 성부와 성자와 성령이시다. 성부는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모든 것의 원인이요 기원이며 시작이시고, 성자는 성부의 말씀이요 지혜요 형상이시며, 성령은 성부와 성자에게서 나오시는 영원한 권능과 능력이시다. 그럼에도 하나님은 이 구별로 인하여 셋으로 나뉘지 않으시니, 이는 성경이 우리에게 가르치기를 성부와 성자와 성령이 각기 자기 위격을 가지시되 그 고유성으로 구별되나, 이 세 위격은 오직 한 분 하나님이실 뿐이라 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성부는 성자가 아니시요 성자는 성부가 아니시며, 마찬가지로 성령은 성부도 성자도 아니심이 분명하다. 그럼에도 이렇게 구별되는 이 위격들은 나뉘지도 않고 서로 섞이지도 않으니, 성부께서 육신을 취하신 것도 아니요 성령께서 취하신 것도 아니며, 오직 성자께서만 취하셨다. 성부께서는 결코 자기 성자 없이, 또는 자기 성령 없이 계신 적이 없으시니, 이는 그 셋이 모두 함께 영원하시고 함께 한 본질이시기 때문이다. 처음도 없고 나중도 없으니, 이는 그 셋이 모두 진리와 권능과 선하심과 자비에 있어 하나이시기 때문이다.
9 The truth of the foregoing article of the trinity of persons in one God
이 모든 것을 우리는 성경의 증언으로부터, 또 그 위격들의 사역으로부터, 특히 우리 자신 안에서 느끼는 사역으로부터 안다. 이 거룩한 삼위일체를 믿도록 우리에게 가르치는 성경의 증언들은 구약의 여러 곳에 기록되어 있으니, 그것들을 다 열거할 필요는 없고 분별과 판단으로 가려 뽑으면 된다. 창세기 1장 26-27절에서 하나님이 말씀하시기를 ‘우리가 우리의 형상을 따라 우리의 모양대로 사람을 만들고…’ 하셨고, ‘그리하여 하나님이 자기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시되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셨다’ 하셨다. 또 창세기 3장 22절에 ‘보라 이 사람이 우리 중 하나같이 되었다’ 하셨다. ‘우리가 우리의 형상대로 사람을 만들자’는 이 말씀에서 신성 안에 한 위격 이상이 계심이 드러나고, ‘하나님이 창조하셨다’고 말씀하실 때에는 그 통일성이 나타난다. 과연 그분은 위격이 몇이신지는 말씀하지 않으시나, 구약에서 우리에게 다소 모호하게 보이는 것이 신약에서는 매우 분명하다. 우리 주께서 요단 강에서 세례를 받으실 때에 성부의 음성이 들려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라’ 하셨고, 성자는 물에서 보이셨으며, 성령은 비둘기 모양으로 나타나셨다. 이 형식은 또한 그리스도께서 모든 신자의 세례에 제정하신 것이니,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모든 민족에게 세례를 베풀라’ 하셨다. 누가복음에서 천사 가브리엘이 우리 주의 어머니 마리아에게 이렇게 말하였다. ‘성령이 네게 임하시고 지극히 높으신 이의 능력이 너를 덮으시리니, 이러므로 나실 바 거룩한 이는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어지리라.’ 또한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하나님의 사랑과 성령의 교통하심이 너희와 함께 있을지어다.’ ‘증언하는 이가 하늘에 셋이니 곧 아버지와 말씀과 성령이라 또한 이 셋은 하나이니라.’ 이 모든 곳에서 우리는 하나의 신적 본질 안에 세 위격이 계심을 온전히 배운다. 비록 이 교리가 모든 인간의 이해를 훨씬 뛰어넘을지라도, 우리는 이제 하나님의 말씀으로 말미암아 그것을 믿으며, 장차 하늘에서 그것에 대한 온전한 지식과 유익을 누리기를 기대한다. 더욱이 우리는 이 세 위격이 우리를 향하여 가지시는 특별한 직분과 사역을 주목해야 한다. 성부는 그 권능으로 우리의 창조주라 불리시고, 성자는 그 피로 우리의 구주요 구속자시며, 성령은 우리 마음에 거하심으로 우리를 거룩하게 하시는 분이시다. 이 거룩한 삼위일체의 교리는 사도들의 때로부터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유대인과 마호메트교도와 어떤 거짓 그리스도인과 이단들 곧 마르키온, 마네스, 프락세아스, 사벨리우스, 사모사타의 바울, 아리우스와 그와 같은 자들에 맞서 참된 교회가 늘 변호하고 지켜 왔으니, 그들은 정통 교부들에게 정당히 정죄받았다. 그러므로 이 점에 있어 우리는 세 신경, 곧 사도신경과 니케아 신경과 아타나시우스 신경을 기꺼이 받아들이며, 또한 그것들에 부합하게 옛 교부들이 합의한 바도 받아들인다.
10 That Jesus Christ is true and eternal God
우리는 믿노니, 예수 그리스도는 그 신적 본성을 따라 하나님의 독생자로서 영원 전부터 나셨고, 만들어지거나 창조되신 것이 아니라(만일 그렇다면 그분은 피조물이 되실 것이다) 성부와 함께 한 본질이시며 함께 영원하시고, 그분의 위격의 명백한 형상이요 그 영광의 광채이시며 모든 점에서 그분과 동등하시다. 그분은 우리의 본성을 취하신 때부터만이 아니라 영원 전부터 하나님의 아들이시니, 이 증언들을 서로 비교할 때에 우리에게 그렇게 가르친다. 모세는 하나님이 세상을 창조하셨다 말하고, 요한은 그가 하나님이라 부르는 그 말씀으로 만물이 지어졌다 말하며, 사도는 하나님이 그 아들로 말미암아 세상들을 지으셨다 말한다. 또한 하나님이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만물을 창조하셨다 한다. 그러므로 하나님이요 말씀이요 아들이요 예수 그리스도라 불리시는 그분이, 만물이 그분으로 말미암아 창조되던 그때에 이미 존재하셨음이 반드시 따라온다. 그러므로 선지자 미가는 ‘그의 근본은 상고에, 영원에 있느니라’ 하였고, 사도는 ‘그는 날의 시작도 없고 생명의 끝도 없다’ 하였다. 그러므로 그분은 우리가 부르고 예배하고 섬기는 그 참되고 영원하시며 전능하신 하나님이시다.
11 That the Holy Ghost is true and eternal God
우리는 또한 믿고 고백하노니, 성령은 영원 전부터 성부와 성자에게서 나오시며, 따라서 만들어지거나 창조되거나 나심을 받으신 것이 아니라 오직 그 둘에게서 나오실 뿐이며, 그 순서에 있어 거룩한 삼위일체의 제3위격이시요, 성부와 성자와 동일한 하나의 본질과 위엄과 영광을 지니시며, 따라서 성경이 우리에게 가르치는 대로 참되고 영원하신 하나님이시다.
12 Of the Creation
우리는 믿노니, 성부께서는 말씀 곧 자기 아들로 말미암아 하늘과 땅과 모든 피조물을 자기 보시기에 좋은 대로 무로부터 창조하시고, 각 피조물에게 그 존재와 모양과 형태와, 그 창조주를 섬길 여러 직분을 주셨다. 또한 그분은 사람의 섬김을 위하여 자신의 영원한 섭리와 무한한 권능으로 여전히 그것들을 붙드시고 다스리시니, 이는 사람이 자기 하나님을 섬기게 하시려는 것이다. 그분은 또한 천사들을 선하게 창조하사 자기 사자가 되고 자기 택자들을 섬기게 하셨으나, 그중 일부는 하나님이 그들을 창조하신 그 탁월함에서 떨어져 영원한 멸망에 이르렀고, 다른 이들은 하나님의 은혜로 굳게 서서 그 본래의 상태에 머물렀다. 마귀들과 악한 영들은 너무도 부패하여 자기 힘이 닿는 데까지 하나님과 모든 선한 것의 원수가 되었으니, 살인자처럼 교회와 그 모든 지체를 멸하려고 노리며 그 사악한 계략으로 모든 것을 파괴하려 한다. 그러므로 그들은 자기 자신의 악으로 인하여 영원한 정죄에 처해져 그 끔찍한 고통을 날마다 기다린다. 그러므로 우리는 영들과 천사들의 존재를 부인하는 사두개인의 오류와, 마귀들이 자기 자신에게서 기원하였고 부패당한 일 없이 본래부터 악하다고 주장하는 마니교도의 오류를 배척하고 미워한다.
13 Of Divine Providence
우리는 믿노니, 동일하신 하나님께서는 만물을 창조하신 후에 그것들을 버리거나 운수나 우연에 내맡기지 않으시고, 자신의 거룩한 뜻을 따라 그것들을 다스리고 통치하시므로, 이 세상에서 그분의 정하심이 없이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그럼에도 하나님은 범하여지는 죄들의 조성자가 아니시며 그 죄들로 책망받으실 수도 없으니, 이는 그분의 권능과 선하심이 너무도 크고 헤아릴 수 없어서, 마귀들과 악한 사람들이 불의하게 행할 때조차 그분은 가장 탁월하고 의로운 방식으로 자기 일을 명하시고 이루시기 때문이다. 그분이 인간의 이해를 뛰어넘어 행하시는 일에 대하여는, 우리의 능력이 허락하는 것 이상으로 호기심으로 캐묻지 않고, 가장 큰 겸손과 경외로 우리에게 감추어진 하나님의 의로우신 심판을 경배하며, 우리가 그리스도의 제자로서 이 한계를 넘지 않고 오직 그분이 말씀에 우리에게 계시하신 것들만 배운다는 것으로 만족한다. 이 교리는 우리에게 말할 수 없는 위로를 주니, 이로써 우리가 배우기를, 어떤 일도 우연으로 우리에게 닥치는 것이 아니라 가장 은혜로우신 하늘 아버지의 지시로 닥치는 것이며, 그분은 아버지의 돌보심으로 우리를 지키시고 모든 피조물을 자기 권능 아래 두시므로, 우리 머리털 하나도(이는 다 세신 바 되었으니) 우리 아버지의 뜻이 없이는, 또 참새 한 마리도 땅에 떨어지지 않는다. 우리는 그분을 온전히 신뢰하노니, 그분이 마귀와 우리의 모든 원수를 제어하셔서 그분의 뜻과 허락이 없이는 그들이 우리를 해할 수 없게 하심을 확신한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이 아무것도 돌보지 않으시고 모든 것을 우연에 내맡기신다고 말하는 에피쿠로스주의자들의 저주받을 오류를 배척한다.
14 Of the creation and fall of Man, and his incapacity to perform what is truly good
우리는 믿노니, 하나님께서는 땅의 흙으로 사람을 창조하시고 자기 형상과 모양을 따라 그를 만들어 지으시되, 선하고 의롭고 거룩하게, 모든 일에 하나님의 뜻에 합당하게 의지를 발할 수 있게 하셨다. 그러나 그는 존귀한 자리에 있으면서도 그것을 깨닫지 못하고 자기 탁월함을 알지 못하여, 마귀의 말에 귀를 기울임으로써 고의로 자기를 죄에, 따라서 죽음과 저주에 굴복시켰다. 그는 자기가 받은 생명의 명령을 어겼고, 죄로 말미암아 자기의 참 생명이신 하나님에게서 자기를 떼어 놓아 자기 온 본성을 부패시켰으니, 이로써 자기를 육체적·영적 죽음에 처하게 하였다. 이렇게 그는 자기 모든 길에서 악하고 비뚤어지고 부패한 자가 되어,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자기 모든 탁월한 은사를 잃어버리고 다만 그 약간의 잔재만 간직하였는데, 그러나 그것은 사람을 변명할 수 없게 하기에 충분하다. 이는 성경이 우리에게 가르치는 대로, 우리 안에 있는 모든 빛이 어둠으로 바뀌었기 때문이니, ‘빛이 어둠에 비치되 어둠이 깨닫지 못하더라’ 하였고, 거기서 성 요한은 사람들을 어둠이라 부른다. 그러므로 우리는 사람의 자유의지에 관하여 이것에 반하여 가르쳐지는 모든 것을 배척하노니, 사람은 죄의 종일 뿐이요, 하늘에서 주어지지 않으면 자기에게서 아무것도 가진 것이 없기 때문이다. 그리스도께서 ‘나를 보내신 아버지께서 이끌지 아니하시면 아무도 내게 올 수 없다’ 하셨거늘, 누가 감히 자기 스스로 무슨 선을 행할 수 있다고 자랑하겠는가? 육신의 생각이 하나님과 원수 됨을 아는 자가 누가 자기 의지를 자랑하겠는가? 육에 속한 사람은 하나님의 성령의 일들을 받지 아니하거늘, 누가 자기 지식을 말하겠는가? 요컨대, 우리가 무슨 일이든 우리 스스로 한 것같이 스스로 생각할 만큼 넉넉하지 못하고 우리의 넉넉함이 하나님께로부터 난다는 것을 아는 자가, 누가 감히 무슨 생각을 제 것으로 내세우겠는가? 그러므로 사도가 말한 바, 곧 하나님이 자기의 기쁘신 뜻을 위하여 우리 안에서 소원을 두고 행하게 하신다는 것은 마땅히 확실하고 굳건한 것으로 여겨야 한다. 그리스도께서 사람 안에 이루신 것 외에는 신적 의지와 이해에 합당한 의지나 이해가 없으니, 그분이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것도 할 수 없다’ 하실 때에 우리에게 이를 가르치신다.
15 Of original Sin
우리는 믿노니, 아담의 불순종으로 말미암아 원죄가 온 인류에게 미쳤으니, 그것은 온 본성의 부패요 유전되는 질병이며, 그것으로 유아들조차 그 어미의 태 속에서부터 물들고, 그것이 사람 안에서 그 뿌리가 되어 온갖 죄를 낳는다. 그러므로 그것은 하나님 보시기에 너무도 더럽고 가증하여 온 인류를 정죄하기에 충분하다. 또한 그것은 세례로도 결코 없어지거나 제거되지 않으니, 죄가 늘 이 비참한 근원에서, 마치 샘에서 물이 솟듯 흘러나오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그것은 하나님의 자녀들에게 정죄에 이르도록 전가되지 않고, 그분의 은혜와 자비로 그들에게 용서된다. 이는 그들이 죄 가운데 안일히 머물게 하려는 것이 아니라, 이 부패에 대한 자각으로 신자들이 자주 탄식하며 이 사망의 몸에서 건짐받기를 사모하게 하려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죄가 오직 모방에서 나온다고 주장하는 펠라기우스주의자들의 오류를 배척한다.
16 Of eternal Election
우리는 믿노니, 우리의 첫 조상의 죄로 말미암아 아담의 온 후손이 이렇게 멸망과 파멸에 빠졌을 때, 하나님께서는 자기 본연의 모습 곧 자비로우시고 의로우신 분으로 자기를 나타내셨다. 자비로우심은, 그분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자기의 영원하고 변하지 않는 경륜 가운데 오직 선하심으로, 그들의 행위와 무관하게 택하신 모든 자를 이 멸망에서 건지시고 보존하심에 있다. 의로우심은, 스스로 자기를 빠뜨린 그 타락과 멸망 가운데 다른 이들을 남겨 두심에 있다.
17 Of the recovery of fallen Man
우리는 믿노니, 가장 은혜로우신 우리 하나님께서는 그 놀라운 지혜와 선하심으로, 사람이 이렇게 자기를 현세적·영적 죽음에 던져 넣어 자기를 온전히 비참하게 만든 것을 보시고, 그가 떨며 그분의 면전에서 도망할 때에 그를 찾아 위로하시기를 기뻐하셨으니, 여자에게서 나실 자기 아들을 주어 뱀의 머리를 상하게 하고 그를 복되게 하시겠다고 그에게 약속하셨다.
18 Of the incarnation of Jesus Christ
그러므로 우리는 고백하노니, 하나님께서는 자기 거룩한 선지자들의 입으로 조상들에게 하신 약속을 이루셨으니, 그분이 정하신 때에 자기의 독생하시고 영원하신 아들을 세상에 보내사, ‘그가 종의 형체를 가져 사람과 같이 되셨으며’, 죄를 제외한 그 모든 연약함과 함께 참 인성을 실제로 취하시되, 사람의 방편 없이 성령의 권능으로 복되신 동정녀 마리아의 태에 잉태되셨다. 그분은 몸에 관하여 인성을 취하셨을 뿐 아니라 참 인간 영혼도 취하셔서 참 사람이 되셨으니, 이는 영혼도 몸과 마찬가지로 잃어버린 바 되었으므로 둘을 다 구원하시기 위하여 둘을 다 취하셔야 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리스도께서 자기 어머니에게서 인간 육체를 취하셨음을 부인하는 재세례파의 이단에 맞서) 고백하노니, 그리스도는 자녀들의 살과 피에 참여하신 자가 되셨고, 육신을 따라 다윗의 허리의 열매이시며, 육신을 따라 다윗의 씨로 나셨고, 동정녀 마리아의 태의 열매이시며, 여자에게서 나셨고, 다윗의 가지이시며, 이새의 뿌리에서 난 싹이시고, 유다 지파에서 나셨으며, 육신을 따라 유대인에게서 나셨고, 아브라함의 씨이시니 이는 그분이 아브라함의 씨를 취하셨기 때문이며, ‘죄를 제외하고는 모든 일에 그 형제들과 같이 되셨다.’ 그리하여 그분은 참으로 우리의 임마누엘 곧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다’는 뜻이시다.
19 Of the union and distinction of the two natures in the person of Christ
우리는 믿노니, 이 잉태로 말미암아 성자의 위격이 인성과 분리될 수 없게 연합되고 결합되었으니, 그리하여 두 하나님의 아들이나 두 위격이 있는 것이 아니라 한 단일한 위격 안에 연합된 두 본성이 있되, 각 본성은 자기의 구별된 고유성을 간직한다. 그러므로 신적 본성이 늘 창조되지 않은 채로, 날의 시작이나 생명의 끝이 없이, 하늘과 땅을 채우며 남아 있는 것같이, 인성도 그 고유성을 잃지 않고 피조물로 남아 날의 시작을 가지며 유한한 본성이요 참 몸의 모든 고유성을 간직한다. 비록 그분이 자기 부활로 그 몸에 불멸성을 주셨을지라도, 그분은 자기 인성의 실재를 바꾸지 않으셨으니, 이는 우리의 구원과 부활도 그분의 몸의 실재에 달려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두 본성은 한 위격 안에 너무도 긴밀히 연합되어 있어 그분의 죽으심으로도 분리되지 않았다. 그러므로 그분이 죽으실 때에 자기 아버지의 손에 부탁하신 것은 그분의 몸을 떠나는 참 인간의 영이었다. 그러나 그동안에도 신적 본성은, 그분이 무덤에 누워 계실 때조차 늘 인성과 연합되어 있었으니, 신성은 그분이 어린아이였을 때와 마찬가지로 그분 안에 있기를 그치지 않았으되, 다만 한동안 자기를 그토록 분명히 나타내지 않았을 뿐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고백하노니, 그분은 참 하나님이시요 참 사람이시니, 죽음을 이기시는 그 권능으로는 참 하나님이시요, 그 육신의 연약함을 따라 우리를 위하여 죽으실 수 있도록 참 사람이시다.
20 That God hath manifested his justice and mercy in Christ
우리는 믿노니, 온전히 자비로우시고 의로우신 하나님께서는 자기 아들을 보내사, 불순종이 범하여진 그 본성을 취하여 그 동일한 본성으로 만족을 이루고, 그 가장 쓰라린 고난과 죽으심으로 죄의 형벌을 담당하게 하셨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우리의 죄악을 자기 아들 위에 두실 때에 자기 아들을 향하여 자기 공의를 나타내셨고, 죄책이 있어 정죄받아 마땅한 우리에게는 오직 순전하고 온전한 사랑으로 자기 자비와 선하심을 부어 주셨으니, 우리를 위하여 자기 아들을 죽음에 내어 주시고 우리의 칭의를 위하여 그를 다시 살리사, 그분으로 말미암아 우리가 불멸과 영원한 생명을 얻게 하셨다.
21 Of the satisfaction of Christ, our only high priest, for us
우리는 믿노니, 예수 그리스도는 멜기세덱의 반차를 따라 영원한 대제사장이 되시기로 맹세로 세움을 받으셨다. 그분은 우리를 대신하여 자기 아버지 앞에 자기를 드리사, 십자가 나무 위에서 자기를 드리고 우리 죄를 씻기 위하여 자기의 보배로운 피를 쏟음으로써, 자기의 온전한 만족으로 그 진노를 누그러뜨리셨으니, 선지자가 예언한 바와 같다. 기록되었으되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 때문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 때문이라 그가 징계를 받음으로 우리는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우리는 나음을 받았도다 그는 도수장으로 끌려가는 어린 양 같았고 범죄자 중 하나로 헤아림을 받았도다’ 하였으며, 본디오 빌라도가 먼저 그를 무죄하다 선언하였으나 그를 악행자로 정죄하였다. 그러므로 ‘그는 빼앗지 않은 것을 도로 갚으셨고, 의로운 자로서 불의한 자를 위하여 고난을 받으셨으니’, 그 몸으로나 영혼으로나 우리의 죄가 마땅히 받을 그 무서운 형벌을 느끼셨고, 그리하여 ‘그의 땀이 땅에 떨어지는 핏방울같이 되었다.’ 그분은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 하고 부르짖으셨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을 우리 죄의 사함을 위하여 당하셨다. 그러므로 우리는 사도 바울과 함께 정당히 말하노니,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와 그가 십자가에 못 박히신 것 외에는 아무것도 알지 아니하기로 작정하였고,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하므로 모든 것을 해로 여기고 배설물로 여긴다’ 하니, 그 상처 안에서 우리는 온갖 위로를 발견한다. 또한 단번에 드려져 믿는 자들을 영원히 온전하게 하는 이 유일한 희생 외에, 하나님과 화목하게 될 다른 어떤 방편을 찾거나 만들어 낼 필요가 없다. 이것이 또한 그분이 하나님의 천사에게 예수 곧 구주라 불리신 이유이니, 이는 그분이 자기 백성을 그들의 죄에서 구원하실 것이기 때문이다.
22 Of our justification through faith in Jesus Christ
우리는 믿노니, 이 큰 비밀에 대한 참 지식에 이르도록 성령께서 우리 마음에 올바른 믿음을 일으키시니, 그 믿음은 예수 그리스도를 그 모든 공로와 함께 받아들이고 그분을 자기 것으로 삼으며 그분 외에 다른 아무것도 구하지 않는다. 우리의 구원에 필요한 모든 것이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지 않거나, 아니면 모든 것이 그분 안에 있어서 믿음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소유한 자들이 그분 안에 온전한 구원을 가지거나, 둘 중 하나가 반드시 따라오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누가 그리스도로는 충분하지 않고 그분 외에 무언가가 더 필요하다고 주장한다면, 그것은 너무도 심한 신성모독이 될 것이니, 이는 그리스도가 반쪽짜리 구주에 불과하다는 결론이 거기서 나오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바울과 함께 정당히 말하노니, 우리는 오직 믿음으로, 곧 행위 없는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는다. 그러나 더 분명히 말하자면, 우리는 믿음 자체가 우리를 의롭다 한다는 뜻이 아니다. 믿음은 우리가 우리의 의이신 그리스도를 받아들이는 도구일 뿐이기 때문이다. 도리어 예수 그리스도께서 자기의 모든 공로와, 우리를 위하여 또 우리를 대신하여 행하신 그 수많은 거룩한 일들을 우리에게 전가하심으로써 우리의 의가 되신다. 그리고 믿음은 우리를 그분의 모든 유익 안에서 그분과 교제하게 지키는 도구이니, 그 유익들이 우리의 것이 될 때에 우리 죄를 사면하기에 차고도 넘친다.
23 That our justification consists in the forgiveness of sin, and the imputation of Christ’s righteousness
우리는 믿노니, 우리의 구원은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는 우리 죄의 사함에 있으며, 그 안에 하나님 앞에서의 우리의 의가 함축되어 있으니, 다윗과 바울이 우리에게 가르치는 대로, 하나님이 행위 없이 사람에게 의를 전가하시는 것이 사람의 복이라 선언한다. 또 동일한 사도가 말하기를,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구속으로 말미암아 그분의 은혜로 값없이 의롭다 하심을 받는다 한다. 그러므로 우리는 늘 이 기초를 굳게 붙들어, 모든 영광을 하나님께 돌리고, 그분 앞에서 우리 자신을 낮추며, 우리가 실제로 어떤 자인지를 인정하고, 우리 자신 안의 무엇이나 우리의 어떤 공로를 감히 신뢰하지 않고, 오직 십자가에 못 박히신 그리스도의 순종에만 의지하고 안식하니, 그 순종은 우리가 그분을 믿을 때에 우리의 것이 된다. 이것은 우리의 모든 죄악을 덮고 우리에게 하나님께 나아갈 담대함을 주며, 양심을 두려움과 공포와 떨림에서 자유롭게 하기에 충분하니, 떨면서 무화과 잎으로 자기를 가리려 한 우리 첫 조상 아담의 본을 따르지 않게 한다. 참으로 우리가 우리 자신이나 다른 어떤 피조물을, 아무리 작은 것에라도 의지하여 하나님 앞에 나타난다면, 아아, 우리는 소멸되고 말 것이다. 그러므로 각 사람은 다윗과 함께 기도해야 하니, ‘주여 주의 종에게 심판을 행하지 마소서 주의 목전에는 살아 있는 자가 하나도 의롭다 함을 얻지 못하리이다’ 하였다.
24 Of man’s sanctification and good works
우리는 믿노니, 하나님의 말씀을 들음과 성령의 역사로 사람 안에 이루어진 이 참 믿음은 그를 거듭나게 하고 새사람으로 만들어, 새 생명을 살게 하며 죄의 속박에서 그를 자유롭게 한다. 그러므로 이 의롭게 하는 믿음이 사람을 경건하고 거룩한 삶에 게으르게 만든다는 것은 결코 사실이 아니며, 도리어 이 믿음 없이는 그들이 하나님을 향한 사랑에서가 아니라 오직 자기 사랑이나 정죄에 대한 두려움에서만 무언가를 행할 뿐, 결코 아무것도 행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므로 이 거룩한 믿음이 사람 안에서 열매를 맺지 못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니, 우리는 헛된 믿음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성경에서 ‘사랑으로 역사하는 믿음’이라 불리는 그러한 믿음을 말하는 것이며, 그 믿음은 사람을 자극하여 하나님이 그 말씀에 명하신 일들을 행하게 한다. 이러한 일들은 믿음의 선한 뿌리에서 나오므로 하나님 보시기에 선하고 받아들여지니, 이는 그것들이 모두 그분의 은혜로 거룩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것들은 우리의 칭의에 대하여는 아무런 효력이 없으니, 우리가 의롭다 하심을 받는 것은 우리가 선한 일을 행하기도 전에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으로 되는 것이며, 그렇지 않으면 그것들은 선한 일이 될 수 없으니, 나무 자체가 선해지기 전에는 나무의 열매가 선할 수 없는 것과 같다. 그러므로 우리는 선한 일을 행하되 그것으로 공로를 세우려고 행하는 것이 아니니(우리가 무엇을 공로로 세울 수 있겠는가) 도리어 우리가 행하는 선한 일에 대하여 우리가 하나님께 빚진 자요 그분이 우리에게 빚지신 것이 아니니, 이는 그분이 자기의 기쁘신 뜻을 위하여 우리 안에서 소원을 두고 행하게 하시는 분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기록된 바에 주의하자. ‘너희가 명령받은 모든 일을 다 행한 후에 우리는 무익한 종이라 우리가 마땅히 하여야 할 일을 한 것뿐이라 하라.’ 그동안 우리는 하나님이 선한 일에 상 주심을 부인하지 않으나, 그것은 그분이 은혜로 자기의 선물에 면류관을 씌우시는 것이다. 더욱이 우리는 선한 일을 행할지라도 우리의 구원을 그것 위에 세우지 않으니, 우리는 우리 육신으로 더럽혀지고 또한 벌받아 마땅하지 않은 일은 하나도 행할 수 없기 때문이다. 또 우리가 그러한 일들을 행할 수 있다 할지라도, 한 가지 죄의 기억만으로도 하나님이 그것들을 물리치시기에 충분하다. 이같이 우리가 만일 우리 구주의 고난과 죽으심의 공로에 의지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늘 의심 가운데 아무 확신 없이 이리저리 흔들릴 것이요, 우리의 가련한 양심은 끊임없이 괴로워할 것이다.
25 Of the abolishing of the Ceremonial Law
우리는 믿노니, 율법의 의식과 표상들은 그리스도의 오심으로 그쳤고 모든 그림자가 이루어졌으니, 그러므로 그것들의 사용은 그리스도인 가운데서 폐지되어야 한다. 그러나 그것들의 진리와 실체는 그것들이 그 완성을 이루신 예수 그리스도 안에 우리와 함께 남아 있다. 그동안 우리는 여전히 율법과 선지자들에게서 취한 증언들을 사용하여, 복음의 교리 안에서 우리를 굳게 하고,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그분의 뜻을 따라 모든 정직함으로 우리의 삶을 규율한다.
26 Of Christ’s intercession
우리는 믿노니, 우리는 오직 유일한 중보자요 대언자이신 의로우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지 않고는 하나님께 나아갈 길이 없다. 그분은 바로 이를 위하여 사람이 되사 신적 본성과 인적 본성을 한 위격에 연합하셨으니, 이는 우리 사람들이 신적 위엄에 나아가게 하시려는 것이요, 그렇지 않으면 그 나아감이 우리에게 막혔을 것이다. 그러나 성부께서 자기와 우리 사이에 세우신 이 중보자는, 결코 그 위엄으로 우리를 두렵게 하거나 우리로 우리 생각을 따라 다른 이를 찾게 하셔서는 안 된다. 하늘이나 땅에 예수 그리스도보다 우리를 더 사랑하는 피조물은 없으니, 그분은 하나님의 본체시나 자기를 비워 사람의 형체, 곧 우리를 위하여 종의 형체를 취하시고 모든 일에 자기 형제들과 같이 되셨다. 그러면 우리가 우리에게 호의를 가진 다른 중보자를 찾는다 한들, 우리가 그분의 원수였을 때에도 우리를 위하여 자기 목숨을 버리신 그분보다 우리를 더 사랑하는 자를 어디서 찾겠는가? 또 권능과 위엄을 가진 자를 찾는다 한들, 자기 아버지의 우편에 앉으시고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가지신 그분만큼 그 둘을 가진 자가 누구이겠는가? 또 하나님의 친히 사랑하시는 아들보다 더 속히 들으심을 받을 자가 누구이겠는가? 그러므로 성인들을 공경하는 대신 도리어 욕되게 하는 이 관습은 오직 불신에서 들어온 것이니, 성인들 자신은 결코 행하지도 요구하지도 않았고 도리어 그 마땅한 본분을 따라 굳게 배척한 일을 행하는 것이다. 이는 그들의 글에서 드러난다. 또한 우리는 여기서 우리의 합당치 못함을 핑계해서는 안 되니, 그 뜻은 우리가 우리 자신의 합당치 못함을 이유로 하나님께 기도를 드려야 한다는 것이 아니라, 오직 주 예수 그리스도의 탁월하심과 합당하심을 이유로 드려야 한다는 것이며, 그분의 의가 믿음으로 우리의 것이 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사도는 이 어리석은 두려움 곧 불신을 우리에게서 제하려고 정당히 말하기를, 예수 그리스도께서 모든 일에 자기 형제들과 같이 되셨으니 이는 그가 백성의 죄를 속하기 위하여 자비롭고 신실한 대제사장이 되게 하려 하심이라 하였다. 그분 자신이 시험을 받아 고난을 당하셨은즉 시험받는 자들을 능히 도우실 수 있기 때문이다. 또 우리를 더욱 격려하려고 덧붙이기를, 우리에게 큰 대제사장이 계시니 승천하신 자 곧 하나님의 아들 예수시라 우리가 믿는 도리를 굳게 잡을지어다 하였다. 우리에게 있는 대제사장은 우리의 연약함을 동정하지 못하실 이가 아니요 모든 일에 우리와 똑같이 시험을 받으신 이로되 죄는 없으시니라. 그러므로 우리는 긍휼하심을 받고 때를 따라 돕는 은혜를 얻기 위하여 담대히 은혜의 보좌 앞에 나아가자. 동일한 사도가 말하기를, 우리가 예수의 피를 힘입어 지성소에 들어갈 담력을 얻었으니 참 마음과 온전한 믿음으로 나아가자 하였다. 또한 그리스도는 변하지 않는 제사장 직분을 가지셨으므로, 자기를 힘입어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들을 온전히 구원하실 수 있으니, 이는 그가 항상 살아서 그들을 위하여 간구하심이라. 그 이상 무엇이 더 요구되겠는가? 그리스도 자신이 말씀하시기를,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 하셨다. 그렇다면 하나님께서 자기 아들을 우리의 대언자로 주시기를 기뻐하셨거늘, 우리가 무슨 까닭으로 다른 대언자를 찾겠는가? 우리는 그분을 버리고 다른 이를 취하거나, 도리어 결코 찾을 수 없는 다른 이를 찾지 말자. 하나님께서 그분을 우리에게 주실 때에 우리가 죄인인 줄을 잘 아셨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리스도의 명령을 따라, 주기도문에서 배운 대로, 우리의 유일한 중보자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하늘 아버지를 부르며, 우리가 그분의 이름으로 아버지께 구하는 것은 무엇이든 우리에게 주실 것을 확신한다.
27 Of the Catholic Christian Church
우리는 하나의 보편적 곧 우주적 교회를 믿고 고백하노니, 그것은 참 그리스도인 신자들의 거룩한 회중이요, 모두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자기 구원을 바라며, 그분의 피로 씻음을 받고 성령으로 거룩하게 되며 인 치심을 받은 자들이다. 이 교회는 세상의 시작부터 있었고 그 끝까지 있을 것이니, 이는 그리스도가 영원한 왕이심에서 분명하다. 왕은 백성 없이는 왕일 수 없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거룩한 교회는 온 세상의 분노에 맞서 하나님께 보존되고 떠받쳐지니, 비록 때로는 (한동안) 매우 작게 보이고 사람들의 눈에 아무것도 아닌 것으로 축소된 듯 보일지라도 그러하다. 위태로운 아합의 통치 때에 주께서 바알에게 무릎 꿇지 않은 칠천 명을 자기를 위하여 남겨 두신 것과 같다. 더욱이 이 거룩한 교회는 어떤 장소나 어떤 사람들에게 국한되거나 매이거나 제한되지 않고 온 세상에 퍼지고 흩어져 있으되, 믿음의 능력으로 마음과 뜻을 같이하여 하나의 동일한 영 안에서 연합되고 하나가 된다.
28 That every one is bound to join himself to the true Church
우리는 믿노니, 이 거룩한 회중은 구원받은 자들의 모임이요 그 밖에는 구원이 없으므로, 어떤 신분이나 처지에 있는 사람이든 거기서 물러나 분리된 상태로 살아서는 안 되고, 모든 사람이 그것과 합하고 연합할 의무가 있으니, 교회의 일치를 유지하고, 그 교리와 권징에 복종하며, 예수 그리스도의 멍에 아래 목을 굽히고, 같은 몸의 서로 지체로서 하나님이 주신 재능을 따라 형제들의 덕을 세우는 일에 봉사해야 한다. 그리고 이것이 더 효과 있게 지켜지도록,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교회에 속하지 않은 모든 자에게서 자기를 분리하고, 하나님이 세우신 곳이면 어디서나 이 회중과 합하는 것이 모든 신자의 의무이니, 비록 위정자들과 군주들의 칙령이 그것을 반대할지라도, 참으로 죽음이나 다른 어떤 육체적 형벌을 당할지라도 그러하다. 그러므로 그 교회에서 자기를 분리하거나 그것과 합하지 않는 모든 자는 하나님의 규례에 반하여 행하는 것이다.
29 Of the marks of the true Church, and wherein she differs from the false Church
우리는 믿노니,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어느 것이 참 교회인지 부지런하고 신중하게 분별해야 하니, 이는 세상의 모든 분파가 스스로 교회라는 이름을 취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는 여기서 선한 자들과 교회 안에 섞여 있으나 비록 외적으로는 그 안에 있어도 교회에 속하지 않은 위선자들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참 교회의 몸과 교제는 스스로 교회라 부르는 모든 분파와 구별되어야 함을 말하는 것이다. 참 교회를 알아보는 표지는 이러하니, 곧 그 안에서 복음의 순수한 교리가 전파되는가, 그리스도께서 제정하신 대로 성례의 순수한 집행을 지키는가, 죄를 벌함에 있어 교회의 권징이 시행되는가, 요컨대 모든 것이 하나님의 순수한 말씀을 따라 처리되고 거기에 반하는 모든 것이 배척되며 예수 그리스도가 교회의 유일한 머리로 인정되는가 하는 것이다. 이로써 참 교회가 확실히 알려지니, 아무도 거기서 자기를 분리할 권리가 없다. 교회의 지체인 자들에 관하여는, 그들이 그리스도인의 표지 곧 믿음으로 알려지며, 유일한 구주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받아들였을 때에 죄를 피하고 의를 따르며 참 하나님과 자기 이웃을 사랑하고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지 않으며 육신과 그 행위를 십자가에 못 박는다. 그러나 이것은 그들 안에 큰 연약함이 남아 있지 않다는 뜻으로 이해해서는 안 되니, 도리어 그들은 평생토록 성령으로 그것들과 싸우며, ‘믿음으로 그분 안에서 죄 사함을 얻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피와 죽으심과 고난과 순종에 끊임없이 피한다. 거짓 교회로 말하면, 그것은 하나님의 말씀보다 자기 자신과 자기 규례에 더 많은 권능과 권위를 돌리고 그리스도의 멍에에 복종하려 하지 않는다. 또한 그리스도께서 그 말씀에 정하신 대로 성례를 집행하지 않고, 자기 생각에 맞게 그것들에 더하거나 빼며, 그리스도보다 사람을 더 의지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거룩히 살며 그 오류와 탐욕과 우상숭배를 책망하는 자들을 박해한다. 이 두 교회는 서로 쉽게 알아보고 구별할 수 있다.
30 Concerning the government of, and offices in the Church
우리는 믿노니, 이 참 교회는 우리 주께서 그 말씀에 우리에게 가르치신 영적 정치로 다스려져야 하니, 곧 하나님의 말씀을 전파하고 성례를 집행할 사역자 곧 목사가 있어야 하고, 또 목사들과 함께 교회의 회를 이루는 장로와 집사가 있어야 한다. 이런 방편으로 참 신앙이 보존되고 참 교리가 곳곳에 전파되며, 마찬가지로 범죄자가 영적 수단으로 벌받고 제어되며, 또 가난하고 곤고한 자들이 그 필요를 따라 구제받고 위로받게 된다. 이런 방편으로 신실한 사람들이 성 바울이 디모데에게 보낸 서신에 규정한 규범을 따라 택함을 받을 때에, 교회 안의 모든 일이 선한 질서와 단정함으로 행해질 것이다.
31 Of the Ministers, Elders, and Deacons
우리는 믿노니, 하나님의 말씀의 사역자와 장로와 집사는, 주의 이름을 부르며, 하나님의 말씀이 가르치는 그 질서를 따라, 교회의 합법적 선거로 각자의 직분에 택함을 받아야 한다. 그러므로 각 사람은 합당치 못한 수단으로 스스로 끼어들지 않도록 조심해야 하며, 하나님이 자기를 부르시기를 기뻐하실 때까지 기다릴 의무가 있으니, 이는 그가 자기 부르심의 증거를 가지고 그것이 주께로부터 온 것임을 확실히 확신하게 하려는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의 사역자들로 말하면, 그들은 어디에 있든지 동등하게 같은 권능과 권위를 가지니, 이는 그들이 모두 유일한 보편적 감독이요 교회의 유일한 머리이신 그리스도의 사역자이기 때문이다. 더욱이 하나님의 이 거룩한 규례가 침해되거나 가볍게 여겨지지 않도록, 우리는 말하노니, 각 사람은 하나님의 말씀의 사역자와 교회의 장로를 그 일로 인하여 매우 높이 존중하고, 가능한 한 원망이나 다툼이나 분쟁 없이 그들과 화평해야 한다.
32 Of the order and discipline of the Church
그동안 우리는 믿노니, 교회의 치리자들이 교회의 몸을 유지하기 위하여 자기들 가운데 어떤 규례를 제정하고 세우는 것이 유익하고 이로울지라도, 그들은 우리의 유일한 주인이신 그리스도께서 제정하신 것들에서 떠나지 않도록 부지런히 조심해야 한다. 그러므로 우리는 사람이 하나님의 예배에 도입하여 어떤 방식으로든 양심을 매고 강요하려는 모든 인간의 고안과 모든 법을 배척한다. 그러므로 우리는 화합과 일치를 기르고 보존하며 모든 사람을 하나님께 대한 순종 가운데 두는 데 이바지하는 것만 받아들인다. 이 목적을 위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거기에 속한 여러 정황과 함께 출교 곧 교회의 권징이 필요하다.
33 Of the sacraments
우리는 믿노니, 은혜로우신 우리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약함과 연약함을 인하여 우리를 위하여 성례를 제정하사, 이로써 우리에게 그분의 약속들을 인 치시고,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선하신 뜻과 은혜의 보증이 되게 하시며, 또한 우리의 믿음을 기르고 강하게 하셨다. 그분은 이것을 복음의 말씀에 결합하셨으니, 이는 그분이 자기 말씀으로 우리에게 가리키시는 것과 우리 마음 속에 내적으로 행하시는 것을 우리 감각에 더 잘 제시하사, 그분이 우리에게 베푸시는 구원을 우리 안에 보증하고 확증하시려는 것이다. 성례는 내적이고 보이지 않는 것의 보이는 표와 인이니, 그것을 통하여 하나님께서 성령의 권능으로 우리 안에 일하신다. 그러므로 그 표들은 헛되거나 무의미하여 우리를 속이는 것이 아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그것들이 제시하는 참 대상이시며, 그분이 없으면 그것들은 아무 의미가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더욱이 우리는 우리 주 그리스도께서 제정하신 성례의 수에 만족하니, 그것은 오직 둘뿐이라, 곧 세례의 성례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거룩한 만찬이다.
34 Of holy baptism
우리는 믿고 고백하노니, 율법의 마침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자기 피를 흘리심으로, 사람이 죄에 대한 화목제나 만족으로 드릴 수 있거나 드리려 한 다른 모든 피 흘림을 끝내셨고, 피로 행하던 할례를 폐하시고 그 대신 세례의 성례를 제정하셨으니, 이로써 우리가 하나님의 교회에 받아들여지고 다른 모든 백성과 이방 종교에서 분리되어, 우리가 그분의 표와 깃발을 지니는 그분께 온전히 속하게 된다. 또 그것은 그분이 영원히 우리의 은혜로운 하나님이요 아버지가 되시리라는 증거가 된다. 그러므로 그분은 자기에게 속한 모든 자에게 명하사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정결한 물로 세례를 받게 하셨으니, 이로써 우리에게 가리키시기를, 물이 부어질 때에 몸의 더러움을 씻어 내고 세례받는 자에게 뿌려질 때에 그 몸에 보이는 것같이, 그리스도의 피가 성령의 권능으로 내적으로 영혼에 뿌려져 그 죄에서 씻어 내고 우리를 진노의 자녀에서 하나님의 자녀로 거듭나게 하신다는 것이다. 이는 외적인 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아들의 보배로운 피의 뿌림으로 이루어지니, 그분은 우리의 홍해시라, 우리는 그것을 통과하여 바로 곧 마귀의 폭정을 벗어나 영적 가나안 땅에 들어가야 한다. 그러므로 사역자들은 그 편에서 성례 곧 보이는 것을 집행하나, 우리 주께서는 그 성례가 가리키는 것 곧 은사와 보이지 않는 은혜를 주시니, 우리 영혼을 모든 더러움과 불의에서 씻고 정결하게 하고 깨끗하게 하시며, 우리 마음을 새롭게 하고 모든 위로로 채우시며, 우리에게 그분의 아버지로서의 선하심에 대한 참 확신을 주시고, 우리에게 새사람을 입히시고 옛사람과 그 모든 행위를 벗기신다. 그러므로 우리는 믿노니, 영원한 생명을 얻기를 진지하게 힘쓰는 각 사람은 이 유일한 세례로 단 한 번만 세례를 받아야 하며 결코 그것을 반복해서는 안 되니, 이는 우리가 두 번 날 수 없기 때문이다. 또한 이 세례는 물이 우리에게 부어지고 우리가 받는 그때에만 우리에게 유익한 것이 아니라 우리 평생의 온 과정에 걸쳐 유익하다. 그러므로 우리는 재세례파의 오류를 미워하노니, 그들은 한 번 받은 그 유일한 세례에 만족하지 않고, 더욱이 신자의 유아들의 세례를 정죄한다. 우리는 그 유아들이 마땅히 세례를 받고 언약의 표로 인 치심을 받아야 한다고 믿으니, 옛적에 이스라엘의 자녀들이 우리 자녀들에게 주어진 것과 같은 약속들 위에서 할례를 받은 것과 같다. 참으로 그리스도께서는 어른들을 위해서만큼이나 신실한 자들의 자녀들을 씻기 위하여도 자기 피를 흘리셨다. 그러므로 그들은 그리스도께서 그들을 위하여 행하신 그것의 표와 성례를 받아야 하니, 주께서 율법에서 명하신 대로, 그들이 태어난 직후에 그들을 위하여 어린 양을 드림으로 그리스도의 고난과 죽으심의 성례에 참여하게 하신 것과 같으며, 그 어린 양은 예수 그리스도의 성례였다. 더욱이 할례가 유대인에게 의미한 것이 곧 세례가 우리 자녀에게 의미하는 것이다. 이런 까닭에 바울은 세례를 그리스도의 할례라 부른다.
35 Of the Holy Supper of our Lord Jesus Christ
우리는 믿고 고백하노니, 우리 구주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거룩한 만찬의 성례를 정하시고 제정하사, 이미 거듭나게 하시고 자기 가족 곧 자기 교회에 받아들이신 자들을 기르고 떠받치게 하셨다. 그런데 거듭난 자들에게는 두 가지 생명이 있으니, 하나는 육적이고 현세적인 것으로 첫째 출생에서 받으며 모든 사람에게 공통된 것이요, 다른 하나는 영적이고 천상적인 것으로 둘째 출생에서 그들에게 주어지는 것이니, 그것은 그리스도의 몸과의 교제 안에서 복음의 말씀으로 이루어지며, 이 생명은 공통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택자들에게 고유한 것이다. 마찬가지로 하나님께서는 육적이고 땅에 속한 생명을 떠받치기 위하여 거기에 이바지하는 땅의 흔한 떡을 우리에게 주셨으니, 그것은 생명 자체와 마찬가지로 모든 사람에게 공통된 것이다. 그러나 신자들이 가진 영적이고 천상적인 생명을 떠받치기 위하여, 그분은 하늘에서 내려온 살아 있는 떡 곧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셨으니, 그분은 신자들이 그분을 먹을 때에, 곧 영 안에서 믿음으로 그분을 받아들이고 영접할 때에 그들의 영적 생명을 기르고 강하게 하신다. 그리스도께서는 이 영적이고 천상적인 떡을 우리에게 나타내시려고, 자기 몸의 성례로서 땅의 보이는 떡을, 자기 피의 성례로서 포도주를 제정하사, 이것들로 우리에게 증거하시기를, 우리가 이 성례를 우리 손에 받아 들고 우리 입으로 먹고 마셔 그것으로 후에 우리 생명이 길러지는 것이 확실한 것같이, 우리도 우리 영혼의 손과 입인 믿음으로 우리의 유일한 구주이신 그리스도의 참 몸과 피를 우리 영혼에 확실히 받아 우리 영적 생명을 떠받친다는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에게 그 성례의 사용을 헛되이 명하지 않으셨음이 확실하고 모든 의심을 넘어서는 것같이, 비록 그 방식이 우리의 이해를 넘어서고 성령의 역사가 감추어지고 헤아릴 수 없는 것처럼 우리가 깨달을 수 없을지라도, 그분은 이 거룩한 표들로 우리에게 나타내시는 모든 것을 우리 안에 이루신다. 그동안 우리가 먹고 마시는 것이 그리스도의 고유하고 본연의 몸이요 고유한 피라고 말할 때에 우리는 그릇되지 않는다. 그러나 우리가 그것에 참여하는 방식은 입으로가 아니라 믿음을 통하여 영으로 하는 것이다. 이같이 그리스도께서 늘 하늘에서 자기 아버지의 우편에 앉아 계실지라도, 그분은 그로 인하여 믿음으로 우리를 자기에게 참여하게 하시기를 그치지 않으신다. 이 잔치는 영적 식탁이니, 거기서 그리스도께서 자기 모든 유익과 함께 자기를 우리에게 나누어 주시고, 거기서 우리로 그분 자신과 그분의 고난과 죽으심의 공로를 누리게 하사, 그분의 살을 먹음으로 우리의 가련하고 위로 없는 영혼을 기르고 강하게 하고 위로하시며, 그분의 피를 마심으로 그것들을 살아나게 하고 새롭게 하신다. 또한 성례가 그것이 가리키는 것과 연결되어 있을지라도, 그 둘이 모든 사람에게 받아들여지는 것은 아니니, 경건치 않은 자는 참으로 성례를 받되 자기 정죄에 이르도록 받으며 성례의 진리는 받지 못한다. 가룟 유다와 마술사 시몬이 둘 다 참으로 성례를 받았으나 그것이 가리키는 그리스도는 받지 못한 것과 같으니, 그분은 오직 신자들만 참여하는 분이시다. 끝으로 우리는 이 거룩한 성례를 하나님의 백성의 모임에서 겸손과 경외로 받으며, 감사와 함께 우리 구주 그리스도의 죽으심에 대한 거룩한 기억을 우리 가운데 지키고, 거기서 우리의 믿음과 그리스도교 신앙을 고백한다. 그러므로 아무도 먼저 자기를 올바로 살피지 않고 이 상에 나아와서는 안 되니, 이는 이 떡을 먹고 이 잔을 마심으로 자기에게 임할 심판을 먹고 마시지 않게 하려는 것이다. 한마디로, 우리는 이 거룩한 성례를 사용함으로 하나님과 우리 이웃을 향한 뜨거운 사랑으로 자극받는다. 그러므로 우리는 사람이 성례에 더하고 섞은 모든 혼합물과 저주받을 고안을 그것들의 모독으로 여겨 배척하며, 우리는 그리스도와 그분의 사도들이 우리에게 가르치신 규례에 만족해야 하고, 그들이 말한 것과 동일한 방식으로 그것들을 말해야 한다고 단언한다.
36 Of Magistrates
우리는 믿노니, 은혜로우신 우리 하나님께서는 인류의 부패를 인하여 왕들과 군주들과 위정자들을 세우사, 세상이 어떤 법과 정치로 다스려지기를 원하셨으니, 이는 사람들의 방종이 제어되고 그들 가운데 모든 일이 선한 질서와 단정함으로 행해지게 하시려는 것이다. 이 목적을 위하여 그분은 위정자에게 칼을 맡기사 악을 행하는 자를 벌하고 선을 행하는 자를 칭찬하게 하셨다. 그들의 직분은 시민 국가의 복지를 돌아보고 지킬 뿐 아니라, 또한 거룩한 사역을 보호하고, 그리하여 모든 우상숭배와 거짓 예배를 제하고 막아, 적그리스도의 나라가 멸망되고 그리스도의 나라가 진흥되게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그들은 하나님이 그 말씀에 명하시는 대로 각 사람이 하나님을 존귀히 여기고 예배하도록, 곳곳에서 복음의 말씀이 전파되도록 도와야 한다. 더욱이 어떤 신분이나 자질이나 처지에 있는 자든지 위정자에게 복종하고, 조세를 바치며, 그들에게 마땅한 존귀와 존경을 표하고, 하나님의 말씀에 반하지 않는 모든 일에 그들에게 순종하며, 하나님이 그들의 모든 길에서 그들을 다스리고 인도하사 우리가 모든 경건과 정직 가운데 조용하고 평안한 삶을 살게 하시도록 그들을 위하여 기도하는 것이 각 사람의 마땅한 의무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재세례파와 그 밖의 선동적인 자들, 일반적으로 더 높은 권세와 위정자를 배척하고, 공의를 뒤엎으며, 재물의 공유를 도입하고, 하나님이 사람들 가운데 세우신 그 단정함과 선한 질서를 어지럽히려는 모든 자를 미워한다.
37 Of the Last Judgment
끝으로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믿노니, 주께서 정하신 때(모든 피조물에게 알려지지 않은 때)가 이르고 택자의 수가 차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그 오르신 것같이 몸으로 또 보이게, 큰 영광과 위엄으로 하늘에서 오사 자기를 산 자와 죽은 자의 심판자로 선언하시고, 이 옛 세상을 불과 화염으로 태워 그것을 정결하게 하실 것이다. 그때에 세상의 시작부터 그 끝까지 있던 모든 사람, 곧 남자와 여자와 아이들이, 천사장의 음성과 하나님의 나팔 소리에 부름을 받아 이 위대한 심판자 앞에 친히 나타날 것이다. 모든 죽은 자가 땅에서 일으킴을 받고, 그들의 영혼이 전에 살던 자기 본연의 몸과 합하고 연합될 것이다. 그때에 살아 있을 자들로 말하면, 그들은 다른 자들처럼 죽지 않고 눈 깜짝할 사이에 변화되어 썩을 것에서 썩지 않을 것이 될 것이다. 그때에 책들(곧 양심들)이 펼쳐지고, 죽은 자들이 이 세상에서 행한 바 선이든 악이든 그에 따라 심판을 받을 것이다. 참으로 모든 사람이 자기가 한 모든 무익한 말, 곧 세상이 단지 오락과 농담으로 여기는 그 말에 대하여 답변할 것이며, 그때에 사람들의 은밀한 일과 위선이 모두 앞에 드러나고 폭로될 것이다. 그러므로 이 심판을 생각하는 것은 악하고 경건치 않은 자들에게는 정당히 두렵고 무서운 일이나, 의롭고 택함받은 자들에게는 가장 바라고 위로가 되는 일이니, 이는 그때에 그들의 온전한 구원이 완성되고, 거기서 그들이 견딘 수고와 환난의 열매를 받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들의 무죄함이 모든 자에게 알려지고, 그들은 이 세상에서 자기들을 가장 잔혹하게 박해하고 압제하고 괴롭힌 악인들에게 하나님이 행하실 그 무서운 보응을 볼 것이니, 그 악인들은 자기 자신의 양심의 증언으로 정죄받고, 불멸이므로 마귀와 그 천사들을 위하여 예비된 그 영원한 불 속에서 고통을 당할 것이다. 그러나 반대로 신실하고 택함받은 자들은 영광과 존귀로 면류관을 쓸 것이요, 하나님의 아들이 그들의 이름을 하나님 자기 아버지와 그분의 택한 천사들 앞에서 시인하실 것이며, 모든 눈물이 그들의 눈에서 씻겨질 것이다. 또한 지금 많은 재판관과 위정자에게 이단적이고 불경하다 정죄받는 그들의 송사가, 그때에는 하나님의 아들의 송사인 것으로 알려질 것이다. 그리고 은혜로운 상으로, 주께서 그들로 사람의 마음에 결코 떠오른 적 없는 그러한 영광을 누리게 하실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 큰 날을 가장 간절한 사모함으로 기다리노니, 이는 우리가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의 약속들을 온전히 누리게 하려는 것이다. 아멘. 주 예수여, 과연 그렇게 오시옵소서. 계시록 22장 20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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